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26화 (26/52)

11.실행.

비쵸는 자신의 동료와 라디오 방송국 앞에 서 있었다. 지금쯤이면 시

드니는 여인숙을 정리하고 셔틀 스테이션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비쵸와

동료를 위한 패스와 셔틀 티켓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비쵸는 게스톤

을 떠올렸다. 마취에서 풀렸을 때, 게스톤을 아마도 심한 두통을 느꼈겠

지만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금새 파악했다. 물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레이스 앞에 꽁꽁 묶여 있다면 달리 상황을 파악할 방법

이 없기도 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야."

비쵸의 동료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게스톤은 자신

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아마 사적인 질문 -바람을 피운 적

이 있는가, 물건을 훔쳐본 적이 있는가 따위- 을 했다고 해도 게스톤은

기억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전부 다 털어 놓았을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라디오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거

지?"

비쵸의 동료가 다짐을 받듯 묻자 게스톤을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그렇게 들어가서는 들키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제가 없어졌으니 회사에서도 나름대로 보안대책을 세웠

을 거고요."

게스톤은 솔직하게 말했다. 비쵸는 그런 게스톤의 태도가 고맙기도 했

지만 한 편으로 경멸스럽기도 했다.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는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가 정

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자신의 동료를 파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락벳 전선에서도 그랬고, 그 뒤 반란군과 합류해서 생활하면서도 그랬

지만 비쵸는 휴먼 레이스들이 죽음 앞에서 떠는 모습을 보며 휴먼 레이

스라면 될 수 있으면 죽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죽고 싶지 않아 비굴해 지는 상대를 죽이는 건 스코르피안 레이스에

게 있어서 그리 긍지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마워. 친절하게 알려 줘서."

"다른,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안요원으로 가장해서 들어

가는 방법 같은 건데요 보안카드 두 장과 약간의 눈속임만 준비하면 됩

니다. 그건 제가 아는 가게가 있는데..."

"우리한테는 그렇게 준비할 시간이 없어. 그리고 일단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한테 필요한 시간은 1분이면 되니까. 비쵸?"

비쵸의 동료가 말했다. 이건 끝을 내라는 신호였다.

"꼭 죽여야 하는지 궁금하다."

비쵸가 묻자 묶여 있는 게스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연하잖아. 더 필요 없는데."

"그냥 마취 시켜도 일을 끝낼 때까지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그래? 그럼 이 친구가 줄을 풀고 도망칠 가능성은? 아니면 누군가가

이 친구를 찾아낼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 '거의' 없지. 하지만 이 친구를 죽이면 그럴 가능성은 없어. '거

의'가 아니라고."

비쵸의 동료가 냉정하게 말했다. 게스톤은 버둥거리면서 비쵸와 비쵸

의 동료에게 소리를 질러대었다. 하지만 둘 다 그런 절규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 말, 농담인가 궁금하다."

비쵸가 물었다.

"아니. 진담이야. 비쵸. 끝 내."

비쵸의 동료가 말했을 때, 게스톤은 거의 눈이 뒤집혀서 소리를 지르

고 있었다.

"다, 당신, 휴먼 레이스 아닌가요? 제, 제발... 같은 휴먼 레이스잖아요.

살려 주세요, 제발. 날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절대 줄 풀고 도망

치지 않을게요. 입을 막으면 되잖아요. 제발, 제발..."

게스톤은 온몸으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비쵸도 비

쵸의 동료도 약간의 동요조차 보이게 할 수 없었다.

"비쵸."

비쵸는 꼬리를 들어 재빨리 게스톤의 목에 찔러 넣었다. 신경계 독은

빠르고 정확하다. 게스톤은 잠시 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언제 소리

쳤냐는 듯 조용해졌다.

"이제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는 거야."

비쵸의 동료가 말했다. 비쵸는 자신의 동료가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고

느꼈다. 동족이 죽는 걸 봐서 그런 걸까? 비쵸 입장에서는 휴먼 레이스

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비쵸가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를 죽여야

했다면 비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

는 죽음 따위 앞에서 벌벌 떨지 않으니까.

"비쵸."

비쵸는 동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잠시 동안 지나간 일을 생각

하느라 넋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식당차가 들어올 거야. 들어서 알고 있지? 운전사를 해치우고

식당차로 주방까지 간 다음에 엘리베이터로 스튜디오까지 직통으로. 알

겠지?"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래. 그래야지."

동료는 이렇게 말하면서 비쵸의 어깨를 툭 쳤다. 비쵸는 이 행동이 친

근감을 표시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쵸는 휴먼 레이스에

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어깨를 친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이 많을수록 계획은 잘 실행이 되질 않는 법

이거든."

"시드니가 우리 뒷일을 잘 준비 해 두었을지 걱정이다."

비쵸가 말했다. 셔틀 스테이션에 잘 도착은 했을지, 구하기로 한 패스

는 다 구해두었을지. 이런 것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빠

져나간 뒤를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살아서 방송국을 걸어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다만 비쵸는 시드니가 최후의 순간까지 맡은 바 소

임을 다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시드니는 얼간이야. 걱정 마. 어차피 우리가 살아서 다시 시드

니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비쵸의 동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지금 그 말은 농담인지 아니면 거짓말인지 궁금하다."

"거짓말이야. 그리고 농담은 아니고."

"그럼 시드니를 모욕하는 것인가 궁금하다."

"맞아. 휴먼 레이스를 모욕하는 거지."

비쵸의 동료는 이렇게 말하곤 낄낄거렸다. 비쵸는 가끔 휴먼 레이스를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비쵸는 지금 동료를 이

해할 수 없었다. 동료의 말은 틀림없이 진심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

다고 해서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비쵸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휴먼 레이스를 '자학하는 휴먼 레이스'라고 생각했다.

"온다."

식당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동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

제 곧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지만 이 죽음은 헛되지 않을 거야. 락벳 행성에 자유와 평

화의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게 되겠지. 비쵸.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자네는 그저 용병이니까."

"...모든 것은 흙의 뜻대로."

비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을 수도 없었고, 더군

다나 동료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비쵸였다.

둘은 식당차를 세우기 위해 식당차의 앞으로 다가갔다. 의아한 표정의

운전자가 비쵸의 눈에 들어왔다. 저 휴먼 레이스도 이제 곧 죽게 되겠지.

'거의' 없는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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