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19화 (19/52)

4.포레스트 회장.

"비쵸."

밀라노 반장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반장실에는 아이라를 위한 임시 브리핑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홀로그

램 프로젝터와 사건 파일, 그리고 브리핑을 준비해 온 밀라노 반장. 모두

가 직할반 특임조로 가게 된 아이라만을 위한 것이었다.

"아라크나이다 형 레이스.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 용병이지. 락벳 행성

전선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밀라노 반장은 홀로그램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밀라노는 브리핑을 할

때 레이져 포인터나 지시봉을 쓰지 않았다.

아이라는 홀로그램의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름은 비쵸. 전체적

으로 까만 외골격에 싸여 있는 모습. 두 개의 집게발과 두 개의 팔. 그리

고 네 개의 다리. 머리는 어깨선과 거의 수평으로 붙어있고, 역시 외골격

으로 싸여 있는 긴 꼬리가 특징이었다.

"꼬리에는 독이 있는 침이 달려 있지. 일반적으로 스코르피언디아 레

이스는 힘도 무척 강해서 백병전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곤 해. 독

은 두 종류가 있는 데, 하나는 마취를 시킬 수 있는 독이고 또 하나는

신경 계통에 작용하는 대단히 치명적인 독이야.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

는 이 두 개의 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어. 그래서

침입 작전에도 자주 참가하곤 하지."

"그런데 락벳 전선이라고 하면..."

"그래. 우리 휴먼 레이스 용병도 참전했던 바로 그 전투지. 알고 있

지?"

"자세히는 모릅니다."

아이라가 낯을 붉히며 말했다. 아이라가 우수한 경찰임에는 틀림없었

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휴먼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별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행성 어스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레이스가 누군가?"

설명을 해 주기 전, 밀라노 반장은 안경을 벗으며 이렇게 물었다.

"로즈웰 형 레이스입니다."

이건 아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 우리는 그냥 로즈웰 형 레이스라고 부르지. 어떤 친구들은 그냥

'높은 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고. 사실 이 친구들에 대해서 정확

하게 알고 있는 휴먼 레이스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이 친구들은

우리보다 문명도 앞서있고, 기술도 발달되어 있지. 계통학적으로 어떤 레

이스라고 말하기도 곤란하고. 아마도 우리 휴먼 레이스와 대단히 비슷한

계통의 진화 과정을 거친 레이스일 거 라는 게 통론이긴 하지만 정확하

지는 않네."

"예. 그렇군요."

아이라는 밀라노 반장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로즈웰 형 레이스의 존

재에 대해서 모르는 휴먼 레이스는 없었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지금 전쟁중이야. 아니. 늘 전쟁중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

도 모르지.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들이 항상 군비를 비축해 두고 언제든

전쟁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라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전쟁의 시기와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밀라노 반장은 안경을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면서 말했다.

"우리는 이들의 전쟁에 몇 번 참여했었어. 행성 어스의 최종전쟁이 있

은 후에 일어난 일들이야. 사실 행성 어스의 초기 역사는 용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걸세. 우리 선조들의 참전 역사는 불행하게도 잘 알려

져 있지 않다네. 겔러틱 전쟁, 컨티넨탈 전쟁... 그저 돌아온 용병들 사이

에서 오르내리는 정도니까. 알겠지만, 우주는 광활하다네. 락벳 전쟁도

그 중 하나야. 지금은 휴전중이라고 알려져 있고."

"예. 그렇군요."

아이라는 켈러틱과 컨티넨탈, 락벳 같은 고유명사를 외우려고 속으로

몇 번 되뇌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먼 행성의 이름이 외워질

리가 없었다.

"락벳 전쟁에는 우리 휴먼 레이스도 용병으로 많이 참전했지. 사실 행

성 어스의 경제 발전이나, 오늘날 행성 어스가 정치적으로 중립 지구가

되기까지는 이러한 용병의 도움이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걸세. 일단 이

정도만 짚어두지."

"예. 그러니까 이 비쵸라는 친구는 로즈웰 형 레이스의 용병이었다는

거로군요. 우리 휴먼 레이스처럼."

"잘 요약했어. 그리고 참고적으로 이 비쵸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야.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이 친구의 레죵 네임뿐이지."

"레죵 네임이라면 가명... 이라는 뜻인가요?"

"비슷해.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레죵 네임이라고 하면 용

병들이 쓰는 가명을 보통 이야기하네."

레죵 네임에 대해서는 아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퇴역한 용병들

은 자신의 진짜 이름과 레죵 네임을 종종 혼동하곤 했던 것이다. 한 퇴

역한 용병은 아이라에게 레죵 네임의 어원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 적

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라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결국 레종 네임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고고학자가 필요할 거라는 것 정도였다.

밀라노 반장이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이 바뀌었

다. 양호한 상태의 호버카와 피투성이의 시체 두 구의 영상이 비쵸가 서

있던 자리에 대신 떴다.

"아마도 이 친구는 니들건을 잘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네. 꽤 먼 거리

에서 세 발을 쏴서 한 발을 조종사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시켰거든."

니들건에 대해서는 아이라도 알고 있었었다. 비록 실제 사격은 단 한

번 밖에 해 보지 못했지만 경사로 진급할 때 중앙경찰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었다. 니들건은 바늘처럼 생긴 탄두를 반중력장치를 이용해 날리

는 무기를 말했다. 탄두는 금속이나 유리는 쉽게 관통하지만 신체에 들

어가는 순간 폭발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니들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예. 중장갑을 하고 있는 적이나 외골격이 단단한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라고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바늘의 끝은 어지간한 장갑쯤은 우습게 통과할 수 있으니까."

아이라는 단 한 번뿐이었던 니들건 사격을 기억했다. 방탄유리를 뚫고

지나간 니들탄은 아이라가 겨냥한 표적의 한 복판에 박히자마자 폭발했

다.

"이 비쵸라는 친구는 달려오는 호버카를 멈추기 위해서 조종사만을 노

려서 쐈어. 그리고 호버카와 트럭이 멈추어 선 후에 호버카에 타고 있던

소령과 트럭 조종사를 내리게 한 뒤 소령은 니들건으로, 트럭 조종사는

독침으로 살해했고.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밀라노 반장은 안경을 도로 쓰면서 잠시 말을 끊었다. 반장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현장에 틀림없이 하나가 더 있었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이 홀로그램

을 보내온 연방수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둘은 일행으로 보인다는 거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군요."

밀라노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어떤 의문점들이 있는지 한 번

말해 보겠나?"

밀라노 반장의 말에 아이라는 긴장했다. 반장이 질문을 던질 때에는

늘 그랬다. 밀라노 반장의 꽉 막힌 것처럼 보이는 굳은 얼굴을 보면 도

무지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먼저 이 친구들이 어떻게 호송차량이 지나가는 시간과 장소를 알고

공격했는지가 의문입니다. 그리고 트럭을 타고 웨이팅하우스 시 까지 간

다음에 시 외곽에서 트럭을 불태워버린 것도 의문이고요. 말씀하신 신원

불명의 레이스가 어떤 레이스인지, 어떤 무기를 쓰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비쵸와 함께 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아이라는 생각나는 의문점들을 두서없이 나열했다. 반장은 고개를 끄

덕였다.

"정보분석가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아마도 호송차량을 발견한 것은 우

연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녀석들의 목적은 시에

잠입해 들어가는 것이겠지.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

밀라노 반장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껐다.

"내 브리핑은 여기까지일세."

아이라는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브리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

부분의 경우 일정 수준의 브리핑이 끝나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시

간을 가지는 게 보통이었다.

"내 임무는 아이라 경사가 직할반 특임조에 들어가서 보내야 할 시간

을 단축시켜 주는 것이었네. 더 이상 이 사건에 내가 관여하는 건 금지

된 일이야. 내가 말한 사항 이상의 사항은 직할반 특임조 외에는 알 수

도 없고, 알아서는 안 되는 일급기밀사항이네."

아이라는 반장이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걸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

다. 아이라는 물론이고 직할반에 속해있는 모든 수사관에게 있어서 반장

은 신이나 마찬가지의 존재였다. 지금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편재상 직할반 특임조는 내 지휘를 받아야 하겠지. 하지만 특임조는,

잘 알고 있겠지만, 시경 소속의 기관이라기 보다는 연방 소속의 기관에

더 가깝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친구들이 특임조장을 맡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아이라는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의 상관이었

다면 '그런 것쯤 무시하시면 안됩니까?' 라고 하던가 '직급 높은 친구 경

례를 받는 걸보고 싶은데요?' 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상대

는 직할반 반장 밀라노였다.

"나머지 의문 사항은 특임조에서 풀게."

아이라 경사는 거수경례를 붙이고 반장실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아

이라는 반장실을 돌아 보았다. 밀라노 반장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쳐

보고 있었다. 문을 닫으며 아이라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으로 반장실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끝났어?"

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린은 아이라가 브리핑을 받는 동안 부관실에

서 대기하고 있었다. 특임조와 관계된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민간인은

통제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규정이었다.

아무리 일반 7급 공무원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린은 아이라의 파트너였

다. 아이라는 이런 규정이 존재하는 것만 보아도 특임조라는 곳이 얼마

나 보안에 철저한 곳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제 가자."

부관인 시린 부관이 목례를 했다. 아이라는 시린의 목례에 목례로 답

하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어쩐지 착찹한 기분이 들었다.

특임조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책상을 정리하는 동안 아이라는 로스

에게 데이트 신청을 네 번이나 받아야 했다.

"마지막인데 작별 키스도 안 해 줄 거야?"

다섯 번째 데이트 신청을 포기하고 로스가 이렇게 말했다. 책상에 있

던 사물이 종이 상자 안에 모조리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였다.

"린."

아이라가 말했고, 린은 로스에게 안겨 로스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로

스는 쓴 것을 씹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로 작별이네. 임무가 끝나면 경위로 승진하게 되겠지, 아마."

로스가 말했다. 지금까지의 반농담투의 말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말투

였다.

"누가 그래? 이번 임무 끝나면 알아서 돌아오게 될 텐데. 다시 같이

근무 할 수 있을 거야."

아이라는 애써 밝은 기색을 가장하면서 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경위로 진급하지 못하면 내가 이름을 루스로 바꾼다."

로스도 아이라가 분위기를 어둡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느꼈는

지 이렇게 농담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리 밝은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

았다.

"알았어. 다음에 볼 때는 루스 경위라고 부를 게."

아이라의 말에 로스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린은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 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가. 건강하고."

로스는 이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라는 로스의 얼굴을 바라보

았다. 로스는 '이것 마저 안 해주지는 않겠지?'하는 표정이었다.

"린."

아이라가 말하자 린이 로스의 내민 손을 꼭 잡고는 위아래로 흔들었

다.

"장난이야."

아이라는 로스의 표정이 바뀌기 전에 얼른 로스의 손을 잡았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자 로스의 얼굴은 어색한 미소로 바뀌었다.

"다시 못 볼 것처럼 건강 하라는 인사가 뭐야?"

"마땅한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아서."

아이라는 로스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생

각이 들어서 웃음을 지었다. 로스는 그런 아이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

는지 그저 히죽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네가 마지막으로 잡아 온 친구 있지? 빌리라는 친구."

"응. 기억나. 은색 털을 가진 카니데 레이스."

"풀려났어. 어제 부로."

"...어떻게?"

아이라는 로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니데는 살인 용의자였다.

증거도 충분했고, 기소만 된다면 재판까지 가는 건 시간문제일 사건이었

다. 아무리 포레스트 회장의 정부라고 하지만 빼낸다는 건 불가능할 것

이라는 게 아이라의 생각이었다.

"보석으로 풀려났어. 도주의 우려가 없고,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다나

뭐라나. 검사가 난리를 쳤지만 판사가 밀어 부쳤다고 하더라구. 포레스트

회장입김이겠지, 아마도."

로스는 마지막으로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해 준 게 조금 마음에 걸렸는

지 말끝을 흐렸다.

"됐어. 이젠 상관없으니까."

아이라는 상자를 집어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수사관으로서

사건이 그런 식으로 진행된 게 마음에 들 리가 없는 아이라였다.

직할반 특임조.

어감이 전하는 딱딱한 느낌보다 훨씬 비밀스러운 곳.

12층짜리 크리스탈 빌딩 지하에 자리하고 있는 직할반 특임조는 시경

수사관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복잡한 1층

로비를 지나 특임조만의 전용 엘리베이터에 타면 특임조 근무자가 수사

관을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고 나면 엘리베이터는 특임조가 근무

하고 있는 지하로 이동한다.

문이 열리자 아이라는 무장한 경비병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무장

한 시경 요원도 E-14 빔 라이플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인데 이 경비병

들은 난생 처음 보는 화기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니들건일 것이라고 아

이라는 생각했지만, 자신이 중앙경찰학교 만졌던 구형 니들건과는 완전

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이라가 사격해 본 니들건은 투박한 소총

형이었고 거기다가 대단히 크고 무거웠지만 지금 경비병들의 니들건은

권총만큼이나 작았고 모양도 유선형이었다.

경비병 둘은 아이라의 전근 명령서와 아이라의 얼굴, 그리고 린의 얼

굴을 뚫어지게 바라본 다음 말 대신 손짓으로 앞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아이라는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두 경비병을 그

냥 스쳐 지나갔다.

"저 아저씨들은 뭐야?"

"오늘은 좀 조용히 하는 게 좋겠어, 린."

아이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린에게 부탁했다. 린은 훌륭한 트랜서였지

만 정상적인 아이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편인 꼬마에 불과했다. 아이

라는 출근 첫날부터 상관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긴 복도를 지나가자 이번에는 사복을 입고 있는 짧은 머리의 요원이

아이라의 전속 명령서와 얼굴을 확인했다.

"아이라 경사. 그리고 린 7급 경무보조원. 들어가십시오."

짧은 머리의 요원은 이렇게 말하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

라가 인사를 하거나 말을 붙일 여유 따위는 주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은 어제 새로 지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깨끗했고, 게다가 걸어 다니는 생명체라고는 단 하나 뿐이었

다.

"아이라 경사. 린 7급 경무보조원. 이리와."

짱딸막한 키에 아무리 보아도 경찰관처럼 보이지 않는 휴먼 레이스가

책상에 앉아 아이라 쪽을 보고 말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8 -

"나는 부르힐이라고 해. 부르힐 경위님이라고 불러. 거기 앉아."

부르힐은 아무리 보아도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아이라는 상

자를 들고서 어디에 내려놓으면 좋을지 몰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 책

상에나 상자를 내려놓고는 아무 의자나 뽑아 린을 앉히고 자신도 앉았

다. 될 수 있으면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 부로 특임조에 편성 된 걸 축하해."

"여기는 자리를 항상 비우나 보죠? 늘 바쁜 모양이에요."

아이라는 빈 책상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부르힐은 손가락

끝으로 톡톡 책상을 치면서 아이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간 없으니 쓸데없는 소린 그만 해. 사건 설명은 충분히 듣고 왔겠

지?"

"예. 일차적인 브리핑은 받았습니다."

"그래. 나머지는 다 일급비밀 사항일 테니까. 나는 경사가 아는 것만큼

도 몰라. 나는 원래 특임조 소속이 아니야. 연방수사국 소속이지. 재수

없게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붙잡힌 것뿐이라고. 내 임무도 자네한테 여기

서 몇 가지 지시사항만 전하면 끝이야."

부르힐은 짜증이 난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젠장. 그냥 문서로 하면 될 일을 왜 굳이 날 불러서 여기서 전달하라

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여기가 보안이 유지된다나, 뭐 어쨌다나. 하여간

어느 도시를 가도 특임조 꽉 막힌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

아이라는 이 말에서 자신이 아직도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됐어. 구두로 지시하라고 했으니까 그대로 하지. 아이라 경사. 경사는

지금부터 특임조 조장을 만나러 가. 있는 곳은 라디오 공장 본사 2층. 거

기 가면 조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분명히 들었지?"

"예. 그렇습니다만..."

부르힐 경위는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소개장이라고 크게 적혀 있

었고, 그 밑으로 간단한 메모와 전화번호, 직인이 남겨져 있었다. 아이라

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럼 됐어. 이걸로 내 임무는 끝이야. 휴우. 이제 겨우 연방수사국으

로 돌아갈 수 있겠군."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지 부르힐 경위는 책상 밑에서 가방을 꺼내 메

면서 말했다.

"참. 참고로 여기 빈 책상이 많은 건 말야, 다들 바빠서가 아니야."

부르힐 경위가 사무실 문으로 나서며 말했다.

"특임조가 사건이 있을 때마다 편성된다는 건 알고 있지? 지금 사건은

외부 인사가 조장을 맡았고, 수사관은 자네하고 그 경무원 꼬마 뿐이야.

그러니까 책상이 비어 있는 거라구. 알겠어?"

부르힐 경위는 이렇게 말하곤 아이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넓은 사무실에는 이제 아이라와 린 밖에는 아

무도 남지 않았다.

"나, 말해도 되는 거야?"

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응. 들었지? 이제부터 우리는 라디오 공장 본사 2층으로 가야 해."

아이라가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이라는 도대체 무슨 임무인지, 어떤 수사가 진행될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라디오 공장 본사까지 캡슐로 이동했다. 같은 캡슐이라는 이

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웨이팅하우스 시의 캡슐은 푸우순 시의 5인용 캡

슐과는 격이 달랐다. 웨이팅하우스 시의 캡슐은 정확하게 100인용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마침 출퇴근 시간은 아니어서 아이라는 캡슐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특임조는 시경으로부터 탈것을 비롯한 무제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

록 규정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아이라는 원하기만 했다면 시경에

M.P.O를 통째로 빌릴 수도 있었지만, 아직 조장에게 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이라는 굳이 캡슐을 이용했던

것이다.

캡슐에 타고 있는 건 휴먼 레이스뿐이었다.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휴먼 레이스

이거나 혹은 일자리를 찾는 휴먼 레이스일 것 같다고 아이라는 생각했

다.

"저기."

린이 아이라의 팔을 붙잡고 캡슐의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좌석에 쓰러지다 시피 기대어 있는 노숙자 같아 보

이는 휴먼 레이스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포미사이드 레이스 때문에... 휴먼 레이스는 굶어 죽는다구. 그거 알

아? 포미사이드 레이스 때문에... 휴먼 레이스가 굶어 죽는다구. 그거 알

아? 포미사이드..."

그 휴먼레이스는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올해는 포미사이드 레이스 노동자가 집단으로 행성 어스로 이주해 온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외형상으로는 웨이팅하우스 시의 부족한 노동력

을 메우기 위해서 포미사이드 레이스 정부와 휴먼 레이스 정부간의 협약

에 의해 이주해 온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사실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값

싼 노동력을 노리고 라디오 공장에서 사오다시피 했다는 건 어지간한 시

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가 드는

많은 휴먼 레이스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그 와중에 저런 노숙자들이 생

겨난 거였다.

"뭐라 그러는 거야?"

린이 어린아이다운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하고서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냥 좀 우울한 모양이야."

아이라는 캡슐의 출입문에 붙어 있는 작은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

고 있었다.

표지판에는 까만색 개미의 심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심볼은

붉은 색 원에 갇혀 있었고, 원에는 대각선으로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창밖에는 거대한 공익광고가 캡슐을 스치고 있었고, 거기엔 표정을 알

수 없는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다른 레이스들과 함께 서 있었다.

일단 캡슐에서 내린 후에 공장 본사로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캡슐로부터 공장까지는 출근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이

라는 택시를 잡아탈까 했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였던 것이다.

아이라는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행렬을 본 적

이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줄을 지어서 공장으로의 길을 서두르고 있었

다. 모두 똑같은 검은 색 외골격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정말 벌레 떼처

럼 보였다.

아이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금빛의 돔은 대낮에도 분주히 열리

고 또 닫히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돔은

셔틀을 받아들이고 또 내보내고 있었다. 아이라는 그 반복적인 모습이

바로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린은 말없이 아이

라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꽤나 따분해 보였다.

"일은 언제 시작 해?"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바빠질 테니까."

아이라의 말은 진심이었다.

경비실에 부르힐 경위가 준 소개장을 제시하자 수위는 전화를 몇 통

하고 나서는 아이라에게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 주었다.

"본관 건물은 공장 건물 뒤편에 있수다. 높은 건물이니까 금방 찾을

거요."

수위는 이렇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아이라를 들여보냈다. 아

이라는 신분증을 가슴에 착용하고 공장 본관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

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린은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인상을 찌푸렸

지만, 아이라는 한껏 숨을 들이켰다. 이제 곧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 섞인 감정을 이렇게라도 삭이고 싶었던

것이다.

본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라는 몇몇 포미사이드 레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들의

언어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시체

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외골격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편이었고,

시커먼 외골격의 표면에는 털이 숭숭 솟아 있었다. 아마도 그 털로 감각

을 느끼는 것이겠지만 아이라가 보기에 그 털들은 그저 징그러운 대상일

뿐이었다. 아이라도 보통의 휴먼 레이스처럼 털이 많고, 혹은 털이 없이

미끈거리고, 다리가 두 개 이상인 생명체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부수고 있어. 막 부수고 있어."

아이라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를 바라보느라 린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랐

기 때문에 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이라는 주위를 살펴보

았지만 누구도 뭔가를 부수고 있지는 않았다. 아이라는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멍한 표정으로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답답해. 머리가 어지러워. 뜨거워. 꼭 뭔가가 타고 있는 것 같아."

아이라는 그제서야 린이 부서진 돌멩이를 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는 얼른 돌멩이를 빼앗아 멀리 던져 버렸다. 돌멩이가 손에서 떨어져 나

가자 린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했지."

아이라가 린에게 주의를 주었다. 린은 생글거리며 응, 하고 대꾸했다.

"대답은 잘한다."

아이라는 린의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아. 왜 때려?"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는 뜻이야."

아이라는 린에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라는 처음 린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2년 전, 웨이팅하우스 시 사상 최악의 셔틀 추락사고 때였다. 린은 사

건 현장 한 복판에 있었다. 셔틀은 불타고 있었고, 셔틀 안에서 빠져 나

온 유일한 생존자는 린뿐이었다. 증언을 얻기 위해 완전한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린과 대화를 했던 건 아이라였고, 또한 린의 능력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도 아이라였다. 아이라는 지휘계통을 통해서 린을 경무 보조원

으로 채용해 줄 것을 건의했고, 밀라노 반장은 린을 아이라의 수사 보조

원으로 등록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린은 아이라와 함께 숱한 사

건들을 해결해 왔다.

"저기 아니야?"

린이 공장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뜨이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특별히 높아서 눈에 뜨인다기 보다는 크리스탈로 되어있는 외벽 때문에

회색의 공장건물과 구별이 되는 건물이었다.

"맞아. 잘 했어."

아이라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

다.

본관 1층에는 E-14 빔 라이플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서 있었다. 생각보

다 훨씬 삼엄한 경비였다. 라디오 공장 본관이라고 하면 바로 그 포레스

트 회장이 있는 곳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시 경비대원들까

지 동원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던 아이라였다.

아이라는 무장 경비원들을 지나치다가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원래 라

디오 공장 본사는 무장 경비대원들이 경비를 서는 곳인지, 아니면 직할

반 특임조장이 왔기 때문에 무장 경비원들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게 그것

이었는데, 직할반 관련된 사항을 입밖에 내는 건 보안 규칙 위반이었기

때문에 물어 볼 수는 없었다.

"2층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지요?"

아이라가 1층 로비 한가운데에 있는 안내 데스크를 지키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휴먼 레이스가 아니라 포미사이드 레이스였지만, 아이라

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물었다.

"왼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포미사이드 레이스 안내원은 아이라의 임시 신분증을 확인하곤 꽤 유

창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앞에는

무장한 경비병이 서 있었다.

"아이라 경사님이십니까?"

경비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라에게 물었다.

"예."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묻는 걸 들은 아이라였다.

"모셔 드리겠습니다."

아마 지시를 받은 모양이라고 아이라는 생각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무장한 경비병은 아이라와 린을 먼저 엘

리베이터에 태운 후, 자신도 탔다. 아이라는 무표정한 병사의 모습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 엘리베이터는 2층으로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입니다. 다른 엘리베

이터는 2층에서 멈추지 않지요."

경비병은 묻지도 않은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아이라는 이 경비병이

무표정한 얼굴이기는 해도 아마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게 싫은 모양이로

구나 생각했다.

"저 쪽 끝으로 가시면 됩니다."

경비병은 아이라와 린이 내리는 걸 확인 한 후, 이렇게 말하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이라는 경비병을 말을 따라서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갔다. 복도는 고

대 유적에나 있을 법한 돌로 된 기둥과 두꺼운 천으로 된 바닥으로 장식

이 되어 있었다. 문양 또한 대단히 고전적인 것이어서, 아이라는 아마도

포레스트 회장의 취향이 상당히 고전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포레스트 회장에 대해서는 소문만 들었을 뿐, 실제로 포레스트

회장을 만나보지 못한 것은 물론 대화를 나누어 본 이조차도 만나 본 적

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곳에 특임조 조장이 와 있는 걸까. 아

마도 불에 탄 트럭의 주인이 포레스트 회장일 거라고 짐작은 해 볼 수

있었지만 자세한 까닭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라는 2층 끝에 있는 방 문 앞에 서서 잠시 멈추었다. 불투명한 유

리로 만들어진 문에는 '회장실'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작 누

군가가 회장실이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놀라지는 않았을 거였다. 하필 회

장실에서 특임조 조장을 만나야 하다니. 아이라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린. 오늘은 조용히 이야기만 들어야 해. 알았지?"

아이라는0 마지막으로 린에게 이렇게 당부한 다음, 문을 두 번 두드렸

다. 그러자 문은 양 옆으로 갈라지면서 열렸다. 아이라는 안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문일 줄 알았던 문은 양 옆에 있

는 생명체에 의해서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생명체는 카니

데 레이스였다. 그것도 은빛의 털을 가진.

"들어오십시오, 아이라 경사 님. 그리고 린 경무원 님."

두 카니데 레이스 중 하나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면서 아이라에게 말

했다. 아이라는 마치 고대의 노예와 같은 모습의 두 카니데 레이스를 보

면서 새삼 포레스트 회장의 취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회장실까지는 또 한 번 꽤 긴 복도를 지나야 했다. 벽면에는 상당히

오래된 그림이 화려한 액자에 담겨 있었다. 아이라는 그것이 영화 포스

터라는 걸 알아 볼 수 있었다. 극히 일부분의 고대 예술 애호가들 사이

에서 거래된다는 영화는 아이라 같은 평범한 공무원에게는 너무 먼 기호

였다. 포스터에는 하나같이 고대 문자가 크게 적혀 있었고, 그 밑으로는

작은 고대문자들이 뭔가 정보를 전하려는 듯 줄을 지어 있었다.

몇 개의 영화 포스터를 지나치자 회장실의 출입구가 나타났다. 출입구

에는 건장한 휴먼 레이스 하나가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군인이나 경비

대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포레스트 회장의 개인 경호원이리라.

경호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이라는 문 너머 보이는

회장실의 모습에 놀라지 않으려고 애썼다. 높은 천장과 어지간한 사무실

열 댓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도 크기였지만, 중앙에 있는 거대한 욕조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고대양식은 예술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

가 없는 아이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문을

열자마자 흘러나온 음악이었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어우러진 음악은 결

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는 비할 수 없는 생생한 음을 전하고

있었다. 놀란 건 아이라 뿐은 아니었다. 린은 휘둥그래진 눈을 어디에 두

어야 할지 몰라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서 와요, 아이라 경사. 그리고 린 경무원."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여자가 아이라에게 말했다.

여자는 3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거품이 올라오고 있는 욕조

에서 기대있는 모습은 귀부인을 연상시켰다. 여자가 손짓을 하자 경호원

은 문을 닫았다. 회장실에는 순간 음악만이 가득 찼다. 아이라는 음악 소

리가 들려 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아노 연주자와 현악기 연주자

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포레스트 회장이에요. 듣던 것과는 좀 다르죠?"

포레스트 회장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별로 들어보지 못했어요."

아이라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그래요? 나는 내가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도 내가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이라의 말에 포레스트 회장은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다분히

도전적인 말투였다. 아마도 카니데 레이스 정부를 데리고 있는 것에 대

한 질문일 거였다. 어쩌면 아이라가 체포한 빌리의 일을 추궁하는지도

몰랐다. 아이라는 그런 대화는 회피하고 싶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9 -

"생각보다는... 젊으시네요."

아이라가 얼른 이렇게 대꾸하자 포레스트 회장은 우아하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만약 아이라가 저런 웃음소리를 내는 걸 로스가 들었다면 아이

라는 당장 직할반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레스트 회장의

웃음소리는 회장에게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내 나이가 올해로 쉰 여섯이니까."

쉰 여섯! 아이라는 속으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얼굴

과 피부에서는 주름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저 얼굴이 쉰 여섯이라니. 아

이라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마음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걸 느꼈다.

"영화 좋아해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물으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카니데 레

이스 둘이 거대한 쇼파를 끌고 와 아이라의 앞에 놓았다. 포레스트 회장

은 대답을 기다리며 앉으라는 손짓을 아이라에게 보냈다. 아이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린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영화가 뭔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아니죠. 저는 공무원이거든요. "

아이라는 어디에 직할반 특임조의 조장이 있을까 살펴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조장은커녕 휴먼 레이스라고는 포레스트 회장과 린, 그리고 자신

뿐이었다. 연주자 둘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모두가 카니데 레이스였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최종전쟁 전의 행성 어스에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 중 하나가 영화였다고 해요. 지금은 싸구려 잡지와 라디오가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요. 스팔타커스라는 영화를 알아요?"

아이라는 물론 모르는 영화였지만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포레스트 회장에게 말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

다.

"스팔타커스는 고대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에요. 고대 로마를

묘사한 작품이지요. 우리가 고대 로마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건 그런

영화를 통해서이지요. 유적이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사실 이곳

은 영화 스팔타커스를 참조해서 디자인 한 거예요."

아이라는 린을 바라보았다. 린이 혹시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

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린은 그저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스팔타커스는 스팔타커스라는 고대의 노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요. 권력과 반란. 피와 사랑. 그런 이야기죠. 그 영화에 안토니우스라는

휴먼 레이스가 나와요. 안토니우스는 주인인 로마의 권력자 크랏수스와

함께 목욕을 하지요. 크랏수스가 안토니우스에게 물어요. 굴과 야채 중

어떤 걸 좋아하느냐고. 안토니우스는 야채는 좋아하지만 굴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자 크랏수스가 말하길, 자기는 굴은 좋아하지만 야채

는 싫어한다고 해요."

아이라는 포레스트 회장이 아직도 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부드러운 털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특히 은빛 털을."

요컨대 포레스트 회장의 말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였다. 아이라

는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세

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빌리를 안토니우스라고 불렀어요. 빌리는 내 안토니우

스였지요. 어쩌면 그 마지막도 영화를 닮았는지도."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카니데 레이스를 손짓으로 불렀다.

카니데 레이스는 하얀 베스 로브를 가지고 왔고 포레스트 회장은 욕조에

서 나와 그것을 걸쳤다. 아이라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눈부시게 희

고 매끄러운 포레스트 회장의 몸을 보는 걸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아이라는 린이 넋을 놓고 포레스트 회장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곤

린의 손을 꼭 잡았다.

포레스트 회장은 옷자락을 매만지며 카니데 레이스에게 뭐라고 속삭였

다. 지시를 받은 카니데 레이스는 조심스럽게 어디론가 향했다.

"보여 줄 게 있어요."

포레스트 회장이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아이라가 앉아있는 의자보다

크고 높은 의자였다.

"제가 온 것은..."

"쉿."

아이라는 특임조 조장을 만나기 위해서 왔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포

레스트 회장에 의해 제지당했다. 포레스트 회장의 움직임은 쉽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저기 오네요."

아이라는 낯선 얼굴 하나와 낯익은 얼굴 하나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낯선 얼굴은 50은 넘어 보이는 남성 휴먼 레이스였고,

낯익은 얼굴은 카니데 레이스인 빌리였다. 카니데 레이스의 얼굴을 구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빌리만큼은 자신이 체포한 범인이어서

아이라는 구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쪽은 내 고문변호사 마이어 씨, 그리고 그 옆은 구면인 빌리에요."

빌리의 표정은 읽어 낼 수가 없었지만 침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뭔가 좋지 않은 심리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저, 포레스트 회장님."

"쉿. 이제 금방 끝나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빌리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빌리

는 바닥에 엎드렸다. 포레스트 회장은 변호사 쪽으로 손을 내밀었고, 변

호사는 포레스트 회장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9밀리 권

총이라는 걸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포레스트 회장은 그것을 발사했다.

아이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레스트 회장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카니데 레이스 둘이 아이라를 막아선 것이 먼저였다.

빌리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카니데 레이스의 비명소

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높았다. 은빛의 털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버렸

다.

포레스트 회장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고 9밀리탄은 빌리의 몸통에 연이

어 박혔다.

빌리는 이내 곧 잠잠해졌다.

"당신을 체포합니다, 포레스트 회장!"

아이라는 카니데 레이스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포레스트 회장도, 변호사도 표정에 별 변화는 없었다. 아이라는

특임조로 전근이 이루어지면서 반납한 9밀리 권총이 아쉬웠다.

"그래요? 죄명은 뭐지요?"

"살해죄. 증거, 증인, 모두 완벽해. 당신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어."

아이라의 말에 포레스트 회장은 다시 한 번 우아한 웃음을 터트렸다.

변호사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포레스트 회장이 건네는 권총을

받아 품에 넣었다.

"증거는 지금 없어졌어요. 혹시 나중에 발견한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뒷골목에서 아무나 살 수 있는 9밀리 권총이 증거능력이 있을

까요. 그리고 빌리는 하이하버의 골목 귀퉁이에서 발견 될 거고요. 저는

빌리가 죽은 시간에 당신과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시의원이에요. 일개

경사가 하는 증언이 통할 것 같아요?"

아이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체포하겠어요. 범죄에 있어서 타협은 없어

요."

아이라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말을 내뱉었을 때, 이번에는

마이어 변호사도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하지만 이건 타협의 대상이 아니에요. 내 대신 설명해 줄래요, 마

이어 씨?"

포레스트 회장이 말하자 마이어가 양복 매무새를 바로 하면서 입을 열

었다.

"특임조 법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아이라 경사? 모를 테니까 내가

설명해 드리죠. 특임조는 중앙정부에 속해 있는 이례적인 특수 수사기관

입니다. 때문에 몇 가지 특별한 조항이 있지요. 예를 들면 어떠한 경우에

도 직속상관을 고발할 수 없다던가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아이라는 침착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물었다.

"포레스트 회장님은 지금 특임조 조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아이라 경사,

당신의 직속 상관이지요."

9밀리 총탄이 머리를 두드린 것 같은 충격에 아이라는 잠시 동안 멍하

니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모든 말을 알아듣고는 힘이 빠져버렸다. 포

레스트 회장은 아이라를 붙잡고 있는 카니데 레이스에게 손짓을 했고,

카니데 레이스는 얌전하게 물러섰다.

"그래요. 내가 특임조 조장이에요. 시의원은 특임조 조장으로 임명될 수

가 있지요. 시의원이 작은 사법기관의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지요."

아이라는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해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

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라는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아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는 린의 옆에 앉아서 린과 똑같이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라 경사."

아이라는 포레스트 회장의 눈을 피했다. 아이라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

는 분노와 자신의 무력감 때문에 행동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가 없었다.

태연한 표정을 짓는 일도 지금 아이라에게는 무리였다.

"나를 싫어하는 건 좋아요, 아이라. 하지만 일을, 경찰의 업무를 무시해

서는 안되지요. 내가 아이라를 특별히 지목한 데에는 그런 아이라의 태

도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포레스트 회장은 아이라가 어떻게 생각을 하건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

다.

"먼저, 아이라의 경찰 기숙사에 있는 짐은 모조리 여기 이층으로 옮겨

놓았어요. 앞으로 출퇴근은 여기서 하면 되요. 아이라 경사도 라디오는

우리 회사의 라디오를 쓰더군요."

포레스트 회장은 농담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자신의 사적인 짐

이 포레스트 회장의 힘에 의해서 함부로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에 화

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라는 부끄러움을 감추기가 힘이 들어서 아

이라는 고개를 숙이고 포레스트 회장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

다. 누가 본다면 포레스트 회장이 경찰이고 아이라가 범죄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국가 일급기밀이에요. 우리 행성 어

스 전체의 존망이 걸려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아이라는 침착을 되찾고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고개를

들었다. 카니데 레이스들이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었고, 빌리의 시체와

피는 언제 여기 있었냐는 듯 깨끗하게 치워진 후였다.

"빌리는 반역자였어요. 우리는 속칭으로 이런 종류의 반역자를 레니게

이드라고 부르지요."

"레니... 게이드?"

"우리 라디오 공장은 겉보기에는 그저 라디오만 조립해서 파는 것 같지

만 실은 상당히 많은 물량의 군수품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값싼 무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레이스들이 우리 공장의 주요 고객이지요. 때문에 군

사기밀사항도 많이 다루고 있답니다. 이런 군사 기밀을 적에게 파는 자

들을 우리는 레니게이드라고 해요."

아이라는 빌리가 반역자라는 사실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몰랐다.

"제가 조사한 바로 빌리는 그저 포레트스 회장...님의 정부였을 뿐이에

요."

아이라는 님자를 어렵게 붙일 수 있었다.

"그렇죠. 하지만 정부도 반역은 할 수 있어요."

포레스트 회장의 표정이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 하지만 정부라는 말

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한 태

도였다. 아이라는 싸늘해진 포레스트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

얼굴이 진짜 포레스트 회장의 얼굴이 아닐까 싶었다.

"빌리는 내 정부라는 지위를 악용해서 몇몇 국가 기밀에 손을 댈 수 있

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암호문 하나를 훔쳐 달아났어요."

"제가 체포했을 때, 빌리는 그런 거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빌리의 물건

이라면 빌리를 데리고 있었던 보링거 사장이 알고 있을 거예요."

아이라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 회장 밑에서 임무

를 수행해야 한다고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던 아이라였다. 아이라는 그

저 다 때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건 우리도 조사했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보링거 사장은 알고 있는

게 없었어요."

"결국 그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게 제 임무인가요?"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라 쪽으로 다가왔

다. 젖어있는 회장의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베스 로브를 적시고

있었다. 아이라는 절로 몸이 의자에 바짝 다가갔다.

"빌리는 내 정부였지만 몰래 애인을 사귀고 있었어요. 흔히 말하는 것

처럼 바람을 피운 거죠.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빌리를 쏜 것에 그런 사

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나는 일과 사생활은 구

별할 줄 아니까요."

어느 사이 포레스트 회장은 아이라의 옆에 앉아서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뭔가가 스멀거리는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런 얼굴을 보

이기 싫어서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애인의 이름은 챠오챠오. 우리 회사 직원이었어요. 어떻게 해서 우리

빌리와 친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몰라요. 빌리와 만날 기회도 흔치 않

았을 텐데."

"둘 다 회장님의 하인이 아니었나요?"

아이라는 포레스트 회장의 말에 반사적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삼 년 동

안의 수사관 경험은 의문이 나는 사항에 대해서 바로 질문을 던질 수 있

도록 훈련되었던 것이다. 포레스트 회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챠오챠오는 포미사이드 레이스였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이었고요."

아이라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포미사이드 레이스와 카니데 레

이스라니. 어쩐지 너무나도 지저분한 것이 눈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기

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나는 그런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말했잖아요. 굴과 야채 중 어떤 걸 좋아하는 지

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라고요."

아이라는 일단 포레스트 회장의 말에 완전히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일

단은 인정하고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챠오챠오가 훔쳐낸 기밀 문건을 불순분자에게 넘겨줄 거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우리는 비밀리에 챠오챠오를 잡으려고

했지만, 빌리가 챠오챠오에게 미리 정보를 주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챠오

챠오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빌리가 끼어 들었지요. 알고 있겠

지만, 빌리는 우리 경비원을 물어 죽였어요."

아이라는 이제서야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아이라의 빌리

사건 수사는 린에게 의지한 바가 컸다. 린의 능력이 없었다면 아이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지 몰랐다. 물론 마지막에 보링거 사장을 설득한

건 완전히 아이라의 공이었지만 그 과정은 그랬던 것이다.

"오늘부터,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이라 경사는 챠오챠오의 추적을 시작

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챠오챠오가 그 국가기밀을 불순 세력에게 넘

겨주기 전에 사건을 해결해야 하니까요."

아이라는 이제 사건을 파악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나 분노는 잊어버리

려고 노력했다. 아이라는 늘 그래왔듯 임무에 충실한 경관일 뿐이었다.

"아이라와 린은 추적에 있어서는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원 중 최고의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뛰어난 트랜서인 린. 그리고 역시

뛰어난 수사관인 아이라. 이 둘을 내가 쓰겠다고 말했을 때, 다른 의원들

은 반대했어요. 하지만 나는 아이라를 믿었지요. 빌리를 찾아낸 아이라라

면, 그리고 내 정부를 잡아들이는 데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아이라

라면 틀림없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지요. 이건 여성

에 대한 내 믿음하고도 일치해요."

아이라는 다시 한 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부끄러움

때문인지 혹은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스스로도 분석해 낼 수가

없었다.

"아이라 경사. 경사는 지금부터 직할반 특임조 수사관이에요. 모든 경찰

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모든 공공기관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

가 주어져요."

포레스트 회장은 짐짓 점잖은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그것이

꾸며낸 것일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이 말에 수사

에 대한 의욕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의 도움이라고 해도 좋지만, 우리 라디오 기업의

모든 힘도 지원 받을 수 있어요. 인원. 장비. 정보. 뭐든지 좋아요. 전적

으로 지원하죠."

"알았어요, 포레스트 회장님. 일단 챠오챠오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

가 필요해요. 그리고 챠오챠오가 사용했던 물건들도요."

챠오챠오가 사용했던 물건들은 린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챠오챠오는 도주에 성공했어요. 우리가

추적자를 보냈지만 챠오챠오는 따돌렸어요. 사막에서 챠오챠오가 훔친

호버카가 발견되었지요. 그리고 사막에서 우리 트럭이 불에 타는 사건도

일어났고요. 어쩌면 챠오챠오가 빼돌린 국가기밀은 불행하게도 이미 불

순세력의 손에 넘어갔는지도 몰라요."

"비쵸... 라는 이름과 관계 있는 사건이로군요."

아이라는 밀라노 반장에게 브리핑을 받았던 사건이 어떻게 빌리와 연결

되는 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듣고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나머지 사항이 왜 일급비밀인

지 알 수 있겠지요?"

"하지만 비쵸는 용병이에요. 누구에게 고용되었는가에 따라서 그 목적

이 뭔지 알 수 있게 되겠지요. 현재로서는 비쵸가 불순세력에게 고용되

었다는 증거는 나타나 있지 않아요."

아이라는 수사관으로서 냉철하게 판단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이 포

레스트 회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우리 정보망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비쵸에 대한 자료는 누가 제

공했을 것 같아요? 셔틀 한 대 내려오면 어디서 온 건지도 몰라서 벌벌

떠는 연방정부에서?"

포레스트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 냉소가 연방정부를 비웃는 건지, 아

니면 아이라를 비웃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아이라는 그다지 유쾌하

지는 못했다.

"라디오 그룹의 정보력이 연방정부보다 뛰어난 줄은 몰랐네요."

"비쵸는 정확하게 탈영병이에요. 락벳의 휴전 전선에서 복무 중에 탈영

했지요. 탈영한 병사의 수는 상당히 많고, 행성 어스로 그 탈영병들이 흘

러 들어온 건 연방정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포레스트의 말은 어딘가 명확하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아이라는 좀 더

캐물으면 뭔가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나온 정보죠? 연방정부는 아니고, 라디오 기업도 아

니라면요."

"아이라 경사."

포레스트 회장은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경사의 임무는 챠오챠오의 행방을 알아내고 비밀 문서를 회수하는 거

예요."

"하지만 저는 담당 수사관으로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

와 책임이 있어요.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특임조 조장으로 수사관에게 정

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요."

"의무와 책임에는 권리도 따르죠. 내 권리 중에는 아이라 경사를 직위

해제하고 적당한 다른 수사관을 임명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요."

포레스트 회장은 애써서 자신의 위치를 아이라에게 확인시켜주려는 듯

보였다. 아이라는 그런 포레스트 회장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캐물으려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수 있었

다. 화가 난 상사는 냉정한 판단 대신 감정에 치우치는 수가 훨씬 많다

는 걸 아이라는 알고 있었다.

"챠오챠오에 대해서 조사가 필요해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으

니 뭐든 다 도와 주시겠지요?"

이말은 한참의 사이를 둔 후에 아이라가 한 말이었다. 포레스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인 셈이었다.

"비쵸의 트럭 습격 사건은, 어쩌면 우연히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우

리에게 적의 존재를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어요. 비쵸도, 또 그 일

당도 우리 시에 들어와 있는 건 분명해요, 아이라 경사."

"어쩌면 챠오챠오가 시에 비밀문서를 숨겨 두었고, 비쵸 일당은 그것을

찾으러 왔는지도 모르지요."

"좋아요. 좋은 수사 방향이에요."

아이라가 듣기에 이 말은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챠오챠오가 쓰던 방에 있던 물건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겠지요?"

아이라가 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린은 아이라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

개를 끄덕였다.

"일단 거기서부터 수사를 시작하는 걸로 하죠. 나는 지휘관일 뿐이지

수사는 잘 몰라요. 아이라 경사와 린 경무원이 잘 하리라 믿겠어요."

포레스트 회장이 이렇게 말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카니데 레이스

하나가 다가와 포레스트 회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포레스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이지만 시간이 없군요. 사건의 지휘관이 다른 일로 바쁘면 수사관

은 편하다고들 하던데요. 맞나요?"

"예. 저도 그 비슷한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라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다. 포레스트 회장의 말은 맞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한다면 '당신은 빠지쇼'하고 대놓

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지휘관이긴 하지만 내 증언이 필요한 사안도 있을 거예요. 일단

챠오챠오의 행방부터 찾아봐요. 나머지 사항은 이 카니데 레이스가 말해

줄 거에요."

"예..."

아이라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퇴근은 여기로 해요. 경비원들이 숙소로 안내해 줄

거예요."

"여기에 숙소가 있나요?"

"예. 2층에 마련해 뒀어요. 조금도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썼죠."

아이라는 포레스트 회장이 대화를 끝내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인사로 거수 경례를 붙어야 할지 말아야 할까? 민간인에게는 목례를 하

는 것이 경찰의 예법이었지만 포레스트 회장은 시의원이면서 동시에 지

휘관이었다. 당연히 경례를 하는 게 옳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조금

도 없었던 것이다.

"좋은 결과 기대할 게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돌아서서 뒤편에 있는 문으로 나가버렸

다. 애당초 경례든 목례든 받을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카니데 레이스는 가죽으로 된 권총집과 권총 케이스를 내밀었다. 아이

라는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그대로 가죽 권총집을 어깨에 둘렀고, 곧

이어서 권총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반납한 K-5 9밀리

권총이 아니었다.

"니들건 한 정과 니들탄 탄창 두 개입니다."

카니데 레이스가 유창한 휴먼 레이스 언어로 말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포레스트 회장의 시중을 오래 든 모양이었다.

"120발이군요."

아이라는 니들건을 권총집에 꽂고 탄창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60발들이

탄창에는 니들탄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모습으로 채워져 있었다.

"니들건은 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예."

물론 아카데미에서 장총으로 사격해 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라

는 이것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수사중에 총을 쓰게

된다면 그건 대단히 큰 사건이다. 아이라는 수사중에 목숨을 걸고 싶지

는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아이라는 니들건을 뽑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발사하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카니데 레이스가 말했다. 아이라는 이 말이 '수사를 시작하지 않고 뭘

하느냐'는 질책처럼 들렸다.

"당신은 몰라도 되는 생각이에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싸늘하게 한 번 웃어주었다. 이제 막 수사는

시작되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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