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30화 (30/52)

1.주둔군

문명을 가진 생명체의 역사는 그 생명체가 벌여 온 전쟁의 역사와

동일하다.

고대의 누군가가 남긴 이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우주에

서 행성간 여행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일치한다. 문명과 문명의 만

남은 늘 전쟁을 낳았고, 개척의 역사라는 말은 살육의 역사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락벳 전선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누군가의

개척. 누군가의 생존. 누군가의 멸망. 문명이 발생한 이래 끊임없이 반

복되어온 저주받은 역사.

공식 발표로는 정통정부군의 공격 셔틀이 해방정부군의 화물선을 공

격함으로 해서 전쟁이 시작된 걸로 되어있었지만, 그걸 믿는 이는 거

의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것은 어느 한 쪽의 자작극이라고도 했고,

또 다른 소문에 따르면 화물선 공격이라는 건 거짓이고 실은 누군가의

암살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게 소문이고 어떤 게 사실인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또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전쟁은 일단 시작되면 한 쪽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는 것

이고, 생존하려면 멸망시키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메이런은 후방 휴양 콜로니에서 전방 락벳 행성으로 이동중인 병력

수송선 치치호를 타고 있었다. 치치호는 신병 수송과 휴가가 끝난 장

병 수송을 그 중요 임무로 하고 있었다. 객실에는 아무렇게나 흐트러

진 자세를 하고 있는 장병들이 눈을 감고 있거나 싸구려 잡지를 훑어

보거나 하고 있었다. 모두들 지루함을 참으려는 듯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사진을 보는 듯 정지된 느낌을 풍겼다.

메이런은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

는 우주는 늘 어둡다. 전선 부근은 콜로니와 인공위성에서 쏘아대는

불빛 덕분에 마치 태양 근처를 지나는 듯 밝았다.

어둠의 저편에서 하얗게 빛나는 폭발의 섬광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도 적 연락선을 격추시킨 모양이었다.

"와!"

메이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신병일 것이 틀림없는 휴먼 레이스가

탄성을 내었다. 소리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메이런은 옆에 누가 앉아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제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 메이런은 소리를 지른 휴먼 레이스의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과 이등병 계급장을 번갈아 가며 확인하였다. 이등병의 이름

은 모빈이었다.

"상병 님. 정말 대단해요! 저 불빛! 저거, 우리가 연락선을 격추시킨

거겠지요?"

모빈 이병이 메이런에게 떠들어댄다. 하지만 메이런은 그런 말에 대

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메이런은 지금 복무 1년만에 처음으로 받은 개

인 휴가를 콜로니에서의 술과 도박, 여자로 탕진하고 돌아오는 길이었

다. 속은 술기운으로 울렁거리고 있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메이런이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돈을 주고 만나는 여자에게서는 애정을 기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도박장에서 돈을 따는 건 도박장 주인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메이런은 면도를 하지 않아서 까칠해진 턱을 만지며 어떻

게 하면 이 신병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저도 배웠어요. 전장에서 전파의 범위 내에서 연락을 하는 건 간단

하지만, 전파보다 먼 곳은 연락선을 이용해야 한다면서요? 빛보다 빠

른 연락선! 그 연락선을 게이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렇게 격

추시키는 거죠. 그렇죠?"

신병의 말은 옳았다. 교범에 나와있는 바에 따른다면 전파가 일 주

일 이내에 닿을 수 없는 범위에서의 전파를 통해서 연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전장이 우주로 확대되어지고, 전파가 닿는 시간 보다 셔

틀이 직접 가는 시간이 빨라진 이후, 연락선의 운용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라고 교범에서는 주장

하고 있었다.

실제로 저런 연락선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그 정보가

얼마나 소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메이런이 소속

된 로윙 사단 8연대 1대대 3중대 1소대 분대장 킨 하사만 해도 그건

연락선이 아니라 그냥 빨리 달리는 무인 화물선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녀석들은 우리의 전투력을 분산시키려는 것 뿐이야."

킨 하사는 이렇게 주장하곤 했던 것이다. 메이런이 보기에는 교범의

주장이나 킨 하사의 주장이나 별로 와 닿는 게 없다는 측면에서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도 연락선을 운용하죠?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언제 저런 식

으로 당할지 모르는 연락선을 타고 우주를 비행한다는 건... 휴. 보병이

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셔틀이 부서지면 바로 죽음이지만 정글에서

는 조금 나을 거 아녜요. 여기 정글은 기후가 행성 어스하고 비슷하다

면서요?"

메이런은 휴가를 보낸 콜로니에서 연락선을 타는 장교를 만나 본 적

이 있었다. 그 장교는 잔뜩 술에 취해서 혼자 연락선을 몰고 가는 공

포와 두려움에 대해서 메이런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메이런은 적

당하게 대꾸해 주면서 그 장교의 술을 나누어 마셨다. 그 때는 도박의

교훈을 막 얻은 시기여서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급했던 것이다. 적

당히 대꾸해 주고, 적당히 긍정하면서 메이런은 장교에게서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을 융통받을 수 있었다.

"참. 저는 모빈 이등병입니다. 지금 막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 받아서

락벳으로 가는 중이에요. 상병 님은... 메샤? 메쟈? 상병님?"

모빈 이병이 메이런의 명찰을 보고 말했다. 메이런은 입대하면서 이

름을 고의로 틀리게 적었다. 메이런이 입대를 결심한 것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 보려는 의도였다. 혹시라도 자신을 찾는

이가 있어서는 곤란했다.

"아무렇게나 불러."

메이런은 눈길도 주지 않고 대꾸했다.

"락벳 녀석들, 그렇게 강하고 거칠다면서요? 정글 전투에 대해서 들

어 본 적이 있어요. 우리 교관이 그러는데 타고난 전투 생명체라고 하

더라구요."

"타고난 전투 생명체 같은 건 없어."

메이런이 딱딱하게 말하자 모빈 이병은 입을 다물었다. 메이런의 기

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은 모양이었다.

"상병은 꽤 고참인가 봐요?"

메이런의 앞에 앉아 있던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장교가 말했다.

장교는 여성 휴먼 레이스였다. 전투복을 입고 있었지만 전투에 참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듯 새로 지급 받은 게 틀림없는 새 전투복에 계

급장에서는 광택이 나고 있었다. 명찰에는 세론이라고 적혀 있었고, 비

표는 J였다. 메이런은 비표를 보고 장교가 속해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아차릴 수 있었다.

"세론 소위 님보다는 고참일 겁니다."

소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메이런은 대답대신 세론의 비표를 가리켰다.

"저, 소위 님. 죄송하지만 지금 나누고 계신 대화 내용이 무슨 뜻이

죠?"

모빈 이병이 세론 소위에게 물었다. 세론 소위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 상병 말이 맞아요. 이 J는 종군기자 비표죠. 전장을 취재하려면

전장에 나가야 하는 데 계급이 없으면 전장에 나갈 수 없으니까 군에

서 임시로 달아 준 계급장이라구요. 진짜 소위는 아니에요."

세론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세론의 생각을 읽었다. 세론

은 이제 곧 시작될 취재에 대한 기대감과 전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첫 야전 취재에 대한 설렘 따위로 온통 들떠있는 상태였다.

메이런은 무심결에 세론의 생각을 읽어내곤 주먹으로 창문을 살짝

두드렸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능력. 밝은 곳일수록 선명

해지는 어두운 그림자. 메이런은 자신의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군에 입대한 이후 메이런의 두통은 멈추었다. 키티-본의 처방이 옳

았던 것이다. 멈추지 않으면 결코 기억에 사로잡히는 법 따위는 없다.

하지만 군대도 하나의 작은 사회였고, 그 구성원이 멈추는 경우는 종

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휴가라던가. 메이런이 휴가 내내 술과 도박에

빠져 지낸 건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냥 붙은 계급장이라고 해도 소위님은 소위님이시죠. 반갑

습니다, 세론 소위 님. 아마 저하고 군 경험이 비슷하시겠네요."

모빈 이병이 거수 경례를 붙이면서 말했다. 세론은 부끄러워하면서

거수 경례로 답례를 했다.

"고마워요, 이병. 이름이... 아, 모빈 이병이로군요. 반가워요. 모빈 이

병은 어디로 가나요?"

"예. 저는 보윙 사단..."

모빈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추었다.

"보안이 걱정되나 보죠? 걱정하지 말아요, 모빈 이병. 기자한테 계급

장을 주는 건 보안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는 거니까요."

"예. 보윙 사단이에요. 다른 건 아직 잘 몰라요. 사단 사령부에서 전

속 명령을 내려 줄 거예요."

"보윙 사단이면 전투 사단이잖아요? 락벳 행성의 정글을 누비며 작

전을 수행하는."

"예. 최고의 정예 부대죠."

메이런은 대화를 들으며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싸구려 잡지라도 한

권 샀다면 이런 대화 쯤 흘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메이런은 이 신병

이 자신과 같은 사단에 소속될 것이라는 게 먼저 불쾌했고, 보윙 사단

이 정예 부대라는 말을 듣는 것도 불쾌했다. 세상에 자기 부대가 최정

예라고 홍보하지 않는 지휘관이 어디 있을까.

"메샤 상병? 아니 메쟈 상병인가요?"

화제가 갑자기 메이런에게 돌아온 모양이었다.

"되는 데로 읽으시면 됩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요? 왜 그렇죠? 전투 휴유증인가요? 집

에 가고 싶어요?"

"질문을 많이 받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렇죠."

메이런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연락선이 또 한 번 폭발하며 빛을 발

하고 있었다. 연락선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전투 셔틀이 추적해 미사

일이나 빔으로 격추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연락선이 교전에 응

한다면 모를까 연락선은 말 그대로 연락을 위해 전선을 돌파하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는 셔틀이다. 그래서 연락선을 잡기 위해서 두 대의 셔

틀이 게이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연락선이 나타나면 에너지 필

드 -흔히 그물이라고 부르는- 를 치는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필드에

연락선이 걸려들게 되면 저렇게 빛을 내며 사자져 버리는 것이다. 다

만 락벳 행성인들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가짜 연락선과 진짜

연락선을 섞어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모든 게이트를 동시에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락벳인 들

은 아마도 충분한 연락을 취하고 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

다.

"...락벳 인들은 모하미 행성과 연합했다고 보고 있어요. 우리는 로즈

웰 레이스에게 힘을 빌려 주고 있지만, 락벳 인들은 모하미 행성인들

의 힘을 빌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예요. 작전권요? 그건 아마 모

하미 행성이 가지고 있겠지요."

"야. 그럼 우리는 정말 대단한 적하고 싸우고 있는 거네요?"

둘은 전쟁 이야기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얼마나 무모한 짓인

가. 저런 의미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다는 것이. 만약 단 한 번이

라도 전투에 참가해 보았다면 저런 소리를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을

거였다. 전선에 서 있는 병사에게는 전략이나 전술 따위는 의미가 없

어진다.

"이병."

메이런이 딱딱한 군대식 말투로 모빈 이병에게 말했다. 훈련소에서

배운 덕분인지 모빈 이병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면서 메이런을 바라

보았다.

"훈련소에서 군대에 대해 배운 적 있나?"

"예! 화기운용과 분대전술, 그리고 군기본 자세에 대해서 배웠습니

다!"

힘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저 힘찬 목소리가 몇 번의 작전을 거치고

나면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메이런이었다. 하지

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세론 소위는 갑자기 잘려 버린 대화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세론 소위는 무

시하기로 했다.

"그런 건 다 잊어 버려. 어차피 자대에 가면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할 테니까. 군인의 기본이 뭔지는 아나?"

"예! 명령에 복종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명령한다. 도착할 때까지 입 다물고 있어."

메이런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팔짱을 끼고서 눈을 감아 버렸

다. 모빈 이병은 풀이 죽어서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떨구었다.

"메쟈 상병. 아니, 메샤 상병인가? 하여간 상병."

세론 소위가 메이런에게 말했다. 메이런은 허리를 펴지 않고 눈만

가늘게 뜨고서 세론 소위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내가 마음에 안드나?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저 이병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 건가? 자네, 부대가 어디

야? 지휘관이 누구야?"

"그런 건 보안사항입니다."

심드렁한 투로 메이런이 대꾸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한 마디 해 주지. 자네는 말이야..."

메이런은 세론이 말을 잇지 못하도록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세론

소위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갔다. 세론은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고,

메이런은 양팔로 세론 소위의 어깨를 꽉 쥐었다.

"입 닥치고 내 말 들어. 당신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지는 모르

겠지만 나는 그런 거 인정 못해. 나는 지금 막 휴가 복귀하는 중이고

기분은 아주 더러워. 입 닥치고 내 신경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 거

야. 알아듣겠어?"

메이런은 세론의 얼굴에 바짝 다가서서 이렇게 으르렁거렸다. 아마

당분간은 메이런에게 함부로 굴지 않을 것이었다. 세론의 얼굴은 완전

히 질려 있었다. 메이런은 이제야 좀 조용해지겠군, 하며 다시 팔짱을

낀 자세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건 메이런의 오판이었다. 이번에는 셔

틀 전체가 굉음과 함께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으앗!"

입을 다물고 있던 모빈 이병의 입이 쩔 벌어졌다. 모빈 이병은 메이

런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이를 꽉 문

얼굴을 보였다. 메이런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만 둬. 명령은 무슨 명령."

메이런이 태연하게 말하는 사이, 셔틀 안에 있던 군인들은 웅성거리

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세론 소위가 메이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소위 님. 무슨 일이 일

어난다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메이런의 말은 세론 소위를 더욱 불안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세론

소위는 바짝 얼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을 뿐이

었다.

"연락선이 두 척 당했으니 녀석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거지."

"설마, 락벳 녀석들이 지금 보복 공격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모빈 이병이 메이런에게 물었다.

"그냥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보복이라고 해 봐야 녀석들은 전

투 셔틀 한 두 척으로 게릴라 전 밖에는 할 수 없어. 기껏해야 치치

호에 미사일이나 빔 몇 발 갈기고 말겠지. 그리고 우리도 손놓고 구경

만 하고 있지는 않을 거야."

메이런의 말이 끝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시 한 번 셔틀

이 흔들렸다.

"겁먹지 마. 이번에는 공격받은 게 아니야. 출격하는 소리지."

창 밖으로 셔틀에서 튀어나온 공격용 셔틀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

다. 모빈 이병은 넋이 나간 것처럼 입을 벌리고 창 밖을 주시하고 있

었다.

"안내 방송 드리겠습니다. 본 병력 수송선 치치 호는 락벳인들의 기

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신속한 조치로 피해는 극히 경미

합니다. 지금 셔틀 내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용맹한 셔틀 조종사들이

잔당을 추적중입니다. 탑승 중인 장병 여러분들께서는 안심하시고 남

은 여행동안 평정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여자 승무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선내에 안내방송이 퍼졌다. 저

목소리를 녹음한 여성이 만약 지금의 셔틀을 보았다면 꽤나 만족했을

거라고 메이런은 생각했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 선내의 군인들은 동요

를 멈추었던 것이다. 아마도 저 안내방송은 미리 녹음된 것일 테제만,

그 사실이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위님. 사진이라도 찍어 두지 그러세요? 좋은 기사 거리가 될 텐

데요."

아직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샤론 소위에게 메이런이 말했다. 정

중한 태도라기 보다는 이죽거리는 태도였지만 놀랍게도 샤론 소위는

메이런의 충고에 따랐다.

"살아남는다면 이 사건이 전장에서 쓴 제 첫 기사가 되겠군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샤론 소위가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메이런은 '당신이 살아남아서 기사를 쓴다면 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하고 덧붙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겨우 냉정을

되찾은 소위를 놀려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모빈 이병은 샤론 소

위의 카메라를 따라서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잠시

보였던 셔틀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자 우주 공간은 그저

아무 변화 없는 어둠 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메이런은 다시 눈을 감았다. 울적한 기분쯤이야 별 문제 될 것이 없

었지만, 두통이 다시 시작되지나 않을까 싶은 마음에 메이런은 불안해

졌다.

입대한지 1년. 열 번이 넘었을 때부터 세는 것을 포기한 작전들. 그

리고 단 한 번의 진짜 전투.

이 단 한 번의 전투 경험이야말로 메이런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백

마디의 말보다, 천 마디의 말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메이런은

그 전투를 다시 떠올리려다가 그만 두었다. 정말로 두통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휴가 때 만났던 초록색 머리 아가씨를 생각하는

편이 좋겠어. 입에서는 쉰내가 풀풀 풍기고 싸구려가 분명한 보라색

눈화장을 하고 있었던. 치마 밑으로 죽 뻗어있는 그 다리라니! 의족이

아니라 진짜였다면 좋았겠지만 말이야. 교통사고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정말인지 알 게 뭐야. 어쩌면 정통정부 쪽으로 해방정부 물자를

빼돌리다가 M.P의 니들건에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르지.

"...락벳 인들의 셔틀은 우리 용감한 호위부대에 의해 완전 섬멸되었

습니다."

메이런의 즐거운 회상은 때마침 흘러나온 방송 때문에 끊어져 버렸

다. 정확하게는 방송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방송에 환호성을 보낸 장병

들 때문이었지만 메이런에게 그 결과의 차이는 없었다. 잠을 좀 자 두

어야 할텐데.

"메쟈 상병. 아니, 메샤 상병이라고 부를까요?"

이번에는 세론 소위가 메이런을 귀찮게 했다.

"아무렇게나 불러요."

메이런은 잠을 포기했다.

"미안하지만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메이런은 이 여자의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트랜스를 할 생각이 다

들었다. 뜻밖의 말이었다.

"기사화 시키지 않는다고 약속만 한다면요."

"군인은 무슨 일이 닥치건 '모든 사태는 진정되었으니 안심하라'고

한다면서요? 그게 아마 군인의 직업병이겠죠?"

기자가 기사화 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건 직업적 거짓말이라는 뜻이

었다. 메이런은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는 세론

소위가 마음에 들었다.

"웃을 줄도 아는군요, 메샤 상병."

아무렇게나 부르라는 말에 세론 소위는 메샤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별 상관은 없을 거였다. 전장에 돌아다니는 '전우뉴스'는

신문이었다. 라디오 방송도 아니고 글로 되어 있는 기사라면 발음이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3

"입대한 지는 얼마나 되었지요?"

"제 주관시간으로 1년입니다. 이제 상병이지요."

"이병이 일병을 달려면 1년이 걸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투에서

공을 세웠나요?"

"딱 한 번이었습니다."

메이런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전투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전투는 엉망이었다. 소대원중 절반이 사살 당했다.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고, 전투가 끝났을 때 메이런은 상병이 되어

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분대장을 공석으로 두어야 했다.

"현지 임관이었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현지 임관은 기분 좋을 것 같

은데요.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봉급이 올라간다는 소

리이기도 하니까요."

전우가 죽었는데 기분 좋은 소리라고? 메이런은 기분이 상했지만 바

로 반론을 펴지는 않았다.

"돌아와서 진급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메이런이 불쾌하다는 걸 느꼈는지 세론 소위는 친절한 의무대 간호

사가 짓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이었다. 메이런은 문득 세론

소위가 여자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초록색 머리. 죽 뻗은 가짜 다리.

잘록한 허리. 악취에 가까운 향수. 메이런은 갑자기 떠오르는 여자에

대한 망상을 지우기 위해 세론 소위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덕분

에 메이런은 세론 소위가 화장기 없는 얼굴치고는 별 잡티가 보이지

않는 깨끗한 피부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입대하게 된 동기는 뭐였나요?"

"사라지기 싫어서."

메이런은 이렇게 대답한 스스로에게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사라지기 싫어서?"

"그런 것 말고 재미있는 질문은 없나요? 가령 애인은 있느냐, 좋아

하는 여성상은? 도박에서 가장 많이 잃어 본 액수는? 아니면 시시껄

렁한 휴가에 대한 이야기라도."

세론 소위는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목젖을 보이며 웃었

다. 메이런은 전우뉴스 기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 기자는 비표 J에 대

한 설명을 해 주었고, 전우 뉴스의 방침에 대한 유용한 정보도 제공했

다.

"아뇨. 입대동기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사적인 질문이군요. 저랑 자고 싶은 건가요?"

메이런은 진지한 척 물었다. 세론 소위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어차피 전우뉴스에 나갈 뉴스는 세 가지 아닌가요? 승리, 승리의

예감, 승리의 기쁨. 아, 가끔 적의 사악함에 대한 정보도 있군요. 어느

쪽이든 제 입대 동기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메이런은 전우 뉴스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 기자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 가지만 묻죠. 락벳에서 근무하면 다 당신처럼 되나요?"

아마 자신이 소위라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세론 소위는 메이런

을 '당신'이라고 불렀다. 어차피 비표 J를 달고 있는 임시 장교라면 까

짓 거 잊건 말건 상관없겠지.

"아뇨.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친구들만 이렇게 변하

죠."

"잘 들어요. 메샤."

진지하게 세론이 말했다. 메이런은 한 번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

덕였지만 건성이었다.

"저는 언론인이에요. 이곳 취재도 자원한 거라구요. 언론인은 진실을

보도하는 거예요. 진실을 기록에 남기는 게 언론인의 임무지요. 기록된

진실은 무엇보다 강한 힘을 발휘해요. 나는 메샤 상병이라는 휴먼 레

이스가 어떤 휴먼 레이스인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가, 그걸 알고 싶

었을 뿐이에요. 너무 하는군요."

세론 소위는 진심이었다. 메이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때

는 늦어 있었다. 메이런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두운 우

주 공간에는 인공적인 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

둠이었다. 어둠. 트랜스의 공간. 메이런은 두통을 느낄 것만 같은 불길

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면..."

메이런이 창 밖에 시선을 둔 채로 뭐라고 대꾸하려는 데 세론 소위

의 사진기가 메이런을 찍었다. 메이런은 그 순간 무슨 말을 하려고 했

는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그 사진에는 뭘 담으려는 거죠? 휴가 복귀하는 상병의 분

노?"

"진실이에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실."

메이런은 아주 잠깐 카메라를 빼앗아 필름을 빼앗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이어 울상이 되어서 메이런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한탄

과 분노를 쏟아낼 세론 소위를 상상하고는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차피

기사에 나가지도 않을 사진이었다. 메이런의 심드렁한 표정은 승리하

고도, 승리의 예감하고도, 승리의 기쁨하고도 상관이 없을 거였다. 적

의 사악함을 표현하는 사진으로 쓰려면 약간의 수정을 통해서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진은 지금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적당한 사진이 우

주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알았어요. 그 사진이 세론 소위님의 사적인 용도로 잘 쓰이길 빌겠

습니다."

메이런은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지껄였다. 세론 소위가 불쾌해졌으

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세론 소위는 친절

한 군 간호사의 미소를 잊지 않았다. 메이런이 알고 있기로 락벳 전선

에 진실이라고는 단 하나 뿐이었다. 락벳 전선은 전쟁중이라는 것.

"안내 말씀 드립니다. 본 수송선은 곧 대기권을 통과합니다. 모두 자

리에 앉아 주시고, 안전띠를 꼭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문이 자동으로 불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생

기는 마찰열과 빛으로부터 승객들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병력 수송선은 대기권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메이런은 내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수송선의 출구에

는 임시 검역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군대식의 간단한 위생검

사와 화물 검사가 진행되었다. 군대식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신속하고

정확하다. 특히 신속과 정확을 요하지 않는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검열과 검사에 있어서는 한없이 느려지는 군대였다.

"메샤 상병님. 정말 대단하세요. 세론 소위를 꼼짝 못하게 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죠?"

메이런은 진짜 재수가 없는 건 줄 뒤쪽에 섰다는 것 보다 모빈 이병

이 바로 옆에 섰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소위한테는 그렇게 할 상상도 하지 마."

메이런은 모빈에게 점잖게 이렇게 충고했다.

"저, 아까는 몰랐는데 어깨에 그 부대마크, 보윙 사단 마크죠? 상병

님처럼 훌륭한 군인이 있는 부대에 배치된다니, 정말 기뻐요."

"그렇군."

메이런은 모빈 이병과는 정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대 생활은 힘든가요? 훈련소에서 듣기로는 전투를 위해서 완벽한

휴식과 자유시간이 보장된다고 하던데요."

"그렇지."

검열과 사열만 없다면 말이다. 참. 지휘관 순시와 주둔지 정비 작업

을 뺐군.

"훈련은 힘든가요? 조교말이 훈련소 훈련보다는 훨씬 쉽다고 하던데

요."

"그래."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 덧붙여져야겠지.

모빈 이병은 계속해서 메이런의 단답형 대답을 듣다가 한참 후에야

메이런이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줄은 줄어들었고, 메이런과 모빈 이병도 검역대를 지나갈 수

있었다. 메이런은 아무런 짐이 없었지만 모빈 이병은 자질구레한 것들

-행성 어스의 사진, 과자, 벌거벗고 있는 여자 사진 따위- 때문에 검

역대를 통과하는데 한 참이 걸렸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을 떨어뜨린 해방감을 느끼며 셔틀 스테이션을

나섰다. 일주일만의 락벳 행성이었다. 변한 건 없었다. '행성 락벳의 해

방군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거대한 간판도, '정통정부는 만행을

중단하라!' '해방정부 만세!' '락벳에 평화를!' 따위의 플랭카드도 여전

히 나부끼고 있었다. 메이런은 아무 감흥을 주지 않는 선전문구들을

바라보다가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세론 소위였다.

"아직도 사적인 용무가 남아 있으신가요?"

샤론 소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는 여기서 셔틀을 타고 군사령부로 가요. 보윙 사단이 가는 길이

에 있다던데 같이 타고 갈까요?"

샤론 소위는 메이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

쩌면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일선 장병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지

도. 메이런은 세론 소위가 계급장만 붙어 있다 뿐이지 비표 J를 달고

있는 민간인이라는 걸 상기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서 캡슐로 복귀합니다."

메이런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세론 소위에게서 아쉬움의 마음이 스

쳐 지나갔다.

"다시 볼 수 있겠지요."

"락벳 인들을 조심하십시오."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서 세론 소위에게 작별 인사

를 했다. 세론 소위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셔틀을 타기 위해 총

총히 사라져갔다. 메이런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정오가 조금 지나

있었다. 어디 가서 점심이나 먹어야겠군. 복귀 시간은 저녁 7시. 저녁

도 먹고 들어가야 하나?

메이런이 근무하는 보윙 사단의 주둔지는 슈이롱 시 외곽에 위치하

고 있었다. 때문에 슈이롱 시에는 항상 군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슈

이롱 시 부근에 주둔하고 있는 3개 사단과 1개 군단 사령부에는 항상

돈을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있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슈이롱 시에 있

는 것 중 군과 연관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다. 군을 위한 셔틀 스테

이션, 군을 위한 식당, 군을 위한 암시장, 군을 위한 창녀 등등.

메이런은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암시장 상인을 먼저 찾았다.

"멜 상병! 오래간 만이야! 휴가는 잘 다녀왔고? 어이, 재미 좀 봤나

본데? 얼굴이 아주 좋아 보여?"

상인은 젊은 락벳 인이었고, 슈이롱 시의 다른 상인들처럼 휴먼 레

이스의 언어를 꽤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곳에 휴먼 레이스가 주

둔한지도 벌써 백년이 넘은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건 불과 1년 남짓

이었지만.

락벳인은 휴먼 레이스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생겼다. 신체 구조도

같았고, 평균 수명이나 신장도 엇비슷했다. 한 때 락벳인은 휴먼 레이

스와는 달리 엉덩이뼈가 길게 솟아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락벳 인 창

녀가 등장한 이후에 그 소문은 질 낮은 군대식 농담이 되었다.

"내 걱정 안 해준 덕분에 잘 다녀왔어."

메이런이 대꾸하자 상인은 껄껄대며 웃었다.

"농담하고는. 오늘 들어가면 언제 나오나, 멜?"

"보안사항이야."

메이런을 아는 이는 메이런을 멜이라고 부르고 메이런을 모르는 이

는 메이런은 메샤나 메쟈라고 부른다. 엉터리로 명찰에 박아 넣은 이

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건 이렇게 편리한 것이다.

"부탁한 거."

메이런은 휴가를 출발하기 전, 상인에게 45구경 권총을 한 정 맡겼

다.

락벳 인을 믿는 건 독사에게 무방비로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말은 사단 지침서에도 쓰여있는 말이었지만, 모든 독사가 해

로운 건 아니었다. 락벳의 해방 정부와 정통 정부 사이의 반목은 얼마

든지 유용한 독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메이런의 경우 해

방 정부 편에 서서 정통 정부와 싸우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해방 정부

덕분에 먹고사는 락벳 인들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유용한 독사라고 해도 독사는 독사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깨끗하게 정비해 놨어."

젊은 락벳 상인이 메이런의 45구경 자동권총을 돌려주며 말했다. 정

비를 했다는 건 거짓말이 분명했다. 손잡이에 메이런의 손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보증금."

상인은 메이런에게 돈다발을 내밀었다. 암시장에서는 카드같은 건

구두 밑창보다 의미가 없다. 오직 현금이나 보석만이 의미를 가진다.

"1000 오빌 줬잖아. 이건 950 오빌이야."

"보관비지. 멜이니까 50 오빌만 받았어."

그리곤 장사꾼 특유의 비굴한 웃음을 짓는다. 메이런은 그 웃음을

외면했다.

"바뀐 건 있어?"

메이런이 권총을 검사하면서 말했다. 총알을 몇 발 빼놓는다던가, 방

아쇠를 당기는 순간 폭발하도록 손을 써 놓는다던가 하는 짓을 해 놓

았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독사는 역시 독사다.

"몇 번 폭격이 있었고, 몇 번 수색 작전이 있었을 거고, 몇 번 소탕

작전이 있었겠지. 하지만 정통 정부는 멀쩡해.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역시 변한 건 없군."

"왜? 전쟁이라도 끝나 있기를 바란 거야?"

"그렇게 되면 당장 굶게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상인은 메이런의 말을 농담으로 바꾸어 버리는 웃음을 웃었다. 상인

의 웃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웃음도 꽤나 비굴한 웃음이었다.

"식사하고 복귀할 거지? 새로 생긴 식당이 하나 있어. 맛도 괜찮고,

아주 깨끗해. 지하에 있고, 여 종업원들이 있어."

"그리고 뒷방이 있고?"

상인들은 틈만 나면 매춘을 권한다. 군의 방침과는 정반대였다.

"당연한 거 아냐?"

"관심 없어."

"늘 관심이 없지. 칫. 멜은 취향이 특이한가봐. 혹시 불능 아니야?"

조금은 도발적인 말이었지만 곧 이어진 상인의 비굴한 웃음 때문에

메이런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믿지는 못할지 못하더

라도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좀 까다로운 것 뿐이야."

메이런도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살이 썩어 들어간다는 락벳 행

성의 성병이 두려웠다. 사령부는 온몸으로 천천히 퍼져나가서 결국에

는 뇌에 침투한다는 락벳 행성 성병에 대해 홍보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실 메이런 성병보다는 창녀들의 불친절한 태도와 역한 싸구

려 화장품 냄새가 더 두려웠지만.

비록 단 한 번도 권총을 품에서 꺼내 누군가를 겨냥해 본 적은 없었

지만, 슈이롱 시를 무장 없이 돌아다닌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

고 알려져 있었다. 해방 정부의 독사들과 마찬가지로 정통 정부의 독

사들도 휴먼 레이스와 똑같이 생겼다. 해방 정부의 독사들은 얼마든지

슈이롱 시를 활보할 수 있었고, 게다가 해방 정부의 독사들은 호시탐

탐 주둔군과 해방 정부 인사를 노리고 있었다. 소문에는 이런 해방 정

부의 첩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M.I 요원들이 슈이롱 시에만 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모든 소문이 그렇듯 과장되었다고 해도 상당 부분은

아마 진실일 거였다.

"그럼 식사는 어디서 할 건데?"

"페나의 식당."

"페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

젊은 상인이 키득거렸다.

"뚱뚱한 아줌마를 좋아하는 게 까다로운 취향은 아니야."

"페나의 식당이 뭐가 좋다는 거야? 음식은 하나 같이 맛없고, 식당

은 비좁아. 내가 좋은 곳 소개시켜 준다니까."

"맛없고 비좁은 식당은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는 식당은 페나 식당 뿐이야."

메이런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젊은 락벳 상인은 메이런의 말을 농담

으로 바꾸어 버리는 웃음을 또 한 번 터트렸다. 메이런은 대꾸할 말을

찾다가 여기서 왜 이런 시간 낭비를 하고 있어야 하나 싶어졌다.

"다음에 또 보자구."

메이런이 돌아서서 나가자 상인이 인사를 건넸다. 메이런은 손만 가

볍게 흔들어서 인사를 받았다.

슈이롱 시는 행성 어스의 도시를 연상케 할만큼 번화했다. 메이런은

페나의 식당을 찾아 가는 동안 창녀에게 선물하면 딱 맞을 싸구려 반

지를 100오빌에 파는 상점의 호객꾼들과 100오빌짜리 반지를 기꺼이

받아든 다음 틀림없이 팔아먹을 창녀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무엇으로

만든 건인지 의심스러운, 행운을 불러준다는 부적을 파는 가게 몇 개

를 지나 야트막한 슈이롱 시민의 거주지를 지났다.

가끔 보이는 M.P(헌병, military Police)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 밖

에 입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군복을 입고 위협적으로 발을 맞추어 거

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군용 호버카들은 영관급 장교들을 태우고 술집

이나, 아니면 비슷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곳을 찾아 질주하고 있었

다.

공습경보가 울리지 않는 슈이롱 시는 평안해 보였다.

적어도 전쟁에 관한 한 키티-본의 말이 옳았다. 키티-본은 전쟁과

도시 생활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했고 그 말은 상당 부분 진실이었

다. 다만 도시에는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군인들이 그런 전

투에 대비하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메이런은 군인이었고 그 점만이

행성 어스에서의 도시 생활과 락벳 전선의 생활을 구분할 뿐이었다.

페나 식당에서 페나의 걸죽한 웃음소리를 음악 삼아 식사를 하면서

메이런은 권총을 페나에게 맡기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보관료를 받

지는 않겠지만 권총이 사라질 우려가 너무나도 컸다. 아니면 권총에

녹이 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부주의한 페나가 권총을 보관해

둔 냄비에 스프를 끓일 수도 있었고.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페나는

걸죽한 웃음 한 번으로 자신의 실수를 넘겨버릴 여자였다. 이 독사 아

니면 저 독사라니. 메이런은 결국 권총을 다시 젊은 상인에게 맡겨야

했다.

"보증금은 1000오빌. 보관료는 50오빌이야."

젊은 상인은 웃으며 말했고, 메이런은 권총을 꺼낼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술을 마시기에는 속이 너무 좋지 않았고, 달리 시간을 보

내기에는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4

로윙 사단 8연대 1대대 3중대 1소대.

메이런이 소속된 자대의 정확한 명칭이었다. 로윙 사단은 전통 -이

라고 해 봐야 락벳 행성의 주둔이 역사의 전부지만- 있는 보병 사단

이었다.

로윙 사단에는 세 개의 연대가 있었다. 7연대와 9연대는 예비연대로

작전보다 훈련이 많은 부대였고, 8연대는 선봉 연대로 훈련보다는 작

전이 많은 연대였다.

8연대에는 4개의 대대가 있었고, 직할대대인 4대대를 제외하고는 모

두 전투대대였다.

1대대에는 4개의 중대가 있었는데 중화기 중대인 4중대를 제외하면

모두 수색중대였다.

메이런은 1중대 1소대에서 부분대장을 맡고 있었다.

"멜 상병, 휴가 복귀 신고합니다."

메이런이 중대장 야곱 대위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소리쳤다. 중대

장은 늘 그렇듯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중대장 야곱 대위는 야전에

나가면 눈동자가 마치 야수처럼 불타올랐지만 주둔지에서 훈련 중에는

늘 피곤해 보였다.

"그래. 수고 많았어."

휴가를 다녀온 병사에게 수고 많았다니. 내가 무슨 수고를 했지? 중

대장은 메이런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중대장은 회계결산 결재와

교육훈련 계획을 검토중이었는데 아마 그 일에 신경을 다 쏟아 부은

모양이었다.

"일찍 들어 왔군. 부대가 그리웠나?"

서류철을 덮으면서 회복된 약간의 관심을 기울이며 중대장이 물었

다. 중대장은 무척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고, 굵고 짧은 목 위에는

중대원들이 뒤에서 '큰바위'라고 놀리는 머리가 얹어져 있었다. 사실

중대장의 인상은 후덕해 보이는 편이어서 어지간히 화가 나지 않고서

야 부대원들이 얼굴만 보고 겁을 집어먹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콜로니 생활이 어지간히 지루했던 모양이로군."

야곱 대위는 자신의 경험을 되새기고 있었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

지 못하고 도박은 체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야곱 대위에게 휴가 콜로

니 생활은 잠과 식사뿐이었다.

"들어가서 쉬어, 멜 상병. 소대장하고 분대장한테 신고하고."

메이런은 거수 경례를 붙이고 내무반으로 향했다.

내무반 로비에는 소대장과 분대장이 서로 마주보며 카드게임을 즐기

고 있었다. 소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분대

장이 한창 따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대장은 마르고 키가 큰 대머리 청년이었고, 다들 레이 중위라고

불렀다. 아마 스스로 삭발을 한 모양이지만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그렇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실제로 푸르스름한 소대장의 머리 한

가운데에는 모근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신고 잘 받았다고 해 두지. 지금은 바빠서."

소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려는 모양이

었지만 누가 보아도 그 표정은 잃어버린 주급을 되찾으려는 옹졸한 다

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바빠지지 않으면 곤란해질 겁니다, 소대장님."

반면에 진짜 여유가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분대장이었다. 분

대장은 킨 하사라고 다들 불렀다. 킨 하사는 군 경력 10년의 베테랑이

었다. 30대 중반이나 후반쯤 되었겠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머

리는 반백이 되어있었다. 본인은 전투 휴유증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다

들 그저 겉늙어 보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대장도 분대장도 본명을 쓰지는 않았다. 메이런처럼.

"그럼 전 제 방으로 돌아갑니다."

"잠깐!"

레이 중위가 자신의 카드를 꺼내기 전에 이렇게 소리쳤다.

"왜요? 잃은 주급을 제 돈으로 채우고 싶으신 건가요?"

"음. 그것도 좋은 계획이군.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일이 좀 있어."

메이런이 이죽거렸지만 소대장은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소대원이 새로 왔다, 멜 상병. 부탁 좀 하지. 가서 방 배정 해 주고

신상 서류 좀 작성 해 줘."

"소대장의 임무를 이런 식으로 병사들에게 넘기다가는 금새 제가 소

대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군. 분대장한테 돈을 뺏기는 소대장이라니. 군

대 계급 질서가 언제 이렇게 땅에 떨어진 거야!"

"제가 장교 시험을 보지 않은 후부터죠."

분대장 킨 하사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레이 중위는 킨 하사의 농담

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레이 중위의 대머리에 땀방울이 흐르는 게

보였다.

"꼭 제가 해야 합니까?"

메이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씻고 저녁 때 까지 한 숨 자

려는 계획이 무산된 것에 대한 짜증이었다.

"그럼 시쟌 상병 시킬까?"

시쟌 상병은 지난 번 전투 때 메이런과 함께 상병으로 진급한 병사

였다. 메이런과는 동기였지만 메이런과는 많이 다른 병사였다.

"소대장 유고 시에는 분대장이 소대장 임무를 수행하고, 분대장 유

고 시에는 부분대장이 임무를 수행하죠. 미안하지만 지금은 두 분 다

반 유고 상태야, 멜 상병. 이건 긴급사태라고."

킨 하사가 말했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메이런은 거수 경례를 하고 로비의 문을 지나 내부반 복도로 들어섰

다. 내무반 복도에는 누가 보아도 신병이 분명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병사 셋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지?"

"예! 한 시간 15분 전 부터입니다!"

신병 중 하나가 소리쳤다.

"소대장 돈을 뺏는데 멜 하사 님이 너무 오래 시간을 투자했군. 실

력이 줄었나? 나라도 한 번 도전해 봐야겠는데."

메이런은 빈정거리면서 신병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키가 작

았고, 얼굴에 솜털도 벗어지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 옆은 키가 훤출하

니 크고 덩치도 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낯이 익었다.

"메쟈 상병님!"

맙소사. 모빈 이병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메이런은 군대에서 하늘을 탓해봐야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멍청하게 투덜거리는 대신 세 신병에게 간략한 서

류 작정을 시킨 다음 부대에 대한 소개를 해 주기로 했다. 메이런은

세 신병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 침대에 걸터앉게 했고, 의자를 하

나 끌고 와서 서류 작성을 도운 다음 친절한 강사가 되어 주었다.

"긴장하지 마. 긴장은 작전을 대비해서 아껴 두라고."

메이런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 신병은 메이런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병들은 메

이런이 헛기침을 한다면 공습 경보를 들었을 때처럼 깜짝 놀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우리 사단은 전투 보병 사단이다. 훈련소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만 전투 보병 사단은 공군에 봉사하는 사단이야. 다시 말해서 공군이

폭격할 지점을 찾아 주던가, 아니면 폭격을 마친 지역을 청소하던가.

우리 연대는 이 임무를 가장 많이 수행하는 연대고, 우리 중대는 연대

임무의 최선봉이야. 여기 까지 질문 있나?"

"저, 훈련소에서 듣기로는 전투 보병이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

중에 나온다고 하던데요."

꼬마 신병이 말했다. 꼬마 신병은 이름 란에 훈 이병이라고 적어 놓

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어차피 우리가 제일 먼저 들어가는지, 제

일 나중에 나오는지는 오직 우리의 신만이 알고 계신다."

"신?"

"다른 말로는 사단장님이라고 하지. 지휘관이라는 보통명칭으로 부

를 때도 있지만."

메이런이 덧붙였다.

"저, 저희 소대는 어떤 일을 하나요?"

이번에는 키가 큰 신병이 물었다. 이 신병은 허연 얼굴에 두상이 길

고 이마가 넓어서 멍청해 보인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체력은 있어 보였

다. 이 신병의 이름은 닐스였다. 닐스 일병의 주특기는 통역이었다. 아

마도 훈련소에서 속성으로 락벳 어를 배웠을 것이다.

"대부분 교육 훈련. 작전시에는 소대장의 뒤를 따르지. 우리 소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소대장님을 따라서 수색 정찰을 하고 빠지는 소대

야. 가끔 소탕 작전도 하고. 여기 온 지 일 년 됐지만, 그 사이 진짜

전투는 단 한 번이었어."

메이런은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을 뿐, 그 때 소

대원 절반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뿐인가요?"

"몇 가지만 빼고."

메이런은 소대원을 설명했다.

"소대장은 레이 중위님. 분대장은 킨 하사님. 그리고 부분대장은 나,

그러니까 멜 상병과 시쟌 상병이야. 너희 셋이 이제부터 분대원이고.

레이 중위님한테는 함부로 까불지 않는 게 좋아. 잘못하면 목이 부러

지지. 레이 중위님 봤지? 대머리 말야. 보기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

지만 사단 격투기 교관 출신 소대장이거든. 까불고 싶다면 킨 하사님

한테 까부는 게 좋을 거야. 너희들이 뭘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훤히 알고 계신 분이지. 아마 까부는 이유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군대

식으로 해결 해 주실 거다. 나는 별 설명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시쟌

상병에 대해서는 딱 한 마디만 할 게. 함부로 말 걸지 마."

메이런은 이렇게 대원들을 설명해 주었다. 셋은 알 듯 모를 듯 한

얼굴이었다. 메이런은 아마 일 년 전 자신이 라이호 상병에게 비슷한

설명을 들었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이호

상병은 지난 번 전투 때 가장 먼저 죽었다.

"저, 질문 있습니다, 멜 상병님."

모빈 이병이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그래. 여기 너무 많은 신병이 있어서 손을 안 들면 누가 질문했는

지 모르겠군. 물어 봐."

"훈련소부터 궁금했는데요, 왜 락벳 녀석들을 플라즈마 탄 같은 걸

로 싹 쓸어버리지 않는 거죠?"

"그 질문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질문이고, 소대장에게 그런 질문

을 던지면 아마 목이 부러질 테지만 처음이니까 넘어가자."

메이런의 말에 모빈 이병은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우리가 누구 편이고 누구와 싸우고 있지? 모빈. 네가 말 해 봐."

"우리는 해방정부의 편이고 정통정부와 싸우고 있습니다."

"맞아. 그런데 왜 해방 정부가 해방 정부인지 알아? 정통 정부로부

터 락벳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부라고 해서 해방 정부라고 하는 거

야. 그런데 정통정부 밑에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에게 플라즈마 폭탄

을 쏟아 부어? 그렇게 하는 게 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고 우리 모두 꿈

꾸는 실업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공군이 폭격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야. 그래서 우리 중대를 수색중대라고 하는 거라고. 우리가

찾는 건 빌어먹을 락벳 정통 정부군의 거점들이고, 공군은 그곳을 네

이팜이나 그 비슷한 걸로 싹 쓸어버리지. 그리고 나면 청소를 하는 거

야. 청소는 신의 표현을 빌면 소탕작전이라고 하는 데, 소탕 작전이 끝

나면 녀석들은 다시 그곳을 써먹을 수 없게 되지."

모빈 이병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로 이해했다고는 생각되

지 않았다.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실전에 투입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수색이 무엇이고 소탕이 무엇인지. 게다가 천재는 군대에

입대하지 않는다.

"당부하고 싶은 건, 아마 모두들 당부하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복리로 지급되는 월급이고 더 중요한 건 살아 돌아가서 그 월급을 쓰

는 일이야. 밖에 서 있는 소대장님처럼 카드 게임으로 날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행성 어스의 땅을 밟고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거

라고 생각해."

메이런은 그밖에 자질구레한 사항들 -중화기 중대 녀석들한테는 함

부로 말을 걸지 말라던가, 공군 파병대 간부에게는 경례를 해서는 안

된다던가, 중대장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등뒤에서 감자

를 먹인다던가 했다가는 목이 부러질 거라든가 하는 따위- 을 이야기

해 주었고, 그 사이에 소대장은 다음 주 식비까지 다 털리고 말았다.

소대장이 메이런의 방에 들어오자 신병 셋은 앉아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메이런은 거수 경례를 했다.

"아직 방 배정 안 했어?"

"예. 이것저것 이야기 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봐, 자네 이름이 뭔가?"

레이 중위가 모빈 이병을 툭 치며 말했다.

"모빈 이병입니다!"

"이 친구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

"저..."

모빈 이병은 잠시 머뭇거렸다.

"함부로 까불다가는 중위님한테 목뼈가 부러진다고 했습니다!"

모빈 이병이 소리치자 레이 중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레이 중위가 모빈 이병의 목을 어루만졌을 때, 남은 신병들은 레이

중위의 억센 손에 박혀있는 볼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이 중

위의 손은 의수였다. 전투용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5

점호 시간이 되자 전 소대원들은 내무반 복도에 서서 중대장을 기다

렸다. 내무반 복도에는 자신의 방 문 앞에 서 있는 장병들이 부동자세

를 취하고 있었다. 장병들의 방은 서열 순서대로 레이 중위, 킨 하사,

메이런, 시쟌 상병, 그리고 신병 셋 순이었다. 점호는 일직사관 근무자

가 소대원을을 점검하고 다음 날 교육 훈련을 말해 주는 시간이다.

"소대 차렷!"

소대장이 외쳤다. 오늘의 일직사관은 중대장 야곱 대위였다. 일직 사

관은 중대장과 네 명의 소대장이 돌아가면서 섰는데, 킨 하사는 자신

이 장교 시험을 보지 않은 이유가 일직 근무를 서기 싫어서라고 한 적

도 있었다.

중대장이 들어서자 복도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중대장의 넓은 어깨

는 복도가 비좁게 설계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었다.

"소대 총 7명, 점호 준비 끝."

소대장이 보고를 하자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도 대단히 수고 많았다. 내일은 사단장님 특별 지시로 오

전에는 분열 연습에, 오후에는 수색 정찰 훈련 4번에 들어간다."

분열이라는 말이 나오자 신병을 제외한 나머지의 얼굴이 눈에 뜨일

만큼 일그러졌다. 신병들은 분열이라는 말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

가 뭘까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메이런의 설명을 들은 이상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사단장의 의도는 신의 의도 그 자체라는 걸 신

병들은 알고 있었다.

"분열 연습을 싫어하는 건 안다. 짜증스럽지. 분열은 신병들도 해 봤

지? 분열이란, 줄을 맞춰서 지휘관 앞을 지나가는 걸 말한다. 지휘관

사열의 꽃이지. 지휘관은 분열을 통해 부대원의 사기와 군기를 점검할

수 있다."

"곧 작전이 떨어질 텐데 왜 하는 겁니까?"

레이 중위가 중대장한테 물었다. 중간에 생략이 된 단어는 '그런 쓸

데없는 걸' 이었지만 중위씩이나 되어서 신의 의도에 토를 달 레이 중

위는 아니었다.

"작전 때문이다."

중대장은 간단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자신의 답변이 불충분하다는

걸 느꼈는지 군 생활 10년 경력의 킨 하사를 바라보았다.

"신병들도 있으니까, 킨 하사가 한 번 설명해 보지. 분열이 작전에

필요한 이유가 뭔가?"

"예. 소탕작전 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민들에게 부대의 사기

와 군기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킨 하사의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래. 이상이 사단장님의 의도이다. 더 궁금한 건 없겠지? 푹 쉬어

라."

중대장은 이렇게 말하며 다른 소대의 점호를 받기 위해 걸음을 옮기

려다가 멈추어 섰다.

"참. 신병들."

중대장이 돌아보자 신병들이 바짝 긴장했다.

"불편한 사항 있나?"

"없습니다!"

신병들이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듣는다면 불편한 게 너무

많아서 죽겠다는 불평으로 들릴 정도였다.

"혹시 불편한 사항 있으면 지휘계통을 밟아서 보고 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고 분대장이나 소대장 선에서 해

결하라는 뜻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셋은 완벽하게 중대장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이 역

시 진심으로 들리지는 않는 공허한 대답이었다.

메이런은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질문과 대답이 하나같이 공허하다는

데에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신병 시절, 메이런은 아무 마음의 울림

이 없는 질문과 역시 아무 울림 없는 대답을 주고받는 군대의 모습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군대가 마음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오직 전투만을 위한 집단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를 환영한다. 이상."

소대장은 내무반을 나서는 중대장에게 거수 경례를 붙였다.

"자. 다들 들었지? 내일 오전은 열심히 줄 맞춰서 걸음마를 배워 보

자. 오후에는 그나마 수색 정찰 4번이라니까 나을 거야. 참. 신병들은

수색 정찰 4번이 뭔지 모르겠군. 이건 누가 설명하는 게 좋을까... 그

래. 시쟌 상병이 설명해 봐."

시쟌 상병은 가장 완벽한 군인이었다.

행성 어스에서 마구잡이로 끌어온 병력이었지만, 병력의 수는 턱없

이 부족했다. 수색과 폭격이라는 기본 작전상 수 없이 많은 사단과 수

색대가 있어야 적의 거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문처럼 락벳의 정통

정부 거점은 첨단 장비를 총 동원한다고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

도로 잘 위장이 되어 있었고, 수색대가 목숨을 걸고 찾아낸 거점에 공

군의 집중 폭격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다지 큰 손상을 입지 않는 경우

도 많았다.

정통 정부의 거점은 대부분 지하에 만들어져 있었고, 그곳에는 정통

정부의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규군

은 빠른 기동을 통해 해방 정부의 주요 거점들을 공격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빈틈이 보일 때마다 비정규군은 해방 정부의 전 지역에 출

현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곤 했다. 시쟌 상병은 그런 정규군과 비정규군

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존재였다.

시쟌 상병은 중대장보다 훨씬 넓은 어깨와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가슴 근육을 가지고 있는 휴먼 레이스였다. 팔뚝은 어지간한 기둥쯤은

단번에 뽑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고, 짧은 두 다

리도 억세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말린 오이를 비틀어 놓은

것처럼 괴상망측하게 생겼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그건 그리 큰 흠이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수색 정찰 4번은 소대원을 두 개 조로 나누어 전진 수색하는 것을

뜻합니다. 일개조가 수색 정찰을 실행할 시에 나머지 한 조는 일개조

를 엄호하며, 전투가 벌어지면 바로 산개합니다."

시잔 상병은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답변했다. 신병들 얼굴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내일은 실탄 사격도 준비되어 있다. 신병도 왔으니 모의탄으로 하

자고 건의할 예정이지만, 아마 위대하신 사단장님의 의지를 받들어, 중

대장님께서는 실제 니들탄을 쓰실 게 틀림없다."

레이 중위가 덧붙였다.

"신병들, 훈련소에서 니들건 사격 해 본 적 있어?"

"예!"

신병들의 합창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운이 넘친다. 다만 진짜 합창처

럼 듣는 이에게 기쁨을 주지는 않지만.

"타겟으로 쿠루루를 썼던가?"

쿠루루는 락벳 행성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가축 중 하나였다.

네 발이 달리고 고기는 먹을 수 있는 초식 동물. 소문에는 락벳인들이

이 쿠루루를 사용하여 개인적인 성적 욕구를 해결한다는 소리도 있었

지만, 쿠루루의 흉측한 얼굴을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내일은 세련된 휴머노이드를 쓸 거야. 아주 재빠르고 영리하지. 락

벳인보다는 못하지만."

메이런은 휴머노이드를 쏠 때마다 이 전쟁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

이 투입되고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움직이는 타겟에 불

과한 휴머노이드들은 정교한 인조피부와 락벳인과 흡사한 얼굴까지 재

현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휴머노이드는 모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

다. 초 호화판인 휴머노이드 타겟을 보면 내무반에 있는 화장실에 드

가나 세잔의 진품이 걸려있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푹 들 쉬자고. 내일을 위해서."

소대장의 말과 함께 점호는 끝이 났다. 이제 장병들은 자던지, 아니

면 밤새워 카드 게임을 하다가 주급을 날리고 다음 날 부은 눈으로 교

육 훈련에 임하던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모빈 이병이 메이런에게 다가왔다.

"시쟌 상병에 대해서 물어 볼 게 있습니다, 멜 상병 님."

"나중에 하면 안되겠어? 지금부터 만날 친구들이 몇 있거든."

"친구들이요? 상병님한테 친구분도 있으셨나요?"

"...그래. 만날 친구들은 없어. 내 방으로 가지."

메이런은 모빈 이병이 자신의 농담을 재미없어 한다는 사실에 기분

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이등병인 주제에 어떻게 알

겠는가. 심오한 농담의 세계를.

메이런은 모빈 이병에게 자리를 권했다.

"시쟌 상병이 진짜 클론인지 묻고 싶은 거지?"

메이런은 모빈 이병에게 시원한 물을 한 잔 권했다. 메이런의 개인

냉장고 안에는 차가운 딸기 주스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상용

이었다. 한 밤중에 단 것이 먹고 싶어 질 때를 대비한.

"예. 맞습니까?"

"그래. 클론 병사야. 우리 중대에 열 네명이 있지. 열 다섯이었던가?

하여간 대부분 중화기 중대에 있고, 각 소대에 하나씩 있지. 훈련소에

서는 본 적이 없지?"

"교관이 클론 병사라는 말이 있기는 했습니다."

"교관들은 클론 병사가 아니야. 클론 병사는 누구를 가르치지 않아.

전투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다르거든."

"저도 그냥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농담이 돌아다닐만도 하지. 교관들은 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메이런은 완벽하게 다림질이 되어있는 군복을 입고, 지급 받은 것인

지 맞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선글라스를 끼고, 손에는 똑같이 검

은 색 지휘봉을 들고 있는 교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쾌한 기억이

었다. 특히 동절기 대비훈련 때에 교관의 구령에 맞추어 발가벗은 상

태로 뒹굴어 본 기억을 떠올린다면 더욱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배웠겠지만 클론 병사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전투밖에는 모르고

자란 녀석들이야. 전투식량 외에는 먹어 본 적도 없고, 게으름이나 공

포 같은 건 들어 본적도 없지. 사실 시쟌은 내 동기지만 절대로 가까

이 있고 싶지 않아."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전투 때, 시쟌

이 아니었다면 소대원들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였다. 살아남은 소대

원들끼리는 소대원이 전멸한다고 해도 시쟌은 살아 남았을 거라고 이

야기했다.

"그런데 클론은 정말로 똑같이 생겼나요?"

"중화기 중대 점호 시간은 거울집에 들어간 것 같다고 그러더군."

메이런이 말했다.

"클론들만 전쟁을 한다면 좋을 텐데."

"저런. 또 신의 의지에 도전하는 말이로군. 소대장님이 못들은 게 다

행이야."

메이런은 점잖게 충고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의도도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클론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상태가 몹시 불안정해. 식당에서 동료를 잡아

먹은 클론 병사에 대한 농담 알지? 과장되기는 했지만 클론 병사는 신

경이 정말로 예민하다고. 군사령부가 한 소대에 클론 하나가 있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어."

메이런은 '한 소대에 클론 하나'라는 원칙이 세워지기까지 겪었던 시

행착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어떤 클론 사단은 80%

가 탈영을 한 적도 있었고, 그 때 해방 정부는 자신들이 키운 살인 기

계에 고스란히 사단 몇 개를 소모시켜야 했다고 한다. 탈영한 클론에

대한 이야기나 작전 중 완전히 사라져버린 클론 소대에 대한 이야기는

흔한 것이었다.

"저, 정말로 위험한가요?"

모빈 이병이 걱정하고 있는 건 정말로 식사 도중에 식당에서 클론인

시쟌 상병이 자신을 잡아먹지나 않을까 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클론이고, 조심해서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지만, 역시

휴먼 레이스는 휴먼 레이스야. 혼자 있을 때 뭘 하고 있는지 알 게 뭐

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지도 모르고. 일단 깍듯하게 대해. 계급도

너보다 높고,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의지하게 될 존재니까."

메이런은 진지하게 충고했다. 모빈 이병은 메이런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모빈 이병은 신병 특유의 공허한 대답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가서 눈 붙여. 셔틀 여행이 그렇게 편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메이런은 경계를 붙이고 나가는 모빈 이병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말했다.

자리에 눕자, 메이런은 휴가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정말 있었던 일

이었나 궁금해졌다. 다시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휴양 콜로니에 있으면

언제 내가 내무생활을 했었나 싶어진다. 내무생활을 하다보면 언제 내

가 휴양 콜로니에 있었나 싶어진다. 그건 늘 그렇다.

메이런은 리모컨을 이용해 방의 조명을 껐다. 멀리서 아직 잠들지

않은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소대장이 분대장에게 다시 카드 게임을

제안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결과는 소대장이 또 돈을 잃던가, 아

니면 내일 부은 눈으로 훈련하던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둘 다 동시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두통 따위도 없었다. 잠시

이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그런 생각을

지웠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수면 시간을 낭비하기에 메이런은 너무나

도 훌륭한 군인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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