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기.
웨이팅하우스 시의 뒷골목은 여전히 범죄의 온상이었다. 어두운 골목
에서는 매춘과 마약매매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그런 일들은 경찰도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다.
아라크나이다 형 레이스 중에서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인 비쵸는 하이
하버의 뒷골목에 있는 그랜드레드라는 이름의 작은 여인숙의 2층에 머물
고 있었다. 다 떨어져 몇 글자 남아 있지 않은 네온사인 간판이 깜박이
는 그랜드레드 여인숙에는 휴먼 레이스보다 훨씬 오랫동안 행성 어스에
서 살아온 바퀴벌레와 쥐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
고 그들은 비쵸의 좋은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비쵸는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아 다음에는 어떤 걸 간식으로 먹으면 좋
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취객의 고함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소
리, 그리고 간간이 화약식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비쵸는 그 소리 와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는 순식간에 문
옆에 바짝 다가붙었다. 물론 독이 담겨 있는 꼬리는 비쵸의 머리 위까지
솟아올라있었다.
"룸서비스야."
그랜드레드의 사장인 시드니의 목소리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시
드니는 '냐야. 문 열어' 하고 말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비쵸는 집게
발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혹시 누군가가 문을 발로 걷어찬다던가
하면 바로 그의 목에 독을 주사할 준비를 하고서. 물론 이렇게까지 조심
할 필요가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더군다
나 범죄를 저지르고 시에 숨어든 반란군이라면.
문이 열리자 시드니의 모습이 보였다. 시드니는 누가 보아도 평범한
50대 휴먼 레이스였다. 옷도 허름했고, 무장을 하고 있다던가 비밀을 숨
기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이. 비쵸."
시드니가 비쵸에게 인사를 건넸다.
시드니는 하이하버의 뒷골목에서 그리 이름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당하지도 않는 수준의 그만그만한 장사꾼 중 하나였다. 장사수완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싸구려 여인숙 수입이
좋을 리도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 있는 조직들은 시의회보다 더 많은 세
금을 뜯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랜드레드 여인숙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렇게 주목을 받을만한 사실도 아니었다. 그
저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아, 그런가 보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만
한 일 정도였다. 아무도 시드시가 반란군의 지역 지부장이라고는 생각하
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비쵸는 시드니의 여인숙에서 버틸
수 있었다.
"연락이 왔어."
시드니가 말했다.
"나는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비쵸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고 일을 진행시킨 덕분에
일이 급진전되었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언제 온다고 했는지 궁금하다."
"밖에서 만나야 겠다고 하던데."
시드니는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었다. 비쵸는 양 쪽 집게발을 움직여
딱, 하는 소리를 두 번 내었다. 부정의 뜻이었다.
"여기가 안전하다. 일을 벌이기 전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어서는 안 된
다. 여기는 싸구려 여인숙. 장기투숙객 따위는 없다. 내가 밖에 나가지
않는다면 모두가 안전하다. 하지만 내가 나간다면 매우 위험해 질 수도
있다. 나는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 행성 어스에서는 눈에 뜨이는 레이스
다."
시드니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쵸는 고개를 움직일 수
있는 휴먼 레이스의 제스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가 고개가 있었다면 다르겠지만, 고개를 움직일 수 없는 스코르피
언디아 레이스인 비쵸는 그 동작 자체가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문건을 해독해 낸 결과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지 않겠어. 그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시 말을 해야 좋
을 것 같아."
시드니가 말하자 비쵸는 집게발을 흔들었다. 다른 레이스에게는 위협
적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이건 이해한다는 뜻의 친근함을 표현하는 행위
였다.
"시간이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위험해 지면 곤란하다. 일이
완전히 물거품처럼 터져 버린다."
"알아. 무슨 뜻인지. 하지만 시간을 단축시키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너무 늦어져도 물거품이야."
시드니가 매우 긴 로브를 꺼내어 비쵸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정보를 줄 친구를 자네 없이는 데리고 오기 어렵다고 하잖아. 이해
해 달라고."
시드니는 로브를 비쵸에게 걸쳐 보았다. 로브는 비쵸의 긴 꼬리를 감
추어 주었다. 그리고 품에서 스프레이 깡통을 하나 꺼냈다.
"변장을 조금 하자구. 녀석들이 알고 있다고 해 봐야 자네가 스코르피
언디아 레이스라는 것 정도지."
시드니는 비쵸의 눈에 준비해 온 종이를 대면서 말했다. 비쵸는 특별
히 그것을 피하지는 않았다.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에게 있어서 시력은
그다지 중요한 감각기관이 아니었다.
"뭘 하려는지 궁금하다."
"피부색을 바꾸는 거야. 아주 간단해. 금세 지울 수도 있고."
비쵸는 더 이상 위험부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포기한 듯 했다. 시
드니는 그 틈을 타서 얼른 스프레이를 뿌렸다. 스프레이는 황색이었다.
"여기는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많다. 포미사이드 레이스로 변장하는 편
이 안전하지 않을까 궁금하다."
"그건 좀 곤란해. 너무 많은 레이스로 변장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만
알아 줘."
시드니는 비쵸의 눈에 대었던 종이를 떼었다. 그러자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 비쵸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시드니는 거울을 보여주었다.
"이제부터는 데어드나그 레이스야."
"데어드나그? 처음 듣는 레이스다."
"나도 처음 들어. 그랜드레드를 거꾸로 읽은 것 뿐이야. 신경 쓰지 마.
이 넓은 우주에 있는 레이스를 누가 다 알겠어?"
비쵸는 시드니를 바라보았다.
"그건 속임수인가 궁금하다."
"속임수도 맞는데, 우리는 보통 이런 걸 농담이라고 불러."
비쵸에게는 유머감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담과 거짓말을 구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황색인가?"
비쵸의 목소리에는 별 억양은 없었지만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
았다.
"형광등 때문이야."
시드니가 말했다.
비쵸와 시드니는 하이하버의 뒷골목에 있는 그만그만한 수많은 술집
중 한 군데에 들어갔다. 다른 많은 술집들이 그렇듯이 술집입구에는 개
미의 그림이 들어가 있는 붉은 색으로 된 금지 표시가 있었고 그것도 모
자라 그 밑으로는 '포미사이드 레이스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술집은 휴먼 레이스들이 어울려 시끌벅적했다. 음악은 따로 흘러나오
지 않았지만 취객들의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워서 만약에 음악이
있다고 해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노랗게 보여서 예쁜데?"
술집에는 비쵸의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쵸의 동료는 머리를 완전
히 가리는 두건을 쓰고 있었다. 두건 사이에서 가끔 안광이 비치기는 했
지만 그리 눈에 뜨일 정도는 아니었다.
"저것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비쵸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지."
술집의 조명은 형광등이었다. 형광등 아래에 서면 스코르피언디아 레
이스는 초록색으로 빛나게 된다. 형광등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외골격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비쵸가 스코르피언디아 레이
스라는 걸 알 수 있게 될 거였다.
"그렇군. 하여간 예뻐서 다행이야."
비쵸는 동료의 말이 농담인지 거짓말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농담일 것 같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비쵸의 동료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는 알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손이 떨리거나 느려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자신의 독에 중독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쵸는 이런 이유보다
그저 알콜의 향이 싫었다. 자신의 독과 비슷한 향. 비쵸는 그것을 맡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웨이팅하우스 시는 라디오 방송을 하더라고. 들어 본 적 있어?"
"당연하잖아. 여기 사는 걸."
시드니가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말했다.
"어제 뉴스 들었어? 아나운서가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하더라고. 하
하하. 오늘 뉴스가 없다니. 말이 되는 건가?"
"아직 방송 초기라 그래."
시드니는 심각하게 말했다.
"이런 방송국, 청취율이 얼마나 될 까?"
"초창기라 높아. 이런 술집에는 라디오가 없지만 어지간한 공공장소에
는 다 설치되어 있고. 그리고 아직 초창기라 방송국도 하나 뿐이야. 그
점이 중요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비쵸의 동료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노출될 위험이 크다."
비쵸가 동료에게 말했다. 동료는 비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술집 구석에서는 싸움이라도 벌어졌는지 소란스러운 고
함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전장 같아. 전장에서 취해 있다니. 정말 묘한 기분이야."
"많이 취했다."
비쵸는 동료에게 경고했다. 동료는 웨이팅하우스 시에 들어온 이후 그
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좀 마셔. 전장에서 취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잖아."
"괜찮아. 이 정도 술쯤. 내 형제 자매를 만날 수 있는 곳에 돌아왔는데
나름대로 환영 파티를 열어야지. 나름대로..."
이 말은 거짓말일까? 아니면 농담? 비쵸는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만큼
이나 혼란을 느꼈다.
"됐어. 이제 한 가지만 해 주면 된다고. 알고 있지?"
비쵸의 동료가 모처럼 일할 마음이 났는지 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리
고 아마도 술을 더 시킬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비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또한 그것 때문에 위험부담을 무릅
쓰고 이곳까지 나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하다."
"저 친구야."
비쵸의 동료가 손으로 건너편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여성 휴먼 레이스 앞에 서 앉아 있는 친구인가 궁금하다."
"맞아."
동료는 이제 일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내가 불러 올 게. 시드니하고 뒷문에 가 있어."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 친구, 여자하고 함께 있다."
어떻게 혼자만 불러낼 거냐는 질문이었다.
"이럴 때는 오래된 수법이 있어. 간단해."
동료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시드니는 비쵸에게 나가 있자는 신호를 보냈다. 사실 비쵸는 이런 식
의 일 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장하지 않은 적과 싸운다는
건 스코르피언디아 레이스에게 그다지 명예로운 일일 수 없었다. 하지만
비쵸는 반란군이 싸우는 이유를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가 하는 것도 역시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비쵸는 시드니를 따라 나서면서 꼬리에 독을 품기 시작했다.
"저, 어떤 여자 분이 밖에서 기다리시는 데요?"
동료가 여자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동료가 누구
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따라나서겠다
고 했지만 그 친구도, 동료도 여자를 말렸다.
비쵸가 찔러 넣은 침에는 마취용 독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제 곧 그 친구의 몸 속에 흘러 들어가 그 친구의 몸을 마비시킬 것이었
다. 죽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그 날 자정에도 아나운서는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라고 말했
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