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에필로그.
어두운 조명 아래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카니데
레이스가 포레스트 회장의 주변을 오가고 있었고, 아이라는 린과 함께
서 있었다.
"나하고 함께 있어요, 아이라 경사."
포레스트 회장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아뇨. 사건은 끝났어요. 오늘 제 짐도 빼 주세요. 다시 기숙사로 돌아
가야죠."
아이라가 대답했다.
"알겠지만,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날 거에요. 그런데 M.I에서 아이라를
눈여겨보는 것 같아. 전쟁에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위험하겠죠."
"전쟁이 나면 군인은 죽는 거야."
포레스트 회장은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라에게
말했다.
"내 곁에 있으면 여기서 경찰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요. 계급도 경위가
되겠죠. 여기 치안 유지 담당관을 맡아서 편하게 있을 수 있어요. 전쟁이
끝나면 경감이 될 거에요. 원한다면 우리 라디오 그룹과 연락할 수 있는
좋은 자리쯤 줄 수 있어요."
아이라는 스멀거리는 기분을 참기가 힘들었다. 포레스트 회장의 뒤편
으로 카디데 레이스의 모습과, 포미사이드 레이스의 모습과 또 아이라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했다.
"빌리 대신인가요? 아니면 안토니우스 대신이라고 할까요?"
아이라는 포레스트 회장에게 냉소를 보내며 말했다. 포레스트 회장의
얼굴이 심하게 굳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아뇨. 죽는 건 싫어요. 무섭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전쟁에 나가려고 하는 거지?"
포레스트 회장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어요. 자신이 옳다고 믿
는 건 해야 한다는 거에요."
"고작 탈영병이 한 말에 혹한 건가? 나는 아이라 경사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포레스트 회장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리자 카니데 레이스들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적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거죠. 그리
고..."
아이라는 잠시 망설였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할까 싶어서였다.
"M.I일도 생각보다는 좋을 것 같아요. 로웰 중령, 참 괜찮은 분이더라
고요."
포레스트 회장의 굳은 얼굴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아이라는 포레스
트 회장의 화난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꽤
나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포레스트 회장님."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며 포레스트 회장을 등졌다.
"이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포레스트 회장이 아이라의 등에 대고 마치 저주처럼 읊조렸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반드시."
아이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장실을 나섰다. 그러자 회장실에 휴먼
레이스라고는 포레스트 회장 혼자가 되었다.
욕조의 수증기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셔틀은 올 때 보다 더 나은 것이었다. 연방수사국에서 특별
편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쿨란과 메이런은 연방수사국 전용 셔틀의 VIP
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마음만큼은 무거웠다.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니?"
쿨란이 메이런에게 물었다.
"예."
메이런이 대답했다.
"세포가 하나 이상 있는 생명체라면 전쟁터에 자진해서 가는 일 따위
는 하지 않아."
쿨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메이런의 마음을 돌
릴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세포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체라면 그런 걸 선택 할 수도 없지요."
메이런이 말했다.
"나는 전쟁을 안다."
쿨란은 이제 설득하려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메이런은 쿨란이 상당히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끔찍한 일이지. 아마 생명체가 행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게 전쟁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 만... 멈출 수는 없어요."
메이런도 쿨란을 설득하려는 건 아니었다. 메이런은 그저 자신의 사정
을 이야기 하려는 것 뿐이었다.
"린을 만났을 때 느꼈어요. 멈추면 쓰러져 버릴 거에요. 키티-본처럼."
메이런이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둘은 한동안 대화를 하지 않았다. 셔틀은 무료하게 허공을 날고 있을
뿐이었다. 창밖으로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쿨란. 그 락벳 인, 정말로 부러웠어요?"
한 참 사이를 둔 다음에 메이런이 쿨란에게 물었다.
"거울에 비치는 건 말이다, 자신의 모습이 아니야. 닮아 있을 뿐이지.
그래서 거울에 비치는 상(像)을 사진이나 홀로그램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단다. 그냥 미러 이미지, 거울에 비친 이미지라고 할뿐이지."
쿨란이 대답했다. 그리고 한 동안 둘의 대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쿨란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도
시의 풍경이 노을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고, 쿨란은 전화를 받았다.
"제귤러...입니다. 부탁... 부탁한... 일."
더듬거리는 목소리였다. 쿨란은 제귤러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서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친구분을 찾으셨지요?"
"부탁한... 일..."
"죄송합니다. 하이어드 일은 이제 끝입니다. 돈은 되돌려 드리지요. 제
가 잘 아는 카운셀러를 한 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부탁... 일."
"저는 더 이상 하이어드가 아닙니다."
쿨란은 단호하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일을 할 건데?"
쇼파에 앉아 있던 타이론이 쿨란에게 물었다.
"내가 원래 하던 일."
"입대하려고? 그 나이에?"
쿨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쿨란의 눈에 사무실은 마치 텅 비어있는 듯
했다.
"돈도 꽤 모아 두지 않았어? 그냥 별장이나 하나 짓고 거기서 살면 어
때? 나도 가끔 놀러가고 말이야.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쿨란이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돈으로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의미가 있는 경우에나 그렇겠지."
쿨란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이런의 빈자리는 이제 다
시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핑키의 빈자리는 메이런이 채웠지만 이제
메이런은 없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라.
쿨란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을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Missing Transer 편 끝
[하이어드]
보낸이:김상현 (무원 )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