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16화 (16/52)

1.웨이팅하우스 시경(市警).

웨이팅하우스 시를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부터 시를 보호하고 있는 돔은

대낮에는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것은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늘 말하는 황

금빛 미래를 어떤 공익광고보다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 몰랐다.

웨이팅하우스 시는 대단위 공업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만들어야 할 물

건은 많았고, 그 물건만큼이나 인력도 필요했다. 생산된 물자를 실어 나

르는 화물 셔틀이 하루에도 수 천 차례씩 대기권을 이탈하고 있었다. 그

때마다 황금색의 돔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셔틀의 길을 인도하며 열리곤

했다. 오가는 물자만큼이나 생명체의 이동도 빈번했다. 대규모의 이동에

익숙해져 있는 웨이팅하우스의 성실한 시민들은 그런 일에 별다른 신경

을 쓰지는 않았다.

지성이 있는 생명체가 많이 모여있는 곳에는 당연히 사건도 많이 생기

기 마련이다. 특히 사건이라 함은 불법적인 사건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살인. 강도. 강간. 마약. 약탈. 절도. 사기. 매춘. 어떻게 보면 범죄란 범죄

는 다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웨이팅하우스 시일 것이다.

때문에 웨이팅하우스 시경의 임무는 막중했고 또한 과중했다. 그런 이

유로 시경에서 연방경찰로 영전하거나 빠른 진급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도시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웨이팅하우스 시경이었다.

순경에서 시작해서 가장 빨리 경사가 될 수 있는 곳은?

이 질문은 웨이팅하우스 시의 경찰관들 사이에서 오가는 냉소적인 농

담 중 하나였다. 물론 답은 웨이팅하우스 시였고, 이 답에는 한 마디가

더 붙곤 했다.

"순경이 가장 많이 죽어 나가는 곳이니까."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었다. 웨이팅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순경의

순직률이 보통의 도시 보다 높은 곳은 사실이었지만 더 높은 순직율을

보이는 도시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웨이팅하우스 시는 격무가

많았고, 그래서 순경들의 과로사 또한 많은 편이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순경이 가장 많이 죽어 나가는 곳이라는 경찰관들의 농담이 그리 비현실

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웨이팅하우스 시의 뒷골목 중 가장 유명한 곳인 하이하버. 다른 어떠

한 도시의 뒷골목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곳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범

죄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곳이다. 거리거리에서는 매춘의 손길을 뻗는

각양각색의 레이스들이 있었고, 아무 골목에서나 마약을 파는 딜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누구나 추리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매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들과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들은 때로는 화합

하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며 경찰관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아이라 경사는 이 골목에서는 꽤 유명한 존재였다. 이곳 담당 수사관

으로 순경 계급장을 달고 부임해 온 날부터 하이하버 골목의 범죄율은

급격히 떨어졌던 것이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아이라의 능력에 대한

각가지 억측을 내놓으며 화제를 풍성하게 하곤 했지만 적어도 그 능력이

아이라의 선임자들처럼 범죄조직과의 담합에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라는 이곳 하이하버에서는 공적을 인정받아 시경 특수 수사반 중

하나인 직할반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이라 임무는 주로 하이하버에서 일

어나는 조직 범죄나 살인 사건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었

다.

"범죄에 있어서 타협은 없어요."

아이라는 막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말을 내뱉는 중이었다.

아이라의 옆에는 늘 아이라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린이 있었다. 린

은 열 살이 겨우 넘었을 법한 꼬마 사내아이였다. 법적으로는 아이라가

린의 후견인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곳 하이하버에서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이의 수는 린이 보통 꼬마아이라는 걸 믿는 이의 수와 같았다.

"알아, 나도 안다고."

지금 막 아이라에게 궁색한 답변을 한 건 하이하버에서 꽤 큰 하얀정

령이라는 술집 -을 위장한 조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을

운영하고 있는 휴먼 레이스 보링거였다. 보링거는 수많은 조직들이 난립

하고 있는 하이하버 시에서 거리의 양아치로 시작해 보스까지 오른 입지

전적인 인물이었다. 보링거는 소문만큼 거친 사내는 아니었지만, 일단 털

투성이의 거대한 몸집과 볼에 수직으로 그어진 흉터는 보링거가 결코 만

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제가 여기 온지 햇수로 3년째예요. 그 동안 절 몇 번 보셨잖아요. 제

가 원하는 걸 잘 알고 계실텐데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리를 바꾸어 꼬았다. 대화가 지루하다는

증거였다. 하이하버에서 잔뼈가 굵은 보링거였지만 사실 보링거는 아이

라만큼 까다로운 경찰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아이라는 보링거의 술집에서 가장 좋은 VIP룸에 앉아 있었다. 그

것도 최고급에 속하는 카프라 레이스의 특산품인 고트주(酒)와 역시 카

프라 레이스의 최고급 안주인 주방장 특선 허브-로열 안주를 앞에 놓고

서. 시경 경사 월급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술값을 지불해야 먹을 수 있

는 술과 안주였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자를 붙여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보링거의 정보망에 따

르면 아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이성애자였다. 보링거는 남자를 붙여줄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이라 정도의 여자라면 원하는 남자는 얼마든지

손에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만약 아이라가 다른 레이스에

관심이 있었다면 보링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색다른 레

이스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라에게는 가족도 없었다. 가족이 먼 다른 도시에 있다는 건 보링

거도 짐작할 수 있는 사항이었지만 경찰관의 가족 상황은 보링거 입장에

서는 손에 얻기 힘든 정보였다.

그리고 아이라에게 뇌물이 통하지 않는 다는 건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

다. 아이라는 돈보다는 출세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

해, 경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몇 되지 않는 경관이었던 것이다.

결국 보링거의 입장에서 아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협상할 수 없는 경찰

관이었다.

"알아, 나도 안다고."

보링거는 다시 한 번 이렇게 궁색한 답변을 한 후, 카프라 레이스의

특산품인 고트주를 한 잔 따라 마셨다. 싱그러운 풀냄새와 함께 40도의

알콜이 위장에서 분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싱그러움도, 알콜의 마력

도 보링거를 지금의 긴장으로부터 구원해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요약해서 설명할게요. 살인사건이 일어났어요. 저는 그 사

건을 맡았고요. 그리고 범인은 틀림없이 당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 아니

직원이에요. 간단하게 대질만 시켜 주시면 되는 일이지요."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영장이 없잖아."

보링거는 애를 써서 한 마디를 덧붙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궁

색한 답변에서 크게 벗어나는 대답은 아니었다.

"여기 지방검사 님을 잘 아시죠? 제가 지방검사님한테 부탁 드리면 이

하얀정령 술집이 어떻게 될지도 잘 아시겠죠?"

"알아, 나도 안다고."

보링거는 완전히 기운이 빠져버렸다. 보링거는 잘 알고 있었다. 저 무

시무시한 아이라 경사의 수색에 걸려든 술집 주인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

가를. 당장 보링거만 해도 불법 이주 레이스 취업죄, 마약 밀매죄, 미성

년자 고용법 위반죄에 재수가 없다면 탈세까지 걸려들지 몰랐다. 설령

빠져나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변호사 비용과 소송비용으로 그만큼의 손해

는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여기 하이하버에서 보낸 시간이 30년이야."

아이라는 다시 한 번 다리를 꼬았다.

"내가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보낸 30년하고 완전히 일치하지. 나는 여

기서 수많은 레이스들을 상대해 왔어. 덕분에 많이 배웠지. 아이라 경사.

내가 충고하나 하지. 의욕적으로 일하는 건 좋지만 그러다가 모가지가

날아 간 수사관이 한 둘이 아냐. 알고 있어?"

"예. 알고 있어요."

아이라는 짧은 머리를 넘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의 짙은 갈색

피부가 유달리 짙게 보였다.

"내가 곤란해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여기서 30년을 살아온 선배

의 충고라고 생각해 주면 안되겠나?"

"저는 여기서 3년을 보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얼마나 배웠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배웠느냐일 것 같네요."

더 이상 보링거는 저항할 수 없었다. 이 3년차 수사관 앞에서 벗어나

려고 몸부림치는 건 자신을 더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일일뿐이라는 걸 다

시 한 번 깨달으면서 보링거는 인터폰의 스위치를 넣었다.

"우리 애들 올려 보내."

"누구 말씀이십니까, 사장님?"

"덜 떨어진 털복숭이 새끼들."

보링거는 이렇게 부하에게 화를 쏟아 붓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지금만

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앉아서 당하고만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나도 불

편했던 것이다.

아이라는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큰 두 눈을 껌뻑이면서 아이라를 올

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라의 짙은 갈색 손이 린의 무척이나 밝은 갈색 손

에 대비되어 더더욱 짙은 갈색으로 보였다.

"이거라도 한 잔 하시지, 린."

대단히 기운 없는 목소리로 보링거가 린에게 술을 권했다.

"죄송합니다만, 근무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린이 보링거에게

대꾸했다. 아이라는 꼭 아이를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손길로 린의 머리

를 쓰다듬었고, 보링거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한숨과 함께 들고 있던

최고급 고트주를 한 잔 들이켰다. 모든 걸 다 포기한 후여서 였을까. 이

번에는 고트주의 풍부한 풀냄새를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상황에서 보링거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평안한 기분이었다.

잠시 후 카니데 레이스 넷이 룸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온몸이 부드

러운 은빛의 털로 뒤덮여 있는 순종 카니데 레이스인 것 같아 보였다.

"카니데 레이스. 은빛 털. 우리 집에는 이렇게 넷이 있어."

카니데 레이스는 시커멓고 축축한 코와 까만색 동그란 눈동자를 지니

고 있는 레이스였다. 물론 카니데 레이스는 휴먼 레이스에 비하면 매우

진보된 문명을 이룩한 레이스였지만, 어떤 문명에도 그림자는 있는 법이

어서 돈을 벌기 위해 행성 어스에 온 가난한 카니데 레이스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좋게 말하면 시종, 나쁘게 말해서 애완동물의 신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카니데 레이스는 청각과 후각이 대단히 발달해 있지요. 아, 물론 휴먼

레이스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죠."

아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카니데 레이스의 옆으로 다가갔다. 네

카니데 레이스가 동시에 아이라를 향해서 헥헥 거리며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카니데 레이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비

굴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만약 아이라가 손짓 한 번만 한다면 동시에 네

카니데 레이스는 바닥을 뒹굴 태세였다. 마약 때문일까? 아니면 잘 교육

되어 있기 때문에? 세뇌?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차

피 카니데 레이스는 행성 어스에서는 위안부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 경우

가 많았다.

"카니데 레이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아주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다

는 거지요. 휴먼 레이스의 목뼈쯤은 한 순간에 부술 수 있는."

아이라는 넷 중 하나의 입을 잡아 손가락으로 벌리며 말했다. 카니데

레이스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아이라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

이었을까. 카니데 레이스는 더욱 높게 헥헥 거리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

다. 아이라는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만약 카니데 레이스의 외교

사절이 이 꼴을 본다면 외교문제로 비화시키던가, 혹은 이 카니데 레이

스를 처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흔(齒痕)이라도 조회하는 건가?"

보링거가 고트주를 한잔 더 들면서 말했다. 보링거는 술이 강한 편이

었지만 40도짜리 술을 몇 잔 연속해서 마시니 술기운이 오르는 모양이었

다.

"아뇨. 그냥 보는 거예요. 이런 조사는 린의 몫이니까요."

아이라는 린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린은 7급 공무원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7급 경무보조원. 편재상으로는

아이라 경사의 보조경무원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보조원 -잔심부름과 단

순 사무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과는 달리 린은 대단히 뛰어난 존재였다.

린은 흔히 말하는 트랜서였던 것이다.

린은 넷이 차고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목걸이는 굵은 가죽으로 만

들어져 있었고 목걸이에는 은빛의 일련번호가 적혀있었다. 여기 하얀정

령 술집에서만 통하는 일련번호인 모양이었다.

"오늘 바꿨어요."

린이 말하자 보링거의 표정이 굳었다.

"아, 목걸이가 낡아서. 왜, 문제가 되는 건가?"

보링거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어떠한 대답보다 궁색한 대

답이었다.

"린의 능력을 알고 계시는군요. 나중에 수사에 참고하도록 하죠."

"글쎄?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전 그저 참고한다고 말했어요. 당장이라도 변호사를 부를 것 같네요.

맞나요?"

아이라는 득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가 없는 이는 변호사를

부르지 않는다는 건 아이라가 평소 자주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물론 자

신이 한 말이 진실과는 거리가 먼 발언이라는 건 아이라 스스로도 잘 알

고 있었다. 변호사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말하자면 돈을 가지고 술

집에 가는 경우와 없는 상태로 술집에 가는 경우가 다른 것과 같았다.

"린."

아이라가 다시 한 번 신호를 보내자 린은 번갈아 가면서 네 카니데 레

이스의 목덜미에 손을 대었다. 보링거는 완전히 입을 다문 채로 그 광경

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링거의 표정은 똥을 씹었어도 그러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의 표정이었다.

"그만 두게. 내가 졌어."

결국 보링거는 항복 선언을 했다. 그러자 아이라는 린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구죠?"

"제일 오른 쪽. 이름은 빌리. 원래 이름은 몰라. 여기선 그저 빌리라고

부를 뿐이야."

보링거는 이렇게 말하곤 고트주를 한잔 가득 부어 마시곤 벌떡 일어났

다.

"아이라 경사. 지금 대단히 큰 실수를 하는 거야. 3년만에 순경에서 경

사로 올라간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 암.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빌리가 누군지 알아?"

"알고 있어요. 살인 용의자이지요. 이빨로 휴먼 레이스의 목뼈를 부러

뜨린."

"꽉 막힌 소리 그만 해."

"아. 혹시 시(市)의원이고 라디오 그룹의 오너인 포레스트 회장의 정부

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그걸 알면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건가?"

보링거의 얼굴에 당황의 기색이 드러났다.

"말했잖아요. 범죄에 있어서 타협은 없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빌리라는 가명을 지니고 있는 카니데 레이

스의 입에 재갈을 채웠다. 카니데 레이스 용으로 만들어진 재갈은 순식

간에 카니데 레이스의 저항 능력을 절반 이하로 줄여 버렸다. 카니데 레

이스의 손톱과 발톱 또한 대단히 위험한 흉기였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카니데 레이스는 손톱 발톱을 모조리 뽑아 버리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보링거는 아이라에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자세로 달려들면서 소

리쳤다.

"내 업소에서! 내 부하를! 이렇게 할 수는 없어!"

"긴급구속이에요."

아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대질만 하게 해 주면 된다고 했잖아! 아이라 경사!"

술기운 때문일까? 아이라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보링거가 지나치게

행동하고 있다고 밖에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은 범인 검거에 있었고, 지금 보링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따

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화를 내다니. 아이라는 만약

의 경우에 대비해서 가지고 온 자신의 권총을 생각했다. 흔한 9밀리탄을

쓰는 웨이팅하우스 경찰 지급품인 K-5는 3년 동안 현장에서 발사 된 적

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뇨.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빌리의 신병은 이제부터 제가 인도합니

다. 이견이 있으시면 경찰서 관리 창구를 이용하세요."

아이라는 근무지침서에 나와 있는 말을 그대로 읊었다. 보링거는 인상

을 잔뜩 찌푸리고서는 인터폰을 눌렀다. 볼에 있는 수직의 흉터가 보기

흉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다 튀어 올라오라고 해!"

말이 채 다 끝나지도 않았을 때 건장한 랩타일 레이스들이 VIP룸으로

달려 들어왔다. 아마도 바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꺼낼 생각도 아니었지만, K-5는 쓸 필요도 없어졌다. 랩타일 레이스에게

9밀리 탄이 통할 턱이 없었던 것이다.

"공무집행 방해죄예요, 보링거."

아이라는 한껏 여유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카니데 레

이스들은 구석에 몸을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공포에

질린 듯한 빌리의 모습에서 랩타일 레이스가 이곳 하얀정령에서

카니데 레이스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경찰서까지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겠지."

보링거의 목소리는 여전히 궁색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아이라

는 그제서야 보링거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보링거는 포레

스트 회장으로부터 빌리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 받았고, 때문에

경찰에 연행되어 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었던 것이

다.

"너, 너, 그리고 너."

아이라는 눈에 뜨이는 몇몇 랩타일 레이스를 지목했다.

"이 친구들 역시 공무집행 방해죄로 긴급 체포하겠어요. 수갑

이 부족한데. 지원 요청하는 편이 나을까요?"

아이라는 보링거에게 물었다. 보링거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

링거는 이 랩타일 레이스들이 별 죄가 없으니까 48시간이면 풀려

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보링거가 손짓을 하자,

지목된 세 랩타일 레이스는 별 저항없이 아이라의 뒤를 따를 준

비를 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VIP룸을 나서려는 아이라에게 보링거가 말했다.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거야. 포레스트 회장이 그냥 보통 시의

원하고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거든. 포레스트 회장은 아주

높은 곳하고 닿아있어. 아-주."

보링거의 눈빛은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요."

아이라는 이렇게 쏘아주고 세 랩타일 레이스와 빌리를 데리고

VIP룸을 나섰다. 하지만 아이라 역시 자신의 대답이 지금껏 보링

거가 했던 궁색한 대답만큼이나 궁색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이라는 M.P.O를 이용해서 웨이팅하우스 시경 본관까지 이동

했다. M.P.O(Moving Police Office)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경찰

소였다. 랩타일 레이스 셋과 카니데 레이스 하나는 용의자실에

일괄적으로 갖혔고, 린과 아이라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는 창 밖으로 보이는 캡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캡슐은 거대한 공익광고 간판옆을 지나고 있었다.

'행성 어스의 미래는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단순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공익광고 간판에는 휴

먼 레이스 남녀의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뒤로 표

정을 짐작할 수 없는 랩타일 레이스와 포미사이드 레이스같은 다

른 레이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캡슐을 타고 다니는 수많

은 도시의 시민들이 저 공익광고를 매일 지나칠 것이었다.

만약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캡슐 중 자신들만을 수송하기 위해

제작된 전용칸을 타고 이동할 때 저 광고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

까. 아이라는 작게 사라져 가는 광고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라가 처음 웨이팅하우스 시에 도착했을 때 이곳 캡슐의 위

용에 놀랐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해야 네 다섯명이 탈 수

있었던 푸우순 시의 캡슐과는 달리 이곳의 캡슐은 100명은 탈 수

있는 대단위의 캡슐이 이어져서 레일 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

다.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아래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태

우고 있는 캡슐은 묵묵히 정해진 갈 길을 따르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3 -

웨이팅하우스 시경 본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북적

대고 있었다. 12층짜리 크리스탈 빌딩 전체는 온통 범죄자와 경

관들로 가득했다.

어떤 용의자는 오열하며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재

판 전까지 그 호소에 신경 쓰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연방 경관

하나는 용의자의 신병을 인도하기 위해 시경에 왔지만 필요한 서

류를 다 작성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그 사이 범인이 시

경 수사관에게 모든 죄를 자백할 지도 몰랐다. 변호사 하나는 서

장실 앞까지 가서 시경의 가혹행위를 비난했지만 그런 비난에는

서장은 말할 것도 없고 판사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라는 민원을 위해 고함을 치고 있는 한 여성 휴먼 레이스

와 법원으로 출두하는 경관 사이를 비집고 7층 시경 직할반을 향

해 정신없이 올라갔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린 뿐만 아니라 세

랩타일 레이스와 용의자인 빌리도 있었다. 이 복잡한 와중에 용

의자가 도망치거나 혹은 길을 잃는 사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한 호송반이 시경 입구에 항상 대

기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은 아니었다. 호송반은 무술 유단자에 호송에는 전문가들이었지

만 격무중이라 언제나 피곤한 상태였고, 게다가 휴먼 레이스가

무술만으로 랩타일 레이스를 상대한다는 건 무리가 있는 일이었

다. 아이라의 경우에는 모두가 고분고분한 용의자들이어서 별 문

제는 없었지만 심각한 경우, 용의자가 호송반이나 경관에 의해

살해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일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시경 본관 7층은 직할반이 쓰는 층이었다. 때문에 직할반 전용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아이라는 그것을 통해서 그리 어

렵지 않게 직할반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아이라 경사, 용의자 인도해왔습니다."

7층에 엘리베이터가 당도했다는 신호음이 들려오자, 아이라는

엘리베이터에 장착된 스피커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의

목소리는 유선을 통해 당직근무자를 통해 확인 될 것이었고, 당

직 근무자는 엘리베이터를 7층의 여러 부서 중 아이라가 꼭 가야

할 부서로 바로 이동시켜 줄 것이었다.

행성 어스 전체 경찰서를 통틀어 경찰 조직에서는 자동화 장비

를 거의 쓰지 않았다. 이는 경찰 조직이 마련된 초기 때부터 있

었던 관행으로 누군가의 눈과 귀를 통해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

대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 다는 초대 치안총감의 뜻이 이어져 내

려온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이라는 직할반 유치장 입구에 서 있

었다.

"어이, 아이라. 오늘도 한 건 했나?"

유치장 입구에는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혀져 있었고, 그 옆으

로 방탄유리 뒤에 당직 근무자가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은 시경 고참 경장인 자필루스였다. 자필

루스는 휴먼 레이스였지만 워낙 체구가 작고 얼굴에 주름이 많아

서 실은 곤충형 레이스와의 혼혈이 아니겠느냐는 놀림을 간혹 듣

는 경관이었다. 물론 레이스간의 혼혈이라는 건 절대 존재 할 수

도 없는 것이겠지만 자필루스는 그런 말을 들으면 정색을 하며

화를 내곤 했다.

"용의자 검거 해 온 거예요. 그런데 아직 인도 양식 작성 안했

는데 왜 여기 내린거죠? 로스가 장난친 거예요?"

로스는 아이라의 동기생이었고 오늘은 로스의 당직 근무 날이

었다.

"아니. 용의자 인도 양식은 내가 여기서 처리 할 거야. 물론 정

상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직할반장 지시니까 얼른 반장실로 가."

자필루스는 이렇게 말하곤 빌리와 세 랩타일 레이스를 하나 하

나 철문 뒤편으로 보냈다. 용의자가 철문을 통과하면 완전 무장

한 호송반 경관이 몸수색을 한 뒤 유치장으로 보내게 되어 있었

다.

"표정이 좋지 않은데?"

"당연하잖아요? 제가 검거해 온 용의자란 말예요. 당연히 제가

조서를 써야 마무리가 되죠."

"아이라가 유능한 경관이란 건 잘 알지만 아이라 말고도 조서

쓸 줄 아는 경관은 많아.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거겠지. 얼른

반장한테 가 봐."

아이라는 자필루스의 말에 이견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직할반장이 부른다면 뭔가 중요한 일일게

분명했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아이라는 스피커폰에 대고 말했다.

"이봐. 규정대로 말하라구. '반장실 부탁합니다' 아니면 '반장실

이동 요청'."

스피커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로스였다. 로스도 아이라와 마

찬가지로 경찰에 입문한지 3년만에 경사에 오른 엘리트 경관이었

다.

"까불지마, 로스."

"어라? 조금 화난 것 같은데?"

"아니. 많이 화났어."

"그래? 그럼 오늘 데이트는 어떻게 하고?"

"로스. 늘 말하지만 너하고 데이트하느니 반장님하고 데이트를

하겠어."

아이라가 한쪽 입술로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반장님이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을 평생 한 번도 못 볼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한 번은 볼 수 있을 것 같네."

"만약에 반장님이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을 보게 되면 너하고 데

이트를 한다. 빨리 이거나 반장실로 옮겨."

"알았어, 알았다구."

엘리베이터는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 반장님한테 가는 거야?"

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그래."

"반장님 무서운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린."

아이라가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린은 무슨 일인지

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아이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육중한 반장실의 철문이 보였다. 아

마 행성 어스에 있는 가장 힘센 랩타일 레이스라고 해도 반장실

문을 강제로 여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었다.

"다음 비번 때는 데이트하는 거다?"

"반장님이 웃으면."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얼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로스는 상당히 괘활하고 사교성 있는 동료였지만 지나치게 여

자를 밝히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스가 여자 동기 중 거

의 대부분과 잤다는 건 동기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큰 비밀도 아

니었다.

"아이라 경사입니다."

아이라는 반장실 문 앞 스피커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 철문이 열리고 반장 부관실이 보였다. 반장실로 들어가기 위

해서는 반드시 부관실을 통과해야만 했다.

부관실을 지키고 있는 건 시린 경무원이었다. 경무원은 통상

경관에게 목례로 인사를 한다. 하지만 시린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관으로부터 목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총경과 나이가 같

은 고참 경무원인 까닭이었다.

"고생 많아요. 아이라 경사 왔습니다."

시린은 반장실과 연결되는 스피커폰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스

피커폰 너머에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음성이 되돌아왔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반장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차가

웠다. 반장에 대한 농담은 그다지 지나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시린은 웃는 얼굴로 서장실의 문을 열어주었고, 아이라는 옷매

무새를 한 번 가다듬은 다음 반장실로 들어섰다.

"아이라 경사, 부름 받고 왔습니다."

아이라는 거수 경례를 붙이면서 말했다. 경례를 받은 건 웨이

팅하우스 시 직할반 반장 밀라노였다. 지역 경찰서 서장과 같은

계급인 총경 계급장을 설흔 살에 달았다는 밀라노 반장은 항상

깔끔하게 다려진 정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짧게

자른 머리와 날렵해 보이는 눈매는 '차가운 친구인걸' 싶은 첫인

상을 만들어 주고 있었고, 감정 없는 목소리와 빈틈없이 단단해

보이는 몸집은 '이 휴먼 레이스와는 절대 사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있었다.

"앉아."

밀라노 반장은 이렇게 말하며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으로 눈가를 만지는 모습이 꽤 피곤해 보였지만 아이라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언급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이하버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를 검거했더군."

"예."

아이라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짤막하게 대답

했다. 린도 아이라와 마찬가지로 긴장한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린 또한 아이라처럼 허리를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전화가 두 통 왔어. 하나는 시의회에서. 하나는 지방검사장한

테서."

"압력... 인가요?"

아이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고 해 두지. 하지만 내가 반장으로 있는 동안 직할반이

수사권을 침해받는 일은 없을 거야."

"예..."

일단 아이라는 안도하면서 동시에 밀라노 반장에게 미안한 마

음이 들었다. 원래 흔들림이 없는 반장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 때문에 받기 싫은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

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역시 포레스트 회장의 정부였나?"

"예. 하얀정령 술집에서 찾았어요. 보링거가 사장으로 있는."

"경사의 추리가 맞았군."

어떻게 생각한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밀라노 반장은 항상 이

런 식이었다.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났다, 고 밝히는 것 외에 자신

의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부하직원들이 밀라노 반장을

어려워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레이스에 성욕을 느낀다는 건, 대부분 변태나 이상성욕

을 가진 자로 이해되기 마련이지. 이런 현상은 꼭 요즘에만 나타

나는 현상은 아니야. 과거 휴먼 레이스 중에도 수간(獸 姦)이나

시간(屍姦)을 즐겼던 자들도 있으니까. 물론 수간과 시간은 달라.

술과 마약의 차이점과 비슷하겠지. 이런 짓을 하는 자는 아무에

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군."

"예."

아이라는 밀라노 반장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만 대답했다. 밀라노 반장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져 있었다. 분명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빙빙 돌리는

것이리라. 아이라는 밀라노 반장의 의도를 읽기 위해 애를 썼지

만 역시 알 수는 없었다.

"이상성욕자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나? 아이라 경사."

"편견은 없어요. 그냥... 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건가?"

"예."

"잘 알고 있다시피, 포레스트 회장은 중요 인물이야. 포레스트

회장이 웨이팅하우스 시의 부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라는 건 누

구나 다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압력이 들어오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예. 알겠습니다."

밀라노 반장은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날 부른 걸까? 분명

뭔가 의도가 있을텐데. 아이라는 생각했다.

"직할반 특임조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밀라노 반장이 불쑥 이렇게 물었다.

"예. 알고 있어요."

"우리 반에 특임조 차출 명령이 내려올 거야. 나도 직접 통보

받은 건 아니야. 어디선가 들은 정보일 뿐이지. 그리고 그 대상은

아이라 경사, 자네가 될 것 같네."

"예?"

아이라는 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밀라노 반장에게 반문을

한 셈이 되었다.

특임조란 말 그대로 특수임무조의 준말이었다. 특임조는 편제

상으로는 직할반 계통에 속하는 하급부대였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부의 특수 수사임무를 띤 조직이었다. 특임조장은 임무에 따라

서 늘 바뀌었고, 누구인지, 언제 왔다 언제 갔는지도 비밀이었다.

특임조에는 늘 정예 요원만이 차출되었고, 특임조와 관련된 사항

은 모조리 일급기밀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런 특임조에 수사관으

로 차출 될 것이라는 건 경관에게 있어서 수직상승을 뜻하는 말

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맡고 있는 사건들 전부 다 정리해. 24시간 주

지. 대부분 로스 경사에게 넘기고. 로스 경사는 오늘 당직이니까

사건 인수 인계하기는 수월할 걸세."

"예."

아이라는 '어디서 들으셨어요?'라던가 '그게 정확한 정보인가

요?'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아이라는 밀라노 반장이 허튼 소

리를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린은..."

"물론 린도 같이 간다. 특임조장도 멍청이는 아닐 테니까. 자.

그럼 서둘러 주게. 언제 명령서가 내려올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곧 내려오게 될 거란 건 분명해."

아이라는 거수 경례를 붙이곤 반장실에서 나갔다. 부관실의 시

린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으며 아이라에게 인사를 했다. 엘리베

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라는 그 미소의 의미를 별로 생각해

보고 싶지 않았다. 시린의 미소는 우울할 때 보면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같기도 했고, 기쁠 때 보면 함께 기뻐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그 미소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당직실 이동 요청."

린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아이라는 어쩐지 밀라노 반장 같

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 엘리베이터는 사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당장 데스크로 가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데이트 신청

을 하려면 말이야, 문서로 해 줘."

로스 경사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라는 머릿

속이 복잡해서 로스의 장난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반장 명령이야."

"반장이 나하고 데이트를 하라고 했다고?"

"'나는 멍청이' 라고 말하고 싶은 거면 옥상에서 해. 그리고 나

서 뛰어 내리면 더 좋고."

"...진짜군."

로스 경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만 엘리베이

터의 육중한 이동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 아이라는 정말 드물게 보는 로스의 표정을 바

라게 되었다. 로스의 표정이 굳어 있었던 것이다. 늘 환한 웃음은

로스의 상징이었고 그건 경찰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값비싼

옷만큼이나 로스를 대표했다.

"인수인계 하러 온 거지? 소문이 진짜였군."

로스가 말했다.

"뭐야? 너도 알고 있었던 거야?"

아이라는 짜증을 냈다. 아무리 사건 수사에 바빴다고는 해도

자신이 특임조에 차출된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모르고 있었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소문이거니 했지. 일단 축하해."

로스는 조금도 기쁘지 않은 투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

이라는 당직자용 책상 옆에 있는 보조의자를 끌어다가 린을 앉히

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축하는 무슨."

"나보다 먼저 경위가 되겠네. 그리고 나서 시경 수사반장 1,2년

하고 나면 경감이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나이 30이 되기 전에 총

경이 될지 몰라."

"우리 반장처럼?"

로스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의 진급도 빠른 편이기

는 했지만 아무래도 특임조에서 근무하게 되는 아이라의 진급이

빠를 건 뻔한 이치였다.

"넌 성공할 거야, 아이라."

"경찰이 성공해 봐야 경찰이지."

"그래? 그러면 푸우순 시의 말단 경비대원은 3년이 지나도 늘

경비대원일 거라는 말인가?"

로스는 아이라의 과거를 간단하게 축약해서 말했다. 경비대란

그저 시의 경비만을 책임지는 조직이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과는 격이 달랐다.

"그건 운이었어. 여기 웨이팅하우스 시의 인력이 부족하게 되

니까 우연히 푸우순 시의 경비대에서 인력을 차출해 간 거지. 난

거기서 보직도 있었어."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 어쩌면 특임조에서 바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 누가 알아? 예를 들면 군이라던가, 시의회라던가."

"그만 둬, 허튼 소리."

아이라는 지금 대화가 어디선가 나누었던 대화와 상당히 닮아

있다고 느꼈다. 어디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더라?

"이리 와봐."

로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당직근무자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창을

열었다. 창은 방탄유리로 막혀있기는 했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넓기만 했다.

"노을이야."

로스가 웃으며 말했다.

"작은 창에 이렇게 큰 노을이 담길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아?"

로스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이라는 동기생들이 로스에게 미치는 것도 이

해할 수 있는 일이로구나 싶어졌다.

"노을은 정말 짧지."

아이라는 로스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의 대화가 언제 나누

었던 대화였는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푸우순 시에

서였다. 푸우순 시에서 아이라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메이런과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3년. 아이라는 이곳

웨이팅하우스 시로 와 경관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트랜서가 되었을 거야."

아이라는 혼잣말을 했다가 얼른 로스를 바라보았다. 로스는 멍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옛 남자? 아니면 지금 남자?"

"옛 남자도 없고, 지금 남자도 없어."

"그나마 다행이네.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니까."

"그런 말은 다른 여자 같아도 안 통하겠는데."

로스는 웃음을 지었다.

"아이라. 넌 꼭 셔틀에 타게 될 거야. 왜, 언젠가 말한 적 있잖

아. 언젠가 셔틀에 탈 거라고. 행성 어스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셔틀은 타 봤어."

"푸우순 시에서 여기로 올 때? 그건 내륙간 이동이었잖아."

"하여간."

아이라는 메이런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스의 말에 길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메이런과의 추억은 어떻게 생각하면 지평선에 걸려 있는 노을

만큼이나 짧은지 몰랐다. 하지만 아이라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도

짧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련한 기분에 빠져들듯 메이런의 기억

에 젖어들고 있었다.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한 생명체를 감상적

으로 만든다.

"누구야? 그 친구?"

물은 것은 린이었다.

"그냥. 옛 기억이야."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푸우

순 시에서 추억이 될만한 물건을 가지고 오지 않은 건 어쩌면 다

행인지 몰라. 아이라는 생각했다. 만약 그런 물건을 가지고 왔다

면 린이 자신의 과거를 읽었을 테니까. 물론 린에게 악의는 없겠

지만, 자신의 기억을 타인이 공유한다는 사실은 두려운 일이었다.

"끝났어."

로스가 말했다. 어느 사이 해는 돔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고

노을은 점점 그 붉은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 이제 일 해야지. 나한테 일을 넘기라고 반장님이 말했겠

지? 반장님은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동성애 경향이 있는지 한

번 쯤은 의심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로스가 넉살좋게 눙쳤지만 아이라는 로스에 말에 귀를 기울이

지 않았다. 아이라는 그저 메이런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를 생

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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