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18화 (18/52)

3.잠입.

사막을 달리는 일은 늘 그렇듯 지겹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이 똑같은 풍경만 보일 뿐이고, 호버카의 조종사와 농담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호버카의 에어컨디셔너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공기청정기는 호

버카 내부에 맑은 공기를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때문에 눈만 감는다면

시원한 실내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쾌적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따분함마저 지워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라디오 나오지 않나?"

아이반 소령이 조종사에게 물었다.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으니까... 아마 될 겁니다."

"음악이나 듣지."

"예."

조종사가 라디오의 전원을 넣자 라디오에서 가벼운 춤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좀 낫군. 아이반 소령은 다리를 까딱거리면서 음악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었다.

아이반 소령은 지금 임무 수행 중이었다. 소령의 임무는 웨이팅하우스

시의 라디오 공장까지 물자를 운반하는 트럭의 호위였다. 민간업자의 물

자 수송에 군인이 호위를 서다니. 아이반 소령은 이번 일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호위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아마도 라디오 공장에 쓰일 것이라고 추측은 해 볼

수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소령은 내용물을 확인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라디오 그룹의 총수인 포레스트 회장이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

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시의원을 겸하면서 중앙 의회에까지 영

향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은 아마도 사실일 거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군인이 일개 사기업 물자 수송 차량의 호위를 맡길 수 있겠는가.

"음악 좀 크게 틀어."

아이반 소령이 지시하자 조종사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음악소리

가 커지자 호버카 내부가 가볍게 진동했다. 아이반은 눈을 감고 먼 바닷

가를 상상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 온 바닷가 풍경

은 조금도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반 소령은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붉은 장미가 그려진 거

대한 15톤 트럭이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아이반 소령이 호위임무를 맡

은 트럭이었다.

트럭의 조종사는 풀먼이었다.

풀먼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트럭 조종사였다. 행성 어스 동반구에서는

한 번도 안 가본 도시가 없을 정도였다. 풀먼의 생활 신조는 '무엇이든

옮겨다 드립니다'였다. 그래서 15톤 트럭의 겉면에는 붉은 장미와 함께

생활 신조가 검은 글자로 적혀 있었다.

"...지금 들으신 곡은 라이트닝볼트의 마리노하버 블루스였습니다. 참

좋지요? 이런 대낮에 듣기에는 딱 좋은 곡인 것 같아요."

"사막에서 듣기에는 졸기 딱 좋은 곡이로구먼."

풀먼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막의 열기는 지독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15톤 트럭의 분리형 캐터필

더는 사정없이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고 덕분에 조종석 안으로도 모

래먼지가 들어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먼은 창문을 열어놓고 있

었는데, 그건 너무 오랫동안 에어컨디셔너와 공기청정기에 의존하다 보

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라디오에서 막 에어본스타의 밀리터리 록큰롤이 흘러나올 즈음이었다.

풀먼은 멀리 보이는 생명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창문을 올렸다.

창문에 록을 걸고 속도를 유지하면서, 풀먼은 조종석 밑에 숨겨둔 45구

경 자동권총을 확인했다.

풀먼은 20년 동안 열 한 번 밴디트를 만났다. 사막에서 만난 경우도

있었고, 포장된 도로에서 만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열 한 번 모두의

공통점은 저항을 할 기미를 보이면 바로 도망친다는 점이었다. 45구경

자동권총에 실탄은 두 발 뿐이었지만, 풀먼은 20년 동안 두 발 중 한 발

도 발사해 본 적이 없었다.

생명체중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풀먼은 그냥 지나쳐갈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밴디트라기 보다는 길을 잃은 여행자 같아 보

였다. 생명체는 둘이었고 그 옆으로는 쓰러져 있는 두 필의 낙타가 보였

다.

"아이반 소령. 어떻게 할까요?"

풀먼은 규정대로 라디오를 끄고 무전기로 호위 호버카에 연락을 했다.

"그냥 쓰레기들이야. 무시 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럽시다."

풀먼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오른 손으로 조종석 밑의 45구경 자동

권총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총을 사용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

했다. 두 생명체는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처럼 보이는 로브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사막에 머무르

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쓰레기들. 조심해서 여행하라고."

풀먼은 이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두 생명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낙타가 죽어버렸으니 사막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게 분명했다.

두건을 쓴 생명체 하나가 뭔가를 로브 밑에서 꺼낸 건 생명체의 모습

이 식별될 즈음의 일이었다. 풀먼은 순간 그것이 지팡이나 깃대 같은 것

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팡이도 깃대도 아니었다.

꺼낸 물건이 조금 흔들린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호위를 맡고 있

던 호버카가 아무렇게나 흔들리다가 트럭 앞에 멈추어 섰다. 때문에 풀

먼은 호버카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풀먼은 45구경 권총을 좌석 밑에서 꺼내어 두 생명체를 겨냥했다. 하

지만 곧 권총을 거두어 들였다. 트럭의 창문은 방탄처리 되어 있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버카도 틀림없이 방탄 처리되어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녀석들이 쏜 건?

두 생명체는 호버카로 다가가 호버카의 문을 열고 아이반 소령과 조종

사를 끌어냈다. 아이반 소령은 공포에 질려서 두 손을 들고 있었고, 조종

사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풀먼은 조종사의 모습을 보는 순간 완

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조종사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

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소령은 피투성이였고,

표정은 숨막힐 듯한 공포 때문에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풀먼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녀석들이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무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45구경으로 대항할 수 없는 무기라는

건 분명했다. 생명체 중 하나가 무기로 풀먼을 겨냥하고는 내리라는 시

늉을 했다. 풀먼은 꼼짝없이 문을 열고 어린아이처럼 얌전히 생명체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는 없었다.

풀먼과 아이반 소령은 사막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 생명체는 나즈

막한 소리로 뭔가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무장을 하고서 호버카에 발

사했던 생명체는 어깨가 지나칠 정도로 넓어 보였고, 다른 한 생명체는

무장한 생명체에 비해서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았다.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반란군?"

소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령이 세상에서 발음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어깨가 긴 쪽이 무기를 발사했던 것

이다. 발사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령의 가슴 한 복판이 폭음

과 함께 폭발해 버렸다.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순식간에 피가

솟구쳐 올랐다. 풀먼은 소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를 고스란히 뒤집

어썼다.

"저기 실려 있는 거, 비싼 건가?"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풀먼에게 물었다. 꽤 유창한 휴먼 레

이스의 언어였다. 풀먼은 대답을 하면 곧바로 죽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

했다.

"비싼 거냐고 묻잖아."

"...아, 아닙니다. 전혀 값이 나가지 않는 겁니다. 아니,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화물칸을 여는 법은 저도 모릅니다. 카

드키로 작동한다고 들었습니다. 라디오 공장에 책임자하고 여기... 소령이

카드키를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카드키가 동시에 꽂히지 않

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풀먼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다. 나는

당신을 완벽하게 도울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일이 꼬였군. 낙타가 죽어버려서 탈것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웨이팅하우스 시 근처에 가서... 버리면 된다."

어깨가 넓은 레이스는 억양이 이상한 휴먼 레이스어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할 건데? 걸어서 갈 건가?"

"다른 수가 있을 것이다."

"저, 제가 운전을 하면 됩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풀먼이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 들었다. 그러자

어깨가 넓은 생명체가 두건을 벗었다. 드러난 것은 어깨에 거의 붙어있

는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눈을 보조하는 작은 눈 네 개, 예리한 턱을 가

지고 있는 입이었다. 아라크아니다 형 레이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얼

굴에는 외골격에 싸여 있는 짧은 촉각이 두 개 솟아 있었다.

풀먼은 상대가 다른 레이스일 것이라고는 추측하고 있었지만 직접 눈

앞에 나타난 이형(異形)의 모습에 정신이 아뜩해 졌다. 만약 지옥에서 올

라온 악마와 마주치게 된다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될 것이리라고 풀먼은

생각했다. 하지만 악마를 따라서 지옥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 풀먼

이었다.

"아이반 소령의 군복을 입고 한 분이 호버카를 모시면 됩니다. 저는

트럭을 몰고요. 아시겠습니다만, 이 트럭은 쉽게 몰 수 있는 보통 트럭이

아닙니다. 캐터필더가 장착된 까다로운 구형 15톤 형이지요. 시 입구를

통과하는 일은 일도 아닙니다. 통행증 같은 건 검사하지도 않습니다. 그

냥 형식적인 검문만 있지요."

풀먼은 쓰러져 있는 아이반 소령을 바라보았다. 마치 원래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푹 패여 있는 아이반 소령의 가슴에서는 끝도 없이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풀먼은 손등으로 자신의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

방울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훔쳐내었다.

"흥미 있는 계획이군. 계속 말해 봐."

덩치가 작은 쪽이 풀먼에게 물었다.

"아시다시피 웨이팅하우스 시를 오가는 차량은 너무 많습니다. 잠입하

는 데 특별히 어려울 건 없습니다. 그냥 저하고 함께 들어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차를 버리고 근처에서 들어가신다니요. 그건 낭비입니다. 저, 이

래봬도 웨이팅하우스 토박이입니다. 혹시 몸을 숨기실 만한 곳이나 무기

를 구할 수 있는 곳, 술, 여자, 음식, 뭐든지 다 구할 수 있습니다."

풀먼은 필사적이었다. 토박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

금을 놓친다면 다시는 목숨을 구할 길 따위는 없을 게 틀림없었다.

"그건 우리도 구할 수 있어. 웨이팅하우스 시에는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도 토박이지. 다른 건 없나?"

이번에는 어깨가 넓은 쪽이 물었다. 자세히 보니 어깨가 넓은 쪽이 어

깨가 넓어 보이는 이유는 얼굴 바로 옆에 두꺼운 두 개의 집게 팔이 달

려 있기 때문이었다. 얼굴에는 시커먼 두 개의 눈과 입이 마치 몸통에

달라붙은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집게 팔에는 호버카를 몰던 조종사

와 아이반 소령을 폭파시킨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저는 집에 처자식이 있는 몸입

니다.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제 처자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풀먼은 연신 이마에 흐르는 것을 닦아 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어깨가

넓은 레이스가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다른 한 쪽에게 넘겨주었다.

"아주 좋은 시도였어. 아주."

무기를 건네 받은 쪽이 말했다. 풀먼은 죽음을 직감했다. 저 무기가 발

사되면 자신의 몸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될 게 분명했다. 풀먼은 자

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든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 보통의 상대였다면 이 정도의 행동으로도 조금 더 목

숨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깨가 넓은 쪽은 집게발로 재빨리 풀먼의 목과 어깨를 집었다. 풀먼

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자유로운 반대편 어깨를 돌려 집게발

의 얼굴을 공격하려는 것이 풀먼의 시도였다. 하지만 풀먼의 몸은 조금

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풀먼을 꽉 쥐고 있는 집게발은 풀먼의 어떠한 행

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비쵸."

무기를 건네 받은 쪽은 무기를 겨눌 생각도 하지 않고 어깨가 넓은 쪽

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 순간, 비쵸라고 불린 생명체의 등뒤에서 시커먼

것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풀먼의 목을 찔렀다. 그 일은 너무나도 순식간

에 일어났고, 풀먼은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도 알지 못했다.

풀먼이 본 것은 비쵸의 꼬리였다. 비쵸의 꼬리에 달려있는 작은 바늘

은 순식간에 풀먼의 목에 치명적인 독액을 밀어 넣었고, 혈액을 타고 퍼

져나가는 독 때문에 풀먼은 금세 눈이 풀려버렸다.

비쵸는 집게발을 풀었다. 풀먼은 사지를 떨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동공은 확대되었고, 눈가에는 핏발이 섰다. 이윽

고 허리가 심하게 몇 번 떨리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죽인 건가?"

"보다시피."

비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풀먼이었던 살덩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마취시키지 그랬어. 나도 먹게."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여기 군인이 둘이나 있다."

비쵸는 농담 따위는 조금도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한 억양 없는 목소리

로 대꾸했다.

"어차피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의 독이 들어간 건 스코르피안디아 레

이스 밖에 못 먹으니까. 그리고 니들탄 좀 아껴 쓰지 그래?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어."

머리가 날아가고 가슴이 패인 두 구의 시체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며

무기를 든 생명체가 말했다. 비쵸는 집게발을 움직여 두 번 딱, 하는 소

리를 냈다. 긍정의 뜻이다.

"식사하자."

비쵸는 이렇게 말하고는 집게발로 풀먼이었던 살덩이를 해체하는 작업

을 시작했다.

"그래도 좋은 정보를 얻었어. 웨이팅하우스 시로 들어가는 일은 생각

보다 쉬울 것 같은데?"

비쵸가 풀먼의 팔이었던 살덩이를 뜯어먹는 모습을 심드렁하게 바라보

며 말했다.

"모든 것은 흙의 뜻대로."

비쵸는 살덩이를 씹다 말고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호버카 조종사도,

아이반 소령도, 풀먼도, 자신들이 누구에 손에 죽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

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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