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22화 (22/52)

7.숲 속의 나무 둥치.

챠오챠오의 기숙사 앞에서 아이라는 챠오챠오의 기록이 담겨있는 파일

을 들고 있었다. 파일에 적혀 있는 것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단편적인 정

보뿐이었다.

챠오챠오. 포미사이드 레이스. 행성 어스 식 나이로 (약) 43세. 성향 온

순. 복종 성향 양호. 모성(母星)에 꼬뮨 중 우수 노동력으로 선발.

번역하자면 챠오챠오라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말 잘 듣고, 고향에 두

고 온 가족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할 생명체라는 거였다. 포미사이드 레이

스는 가족 단위가 아니라 꼬뮨 단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숙사는 일종

의 임시 꼬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챠오챠오는 왜 친구가 없었을

까?

메이런은 행성 어스에 온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

고 들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꼬뮨의 가치관을 행성 어스에서 만난 포미

사이드와 함께 하는 쪽. 다른 하나는 모성(母星)의 꼬뮨 외의 꼬뮨은 인

정하지 않는 쪽.

챠오챠오는 이곳에서 만난 포미사이드 레이스를 꼬뮨으로 생각하지 않

았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이곳에 온 진짜 꼬뮨의 동지를 찾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일만 했을 뿐이다. 그런 챠오챠오는 카니데 레이스

인 빌리와 사랑에 빠졌고, 극비 문서를 빼내어서 도주까지 했다. 그런 챠

오챠오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아이라는 알 수가 없었다.

라디오 그룹 소속의 포미사이드 레이스 전용 기숙사를 찾았을 때 아이

라는 당혹감을 느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너무나도 낙후된 시설 때문이

었다. 만약 휴먼 레이스의 숙소가 이런 기숙사였다면, 아이라는 이곳을

감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숙사는 비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각 방은 하나같이 비좁았다. 아이라는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시 밖의 마

을에서 보았던 벌집을 연상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 비번들 몇 하고 아픈 친구들뿐입니다."

안내를 맡은 여자 경비원이 아이라에게 설명했다.

"일단 챠오챠오의 방으로 가죠."

아이라는 린을 이끌고 경비원과 함께 좁은 복도를 지나 챠오챠오의 방

을 찾았다.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때문에 비좁은 복도가 더욱 비

좁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문은 모두 미닫이 문이었다. 만약에 여닫이 문

이었다면 복도에서 부상을 입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었으리라.

기숙사에 들어온 직후부터 느낀 것이지만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시큼하

면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악취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 지는 냄새였다. 아마도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몸에서 분비

되는 어떤 물질의 냄새 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보통 이걸 씁니다. 아. 저는 익숙해 져서 쓰지 않아요."

여자 경비원은 코까지 덮는 마스크를 내밀면서 말했다. 아마도 아이라

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것이 냄새 때문일 거라고 추측

한 모양이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아이라는 린의 눈치를 살폈다. 린도 그다지 견디기 어렵거나 한 것 같

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입니다."

경비원이 문에 달려있는 자물쇠를 열쇠로 열면서 말했다. 아무리 시설

이 낡았다고는 하지만 쇠붙이로 만들어진 자물쇠와 열쇠의 모습을 보게

되자, 아이라는 빈민촌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

었지만 오랫동안 환기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 방은 챠오챠오가 사라진 직후,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건드린 물

건은 없고요, 보안팀이 와서 한 번 뒤지긴 했지만 가지고 나간 건 없어

요."

경비원이 불을 켜면서 말했다. 실내의 조명은 형광등이었는데, 그나마

아주 작은 형광등이어서 물건을 살펴보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

다. 적어도 이곳에서 독서를 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라디오 그룹 내에 있는 보안팀이겠죠?"

"예. 외부엔 알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라는 시경 직할반장 실에서 챠오챠오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챠

오챠오나 범인인 비쵸의 신원이 어떻게 시경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경비

원이 알 수 있는 수준의 경로를 통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방에는 2층 침대 두 개가 양 벽면에 나란히 붙어 있었고, 넷이 쓸 수

있는 조금 큰 옷장이 하나 있었다. 그 뿐이었다. 침대 밑과 옷장 위쪽에

사물을 넣어 둘 수 있는 작은 서랍이 달려 있기는 했지만 편지지나 공책

이상으로 큰 것은 도저히 넣어 둘 수 없을 것 같았다.

행성 어스에 온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하나같이 노동자로 팔려온 신세

였다. 따라서 융성한 대접을 받는 건 무리일 것이라고 아이라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열악한 환경의 포미사이드 레이스 숙소를 눈

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이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오른 쪽 아래 쪽 침대가 챠오챠오의 침대에요."

"룸메이트는요?"

"둘은 죽었고 하나만 남아 있어요. 지금은 다른 방으로 옮겨서 생활하

죠. 아마 공장에 나가 있을 겁니다."

"죽었다고요?"

"작업 중에 사고로 죽었어요. 여기선 흔한 일이에요."

아이라는 할 말을 잃었다.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

서 일하는 것이 뭐가 좋아서 먼 우주를 지나 행성 어스까지 오는 걸까?

"여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아이라의 표정을 읽었는지 경비원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마도 사람

을 접대하는 일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 행성 어스로 오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우리 시에서 요구

하는 노동자 수 보다 조금 많거든요. 여기 입주 할 수 있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그나마 나은 편이죠. 벌집이나 쪽방이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으

세요?"

아이라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시경에서 근무하면서 벌집처럼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거지역을 탐문하거나 방에 칸막이만 세워

놓은 불법 여관을 급습한 일은 흔하게 경험한 아이라였다.

"여기서 화장실이나 욕실은 없나요?"

"복도 끝에 공동으로 쓰는 곳이 있습니다. 꽤 넓고 시설도 잘 되어 있

는 편이에요. 겨울에는 온수도 나오고요."

"린. 준비해 줘."

아이라는 린을 불렀다. 경비원에게 잠시 나가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보다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되

었다.

"저는 복도에 있겠습니다. 다 끝나신 후에 불러 주세요. 필요하신 것

있어도 불러 주시고요."

경비원은 쾌활하게 웃으며 문 밖으로 나갔다. 아이라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카운터나 데스크에서 손님을 받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보이는

여자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저 누나는 무서운 휴먼 레이스야."

경비원이 나가자 린이 말했다.

"왜?"

"총. 총을 차고 있었어. 그리고 쏴 본 적도 있었어. 여기서."

린이 말했다. 아마도 비좁은 복도를 지나는 동안 여자의 권총을 만져

본 모양이었다.

"린. 지금은 여기 먼저 하자. 저 누나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응."

린은 착한 아이가 그렇듯 아이라의 말을 잘 들었다. 아이라는 일을 할

때 마다 린의 지능이 다른 아이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만

약 린의 지능이 정상인 수준이었다면, 린은 영재 교육을 받으면서 중앙

정부의 특수 요원으로 키워졌을지도 몰랐다. 하긴 그랬다면 7급 경무보

조원 신세가 되어서 아이라의 보조경무원 일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자. 한 번 둘러 봐. 여기가 우리가 찾는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살던 침

대였데."

린은 챠오챠오가 있던 침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침대는 모래가 가득

차 있었다. 흙으로 지어진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사는 포미사이드 레이

스의 습성을 고려한 침대겠지만 어디에서 퍼왔는지도 모를 값싼 모래가

가득 차 있는 침대는 그리 볼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특히 모래 사이에

섞여 있는 정체 모를 분비물들을 발견하게 될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린은 흙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모래를 마구 헤집어 보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 막 뒤졌어. 장갑을 끼고."

린이 말했다. 아마도 모래에 남아있는 보안팀의 기억을 발견한 것 같

다고 아이라는 생각했다.

"보안팀이 뒤진 흔적 발견."

아이라는 조금은 맥빠진 소리로 메모용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챠오챠오 공책이야."

린이 사물함에 있는 공책을 들고서 말했다. 아이라는 물건과 트랜스를

하고 있는 린을 볼 때마다 섬뜩함을 느꼈다. 평범한 아이보다 지능이 떨

어지는 린이었지만 트랜스를 하는 동안에 린에게는 아이의 표정이 사라

지곤 했다. 그럴 때 린의 얼굴은 진지한 수사관이나 하이어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했던 것이다.

"룸메이트가 있었어. 그 중 둘이 죽었고. 룸메이트와는 이야기하지 않

을 거야. 친해지지도 않을 거고. 어차피 죽는 걸 보게 된다면 가슴 아픈

건 싫으니까. 고향에 가고 싶어. 꼬뮨의 수장과 동지를 만나고 싶어. 지

금 당장은 돌아갈 수 없지만. 꼭 성공해서 돌아갈 거야. 셔틀을 타면서

맹세했거든."

린이 공책을 마구 뒤적이면서 말했다. 아마도 떠오르는 잔상 같은 걸

아무렇게나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내용은 공

책에 남아있는 기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한 것이었다.

린은 물건이 기억하고 있는 걸 트랜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

지만 그건 단순히 물건의 기억일 뿐이었다. 사실 린의 능력이 그렇게 높

게 평가받지 못하는 원인은 꼭 린의 지능이 남들보다 떨어져서만은 아니

었다. 린이 가지고 있는 능력 자체가 그리 신통치 못한 게 가장 큰 원인

이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런 린의 능력을 끌어올려서 필요할 때에 필

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수사관이었고, 때문에 린은 아이라의 보조를

보는 거였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물건 중에는 인격이나 성격이라고 부를 만한 성

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생명체의 언어나 사고에는 미치지 못할

지 몰라도 린이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읽어 내는 것을 보면 그랬다. 지

금 공책에 남아있는 기억은 공책의 기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포미사이드

레이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한 생명체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물건에는 그 생명체의 인격이 투영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책."

아이라는 자신의 이런 감상은 모두 무시하고서 조그마한 목소리를 녹

음기에 덧붙였을 뿐이었다.

만약 이 공책이 시경에 넘어갔다면 어떤 경로를 거치게 되었을까. 먼

저 감식팀에서 하루 동안 머물겠지. 그리고 중앙 정부로 넘어 갔을 테고.

거기 감식팀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생각 날 때까지 창고 구석 자리

같은 곳에 있다가 다시 시경 감식 팀으로 돌아왔겠지. 포미사이드 레이

스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휴먼 레이스 공무원은 하나도 없었고, 혹시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인력이 생긴다고 해도 그에게

이 공책이 가는 것보다는 사건이 종결되는 게 더 빠를 테지. 아이라는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것 말고는 없어."

린이 말했다. 남아있는 사물이 공책 한 권이라니 정말로 맥빠지는 일

이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아직 챠오챠오의 일터를 둘러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가자. 아직도 둘러 봐야 할 곳이 많아."

아이라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복도에 서 있는 경비원을 불렀다.

아이라와 린 일행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챠오챠오가 일했던 라디오 방

송국이었다. 라디오 방송국까지는 라디오 그룹의 간부 전용 캡슐로 이동

했다.

간부용 캡슐은 일단 10인승은 될만한 공간에 4명이 정원이었다. 라디

오가 달려있는 건 물론이었고, 전화와 잡지, 심지어 간단한 간식거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라는 스테이션에서 퇴근시간까지 움직이지 않을

포미사이드 레이스 전용 대형 캡슐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라 일행을 맞이한 것은 라디오 방송국의 홍보부장이었다.

"쉬퍼라고 합니다. 홍보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명함을 내밀면서 홍보부장이 말했다. 쉬퍼는 단정한 정장 차림에 깔끔

하게 면도를 마친 40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저는 시경의 아이라 경사, 이쪽은 제 경무보조원 린이에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깍듯한 태도였다. 아마도 포레스트 회장이 미리 연락을 넣어둔

게 아닐까 싶었다.

"저는 이곳에서 대외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외부 손님들을 접대하고

그 분들에게 저희 라디오 방송국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 저의 임무이지

요."

"그렇군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시죠?"

아이라는 일단 상대방에 대해서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라디오는 곧 행성 어스에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입니다. 혹시 물건을

사거나 식사를 하실 때 어떤 곳으로 가십니까? 아. 좀 막연하게 질문을

드렸나 보군요. 제 말씀은 광고에 대한 거였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간판

들, 광고판들, 많이 보셨지요? 저희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앞으로 라디오

가 그러한 간판을 대신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비자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상품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

를 하게 될 것입니다."

"예. 그렇군요. 제가 파는 물건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해서 홍보부장 쉬퍼의 말을 끊으려고 했다. 쉬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직업인 사람답게 금새 아이라의 뜻을 알아차렸다.

"예. 그럼 챠오챠오가 근무하던 곳을 둘러보시겠습니까?"

홍보부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아이라와 린을 방송국으로 안내했다.

방송국 건물은 조금 전에 둘러보았던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묵는 기숙

사와는 정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조명은 밝았고, 복도는 넓었고,

방향제인지 아니면 소독약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의 냄새가 은은하게 풍

겼다. 복도에는 무장한 경비병들이 날카로운 눈매를 색안경으로 감춘 차

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들 사이사이로 청소부들이 부지런히 바닥을

닦아내고 있었다.

"챠오챠오는 하급 관리원이었습니다. 그냥 서류나 좀 나르고 복사를

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비밀 문건

이나 대외비 문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홍보부장은 잠시 머뭇거렸다.

"...반란군과 접촉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반란군이 포섭했을지

도요. 아. 이건 순전히 제 사견입니다. 사실 챠오챠오와는 일한 부서가

달라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거든요."

"하급 관리직원이 그렇게 쉽게 비밀 문건에 접촉할 수 있었다는 건가

요?"

아이라의 반문은 그저 수사관의 관성에서 나온 건 아니었다. 아이라는

사실 그 문건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몇 번을 돌려

물으면 문건의 내용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리라는 게 아이라의 계산이

었다.

"아. 하급 관리직원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문건과 복사본은 파기

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관리들이 그 과정을 게을리 한 모양

입니다. 지금 챠오챠오 사건 이후로 잡일은 모두 라디오 그룹의 정사원

들이 하고 있습니다. 신원조사도 전보다 훨씬 철저하게 하고 있고요. 뒤

늦게 나마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요, 부끄럽습니다만."

"복사도 한다면서요?"

"예. 하지만 복사 중에 몇 장을 더 복사한다던가 하는 건 불가능하죠.

복사기에 복사 기록이 남으니까요. 복사기에는 신원 확인장치가 마련되

어 있고, 그걸 통해서 얼마든지 통제를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문건은 어떤 종류였죠? 파기될 것이었나요? 아니면 복사 할

것?"

"죄송합니다만 잃어버린 문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규정상 말씀 드릴 수 없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라는 쉬퍼가 아마도 사전에 교육받은 내용을 그대로 읊는 게 아닌

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입니다. 여기서 챠오챠오가 근무를 했지요."

쉬퍼가 복도 중간에 있는 한 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방문에는 붉은

색 홀로그램으로 잠겨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쉬퍼는 문에 달려 있

는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말씀드렸던 수사관 님들이십니다."

문이 열리자 쉬퍼가 문을 연 쪽에게 말했다. 문을 연 쪽은 아마도 관

리부장인 것 같았다. 문에는 관리부장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오슈."

관리부장은 머리가 하얗게 샌 아마도 곧 정년이 될 것 같은 나이의 노

인이었다.

"젠장. 퇴직 며칠이나 남았다고 이런 꼴을 겪다니... 나 말요, 이래봬도

지금까지 작은 사건 사고 하나 없이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외다."

관리부장은 투덜거리면서 부장실에 있는 책상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가 그 챠오챠오라는 친구 책상이었수. 그 옆이 그 친구가 쓰던

로커. 궁금하시면 보시구려."

"저, 챠오챠오가 일하던 곳을 보고 싶은데요."

아이라의 말에 관리부장은 책상을 탕,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다.

"젠장. 누구 놀리나? 보안과다 뭐다 해서 내려와가지고는 관리부서를

통째로 날려 버려놓구선, 뭐? 이제와서 일하던 곳을 보고 싶다구?"

"저, 부장님. 이 분은..."

"젠장. 저 책상하고 로커도 당장 가져 가! 다 필요 없으니까. 이렇게

한직에 쫓아 놓으면 내가 못 돌아갈 것 같아?"

"부장님!"

홍보부장은 대단히 당황했는지 지나치게 큰 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아마도 아이라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아이라는 의연했

다.

"괜찮아요. 이런 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관리부장님. 섭섭하

시겠지만 이게 제 직업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아이라는 딱딱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곤 린을 책상과 로커 앞으로 데리

고 갔다.

"기숙사에는 별 물건이 없었어요."

"저런. 단서가 될만한 물건이 없었군요. 이거 참 이모저모로 힘 많이

드시겠습니다."

홍보부장은 얼른 대꾸하곤 관리부장에게 다가가 뭐라고 설명을 시작했

다. 아마도 사내에 있는 보안팀과 아이라가 얼마나 다른 부서에서 일하

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일은 아이라의 관심 밖이었다.

책상 서랍과 로커를 여는 순간 아이라는 눈에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의 초점을 맞출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

었던 것이다. 완전히 비어있는 서랍과 로커를 앞에 두고, 린과 아이라는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기숙사에는 공책 하나 뿐이었어요. 여기에 오면 뭔가 다른 물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혹시 보안팀이 가지고 갔나요?"

아이라가 묻자 관리부장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마도 홍보부장

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 챠오챠오란 녀석이 전부 다 가지고 가버린 게지요.

예. 거기에 녀석의 물건들이 있었습니다만, 하나도 남김없이 가지고 갔습

니다."

관리부장은 벌게진 얼굴을 하고서 쩔쩔매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태도

는 시경의 힘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포레스트 회장의 힘일 거

였다. 아이라는 씁쓸해졌다.

"저, 남아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나머지는 관리부를 정리하면서 다 없

어졌...습니다."

홍보부장은 난처해하면서 말했다. 아이라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

해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린. 책상하고 로커를 한 번 만져볼래?"

아이라는 린에게 이렇게 물었고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책상을

옮긴이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을 공산이 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6 -

"...포미사이드 레이스들이 많이 모여있어."

린은 어른의 눈을 하고서 멍하니 말을 이었다. 아이라는 황급하게 녹

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챠오챠오의 집기. 라디오 방송국."

"바쁘게 움직여. 물건을 올리고, 막 끌고 가고 있어."

"포미사이드 레이스는 입에 달려있는 무시무시한 턱으로 물건을 나르

죠."

"쉿!"

중간에 끼여든 관리부장에게 아이라가 조용히 하라고 신경질 적인 신

호를 보냈다.

"무슨 방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어... 다리가... 다리가 긁혀."

"이 책상 어디에서 온 건지 알 수 있나요?"

아이라가 낮은 목소리로 재빠르게 물었다.

"어디 기록이 있을 겁니다.."

홍보부장 쉬퍼는 이렇게 말하곤 관리부장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만나고 있어. 은색의 털... 카니데 레이스. 뭔가 이야기를... 휴먼 레

이스 언어."

린은 피곤한 모양이었다.

"더 없어. 너무 복잡해."

"잘했어, 린."

아이라는 녹음기 버튼을 껐다. 린의 컨디션이 좋았다면 더 많은 정보

를 얻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라는 그보다는 린이 피곤하지 않게 일을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책상은 스튜디오에 있다가 관리부로 옮겨진 것입니다. 챠오챠오가

직접 옮긴 것 같은데요."

관리부장이 장부를 들어서 보이며 말했다.

"스튜디오에서 포미사이드 레이스들이 일을 바쁘게 하고, 또 카니데

레이스를 만날 수 있는 게 가능한가요?"

홍보부장과 관리부장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카니데 레이스가 이곳에 온 적이 있나요?"

관리부장이 홍보부장에게 물었다. 도움을 청하는 조난자 같은 태도였

다.

"글쎄요. 예전에 카니데 레이스가 스튜디오에 온 적이 있긴 합니다

만..."

홍보부장이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빌리였나요?"

"예."

아이라는 린이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로 왔었죠?"

"견학... 이었습니다. 포레스트 회장님께서 배려 해 주셨던 거죠."

홍보부장은 '님'이라는 발음을 아주 분명하게 했다.

"와서 한 일은요?"

"스튜디오에서 녹음 스튜디오를 둘러봤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방송

하는 걸 앉아서 지켜보다가 바로 갔거든요."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스튜디오로 가죠."

"그렇게 하죠. 관리부장님.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 뭐, 별 말씀을. 경사 님, 어떻게 도움이 되어 드렸나 모르겠네

요."

관리부장이 황급하게 나서며 말했다. 아이라는 관리부장을 무시하고

홍보부장과 함께 관리부장실을 나섰다.

"저! 경사 님! 이 책상하고 로커는 어떻게 하죠?"

"그냥 두세요. 나중에 다시 올지 모르니까."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다시 올 생각은 없었다. 관리부장은

책상과 로커를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아이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라는 물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는 녹음 중이었다. 아이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방송이 녹음되는 스튜디오를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

다.

스튜디오는 커다란 스튜디오 실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실은

방음장치가 되어있는 이중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는 스피

커와 엠프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는 조종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

고 그 앞쪽으로 방송 스튜디오가 있었다.

스튜디오에는 창문 하나 없어서 공기가 탁했다. 환기장치가 되어 있기

는 한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탁한 공기가 완전히 맑아지지는 않았

다. 만약 정전이 되거나 해서 불이 꺼진다면 스튜디오는 온통 어둠 속에

빠져 버릴 것이었다.

아이라의 눈에 방송 스튜디오는 방음 시설이 되어있는 심문실처럼 보

였다. 거대한 유리로 내부를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도 그랬다. 물

론 안 쪽에서도 밖이 잘 보인 다는 점은 다르겠지만.

"방송 들어보신 적 있으시지요? 모든 방송은 여기서 녹음을 합니다."

"그렇군요."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건 휴먼 레이스였다. 그 휴먼 레이스는 헤드폰

을 쓰고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고, 그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밖에 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듣고 방송 내용을 통제하지요."

"예."

스튜디오 밖에는 여러 장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아마도 감독으로

보이는 휴먼 레이스가 장비 앞에 앉아 이것저것을 움직여 보고 있었다.

"...다음 들으실 곡목은 피스톤 클럽의 발뒤사르 소나타입니다. 이 곡은

저희 라디오 방송국에서 직접 녹음 해 온 것입니다. 피스톤 클럽은 웨이

팅하우스 71번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스튜디오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이어 스

튜디오 전체에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 맞습니다. 무슨 생각하시는 지 알아요. 아직은 규모에 비해서 방

송 내용이 별로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라디오를 듣는 시민은

많지만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죠. 지금 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은 피스톤 클럽에서 약간의 광고비를 받고 제공하는 거긴 합니다만

전체 라디오 방송국을 경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라디오 방송국은 지금 적자상태입니다."

아이라는 묻지도 않은 말에 설명을 하고 있는 홍보부장 덕분에 자신이

정말로 그런 의문을 품었던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라디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 전체에,

그리고 더 나아가 행성 어스 전체에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

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아이라는 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공익광고를 생각했다. 거대한 광고판

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였다.

"예. 정말 앞으로 주목받는 사업이 되겠군요. 그런데 그 카니데 레이

스, 그러니까 빌리는 와서 여기서 뭘 했나요?"

홍보부장 쉬퍼는 역시 빠르게 아이라의 말을 이해했다.

"이곳에 있는 장비들을 둘러보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홍보부장이라 빌

리의 안내를 맡았었지요. 그런데 빌리 그 친구, 보석 중에 도망쳤다고 들

었습니다. 사실 전 빌리가 우리 직원을 공격했다는 말을 듣고 놀랬지요.

상당히 온순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온순한 카니데 레이스도 이빨은 날카로워요."

쉬퍼는 아, 그렇군요 하고 마치 대단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과장된

소리를 내고는 아이라를 스튜디오 이곳 저곳을 둘러보게 했다.

"챠오챠오는 여기서 빌리를 만났을 겁니다. 챠오챠오는 주로 이곳과

관리부장실을 오가면서 심부름을 했거든요."

홍보부장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아이라도 린도 홍보부장의

말은 별로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다. 린에게는 린 나름대로 일하는 방식

이 있었다. 그건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뭐든 만져본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물건에 남아있는 기억이라는 건 정확한 것도 아니었고 말로 쉽

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린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물건을 만

진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라, 물건이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범인이

사용한 흉기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용의자가 지나쳤

을 것으로 예상되는 길에 떨어져 있는 작은 전단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

견하는 일도 흔했다.

"스튜디오."

아이라가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린은 마이크를 잡아보기도 하고, 테이블을 손으로 훑고 지나가 보기도

하고, 또 의자와 책상을 흔들기도 하면서 스튜디오 안을 헤집고 다녔다.

누가 본다면 방송국에 놀러온 꼬마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일 장면이었

다. 다만 녹음 스튜디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방송 중이었던 것이

다.

"사실 좀 난처합니다. 방송 중에, 그것도 이런... 수사관들이 자꾸 오고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프로듀셔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며 노골적으로 아이라 일행에게 적대

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아이라는 막무가내였다.

"다음 노래 한 곡 나올 동안 만이에요. 린, 그렇지?"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보고 안심할

휴먼 레이스는 악동을 만나 본 적이 없는 휴먼 레이스뿐일 거였다. 프로

듀서는 10살 된 아들과 8살 된 딸이 있었다.

"좋습니다. 대신 저도 함께 들어가지요."

프로듀서는 보조에게 자신의 헤드폰을 넘기곤 이렇게 말했다. 녹음 스

튜디오 안에 있던 휴먼 레이스는 일부러 긴 곡을 고른 뒤 수사관과 프로

듀서를 맞이했다. 그리고 린은 한참 동안 녹음 스튜디오 안에 있는 물건

들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 보았다. 하지만 린은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노래는 끝이 나 버렸다.

아이라는 곡이 끝나기 전에 린과 함께 녹음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아

무 성과도 없었다. 게다가 린은 대단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린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린이 느낄 수 있는 기억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린이 조사할 수 있는 물건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린을 이용한 조사는 여기에서 마쳐야 했다. 아직 둘러 볼

곳은 많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도움이 되셨는가 모르겠습니다."

홍보부장은 대단히 정중한 태도로 아이라에게 말했다. 아이라는 이런

종류의 태도가 결코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

다.

"예."

아이라는 간단하게 이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 성과도 없기는 했지만, 일단 아이라는 이곳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빌리와 챠오챠오가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챠

오챠오가 일터에서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도. 하지만 그 뿐이었

다. 빌리와 챠오챠오는 무슨 목적으로 만났던 걸까? 여기서 처음 서로

만났던 걸까? 자주 만났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기밀 사항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빌리가 챠오챠오를 포섭한 걸까? 아니면 그 반

대? 아이라는 머릿속이 온통 복잡했다.

일단 빌리와 챠오챠오와의 관계는 포레스트 회장에게 다시 들어봐야

할 것 같았고, 지금 당장은 라디오 공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린. 많이 피곤하니?"

"아니. 괜찮아."

린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피곤하다고 해도

아이라는 라디오 공장으로 린을 데리고 갔을 거였다. 어찌되었건 시간이

없었다.

아이라와 린은 공장으로 가는 길 또한 라디오 그룹의 간부용 캡슐을

이용했다. 아이라는 눈을 감고 사건을 차곡차곡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빈 구석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장 큰 빈 구석은 바로 그 기밀 문서였다. 과연 무슨 내용이 적혀 있

을까?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포레스트 회장은 그 내용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리고 반란군은 왜 그 기밀 문서를 손에 넣으려고 할까. 만약 손

에 넣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이라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의문점은 린의 한마디에 끊어졌다.

"누구지?"

린은 의자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누가 앉았었어."

"린. 지금은 하지 않아도 된단 말야."

아이라는 린이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린은 아

이라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 그 포미사이드 레이스하고 카니데 레이스 관련된 정보만 얻으

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말야..."

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앉았던 건 휴먼 레이스였어. 그리고 그 휴먼 레이스는 여기 앉

아서 우리를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

"아이라. 린."

린이 말했다. 아이라는 순간 머리카락을 타고 전류가 두피를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린의 말은 미행이 있다는 말인 것이다. 포레스트 회장이?

하지만 무슨 이유로? 혹시 반란군이? 반란군이 라디오 그룹에? 미행이

라는 단어는 어쩐지 카니데 레이스를 연상시켰다. 카니데 레이스야말로

미행에는 적역이었다. 휴먼 레이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발달

된 후각은 카니데 레이스만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린은 휴먼 레이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간부일텐데. 간부가 내부 조사를 직접하기도 하던가?

아이라는 일단 미행자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공장

에서의 수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였다.

라디오 공장은 라디오 그룹 사유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기숙사가 있

는 동쪽 끝에서 완전히 정 반대쪽인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본관

사옥과 방송국은 중앙 쪽에 가까웠다. 아이라는 캡슐의 레일 아래로 보

이는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라디오 그룹의 부(富)를 실감했다. 이렇게 넓

은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는 시의원은 행성 어스 전체를 통틀어 몇 되지

않을 거였다. 이런 부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게다가 아무 소용

도 없을 것 같은 물건을 발명해 놓고는 라디오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에

엄청난 투자를 할 수 있을 부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아이라

는 계속 되는 의문에 머리를 도저히 식힐 수가 없었다.

캡슐이 공장 건물 앞에 멈추어 섰을 때, 아이라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지 않았다. 아이라가 멈추어 서자 린이 아이라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 아파?"

린이 물었다. 아이라는 가볍게 한숨을 토해내곤 캡슐 스테이션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잠깐 쉬었다가 가자."

아이라가 말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리하는 동안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라는 수사를 계속하기 전에 해

결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간부용 캡슐이 정확하게 4대가 스테이션을 지나쳤다. 그것들은 모두

비어있었고, 아이라는 그 동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5번째

캡슐이 도착했을 때, 아이라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는 거야?"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놀고 있던 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누굴 좀 만나고 나서."

아이라가 말했다.

캡슐이 열리자 정장을 차려입은 휴먼 레이스가 캡슐에서 내렸다. 백발

에 가까운 머리에 꾸부정한 허리를 하고 있는 휴먼 레이스였다. 휴먼 레

이스는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포레스트 회장한테 전해 주세요."

아이라는 백발의 휴먼레이스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백

발의 휴먼 레이스는 뭔가를 마음속에서 포기했는지 태도에 여유를 되찾

았다.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어요. 그리고 진행 상황이 궁금하시다면 제가

매일 보고 올리겠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언제 눈치챘습니까?"

백발의 휴먼 레이스가 말했다.

"알 필요 없잖아요? 당신은 포레스트 회장의 명령에만 따르면 되니까.

미행이 들켜서 혹시 곤란해진다면 너무 걱정 마세요. 내가 포레스트 회

장한테 잘 말해 줄 테니까."

아이라의 말이 끝나자 백발의 휴먼 레이스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라는 일단 그것이 일종의 허세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곧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발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당

했다.

"절반만 맞았군요. 뭐, 나름대로 타당한 추리이긴 했습니다. 아이라 경

사."

백발은 이렇게 말하며 아이라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헤드헌

터, 로웰'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식 명함이군요. 전화번호 하나 뿐이고."

"예. 전 옛날 방식을 선호하거든요."

아이라는 명함과 로웰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헤드... 헌터?"

"인재를 찾는 일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총칭하는 말이죠.

우리는 적당한 인재를 찾아서 그 인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소개시켜 주

는 일을 합니다."

로웰이 여유 만만한 웃음을 띄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잠시 생각

을 하는 듯 하더니 로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제가 맞춰볼까요?"

아이라는 로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로웰은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라의 눈길을 받아내었다.

"당신은 헤드헌터가 아니에요. 그렇죠?"

로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끼면서 어디 한 번 끝까지 말해

보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이라는 말을 이었다.

"공무원이에요, 당신은. 아마 로웰이라는 이름도 가명이겠지요. 전에

군대나 경비대에 있었던 적이 있어요. 전투에도 참가한 적이 있고. 지금

은 비정상적인 임무를 수행중이고요. 아마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겠죠. 그

렇죠?"

"생각한 것 보다 뛰어나군요, 아이라 경사."

아이라의 말을 끝까지 들은 로웰이 이렇게 말했다.

"절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아. 아닙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어떻게 알았죠?"

"당연하지 않아요? 민간인 헤드헌터라면 어떻게 라디오 그룹의 사유지

에서 간부용 캡슐을 타고 다닐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공무원이

죠. 다른 도시에서 온 그룹의 간부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태도

가 너무 당당했어요. 그리고 방송국에서는 제가 뭘 했나 알아 본 거죠?

아. 그러고 보니 내 능력을 테스트하고 있었나 보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군인이나 경비대 이야기를 한 건 왜입니까?"

"걷는 모양을 보고 알았어요. 제가 있던 하이하버에는 은퇴한 용병이

나 군인들이 좀 있죠. 그 친구들이 그렇게 걷거든요. 아. 그 친구들은 모

두 상이 군인 들이에요. 당신처럼."

"그렇군요."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감탄한 모양이었다.

"아마 허리나 골반, 아니면 다리를 다치셨죠? 그리고 대 수술을 받았

고요. 인공 조직을 이식 받았을 거예요, 아마. 그러니까 그렇게 꾸부정하

게 걷죠."

"맞습니다. 아이라 경사."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는 로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숙이

고 사과를 하던가, 아니면 적어도 부끄러워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로

웰은 조금도 태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헤드헌터라는 건 위장이죠. 사실 전 임무 수행 중이거든요."

로웰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7 -

"절 감시하는 게 임무예요?"

아이라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일단 되는대로 추리를 해 보긴

했지만 사실 아이라는 로웰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 자신의 추리를 늘어 놓는 건 상대방에게 경계심만을 줄

뿐이다. 하지만 아이라가 이렇게 무리하게 이야기를 한 것은 상대가 공

무원이라면 이 정도의 말에 자신의 정체를 밝혀 줄 것이라고 믿어서였

다.

"여기까지만 하죠. 천천히, 하나하나 씩."

로웰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도 대인관계는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렇

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네요."

아이라는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면서 상대를 도발하는 투로 말했다. 하

지만 로웰에게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다시 보게 될 겁니다."

로웰은 이렇게 말하며 뒤돌아 섰던 것이다.

"서요."

아이라는 짧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라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로웰

은 일단 걸음을 멈추었다.

"등을 함부로 보이는 걸 보니까 제대한지는 오래 되셨나 보군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웰은 여전히 여유 만만한 얼굴

을 하고 아이라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아군에게는 등을 돌린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등을 맡긴다고 하죠."

"어디 소속인지 말 해 줘요. I.A(Internal affair, 감사반)에서 이제는 군

인도 쓰나요?"

아이라의 물음에 로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르겠다는 건지, 아니라

는 건지 아이라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동작이었다.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죠?"

로웰은 의외로 아이라에게 역공을 가했다. 아이라는 잠시 대꾸할 말을

잃었다.

"추적은 힘든 일이죠. 아, 저보다야 현역 경사가 훨씬 많이 알테지만

요."

"그게 로웰, 당신 임무하고 상관 있나요?"

"아이라 경사와 상관 있는 건 나하고도 모두 상관 있습니다."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아이라 경사. 당신은 훌륭한 수사관이에요. 3년이라는 짧은 경력에 그

정도의 실력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내가 이런 말한다고 해서 기

분 나빠하지 말아요, 아이라 경사. 그냥 인생 선배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

해 주면 좋겠는데. 숲에서 길을 잃어 본 적이 있나요? 하긴, 요즘은 숲

구경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아이라는 로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노련한 여행자라면 나이테를 보고 방위를 짐작할 수 있지요. 나이테

는 남쪽으로 넓게 벌어져 있거든요. 남쪽에서 햇빛을 많이 받으니까 남

쪽으로 많이 자라서 그런 거지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아이라는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지만 로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

었다.

"하지만 이론상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나이테를 보고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나이테는 나무에 숨겨져 있으니까요.

게다가 나이테는 가끔 정 반대 방향을 남쪽이라고 알려 주는 것 같기도

하지요. 지형에 따라서요. 어쩌면 많은 나무를 잘라 봐야지 방향을 짐작

할 수 있을 수도 있어요. 수사라는 건 이것과 비슷하지요."

아이라는 자신이 방향을 잃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

단계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이 있었고, 너무나도 많은 빈곳이 있었

다. 아이라는 그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에는 알게 됩니다. 그 모든 나무들이 사실은 남쪽을 가리

키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아이라. 하나 하나 정보를 모아 보세요. 모든

정보들은 분명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 기밀 문서 때문이군요."

아이라가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군이 관여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 정보를

알게 될까봐 감시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죠?"

아이라의 물음에 로웰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이라 경사. 하지만 그것도 한 방향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나무 중에는 위험한 나무도 있어요, 아이라 경사."

로웰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라에게 말했다. 이건 틀림없는 경고였다.

아이라는 더 이상 로웰에게서 정보를 얻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런 상황에서 군인에게서 기밀을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

지였다.

"그럼 건투를 빌어요."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아이라를 앞질러서 꾸부정한 걸음으로 아이라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무슨 말 한 거야?"

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아이라는 진짜로 넓은 숲 속에 갇혀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이다.

아이라가 라디오 공장을 찾은 이유는 트럭 때문이었다.

포레스트 회장의 말에 따른다면 챠오챠오는 비쵸라는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비쵸는 트럭을 불태웠고, 트럭의 잔해는

공장으로 회수되었다. 아이라는 트럭에서 뭔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불에 탄 물건은 보통의 물건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분분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이라

는 경험상 불에 탄 물건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알고 있

었다. 아이라는 그것이 물건에도 어떠한 종류의 감정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학자들이나 트랜스 연구자들이 들었다면 틀림없이 비웃

었을 내용이지만 아이라는 어쩔 수 없었다. 린을 통해서 본 물건들은 생

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건들은 웃고 울었고, 기뻐하고 분노하였

고, 불에 타거나 잘리게 되면 더 많은 정보를 린에게 알려 주었다.

아이라는 공장 입구에 서서 문득 로웰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로웰이

말하길, 나무는 몸 속에 나이테를 숨기고 있다고 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트럭은 무엇을 몸 속에 담고 있을까.

공장에서 나온 건 공장 간부가 아니라 포레스트 회장의 보안요원 중

하나였다.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있는 보안요원은 아이라에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보안 서약서입니다."

딱딱한 사무적인 말투였다. 아이라는 서류를 훑어보았다. 이 공장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밖에 나가 일체 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

였다.

"수사관도 이런 걸 써야 하나요?"

"여기 규칙입니다."

보안요원은 딱딱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서명을 했다.

"이 친구는 제 일행이고 미성년자니까 제가 책임 질 게요."

아이라의 말에 보안요원은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서약서를 들고 아

이라를 안으로 인도했을 뿐이었다. 아이라는 보안요원의 가슴에 달려 있

는 명찰을 보았다. 명찰에는 체커라고 적혀 있었다.

"체커?"

"예."

보안요원이 말했다.

"본명인가요?"

보안요원은 아무 표정도 없이 아이라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

다.

"친해지긴 어렵겠군요, 당신하고."

아이라가 말했다.

보안요원이 인도한 곳은 공장 내부였다.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들이 분

주히 중장비를 통해 옮겨지고 있었고, 작은 상자들이 포미사이드 레이스

에 의해 이동되고 있었다. 컨테이너벨트들은 뭔가를 분주히 나르고 있었

고 그곳에 달라붙어 있는 포미사이드 레이스들은 정신없이 물건들을 검

사하고 옮기고 또 버리고 있었다.

아이라는 보안요원을 따라가면서 공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여

기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셔틀을 통해 행성을 떠나고 있었고, 또한 셔틀

에서 싣고 오는 물자들은 여기로 모이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엇이 만들

어지는지, 또 이곳으로 모이는 제료들이 무엇으로 바뀌는지 아는 휴먼

레이스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시경에서는 그랬다.

아이라가 컨테이너벨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보안요원 체커가 아이라

를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그 쪽으로는 가실 수 없습니다."

보안요원이 말했다. 아이라는 컨테이너벨트를 지나고 있는 포미사이드

레이스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포미사이드 레이

스는 턱을 사용해서 몹시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보안요원은 그 포미사이드 레이스에게 손짓했고, 그러자 얼른 아이라의

눈을 피하곤 다시 상자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이곳에서 무엇

이 만들어 지고있는지 알아내는 건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보안 사항이

라면 틀림없이 군수품이겠지만 당장 이곳에서 해야할 일은 트럭을 조사

하는 것이었고, 그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보안요원 체커의 기분을 상하

게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라는 제조라인을 지나서 공장 구석 자리에 번들거리는 방수천으로

덮여 있는 트럭 앞에 섰다.

"이겁니다."

체커가 말했다. 아이라는 천을 조금 들어보았다. 불에 그을린 트럭의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석유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15톤 트럭. 분리형 캐터필더 장착. 불에 타서 원형은 상당히 훼손 된

상태임. 이게 현장에서 발견된 원형 그대로인가요?"

아이라는 녹음기를 켠 상태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지시로 일단 여기에 옮겨 두었습니다."

보안요원이 말했다.

"조사해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온 걸요. 린."

아이라가 트럭 조종석의 문을 열면서 말했다. 문에서 재가 떨어져 내

렸다. 아이라는 린을 안아 올려 트럭 조종석에 밀어 넣어 주었다. 린도

냄새가 고약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린은 조종석을 만지작거렸다. 린의 손바닥에 시커멓게 타다 남은 재가

묻어나고 있었다.

"뜨거워. 아주 뜨거워."

"화재가 있었음."

아이라는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물론 아주 맥빠진 소리였다.

"웃고 있어. 둘이야. 둘 다 두건을 쓰고 있어... 하나는 집게발."

"침입자가 둘이라는 정보는 옳았던 것 같음. 복장은 두건인 듯. 하나는

비쵸. 또 하나는... 신원불명."

아이라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정보는 전혀 없었다.

"짐칸을 조사해 보겠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짐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안요원 체커

는 순순히 뒤쪽 짐칸을 열어 주었다. 짐칸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라는

린을 안아 올려서 짐칸에 넣어 주었고, 린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로

짐칸 벽면을 만졌다.

"상자가 가득 있었어."

"안에 들어 있던 화물은 도난 당한 건가요, 아니면 치운 건가요?"

아이라가 체커에게 물었다. 체커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안 때문인가요?"

체커는 아이라의 눈을 피했다.

"...수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이라는 녹음기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 쏟아져내려... 구슬, 아니 모래알 같은 게 가득

들어있어. 그리고 한 상자에는 바늘이 들어있고."

아이라는 보안요원을 바라보았다. 보안요원은 조금은 당황하는 듯 보

였다. 아이라는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바늘 보양의 군수품이 무엇인지 쉽

게 알 수 있었다. 어깨 밑에 있는 니들건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 공장에서 만드는 건 니들탄이로군요?"

"죄송합니다만, 보안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황급하게 체커가 대답하기는 했지만 이 말은 사실을 시인한 것이나 다

를 바가 없었다.

"어쩐지. 시경에서도 구경하기 어려운 니들건을 지급해 줄 때부터 알

아봤어야 했는데. 라디오 공장은 니들건을 조립하고 있었음. 트럭에는 니

들탄의 재료가 되는 것이 실려있었던 것으로 판단됨."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체커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봐요. 보안도 좋고 다 좋은데 하나만 묻죠. 제가 여기 올 거란 거

알았죠?"

"예."

"그리고 수사에 협조하라는 말도 들었을 거고요."

"예."

"그럼 하나만 말 해 줘요. 여기 짐칸에 있던 거 도난 당했나요, 아니면

공장에서 임의로 치웠나요?"

"그 사항은 보안상..."

"제가 녹음한 거 들었죠? 군수품을 만드는 게 국가기밀일 수는 있죠.

그런데 그 사실을 이제는 제가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실은 포레스

트 회장 본인에게서 직접 들은 거예요. 제가 어디 가서 라디오 공장에서

군수품을 만든다고 떠들고 다닐 것 같아요? 경찰도 보안에는 철저해요.

그리고 저는 법을 준수하는 경찰관이고. 체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에요.

도난 당한 거다, 치운 거다 한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3년 동안 수사

관 생활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다루어 본 적은 없었다. 사실

아이라가 상대한 것은 대부분 범법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수사관 신분

증 자체가 힘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고 있는 건 대기업의 사원이

었다. 이들은 무슨 수를 써도 협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협박이 되지

않는 상대로부터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답변할 의무는 없습니다."

"좋아요. 체커. 제 직속 상관이 포레스트 회장인 건 알고 있지요? 오늘

저는 보고서를 쓸 거예요. 체커라는 이름의 보안 요원이 수사를 방해했

다는 내용으로요."

"하지만 제 임무는..."

"저를 돕는 거에요."

단정적으로 아이라가 말했다. 보안요원 체커는 조금은 흔들리는 기색

을 보였다. 아이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 의무는 제 직속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보다 먼저입니다."

잠시 빈틈을 보였던 체커가 황급히 이렇게 말을 막았다. 아이라는 짜

증이 났다.

"좋아요. 그럼 공무집행 방해죄로 긴급 체포하겠어요."

아이라는 수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체커의 얼굴에는 오히려 희

색이 돌았다.

"제가 제 직속 상관에게 들은 건 체포되는 한이 있어도 보안규칙을 준

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라는 더 이상 수사를 진전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이라는 잠시 동안 막막한 기분이 들

었다. 어쩐지 들고 있는 수갑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범죄자만 너무 오래 상대하셨군요."

아이라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낸 쪽은 로

웰이었다. 보안요원은 로웰을 보자 거수 경례를 붙였다. 로웰은 가볍게

거수경례로 답한 뒤 아이라 쪽으로 다가갔다.

"이런 큰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공무원에 가깝죠. 조직이 커

지면 공무원처럼 속이 좁아지니까."

"돌아 간 게 아니었군요."

아이라는 수갑을 도로 품에 넣으면서 말했다.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 않아서 만나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솔직히 이렇게 빨리 다시 보고 싶진 않았어요."

"저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라 경사를 좀 도울 방법이 없을까 해서 온

거라고 해 두죠."

아이라는 로웰과 보안요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보안요원은 로웰이

등장하자 상당히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라디오 그룹에서 군인도 썼던가요?"

아이라가 로웰에게 물었다.

"군무원들은 있을 거예요. 저는 여기서 일하지 않아요. 다만 여기 보안

담당관하고 한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죠."

"체커의 직속상관인가요?"

"체커의 직속상관하고는 선후배 사이입니다."

나이 때문이었을까. 로웰은 말과 행동에 항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

이라는 문득 로웰 같은 휴먼 레이스가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일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아이라의 추리가 맞아요. 여기는 군수품을 만드는 곳이죠. 라디오 그

룹은 사실 군수품 납품으로 큰돈을 버는 기업이고요. 이 트럭에는 니들

탄을 만드는 재료가 실려 있었지요. 니들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

아요?"

"로웰 중령 님."

보안요원 체커가 당황하면서 로웰에게 말했다. 하지만 로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체커를 제지했다. 짐칸에 있던 린은 눈을 껌뻑이면서 로웰과

체커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중령이셨군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중령이라면 어느 정도의 위치일까 생각해

보았다. 경찰로 따지자면 총경? 경무관? 아마도 경찰 서장 급은 될 것

같았다.

"계급은 그렇죠."

로웰은 짐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니들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아이라는 로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답답한 보안요원과 이야기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단서

가 잡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였다.

"행성 어스에는 대략 십 수 개의 공업 도시가 있어요. 다들 군수품을

만들고 있죠. 라디오 공장이 있는 여기 웨이팅하우스 시도 그 중 하나고.

여기서 만드는 건 니들탄과 니들건이에요. 셔틀이나 미사일을 만드는 곳

도 있죠. 하지만 만드는 방법은 모두 같아요. 재료를 수입해다가 조립만

하는 거죠."

"그럼... 여기서 셔틀에 실어서 돔을 빠져나가는 건..."

"예. 수출품이죠."

로웰은 짐칸에 있던 린을 안아 내려주었다. 아이라는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린이 순순히 말을 듣는 건 처음 보네요."

아이라의 말에 로웰은 허허 웃음을 지었다.

"내 나이가 되면 아이들하고 친해지는 법을 알게 되죠. 아이라 경사."

"예..."

아이라는 로웰과 이야기를 하면서 로웰이 자신과는 격이 다른 휴먼 레

이스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직급으로보나 경험으로 보나 로웰은 아이라

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여기서 돔을 지나 왕복하는 셔틀을 수도 없이 봐왔어요. 그런데 셔틀

에 실려 있는 게 군수품인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이라의 일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난 알아요. 아이라가 얼마

나 임무에 충실한지."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기 짐칸에 실려 있던 건 공장 사람들이 치웠어요. 녀석들이 이 차

량을 노린 게 아니란 증거죠. 하지만 그냥 가지는 않았어요. 차량을 불태

웠죠. 무슨 의미일까요?"

로웰은 아이라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아이라는 반장이 했던 말을 떠올

렸다. 반장은 정보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서 범인의 목적은 시에 잠입해

들어가는 것이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호송차량을 발견한 것은 우연

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무예요, 아이라."

아이라가 꽤 오랜 시간동안 대답을 하고 있지 않자 로웰이 이렇게 말

했다.

"이 나무를 베어 보면 남쪽을 향하고 있는 나이테를 발견하게 되지요."

아이라는 그런 충고가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그런 말 쯤 듣지 않아도

아이라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

다. 아이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재빠르게 말을 시작했다.

"범인은 웨이팅하우스 시로 잠입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차량을

탈취했죠. 그런데 우연히 이 물자 수송차량을 손에 넣은 거고요. 그런데

막상 시 근처에 도달하게 되니까 고민이 된 거죠. 그냥 잠입하자니 자신

의 의도를 들킬 것 같고. 차량에 실려있는 물자를 들고 가자니 둘이서

운반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겠지요. 그래서 수사에 혼선을 줄 수도 있

고, 또한 자신의 의도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예요. 차

량을 불태우는 것. 그걸로 수사망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누가 알겠어요. 라디오 그룹을 싫어하는 과격단체가 저지른 짓이라

고 수사 방향이 잡혔을지도."

아이라는 숨도 한 번 제대로 쉬지 않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8 -

로웰은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주 훌륭해요, 아이라 경사. 아이라 경사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 군

요."

"실망은 아직 이르죠. 우린 이제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니까요."

아이라는 한 마디도지지 않겠다는 듯한 각오를 보이고 있는 듯 했다.

"여기 오기 전에 범인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지요?"

"탈영병이라고 들었어요. 락벳 전선에서 온."

"예. 아마 여기로 오기 전에 브리핑을 받았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어떻게 알았을까?"

로웰은 마치 무엇인가를 즐기는 듯한 얼굴로 아이라에게 이렇게 물었

다. 아이라는 로웰의 얼굴에서 마치 광기와도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아

이라는 오싹한 것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 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자신을 오싹하게 하는 이것이 로웰의 진짜 모습

이 아닐까 싶었다.

"아, 그러니까, 저는..."

아이라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체커는 둘이 나누고 있는 대

화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는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아이라와 체커를

바라보고 있는 린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보였지만 적어도 아이라가 보

기에는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린은

불안해하거나 떨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군대에는 M.I 라는 게 있어요. 들어 본 적 있어요?"

"군... 정보부?"

아이라가 말했다.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

다.

"예. 군사정보부[Military Intelligence]의 약자지요. 사실 다들 M.I를 한

직이라고 생각해요. 다 늙어서 아무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모여있는 곳

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사실 그런 점도 있어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정보를 모으고, 또 분석하고...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가

장 유용한 게 바로 이 M.I 이지요."

"전 M.I만 그런 게 아니라 군대가 다 그런 곳인 줄 알았는데요. 전쟁

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곳."

굳이 설명까지 덧붙일 이유는 없었지만 아이라는 꼭 상대의 기분을 상

하게 하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라

를 두렵게 만들고 있는 이 로웰이라는 노인과의 승부에서 밀렸다가는 알

수 없는 싸늘한 것에 아이라 자신이 잡아 먹혀 버릴 것 같은 불길한 느

낌이 들었던 것이다.

"군대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있군요. 맞아요. 전쟁이 없으면 군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죠. 하지만 전쟁이 나면 군대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지죠."

하지만 로웰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로웰의

얼굴에 약간의 노기라도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일까?

"M.I에서 근무하나요?"

로웰은 대답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실 로웰은 아이라를 대할 때 한 번도 뭔가를 속이거나 숨긴 적이 없

었다. 오히려 묻지 않은 말에도 대답을 해서 보안요원인 체커는 물론이

고 아이라까지도 당혹스럽게 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아이라는 지금 이

소리 없는 답변이 로웰이 처음으로 아이라에게 솔직하게 대답한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군인입니다."

로웰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농담

이었을 테지만 아이라는 웃을 기분이 통 들지를 않았다.

"M.I 에서는 어떻게 알았나요, 로웰 중령님?"

아이라는 또박또박하게 로웰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라는 여전히 로

웰과 뭔가를 두고 겨루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예. 어떻게 그 비쵸 라는 존재와 신원 미상의 존재를 알았는지 이야

기해야 겠군요. 우리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파손된 호버카를 한 대 발견

했죠. 선탑자는 아이반 소령이었고, 호버카를 몰던 조종사처럼 니들건에

죽었어요. 근거리에서 쐈죠."

"저도 봤어요."

아이라는 반장에게서 브리핑을 받았던 내용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곳에서 MI 요원들은 트럭운전사였던 비쵸의 시신을 발견했죠. 거의

대부분 먹어치운 후였지만 그래도 어떤 독을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은 남아있었습니다."

"저도 비쵸가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락벳 전선에서 탈영한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와 이곳에서 트

럭 운전사를 독으로 죽인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가 동일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데 몇 가지 유용한 분

석 방법을 알고 있어요. DNA 분석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어요?"

"글쎄요."

아이라는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른다고 말했다가는 로웰이 친절

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아이라의 마음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M.I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죠. 모든 생명체에는 그 생명체 고유의

기록이 있어요. 어떤 레이스인지. 무엇을 하는 레이스인지 알 수 있는 기

록."

"...지문처럼?"

"비슷해요. 하지만 지문은 손가락에서밖에 얻지 못하지요? 하지만

DNA는 머리카락 한 올이나 피 한 방울에서도 얻을 수 있어요. 아. 물론

신경에 작용하는 스코르피언디아 고유의 독액에서도 얻을 수 있죠."

"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군에서 사용하는 기술들은 대부분 비밀이죠.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가 세었군요. 하여간 M.I는 DNA를 가지고 M.I에서 보유하

고 있는 모든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의 DNA와 대조해 보았죠. 손으로

일일이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꽤 유용한 연산장치들을 보유하

고 있으니까요."

아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로웰이 점점 더 크게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

았다. 이러다가는 아이라가 염려한 대로 로웰에게 빨려 들어갈지 몰랐다.

아이라는 혀가 입 속에서 마르는 걸 느꼈다. 차가운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

"대단... 하시군요."

아이라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이라는 이

제 인정해야 했다. 로웰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라도 경험이 쌓이고 직책이 높아진다면 로웰

과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될지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로웰이 자신의 의지를 잡아먹지

않도록 처신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M.I에서는 누구나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경찰이 하는 일

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경찰은 평화를 유지하지만 M.I는 평화를 지키

거든요."

로웰의 얼굴에 다시금 냉기가 흘렀다. 아이라는 말라붙은 목구멍으로

침방울을 삼켰다. 하지만 삼킬 수 있는 것은 건조한 느낌뿐이었다.

"평화를 지키는 일이 보람있으신가 보죠?"

로웰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아마 쓸만한 단어를 고르

는 모양이었다.

"난 현장 체질이에요. 사실 중령이면 사단 참모가 되어서 책상을 지키

거나 군단사령부나 군사령부에서 정보 장교랍시고 하루종일 서류만 검토

하는 일을 맡게 되죠. 그런데 난 앉아서 서류나 검토하기는 싫거든요. 그

래서 이렇게 현장을 돌아다니곤 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아이라

같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만나기도 하고요. 이런 게 보람이라면 보람

이겠죠."

"군사령부에서 정보 장교 일을 하시나요?"

"그것보다는 좀 복잡한 일이에요. 사실 높은 데 있는 장군들은 날 별

로 좋아하지 않아요. 진급도 잘 안 시켜 주고. 현장에서 뛰어 다니는 일

은 사실 초보자라도 얼마간의 교육만 받으면 할 수 있지만 책상에 앉아

서 현장을 지휘하는 일은 많은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많은 경험

을 쌓은 중령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좋아할 턱이 없죠. 내 생각에

는 내 몸에 휴먼 레이스의 피가 흐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직접 눈으

로 확인하면서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게 휴먼 레이스의 본성이 아

닐지. 아마 로즈웰 레이스가 휴먼 레이스를 용병으로 삼은 건 그런 이유

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라는 로웰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휴먼 레이스가 로즈웰

레이스의 용병으로 끌려갔던 역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라는 의문

을 가져본 적은 없는 아이라였다. 하지만 지금 로웰의 말을 들으니 로즈

웰 레이스는 왜 굳이 휴먼 레이스를 용병으로 삼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었다.

"정말 그럴까요?"

아이라는 꼭 자신도 지금껏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듯한 투로 로

웰에게 말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동원하기 적당

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요. 전투에 효과적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것

같고요."

로웰은 이렇게 말하면서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았다.

"그 호버카를 한 번 조사해 보는 게 어떨 것 같아요, 아이라 수사관?"

"예?"

아이라는 로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얼른 이렇게 되물었다가 이

내 곧 로웰이 말한 것이 파손된 호버카를 말한다는 걸 알아 차렸다.

"아. 그렇죠."

꼭 다음 번 차례가 그 호버카를 조사할 차례라는 듯이 아이라는 이렇

게 덧붙였지만 로웰은 물론이고 체커도 이것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호버카는 이곳 웨이팅하우스 시의 군부대에 보관되어 있어요. MI 지

부가 관리하고 있거든요. 그럼 같이 갈까요?"

"저, 그렇지만..."

"아. 보고서 때문에 그러는가 보군요. 걱정 말아요. 포레스트 회장도

내 존재 여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여기 체커도 알고 있고. 염려 할 건

없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는 로웰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와는 달리 이렇게 말하는 로웰은 뭔가를 지나치

게 하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 로웰 중령님."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이대로 고분고

분히 로웰을 따라간다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 뵈었으면 좋겠는데요, 저는. 오늘이 첫날이어서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또 여기 린도 너무 많이 트랜스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였고 다행히도 린은 아이라의 뜻을 알아차렸다.

만약 린이 '괜찮은데?'하고 말했다면 아이라는 어쩔 수 없이 로웰을 따라

나서야 했을지 몰랐다.

"좋아요."

로웰은 아무 문제될 것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런 로웰의 말이 너무나도 가식적으로 여겨졌다. 분명 로웰은 뭔가를

숨기고 있어. 아이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라의 수사관으로서

의 직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 내일 뵙지요. 오늘은 저도 다음 일이 있어서."

로웰은 고개를 숙여 아이라에게 인사를 하고는 예의 그 꾸부정한 걸음

으로 공장을 빠져나갔다. 아이라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로웰은 분명 아이라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로웰의 행동은 기본적

으로 호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고, 적극적으로 수사를 돕는 고마운

행위였다. 하지만 아이라는 어쩐지 그런 로웰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분명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라는 린과 함께 공장을 빠져 나왔다. 어느 사이 해가 공장 건물의

저편으로 지고 있었고, 건물 위로는 붉은 노을이 감돌고 있었다.

로웰과의 약속을 생각하자 아이라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로웰은 나이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것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아이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집으로 가는 거 아냐?"

린이 말했다. 아이라는 웃음을 지으며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나이테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방위를 알게 된

이후에야 그것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린이 집으로 가는 게 아니냐고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시경 기숙사로 향하는 캡슐 스테이션 쪽으로 갈 뻔했다. 오늘부

터 분명 자신의 숙소는 라디오 그룹의 본관 건물 2층이었다.

본관 건물의 안내원은 아이라를 알아보고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아이

라도 역시 정중하게 답례했다. 휴먼 레이스가 아닌 다른 레이스가 하는

휴먼 레이스 식 인사는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저, 2층 제 숙소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경비병이 안내 해 드릴 겁니다."

포미사이드 레이스 안내원이 말했다.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싶을 정

도로 단정한 말투였다. 아이라는 더 묻는 걸 포기하고 엘리베이터 쪽으

로 걸었다. 엘리베디터 앞에는 경비병이 서 있었다. 교대를 했는지 나올

때 본 경비병과는 다른 경비병이었다. 경비병은 깍듯하게 아이라에게 경

례를 붙였다. 아이라는 반사적으로 거수경례로 답하긴 했지만 경비병이

왜 거수경례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경비병에게 군 소속이나고 묻고

싶었지만 가면을 쓴 것처럼 굳어있는 얼굴을 보니 차마 질문을 던질 엄

두가 나질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2층에서 멈추어 선 다음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아이라는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의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내리십시오."

딱딱한 군대식 말투로 경비병이 말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

렸고, 그 뒤로 또다른 문이 하나 보였다. 경비병이 문을 열어주자 짧은

복도와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저 문을 여시면 숙소가 나옵니다. 편안한 휴식 취하시길 빌겠습니다."

아이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런 공간을 숙소로 정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이라는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다. 문은 아이라가 손을 대자마

자 자동으로 열렸다.

"와."

린이 탄성을 내었다. 아이라의 방은 기숙사에 있던 아이라의 방을 통

째로 옮겨놓은 듯 했다. 책장과 침대는 물론이고 바닥까지도 예전의 기

숙사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포레스트 회장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건 이런 걸 의미한 모양이었다. 아이라는 방에 있는 작은

물건도 제자리에 놓여 있는 걸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라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이 열리면서 포레스트 회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이라는 거수

경례를 할지 목례를 해야할지 망설였다.

"수사는 잘 진행 되었나요?"

포레스트 회장은 인사를 받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정장을 입고

천천히 다가오는 포레스트 회장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라는 약

간의 질투심을 느꼈다.

"보고서는 오늘밤에 작성하려고 했어요."

"아뇨. 작성하지 않아도 좋아요.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로웰... 한테서 보고 받으셨나요?"

아이라는 짐작 끝에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 회장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웰을 만났다는 보고를 받았지요."

포레스트 회장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약속이 있어서 긴말은 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로웰과는 다시 이야

기하지 말 것을 명령하죠."

아이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라는 로웰과 포레스트 회장과의 관계

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수일까? 적? 어찌되었건 로웰과 포레스트

회장은 그리 원만한 관계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일 로웰을 만나서 수사하려고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내 명령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거예요."

포레스트 회장은 아이라에게 바짝 다가섰다. 아이라는 바짝 긴장하고

서 포레스트 회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포레스트 회장의 눈동자에 겁에

질린 듯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아이라는 아름답군요."

포레스트 회장의 말에 아이라는 스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회장님도 아름답습니다."

아이라는 대단히 사무적인 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포레스트 회장

은 아이라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어쩌면 린의 눈길을 의식했는지도

몰랐다.

"영화 스팔타커스를 이야기 한 적이 있죠. 그 영화, 어떻게 끝나는 지

알아요?"

아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팔타커스는 반란을 일으켜요. 그리고 죽죠."

"반란에는 데는 이유가 있었겠죠."

아이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유가 결말을 바꾸지는 못해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 돌아서서

아이라의 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라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라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스멀거리는 기분 때문에 샤워가 하고 싶을 뿐이었

다.

"어디 아파?"

린이 걱정 어린 눈으로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 로스가 보고 싶어."

린이 말했다.

"그래. 로스가 있었지."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시경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는 기숙사에서

처럼 침대 바로 옆에 놓여 있었고, 그 모델도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도

청을 하고 있을 것이었지만 그건 별로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시경

에서 기숙사 전화를 종종 도청한 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자필루스 경장이었다.

"저 아이라에요. 로스 형사 부탁합니다."

"아이라 경사?"

"예. 맞아요."

"특임조에서 전화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보안 사항인데요."

자필루스의 웃음소리.

"로스는 지금 M.P.O로 당직 근무 나갔어. 돌려줄까?"

아이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탁해요."

"알았어. 몸 건강하라구."

"자필루스야 말로."

전화는 잠시 후에 로스에게 이어졌다. 로스는 피곤한 음성이었다.

"사건 끝났어?"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

"한가한가 보네? 전화질이나 하고."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로스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이라는 어쩐지 로스

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안한데,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이라는 로스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데이트 해 줄 거야?"

아이라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알았어. 부탁 들어주면."

"어? 정말?"

로스의 목소리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아이라는 그런 로스가 싫지만은

않았다.

"M.I에 대해서 알아 봐 줄 수 있어?"

"글세..."

로스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었다.

"M.I 소속 로웰 중령에 대해서 좀 알아 봐 줘. 군사령부에 있다는데.

우리 섹터니까 조사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너, M.I에서 근무하는 군인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얼마나 많은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지 알아?"

"알았어. 우리 반장이 큰 소리로 웃는 걸 보려면 더 힘들 텐데."

아이라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이 말은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알아 봐 주면 되는 데?"

"내일 아침. 가능 해?"

아이라는 딱 잘라서 물었다.

"젠장. 하필이면 M.P.O 당직 근무 설 때 전화 할 게 뭐야?"

"그래서 힘들 다는 거야?"

"당직 근무 설 때 군사령부 통제실하고 직통으로 연결되는 회선을 쓸

수 있는 거 알면서 하는 소리야? 아이라. 너, 내가 M.P.O 근무 선다는

이야기 듣고 전화 한 거지?"

"꼭 그렇진 않아."

다시 로스는 침묵을 지켰고 아이라도 로스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데이트, 꼭 하는 거다."

"약속 할 게."

아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데이트 약속을 지키려면 얼마의 시간

이 필요할지는 아이라도, 로스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아이라가 로스

와 만나기 전에 메이런과 먼저 만나게 될 지도 몰랐다.

"알았어. 아침에 전화 할 게. 몇 시쯤 할까?"

"아침 일찍."

"좋아."

전화는 끊어졌다. 아이라는 송수화기를 들고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그

저 아무 생각 없이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수화기 저편에

서는 아무도 없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19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