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루젼을 든 피아노맨.
트랜스 된 공간은 어떤 곳일까.
트랜서가 행성 어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력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 의문은 제기되어 왔다. 때로는 학자들에 의해. 때로는 연구
자들에 의해. 때로는 군 정보부에 의해서. 또 가끔은 그저 떠들기 좋아하
는 호사가들에 의해.
트랜스 공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일단 트랜스된 공간이
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상의 공
간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트랜서와 트랜스 되어 본 이들 외에는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구체
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트랜서들이 같은 공간을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 하는 부분도 계속해서 이런 의문이 이어지는
한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어느 트랜서는 무한한 우주 공간 한 가운데에 서서 트랜스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트랜서는 그저 어두운 골방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트랜서는 희미하게 보이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쉽
지 않음을 토로하곤 한다.
사실 아주 극단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트랜스된 공간은 일단 어
둡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몇몇 특성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트랜서와 트랜스 된 공간에 불려온 상대방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게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트
랜서도, 트랜스된 공간에 불려온 존재도,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그리고 소지품을 가지고 트랜스 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
도 종종 발견된다.
이런 미묘한 차이점이 트랜서의 성향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트랜서와 트랜스된 공간과의 상반관계를 주제로 한 논문들을 발표하곤
하였다. 하지만 정작 이런 일에 신경을 쓰는 건 그야말로 호기심 많은
학자들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의 트랜서와 트랜서를 원하는 이들은 그
저 트랜스 된 공간에서 언어를 전재로 한 레이스와 레이스 간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메이런은 트랜스 된 공간에 의뢰인인 포미사이드 레이스와 함께 있었
다. 메이런은 트랜스 된 공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비록 서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발 밑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뭔가 딛고 서 있다는 건 그야말로 느낌뿐일 것이라는 게 메이런
의 생각이었다.
의뢰인은 포미사이드 레이스였다.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곤충형으로 분류되어 있는 레이스다. 그들은 하
나같이 시커먼 외골격에 도저히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커다란 얼굴, 그리
고 무척이나 가느다란 허리를 가지고 있다.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다른
곤충형 레이스들처럼 네 다리로 걸어다니고 앞의 두 팔을 움직이는 레이
스였고 잘 발달된 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휴먼 레이스의 팔이나
다리를 자르는 일쯤은 쉽게 해 낼 수 있다.
"제 말 듣고 있어요?"
의뢰인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더듬이를 흔들며 메이런에게 물었다.
거의 모든 곤충형 레이스는 표정이 없다. 얼굴이 외골격으로 덮혀 있
기 때문에 얼굴을 움직일 수 있는 휴먼 레이스 같은 종족과는 다른 것이
다. 대신에 곤충형 레이스는 더듬이를 움직이는 것으로 미묘한 표정을
전한다. 그것은 꽤나 휴먼 레이스의 감성에도 맞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더듬이 끝이 쳐져 있는 곤충형 레이스를 본다면 기운 없는 표
정을 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예. 듣고 있어요."
메이런은 힘겹게 대꾸하면서 자신의 더듬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살펴보았다. 메이런의 더듬이는 마치 신경통이라도 앓는 것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모두가 두통 때문이었다.
"제가 정리해 보죠."
의뢰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메이런은 이렇게 대답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정리하는 게 최
선이라는 걸 메이런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심해져오는 두통을 이
겨내면서 메이런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귤러, 당신은 웨이팅하우스 시에 있는 친구 소식을 알려
고 하는 거죠?"
메이런은 사실 간신히 의뢰인의 이름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트랜서."
제귤러가 대꾸했다.
"친구 이름은 마케스이고 웨이팅하우스에 있는 라디오 공장 직원이고
요."
메이런은 계속 해서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겹눈에 적응하지
못해서 오는 두통은 아니었다. 메이런의 더듬이는 계속해서 심하게 떨고
있었다.
트랜스 된 공간에서 두통을 느끼는 일은 종종 트랜서와 트랜스 된 공
간에 불려온 이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트랜스 중에
트랜서가 현실 공간으로 의식이 되돌아오지 못하면 트랜스 된 공간에 불
려온 생명체 또한 트랜스 된 공간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드물게 보고되곤 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학자들은 '미싱'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트랜서는 미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싱이 일어나
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모는 이가 교통사고
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총기를 다루는 이가 총기 폭발을 두려워하지 않
듯이, 트랜서에게 미싱은 그저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정확하게는 4급 직공입니다. 그런데 어디 아픈 거 아닌가요?"
"아, 아뇨. 아닙니다. 그냥 좀 피곤할 뿐이에요. 친구 분은... 같은 꼬뮨
이죠?"
"예."
메이런은 꼬뮨의 개념이 생소하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꼬뮨
의 수장은 정기적으로 알을 낳고, 그 알은 둥지에서 수 십 개 씩 동시에
부화한다. 같은 날 알에서 깨어난 형제는 '동지'라고 불리며 이 동지들은
꼬뮨에 대해 절대적인 복종과 봉사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강요라
기 보다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습성이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행성 어스에 노동
력을 팔기 위해서 이곳에 온 포미사이드 레이스들은 모두가 꼬뮨에 자신
의 수입 거의 전부를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케스라는 친구, 동지 분에 대해서는 라디오 공장의 4급
직공이라는 것 외에 알고 계시는 없다는 거고요."
"예."
제귤러의 말에서 메이런은 더 이상의 정보를 얻어 낼 수가 없었다. 하
지만 이런 경우, 보통은 의뢰인에게 계속해서 더 캐어물으면 뭔가 단서
가 될 만한 것이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메이런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의뢰인이 생각하기에 아주 사소한 것일 지라도 카운셀러에게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메이런의 두통은 이제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더 이상 트랜스를 하기는 곤란할 것 같았
다.
"알겠습니다. 친구 분을 찾아보고 연락 드리죠. 연락처는 아까 사무실
에 들어오셨을 때 주셨지요? 그리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도 연락이 없으면 다시 오세요. 그냥 전화를 주셔도 좋고요."
메이런은 이렇게 재빠르게 말하곤 얼른 트랜스를 끝냈다.
트랜스가 끝나자 메이런과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쿨란의 사무실에 있었
다. 트랜스 된 공간에서 둘은 똑같은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지
금은 아니었다. 제귤러는 서 있었고, 메이런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메이런?"
쿨란이 메이런을 불렀다. 메이런은 힘겹게 머리를 들어 쿨란의 얼굴을
올려다보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곤 속에 있는 것을 모
조리 다 게워 내었다.
"메이런. 내가 그렇게 보기 흉하냐? 내 얼굴을 보고 바로 토하다니 말
이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메이런에게 쿨란이 농담조로 이렇게 건넸다.
"농담은 그만 둬요, 쿨란."
메이런은 정색을 했다.
"알았다. 그만 두지. 의뢰인한테 전할 말은 다 전했지?"
"예. 의뢰인은 친구를 찾고 있어요. 친구 이름은 마케스. 웨이팅하우스
시에 있는 라디오 공장 4급 직공이래요."
"그것 뿐이야?"
"그것뿐이에요."
"닦아라."
쿨란이 메이런에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메이런은 손수건을 받아
들고서야 자신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
다.
제귤러는 쿨란과 메이런에게 휴먼 레이스 식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쿨란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고는 이제 돌아가 달라는 모든 레이
스 공통의 언어를 전했다. 쿨란은 제귤러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
다.
"트랜서... 건강을."
사무실을 나서며 제귤러는 서툰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이렇게 말했다.
쿨란은 제귤러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귤러는 지금 메이런을 걱정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 마세요, 제귤러. 이 친구는 강한 친구예요. 금방 회복할 겁니다."
쿨란은 웃는 얼굴로 제귤러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제귤러가 이 말
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었지만 적어도 마음은 전해졌으리라고 쿨란은 믿
고 있었다.
"아직도 말로 마음을 전하고 있나보지?"
쿨란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젠장. 의뢰인이 나갈 때 자네가 오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기는데."
"누구나 그렇게 말하더군. 경찰은 재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타이론이었다.
"그런데 자네 경감으로 승진한 거 아니었나? 수사과장이나 보안과장
같은 직함을 달고 책상이나 지키게 될 줄 알았는데."
"맞아. 요즘엔 책상이나 지키고 있지. 하지만 경감이 되면 가끔 이렇게
아주 사적인 일로 바람이나 쐴 겸해서 친구를 찾아 올 수도 있단 말일
세."
타이론은 아주 당당하게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만약에 쿨란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선다면 몸싸움을 해서라도 밀고 들어왔을 기세였
다.
"앉지 말게."
"고마워."
타이론은 쇼파에 몸을 던지면서 말했다. 쇼파가 타이론의 큰 덩치를
이기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자 쿨란은 인상을 찌푸렸다.
"쇼파 값 물어 낼 건가? 가뜩이나 벌이도 신통치 않은데. 이러다가는
카운셀러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몰라."
쿨란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망명객이 줄어들어 시 당국
뿐만 아니라 시 전체가 울상이었던 것이다.
"요즘 손님이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카운셀러만 손님이 없
었나? 푸우순 시 전체가 불경기야."
"내가 알기로 푸우순 시에서 경기가 좋은 곳은 경찰서뿐이라고 알고
있는데."
쿨란이 악의 섞인 말을 내뱉었지만 타이론은 별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
다.
"공무원이 좋은 점은 그거 하나 뿐 아니었나? 경기하고 별 상관없다는
거. 커피나 한 잔 줘."
"요즘에는 나도 못 마셔. 생활비를 줄이는 중이라 말이야."
"너무 딱딱하게 구는 군. 쇼파 수리비하고 커피 값 대신에 의뢰는 어
때?"
"시에서 주는 의뢰라면 사양하고 싶은데."
"들어보면 구미가 당길지도 모를텐데. 여어. 메이런. 오래간 만이야. 사
격 연습은 잘 하고 있나?"
"타이론 아저씨는 쿨란이 얼마나 무서운 교관인지 모를 거예요."
메이런은 오른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이렇게 대꾸했다. 트랜스
가 끝나서 그런지 두통은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타이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경감님이라고 불러."
쿨란이 비꼬는 투로 메이런을 타일렀다.
"날 경감님이라고 부르는 건 경찰관 아니면 죄인들 뿐이야. 요즘도 매
일 연습하나?"
"오늘 오랜만에 고객이 생겨서 당분간은 연습 안 할 것 같아요."
메이런이 말했다.
쿨란은 메이런에게 사격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쿨란 자신은 화약식
권총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도 메이런의 몸은 메이런
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쿨란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 둬라. 좋은 교관은 아닐지 몰라도 좋은 스승인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알고있다시피 쿨란은 행성 어스로 돌아 온 몇 안 되
는 용병 중 하나 아니냐."
"9밀리 탄이나 38구경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니들건이나 빔을 가르
쳤으면 좋겠는데."
쿨란은 타이론의 말에 심드렁한 얼굴이 되어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러
자 타이론은 무릎을 탁 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군용 무기를? 그건 경찰도 무리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랩타일 레이스 껍데기도 못 뚫는 화약식
총 가르쳐 봐야 뭐에 쓰겠어?"
"사진 찍어 본 적 있니, 메이런?"
타이론은 쿨란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메이런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뇨. 찍는 걸 본 적은 있지만요."
"사진하고 총은 기본적으로 같은 거란다. 네 눈과 표적이 일직선상에
서 놓인다는 게 그렇지. 그래서 사격을 잘 하게 되면 사진도 잘 찍을 수
있게 된단다.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 흔들리지 않게 표
적을 겨냥할 수 있게 되거든. 니들건이나 빔도 같아."
"야전교범에 나오면 딱 좋을 것 같은 말이로군."
쿨란이 여전히 심드렁한 투로 말하자 타이론은 인상을 찌푸렸다.
"니들건하고 화약식 총이 똑같다는 건 말이야, 셔틀하고 자동차하고
같다는 말이야. 메이런. 자동차가 달려갈 때 연기가 나는 거 봤지? 그건
자동차하고 화약식 총하고 같은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란다. 셔틀 날아
갈 때 연기 생기는 거 봤어?"
"셔틀은 니들건하고 같은 원리로 움직인 다는 거죠?"
메이런은 몇 번 들은 이야기였다.
"그 세계의 무기는 그 세계의 탈것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단다. 고
대의 전차나 석유 시대의 화약총, 셔틀 시대의 니들건과 빔. 다 비슷한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지."
"좋은 강의야, 쿨란. 나도 다음에 한 번 써먹어야 겠는 걸."
"그건 안되겠는데. 여기 간판 내리게 되면 교관 일이나 해 볼까 생각
중이거든. 외딴 곳에 오두막 한 채 지어놓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저한테도 미리 연락 줘요, 쿨란."
메이런은 두통이 많이 가셔서 이렇게 농담도 지껄일 수 있게 되었다.
"걱정 마라. 그렇게 되면 너하고 그 오두막에서 같이 살 테니까. 그런
데, 너 오늘 많이 아픈 모양이로구나."
쿨란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 메이런은 그 걱정이 자신이
아파 보여서인지, 아니면 그저 트랜서가 고장이 나면 안 되는 데 하는
걱정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그래요. 일루젼 한 잔이면 낫겠죠."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타이론에게 목례를 했다.
"일루젼은 좋은 술이지. 하지만 취하지는 말거라."
취하지 않는 다면 일루젼은 뭐 하러 마실까? 타이론의 말에 메이런은
속으로 대답했다.
메이런이 즐겨 찾는 곳은 푸우순 시의 번화가 구석 자리에 위치한 카
페 피아노였다. 카페 피아노는 이름 그대로 피아노라는 악기가 있는 카
페였고, 또한 그것을 연주할 줄 아는 가수도 있었다.
메이런은 카페 피아노의 바에 앉아 일루젼을 마시며 취하는 것이 유일
한 낙이었다. 어차피 금덩어리는 아무리 모인다고 해도 메이런에게 소용
이 없었다. 메이런은 의뢰인이 지불한 보수의 30%를 받았고 그것을 금
덩어리로 바꾸어 보관하는 쿨란과는 달리 보수를 받으면 모조리 현찰로
바꾸어 카드에 담았다.
카페 피아노에는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특히 주말이 되면 더 심했는
데, 그건 주말에는 피아노바의 간판 스타 조이스의 공연이 있기 때문이
었다.
조이스의 목소리는 외모와는 달리 매우 굵은 허스키한 음성이었고, 그
건 요즘 푸우순 시에서 들을 수 있는 어떤 가수의 목소리와도 구별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이스는 푸우순 시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미인 휴먼
레이스였던 것이다.
메이런은 바에 앉아있었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아서 바는 한산
한 편이었다. 몇몇 휴먼 레이스들이 조심스럽게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고
(아마 타이론이 보았다면 신분증을 검사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어떤
레이스인지 알 수 없는 털복숭이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단어는 사랑의 밀어라고 보기에는 조금 거칠게 느
껴졌다). 카페 피아노의 어두운 조명은 손님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있었고, 메이런은 그 어두운 조명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일루젼을 들이키고 있었다.
일루젼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쟁에 참전했던
휴먼 레이스 용병 중 하나가 일루젼을 만드는 법을 배워와 퍼트렸다는
이야기는 그 용병의 무용담과 함께 꽤나 널리 퍼진 이야기 중 하나였다.
언젠가 쿨란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자신의 금덩어리를 모두 녹여서
시에 기증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술에 취해서 한 이야
기였기 때문에 진심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퇴역 용병이 퍼
트렸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퇴역 용병은
보통 거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루젼은 사실 그저 투명한 액체에 불과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신경
에 작용하는 독과 약간의 감미료를 제외한다면.
"오늘 일루젼은 어때, 팀?"
메이런이 바텐더 팀에게 물었다.
"언제나 똑같지, 메이런. 달콤하면서 감미로워."
팀은 카페 피아노의 간판 바텐더였다. 뛰어난 기억력. 어지간한 여성
휴먼 레이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느끼한 화술.
작은 키. 어울리지 않게 뽀얀 피부. 이런 것들이 팀을 규정짓는 몇 가지
요소였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5 -
"일루젼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
메이런이 팀에게 물었다. 팀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러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지.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
는 건, 일루젼을 마시면 틀림없이 환영을 보게 된다는 거야."
"난 그냥 어지럽기만 하던데."
"일 주일 이상 마셨을 경우에만 보인다고 하더라구. 술주정뱅이 노인
들한테 들은 이야기야."
메이런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나도 일 주일동안 마셔 볼까?"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일루젼은 분명 휴먼 레이스에게 환영을 가
져다주지만 몸에 반드시 그 대가를 남긴다고."
"예를 들자면?"
"아침에 일어나면 현기증을 느끼지. 일하는 도중에 실수를 할 수도 있
고. 제일 무서운 건 역시 중독이지만."
"일 주일 이상 마시지 않는 이상 중독은 되지 않아."
"중독자들이 그런 말을 하지."
팀은 이렇게 말하면서 비어있는 메이런의 잔에 일루젼을 가득 채웠다.
"서비스는 아니야."
"팀은 성공할 거야."
"돈을 모으는 게 성공이라면 말이지?"
메이런은 미소를 지었다. 돈을 모으는 게 성공이라고 말하는 건 쿨란
이었다. 사실 메이런은 돈이건 뭐건 관심이 없었다. 트랜스와 일루젼. 어
떻게 보면 이 두가지가 메이런의 삶의 전부였는지 몰랐다.
"뒤통수가 근지러워."
메이런이 말했다. 이건 사실이었다. 트랜서는 다른 레이스의 감각을 공
유한다. 비록 트랜스 된 공간에서 뿐이지만. 트랜스된 공간이라면 메이런
은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날 수도 있었고 눈을 감고 체열만으로 상대방
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도 있었으며 초음파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
고 가끔은 현실 공간에서도 다른 레이스의 감각을 느낄 수도 있었다. 메
이런은 그런 경우를 트랜서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보고 있어."
팀은 닦고 있는 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메이런은 뒤
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메이런은 낯선 휴먼 레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낯
선 휴먼 레이스는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두워서 정확하게 식별해 낼
수는 없었지만 머리에 가득한 흰머리와 꾸부정한 자세가 그렇게 느끼게
하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었어?"
"그런 것 같아."
비록 어두운 조명에 숨겨져 있었지만 그 휴먼 레이스의 차가운 눈동자
는 메이런에게 분명하게 와 닿고 있었다. 메이런은 그 눈빛이 결코 낯설
지 않았다.
"혹시 싸우게 되면 나가서 싸워."
팀이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메이런은 그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만약 술집에서 싸움이라도 일어났다가는 술집 기도를 맡고
있는 랩타일 레이스들이 달려나와 당장 사지를 붙잡아 까페 피아노 밖으
로 내 던져 버릴 게 분명했다. 아무리 단골손님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언제 싸우는 거 봤어? 난 그런 거 싫어해. 조이스가 언제 올라
오는 지나 말해 줘."
메이런은 일루젼을 들이키면서 말했다. 낯선 휴먼 레이스의 차가운 시
선은 여전히 메이런의 뒤통수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좀 피곤해 보이는 데, 메이런."
팀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표정을 하고선 메이런에게 물었다.
메이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혹시 참새하고 트랜스 한 트랜서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어?"
팀이 말했다. 메이런은 또 한 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트랜서는 잠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집 옥상에 올라갔데. 그리고
양팔을 휘저으면서 바닥을 향해 떨어졌지."
아마 트랜서가 아니었다면 웃을 수 있는 농담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메이런은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아니, 우습지 않았다니 보다는 불쾌해졌
다.
"이 이야기의 교훈 알아? 너무 무리하지 말하는 거야."
메이런은 긍정한다기 보다는 혹시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
안감에 휩싸였다.
"가끔 악몽을 꿔."
메이런이 말했다.
"그러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팔을 휘저으면서 옥상에서 떨어
지는 꿈을 꾼다고 해 두면 좋을 것 같아. 날개가 없다는 게 가끔 불편할
때가 있지. 아마 여기는 나한테 날개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메이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툭툭치면서 말했다.
"요즘 일이 힘들어?"
끄덕.
"요즘 외롭지 않아?"
끄덕.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 때도 있고?"
끄덕.
"일루젼 한 잔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 같지는 않아 보여. 아마 여
자 문제인 것 같은데."
"여자 문제는 없어. 여자가 없는 데 뭘."
"그게 여자 문제라는 거야."
때마침 작은 박수소리가 들려와서 메이런과 팀의 대화는 끊어졌다. 메
이런은 박수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조이스가 피아노 앞에 앉
은 거였다.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팀이 농담을 건넸지만 메이런은 듣고 있지 않았다.
조이스의 하얀 피부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밝게 빛난다. 자신만만
해 보이는 표정은 피아노 앞에서 더욱 당당해 보인다. 조이스의 까만 머
리카락은 까만 피아노와 무척 잘 어울린다. 큰 눈과 끝이 동글려진 콧망
울은 피부만큼이나 환하게 빛이 난다.
조이스는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 손을 올렸다. 그러자 까페 피아노에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침내 조이스의 가느다란 손가락
이 건반을 눌렀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토요일 9시,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지
내 옆에 한 노인이 일루젼을 마시며 부탁하네
'날 위해 추억의 노래를 연주해 줘
첫 소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슬프면서 감미로운 노래야
내가 젊었을 적에는 끝까지 알았는데'
노래를 불러 주오 피아노맨
오늘 밤 모두를 위해서
우리는 멜로디에 취하고 싶어
당신의 연주에 취하고 싶어
바에 있는 앉은 존은 내 친구지
그는 나에게 공짜술을 사네
'조이스, 푸우순 시는 미칠 것 같아'
미소를 지우며 존이 말하네
'푸우순 시만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곤 행복할 수 있을텐데'
폴은 이류 소설가이지
아내를 위할 줄은 조금도 모르네
그는 아직도 군대에 있는
그리고 아마도 평생 군대에 있을지도 모를
데이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바에 있는 팀은 일루젼을 따르고
사업가들은 서서히 취해가네
그래, 그들은 모두 고독이라는 술잔을 나누고 있는 게지
하지만 혼자 마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네
노래를 불러 주오 피아노맨
오늘 밤 모두를 위해서
우리는 멜로디에 취하고 싶어
당신의 연주에 취하고 싶어
노래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라는 곡을 조
이스가 피아노 까페에 어울리게 약간 손본 것이었다. 노래 중간 중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연주가 끝이 나자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조이스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박수에 답하고는 바에 와서 팀 앞에 앉았다.
"한 잔 줘, 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조이스가 말했다. 메이런은 조이스에게서 풍기
는 살냄새가 일루젼보다 독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라디오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어?"
팀이 조이스에게 물었다.
"응. 소리를 전하는 기계 말이지? 언제나 새로운 발명품이 나오면 그
렇게 화제 거리가 되곤 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지만 말이야. 누가
톱니바퀴 전차와 삼륜 자전거, 그리고 이글와치를 기억하겠어?"
조이스는 이렇게 말하곤 일루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메이런은
멍하니 조이스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이스에게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캡슐하고 일루젼을 모르는 레이스는 아무도 없을 걸."
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라디오는 왜?"
"한 번 라디오에 우리 가게 광고를 하면 어떨까 해서. 어떻게 생각
해?"
"글쎄. 그 장난감에 나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조이스. 라디오가 성공을 거두면 조이스도 적응을 해야 하지 않겠어?
적응을 하지 못한 것들은 사라져 버려. 잘못하면 조이스 일자리가 위태
롭게 될 지도."
팀이 조이스의 빈 잔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라디오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래밖에는 들을 수 없지만 나는 신
청곡도 받을 수 있다고. 걱정 해 줘서 고마워, 팀."
웃으며 말하는 조이스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던 메이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이스를 불렀다. 조이스는 무슨 일인가 하는 눈을 하고서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내가 한 잔 사도 좋을까요, 조이스? 노래 속에 나오는 존 처럼요."
메이런이 말했다.
"사주는 건 좋지만 당신 내 타입이 아니에요, 메이런."
조이스가 말했다. 메이런은 아, 하는 탄성을 내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일루젼 때문인지 살냄새 때문인지 가슴이 계속해서 쿵쾅거리고 있었다.
"메이런?"
등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메이런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서
있는 것은 이제는 낯이 익게 되어버린 낯선 얼굴의 휴먼 레이스였다. 그
휴먼 레이스는 백발이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다. 하지만 보기보
다 그렇게 늙지는 않은 모양으로, 기껏해야 50대 중반 쯤일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만."
메이런은 경계심을 가지고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잔 사죠. 바텐더. 이 친구한테 일루젼 한 잔 줘요."
가까운 곳에서 본 낯선 휴먼 레이스는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인상만으로 찾선 휴먼 레이스를 판단하거나 하
지는 않았다.
"아냐, 팀. 내가 계산 할 게."
"호의를 무시하는 건가요?"
낯선 얼굴은 여유있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이런은 그 미
소가 불쾌했지만 그리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뇨. 아버지께서 낯선 사람이 사는 일루젼은 마시지 말라고 하셔서
요."
"쿨란 씨가 그런 말을 할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요."
사내의 말에 메이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위험하다. 메이
런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경고등이 빨간색 신호를 보내고 있
었다.
"트랜스를 하고 나면 토하지요?"
사내는 들고 있던 일루젼 잔을 빙빙 돌리면서 메이런에게 말했다. 메
이런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악몽도 꾸고. 두통에 시달리고. 두렵기도 할 거고요."
메이런은 사내가 돌리고 있는 일루젼 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
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메이런은 사내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머리에 더듬이가 없어서 허전할 때가 많을 거예요. 가끔 발톱을 세우
고 벽을 기어올라가고 싶기도 할거고. 혹시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나요?"
"...누구십니까."
메이런은 간신히 입을 열어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은발을 넘기며
메이런의 눈을 쏘아보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눈빛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하얀 머리였다.
"메이런의 구세주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사내가 말했다.
"구세주는 전설 속에만 있는 걸 텐데요."
"가끔 현세에도 나타나지요. 이렇게."
사내는 잔 돌리기를 멈추곤 일루젼을 마셨다. 메이런은 여유 있는 것
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따라서 일루젼을 들이켰다. 하지만 메이런은 지
금 그리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은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상대방은 자신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
만 메이런은 상대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해 온 것인지 알지 못하
고 있었다.
"트랜서는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지요. 트랜서가 없었다면 행성 어스는
멸망했을 거예요."
"글쎄요. 행성이 없어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메이런은 일단 이렇게 대꾸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요. 정확하게는 휴먼 레이스가 멸종했을 거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휴먼 레이스가 없다면 행성 어스도 없지요. 그저 이름 없는 빈
행성이 있을 뿐."
사내는 여유있게 메이런의 말을 받아넘겼다. 메이런은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일루젼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트랜서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아요. 정부에서 일할 수도 있고. 화
물선 선원으로 계약해서 행성간 셔틀을 탈수도 있죠. 대기업에서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사무실에 느긋하게 앉아 있기만 해서도 큰돈을 만
질 수 있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트랜서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나쁜 선택이 삼류 하이어드
로 사는 거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거예요."
스카웃을 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메이런은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가 힘이 들었다.
"늦었지만 제 소개를 하죠. 제 이름은 로웰. 헤드헌터입니다."
로웰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가 홀로그램이 떠 있는 명함을 내밀면서
말했다. 메이런은 명함을 받아들었다.
"헤드헌터라면... 현상금 사냥꾼?"
메이런의 말에 로웰은 호탕하게 웃었다.
"비슷하긴 해요. 아주 예전에는 현상금 사냥꾼을 헤드헌터라고 부른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헤드헌터는 그냥 인재를 찾는 직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총칭하는 말이에요. 우리는 적당한 인재를 찾아서 그 인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소개시켜 주는 일을 하지요."
메이런은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
록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붉은 경고등은 초록색으로 바뀌었
지만 그래도 완전히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메이런. 내 말 잘 들어요."
로웰은 다시 잔을 빙빙 돌렸고 메이런은 잔에 담긴 일루젼이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두통은 점점 심해 질 거예요. 적절한 조치 - 그러니까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삼류 하이어드 밑에서 일하다 보면 시기
를 놓칠 거라는 점이에요. 그렇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 지지요. 당신도.
나도. 또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도."
"당신을 믿고 따르면 모두가 행복해 질 거라는 건가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죠?"
"여기까지만 하죠. 천천히, 하나하나 씩."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함에 번호가 적혀 있어요. 잘 생각해 보고 연락 주세요."
메이런은 로웰에게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로웰은 메이런이 분명
히 자신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헤드헌터로군."
로웰이 계산을 마치고 카페 피아노를 빠져나갔을 때 팀이 이렇게 말했
다. 메이런은 팀을 바라보았다.
"아는 휴먼 레이스야?"
"아니. 그냥 저런 친구가 있다는 걸 들었어. 요즘 들어서 눈에 띄게 많
아졌어. 별에 별 분야의 인재들을 찾고 있는 것 같더라고. 계산 잘하는
친구, 칼 잘 쓰는 친구, 소매치기, 패스파인더..."
"다들 하나같이 하이어드 들이로군."
메이런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 자신을 소매치기 수준
으로 낮추는 데서 오는 자조였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재주 가진 녀석들을 필요로 하는 걸까?"
팀은 입술을 비죽 내밀며 말했다.
"피아노 치는 재주 있는 휴먼 레이스는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요."
메이런이 조이스에게 말했다. 조이스는 막 다섯 잔 째 일루젼을 마시
던 중이었다.
"칭찬으로 듣죠. 하지만 여전히 당신은 내 타입은 아니에요."
조이스의 대꾸에 메이런은 계속해서 자조적인 미소를 물고 있을 수밖
에 없었다. 메이런은 눈 앞에 놓여있는 일루젼 잔을 단숨에 비웠다.
"팀."
메이런이 바텐더를 불렀다.
"일루젼 한 잔 더."
"물론입죠."
바텐더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