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레니게이드(Renegade).
이제 곧 죽게 되겠지. 녀석들에게 잡히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가 혼자
쓰러져 죽는 게 빠를까.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곧 죽
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었다. 챠오챠오는 그저 지친
걸음을 옮길 수만 있을 뿐이었다.
이미 물은 다 떨어진지 오래였고, 식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체력은 시
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고, 이제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사막의 뜨거운 기운이 매 순간마다 다가와 챠오차오의 숨통을 막아서
고 있었다. 땀은 흐르자마자 말라붙어 소금기 어린 흔적을 남기고 사라
져갔다. 발은 제멋대로 그저 관성에 젖어 움직일 뿐이었다. 이 상태로 간
다면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일지 몰랐다.
추적자들이 챠오챠오의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었다. 풍족한 물과 식량
을 가지고. 아마 챠오챠오가 버린 호버카는 이미 오래 전에 발견되었을
지 모른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챠오차오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
다. 상자 안에는 챠오챠오가 위험을 무릅쓰고 녀석들로부터 훔쳐 낸 물
건이 담겨 있었다.
이건 재앙이었어.
챠오차오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어쩌면 중얼거렸다고 생각했을
뿐일지 몰랐다. 챠오챠오의 이성은 사막의 햇빛에 완전히 말라붙어 버린
지 오래였다.
버렸어야 해. 아니, 그냥 보고 지나쳤어야 해. 이건 정말이지 재앙이었
어. 재앙이었다고.
이번에는 틀림없이 중얼거렸다고 챠오챠오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챠오챠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소리가 아니라 그저 뜨거운 한숨일 뿐이었
다.
처음부터 챠오챠오는 이 물건을 휴먼레이스에게 넘겨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혹은 이 물건이 정의를 실현시켜줄 수 있다고 믿지도 않
았다. 그저 단순히 이 물건이 쉽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
했을 뿐이었다.
착각이었어. 녀석들의 말을 믿은 건 완전한 착각 때문이었어.
이번에는 챠오챠오도 자신의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
달았다. 이제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챠오
챠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음을 터트릴
수 있을만한 체력도 남아있지 않은 챠오챠오였다.
모성을 떠나 이런 먼 행성에서, 그것도 저능하고 열등한 휴먼 레이스
들이 살고 있는 행성에서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향
에서 행성 어스로 향하는 셔틀에 몸을 실었을 때, 챠오챠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드시 부와 명예를 두 손에 쥐고 돌아오리라. 챠오챠오
를 낳아주고 길러 준 꼬뮨의 수장은 챠오챠오의 손을 잡으며 헤어짐의
슬픔과 아쉬움을 표현했다. 같은 꼬뮨에 속해 있고, 챠오챠오와 같은 날
알에서 깨어난 동지들도 챠오챠오의 긴 여행에 축복을 내려 주었다. 챠
오챠오의 다짐.0.........................................은 굳건했다.
비록 단순 사무직이었지만, 챠오챠오는 성실하게 일했다. 모두의 비위
를 맞추기 위해서 늘 자존심을 꺾고 고개를 숙였다. 힘이 들 때마다 챠
오챠오는 자신을 낳아준 꼬뮨의 수장을 생각했고, 자존심이 상하고 힘이
들 때마다 같은 둥지에서 태어난 꼬뮨의 동지들을 생각하며 기운을 차렸
다.
챠오챠오는 품에 작은 상자를 하나 품고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물건
을 훔친 것은 단 한 번의 모험이었다. 작은 노력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유혹은 행성 어스에 도착한 이후 챠오챠오를 괴롭혔던 그 어떠한
유혹보다도 강렬했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모험이, 그 단 한 번의 유혹
이 챠오챠오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거였다.
반란군? 진실? 폭로? 정의의 구현? 빌어먹을 탈영병 녀석들을 믿다니.
내가 멍청했지.
이제 더 이상 챠오챠오는 중얼거리지 않았다. 이제 몇 번만 더 숨을
쉰다면 챠오챠오의 심장은 동작을 멈출 것만 같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고 감각은 무뎌지고 있었다. 챠오챠오는 문득 손가락을 잘라 나오는
체액을 마신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눈앞
에 난생 처음 보는 날짐승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챠오챠오는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을지 모른다.
처음에 챠오챠오는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는 짐
승들이 눈을 부라리면서 자신의 주위를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챠오챠오
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날개가 있는 짐승이 왜 걷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사막 한 복판에서.
물론 날짐승들은 챠오챠오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날짐승
들이 보기에도 챠오챠오의 생명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날짐승
들은 아주 조금의 위험이라고 해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챠오챠오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공격을 한다면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날짐승들은 챠오챠오가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
지 기다릴 거였다. 아주 안전하게.
챠오챠오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관성에 따라 발을
움직이며 추적자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총성이 울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챠오챠오는 환청이라고 생각했
다. 하지만 총성과 동시에 날짐승들을 날개를 휘저으며 허공을 향해 일
제히 솟아올랐고, 총알이 박힌 지면에서는 모래바람이 일고 있었다.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챠오챠오는 몸을 틀어 총성이 들려 온 곳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려
져서 정확하게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뭔가를 타고 있는 생명체인 것
같았다. 하나는 아닌데. 휴먼 레이스일까? 하지만 휴먼 레이스가 사막에
서 살고 있을 리가 없는데. 그리고 휴먼 레이스가 낙타도 탈 줄 알았던
가? 챠오챠오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판단해 낼
수가 없었다.
"타고 온 호버카는 고장인가 궁금하다."
휴먼 레이스의 언어였지만 억양이 이상했다. 틀림없이 휴먼 레이스는
아닐 거였다. 그리고 묻는 내용으로 봐서 추적자들도 아닐 것 같았다.
챠오챠오는 그렇다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이미 입술이 말라붙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생명체 중 하나가 손짓을 하자, 다른 한 생명체가
챠오챠오에게 다가왔다. 평소의 챠오챠오였다면 아마 틀림없이 피하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피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이들에
게 몸을 맡길 수밖에는 없었다.
챠오챠오는 품에 품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생명체는 손을 내밀어
그 상자를 빼앗듯이 가지고 갔다. 생명체의 손은 시커먼 집게발이었다.
"당신은 약속을 지켰다. 고맙게 생각한다."
생명체는 이렇게 말하며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챠오챠오는 뭐라고 대
꾸하려고 했지만 입에서는 뜨겁게 타오르는 숨결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생명체가 내민 것은 수통이었다. 챠오챠오는 그것이 수통이라는 걸 알
아차린 순간 그것을 허겁지겁 들고 마셨다. 탈수를 일으킨 후였기 때문
에 물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챠오챠오는 그가 살아오는 동안 마
셨던 물 중에서 가장 시원한 물을 마신 셈이 되었다.
챠오챠오가 텅빈 수통을 몇 번 흔들고 나자, 수통을 주었던 생명체는
수통을 회수했다. 챠오챠오는 그 생명체의 집게발을 보았다. 시커먼 외골
격에 싸여 있는 생명체의 집게발은 햇빛을 받아 검게 빛나고 있었다. 챠
오챠오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는 의식이었지만 상대의 시커먼 외골
격에서 친근감을 느꼈다.
"얼마나 버틸 것 같아?"
한 생명체가 집게발의 생명체에게 물었다.
"모든 것은 흙의 뜻대로."
집게발의 생명체는 양손의 집게발을 동시에 움직여 딱, 하는 소리를
두 번 내었다. 부정의 뜻이다. 챠오챠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모래밭에 머리를 박았을 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챠
오챠오는 스스로를 이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게 만든 자신의 어리석음
에 대한 뼈아픈 후회를 곱씹을 수 있었을 뿐이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