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23화 (23/52)

8.작별

메이런은 벨을 눌렀다. 사실 그냥 돌아설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몰랐

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메이런은 조이스의 집 앞까지 왔고 이제 와서 그

냥 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이 열리자 평소의 조이스와는 다른 모습의 조이스가 나타났다. 머리

는 온통 부스스했고, 자다가 막 일어난 모양으로 얼굴에는 졸음이 가득

했다.

"어. 이게 누구야?"

메이런은 반갑게 맞아주는 조이스의 모습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메이런. 메이런이에요. 기억해요?"

"기억하지. 난 나하고 잔 남자는 다 기억한다고."

조이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메이런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메이런은 조

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농담이야.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지 말아."

메이런은 조이스의 얼굴을 처다 보고만 있었다. 메이런은 조이스가 한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메이런

은 만약 조이스가 '먼저 샤워하지 그래?'같은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거였다. 메이런은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좀 앉아. 무슨 일로 온 거야?"

조이스가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방에는 앉을 만한 곳이

라곤 하나도 없었다. 바닥에는 온통 잡지와 종이 조각이 굴러다니고 있

었고, 그나마 있는 의자 하나에는 설거지를 하지 않은 접시가 가지런하

게 올려져 있었다.

"저... 할 말이 있어서요."

"그래. 한 번 올 줄은 알고 있었어."

조이스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아마도 간맘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얼굴이라도 좀 씻고 와야겠어. 잠깐 기다려."

조이스는 화장실로 가면서 접시를 치워주었다. 덕분에 메이런은 앉을

공간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 번 이곳

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는 꽤 깨끗해 보였는데. 메이런은 그 때를 정돈도

되어 있었고, 먼지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일루젼에 취한 아침의

기억이 그렇게 정확할 리는 없었지만.

"거기 수건 좀 집어 줄래?"

조이스가 화장실 문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하지만 잡동사니가

흩어져 있는 방에서 수건 한 장을 찾기란 M.P.O를 타고 가면서 눈으로

캡슐 하나를 골라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조이스의 손은 한참을

민망하게 빈 채로 화장실 문 앞에서 흔들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도로

들어가 버렸다. 메이런은 이곳저곳 찾아보다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걸레를 집어 든 다음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저..."

"이거 걸레 아냐?"

"예. 수건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메이런이 말하자 화장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곱게 자랐나 보네."

조이스가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메이런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소스라쳤다. 조이스는 바지만 입고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놀래긴. 여자 몸 처음 봐?"

"...머리에서 물이 많이 떨어져서요."

메이런은 황급히 침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종이타월이 떨어졌거든. 건조기는 고장이고. 그러니 어떻게 해? 수건

을 써야지. 뭐, 집에서 곱게 자란 메이런한테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다

는 게 이상하겠지만 말야."

"그건..."

메이런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수건이라고 하면 늘 벽에 걸려 있고, 여

름에 물에 적셔서 목에 두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수건으로 몸

을 닦을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메이런이 멍한 상태

가 아니었다면 수건을 종이타월이나 건조기 대신으로 쓸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 온 거야?"

조이스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말했다. 언제 걸쳤는지 위에는 얇은

면 티를 한 겹 입기는 했지만 벗고 있으나 입고 있으나 크게 차이가 날

것 같은 옷은 아니었다. 머리에서 떨어짐 물방울이 조이스의 목줄기를

따라 티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저..."

메이런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 지난번에 봤을 때하곤 많이 다르네? 전에는 그렇게 날 괴롭히더

니만."

조이스가 짓궂게 메이런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가져갔다. 메이런은 고

개를 숙여 조이스의 눈을 피했다.

"그렇게 얼굴까지 빨개 질 건 없잖아. 귀엽게 말야."

조이스는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일루젼을 한 병 꺼냈다. 메이런은

조이스의 발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이스의 발목은 희고 가늘었다.

"미안. 이제 장난은 그만 칠 게.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것 때문에 온 거

지? 무슨 말을 했나 궁금해서. 맞아?"

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가 되면 말이야, 남자가 뭘 생각하는지 쯤은 다 알 수 있어.

게다가 넌 지난번에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말했어."

조이스는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아뇨. 전..."

"내 말끝까지 들어. 먼저, 난 네 타입이 아냐. 너한테는 훨씬 착하고

똑똑한 네 또래 여자애가 어울려. 그리고 설마 사랑한다느니 그런 헛소

리 할 거면 당장 나가 줘. 내 나이가 되면 말이지, 남자가 여자한테 원하

는 건 딱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지."

"...뭐죠, 그 두 가지가?"

메이런은 속으로 사랑과 우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

는 당장 내 쫓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물었다.

"신음소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조이스는 이렇게 말하곤 깔깔대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메이

런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랐다.

"피아노바에 자주 들러 주는 건 고마워. 내 노래를 사랑해 주는 것도

고맙고. 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해. 내가 지금 이렇게 당신하고 이야기하

고 있는 건 말야..."

조이스는 여기까지 말하곤 일루젼 잔을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아마도 단어를 고르고 있는 모양

이구나 싶었다.

"...지난번에 당신이 속을 털어놨기 때문이야."

"제가 무슨... 말을 했죠?"

"비밀을 듣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비밀을 들으면 그 비밀에 대한 책

임이 생기는 법이거든. 그리고 불행하게도 나는 책임감이 뛰어난 휴먼

레이스라서. 자.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어."

"무슨 말을... 했길래..."

"별 이야기 안 했어. 어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하고 쿨란이라는 남자

이야기를 했지. 쿨란은 금덩이를 모은다면서? 나한테 금덩이를 살 돈이

있다면 근사한 피아노를 한 대 살텐데."

메이런은 뭐라고 딱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조이스가 일루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자 메이런은 더 이상 대화를

진행시키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메이런은 조이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이스는 그저 메이런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려고만 하고 있었

다. 이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했고, 간혹 쿨란에

게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했다. 메이런은 이런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 떠나요."

메이런이 말하자 조이스는 일루젼 잔을 내려놓았다.

"저, 푸우순 시를 떠나요."

"그래? 하이어드 트랜서가 출장도 가나?"

"아뇨. 다시 못 올 지도 몰라요. 난, 그러니까..."

메이런의 눈길은 조이스의 발목에 닿아 있었다. 조이스는 메이런의 시

선을 느꼈다.

"난, 그냥... 가야만 해요.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어요. 어머니도... 쿨란

도 이유가 되지는 않아요... 그런 문제는 아니에요. 그냥, 동전처럼, 쉽게

쓰러지고 싶지는 않은 것뿐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조이스를 찾아왔어요.

누군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터져 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메이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생각나는 대

로, 입이 움직이는 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메이런은 울컥 속에서 뜨

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 뜨거운 것은 눈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날 밤하고 똑같아."

조이스가 말하자 메이런은 제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조이스에게서는

따스한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보호해 주고 싶어하는 욕구'였다.

"그 날도 뭔가 털어놓고 싶어했어. 내 타입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 나는 귀여운 친구가 좋은 걸."

조이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이스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이런의

시선도 조이스의 발목을 따라서 움직였다.

"처음이야."

"예?"

"내 가슴에 시선을 주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라고. 남자가 여자한테

원하는 건 딱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은 수정해야겠는데? 음. 어쩌면

내 매력이 연하한테는 잘 먹히지 않는 지도 모르고 말야."

조이스는 멋쩍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메이런

은 조이스에게서 '보호해 주고 싶어하는 욕구'와는 다른 종류의 따스한

기운이 나오는 걸 느꼈다.

"오늘 저녁에 올 거니? 피아노바에."

메이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점심 먹고 떠나요."

"다시 올 거니?"

"잘..."

메이런은 대답하지 못했다. 쿨란이 말했듯, 웨이팅하우스에서는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몰랐다.

"다시 와. 데자뷰를 들려 줄 게."

조이스는 이렇게 말하곤 메이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따

스한 조이스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을 때, 메이런은 조이스의 따스한 기

운이 이마를 타고 온 몸으로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자. 나는 작별은 별로 익숙하지 못해서 말야. 어서 가 봐. 멀리 나가

지 않을 게."

조이스는 메이런의 등을 떠밀었다. 메이런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이스

를 내려다보았다. 조이스는 메이런의 눈을 피해서 일루젼 잔을 천천히

들이키고 있었다.

"고마워요."

조이스는 대답대신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메이런은 조이스의 집밖으

로 나섰다.

조이스의 집 문이 닫혔을 때, 메이런은 늘 같은 궤도를 맴도는 캡슐을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메이런은 닫혀진 문을 뒤돌아보았

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메이런이 다

시 돌아오는 날 까지.

캡슐을 타고 셔틀 스테이션으로 가는 동안 쿨란은 별 말이 없었다. 메

이런은 쿨란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쿨란은 락벳 전선을 생각하

고 있었다. 하지만 소령과 농담처럼 나누던 락벳 전선과 지금 쿨란이 생

각하고 있는 락벳 전선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쿨란은 어쩌면 두려움

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지도 몰랐다.

"일은 잘 해결 됐니?"

쿨란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메이런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메이런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런은 사무실을 나서며 쿨

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조이스와 나는 과연 작별 인사

를 나눈 것일까? 아니, 그보다 메이런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만 조

이스에게 간 것이 아니었다.

"고맙다."

쿨란의 난데없는 말에 메이런은 깜짝 놀랐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고맙다고."

쿨란의 눈은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쿨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쿨란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만큼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는 걸까?

"다시 돌아 올 수 있겠죠?"

메이런이 쿨란에게 물었다.

"응. 그래야지. 쌓아 놓은 금덩이가 얼마인데."

평소의 쿨란처럼 농담투긴 했지만 눈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하고 있는

쿨란이었다.

"근데 늘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뭔데?"

"그 금덩이들, 어디에 쓰는 건가요?"

메이런은 사실 쿨란이 금덩이를 어디에 보관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3

년을 함께 있었지만 그런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조이스

가 오늘 쿨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영 쿨란에게 묻

지 않았을지도 모를 질문이었다.

"좀 긴 이야긴데."

쿨란이 메이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쿨란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지만

메이런은 그 표정 없는 얼굴 뒤에 흐르고 있는 텅 빈 마음을 읽을 수 있

었다. 쿨란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키티-본의 텅 빈 눈

동자와 같은 마음이었고, 뭔가에 취해 있는 듯한 메이런의 마음과도 같

은 마음이었다.

"용병 생활을 마무리 짓고 여기로 돌아왔을 때, 나한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었단다. 푸우순 시에 내가 아는 생명체라고는 나 자신과 키티-

본 뿐이었거든. 게다가 용병 생활은... 너무나도 힘든 거였어. 이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구나."

쿨란은 용병 시절에 대한 농담을 할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만 있을 뿐 표현 할 수는 없었

다.

"키티-본은 시력을 잃은 후에 희망도 잃어버린 상태였고 그건 나도 마

찬가지였지.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키티-본에게 나도 힘들다는 이야

기는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늘 키티-본에게 말했지. 행성 어스로 오면

다 잘 될 거라고. 하지만 뭐가 잘 되는 건지는 나도 키티-본도 모르고

있었지.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단다. 행성 어스에서 휴먼 레이스에게 있어

서 최고의 가치는 돈이라는 걸 말이야."

메이런은 키티-본이 언젠가 해 주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키티-본

은 전쟁을 통해서 빛을 잃은 자는 전쟁을 통해서 다른 빛을 찾았다고 말

했다. 다시 말해 용병 생활에서 희망을 잃은 키티-본은 행성 어스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것에서 빛을 찾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키티-본과 나는 용병 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지. 그게 바로 하이어드의 일이었단다. 그래. 마치 미친 것처럼 일을

했지. 키티-본은 트랜서가 되었고, 나는 카운셀러가 되었어. 그 동안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메이런은 구르는 동전을 떠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시들해 졌어. 알고 있지? 키티-본은

돈에 빠져들었고, 나는 금덩이에 빠져들었어. 그래. 그렇게 되었던 거지."

"그래서 금덩이를 모으는 건가요?"

메이런이 마치 다짐을 받는 되물었다. 쿨란은 항상 금덩어리를 그 무

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그런 쿨란이 왜 그렇게 하

는 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돈을 모으고, 누군가는 지위를 노리지. 나는 금덩이를 모으

는 것 뿐이야."

"제 친구는... 돈이 있다면 피아노를 사겠다고 하던데요."

메이런이 말했다.

"나도 돈이 있다면 권총을 사고, 사무실을 얻고, 친구와 술을 마시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돈이 그 이상으로 많아지면 어떻게 되는 지

아니?"

돈으로 일루젼을 사서 마시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메이런으로서

는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돈을 버는 일밖에는 없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금덩이를 모으는 거야."

메이런은 쿨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금덩이만으로는 부족하단다. 그러다가는 쓰러지기 딱 좋지. 메

이런. 내가 연방수사국에서 연금을 받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예."

"연방수사국에서 날 필요로 한 적이 몇 번 있었지. 탈영병을 찾는 일

이었어. 사실 그 일을 맡게 된 건 우연이었단다."

쿨란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던

시절, 쿨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은 마치 멈추어 선 동전과

도 같은 마음이었다. 다만 쓰러지지 않은 건 쿨란의 말처럼 멈추어 선

동전이 우연히 중심을 잡은 것과 같았다.

"전장의 감각을 기억하는 이에게 그 이상의 이유는 없어. 적과 싸우는

것 말이야. 그래. 지금 나는 그래서 푸우순 시를 떠나는 거야. 탈영병을

잡으러."

메이런은 쿨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쿨란의 마음은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이의 마음이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사냥감의 마음이었

다.

"쿨란. 그래도 난 이해가 안가요. 타이론이 주는 의뢰는 안받겠다고 해

놓고선. 꼭 쿨란이 가야만 하는 일인가요?"

쿨란은 메이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런은

더 이상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두통을 느끼지? 악몽을 꾸고. 키티-본은 멈추어 섰어.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알 거야."

쿨란은 화제를 메이런 쪽으로 돌렸다.

"나는 멈추어 서지 않아. 그게 키티-본과 나의 다른 점이야."

메이런은 키티-본을 생각했다. 키티-본은 돈을 모으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트랜서를 만나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는

일도 메이런을 만남으로 해서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그리고 미싱.

"어쩌면... 저도 그런지도."

메이런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메이런은 다시 구르기 시작하는 동전을

연상하면서, 어쩌면 그 동전은 정해진 궤도를 구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

어졌다.

캡슐은 셔틀 스테이션을 향하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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