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트로이를 향하는 목마.
연구소에는 개인 연구실이 팀 별로 마련되어 있었다. 사친이 속해있는
곳은 섹터 3으로, 주로 유전공학과 다른 레이스의 생태를 연구하는 곳이
었다. 물론 리사민도 같은 섹터 3 소속이었다.
"여기서 이곳 행성 어스의 생태계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
사친은 자신의 연구실 의자에 앉아 시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크사
는 단정하게 앉아 있었고, 그 뒤로 리사민이 분주하게 뭔가를 찾아서 움
직이고 있었다.
"보트리오미르멕스 데카피탄스라는 개미가 있다네. 포미크 레이스의
먼 조상벌 되는 화석 곤충이지. 보트리오미르멕스 데카피탄스 족의 여왕
개미는 타피노마 개미에 일부러 잡힌다네. 그리고 집안에서 타피노마 개
미의 여왕을 죽이고 자신의 알을 낳지."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크사는 치를 떨었
지만, 사친은 카페인 기운이 도는지 겹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크
사의 눈에 반짝이는 겹눈은 마치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타오
르다가 시커멓게 빛을 잃게 되는 거겠지. 시크사는 사친의 죽어버린 겹
눈이 마치 무덤같이 느껴졌다.
"행성 어스에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이 있다네."
"뭡니까, 그게?"
시크사는 궁금하다는 듯이 묻기는 했지만 사실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
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
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선물을 가장한 독약, 그런 뜻이야. 옛날 고대에 행성 어스에
서..."
"대충 알 것 같군요."
시크사는 사친의 말을 막았다. 더 들어봐야 뻔한 이야기일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시크사는 갈색의 여왕 계획에 대해서 대강은 알고 있었다.
사친도 그런 시크사의 마음 알았는지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 하고는 말
을 이었다.
"나는 이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갈색의 여왕 계획
이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네. 그래서 여기서 나만의 연구를 계
속 해서 진행해 왔지."
"성공하셨습니까?"
시크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친의 이야기
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사친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크사는 그 웃음이 연구 성과에
대한 뿌듯함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카페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연구 성과는 말일세..."
사친이 말을 이으려는데 리사민이 뭐라고 말하면서 사친의 말을 끊었
다. 사친은 리사민에게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대꾸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겠군. 지금은 외골격에 대한 리사민의
연구를 도와줘야 할 시간이라서 말이야."
사친은 남아있는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마신 다음 자리에
서 일어났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게. 이거나 잘 챙기고 있으면 되니까."
사친은 시크사가 소중히 품고 있는 가방을 팔로 툭 치면서 말했다.
시크사는 사친이 왜 저렇게까지 느긋하게 구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시
크사가 알고 있기로 갈색의 여왕 계획은 시급을 다투는 계획이었다. 오
늘 당장이라도 실행해야 옳다고 생각해 왔던 시크사로서는 사친의 느긋
함이 짜증날 수밖에는 없었다.
사친과 리사민은 편광 현미경 앞에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연구 샘플에 대한 토론인 모양이었다.
"휴먼 레이스는 참으로 불합리한 성 구조를 가지고 있는 종족이야."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지, 사친은 노기 어린 음성으로 시크사를 바라
보면서 말했다.
"1:1의 성 구조에, 대체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강하고 활동적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어."
"다른 레이스니까요."
시크사는 볼멘 목소리로 사친에게 대꾸했다.
"생각해 보자구. 이 행성에 남성 하나에 여성 100명이 생존해 있다고
쳐. 그러면 1년이면 100명의 새 개체를 얻을 수 있지. 하지만 여성 하나
에 남성 100명이 생존했다면? 1년에 하나의 개체밖에 얻지 못하지."
"포유동물이니까요."
시크사는 완전히 건성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우리 만티드 레이스처럼 적은 수의 남성이 있는 게 합리적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거라 생각하네. 하긴. 성 구조에 있어서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유전공학이 발달했겠지."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리사민에게 뭐라고 말했다. 리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도 공감하는 모양이야. 남성의 수가 적어야 한다는 군."
사친은 이렇게 말하곤 리사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리사민은 이빨을
드러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하여간 내 연구 성과에는 여기 이 리사민 동지가 큰 역할을 한 셈이
지.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와 샘플을 모두 제공해 주었으니까 말일세."
연구 성과라는 말이 나오자 시크사는 더듬이를 바짝 세우면서 긴장했
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친은 다시 리사민과 함께 연구에 몰두하기 시
작했다.
"뭐 읽을 거리라도 없습니까? 아니면..."
"이제 다 끝났어. 여기 일만 끝나면 같이 내 방으로 가자구."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책상에서 작은 책자를 하나 꺼내었다.
"내가 우리말로 쓴 유전공학의 비밀이야. 한 번 읽어보게."
시크사는 책자를 받아들기는 했지만 내용은 과연 만티드 레이스의 언
어로 쓴 것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난해한 것이었다. 책
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화학기호와 그림들, 그리고 전문 용어의 연속일
뿐이었다. 시크사의 전공은 정원사 일이었다. 왕가에서 배운 것도 정원사
일이었고,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야도 정원사 일이었다.
시크사는 수 천 가지 종류의 화초 재배법과 관리법을 암기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지식들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이 별에서 자라
지도 않는 스트리스 나무가 트루듀 액을 먹고 자라고, 셀시아 꽃이 블루
빌로우 거름에서 잘 자란다는 지식이 쓸모가 있을 턱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시크사는 난해한 책자를 손에 들고서 사친이 깨울 때까지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로군."
사친은 측은하다는 듯한 눈을 하고서 시크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
크사는 입에서 약간의 소화액이 흘러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손으
로 입가를 닦아 내었다.
"죄송합니다. 긴장이 풀린 모양입니다."
"그래, 그래. 다 좋아."
사친은 리사민에게 다시 뭐라고 말하고는 웃으면서 시크사와 함께 연
구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일을 천천히 처리하는 데 대해서 불만이 많을 줄 알고 있네."
복도를 걸으면서 사친이 말했다. 시크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으로
해서 긍정의 뜻을 나타내었다.
"우리 계획의 핵심이 뭔가?"
"그야..."
"갈색의 여왕 계획의 핵심은 어렵게 훔쳐낸 왕가의 보물을 되돌려 주
는 걸세."
사친의 음성은 또박또박 하고도 침착했다. 시크사는 사친이 커피를 마
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렷하게 말하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그런데 쉽게 돌려주면 말이야, 아무리 멍청한 왕족이라고 해도 의심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걸세. 간단하지 않은 방법으로 아주 복잡하게... 왕
족들이 그야말로 고생고생해서 얻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돌려주는 것. 그
것이 우리 계획의 핵심이야."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시크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나 이틀, 아니 일주일쯤은 문제없어.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 흘
러가 주지 않으면 왕족 녀석들은 틀림없이 의심을 하게 될 거야."
시크사는 사친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끌고 있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족의 의심을 풀기 위한 계획은 시크사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인질극을 가장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 놓았던 첫 번째 방안이로군."
사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면 자네는 죽게 되어 있다네."
"알고 있습니다."
시크사의 목소리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
다.
"그리고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할 것이라고도 믿고 있습니다."
"그래... 용감한 젊은이로군."
사친의 음성이 조금 갈라졌다. 시크사는 사친의 몸에서 카페인 기운이
떨어져 가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반군 활동은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네. 많은 반군들이 포
로가 되거나 죽게 될 걸세."
시크사는 이 말을 듣고는 사친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늙은이에게 자신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시크사였다.
"미래를 위해서... 단 하나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걸, 난 여기서 배웠다
네. 반어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유전
공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사실이지."
"...정말 의외입니다."
시크사가 말했다.
"나는 수많은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무엇인지, 그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하지만 생명을 다루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지."
사친은 걸음을 멈추고 시크사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크사는
순간 사친의 시커멓게 타들어간 겹눈이 꼭 카페인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명은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을 믿게. 여기서 카
페인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해서 판단력 마저 흐려진 건 아니니까."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저... 안 갑니까?"
한 참이 지나서야 시크사가 조심스럽게 사친에게 물었다.
"여기가 내 방일세."
시크사는 멈추어 선 곳이 방문 앞이라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계신 겁니까?"
"음... 들어가지."
역시 카페인 때문이야. 시크사는 카페인을 끊을 생각이 없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의견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문은 키카드로
동작되었다. 하지만 키카드에는 생명 반응 인식 장치가 달려있어서 타인
이 카드로 문을 열려고 하면 열리지 않을 뿐 아니라 경비실에 비상 신호
가 가게 장치되어 있었다.
시크사는 방안으로 들어서자 생각 외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 상
태에 놀랐다. 카페인 중독자라고 하면 쓰레기를 방 어디에 버려도 별 상
관이 없을 만큼 엉망으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방에는 휴먼 레이스 식의 긴 침대를 만티드 레이스에 맞게 가운데게
쑥 들어가도록 개조한 것이 하나가 있었고, 그 옆으로 책상이 놓여 있었
다. 햇빛이 잘 들도록 동쪽을 향하고 있는 창문에는 커다란 회색 커튼이
달려 있었다.
"앉게."
사친은 책장 의자에 앉으면서 시크사에게 침대 자리를 권했다.
"깨끗하군요."
침대에 앉으면서 시크사가 말했다. 방안에는 커피 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향에 카페인 성분이 있지는 않겠지만, 시크사는 커피향 만으로
어지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구 성과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했지?"
사친은 시크사가 자리를 잡자 마자 이렇게 말을 꺼냈다. 시크사는 고
개를 끄덕였다.
"생명과 관계된 학문은 대단히 길고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학문이라
네..."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카페인 금단 현상
이었을까? 사친은 말을 잇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에 물을 올
렸다.
"여기서 얻을 수 있었던 건 내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유전자 조작 기
술뿐이었네. 충분한 실험을 할 시간은 20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지.
하지만 휴먼 레이스는 꽤 잘 만들어진 연산장치를 가지고 있었네. 나는
그것으로 갈색 여왕 계획을 시뮬레이션 해 보았다네."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시크사가 사친에게 물었다.
"결론은 아주 성공적이었어. 정확하게, 아주 정확하게 성공한다고 나왔
거든. 우리의 이론은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이지."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지었는데 시크사가 듣기에 이 웃음은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드는 웃음이었다.
"그럼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군요."
시크사가 말했다. 사친은 시크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작된 유전자를 주사기에 담아 비밀 장소에 보관해 두었다네."
"그럼 그것을 이용하기만 하면..."
"그래. 갈색의 여왕이 탄생하는 것이지. 타피노마 개미 무리 속으로 잠
입하게 될 보트리오미르멕스 데카피탄스 족의 여왕개미처럼."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건조해.
시크사는 생각했다. 사친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건조하고 울림이 없어
보였다.
"그럼 뭘 기다리는 겁니까?"
사친이 시크사에게 물었다.
"내일 하세."
사친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꽤 자유로운 곳이야. 하고 싶은 연구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지. 특별히 간섭하지도 않
고 감시하거나 통제 받지도 않지."
"하지만 휴먼 레이스도 뭔가 얻는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 휴먼 레이스도 뭔가 얻는 게 있으니 이렇게 다른 레이스를
모아 놓은 거지. 여기에서 생활하는 조건은 딱 두 가지밖에 없네. 하나는
연구소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연구 성과는 무조
건 보고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고쳐서 말일세."
"그렇다면..."
"맞아. 나는 내 연구 성과를 숨겨 놓았다네. 지금 가지러 가기엔 조금
곤란한 곳에 숨겨 두었어."
사친은 커튼을 열었다. 창 밖으로 하늘 가득한 별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푸우순 시는 돔으로 되어 있지만 별을 볼 수는 있어. 휴먼 레이
스의 기술력이지. 아마도 어떤 레이스가 전수해 주었을 것이 분명하지
만."
시크사는 침대에 앉아서 창 밖으로 보이는 별을 바라보았다.
"향수에 젖으라는 뜻일까. 이렇게 별이 잘 보이도록 해 놓다니..."
말끝을 흐리고 있는 사친은 아마도 울음을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
티드 레이스는 함부로 울지 않는다. 운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다는 뜻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나가서 오늘 해야 할 연구를 마무리 짓겠네. 자네는 여기 남아서
좀 쉬게나. 책상 위에 있는 책도 마음대로 보고."
사친은 이렇게 과장된 말투로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는 문 쪽으로 걸음
을 옮겼다.
"휴먼 레이스들이 보는 책도 있습니까?"
"아마 잡지가 몇 권 있을 걸세."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시크사가 읽지도 못할 휴먼 레
이스의 책 운운한 것은 사친의 논문과 비슷한 책을 읽느니 휴먼 레이스
의 그림이라도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한 소리였다. 하지만 사친은
시크사의 의도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친은 손에 잡히는 잡지를 한 권 들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을 훑어
보기 시작했다.
'휴먼 레이스는 여성의 육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여성
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희소 가치가 있는 걸까?'
시크사는 잡지에 가득한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말
했다. 시크사는 모르고 있었지만, 잡지의 제목은 '플레이보이'였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