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24화 (24/52)

9.10종 창고.

아이라와 린은 로웰 중령이 타고 온 호버카로 군사령부를 향하고 있었

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고, 바람마저 선선한 오전이었다. 호버카

의 조종사는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조심스럽게 호버카를 몰

고 있었고, 로웰도 안전하고 쾌적한 이동을 원하는지 조종사에게 계속해

서 부드럽게 몰 것을 당부했다.

군사령부는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둔

지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지휘부가 그렇듯, 군사령부도 높은

울타리와 감시 장비로 잘 보호되고 있었고, 사령부 본관은 높은 건물로

되어 있었다.

"저기가 지휘부겠죠?"

군사령부 울타리 너머에서도 보이는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아이라가

로웰에게 물었다. 로웰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휘부 건물이 이렇게 잘 드러나서 될까요? 만약 전쟁이 난다

면 지휘부는 공격대상 1호일텐데요."

"그렇다고 해서 늘 지하 벙커에서 근무할 수는 없으니까요. 생명체라

면 누구나 햇빛을 받으면서 일을 해야 지요. 그래야 일도 잘 되고 능률

도 오르고 건강에도 좋을 거예요."

"그럼 진짜 지휘부는 지하 어딘가에 있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로웰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거, 보안사항 아닌가요?"

아이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투로 말했지만 로웰은 이 말을 농담으로 알

아들었는지 껄껄대며 웃었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걸 보안사항이라고 하진 않죠."

아이라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사령부 정문에는 E-14 빔라이플로 무장한 병사들이 위병 근무를 서고

있었다. 로웰 중령이 몇 마디를 건네자 이들은 아이라와 린에게 임시 출

입증을 발급해 주었다.

"군사령부에 경찰이 들어온 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이번이 처음

인 것 같아요. 아이라 경사, 린 경무원. 기쁘지 않아요?"

로웰이 앞좌석에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호버카의 조종사는 로웰이 움

직일 때 마다 긴장하고 있었다.

"처음이라는 게 그렇게 기뻐해야 할 일인지는 몰랐는데요?"

아이라가 대답했다. 린은 발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라와 로웰 중령이

나누는 대화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수사관이라면 그런 일에 관심이 있을 줄 알았죠. 여기는 군수사관 아

니면 들어와 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거에요, 내 말은."

"저하고 린을 필요로 했으니까요."

로웰은 아이라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아이라는 저 미소를 구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땅히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지

는 못했다.

"필요로 한 만큼 뭔가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단서를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웰의 물음은 아이라에게 부담을 주려는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아이

라는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글쎄요. 하지만 어제 몇 가지 흥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기는 했어요."

"퇴근해서도 일을 하셨나 보군요. 녀석들이 어제 저녁으로 뭘 먹었는

지라도 알아 냈나요?"

"아뇨. 로웰 중령님에 대해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로웰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이라는 로웰 중령

이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

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로웰 중령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많이 알아 봤어요?"

로웰은 '한 번 해 볼 테면 해 보시지' 하고 말하는 듯한 당당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사실 뒷조사를 하는 건 제 취미가 아니에요. 저는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이지 남의 뒤를 캐고 다니는 하이어드가 아니거든요."

"그럼 왜 내 뒷조사를 했죠?"

역시 여유 있는 표정.

"사실은 제 상사 때문에 그랬어요. 군인이니까 잘 아시겠죠? 상사가

한마디하면 밑에서는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거요."

"포레스트 회장이 내 뒷조사도 하라던가요?"

물론 여유 있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라는 로웰의 표정 사이에서 작은 틈

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뭔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이 느

껴졌다.

"아뇨. 로웰 중령과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생

각했죠. 왜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걸까?"

아이라는 로웰의 빈틈이 커지길 바라면서 물었다.

로스가 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정보 몇 개에 불과했다. 로웰의 이론

에 따른다면, 그 몇 가지도 로웰에 대한 어떤 해석방향을 제시하는 정보

겠지만 아이라로서는 그 정보만으로 로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없었

다. 그래서 아이라는 이렇게 도박을 하고 있는 거였다. 로웰이 속아주기

를 바라면서.

"포레스트 회장은 날 싫어하죠."

로웰의 빈틈이 커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로웰은 아이라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정보를 더 흘린다면 로웰은 그 틈

을 벌려 아이라가 들어갈 수 있게 해 줄지 몰랐다.

"아마 자기 요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네

요."

로웰은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 로

웰에게 자신의 의도가 충분히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로웰 중령님은 상당히 바쁘시던데요? 멀리 푸우순 시에도 가시고, 또

파트사로사 시에도 가시고요. 아마 헤드헌터 명함하고 관계가 있겠죠?"

이건 아이라의 단순한 추리일 뿐이었다. 로스가 알 수 있었던 건 로웰

중령이 시를 출입한 기록과 출장을 다녀온 도시 이름, 그리고 M.I에서

일하기 전에는 아마 랏벳 전선에서 군생활을 한 것 같다는 소문 정도였

다. 그래서 아이라는 대충 얼버무리듯 로웰에게 질문을 던졌고, 로웰은

아이라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헤드헌터 일은 M.I에서 추진하는 중요한 사업 중 하나거든요. 그건

엄연히 공무였습니다."

로웰은 말투마저 딱딱한 군대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엄연한 공

무였'다고 강조하는 건 헤드헌터 일이 공무와는 거리가 있는 일일 거라

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럼 저를 만나는 것도 엄연히 공무겠군요."

"물론이죠."

로웰은 다시 평소의 여유를 되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사기를 치기 직전의 도박사가 이런 심

정일까. 아이라는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전에는 랏벳 전선에서 근무하셨지요? 여기는 후방일텐데, 좀 지루하

시겠어요."

아이라는 될 수 있는 한 모호하게 물었다. 로웰의 본심이 드러날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로웰은 더 아이라의 함정에 빠져들

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은 전선에서 근무하죠. 대수로운 건 아니에요. 그리고 여

기 일도 즐겁고요. 현장에서 뛸 수 있는 데다가 아이라 경사 같은 미인

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전선이라고 해도 책상에서 하는 일은 따분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여자라곤 구경하기도 힘들 때가 있거든요. 안 그래?"

로웰은 호버카 조종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조종사는 딱딱한 군대식 말투로 대답했다. 아이라는 로웰의 의도를 완

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소득을 얻을 수는 있었다. 지

금 로웰이 하고 있는 일이 순전히 비쵸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이라는 로웰이 말했던 '위험한 나무'와 관

련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비쵸 일당이 가지고 있을 기밀문

서와 관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호버카는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 사령부 앞에 멈추어 섰다. 조종사는

재빠르게 내려 로웰 쪽 문을 열었고, 로웰은 아이라의 문을 대신 열어주

었다.

"여기에 보관되어 있나요?"

아이라가 사령부 건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령부 건물은 깃대에 나

부끼고 있는 별 네 개가 그려진 깃발과 군을 상징하는 파란 색 별 모양

을 제외한다면 웨이팅하우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건물과 거의

흡사했다.

"사령부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죠."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조종사를 돌려보내곤 앞장서서 사령부 안으로

들어섰다.

사령부 내부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었다. 로웰은 몇 군데의 검색대를

지나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로웰이 말했듯, 사령부의 진

짜 중요한 시설물들은 지하 벙커에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

터는 지하에 당도하자 회전을 몇 차례 하면서 어디론가 움직여 나아갔

다.

"이 엘리베이터는 지휘통제실에서 작동하겠지요?"

아이라가 로웰에게 물었다.

"경찰하고 비슷할 거예요."

로웰은 이렇게만 대꾸하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마도 사령부의 통제

구역에 들어가는 일은 M.I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긴장되는 일인 모양이

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의 끝에는

붉은 색으로 '통제구역' '관계자 외 출입금지'같은 글이 적혀 있는 문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그 문을 통과하자 호버카가 나타났다.

"이 호버카입니다."

아이라는 호버카를 살펴보았다. 불에 타기는 했지만 일단 원형은 그대

로 유지되어 있었고, 타고남은 재와 혈흔 등이 담겨 있는 투명한 봉투가

몇 개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세심하게 운반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혹시 남아 있는 니들탄은 없나요?"

아이라가 로웰에게 물었다. 로웰은 투명한 봉투 하나를 들어 아이라에

게 건네 주었다. 봉투 안에는 원형을 짐작하기 어려운 금속 파편이 담겨

져 있었다.

"감식과를 거쳐 왔어요. 경찰 조직하고 마찬가지죠. 감식반에서는 이

파편이 니들탄의 파편이라는 것을 밝혀 냈어요."

"군 수사기관도 생각보다 섬세하군요."

아이라는 투명 봉투를 받아 천장에 달려 있는 등에 비쳐 보면서 말했

다. 누군가의 몸 안에서 폭발했을 니들건의 파편은 마치 작은 모래알처

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라는 픅발과 함께 터져 나갔을 살점과 핏물을

생각하면서 잠시 몸을 떨며 그것을 내려놓았다.

"린."

아이라가 말하자 린은 호버카에 달라붙었다. 아이라는 녹음기를 켰다.

"사막을 달리고 있어... 그리고 음악을 듣고 있었어. 라디오."

"호버카의 기억."

로웰은 린이 중얼거리고 아이라가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

었다. 아이라는 로웰의 시선을 느꼈지만 일단은 무시하고 일에 몰두하기

로 마음먹었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집중을 요하는 때이다. 로웰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건 당장은 신경 쓰지 말아야 했다.

린이 소스라치며 움찔했다.

"누가 쐈어."

"니들건으로 공격당함."

"그리고... 멈추어 섰고, 피..."

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이라는 린이 가끔가다가 살해

현장을 보게 되면 패닉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로웰은 그렇지

못했다.

"왜 그러는 거죠?"

아이라는 로웰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린은 몸을 떨다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담요하고 뜨거운 물 한잔 가져다주세요."

린이 쓰러지자 로웰은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아이라의 말에 이내 곧

사병을 보내 담요와 물 한 잔을 가지고 왔다. 아이라는 린의 어꺼에 담

요를 둘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라는 말하면서 린에게 컵을 내밀었다. 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

었다.

"린의 프로필 파일을 읽었지만 이런 사항은 없었는데요."

로웰은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게 보였지만 로

웰이 하고 있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3년 전에 셔틀 추락사고 기억하세요?"

"알죠. 그리고 린이 그 때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도 알아요."

"린은 가끔 그 때의 기억에 빠져들어요. 지금 같은 경우 호버카의 내

부와 피에 대한 기억이 린의 아픈 과거를 되살아나게 한 것 같아요."

"그렇군요."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아이라와 린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앉아 있어요, 로웰 중령님. 그렇게 서있지 말고. 정상으로 돌아오

려면 좀 걸릴 거예요."

아이라는 린에게 뜨거운 물을 권했다. 린은 두 손으로 컵을 꼭 쥐고는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김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힘들겠어요. 일하는 거."

"별로. 헤드헌터 일이 더 힘들겠죠. 저 같은 풋내기한테 이런 저런 설

명을 하려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테고요."

아이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로웰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한 방 먹었군요. 아이라는 수사관보다는 변호사가 더 어울릴지

도 모르겠어요."

"제가 말을 잘하나요?"

"아뇨.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 농담이에요. 너무 깊게 듣지는 말아요."

로웰은 여유있는 표정을 잃지 않고서 말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그런

로웰이 싫었다.

린이 다시 트랜스를 할 수 있게 된 건 뜨거운 물이 완전히 식을 즈음

이었다. 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시작."

아이라는 녹음기를 켰고 로웰은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린은 호버카의 창문을 만지고 있었다. 트랜스를 할 때의 린의 표정은

늘 진지했다. 트랜스

할 때 린을 본다면 누구도 린이 저능아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우리도 구할 수 있어."

린이 말하자 아이라의 눈빛이 번득였다.

"린. 범인의 음성을 찾았음."

아이라가 속삭이는 걸 들은 로웰의 눈동자도 번득이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웨이팅하우스 시에는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도 여기 토박이지. 다

른 건 없나?"

다시 얼마간의 침묵.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저는 집에 처자식이 있는 몸입

니다.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제 처자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듯 했다. 아마도 호버카에 피해자의

고통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피해자의 음성을 찾았음."

아이라가 속삭였다.

다음 순간, 린의 몸에 다시금 경련이 일었다. 다시 살해 현장을 본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정도의 발작은 아니었다. 린

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라도 로웰도 숨을 죽이고

린을 주목했다.

"아악!"

린은 소리치면서 뒤로 쓰러졌다. 로웰이 린에게 달려갔지만 아이라가

먼저였다. 아이라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쓰러지는 린을 붙잡았다.

"먹고 있었어. 아저씨를. 먹고 있었어."

"아마 트럭운전사였을 겁니다. M.I에서 트럭 운전사의 시체를 조사했

을 때..."

"쉿!"

아이라는 로웰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로웰은 입을 꾹 다물었고

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들은 거 없어?"

"하이하버로 간다고 했어. 하이하버에 있는 포스트를 찾는 다고 했어."

"그리고? 그리고 또?"

린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린의 몸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괜찮겠어요?"

로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예요. 녀석들은 하이하버에서 연락책과 접선할 생각이에요.

어쩌면 거기서 챠오챠오를 만나기로 했는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녀석들

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몰라요."

"여기서 조금 더 조사할 건가요?"

로웰의 질문에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는 하이하버로 가

는 편이 나을 거예요. 여기 전화 있지요? 일단 시경에 연락해서 몇 가지

조사를 해 봐야 겠어요. 틀림없이 뭔가 나올 거에요. 아주 사소한 거라

도."

로웰은 아이라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써요."

아이라는 로웰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전화를 받아 들었다.

"...자필루스 경위 님? 저 아이라에요. ...예. 다음에 하죠, 그건. 예... 하

이하버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 전부의 기록이 필요해요. 예. 지금 당장.

부탁해요. 여기 팩스 번호가..."

아이라가 묻자 로웰은 팩스 번호를 불러 주었다.

"M.I에 있는 제 직통 번호에요."

"빨리 부탁 드릴 게요...... 예.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드릴 게요. 부탁해

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팩스로 사건 기록이 오면 지금 당장 하이하버로 출발해야겠어요. 같

이 가실 건가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다행이에요."

"예?"

아이라가 린을 일으켜 세우며 반문했다.

"사실 아이라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거든요.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

사합니다.' 뭐 이런 이야기. 이제 빠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중령님하고 함께 다니는 게 마음 편할 리가 없긴 하죠. 하지

만 이건 단순히 시경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에요. 그리고..."

아이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뭐라고 해도 어차피 따라 오실 거 아닌가요?"

로웰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라는 여전히 로웰이 싫었지만 로웰은 아

이라가 아주 맘에 든 모양이었다.

"팩스가 올 때까지 차라도 한 잔 하고 있죠. 뭘로 드실 건가요?"

"전 물 한 잔 부탁 드려요. 린은 단 맛이 나는 거면 뭐든 되고요."

로웰은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아이라는 아직도 땀방울이 흐

르고 있는 린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아마 오늘은 계속 트랜

스를 하기가 힘이 들 것 같았다. 하이하버에 도착하면 뭘 해야 할까. 우

선 사건 기록에서 의심이 가는 사건을 몇 개 뽑아 그 사건의 담당 형사

를 만나보고 관련 증인들을 만나 보는 게 순서 일 거였다. 하이하버의

사건 대부분은 하이하버 지서에서 맡고 있겠지만 아마 일을 인계 받은

로스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도 꽤 될 것이었다. 로스라면 편한데. 아무래

도 하이하버 지서에서 일하는 형사들과는 일하기가 껄끄러웠다. 전에도

직할반의 수사권과 마찰이 잦아 지서 경관들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

았던 것이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1 -

"새로운 소식이 있어요."

로웰이 양손에 잔을 들고 말했다.

"로웰 중령님은?"

아이라가 잔을 받아 들며 말했다. 한 잔은 물이었고 다른 한 잔은 붉

은 빛이 도는 음료였다.

"난 안마셔요. 린 몫으로는 딸기 주스예요. 군 보급품이긴 하지만 맛은

괜찮을 거에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그런데 새로운 소식이라는 건요?"

"챠오챠오를 추적하고 있던 우리 M.I 팀이 챠오챠오를 찾았어요."

"예?"

아이라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당장 심문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M.I 수사관이 신병

을 확보하고 있나요?"

"아뇨."

로웰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 10종 창고에 보관중이에요."

"10종 창고요?"

"아. 군 용어는 잘 모르시겠군요. 군에서 1종 창고는 식량 창고, 2종

창고는 무기 창고, 3종 창고는 의류 창고, 이런 식으로 분류하거든요."

"10종은 뭔가요?"

"쓰레기 폐품."

로웰이 대답했다.

"죽었... 군요?"

"예. 사막에서 수색작전을 피고 있던 M.I 요원들이 발견했어요. 가매장

하기는 했지만 금새 확인했다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포미사이드 레이

스는 외골격으로 덮여 있어서 사체가 부패되지 않거든요."

아이라는 물잔을 들고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린은 아이라와 로웰

의 눈치를 보면서 딸기 주스를 마셨다.

"호버카가 발견된 위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어요. 아마 비쵸 일행이 가매장 해 주

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챠오챠오의 기밀 문건은 비쵸에게 넘어갔다고 보는 편이 낫

겠군요."

"M.I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챠오챠오의 소지품 중에 비밀 문

건은 없었으니까요. 나도 그게 타당하다고 보고요."

수사가 진행되다 보면 이런 벽에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일한 증

인이 죽어버리거나 용의자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

"그나마 여기서 하이하버라는 단서를 잡았다는 게 위안이 되네요."

"10종 창고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로웰이 물었다. 아이라는 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회복이 되어가고 있

기는 했지만 계속 트랜스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괜찮겠니?"

아이라는 린에게 이렇게 물었다. 강행하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다는

게 아이라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비밀 문건이 챠오챠오의 손에서 비쵸

일당의 손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지금,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응."

린은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무리일 것 같았다. 게

다가 이번에 트랜스 해야 할 대상은 그냥 물건도 아니고 챠오챠오의 사

체인 것이다. 아이라는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10종 창고로 가요."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10종 창고까지는 호버카로 이동해야 했다. 사령부 내에 있는 게 아니

라 사령부에 붙어 있는 사령부 직할대 중 하나인 보수대에 위치하고 있

었다. 보수대에는 1종 창고부터 10종 창고까지가 모두 모여있는 곳이었

다. 10종 창고는 보수대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쓰레기 소

각장과 폐품 창고,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게 영안실이었다.

"전사자들이나 사고사한 군인이 오는 곳이죠. 아이라는 군인이 아니니

까, 쓰레기 폐품이라는 표현에 아마 냉정하다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

겠네요. 그런데 군대란 곳이 워낙 분류를 좋아하는 곳이다 보니까 시체

를 10종으로 분류한 것뿐이에요. 군대라는 곳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곳이라고 했죠?"

아이라는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쓸모가 있는 건 군대뿐이죠. 군대란 곳

은 전쟁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10종 창고라는 것

도 그 한 부분이에요."

로웰은 호버카에서 이렇게 설명했지만 아이라는 그래도 10종 창고라는

단어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군인들은 전부 자신이 죽어서 쓰

레기 폐품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근무를 하고 있는 걸까?

보수대 10종 창고 영안실에 도착하자 보수대 작전과장이 로웰 중령을

맞이하였다. 작전과장도 중령이었고 아마도 로웰과는 동기인 모양이었다.

"로웰. 반갑군. 바쁜 건 알지만 가끔 좀 들르지 그러나?"

"자네가 M.I에 놀러 오는 게 더 빠를 걸세."

둘은 겉치례 인사는 이렇게만 하고 곧바로 영안실로 들어갔다.

"이 쪽은 아이라 경사, 그리고 그 옆은 아이라 경사의 트랜서야."

"안녕하십니까. 저는 보수대 작전과장 미츠입니다. 그냥 미츠 중령이라

고 불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츠 중령이라고 불러달라고 한 보수대 작전과장은 로웰 중령과는 달

리 상당히 군인티가 많이 났다. 운동선수 같아 보이는 듬직한 체격에 각

진 턱과 시커먼 피부색이 매우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이걸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안실 입구에서 미츠 중령은 마스크를 내밀었다. 아이라는 그것이 챠

오챠오의 기숙사 방에 들어갔을 때 착용했던 마스크와 같은 종류의 것이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챠오챠오를 찾을 때 썼던 마스크를 챠오챠오를

만나며 다시 쓴다는 게 아이라는 어쩐지 아이러니컬하다고 느껴졌다.

영안실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군대다웠다. 완전히 똑같이 생긴

은빛의 시체 보관함들이 마치 벽돌로 쌓은 듯 벽면에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고, 각각의 시체 보관함 앞에는 분류기호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챠오챠오는 여기에 있습니다."

미츠 중령은 시체 보관함의 문을 열고 보관함 밑에 있는 이동식 받침

을 잡아당겼다.

챠오챠오의 시체는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별다른 외상은 없

는 듯 했고 어떻게 보면 그저 잠든 포미사이드 레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

도였다.

"린."

아이라가 린에게 말했다. 하지만 린은 아이라의 뒤편에 숨어서 나오려

고 하지 않았다.

"린."

아이라는 조금은 성난 투로 린에게 말했다. 린이 아이라를 올려다보았

다. 린의 표정은 마치 엄마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이라는 린의 엄마가 아니었다. 린은 매서운 눈초리로

린을 노려보았고, 린은 어쩔 수 없이 챠오챠오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로

웰과 미츠는 말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아 보였

다.

"이제 곧 죽게 되겠지. 녀석들에게 잡히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가 혼

자 쓰러져 죽는 게 빠를까."

"챠오챠오의 기억."

어느 새 꺼내 든 녹음기에 대고 아이라가 말했다.

"버렸어야 해. 아니, 그냥 보고 지나쳤어야 해. 이건 정말이지 재앙이

었어."

"챠오챠오의 기억. 비밀 문건에 대한 것인 듯."

린의 얼굴에 금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반란군? 진실? 폭로? 정의의 구현? 빌어먹을 탈영병 녀석들을 믿다

니. 내가 멍청했지."

"챠오챠오의 기억인 듯."

"뜨거워. 목말라. 죽을 것 같아."

"챠오챠오의 기억."

"그리고... 념겨 줬어. 다 끝났어. 그리고..."

린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아마도 챠오챠오가 맞이한 최후의 순

간을 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약속을 지켰다. 고맙게 생각한다."

린은 이렇게 말하곤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비밀 문건은 비쵸 일당에게 넘어간 듯. 린. 괜찮니?"

녹음기의 스위치를 끄고 아이라가 린에게 물었다. 린은 온 몸이 땀으

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미츠 중령이 아이라에게 수건을 넘겨주었

고 아이라는 수건으로 린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고생했어."

아이라가 말하자 린은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라는 린의 등

을 두드려 주었지만 쉽게 울음을 그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비밀 문건은 비쵸 일당에게 넘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비밀 문건의

내용 말인데요,"

아이라는 로웰을 바라보았다. 로웰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지만

아이라는 미묘하게 굳어 있는 듯 하다고 생각했다.

"반란군이 진실을 폭로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로웰은 아이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로웰의 얼굴에 떠돌던 미묘한 경직

이 얼굴 전체로 퍼져갔다.

"아이라 경사는 범인을 체포 할 때 범행 동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

까?"

요컨데 비밀 문건의 내용은 신경쓰지 말라는 뜻일 거였다.

"가끔은요. 그게 범인을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지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말아요, 아이라 경사. 말했듯이 자르면 위험한 나

무도 있는 법이거든요."

로웰은 이렇게 말하곤 미츠 중령과 가벼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먼저

영안실을 빠져나갔다. 아이라는 쓰러져 있는 린을 거의 업다 시피 하고

로웰 중령의 뒤를 따랐다.

"꽤 민감한 사항이로군요. 로웰 중령님은 그 비밀 문건의 내용을 알고

계시지요?"

"그 질문은 못들은 걸로 하죠. 어차피 보안 사항이라 이야기 할 수도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로웰 중령님. 범죄에 타협은 없다는 게 제 신

조니까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로웰은 꼭 화가 난 것처럼 딱딱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로웰의 여유

없는 표정을 바라보면서 아이라는 어쩐지 자신이 로웰과의 어떤 싸움에

서 이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그 문건의 내용은 어떤 걸

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로웰의 얼굴에서 여유를 밀어낼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큼은 틀림 없는 것 같았다.

일행은 하이하버까지 다시 한 번 로웰 중령의 호버카를 이용했다. 로

웰은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아마 뭔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호버카 내부는 조용했고, 아이라도 나름대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아이라는 자필루스 경위가 팩스로 보내 준 사건 기록을 읽어보고 있었

다. 언제나 그랬지만 하이하버는 사건이 많은 동네다. 잡다한 사건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었다. 옷을 도난 당한 사건. 녀석들이 옷

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건 아닐 것이다. 린의 말에 따른다면 하이하

버에 연락 책이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강도 사건.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큰 사건을 벌여서 주목받을 이유가 있을까? 그밖에도 이런 저런 사건들

이 죽 기록되어 있기는 했지만 다들 관련이 있다면 있을 수도 있고 없다

면 없을 수도 있는 수준의 사건들뿐이었다.

"그런데, 비쵸는 왜 하이하버로 갔을까요? 비밀 문건을 손에 얻었다면

반란군 진영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텐데요."

"일단 비쵸를 추적하는 데 집중하죠."

"왜 움직이는지 모르는 범인을 추적하는 건 쉽지 않아요."

"사건 일지에 눈에 띄는 사건은 없나요?"

로웰은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이런 반응이

모두 비밀 문건에 담겨 있는 내용과 관계가 있을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하나 있기는 한데요."

아이라의 눈에 들어오는 사건은 실종 사건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직원

이 실종 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 것이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담당 형사가 로스라는 게 더 눈에 들어왔다.

"여기 호버카에서 전화 쓸 수 있나요?"

"쓰세요."

아이라는 로스가 당직을 서고 있는 M.P.O로 전화를 걸었다.

"당직 로스 경사입니다."

"졸리지?"

"응. 다행히도 이제 10분만 있으면 오침하러 갈 수 있어. 오늘 오후는

비번이라고."

"시간 조금만 내 줘. 지금 M.P.O 어디에 있어?"

"제발. 나 좀 살려 줘. 졸려서 죽을 지도 몰라."

"그럼 죽기 전에 조금만 시간 내."

아이라가 말하자 수화기 저편에서 로스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M.P.O는 하이하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떠 있었다. 아이라

일행의 호버카가 도착하자 M.P.O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문이 열렸고, 허

옇게 뜬 얼굴에 감지 않아서 푸석해 보이는 머리를 하고 있는 로스가 아

이라 일행을 맞았다.

"로웰 중령 님이신가요? 저는 로스 경사입니다. 오늘 잠을 못 자서 순

직하게 되면 용감하게 수사했다고 여기 이 뻔뻔한 여자 경사한테 좀 전

해 주세요."

로스는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까지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말했던 사건 있지?"

"응. 라디오 방송국 직원 실종 사건. 우리는 그 사건을 게스톤 실종 사

건이라고 불러."

M.P.O 안으로 로웰과 아이라를 인도하면서 로스가 말했다.

"게스톤이라는 휴먼 레이스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무슨 일을 했어?"

"보안담당이었어. 별로 성실한 직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포레스트

회장이 부탁해서 일단 조사는 하고 있는 중이야. 아마 딴 여자랑 눈 맞

아서 도망친 게 아닌가 싶은데."

"딴 여자라니?"

"응. 술집에서 애인하고 술 마시다가 사라졌거든. 그 여자친구, 여기

M.P.O에서 보호 중이야. 한 번 만나 볼래?"

로스는 아이라 일행을 증인 보호실로 안내했다.

"증인은 48시간까지 데리고 있을 수 있지요?"

"예. 보통의 경우 그렇습니다, 로웰 중령님."

"얼마나 더 데리고 있을 수 있나요?"

"앞으로... 12시간요."

"지방 검사에게 연락 해 주세요. 48시간 더 연장해 달라고."

"음. 지금 담당 수사관한테 지시를 내리시는 건가요?"

흐리멍텅했던 로스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수사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요, 로스 경사. 이건 부탁이에

요. 군사령부 차원의 부탁이라고 해 두죠."

"부탁이라면 들어 줄 의무 같은 건 없어요. 정 그렇게 하고 싶으시면

서류로 요청해 주세요. 서류는 M.P.O 대외 공문 창구를 이용하시면 될

겁니다."

로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라에게 찌푸린 얼굴을 보였다. 짜증이 난

다는 신호였다.

"보안 때문인가요? 하지만 그 여자가 비쵸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

지는 아직 모른다고요."

"예. 그렇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 하는 게 군인의 방식이에요. 로스

경사. 경사의 직속 상관이 누구죠?"

"직할반장 밀라노 총경님입니다."

"제가 직접 전화하죠."

"전화는 저 쪽 구석에 있어요."

로스가 말하자 로웰은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반장이 외부에서 온 전화 받고 부탁 들어주는 거 봤어?"

로스가 아이라에게 물었다.

"몇 번. 그리고 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젠장."

로스는 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아마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로웰이 로스에게 전화를 받아 보라고 말했다. 로스는 어쩔 수

없이 치과에 끌려가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되어서 전화를 받았다.

"반장님은 아주 정확하신 분이로군요. 보안에 철저하신 분 같아요."

"예. 그런지도요."

로스는 결국 48시간 연장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고, 그 사이 아이라 일

행은 증인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증인의 이름은 슈. 슈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휴먼 레이스였다. 하이

하버의 뒷골목에 있는 작은 술집에 나간다는 슈는 천박해 보이는 짙은

눈화장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죠?"

여자가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요."

아이라가 말하자 여자는 질려버렸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요. 다시 말하죠. 저는 게스톤과 술을 마시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누가 와서 그 남자, 그러니까 게스톤한테 와서는 밖에서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요. 제가 같이 나가자고 했더니 혼자 나가보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구요. 그 이상은 몰라요."

슈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게스톤하고는 애인 사이였죠?"

아이라가 물었다.

"아뇨. 전혀."

"애인이 아니었는데 밖에 여자가 기다린다는 말에 같이 나가겠다고 했

나요?"

"그건... 그냥 그래본 거예요."

"어디서 처음 만났죠?"

"그냥... 소개로..."

"누구 소개였죠?"

"그게 상관 있나요?"

슈는 화를 내었다. 아이라는 경험상 증인이 화를 낸다는 건 핵심에 다

가서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귄지 오래 되었죠? 어디서 주로 만났나요?"

"...날 의심하는 거에요, 지금?"

아이라는 이제 몇 마디만 더 물어보면 슈가 원하는 것 만큼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로스가 들어왔다.

"슈는 게스톤하고 애인사이였어. 하이하버의 술집에서 만났고, 근처에

있는 여관방들을 전전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지. 어제 밤에 증언한 내

용이에요. 맞죠?"

로스가 메모를 들고 읽으면서 말했다. 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메모, 복사해 줄 수 있어?"

"데이트 해 주면."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야."

아이라는 정색을 하고 말했지만 그리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로스는

메모장을 내 주었다.

"적어가. 필요한 건 다 있을 거야."

"알았어. 한 가지만 더 묻고. 누구였죠?"

아이라가 슈에게 물었다. 슈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누가 누구였냐는 거예요?"

슈는 짜증을 내었다.

"밖에서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 게 누구였냐고요."

"몰라요. 난생 처음 보는 휴먼 레이스였어요."

"휴먼 레이스라."

로웰이 중얼거렸다. 아이라는 로웰의 얼굴을 보았다. 로웰의 얼굴에 긴

장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비쵸의 파트너일까요? 우리가 찾고 있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로웰이 말했다. 아이라는 로웰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로웰은 더

이상 이야기 해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아이라는 메모장에 적혀 있는

여관의 이름을 보면서 만약 게스톤을 납치 한 게 비쵸 일당이 맞다면 왜

게스톤을 납치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라디오 그룹의 직원이어서? 라디오

그룹의 보안 요원이 왜 필요할까? 혹시 라디오 그룹에 테러를 가할 계획

이라도 있는 걸까? 아이라는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어쩌면 아무 관련이 없는 지도."

아이라가 중얼거리자 로웰이 아이라를 바라보았다.

"일단 하나 하나 진행해 봐요. 바쁠수록 돌아서 가라는 옛 격언도 있

잖아요."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히 다른 곳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이다. 하이하버에서 여관을 조사하다 보면 납치범을 잡지는 못할 지라도

비쵸 일당에 대한 단서를 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른 곳이라

면 또 모를까, 하이하버라면 자신 있는 아이라였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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