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32화 (32/52)

3.불사(不死)

메이런의 소대는 한참 수색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락벳의 정글에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독한 습기. 전염

병. 진드기. 거머리. 모기. 야생짐승. 정통정부군의 치명적인 트랩. 그리

고 언제 어디서 덤벼들지 모를 정통정부군.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더위였다. 높은 습기와 더위는 병사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열사병을 방지하기 위해서 장갑복의 에어컨디셔너를

작동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적에게 표적을 제공해 주는 것이나 마

찬가지였다.

정통정부군이 무서운 건 그들이 흉폭하고 사나운 종족이어서가 아니

었다. 그들은 모든 첨단 감시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

다. 그들은 삽으로 땅을 파고 터널을 뚫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청각과

촉감을 이용해 해방정부군과 지원군의 위치를 파악했다.

만약 그들이 초음파 탐지 방식의 탐지기건, 열탐지 방식의 탐지기건,

생체 탐지 방식을 쓰는 탐지기건, 혹은 진동탐지 방식의 탐지기라도

사용했다면 그들은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 장비를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은 극에 달해있었던 것이다. 하지

만 아무 장비도 사용하지 않는 적을 추적한다는 것은 적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장비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적은 정글에 익

숙하고 아군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용병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메이런의 소대는 침묵 속에 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척후에 선 것

은 소대장 레이 중위였다. 그 뒤를 시쟌 일병과 메이런 일병, 라이호

상병이 따르고 있었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셋이 그 뒤에 있었다

(고 메이런은 기억했다). 킨 하사는 행렬의 마지막에 서서 행군을 조절

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수색시에 항상 가장 앞이나 가장 뒤에 선다. 왜냐하면 매

복을 하고 있는 적군은 항상 부대 중간을 노리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가장 먼저 죽는다면 전투에서 이긴다는 건 불가능해 진다. 행렬의 가

장 뒤에 서는 건 앞에 서는 것 보다 조금 더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특수훈련을 받은 적군이 행렬의 가장 뒤편을 따라가며 하나 씩 죽인

다음 지휘관을 생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농담과는 달리,

아무리 노련한 군인이라고 해도 휴먼 레이스의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

메이런은 장갑복의 에어컨디셔너를 작동시키고 싶은 마음을 몇 번

참았는지 모른다. 에어컨디셔너 작동 버튼이 통제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백 번은 버튼을 눌렀을지 몰랐다. 장갑복 아래쪽에서 스멀거리듯

올라오는 악취는 이미 오래 전에 잊었다. 하지만 땀방울이 흘러내릴

때마다 가려워지는 등과 온 몸의 기운을 빼앗아 가는 열기는 정말 참

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갑복의 에어컨디셔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소음제거장치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락벳행성인들이 에어컨디셔너

에서 발생되는 열로 아군을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에어컨

디셔너의 사용은 휴식시간으로 한정되었다.

이렇게 더울 때면 메이런은 도대체 이런 장갑복을 뭐하러 입어야 하

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들곤 했다. 게다가 강화금속으로 만들어진 장갑

복은 니들탄에도 완전히 무력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장

갑복은 활동을 더욱 편하게 해 주었다. 장갑복의 팔에 달려있는 파워

피드백 시스템은 어지간한 나무둥치쯤은 뿌리째 뽑을 수 있게 해준다.

거기다가 장갑복의 강화금속은 정글에서 앞서 가던 동료가 밀치고 지

나간 나무 가지가 튕겨 오는 일 따위에서 몸을 보호해 주었고, 그 나

무 가지에 아무리 뾰족한 가시가 자라나 있다고 해도 불평 같은 건 하

지 않았다. 메이런이 생각하는 장갑복의 용도는 그 정도였다.

레이 중위가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켰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

다. 가장 먼저 달려 간 것은 라이호 상병이었다. 라이호 상병은 트랩

제거 교육을 받은 병사였다.

레이 중위가 라이호 상병에게 손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언뜻 보기에

는 그저 평범하게 솟은 나뭇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에는 분명

인공적인 무언가로 잘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함정 표식인 것 같습니다."

라이호 상병은 이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솟아있는 나뭇

가지 주변을 눌러 보았다. 땅은 마치 스펀지처럼 눌렸다.

"이 밑에는 허방이 파여 있을 것이고, 바닥에는 나무를 잘라서 만든

창이 가득 하늘을 향해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금속탐지기에도 걸리

지 않지요. 락벳 행성의 비오수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 장갑복을 뚫었

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라이호 상병의 말을 들은 소대원 전원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

러내리고 있었다. 긴장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땀

방울은 서늘하게 느껴졌다.

"우회해서 갑니까?"

메이런이 물었다. 메이런은 소대장의 결심을 뒤쪽으로 전달하는 역

할을 맡고 있었다. 레이 중위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우회한다면 더

욱 위험해 질지 몰랐다. 지휘관의 결심은 부하들에게 절대적이었고 때

문에 늘 옳아야만 한다. 지휘관도 보통의 휴먼 레이스에 불과하다. 이

런 결심을 내리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다른 함정은 없을까? 예를 들면 함정을 무너뜨리면 폭발한다던가."

레이 중위가 라이호 상병에게 물었다. 라이호 상병은 탐지기를 작동

시키고는 함정 부근을 탐색해 보았다.

"화약이나 기타 폭발물은 없습니다."

"해체해. 통과한다. 수색 경로를 바꿀 수야 없지."

"예."

라이호 상병은 들고있던 니들건으로 함정을 눌렀다. 그러자 마치 원

래 그 자리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땅이 푹 꺼졌다. 밑에는 라이

호의 말 그대로 비오수 나무로 만들어진 창이 솟아올라 있었다.

라이호 상병은 미소를 지으며 레이 중위를 바라보았다. 레이 중위는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미소를 짓던 라이호 상병의 얼굴은 사라져버렸다.

거대한 폭음이 들렸지만 소대원들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몇 초 사이, 셋이 쓰러졌다. 각각 머리와 가슴이 폭발과 함께 사

라졌다.

"엎드려!"

레이 중위가 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응사하며 회피한 것은 시쟌 일

병뿐이었다. 메이런은 시쟌 상병이 쏘는 방향으로 니들건을 난사했다.

탄창 하나가 빌 때까지 폭음은 들리지 않았다.

"쏴! 쏴!"

메이런이 탄창을 가는 사이, 분대장 킨 하사도 시쟌 상병이 사격을

가하는 방향에 가담했다. 욕설을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킨하

사의 얼굴에는 이성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레이 중위는 라이호 상병

이 뿜어낸 피를 뒤집어쓴 채로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전투는 고요했다. 처음의 폭음을 제외하고는 니들건의 연속적인 사

격음 만이 정글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 소리는 마치 마른 나뭇가지

를 연이어 부러뜨리는 소리 같았다. 뜨거운 태양아래 시커멓게 굳어

가는 핏방울. 머리와 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는 시체. 메이

런은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 까지 살아 움직이던

라이호 상병이 이제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살덩어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 또한 믿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의 폭음이 울려 퍼졌다.

"메이런! 메이런!"

누군가가 이성을 잃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메이런을 말렸다. 어느

새 눈에는 땀방울이 들어가 시계가 잔뜩 흐려있었다. 메이런은 멍한

상태였다. 만약 누군가가 메이런을 말리지 않았다면 메이런은 아마도

굶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방아쇠를 당기고만 있었을지 모른다.

"메이런."

누군가가 메이런을 부르고 있었다.

"젠장. 다 끝난 일이야. 꿈까지 꾸고 그럴 건 없어."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억 때문에 군대까지 와 놓고는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는 거냐?"

메이런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더 이상 이러고 있어 봐야 소용없지."

목소리는 메이런 자신의 것이었다.

"혼잣말이나 하다니. 미쳐가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가 들었다면 메이런이 미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메이런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메이런은 눈을 떴다. 눈에 익은 천장의 무늬가 눈에 들어오자 메이

런은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온몸에 솟아오른 땀방울은 메이런이 흉

몽에 시달렸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메이런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시계를 보았다. 시

계의 시침은 06시를 지나고 있었다. 오전 점오 시간이 07시니까 한 시

간 동안은 더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점오준비를 위해서 복장을 갖추

고 침대를 정리하는 시간을 뺀다고 해도 59분은 누워서 빈둥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누워서 초록색 머리를 가진 여자를 상상하거나 다

음 외출 때 뭐하면 좋을까 따위를 고민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창

문을 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연병장에는 새벽의 어스름이 남아있었

다.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연병장의 나무들은 선선한 바람결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로 부옇게 밝아오는 시퍼런 하늘. 구름 역시 느

릿느릿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어디를 보아도 전쟁터로는 보이

지 않는 풍경이었다.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을 것이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소대원들은 누구의 니들탄에 맞았는지 알 수 없는 정통정

부군의 시체 한 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등에 니들탄을 맞은 정통정부

군의 시신은 라이호 상병의 시신만큼이나, 또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세 병사의 시신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메이런은 부대로 귀환한 후에 만났던 전우뉴스 기자를 떠올렸다. 수

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기자는 이것저것을 물어보고는 마음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되거든요, 우리는."

비표 J를 달고 있었던 그 기자는 자세한 답변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소대원들은 단체 휴양을 명령받았다. 이른바 포상휴가였다. 소대원은

일급 셔틀로 휴양콜로니로 향했고, 휴양 콜로니에서 소대원들은 수영

과 술, 가리기 위해 옷을 입었는지 보이기 위해 옷을 입었는지 구분할

수 없는 여자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휴양 콜로니에서 돌아왔을 때, 중대 게시판에는 전우뉴스가 복사되

어 붙어 있었다.

'막강 수색 소대, 정통정부군 무찌르다'

메이런 소대의 기사였다. 기사에 따른다면 메이런 소대는 '영웅적으

로 임무를 수행'했고, '적과 마주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으며 '작전을

마친 후 사기가 충천'해 있는 상태였다. 메이런은 그 기사를 한 번 죽

읽고는 잊어 버렸다. 그리고 소대원 중 누구도 그 기사를 철해 두거나

벽에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동안 메이런은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래간

만에 발견된 정통정부군의 시신은 조각 조각으로 나뉘어 조사의 대상

이 되었다는 말이 떠돌았다. 죽은 아군의 시신은 화장되어 행성 어스

로 돌아갔다고 했다. 한꺼번에 태워서 뼛가루를 네 개로 나누었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열 개로 나누어 시체를 찾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보

내졌다고도 했다.

메이런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정통정부군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등판은 완전히 터져 나가서 피만 닦아낸다면 땅바닥이 보일 지경이었

다. 정글의 더위는 시신에서 금새 역한 냄새를 풍기게 만들었다. 간단

한 조사를 해야 한다며 레이 중위는 시쟌 일병에게 시체를 뒤집을 것

을 명령했다. 메이런은 자다가 방금 깨어서 피곤한 듯 보이는 시신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눈에 묻어있는 흙 알갱이가 마치 죽음의 사

자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죽는 구나. 저렇게 죽는 거구나. 저렇게 죽어

사라지는 거로구나...

그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메이런은 입대 이후 처음으로 휴가를

신청했다. 휴양 콜로니를 다녀오자마자 무슨 휴가냐고 말하는 이는 아

무도 없었다. 그리고 메이런은 홀로 향한 휴양 콜로니에서 매일같이

술과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메이런은 한동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새벽의 어스름은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평화롭게 보이는 나무와 구

름은 뜨거운 태양아래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부대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대대 4중대 중화

기 중대 일병 클론 4호가 죽었다는 건 부대원들 전원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부대원 전원이 다 알고 있다는 걸 죽은 클론 4호는 알고

있을지 모르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군사령부에서 내려온 M.P 간부들이 하루 종일 부대를 헤집고 다녔

다. 덕분에 부대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높은 간부들이 부대를 뒤집고

다니는데 병사들 심기가 편할 리가 없었다.

"동요할 거 없어. 군인이 죽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훈련이나 똑바로 하라고."

킨 하사가 소대원들에게 성난 투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말의 내

용과는 달리 가장 많이 동요하는 건 어쩌면 킨 하사일지도 몰랐다. 메

이런은 킨 하사가 말하고 있을 때 시쟌 상병을 바라보았다. 시쟌 상병

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했다. 클론은 다른 클론에게서 동질감

을 느낄까? 다른 클론의 죽음에 동요하는 건 아닐까? 메이런은 궁금

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잠시 트랜스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트랜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감정의 흐름만이라도 읽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언제 두통이 재발하

게 될 지 몰랐다. 애써서 잊고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올지 몰랐

다.

오전에는 사격 훈련이 있었다. 니들탄을 두 종류로 나누어서 사격하

는 훈련이었다.

니들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장갑을 뚫고 들어가서 신체에

반응하여 폭발하는 니들탄. 그리고 또 하나는 장갑의 표면에 닿는 순

간 폭발하는 니들탄.

첫 번째 니들탄은 보통 많이 쓰는 살상용 탄이다. 특히 메이런이 속

해 있는 부대와 같이 수색을 주목적으로 하는 부대에서 주로 쓴다. 하

지만 이 탄은 소총의 주 목적 중 하나를 이룰 수 없다. 총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적에 대한 위협, 엄호의 기능이 약한 것이다.

두 번째 니들탄은 나무나 바위에 부딪쳐도 폭발하기 때문에 적에 대

한 위협이 가능했다. 장갑을 착용한 적에게 무용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니들탄으로 적 하나를 잡으려면 평균 10만발을 발사해

야 한다는 통계도 나와있는 만큼, 나름대로 유용한 탄이었다.

보통 첫 번째 니들탄은 그냥 니들탄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니들탄은

폭발형 니들탄이라고 부른다. 오전에 있었던 사격은 폭발형 니들탄 사

격이었다.

표적은 적군과 흡사한 복장을 하고 있는 휴머노이드였다. 보통의 경

우, 레이저 신호를 응사하는 휴머노이드와 모의 총격전을 하는 것으로

훈련이 진행되었지만, 오전의 사격은 은폐한 상태를 가정하고 정조준

하여 움직이는 휴머노이드를 사격하는 것이었다.

메이런은 120발 사격에 7발 째에 적을 명중시켰다. 기준점은 60발이

었다.

"메이런은 사격 솜씨가 좋단 말이야. 사회 있을 때 많이 쏴본 실력

인데."

사격 통제관을 맡은 킨 하사가 칭찬인지 아닌가 구분하기 어려운 투

로 말했다.

"뒷골목에서 배운 사격인지 아닌지 궁금하신겁니까?"

메이런은 농담조로 말했다. 킨 하사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상관할 바 아니라는 투였다.

"옛날, 고대 왕국을 통일했던 유명한 장군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 장

군이 그랬다더군. 까만 고양이건 하얀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고."

적을 잘 죽이는 게 군인이라는 말이었지만 그리 노골적인 표현은 아

니었다.

신병들의 사격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모두 60발 내에 움직이는 휴

머노이드를 명중시켰고, 특히 모빈 이병은 초탄에 휴머노이드의 가슴

을 박살내었다.

"굉장한데? 소대 특등사수였나?"

사격이 끝나자 킨 하사가 모빈 이병에게 말했다.

"아뇨. 훈련소 전체 특등사수였어요. 한 번 더해볼까요?"

"좋아."

킨 하사는 휴머노이드를 다시 표적지역에 올려놓은 다음, 정렬해 있

는 소대원을 바라보았다.

"모빈 이병하고 누구 사격 대결 해 볼 녀석 없어?"

킨 하사가 외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기면 당연히 이길 거라는 소

리를 들을 게 분명하고, 지면 망신인 대결에 고참병이 그리 쉽게 자원

을 할 턱이 없었다. 킨 하사는 소대원들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가장 적

합한 인물을 찾아내어 호명했다.

"시쟌 상병."

시쟌은 아무 말도 없이 니들건을 들고는 덤덤하게 걸어가 사선에 섰

다. 모빈 이병은 자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시쟌 상병을 바라보았다.

시쟌 상병은 아무 표정도 없이 모빈 이병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시작!"

킨 하사가 휴머노이드의 작동을 알렸다. 순간 휴머노이드는 몸을 움

직여 엄폐물로 설정된 나무 뒤로 숨었다. 모빈 이병과 시쟌 상병이 정

조준을 하고서 휴머노이드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 왼편으

로 튀어나올 것인가. 오른편으로 튀어나올 것일까. 아마도 그 움직임에

승패가 갈릴 거였다.

휴머노이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동작으로 왼편으로 몸을

날렸다. 대단히 빠른 동작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낮게 몸을 움직였다는

게 사격을 어렵게 했다. 모빈 이병은 방아쇠를 당겼고 시잔 상병은 당

기지 않았다.

모빈 이병의 탄은 아슬아슬하게 휴머노이드를 스치고 지나가 뒤편에

있는 나무둥치에서 폭발했다. 이번에 휴머노이드가 숨은 곳은 바위 뒤

였다.

구경하고 있던 소대원들은 숨을 죽였다.

이번에는 휴머노이드가 빠른 동작으로 앞쪽의 나무쪽으로 몸을 굴렸

다. 모빈 이병의 니들건이 발사되었고, 니들탄은 휴머노이드의 목 부근

에 정확하게 명중되었다.

"맞췄다!"

모빈 이병이 폭발음과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폭발과 함께 휴머노이

드의 얼굴이 허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쟌 상병의 니들건이 발사되었다. 시쟌 상병의 니들탄은 솟아오른

얼굴에 명중되어 휴머노이드의 얼굴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렸다.

소대원들은 거의 동시에 경탄의 환호를 올렸다.

"정말 대단해! 역시 모범군인은 다르다니까?"

시쟌 상병은 무표정한 얼굴로 니들건에서 탄창을 제거한 뒤, 사선에

서 물러났다. 모빈 이병의 입은 어이가 없다는 듯 떡 벌어져 있었다.

"이봐. 어떻게 한 거야?"

킨 하사가 시쟌 상병에게 물었다.

"이기고 싶었습니다."

시쟌 상병은 무뚝뚝하게 말하곤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0

사격 훈련이 끝나자 점심 식사 전까지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고참병들은 주로 잠을 청하는 시간이고, 신병들은 주로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메이런은 잠을 청할 만큼 피곤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

서 편지를 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내무반 주위를 서성였

다.

내무반 앞에서 그늘에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간부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군사령부에서 온 M.P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소

대를 돌며 죽은 4호 클론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있었다. 누군가는 열

심히 묻고 있었고, 누군가는 열심히 적고 있었다. 누군가는 카메라로

그 광경을 찍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병사!"

장교 하나가 메이런을 불렀다. 내무반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게 아니

었는데. 군대에서 상관의 눈에 뜨인다는 건, 야전에서는 죽음이 가까워

온다는 이야기고, 병영에서는 귀찮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라는 건 군

대의 법칙 중 하나였다.

"상병 메이런입니다."

메이런은 거수경례를 붙였다. 장교는 여섯이었다. 둘은 대령이었고,

나머지는 중령 둘에 대위 하나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놀랍게도 별

을 두 개나 달고 있는 장군이었다. 메이런은 군사령부 헌병감이 소장

이라는 사실을 지금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거였다. 장군이 일선 소대

까지, 그것도 이렇게 알리지 않고 찾아오는 일은 식당에서 비키니 아

가씨를 보는 일 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우리가 누군지 알겠지?"

메이런을 부른 대위가 말했다. 여섯 장교는 모두 M.P완장을 차고

있었다.

"예. 군사령부에서 오신 M.P 장교님들이십니다."

메이런이 절도있게 대답했다.

"여기 장군님께서 몇 가지 묻고 싶다고 하신다."

대위가 말했다. 이제 보니 대위는 부관인 모양이었다.

"상병... 메샤? 메쟈?"

장군이 메이런의 명찰을 보며 말했다. 장군은 메이런을 모르는 것이

다.

"메샤 상병입니다."

장군과 이야기 할 때는 짧게 대답하라. 장군은 어차피 많은 것을 알

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화를 길게 끌 수록 불리해 지는 건 사병이다.

메이런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 메샤 상병. 여기 생활은 어떤가?"

헌병감은 키가 아주 크고 호인으로 생긴 군인이었다. 장군 심사를

할 때 외모도 중요 심사 요소 중 하나라더니,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싶었다.

"좋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장군은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 부대 클론 병사가 사망한 건 알고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어디서 들었나?"

"...식당에서 들었습니다."

"장군들도 식당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곤 하지."

헌병감이 말하자 다섯 장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메이런은 따

라서 웃는 게 예의에 맞는 걸까, 아니면 조용히 입 닥치고 있는 게 예

의에 맞는 걸까 생각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을 택했다.

"혹시 죽은 클론과 친했나?"

"멀리서 본 적만 있습니다."

"이야기 해 본적은 없고?"

"클론 병사와는 보통 사담을 나누지 않습니다."

헌병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클론 병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지.

이번 사건도 우리가 모르는 영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상병. 하지만 클론 병사들이 전투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고, 이런 시

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 군은 더욱 강해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네. 동

요 없이 군 생활에 임해 주길 부탁하네."

그 사이 내 이름을 잊어 버렸군요. 당신이나 군 생활 잘 하슈, 하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감히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상

대는 메이런의 군생활을 손가락 하나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장군이었

다.

"예. 알겠습니다."

메이런의 대답에 모두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메이런은 장

교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섞여 있는 걸 발견했다. 대령이었다. 분명 어

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사건 조사중이었는데... 쿨란...

아이라... 웨이팅하우스 시... 맙소사. 메이런은 두통을 느꼈다.

"뭐 궁금한 거 없나?"

장군이 물었을 때, 메이런은 장군이 많은 걸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다

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 대령님."

메이런이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령은 안경을 끼고 있었

고,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얇은 눈선을 가지고 있었다.

"대령님. 저, 혹시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저와 만난 적 있지 않으십니

까?"

메이런이 말하자 장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작 대령은

아무 표정 없이 메이런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윽고 장군이

웃음을 터트렸고, 곧 이어서 네 장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군 생활 잘 하게. 무운을 비네."

장군이 웃음을 지으며 메이런의 어깨를 쳤다. 여섯 장교가 메이런을

지나치자 메이런은 바보처럼 멍하니 혼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세 장교가 뛰어왔다. 하나는 중령이었고, 둘은 중위였

다. 중령은 사단 인사참모였고, 나머지 둘은 인사과에서 근무하는 위관

급 장교였다. 낯익은 얼굴을 보자 메이런은 생각보다 거수경례가 먼저

튀어나왔다.

"어이. 메샤, 메쟈 상병. 지금 무슨 얘기했어?"

인사참모가 메이런에게 물었다.

"군 생활 잘하라고 하셨습니다."

인사참모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또 다른 건 없었고? 그런데 장군님께서 왜 웃으셨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 해봐. 네가 무슨 얘기를 했으니까 장군님이 웃었을 거 아니야?"

메이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인사참모와 두 위관

급 장교의 표정은 대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저, 아까 저 대령님에게 행성 어스에 있었을 때 뵌 것 같다고 했습

니다."

메이런의 말이 끝나자 인사참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군. 다른 건 없었어?"

"별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알았어. 젠장. 개구리하고 장군들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더

니만, 젠장 하필 우리 부대로 튈 게 뭐야?"

인사참모는 이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장군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메

이런은 왜 인사참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의문은 위관급 장교 하나에 의해 풀렸다.

"병신. 너 바보 아니냐? 상병씩이나 달고서. 클론 장교한테 말이나

걸고."

클론 간부가 대령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걸까? 메이런은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만났던 밀라노 총경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쿨란이

밀라노 총경을 만난 적 있다고 했던 것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메이런은 오래된 의문 하나를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한 순간에 메이런에게 몰려왔다.

메이런은 점심 시간 전까지의 귀중한 휴식 시간을 두통을 견디며 보

내야만 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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