소설리스트

하이어드-6화 (6/52)

5.검은 눈동자.

검은 눈동자의 간판은 캡슐로 14분을 이동한 후에 볼 수 있었다. 이동

하는 내내 메이런은 캡슐 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메이런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판단될 때만 높은 건물이나 날

고 있는 호버콥터에 시선을 보냈지만, 쿨란과 라몬은 메이런의 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메이런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간판이었다. 작은 마을에서만 살아 온

메이런은 간판이라는 게 너무나도 생소했던 것이다. 마을에서는 간판이

라는 게 없었다. 어디에 식당이 있고, 어디에 잡화용품점이 있는지 모르

는 사람은 마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보는 수많은 간판의 모습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메이

런으로서는 어딘지 천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메이런이 막 경

고등을 달고 있는 호버콥터를 보았을 때였다.

"저게 뭔지 궁금하니?"

쿨란이 친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메이런은 당황했다.

"전혀요."

메이런은 이렇게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목소리는 끝이 갈라지고

있었다.

"저건 교통경찰이다. 가끔 호버콥터를 이용한 범죄가 일어나면 효과적

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날고 있는 거지. 그 옆에 지나는 건 퀵서비스 모

터란다. 2인승이지만 그만큼 빠르지. 서류라든가 손으로 들 수 있는 간단

한 물건을 날라. 가끔은 사람도 나르지만.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는 건

캡슐이라고 부른단다.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지. 다시 말해, 가장 싸

구려라는 뜻이다."

쿨란의 말에는 별 흥미가 없다는 척 하긴 했지만 메이런은 그리 훌륭

한 배우감은 되지 못했다.

"헌터야드 59번가입니다. 요금은 1,4000크레딧입니다. 모쪼록 좋은 이

동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저희 랜티 교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수증."

안내 음성이 끝나자 쿨란이 말했고, 캡슐의 문에서 종이가 한 장 출력

되었다.

"푸우순 시에서 사는 법 첫 번째다."

쿨란은 영수증을 메이런의 눈앞에서 흔들면서 말했다.

"영수증을 챙겨라. 무슨 일이건."

쿨란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눈빛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번

득이고 있었다. 고작 영수증 앞에서 저런 눈을 하다니. 메이런은 얼른 고

개를 틀어 쿨란의 시선을 피했다.

"저깁니까?"

라몬이 쿨란에게 물었다. 라몬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검은 눈동자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었다. 이름도 이름이지만 간판에 그려진 세로로 서 있

는 타원형 눈동자의 그림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쿨란은 라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는 라몬과 메이

런을 이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검은 눈동자 앞에는 키가 2미터가 훨씬 넘는 랩타일 레이스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랩타일 레이스는 빨간색 태가 둘러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의 경비원이거나 이곳 주인의 개인 경호원인 모양

이었다.

쿨란이 다가서자 랩타일 레이스는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 미리 연락을

받은 모양이로구나 하고 메이런은 생각했다. 먼저 문을 통과한 것은 메

이런이었다. 메이런은 두려웠다. 다른 레이스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

음이었던 것이다.

"저, 쿨란."

메이런이 물었다.

"저건... 뭐였나요?"

메이런의 목소리는 소근거리는 듯 했다.

"랩타일 레이스다. 우리가 보기엔 도마뱀 같아 보이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해선 안되지. 저 친구가 보기에 우리는 원숭이일 테니까 말이야."

쿨란이 말하자 라몬은 웃음을 터트렸다. 메이런은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두운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셋은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걸어 움직여갔다. 군데군데 붉은 조명등이 달려 있기는 했지만

붉은 빛은 어둠 속에서 어둠을 더욱 돋보이게 할뿐이었다.

"너무 놀라지는 말아라, 메이런. 이제 곧 또 다른 레이스를 보게 될 테

니까 말이야."

쿨란이 말했다.

복도의 끝에는 간판에서 보았던 눈동자 모양이 그려진 문이 있었다.

쿨란은 문에 노크를 길게 세 번했다.

"들어오게."

문안에서 갈라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쿨란은 메이런을 바라보면서 문

을 열라고 손짓했다. 메이런은 목구멍이 좁아진 기분이 들었다. 침이 잘

넘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어서."

쿨란이 재촉했을 때가 되어서야 메이런은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일부

러 기름칠을 하지 않은 건지 문은 몹시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

다. 금속이 마찰하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문안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고, 그 뒤로 머리까지 두건을

뒤집어 쓴 존재가 앉아 있었다. 조명은 여전히 어두웠고 어디선가 음산

한 바람소리마저 들려오는 듯 했다.

"어서들 오게."

검은 두건을 뒤집어 쓴 존재가 이렇게 말했다. 메이런은 어쩐지 휴먼

레이스의 목소리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술을 마주치는 소리가 너무

탁했던 것이다.

"쿨란. 말했던 친구가 바로 이 친구인가?"

"그래요, 키티-본."

쿨란이 말했다.

"트랜서의 재능은 소중한 것이야. 모든 재능이 그렇지만. 예를 들자면

저기 서 있는 쿨란은 타인을 괴롭히는 데에는 재능이 있지. 그 재능 덕

분에 아주 잘 먹고 살고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이 쪽은 공무원인가?"

키티-본이라고 불린 존재는 라몬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연방 수사관 라몬입니다."

"그래. 당신은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아는 구만. 법도 잘 지키고. 그래서

공무원일거라고 생각했어."

키티-본의 목소리는, 비록 발음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음산하면서

동시에 한 존재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울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

다. 재능일까? 아니면 기술? 메이런은 어쩌면 사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리고... 메이런."

키티-본이 말했을 때, 메이런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마치 벌

거벗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던 것이다. 어디선가 냉기가 몰려오고

있는 듯도 했다.

"이리 가까이."

메이런은 쿨란을 바라보았다. 쿨란은 가까이 가라고 메이런에게 턱으

로 지시했다. 잠시 망설이던 메이런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키티-

본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목구멍은 좁았다.

키티-본의 손이 올라왔다. 메이런은 하마 터라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시커먼 털로 뒤덮혀 있는 키티-본의 손은 윤기가 흐르고 있어서 마치

꿈속에서나 나올 법한 악마의 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메이런... 아주 젊은 친구로군. 아주 많이."

키티-본은 이렇게 말하면서 메이런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메이런

은 비명을 지르던가, 아니면 도망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털로 뒤덮인 손길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서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느껴졌다. 손톱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메이런은 면도날이

얼굴을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겁내지 말게, 젊은 친구. 나도 자네처럼 숨쉬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

는 존재야."

메이런은 키티-본의 '젊은 친구'라는 말을 그리 기분 좋게 느낄 수가

없었다. 예전에 라몬이 말했을 때 기분이 좋아졌던 것과는 상황이 달랐

다.

키티-본은 두건을 내렸다. 쿨란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라몬과 메이런

의 얼굴은 순간 크게 일그러졌다.

키티-본의 얼굴은 검은 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원형에 가까운 키티-

본의 얼굴은 머리 위쪽으로 뾰족한 두 개의 귀가 솟아 있었고 입은 전체

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 한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까만

색의 코는 젖어 있는 듯 축축해 보였다. 라몬과 메이런이 놀란 건 키티-

본의 얼굴이 난생 처음 보는 레이스여서가 아니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

리에는 눈 대신 시커멓고 어두운 공간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 눈동자는 검은 색이야.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검은 눈동자

이지."

키티-본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네들 분류로 따지면 카니보라 레이스이지만 그렇게 불

러서는 안 되. 카이보라 레이스는 줄잡아 2000개 이상의 종이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순수 키티-본 레이스라네. 이 행성 어스에는 물론이고 전

우주에도 몇 남지 않은 종이지."

눈 대신 자리하고 있는 텅빈 공간은 메이런과 라몬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메이런은 잠시동안 키티-본이 그 검은 눈동자

로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가 의심할 지경이었다.

"키티-본. 여전히 말이 많군요."

쿨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메이런은 둘이 꽤 오래 전부

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그랬나? 미안하군. 요즘엔 통 나를 찾는 녀석들이 없어서 말이

야. 기껏 찾아온다는 녀석들은 돈을 잃어버렸는데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느냐는 녀석이나 돈 떼먹고 도망친 녀석을 찾는 녀석, 돈 버는 법을

물어보는 녀석이 있질 않나, 어디에 투자를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느냐,

이 물건이 돈이 되겠느냐..."

"맞아요, 키티-본. 휴먼 레이스들은 돈이 최고의 가치라 그래요."

쿨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쿨란의 말이 끝나자 키티-본

은 목구멍에서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라몬은 몸을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지만 메이런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내가 왜 웃고 있지?

메이런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뭔가 근지러운 것이 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메이런은 생경한 느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쉿..."

키티-본이 말했다.

"아직 날 믿지 못하는구나, 메이런."

메이런은 키티-본의 목소리가 슬프다고 느껴졌다.

"우리 때문 아닐까요?"

쿨란이 말했다. 그러자 키티-본의 얼굴이 기묘한 형태로 일그러지며

쿨란 쪽으로 돌아갔다.

"이 친구는 트랜서의 기질이 있어. 분명해. 느낄 수 있거든. 그런데 트

랜서라면 주위에 누가 있던 별 상관이 없는 거야."

키티-본은 꾸짖듯 말했다. 그리고 다시 메이런 쪽으로 고개를 돌린 키

티-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메이런. 네가 날 두려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

들은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지. 하지만 나는 지금 너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지금 내 감정을 공유하고 있어. 기

억나지? 내가 웃으니까 너도 미소를 지었잖아."

키티-본은 자상하게 메이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이런은 키티-본을

바라보았다. 키티-본의 눈동자가 있었을 자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불쌍하

다는 생각보다는 공허감이 느껴졌다. 메이런은 키티-본의 뜨거운 감정이

가슴속으로 천천히 스미는 기분이 들었다. 메이런은 숨을 한 번 깊게 들

이쉬었다. 그리고 늘 숨겨왔던 자신의 능력을 조금 발휘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저런..."

바로 그 순간 키티-본이 말했다. 라몬과 쿨란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죽였다. 어두운 방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풍선이 떠도는 것 같은 긴장

감이 감돌았다.

"나를 읽으려고 하지 말거라, 메이런. 그건 트랜서의 능력이 아니라 트

랜서의 기술일 뿐이야. 그것도 아주 작은 기술. 많은 이들이 트랜서를 남

의 생각이나 읽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아니야. 그냥 가

만히 있어 보게, 메이런. 그러면 알게 될 테니까."

메이런은 키티-본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사실 때문에 한 번

놀랐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자신의 능력이 그런 곳에 있지 않다는 말을

키티-본이 했다는 거였다. 사실 메이런의 어머니도 메이런의 아버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을 거였다. 트랜서의 일을 했

던 것은 아버지였지 어머니가 아니었으니까.

메이런은 미지의 영역이 눈앞에 놓여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흥분

과 동시에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영역

으로 뛰어들었다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분이었

다.

"공포심..."

키티-본은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메이런은 키티-

본을 바라보았다. 키티-본의 검은 눈동자는 그 어둠만큼이나 텅 비어 있

는 듯 했다.

"어떤 생명체도 미지의 것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가지기 마련이지. 암.

그렇고 말고.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거라. 그 공포심이라는 거 말이다.

혹시 내가 너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숨쉬는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닌지 말이야."

메이런은 키티-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따스한 느낌을 전해주는 키티-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렇게

날 바라보고 있는데...

꼭 그래서 만은 아니었다.

메이런은 천천히 키티-본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은 점점 더 어두워

지는가 싶더니 이내 곧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메이런

은 불이 꺼졌나보다 생각했다. 키티-본의 눈동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

눈동자만이 보이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이런은 주

위를 둘러보았다. 쿨란도, 라몬도, 키티-본도 보이지 않았다. 메이런은

어두운 방 한 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다만 눈앞에 부옇게 드러나고

있는 영상만이 메이런과 함께 할뿐이었다.

"아... 아이라?"

메이런의 눈에 보인 것은 아이라였다. 메이런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

는 게 사실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라. 너... 경비대로 들어간 거 아니었..."

메이런은 말을 하다가 문득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하고 있

는 대상이 아이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아이라가 아니라 키티-본이야."

아이라가 아이라의 목소리로 자신을 키티-본이라고 밝히는 모습은 아

이라가 눈앞에 나타난 것 보다 훨씬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메이런은

이해할 수 있었다.

"초능력인가요? 아니면 마술? 속임수?"

"트랜서의 능력이야."

키티-본이 말했다.

"트랜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거란다."

키티-본이 메이런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메이런은 키티-본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 보거라. 네가 낯선 키티-본 레이스 사이에 떨어졌다고.

의사 소통이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텔레파시,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각

을 그대로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레이스는 몇 되지 않아. 설령 텔레파

시가 가능한 레이스를 만난다고 해도 의사소통은 쉽지 않지. 언어를 통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일이니까."

아이라의 모습을 한 키티-본은 여기서 말을 한 번 끊었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트랜서는 이렇게 트랜스 된 공간을 불러와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레

이스가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이미지로 나타나서 말을 전할 수 있지. 대

상이 되는 레이스의 모습으로 말이야."

"그게... 그걸 제가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이라의 모습을 한 키티-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거야. 그것도 아주 곧."

메이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트랜서의 일이건, 트랜스건 메이런으로서는

너무나도 생소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물론 트랜스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가 마음을 열면 가능해.

넌 재능이 있어. 내가 이렇게 쉽게 트랜스 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아이라의 모습을 한 키티-본의 미소는 아이라의 미소와 다르지 않았

다. 메이런은 아마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아이라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지금 다른 레이스가 너를 원하고 있어. 네가 아니라면 대화는 불가능

해. 아마도 이곳에서 먹을 것도 찾지 못하고 굶어 죽을지도 모르지."

메이런은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

느냐고 말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용기 없는 존재로 비치는 것이 더 싫었다.

"이제 됐어.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쳤으니."

키티본의 말이 끝나자 메이런은 다시 어두운 방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는 쿨란과 라몬이 서 있었고, 테이블 저편에

는 키티-본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끝냈죠? 그... 트랜스요."

메이런은 사실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알지 못했지만 그건 이미 물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간단해. 숨을 들이쉬는 법을 안다면 내쉬는 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

는 것 같은 이치지."

키티-본이 말했다.

"그렇... 군요."

메이런은 답답했다. 도대체 뭘 해야 좋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트랜서는

뭐고 트랜스는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런 내색을 할 수

는 없었다. 쿨란과 라몬이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들 돌아가게. 난 손님을 받아야 해서 말이야."

"사실 키티-본은 트랜서가 아니야. 트랜서이긴 하지만 트랜서 일은 하

지 않지. 보다시피 그냥 점쟁이일 뿐이야."

"휴먼 레이스가 날 바꿨지."

키티-본은 갸르릉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돈이라는 거, 있으면 있을 수록 편하더구만. 휴먼 레이스의 교훈이

야."

키티-본은 여전히 갸르릉 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메이런은 키티-본의

말이 냉소적으로 비꼬는 어투라기 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말투처

럼 느껴졌다.

"쿨란. 행성 어스로 오면 다 잘 되라고 했던 자네 말이 맞았어. 경호원

에, 온갖 좋은 음식에... 여자도 얼마든지."

"예. 그럼 다음에 또."

키티-본의 갸르릉 거리는 웃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고, 쿨란은 가볍

게 목례 한 뒤 라몬과 메이런을 이끌고 검은 눈동자의 방을 나왔다.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쿨란?"

라몬이 쿨란에게 물었다.

"오래 전 일입니다. 겔러틱 전투의 전우죠."

쿨란이 대답했을 때 라몬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겔러틱이 어딘지는 모릅니다만... 어스 위에 있는 곳은 아니겠군요."

라몬이 말하자 메이런은 라몬의 말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제가 몇 대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조상은 1세대 용병이었습니다."

쿨란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정말 마지막까지 용병 생활을... 전 설마 용병으로 끌려, 아

니 참전했던 휴먼 레이스가 여기에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

다."

라몬은 한 번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라몬의 목소리는 무척 흥분되어

있었다. 쿨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는 남아 있는 게 아닙니다. 은퇴한 거죠."

쿨란이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휴먼 레이스 용병들도 있습니다."

메이런은 쿨란에게서 뜨거운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쿨란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전혀 다른 레이스들과의 전투를.

그리고 죽어가던 전우와 그 때 썼던 무기의 촉감을. 메이런은 느낄 수

있었다.

쿨란이 메이런을 바라보았을 때, 메이런은 얼른 눈을 피했다. 메이런은

자신이 쿨란의 감정을 읽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메이런. 푸우순 시에서 사는 법 두 번째를 알려주마."

쿨란의 목소리는 차가워서 메이런은 차마 대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널 보살펴 주는 사람의 마음은 읽지 마."

메이런은 쿨란의 눈길을 피한 채로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지만,

메이런은 쿨란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어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저는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쿨란 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곳에서 100년을 산 사람도 절 잘 모릅니다."

라몬의 물음에 이렇게 대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메이런은 라몬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3 -

복도는 끝이 났고, 쿨란은 검은 눈동자의 출입구를 열었다. 밝은 빛이

들어오자 붉은 조명은 순식간에 그 힘을 잃었다. 메이런은 맑은 하늘이

꽤나 깨끗하게 느껴졌다.

"연습해 보려면 다른 레이스를 상대로 하는 편이 좋지. 저 친구 마음

을 읽어보는 건 어때?"

입구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쿨란이 문 앞에 서 있는 랩타일 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랩타일 레이스는 빨간 태가 둘러진 선글라스를 쓴 채

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트랜서고 트랜스고 간에 안 되는 걸요."

메이런은 퉁명스럽게 쿨란에게 대꾸했다.

"그리고 전 마음을 열었거나 아니면 흥분해서 무방비인 경우 말고는

마음을 읽어 본 적 없어요."

"그렇구나."

쿨란이 말했다. 꼭 '자랑이다'하고 비꼬는 투였다.

"내가 한 번 해 보마."

쿨란은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라몬은

쿨란의 이 말에 흥미롭다는 듯 주의 깊게 쿨란을 바라보았다.

"저 친구는 먼 랩타일 레이스의 행성에서 망명 온 친구야. 탈영했거나

횡령했거나 해서이지. 하지만 돈을 별로 가지고 오지는 못했어. 돈이 될

만한 귀금속이나 정보도 없었고. 전직이 군인이었거든. 군인은 돈을 모으

기에 적합한 직업이 아니니까. 그래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쿨란의 말에 라몬과 메이런은 동시에 쿨란에게 주목했다. 쿨란은 그런

시선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 별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일을 하는지 생각해 보지. 이곳 시에서 주는 일거

리로는 생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부칠 수가 없

어. 그래서 위험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경비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아는 사이입니까?"

라몬이 신기하다는 듯 쿨란에게 물었다. 메이런은 쿨란의 대답을 들으

면서 혹시 쿨란도 트랜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트랜서의 재능

이 있다면 왜 나를 필요로 하는 걸까? 메이런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

아낼 수가 없었다.

"예. 알고 있는 친구이지요.."

쿨란이 말하자 라몬은 실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추리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곳에 와서 경비원 일

을 하는 레이스는 전직이 군인이었던 레이스뿐이거든요. 부자이거나 기

술이 있는 쪽은 이런 일을 안 하지요. 그리고 랩타일 레이스는 무척이나

가족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 랩타일 레이스뿐만 아니라 어떤 랩타일 레

이스라도 똑같지요."

쿨란은 이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메이런은 슬쩍 문 앞에 서 있

는 랩타일 레이스를 바라보았다. 문 앞의 랩타일 레이스는 이곳 말을 모

르는지 조금도 반응이 없었다.

"자고 있는지도 몰라. 랩타일 레이스는 가만히 서서 잠드는 기술이 있

거든. 그리고 이 친구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쿨란은 메이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이런은 이 말을 듣자 쿨란이 트

랜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메이런은 그런 사실을 조금도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는 안 하나요?"

"깨어 있었으면 먼저 했을 거야. 이대로 조용히 가자고, 메이런. 랩타

일 레이스는 낮잠을 방해받는 걸 싫어하니까 말이야. 혹시 저 친구하고

싸우고 싶은 건 아니겠지?"

쿨란의 말에 메이런은 얼른 앞장을 서서 캡슐 스테이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내내 라몬은 쿨란은 자꾸만 힐끔 힐끔 바라보았

다. 라몬은 아무래도 쿨란이 용병 생활을 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 모

양이었다.

사실 쿨란은 단단한 구리빛 피부나 크고 우락부락한 몸집 같은 용병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인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눈빛은 예리했지만 그리

살벌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고, 몸도 날렵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강

하다는 느낌은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쿨란은 라몬이 힐끔거리거나 말거

나 캡슐 안에 앉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결정해야 한다."

캡슐에 오르자마자 쿨란은 메이런에게 가깝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메

이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 기분을 한 번 생각 해봤단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

각했던 성인이 되는 날, 너무 많은 일이 닥쳤겠지. 불안하기도 하고... 초

조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구나."

메이런은 쿨란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쿨란이

풍기는 기운은 너무나도 어둡고 차가운 것이었다.

"트랜서 일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니라 안전한 일이야. 확실한 사회적

신분이 보장되는 일이기도 하지. 조금만 네가 애 쓴다면 정부 각료로 일

할 수도 있고 외교관이 될 수도 있단다."

쿨란의 말에 메이런은 아이라를 떠올렸다. 아이라는 언젠가 셔틀을 타

겠다면서 경비대에 들어갔다.

"그럼 저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쿨란이 말했다.

"이번 일 끝나면 연방수사국에 들어오는 것도 좋을 거야, 메이런."

라몬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얼른 끼어 들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박봉이라는 건 잘 알고 있겠지? 나하고 일하면 돈

하나는 확실하게 벌 수 있어. 게다가 보너스로 모험이 기다리고 있단다.

내가 하는 일은 시에서 손 댈 수 없는 일 이거든. 탈주한 레이스... 사업

에 망해 도망친 레이스... 가족에게 소식 한 번 전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레이스... 그런 수많은 레이스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거란다."

쿨란은 마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말을 뱉어내었다.

"공무원이라곤 하지만 수사관은 권력도 막강하지."

그러자 쿨란의 말끝에 라몬이 이렇게 토를 달았다. 하지만 그 말에는

아무래도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요, 전 아직 트랜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메이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머니가 했던 말을 이 자리에서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메이런에게 늘 말하곤 했다. 시에서 일하는 녀

석들은 전부 사기꾼이야... 전부 거짓말쟁이야... 푸우순 시는 지옥이야...

시는 저주받은 곳이란다...

"일단 쿨란 아저씨 쪽을 따를게요."

메이런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특별히 선택하고자 해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에는 트랜서하고 일해 본 적 없었나요?"

메이런이 쿨란에게 물었다. 쿨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막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단다."

쿨란은 가슴에서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면서 말했다. 단말기에 3차원

영상이 떠올랐고, 쿨란은 그것을 주의 깊게 살피는 듯 하더니, 다시 단말

기를 닫고 말을 이어갔다.

"전에 일하던 핑키라는 친구가 있었어.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노처녀였

지. 능력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였단다. 그런데... 사고를 당했어."

사고라는 말에 메이런의 얼굴 표정이 굳었다.

"트랜서 일과는 상관없는 사고였단다. 강도를 만난 거나... 아니면 길

가다가 탈선한 캡슐에 치인 거나... 벼락을 맞거나... 그런 것과 비슷한 사

고였지. 아. 그렇다고 절대 트랜서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정

작 위험한 건 시에서 일하는 트랜서들이니까."

쿨란의 말에 라몬은 뭐라고 덧붙일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쿨란이 다

음에 이을 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에서 일하는 트랜서는 항상 위험에 닿아 있단다. 다른 레이스들을

만나야 하니까 말이야. 게다가 협상이 실패하거나 하면 책임을 지고 다

른 레이스에게 신병을 인도하기도 한단다. 다시 말해 트랜서를 팔아 시

의 목숨을 유지하는 거지."

"참. 메이런. 그런데 트랜서 일은 할 자신이 있니?"

라몬은 얼른 이렇게 쿨란의 말을 돌리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

건 별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저도 알아요."

메이런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시에서 일했어요."

이걸로 쿨란은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어졌고, 라몬은 더 이

상 변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메이런이 보고들은 것은 어떠한 설명보다

강력할 게 분명했다.

"이젠 사건으로 돌아와야겠구나."

어느 사이 캡슐은 사무실에 도착했던 것이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몇 몇이 나에게 연락을 해 왔어."

사무실에 돌아온 쿨란은 메세지 창과 단말기에 남겨진 3차원 영상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영상은 무슨 레이스인지 알 수 없는 레이스들이 독

특한 억양으로 음성을 남겨 놓은 것들이었다.

"일단 그 만티드 레이스를 찾는 일부터 하자. 그리고 메이런은 빨리

트랜스 기술을 익혀야 하니까... 한 번 서둘러서 연습 상대를 찾아보자

고."

쿨란은 이미 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메이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이런은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트랜서의 일은 절대 하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상황은 메이런을 트랜서의 길로 몰아가고 있었

다. 하지만 메이런의 선택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꼭 상황만

은 아니었다. 키티-본과 함께 한 트랜스의 체험은 메이런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동시에 두려운 경

험이었다.

"나가기 전에 커피나 한 잔씩 해 두자고."

쿨란은 이렇게 말하면서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커피를 하루에 몇 잔이나 드십니까?"

라몬이 물었다. 쿨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세어 본 적이 없어서 모릅니다."

"몸에 좋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카페인이 몸에 좋다는 소린 못 들

어 본 것 같아서요."

"몸에 안 좋기는 도시의 공기도 마찬가지죠. 커피는 남자들의 음료입

니다. 진짜 남자들은 건강에 신경 쓰지 않지요."

아마 쿨란이 말하는 남자라는 건 용병을 뜻하는 모양이라고 메이런은

생각했다. 내일 전장에서 죽을지 모르는 데 건강에 신경을 쓴다는 건 넌

센스일 거였다.

쿨란은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메이런은 쿨란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쿨란은 정말이지 세상에 다시없는 마법의 약물이

라도 들이키는 사람처럼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참. 아까 빼먹고 말 안 했는데, 나와 일 하게 되면 보수는 항상 20%

다. 이번 일 같은 경우, 우리가 찾게 될 만티드 레이스가 지불한 것의

20%가 메이런 네 몫이야. 난 이런 데에는 분명한 휴먼 레이스야. 약속은

틀림없이 지킬 테니 걱정 말거라."

보수라는 말에 메이런은 20%가 얼마나 되는지, 또 그걸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 졌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보지 못한 메

이런으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일 들이었다.

"참고로 난 항상 금으로 보수를 받는단다. 어스는 시 단위로 다른 화

폐를 쓰기 때문에 계산하기가 복잡하지. 하지만 금은 달라. 우주 어느 행

성에 떨어지더라도 쓸 수 있거든. 그리고 메이런, 너도 이 일 하려면 새

겨둬라. 금은 어디나 귀하다는 걸 말이야. 결코 사라지지 않고, 게다가

아주 무겁지."

"푸우순 시에서 살아가는 법 3번인가요?"

메이런은 시큰둥하게 쿨란에게 물었다. 쿨란은 대답대신 너털웃음을

웃었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메이런은 여전히 시큰둥할 뿐이었다. 그저 말대답을 한 것일

뿐, 속마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메이런은 돈으로 식료품을 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식료품을 사는 것 외에 어떤 용도로 돈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커피라면 사 둘만 하겠는데. 메이런은 아직도 김이 오르고 있는 뜨거

운 커피의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자네라면 그렇게 물들여 놓을 줄 알았지."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밖에는 타이론이 서

있었다. 메이런과 라몬은 타이론을 금새 알아보았다. 호텔에 있을 때, 호

텔로 쿨란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전해 준 게 바로 타이론이었기 때문

이었다. 타이론의 거구의 몸집에 험악한 외모는 한 번 보면 그리 쉽게

잊혀지지 않는 외모였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꿈자리를 사납게 할 정

도의 외모였으니까.

"자네라면 그렇게 엿듣는 일도 서슴지 않을 줄 알았지. 들어오게."

쿨란의 말에 타이론은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무실로 들어섰

다.

"자네 커피는 없네. 이것만 마시고 곧 나가야 하거든."

쿨란은 사무적인 투였다. 그래서 쿨란의 말은 정말로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도 커피 마실 시간은 없어. 내 관할에서 어떤 놈이 창녀 둘을 죽였

거든."

"흔한 일이지. 강도, 변태 성욕, 아니면 포주. 용의자들 뽑아보고 있겠

구만. 그런데 바쁜데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정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정보."

타이론은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쿨란에게 말했다. 라몬과 메이런이

타이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타이론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녀석들이 찾고있는 만티드 레이스의 이름은 시크사. 발음이 좀 다를

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시크사라고 하더군. 대부분의 만티드 레이스가 그

렇듯이 여성이고, 녀석들이 찾고 있는 것은 시크사의 신병보다는 시크사

가 가지고 있는 물건인 모양이야."

"중요한 물건인가 보지?"

"내용물까진 알 수 없었네. 그나마 우리 트랜서가 겨우겨우 알아낸 사

실이야."

타이론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라몬과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혹시 오해하실 까봐 말씀 드리는 겁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

적인 호의입니다. 시는 절대로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몬과 메이런은 인사도 건네지 않고 사무적인 말만 하는 타이론이 불

쾌했지만 쿨란은 그런 일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만 해 둬. 저 분은 연방 공무원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말뜻도 모를

풋내기야."

쿨란의 말에 메이런은 화가 났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화를 내 봐야

특별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크사가 있을 만한 곳은 알아냈나?"

"찾을 수 있네. 나도 방법쯤은 알아."

쿨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천만 다행이로군. 그럼 어서 일을 진행하게. 일이 잘 되길 빌

지."

타이론은 이렇게 말하고는 라몬과 메이런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

아섰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쿨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자네가 그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면... 녀석들도 쉽게 찾

아낼 수 있지 않을까?"

"녀석들이?"

쿨란이 되물었다.

"지금은 협상중이지 않았나?"

"그야 외형상 그런 거지. 쿨란. 자네 같은 일을 하는 존재가 시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건 행성 어스 안에만 트랜서가 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지. 그리고 누군가 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결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거라는 점도 잊어선 안되네. 어쩌면 시간이 없

는지도 몰라."

타이론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꽤나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이

미 늦었을 수도 있다. 메이런은 생각했다.

"잘하면 시체 치우는 일이나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메이런은 쿨란의 마음을 읽지는 않았지만, 쿨란의 표정으로 어떤 생각

을 하고 있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쿨란은 만약 시체 치우는 일

만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트랜서 하나는 벌었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쪼록 별 탈이 없어야 할텐데요."

타이론이 나가자 라몬이 말했다.

"그러길 빕시다. 자. 나가죠."

쿨란은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말을 받은 다

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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