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27화 (27/52)

12.Mirror image.

아이라 일행은 그랜드레드 여인숙을 네 번째로 찾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로스가 준 메모에 그랜드레드 여인숙에 네 번째로 적혀

있어서였다.

"계십니까?"

아이라가 말했다. 로웰과 린은 아이라의 뒤편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여인숙의 주인인 듯한 사내가 나타났다. 아이라는 사내가 뭔

가 준비하고 있다가 허둥거리며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알죠? 아이라 경사."

아이라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이곳 하이하버의 여관과 여인숙을 뒤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 몇 번을 경험하는 동안, 여관이나 여인숙의 사장에게는 아주

의례적인 일인 것처럼 접근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숨기고 있는 게 없는 사장이라면 당황하면서 현금이 든 봉투를 내밀거나

굽신거리는 게 보통이다. 이곳의 경찰들은 트집을 잡아서 뇌물을 요구하

는 일이 잦기 때문에 사장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하지만 정말 죄가 있거

나 뭔가 숨기는 구석이 있는 사장이라면 호통을 치거나 영장을 가지고

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드니. 그냥 시드니입니다."

"시드니 씨. 몇 가지 여쭈어 볼 게 있어서 왔어요."

"뭡니까, 또? 며칠 전에도 왔었잖아요."

사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기 점검이에요."

아이라가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신분증은 시경 직할반 신분증

이 아니라 특임조 임시 신분증이었지만 사장이 두 신분증의 차이점을 구

별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 놈의 정기점검 잦기도 하지! 당장 나가요. 나도 여기 아는 친구들

이 좀 있어. 당신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시드니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라는 뭔가 걸려들

었다는 느낌이었다.

"저희도 이런 거 하기 싫어요. 위에서 하라는 데 해야죠. 협조 해 주실

거죠?"

아이라는 친근한 공무원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미소를

접한 사장은 알아서 돈을 준비하던가 어색한 미소를 짓던가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랜드레드 여인숙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제길. 이런 식으로 자꾸 나오면 손님 끊어진단 말이에요. 다 아시면서

곤란하게..."

처음에는 화를 내며 강경하게 나왔다가 금새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

자 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로웰은 아무 말도 없이 아이라의

뒤편에 서 있기만 했지만 로웰이 느끼는 감정도 아이라와 별반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 아이라 경사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동안 장부를 좀 보여주시

겠습니까?"

로웰이 사장에게 말했고, 시드니는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면서 로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아이라는 린에게 눈짓을 보냈다. 린은 아이라가 사

장에게 쓸데없는 질문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지, 현상수배자 포스터는

잘 붙여 두었는지, 소방 도구는 잘 갖추어져 있는지 따위-을 하는 하지

방구석 구석을 만지며 의심이 갈만한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장부를 보니까 좀 이상한데요?"

로웰이 시드니에게 말했다. 시드니는 태연하게 뭐냐고 되물었지만 아

이라는 시드니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숙박 기록을 보니까 201호에는 아무도 묵어 가지 않았네요. 왜죠?"

"아, 201호는 VIP실입니다. 늘 비워두죠."

"하이하버 여인숙에 VIP실이?"

"가끔 높은 분들이 오거든요. 당신도 알만한 분들이죠."

시드니는 여유를 가장하면서 말했다. 이제는 협박이라. 아이라는 심증

을 굳혔다.

"그럼 좀 확인해 봐도 좋을 까요?"

"볼 거 없습니다. 지저분해서..."

시드니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나타났다. 아이라는 반사적으로 품에 있

는 니들건을 꺼낼 수 있도록 팔을 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데어드나그 레이스야."

린이 말하자 여인숙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아이라는 린을 바라보

았다. 린은 멍한 눈을 하고서 노란색 스프레이 통을 들고 있었다.

"데어드나그? 처음 듣는 레이스다."

린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시드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처음 들어. 그랜드레드를 거꾸로 읽은 것 뿐이야. 신경 쓰지 마.

이 넓은 우주에 있는 레이스를 누가 다 알겠어?"

"젠장. 트랜서였군."

시드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라를 밀쳤다. 그것은 너무나도 빠른 동

작이었고, 거의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시드니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집

어넣으려고 했다. 로웰은 바로 그 순간 시드니의 손을 향해 들고 있던

장부를 집어 던졌고, 장부는 보기 좋게 시드니의 팔에 적중했다. 하지만

시드니는 그대로 몸을 틀어 아이라를 발로 걷어 찼고, 아이라는 그대로

밀려나와 로웰과 부딪쳐 여인숙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하필 로웰은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과 부딪쳤고, 쓰레기통은 소음을

내며 쓰러졌다.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건 그 순간이었다.

"린!"

아이라가 소리쳤다. 그러자 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라를 향해

뛰었다. 린도 알고 있었다. 시드니가 손에 든 것이 단순한 장난감은 아닌

것이다. 시드니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 행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고, 하이하버의 뒷골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시드니는 아무 말도 없이 아이라 일행을 향해 몇 발을 사격하였다. 사

격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몇 번의 사격이 이어지자 행인 중 하나의

머리통이 폭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아이라는 니들건을 뽑아 들었지만

사격을 할 수는 없었다. 행인이 너무 많았다.

"쏴!"

로웰이 소리치자 아이라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이라는

하마터라면 허공을 향해서 공포를 쏠 뻔했다. 그래봐야 치명적인 흉기가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를 뿐이었다. 아이라는 공포 대신 소리를 지르며

시드니에게 사격을 가했다. 현장에서의 첫 발포였다.

"모두 엎드려!"

아이라는 이렇게 외치며 시드니에게 사격을 가했다. 시드니의 앞에 있

던 여인숙의 간판에 구멍이 뚫리자 시드니는 그대로 2층으로 뛰어 올라

갔다.

"저 녀석입니까?"

아이라가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 아이라에게 물었

다. 아이라는 고개를 처들었다. 낯익은 얼굴이 아이라를 내려다 보고 있

었다.

"쿨...란?"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쿨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이라는 푸우순 시에

서 보았던 쿨란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기억하는구나."

쿨란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당신 누구야?"

로웰이 벌게진 얼굴을 하고서 쿨란에게 소리쳤다. 로웰의 손에도 니들

건이 들려 있었다.

"연방 수사관입니다. 지금 탈영병을 추적 중이죠."

"지원군이로군. 녀석은 2층으로 도망쳤어요."

평정을 되찾은 로웰이 말했다. 아이라는 9밀리 권총을 들고서 쿨란의

뒤를 따라 온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비록 3년 만이었지만 아이라는 누

군지 금새 알아 볼 수 있었다.

"메이런?"

"아이라..."

둘은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감격적인 해후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지금은 추적이 먼저야. 메이런."

쿨란이 여인숙으로 달려 들 준비를 하며 말했다. 메이런은 아이라와

함께 있는 휴먼 레이스를 바라보았다. 로웰. 헤드헌터였다. 메이런은 푸

우순 시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아는 얼굴 둘을 동시에 보게 되자 혼

란스러워 졌다. 두통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았

다.

"망설이지 마라."

쿨란이 충고했고, 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넷은 순식간에 여

인숙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하지만 2층으로 곧바로 뛰어갈 수는 없었다.

2층에서 조준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저 친구 이름이 뭐죠?"

"시드니. 시드니에요."

아이라가 쿨란의 질문에 답했다.

"시드니! 포기해! 여긴 완전히 포위됐다!"

"입닥쳐!"

2층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고, 1층에 있

던 벽면에 니들탄이 박히며 구멍을 만들었다. 하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쿨란은 대답대신 2층을 항해서 K-5를 두 번 쏘았다. 그리곤 기다리지

않고 2층을 향해 뛰어 올랐다.

아이라는 총을 들고 있는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메이런도 아이라만큼

긴장된 얼굴이었다.

"너, 처음이지?"

메이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너도 처음이구나."

아이라가 대답했다. 로웰은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쿨

란을 따라서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메이런과 아이라도 그 뒤를 따랐다.

메이런과 아이라가 2층으로 가는 계단 중간쯤을 오를 때 총성과 폭발

음이 들렸다. 둘은 그대로 엎드렸다. 아이라는 메이런을 바라보고 있었

다. 그리고 메이런도 아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어. 올라와."

잠시 후 2층에서 쿨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런과 아이라가 2층으

로 올라갔을 때, 둘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걸레조각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시드니의 시체였다. 가슴과 배에 니들탄을 맞은 모양이었다.

아이라는 이런 시체를 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아이라는 걱정스

러운 눈빛이 되어서 메이런을 보았다. 메이런은 담담해 보였다.

"전에도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이라가 시체에 다가서면서 말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푸우순 시에는 교통사고가 잦아."

메이런이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이하버는 경찰과 군인들로 완전히 통제가 되었

다. 그랜드레드 여인숙은 당연히 폐쇄가 되었고. 그랜드레드 여인숙은 순

식간에 수사관들에 의해 엉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M.I 수사관들은 가

구를 조각조각으로 토막냈고, 가전제품들을 부품별로 분해했다. 모든 일

은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M.I 수사관들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로웰은 현장을 지휘하면서 쿨

란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당신, 경찰관이요?"

쿨란이 물었지만 로웰은 대답을 회피했다.

"사격 솜씨가 좋으시더군요. 당신이 먼저 다리를 쏴서 제가 명중시킬

수 있었어요."

로웰이 쿨란에게 말했다. 쿨란은 인상을 찡그렸다.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쿨란은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그야..."

"죽은 휴먼 레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당신, 경찰관이 아니죠?

군인?"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M.I에서 근무하는 로웰 중령입니다."

"군인일 줄 알았어. 메이런. 너한테는 헤드헌터라고 했다지?"

쿨란이 들으라는 듯 크게 중얼거렸다. 로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이

라는 로웰의 여유를 잃은 표정을 보면서 로웰도 저럴 수 있구나 싶었다.

"밖에선 난리가 났군."

쿨란이 여인숙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몸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서

막고 있는 군인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경찰들 사이에서 몸싸

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 친구들 좀 어떻게 해 보겠어요?"

로웰이 아이라에게 부탁했다. 아이라는 자신의 동료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

을 것 같았다. 일단 아이라는 현재 포레스트 회장의 지휘를 받고 있는

수사관이었고, 이 사건은 M.I에서 수사할 수밖에 없는 국가기밀이 얽혀

있는 사건인 것이다.

아이라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여인숙 밖으로 나섰다.

"어이. 아이라!"

아이라를 알아 본 자필루스 경위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자필루스

경위는 군인들에게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 우릴 못 들어가게 막고 있다구!"

"로스는요?"

"저 쪽 뒤편에 있어. 반장한테 전화하고 있을 거야."

"로스한테 전해 주세요. 여기 사건은 제가 책임지고 나중에 인계해 주

겠다고요."

"젠장. 아이라, 너마저도 우릴 돌아가라는 거야? 경찰이 관할 구역에서

돌아가는 거 봤어?"

"지금 보게 될 거예요. 미안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자필루스는 몇 마디 애타게 아이라

를 부르다가 결국 포기했다.

"여기서 오래 근무했나봐?"

여인숙으로 되돌아오는 아이라에게 메이런이 물었다.

"웨이팅하우스 시에 온 날부터 근무했으니까."

"반가워, 정말."

메이런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라에게 말했다.

"응. 나도 보고 싶었어. 인사가 좀 늦었네. 우리 둘 다."

아이라는 메이런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이런도 아이라의 손을 맞잡았

다.

사실 메이런과 아이라에게는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도 모자란 유대가 있

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3년의 세월이 둘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

고 있었다.

"넌 트랜서가 됐니?"

"그럭저럭. 넌 경찰이구나. 경비대일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너도 어쩌다 보니까 트랜서가 된 거겠지?"

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저 휴먼 레이스, 본 적 있어."

메이런이 로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이라의 눈이 커졌다.

"언제?"

"푸우순 시에서."

"혹시 헤드헌터라고 했어?"

"응. 너한테도 그랬나 보네?"

"M.I에서 일하는 정보 장교들은 외부인들한테는 자기를 헤드헌터라고

하나 보지."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로웰이 왜 메이런을 찾아갔는지, 또

왜 헤드헌터라고 자신을 밝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라! 린한테 좀 부탁 해 줄래?"

로웰이 아이라를 부른 건 그 때였다. 아이라는 로웰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요?"

"이 스프레이 말이야. 다시 한 번 트랜스 해 달라고 해 줘."

아이라는 린에게 노란색 스프레이 통을 내밀었고 린은 스프레이 통을

만지며 스프레이 통에 남아있는 기억을 읊조렸다.

"노란색으로 칠했어... 밖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기다리던 건 누구야?"

"휴먼 레이스..."

린은 이렇게 말하곤 쿨란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저렇게 생겼어."

순간 쿨란의 얼굴이 눈에 뜨일만큼 굳어졌다.

"이봐! 지금 당장 스테이션에 전파해요. 범인은 둘. 하나는 노란색으로

위장한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 다른 하나는 휴먼 레이스. 하여간 노란색

이면 무조건 잡아넣으라고 해요. 녀석들은 무장했고, 극히 위험해요. 가

능하면 생포하는 게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사살하라고 해요. 빨리 전파

해요. 알았죠?"

로웰이 지나가던 M.I 수사관에게 지시했다. 메이런은 린이 쿨란을 지

목한 것이 쿨란과 탈영병이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웰은 그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 꼬마, 트랜서야?"

메이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꼬마가 아니라 린이야. 그리고 물건하고만 트랜스 할 수 있어."

"물건하고?"

메이런은 물건과 트랜스를 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린이 하고 있는 행동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메이런은 나중에 한

번 물건을 트랜스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웰 중령님. 이걸 라디오 안에서 찾았습니다."

M.I 수사관 하나가 로웰에게 봉투를 건네면서 말했다. 로웰은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 안에는 패스와 셔틀 탑승권 석장이 들어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6 -

"막 나가려던 참이었나 보네요. 오늘 저녁 셔틀이에요. 콜로니 행 셔틀

인 걸 보니까 거기서 다른 행성으로 빠져나갈 계획인가 보네요."

로웰이 말했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기밀문서를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측이 맞았군

요."

아이라가 말했다.

"아마 챠오챠오가 숨겨 놓은 기밀문서를 찾기 위해서 웨이팅하우스로

들어 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아요. M.I 전병력을 풀어서라도 셔틀 스

테이션을 지켜야겠어요. 여기도 최소 인원만 남기고 철수하고. 아이라.

소문이 나면 곤란하니까, 포레스트 회장한테 연락해서 응급차 한 대 부

탁해 줘요. 시드니 시체를 몰래 실어 갈 수 있는. 병원에도 미리 말 해

놔야 해요. 일단 시드니를 응급환자로 처리해 놓고 나중에 응급환자 명

단에서 빼자는 거예요. 병원에는 시드니가 도망쳤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그러면 아마 녀석들이 이리로 오던가, 아니면 접선하기로 한 장소로 옮

길 거예요. 중간에 접선 포스트 몇 개를 마련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셔틀 스테이션으로 가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결국 스테이

션에서 잡을 수 있겠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로웰은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않고 아이라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아이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드니를 응급 환자로 꾸민다는 건 찬성이에요, 로웰 중령님. 그럼 중

령님은 지금부터 스테이션에서 기다리실 건가요?"

"그래야죠."

아이라와 로웰이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고 있을 때 쿨란이 끼어들었

다.

"저하고 메이런은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겠습니다."

쿨란이 말했다.

"라디오 방송국은 왜죠?"

"아까 린이 스프레이를 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라디오 방송국

보안요원을 납치한 건 틀림없이 녀석들입니다."

"그런데요?"

"기밀문건이 라디오 방송국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그래서 찾아보시겠다는 거죠?"

쿨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웰의 얼굴에 여유있는 미소가 떠올

랐다.

"이미 찾아 가지고 방송국을 떴을 거예요. 아니라고 해도 곧 그렇게

될 거고. 쿨란.

당신 프리랜서 연방 수사관이죠? 원래는 하이어드고."

로웰은 앙갚음을 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탈영병들을 잡지 못하면 보수를 받지 못하겠죠. 그런데 지

금 이야기를 듣자 보니 셔틀 스테이션에서는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거

의 없다는 게 쿨란 생각이죠? 그래서 확률은 떨어지지만 방송국에서 잡

아 보겠다는 거고."

쿨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라디오 방송국 쪽에도 누군가 보내려

고 했으니까. 쿨란이 해 준다면 더 좋죠."

로웰은 쿨란의 속을 꽤뚫어 보고 있다는 데에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메이런. 아직도 가끔 머리가 아프죠? 하이어드와 함께 일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잖아요."

아마 로웰은 이 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메이런. 명함 가지고 있죠?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당신을 원하는 조

직이 있어요. 그리고 나는 메이런을 그곳으로 보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요. 잘 생각해 봐요."

메이런은 로웰에게 '군인도 공무원이죠? 공무원 일은 죽어도 하지 않

을 거예요.'하고 쏘아 주려다가 말았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저도 가겠어요."

뜻밖에도 아이라가 이렇게 말했다.

"어딜가겠다는 거죠?"

로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라디오 방송국이요. 여기 연방 수사관과 함께 가겠어요."

아이라가 말하자 로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긍정의 뜻을 표했

다.

"아이라도 같은 생각인가요? 스테이션은 이미 군이 장악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뿐이에요. 어차피 연방 수사관만

달랑 라디오 방송국으로 보낼 수도 없는 일 아닌가요? 응급차하고 병원

문제는 좀 부탁드릴게요."

로웰은 좋다고 말했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아이라..."

"경사에요."

아이라가 쿨란의 말을 거들었다.

"아이라 경사. 그럼 부탁합니다."

메이런은 쿨란이 아이라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걸보고 작은 충격을 받

았다. 공무원이라면 치를 떠는 쿨란이 저렇게 쉽게 공무원에게 예를 표

하다니. 게다가 아이라는 자신과 동갑이었다. 하지만 쿨란은 그런 문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일행은 M.I에서 내준 호버카로 방송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라디오 방송국까지. 빨리."

아이라가 호버카 조종사에게 지시했다.

"아이라. 너 이제 정말 공무원이구나."

메이런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이라는 메이런에게 '너는 정말 하

이어드가 되었구나'하고 말해 줄 수는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같이 가자고 했지, 아이라 경사?"

쿨란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이 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려웠다.

사실 아이라도 자신이 왜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겠다고 했는지 잘 모를

일이었다. 메이런 때문에? 아마 굳이 이유를 달자면 메이런 때문이었다

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감격적인 해후를 즐기려고 했다고 해 두죠. 안 그래, 메이런?"

아이라가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메이런은 아이라가 지금 상황을

곤란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래서 메이런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호버카는 사이렌을 울리며 라디오 방송국을 향해 질주해 가기 시작했

다.

만약 이들이 하수구를 조사해 보았다면 노란 색 스프레이는 이미 씻겨

져 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수구까지 조사하기

에는 시간도, 인력도 부족했고 만약 조사했다고 하더라도 노란색 스프레

이를 씻어 냈다는 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을 거였다.

"그런데, 쿨란."

호버카에서 메이런이 쿨란에게 물었다.

"그 락벳 탈영병하고 쿨란하고 닮은 거, 우연인가요?"

"우연은 아니야."

"그리고 그 밀라노라는 휴먼 레이스를 본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

데 왜 밀라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죠?"

"밀라노 반장? 우리 반장님도 만나 봤어?"

"응. M.P.O에서."

메이런이 말했다.

메이런은 지금이 쿨란과 밀라노 총경과의 관계를 물을 기회라고 생각

했다. 쿨란은 밀라노 총경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밀라노 총경은 그런

기억 없다고 했다. 이 사실은 틀림없이 탈영병인 락벳 행성인과 쿨란이

닮았다는 것과 관계가 있으리라.

"메이런. 내가 왜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자고 했는지 알 수 있겠니?"

메이런이 막 물으려는데 쿨란이 이렇게 먼저 물었다.

"그야..."

메이런은 말을 얼버무렸다. 특별히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뿐더

러 굳이 대답하자면 로웰이 했던, 쿨란을 비하하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녀석은 거기에 있어. 로웰 중령이 흥분했던 거지. 녀석을 잡아야 한다

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까 다른 건 다 잊어버린거야."

"녀석이라면... 탈영병?"

"사실 탈영병은 하나 뿐이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락벳 행성인이고. 아

마도 탈영병은 락벳 행성인에게 포섭 된 거겠지."

"쿨란 씨."

아이라가 끼어들었다.

"당신, 락벳 행성인인가요?"

쿨란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휴먼 레이스에요. 아이라 경사."

메이런은 혼란스러웠다. 늘 가깝게 지켜보았던 쿨란이 이렇게 멀게 느

껴진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로즈웰 형 레이스가 휴먼 레이스를 용병으로 쓴 건 알고 있죠? 그런

데 왜 휴먼 레이스를 용병으로 썼을 까요? 그건 락벳 행성인 때문이었어

요. 락벳 행성인은 휴먼 레이스와 흡사하거든요. 메이런. 내가 언젠가 말

한 적 있지? 락벳 행성인은 전 우주에서 가장 흉폭하고 강인한 레이스라

고. 휴먼 레이스도 마찬가지야. 전 우주에서 가장 흉폭하고 강인하지."

"그럼..."

"휴먼 레이스가 가지고 있는 기술 중에 가장 훌륭한 기술이 뭔지 아

니? 그건 바로 유전공학이야. 다른 레이스들은 상상도 해 보지 않은 기

술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 그래. 나는 그 기술로 태어난 휴먼 레이스야.

보통은 클론이라고 부르지."

메이런은 클론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복제인간... 이라는 뜻인가요?"

아이라가 물었다.

"그래요. 아이라 경사. 복제인간 기술이 처음으로 완성되었을 때, 그러

니까 최종전쟁도 있기 전의 일이죠. 그 때부터 휴먼 레이스들은 복제인

간 기술로 전쟁을 준비했어요. 몇 대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몇 가지 형태

의 군인 클론들을 뽑아냈지요. 강하고, 사악하고, 죄책감 따위 느끼기 않

는 전쟁 기계."

쿨란의 목소리는 시니컬하게 들렸다.

"...왜 그런 기술을 전쟁에 썼죠?"

아이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메이런은 쿨란의 얼굴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말했잖아요. 휴먼 레이스는 전 우주에서 가장 흉폭하고 강인하다고.

행성 밖으로 비행 할 수 있는 기술도 만들기 전에 행성을 날려 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 낸 레이스가 바로 휴먼 레이스에요. 메이런. 그런데

나는 너무 자의식이 강했어. 실패작이었지. 나와 같은 클론들은 부대를

탈출했어. 그리고 락벳 행성으로 망명해 버렸지. 그리고 락벳 인이 되었

어."

"그러면..."

"나는 휴먼 레이스다."

쿨란은 이렇게 말하곤 입을 굳게 다물었다. 호버카는 계속해서 라디오

방송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고, 라디오 방송국에 닿을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호버카의 조종사가 정적을 깨었다. 쿨란이 가장 먼저 문을 내렸고 메

이런이 그 뒤를 따랐다. 린과 함께 내린 아이라가 마지막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건물 앞에 서서 쿨란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뭔가 수상

한 것이 있나 살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락벳 행성인하고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가 어떻게 라디오

방송국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죠?"

아이라가 쿨란에게 물었다.

"메이런이 라디오를 사야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몰랐을 거에요,

아이라 경사."

쿨란은 이렇게 말하곤 라디오 방송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라

와 메이런은 그 뒤를 따랐다.

정문에서 아이라는 홍보부장 쉬퍼를 불렀다.

"아이라 경사님.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그 실종된 우리 직원

때문인가요?"

쉬퍼는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예. 좀 조사해 보려고 왔어요. 이 쪽은 연방수사관 쿨란, 그리고 그

옆은 쿨란의 보조인이이에요."

아이라가 쉬퍼에게 쿨란과 메이런을 소개시켜 주었다.

"혹시 저 본 적 있지 않습니까?"

쿨란이 쉬퍼에게 물었다.

"글쎄요. 처음 뵙는 분 같은데요."

쉬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럼 좀 찾아보겠습니다. 저를 본 사람을요."

쉬퍼는 쿨란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아이라는 쉬퍼에게 잔말말고

동행하라는 눈짓을 보냈고, 쉬퍼는 별 수 없이 쿨란 일행을 따라나설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절 본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

결되겠지요."

"더 간단하게 해결 될 것 같은데요."

아이라가 이렇게 말하며 품에서 니들건을 뽑아 들었다. 아이라의 눈은

계단을 향해 있었고, 나머지도 아이라를 따라 눈을 계단 쪽으로 돌렸다.

계단에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 두 생명체가 서 있었다. 어깨가 비정상

적으로 넓은 한 쪽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쿨란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쵸!"

아이라가 니들건을 겨냥하며 소리쳤다. 다음 순간 쿨란과 메이런이 9

밀리 K-5를 뽑아들었고, 쉬퍼는 머리를 감싸며 몸을 숙였다. 쿨란과 똑

같은 얼굴의 사내가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가자 아이라는 니들건의 방아쇠

를 당겼다. 그러자 어깨가 넓은 쪽이 상자를 던졌다. 니들탄은 상자에 명

중했고, 상자는 굉음을 울리며 폭발했다. 상자에서 튀어나온 살덩이들이

사방으로 튀어서 일행은 모두 몸을 숙이고 잠시 정지해 있었다. 상자 안

에 들어 있던 것은 식료품으로 쓰일 돼지고기였다.

"방송하는 곳이 어디야!"

쿨란이 쉬퍼에게 소리쳤다.

"저,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린을 부탁해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쿨란과 메이런

도 거의 동시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메이런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숨이 가빴다. 자신이 총을 들고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메이런은 그 와중에

도 쿨란의 얼굴을 살폈다. 쿨란과 같은 얼굴을 쫓고 있다는 건 비현실적

인 것만 같았다.

"스튜디오쪽으로 갔을까요?"

계단을 올라섰을 때 아이라가 물었다.

"거기가 방송 하는 곳 맞아요?"

쿨란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은 방송을 노리고 있을 거예요. 나중에 설명 할 테니까 빨리."

아이라는 스튜디오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행이 뛰는 발소리에

사무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경찰입니다! 위험하니까 모두 들어가요!"

아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스튜디오 쪽으로 뛰어갔다.

스튜디오 앞에 다다랐을 때, 일행은 비쵸와 비쵸의 동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둘은 막 스튜디오로 들어가려던 참이었고, 비쵸의 손에는 니들건

이 들려 있었다.

"엎드려!"

쿨란은 이렇게 말하며 K-5의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비쵸의 몸에 탄

두가 명중되었지만 박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격 때문에 비쵸는 바로

응사하지는 못했다. 아이라는 비쵸를 겨냥하고 있었다.

"쏴!"

쿨란이 외쳤지만 아이라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아이라의 얼굴에

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젠장. 놓쳤어."

쿨란이 중얼거렸을 때, 비쵸와 비쵸의 동료는 이미 스튜디오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올 것 같아, 아이라 경사?"

쿨란이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아이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메이런은

아이라를 바라보았다. 아이라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

다. 메이런은 아이라에게서 풍겨나오는 심한 자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은 스튜디오 앞까지 뛰어갔다. 스튜디오 앞에는 박살이 난 니들건

이 떨어져 있었다. 쿨란의 사격에 명중된 모양이었다. 쿨란은 부서진 니

들건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번에는 놓치지 마."

아이라는 니들건을 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쿨란이 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커먼 스코르피안디아 레이

스가 가장 앞에 서 있던 쿨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쿨란은 방아쇠를 당겼

지만 9밀리 탄두는 스코르피안디아 레이스의 움직임을 아주 잠시 멈출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잠시 동안, 아이라는 쿨란을 찌르기 위

해 쳐든 비쵸의 꼬리를 명중시킬 수 있었다.

비쵸의 꼬리가 폭발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비쵸의 외골격이 파편처럼

날렸고, 그 중 하나는 메이런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메이런은 격렬하게 품어져 나오는 비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제 비쵸는 자신이 더 이상 독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을 느끼

고 있었다. 하지만 비쵸는 정작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음 순간, 비쵸는 아이라를 집게발로 집어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니들건으로 무장한 아이라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쵸는 꼬리

의 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라를 힘껏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이라의 니들건이 다시 한 번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꼬리가 아니라 몸통이었다. 자동으로 사격했는지 비쵸의 몸

에는 십 수개의 니들탄이 동시에 박혀 들어갔고 다음 순간 비쵸의 몸이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쿨란과 메이런은 파편을 피하기 위

해서 몸을 숙였다.

"락벳!"

쿨란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런도 그 뒤를

따랐다.

둘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스튜디오의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

리고 쿨란과 메이런은 예상 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라가 들

고 있던 니들건은 쿨란의 얼굴을 한 락벳인의 손에 가 있었고 아이라는

락벳인의 인질이 되어 있었다.

"포기해."

쿨란이 락벳인을 겨냥하면서 말했다. 녹음실 안에 있던 DJ는 몸을 숙

이고 있었고, 밖에 있던 연출자도 엎드려 있었다.

"뭘 포기하라는 건가, 형제."

락벳 인이 말했다.

"형제라고?"

"나와 같은 클론이잖아. 안 그런가, 형제?"

락벳 인은 쿨란을 형제라고 부르며 아이라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

었다.

"형제라고 부르지 마. 나는 휴먼 레이스야. 너희가 락벳인이 된 것처

럼."

쿨란은 락벳 인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메이런도 락벳인을 겨냥하

고는 있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이라의 얼굴

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그럼 우리를 배신자라고 부르는가 보군. 우리가 너희를 배신자라고

부르는 것 처럼."

"나는 아무도 배신한 적이 없어!"

쿨란이 소리치자 스튜디오안이 쩌렁쩌렁울렸다.

"아. 흥분하지 마, 형제. 우리, 같은 훈련소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흥분

하면 총은 빗나가기 마련이지."

락벳인은 녹음실 쪽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아이라의 다리는 질

질 끌려가고 있었다.

"난 너희가 기밀문건을 방송하겠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믿었어. 기밀문

건을 가지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 할 테니까 말이야."

쿨란이 말했다.

"그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방송을 해야 했지."

락벳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평소에 쿨란이 짓는 미소보다 몇

배는 더 차가워 보이는 미소였다.

"내가 방송할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어?"

락벳인이 녹음실의 문을 열면서 말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7 -

"이 테이프에는 포레스트 회장의 육성이 담겨 있어. 전쟁에 대한 육성

이지. 들어보면 알 거야. 이봐. 밑에 숨어있는 녀석!"

락벳 인이 연출자를 불렀다. 연출자는 손으로 가리면 니들탄을 막을

수 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일어났다.

"이 테이프, 방송해."

락벳 인이 테이프를 던졌고 연출자는 테이프를 받았다.

"지금 방송되고 있나?"

"아, 아닙니다. 조금 전에 중지시켰습니다."

"어서 테이프를 틀어. 포레스트 회장의 육성이 들릴 거야. 포레스트 회

장은 슬픈 어조로 말하지. 락벳 휴전 전선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에 락벳

행성인이 공격을 가해서 휴먼 레이스가 죽었다는 내용이야."

"그게... 군사 기밀인가?"

쿨란이 물었다. 락벳 인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지. 왜냐하면 이 일은 다음 달에 일어날 일이거든. 넌 나가!"

락벳 인이 DJ에게 소리쳤다. DJ는 머리를 감싸고 스튜디오를 뛰어나

갔다.

"이제 알겠지? 로즈웰 레이스 녀석들이 미리 알려 준 거지. 전쟁이 시

작되면 행성 어스의 휴먼 레이스를 빠르게 동원하기 위해서 말이야. 우

리가 화물선을 먼저 공격했다고? 정말 대단한 거짓말이지.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국민들은 큰 거짓말일수록 잘 믿는다는 걸 말이야. 아마도 로

즈웰 레이스 녀석들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미리 알려 주었다..."

쿨란이 중얼거렸다.

"맞아. 녀석들이 꾸민 사건이 일어나면 일어난 소식이 여기까지 전해

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연락 스테이션을 이용한다고 해도 한 달

은 넘게 걸리지. 로즈웰 레이스의 전법을 알지? 단시간에 물량을 모아

한 번에 박살 내는 전략 말이야."

락벳 인이 말하자 아이라는 그 동안의 모든 일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

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군수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던 일, 군에

서 M.I 정보장교를 동원해 트랜서와 수사관을 모으려고 한 일... 모든 일

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이야기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

둥치가 가리키고 있던 방향은 전쟁이었다.

"어서 방송해! 그리고 여기 마이크도 작동시키고. 내가 멘트를 넣지.

내가 포레스트 회장의, 또 빌어먹을 로즈웰 레이스의 진실을 밝히겠어!"

락벳 인은 흥분해 있었다. 쿨란은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쿨란의 눈빛은

메이런에게 뭔가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듯 했다. 메이런이 쿨란의 의도

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메이런은 너

무나도 분명하게 쿨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메이런은 몸을 숙

여 연출자에게 다가갔다.

"진실을 밝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쿨란이 물었다. 락벳 인은 발로 녹음실의 문을 닫았다.

"전쟁을 막을 수는 없어.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휴먼 레

이스에게 진실을 알릴 수는 있지. 그거면 족해. 휴먼 레이스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

락벳 인의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스튜디오안에 퍼져 나왔다. 연출자는

쿨란에게 마이크를 대 주었다. 녹음실 안으로 통하는 마이크였다.

"이해할 수 있어, 그 마음. 하지만 그건 바보짓이야."

"나도 알고 있다. 이건 바보짓이지. 하지만 행성 어스에서 편하게 살면

서 로즈웰 레이스 똥구멍이나 핥는 것보다는 덜 바보짓이야. 내가 이렇

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나? 나는 휴먼 레이스가 진정으로 내 형제라고 느

껴."

락벳 인이 말하는 동안 메이런은 연출자가 알려준 벽면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혹시라도 락벳 인을 자극할 까봐 총도 내려놓은

채였다.

"방송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건가?"

쿨란이 물었다.

"이 친구는 죽는다. 너희들도 죽어. 옆의 젊은 친구."

벽면에 서 있던 메이런은 동작을 멈추었다.

"이제 곧 전쟁이 날 거야. 자네도 징집될 지 몰라. 그래도 내가 방송하

는 걸 막을 생각인가?"

메이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해 봐야 들릴리도 없었다. 메이

런은 유리벽 저편에 있는 락벳 인의 얼굴을, 쿨란의 얼굴과 완전히 같아

보이는 얼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는 호흡이 곤란한

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형제. 누구나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어. 이 정도면 어때... 이만

하면 됐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맞아.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전장에서 살아본 자는 그렇게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않지.

형제여. 그대도 알고 있어. 자신이 하고 있는 게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아마 연방경찰의 개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겠지. 솔직히 말해 봐. 내가

부럽지 않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어."

락벳 인의 목소리는 스튜디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

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쿨란의 가슴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메이런은

쿨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쿨란은 괴로워 하고 있었다. 락벳 인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세상에 옳은 일 따위는 없어."

쿨란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이런은 연출자가 알려준 스튜디오

조명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튜디오안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다

만 녹음실만 밝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락벳 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안쪽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다. 안쪽에서

보이는 것은 자신의 얼굴뿐일 거였다.

락벳 인은 거울을 깨기 위해 니들건의 총구를 아이라의 머리에서 떼어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사이 1초의 시간이 흘렀다.

쿨란이 방아쇠를 당겼다. 메이런은 그 순간 거울 속의 자신을 쏘는 마

음을 가진 건 락벳 인이 아니라 쿨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울이 깨어졌고, 락벳 인의 머리에 9밀리 탄두가 박혀 들어갔다. 락벳

인은 힘없이 뒤로 쓰러지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생체에 닿지 않은 니들탄

은 아무 의미 없이 천장에 가 박혔을 뿐이었다.

메이런은 다시 불을 켰다.

"타이론한테 들었어."

쿨란이 메이런에게 말했다.

"아무리 기밀이라지만 징조는 보이기 마련이지. 사실 헤드헌터가 널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조금은 의심했었지. 모든 걸 전부 다 알 수

는 없었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

쿨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건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온 것은 로스 경사였다.

"녀석들, 정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어. 식당차 조종사와 주방장을

죽이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 시체는 금방 들켰고, 그래서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어."

로스가 아이라에게 말했다.

아이라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메이런은 아이라

와 그 옆에 앉아 있는 린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겠구나."

아이라게 메이런에게 말했다. 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났잖아."

메이런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쿨란은 멍하니 앉아서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쿨란도 충격이 큰 모

양이었다. 메이런은 쿨란이 몹시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

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라게 메이런에게 물었다.

"푸우순 시에?"

"다시 노을을 보고 싶어. 너하고."

아이라가 말했다. 메이런은 아이라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 뿐, 좀처럼 손이 나가지는 않았다.

"당신이 메이런인가요?"

로스가 물었다.

"나하고 같이 있어."

메이런이 대답하려는 데 린이 메이런에게 말했다. 메이런은 린을 내려

다 보았다.

"여기 나하고 같이 있어."

린이 말했다. 메이런은 언젠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느꼈다. 그

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심한 두통을 느꼈다. 머리가 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 목:[하이어드] Missing Transer.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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