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34화 (34/52)

5.생존의 법칙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일과가 시작되자 모빈 이병이 싱글거리며 내

무반으로 들어왔다. 다른 소대원들은 모두 내무반 복도에서 오후 교육

훈련 대기 중이었다.

"애인한테 편지라도 온 거야?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킨 하사가 모빈 이병에게 물었다.

"오후에는 훈련 취소하고 정비한데요. 중대장님께서 이 소식을 내무

반에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모빈 이병이 말하자 킨 하사는 물론이고 메이런과

시쟌 상병의 얼굴이 굳었다. 대기하고 있던 신병 둘은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눈치였다.

"모두 들어가서 장비 점검한다. 소대장님 사열이 곧 있을 테니까. 메

이런 상병은 신병들 챙겨줘."

킨 하사는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

렸다. 시쟌 상병도 곧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남아 있는 건 메이런과

신병 셋 뿐이었다.

"일단 내방으로 들어와."

메이런이 말하자 신병 셋은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메이런을 따랐다.

"작전이다."

메이런이 신병에게 말했다. 신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곧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문지르면 부서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메이런은 설명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군대라는 곳은 작전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있겠다고 말해 주지는

않아. 보안 유지 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전을 미리 알고 있

으면 신병들이 탈영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저, 작전이라고 하시면..."

모빈 이병은 질문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모빈 이병은 질문을 끝까

지 하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을 지도 모

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내용은 몰라. 아마 오후에 장비 사열을 하면서도 아무도 말 해 주

지 않을 거야. 이동하는 셔틀 안에서야 듣게 되겠지. 그것도 아주 작은

부분만. 우리는 말단 병사야. 우리가 작전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

다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알겠습니다."

모빈 이병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작전에 대한 공포심을 처음 경험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억누

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그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머지 신

병 둘, 그러니까 훈 이병과 닐스 이병은 그저 겁먹은 듯 보였을 뿐이

었다.

"군장 챙기는 건 훈련소에서 배웠지?"

"예, 그렇습니다."

셋이 동시에 군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훈련소에서는 몇 분내에 군장을 싸야 하지?"

"15분입니다."

"이제부터 그건 잊어버려라. 실제 사단에서는 군장을 챙기는 데 1시

간이고 2시간이고 주어진다. 완벽하게 군장을 장비 할 때까지. 하지만

만약 비상이 떨어지면 1분내에 군장을 싸야 한다. 내용물이 완전하건

미흡하건 그건 순전히 자기 책임이다. 내 말 이해하겠나?"

"예, 그렇습니다!"

메이런이 모처럼 군인다운 투로 말하자 세 신병 또한 군기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30분 뒤에 내가 직접 가서 검사하겠다. 소대장님은 1시간 뒤에 오

실 거다. 만약 너희가 싼 군장 내용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

대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떨 것 같나?"

셋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너무 걱정 말아라. 나는 생각보다 관대하니까. 해산."

메이런은 셋을 돌려보내고는 미리 챙겨둔 군장 내용물을 점검했다.

모든 것은 교본에 있는 대로 들어있었다. 야전 식기, 수저, 여벌의 전

투복과 양말과 속옷, 세면도구, 비상식량, 라이터... 어차피 이것을 쓸

일은 없을 거였다. 수색 작전일 게 뻔했고, 수색 작전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다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뿐이다. 작전에 실패했다는 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전을 나가기 전에 장군을 보면 재수가 없다던데. 메이런은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기가 힘이 들었다.

메이런은 신병들의 군장을 검사했다. 그리고 15분 동안 신병들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선사했고, 그 결과 신병들은 다음 1분 동안 군장을

완벽하게 쌀 수 있었다.

소대장 사열은 늘 그렇듯 간단한 내용물 검사에서 그쳤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작전 개시 시간을 들을 수 있었다.

"21시에 주둔지에서 출발한다. 그 때 까지 킨 하사 통제하에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소대장은 이렇게 말하곤 내무반을 나섰다.

"소대장님 말씀 들었지? 20시 30분까지 취침에 들어간다. 모두들 들

어가서 자 둬라."

킨 하사는 긴말을 하지 않았다. 작전을 눈앞에 두고 별다른 부담을

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메이런은 킨 하사의 말이 끝

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재빨리 누워 잠을 청했다. 어쩐

지 조금이라도 더 자 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신병들

은 잠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을 거였다. 메이런은 자신이 참가했던 첫

번째 작전을 기억했다. 그 때,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고르게 숨을 쉬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다. 하

지만 몇 번의 작전이 거듭되고, 전투라는 게 그리 쉽게 벌어지지 않는

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 후에는 작전이 그리 두렵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첫 전투 경험 후에 가지게 된 첫 작전이었다.

메이런은 또 다시 쉽게 잠을 청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개운

하지 못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상병씩이나 달고서 신병과 다를 것 없

는 꼴이라니. 메이런은 이런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상병

계급장이 하늘에서 떨어져 메이런의 어깨에 떨어진 게 아니었고, 메이

런은 그리 오래지 않아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20시 30분이 되자 소대원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기상."

그리 크지 않은 킨 하사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소대원들

은 순식간에 장갑복과 군장을 갖추고 복도에 정렬했다.

"출동."

킨 하사의 명령이 떨어졌고, 소대원들은 발을 맞추어 킨 하사를 따

랐다.

킨 하사가 인도한 곳은 연병장이었다. 연병장에는 작은 지진을 연상

케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마치 조명

탄을 터트렸나 싶을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연병장에는 병력 수송용 장갑 호버카가 정렬해 있었다. 마치 경주를

앞둔 야수들이 정렬해 있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어마어마한 호버카의 규모로 보아서 사단 전체가 출동하는 모양이었

다. 메이런은 다시금 가슴이 뛰어올랐다. 아무래도 대규모의 작전일 게

틀림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호버카가 정렬해 있는 모습은 입대 한 이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멜 상병님."

모빈 이병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서 메이런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가요?"

작전이 원래 이렇게 규모가 크냐는 질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요란스럽냐는 질문인지 정확하게 요지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메이

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하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실 메이런도 조금은 겁에 질려있는지 몰랐다.

"장군을 보면 재수가 없다더니만..."

메이런은 이렇게 입 속으로 조그맣게 웅얼거렸을 뿐이다.

킨 하사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정해진 호버카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

에 정렬해 서자 누군가가 사열대 위에 마련된 연단에 섰다. 인사참모

였다. 인사참모는 마이크를 몇 번 점검한 다음 말문을 열었다.

"주목. 모두 정렬해 서라."

메이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버카 한 대 당 일개 소대 병력이 정

렬해 있었다. 조명을 받은 군인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

었다. 사단 규모의 대규모 작전이라는 걸 실감케 했다.

"사단장님이 나오셔서 직접 훈시를 하실 것이다. 본 작전에 대한 자

세한 세부 사항은 이동 중에 제군들의 지휘관이 할 것이다."

인사참모는 간략하게 말하고 호버카의 조명이 닿지 않는 연단 뒤편

으로 사라졌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아마

도 인사참모 역시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이윽고 사단장이 연단에 나타났다. 호버카의 대열 앞으로 연대장들

이 서 있었고, 연대장 대표가 경례를 했다.

"제군들! 이제 우리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중요한 작전

에 나서게 되었다."

대부분의 장군이 계급이 주는 권위 덕에 실제보다 더욱 커 보이지

만, 사단장의 경우 더욱 커보였다. 아마 메이런과 함께 선다면 메이런

보다 목 하나는 족히 더 클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적의 중요 병참 도시에 침투하여 소탕 작전을 전개하

게 된다. 작전은 제군들이 지금껏 훈련한 그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개될 것이다. 연대장들! 각 직할 부대장들! 일선 지휘관들! 사병들!

나는 귀관들을 신뢰하고 있다. 제군들이 지금껏 쌓아온 훈련의 성과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제군들의 무운을 빈다. 이

상."

사단장의 연설 또한 짧고 간략했다. 하지만 이제껏 알지 못했던 중

요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작전의 개요가 메이런이 지금까지

해 온 수색작전과는 다른 작전이라는 점이었다. 적의 병참기지라면 어

떤 곳일까. 틀림없이 방어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거였다. 희생자

의 수도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이 나게 될 거였다.

소대원들 중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메이런은 침을

삼켰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갈증이 느껴졌다.

"탑승!"

연대장 중 누군가가 구령을 붙이자, 병사들은 아무 말 없이 호버카

에 올랐다. 연병장에는 호버카의 시동 소리와 병사들이 움직이는 소음

만이 들릴 뿐이었다. 호버카에 가장 먼저 오른 것은 킨 하사였다. 그

뒤를 이어 메이런과 시쟌 상병이 탔고, 신병 셋이 그 뒤를 이었다. 소

대장은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호버카에 올랐다. 소대장이 오르고

있는 호버카 뒤편으로 연병장에서 피어오른 흙먼지가 날리는 게 보였

다.

"자. 이제 부터 작전 개요를 설명하겠다."

그러고 보니 소대장은 오늘 하루 종일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중대

장 실이나 대대장 실에서 작전 개요에 대한 설명을 듣고 회의를 했을

것이다. 장교가 된다는 건 사병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소대장의 얼굴에는 피로와 졸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사단을 출발하여 슈이롱 시 공군 기지로 향한다. 그곳

에서 수송 셔틀을 타고 작전지점인 리타이 국의 미린 시로 향하게 된

다. 미린 시는 사단장님께서 설명하신 바, 적의 병참기지로 추정되는

도시이다. 이곳을 점령하게 된다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물론 미린 시가 중요 도시인만큼, 만만치 않은

적의 저항이 예상된다. 우리는 중대장님의 지휘하에 시 외곽 소탕 작

전에 동원된다. 임무는 간단하다. 적을 섬멸하면 되는 것이다. 직할대

들이 도시 중요 기관 점령과 파괴를 맡을 것이다. 이번 작전에는 군단

항공대와 기갑여단의 지원도 있을 예정이다. 적은 아직 우리가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의 승리는 확실하다."

소대장의 얼굴은 지금까지 보아온 어떠한 모습보다도 더 긴장되어

있는 듯 했다. 이런 표정으로 하루를 버틴다면 얼굴 근육이 마비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제 미린 시 소탕 작전에 투입 될 것이다. 아마 제군들은

행성 어스에 돌아가서 동료들과, 또 가족과 술 한잔을 하면서 이 미린

시 소탕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소대장도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건 피하고 싶었는지 애써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너무나도 어색해 보였다. 저

렇게 미소를 짓는다면 얼굴근육이 마비되는 시간은 조금 더 앞당겨 질

지 몰랐다.

메이런은 이번 작전이 소대장이 설명한 것처럼 결코 쉬운 작전이 아

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단 전체가 출동한다는 점도 그랬고, 하나같이

긴장된 간부들의 모습도 그랬다. 메이런은 호버카의 좌석에 앉아 있었

지만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이 다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메이런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실 모빈 이병, 훈 이병, 닐스 이병, 너희들이 걱정된다. 제대로 훈

련을 받지도 못한 신병들과 이렇게 첫 작전을 나서야 하다니... 하지만

너희들도 맡은 바 임무를 다 해 주리라 생각한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 해 두자."

소대장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대장을 바라보고 있는 얼

굴은 하나같이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고대 전투사를 보면 이런 예가 있다. 화약총을 주력 화기로 쓰던

시대의 이야기다. 고지를 눈앞에 둔 부대가 있었다. 중대장은 중대 전

원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고, 첫 번째 돌격에서 중 대원 절반을 잃고

후퇴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돌격 명령을 내리자 아군 중에서 총소

리가 들렸다. 중대장은 돌격을 회피하기 위한 자해로 판단하고 자해한

병사를 끌고 왔다. 그리고 중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자해한 병사를 사

살했다. 물론 두 번째 돌격에서 중대원들은 고지를 점령했다. 전투가

끝난 뒤 중대장은 훈장을 받았고, 이 일은 전투사에 기록되었다."

호버카 안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정

막이 흘렀다. 소대장은 지휘관용 권총을 뽑아들었다. 소형 니들건이었

다.

"이 권총의 의미를 아나? 이 권총은 전투 시 필요하다면 부하를 사

살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는 권총이다. 나는 역사 속의 중대장이

탄 것 같은 훈장은 타고 싶지 않다. 나에게 기회를 주지 마라. 절대

로."

소대장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이런은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결코 공포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전투

에 대한 기대가 주는 가벼운 흥분도 한 몫하고 있을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버카에 탑제된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통해 연대

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제군들... 로 이어지는 사기 진작을 위한

감동적인 연설을 이었지만 제대로 듣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어서 그

연설이 정말로 감동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들 머

릿속에 작전에 대한 생각이 가득한데 사기 진작을 위한 '승리' '전우'

'적' '압도' '무운' 따위의 단어가 이어지는 알맹이 없는 연설에 귀를 기

울일리 없었던 것이다. 곧 이어진 중대장의 연설은 그나마 조금 들을

만 했다. 중대가 맡은 건물과 건물 장악 요령등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과 적을 구분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다들 알

고 있겠지만 '정지'는 락벳인 어로 '파타'이다. '파타'를 외쳤는데 움직

이는 것들은 모조리 사살하라."

매우 유용한 정보였다. 지금껏 전투라고는 한 번 밖에 치러보지 못

한 메이런에게는 더욱 유용한 정보였다. 수색작전을 통해 적과 조우한

단 한 번은, 1년에 수색중대가 적과 조우하는 비율과 비슷했다. 그런데

홀로그램을 통해서 본 중대장은 평소보다 훨씬 커 보이는 데 그 이유

가 뭘까? 혹시 조작이라도 가하는 걸까? 메이런은 이런 게 궁금했다.

잠시 후 선두의 호버카가 출발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호버카

의 행렬이 이어졌다. 메이런이 타고 있는 호버카도 곧 움직였다. 그것

을 기점으로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소대장님. 질문있습니다."

모빈 이병이 손을 들고 말했다. 소대장은 고개를 끄덕했다.

"이번 미린 시 소탕 작전에는 몇 개 사단이 참가합니까?"

신병이 이런 사항을 궁금해하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

만 호버카 내에는 해서는 안될 질문을 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모두들 모빈 이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한 작전 규모는 나도 모른다. 시를 점령하는 작전이니 몇 개

군단이 투입되었는지도 모르지. 참. 잊어버리고 말 안하고 있었는데,

이번 작전 전투 수당은 다른 때 곱절이다. 분대장. 작전 끝나면 나하고

카드 한 판 하지."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었지만 소대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들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소대장이 마침 기회를 제공했

던 것이다. 그런 만큼 웃음은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좋습니다. 저도 다른 때 곱절로 딸 수 있겠군요."

킨 하사의 대꾸에 소대원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 동

안 농담이 오고갔다.

"멜 상병 님. 정통 정부군은 귀신처럼 신출귀몰 하다던데, 정말 그런

가요?"

모빈 이병이 메이런에게 물었다.

"어디서들은 소리야?"

"훈련소에서 조교가 그러던데요?"

"전투에는 나가보지도 못한 조교가 뭘 안다고. 절대 아니야."

메이런이 대꾸했다. 그러자 대화를 듣고 있던 소대장이 얼른 끼어

들었다.

"지난 번 전투 때 사살 한 락벳 녀석 보니까 말이야, 신발 밑창에

비누칠을 잔뜩 해 두었더라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가득했고 말이야. 녀

석들도 그냥 군인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우리와

같은 군인이라면, 이기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안 그래, 모빈 이병?"

소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었다. 아마 이런 종류의 질문

이 나오면 대답하려고 준비한 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

다.

어느 새 호버카들의 행렬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천천히 정지하기 시

작했다. 공군기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공군기지의 조명이 호버카와

활주로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대화는 순식간에 뚝 끊어졌다.

"저... 멜 상병님. 우리, 살아 돌아갈 수 있겠죠?"

호버카에서 내리려는 데 모빈 이병이 메이런에게 물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어깨를 꽉 잡은 다음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입을 열

었다.

"그런 말하지 마. 전투 전에는 그런 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죽으면

가족한테 뭘 전해 주라는 둥, 그 동안 즐거웠다는 둥, 그런 말하는 것

도 안돼. 이건 금기야."

메이런은 호버카에서 내리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낮은 목소리었

지만 꽤 강경한 어조였다.

"저, 그럼..."

"무운을 빈다."

메이런이 말하자 모빈 이병은 입을 다물었다.

수송 셔틀까지 이동하는 동안, 공항에 군인들의 족성이 가득 찼다.

마치 거대한 양철판 위에 큰비가 쏟아지는 소리 같았다. 병력들은 중

대별로 일단 집결했고, 그 이후 소대 별로 셔틀에 오르게 될 것이었다.

메이런은 조명탑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눈을 감았다. 강렬한 조명 때

문에 세상은 온통 붉은 빛으로 휩싸였다. 붉은 빛 사이에서 메이런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이고 그것은 지난 번 전

투보다 훨씬 끔찍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 몰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

는 거다. 그냥 배운 대로 방아쇠를 당기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 메이런

은 이렇게만 생각하려고 했다. 마음이 진정되자 메이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메이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중대장이었다. 조명을

받은 중대장의 어깨는 믿음직스럽게 널찍해 보였다.

"제군들. 이제부터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의 개요와 목적에 대해서는

소대장들이 잘 알려 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제군들. 이번 작전을 위해

군사령부에서 용병이 지원되었다. 펠리데 레이스 군인이다. 계급은 중

사고, 이름은 콘웰라고 한다. 통역을 위해 중대에 한 명씩 트랜서가 배

치되었다."

펠리데 레이스는 윤기가 흐르는 까만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락벳

행성에 와서 다른 레이스와 함께 작전에 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

다. 랩타일 레이스 용병 부대는 자주 보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

었다.

콘웰이라는 펠리데 레이스의 눈은 날카롭게 보였고, 가늘고 긴 팔의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철모 때문에 잘 보이

지는 않았지만 길게 솟은 귀가 머리에 있을 것이고 비록 지금은 가만

히 서 있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대단히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였

다. 메이런은 콘웰에게서 문득 키티-본을 떠올렸다. 키티-본은 자신이

펠리데 레이스와 비교된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4

메이런은 콘웰의 옆에 서 있는 트랜서를 바라보았다. 트랜서는 기껏

해야 열 대여섯 살이나 먹었을까. 솜털도 벗어지지 않은 어린 친구였

다. 게다가 군복도 어깨부분이 지나치게 넓어서 체구도 작게 보였다.

나도 저만할 때부터 트랜서 일을 했었지... 트랜서라는 단어가 떠오르

자 메이런은 두통의 전조를 느꼈다. 정수리에 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

한 기분이었다.

"펠리데 레이스는 야간에도 정확하게 사물을 구분할 수 있고, 우리

휴먼 레이스보다 월등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 청각이나 후각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예민하지.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에 큰 힘

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메이런은 다른 중대를 돌아보았다. 다른 중대의 앞에도 각각의 용병

들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날개가 달린 것도 있었고 몸집이 거대한 것

도 있었다. 용병의 전시장인가? 메이런은 이 번 작전에서 용병들이 어

떻게 다르게 움직이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메이런의 눈은 계속해서 트랜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트랜서

는 중대장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아마도 트랜서의 역할은 전투에

서도 꽤나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럼, 무운을 빈다. 탑승!"

중대장은 이렇게 말하곤 먼저 지휘관용 셔틀에 올랐다. 그 뒤를 이

어 중대원들은 각 소대별로 수송 셔틀에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셔틀에 오른 소대원들은 하나같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억지로라도 농담을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사

라진 듯 했다.

"우리는 정예 요원이다."

셔틀이 이륙하기 전 소대장이 소대원들의 안전 점검을 마치고 말했

다. 소대원들은 좌석에 앉아 소대장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때는 보병 사단이 1만 명이 되고 소대원이 20명, 30명이었던 시

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화기의 숫자가 적을 압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현대다. 우리는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

고 그 어떠한 적과도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잘 무장되어 있다. 고대의

바보 군인들은 100만이 모여도 우리 같은 정예 보병 하나 제대로 못

당해 낼 것이다. 적도 마찬가지다. 적들은 정글전에는 강할지 몰라도,

이런 공격을 방어해 내는 데에는 익숙할 리 없다. 우리는 최강이다. 나

를 믿고 따르면 이번 작전에서 결코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소대장은 당찬 어조로 말을 이어갔지만 메이런은 그 말에 믿음이 가

기보다는 소대장이 스스로에게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

다. 소대원들은 그저 묵묵히 소대장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전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송 셔틀이 일단 떠오르고 나면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가끔씩

몸이 붕 떠오르는 듯 하기도 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듯 느껴지기도 하

지만 흔들리거나 하는 경우는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뿐이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지금부터 15분 뒤다. 그 때까지 각자 마음의 각

오를 단단히 하도록."

소대장은 말을 마치고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메었다.

메이런은 수송선의 관측창 밑으로 보이는 락벳을 바라보았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마도 슈이롱 시의 불빛일 거였다.

이제 곧 셔틀에 속도가 붙으면 미린 시까지는 금새 가게 되겠지. 메이

런은 다시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좀처럼 쉽게 진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병이 셋이나 있는데 불

안해하거나 초조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메이런은 마치 편안한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멜 상병님."

모빈 이병이 메이런을 불렀다. 메이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

정을 하고서 모빈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렇게 떨리는 건가요?"

모빈 이병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모빈 이병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메이런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뒤로 감추었다.

"원래 떨려. 금방 괜찮아 질 거야."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며 훈 이병과 닐스 이병을 바라보았다. 훈 이

병은 전투가 시작되면 메이런의 분대원이 되어 메이런을 지원할 것이

었고 닐스 이병은 지원 사격과 함께 통역을 담당할 것이었다. 모빈 이

병은 메이런의 바로 옆에서 메이런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분대원들 잘 챙겨라."

킨 하사가 말했다. 소대장과 킨하사, 그리고 시쟌 상병은 선봉 분대

가 되어서 메이런에게 길을 터줄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정해져 있다 뿐이지 실제로 그것을 활용할 수 있을지

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전투가 막상 개시되는 순간 소대원 절반이

사라져 버리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셔틀의 진동이 불규칙적으로 바뀌었다. 방향을 선회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는 건물 하나를 점령하고 다음 명령을 기

다린다. 우리의 목표 건물은 내리는 순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킨 하사, 시쟌 상병이 먼저 길을 트면 부분대장 조, 그러니까 메이런

분대가 따라온다. 신병들. 너무 긴장하지 마라.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

다."

소대장이 말했다. 소대장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메이런은 뻔

히 알 수 있었다. 소대장 역시 긴장을 감추기 위해서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말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런 충분하게 추

리해 낼 수 있었다.

셔틀이 크게 요동을 치며 상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지상

에 닿을 것이라는 신호였다. 소대장은 안전벨트를 풀고 숨을 깊게 들

이쉬었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소대원들도 그렇게 했다.

"전원 출동 준비!"

"출동 준비!"

소대원들이 소대장의 명령을 복창했다. 그것은 공포를 잊기 위해 필

사적으로 악을 쓰는 모습이었다. 메이런도 마찬가지였다. 소대장이 한

번 더 명령을 외쳤다고 해도 메이런은 죽을힘을 다해 그 명령을 복창

했을 것이다.

마침내 호버카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메이런은 자신의 니들건을

꽉 쥐었다. 이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적들이 우리의 위치를 파악

했을까? 사격을 가해올까? 내가 탄 호버카에 사격이 집중되는 것은

아닐까? 문이 완전히 열리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메이런은 이렇

게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조명탄이 오르는 소리가 마치 휘파람처럼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고,

그 빛은 대낮보다 밝게 미린 시를 비추고 있었다. 조명탄 아래 드러난

미린 시의 건물들은 마치 깊은 잠에서 깜짝 놀라며 깨어나는 듯 보였

다. 하지만 조명 아래 움직이는 생명체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매복 조심해! 경계를 늦추지 마라!"

소대장은 이렇게 지시하곤 킨 하사, 시쟌 상병과 함께 정해진 건물

을 향해 움직여나갔다. 메이런은 이병 셋에게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보

낸 뒤 그들을 뒤따랐다. 훈련받은 가볍고 빠른 발걸음이었다. 분열 훈

련과는 달랐다.

메이런의 소대가 점령하게 되어 있는 건물은 평범한 사무용 건물이

었다. 하지만 12층 건물이어서 근처 건물들 중에서는 높이가 꽤 되는

편이었고, 전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물이었다.

소대장 조는 재빠르게 건물의 입구 옆에 몸을 숨겼다. 메이런은 건

물 입구 쪽에 니들건을 겨냥하고 확보되었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소대

장조는 바로 입구로 진입해 들어가기 위해 움직였다.

다음 순간 건물 반대편에서 락벳인의 모습이 보였다. 메이런의 니들

건은 순식간에 그 쪽을 향했다.

"파타!"

메이런이 훈련받은 대로 소리쳤다. 다음 순간 그 락벳인은 멈추어

섰고, 그리고 멈추어 선 락벳인은 폭음과 함께 마치 물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갈기갈기 흩어졌다. 메이런은 뒤를 돌아보았다. 훈 이

병이었다. 훈 이병은 겁에 질린 얼굴로 니들건을 들고 있는 손을 떨고

있었다. 메이런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작전 개시 후 사단 전체를

통틀어 가해진 최초의 사격이었다.

"무... 무장하고 있었어. 그, 그렇지?"

훈 이병이 말했다. 무장을 했던가? 메이런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

았지만 이내 곧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

대장조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대장은 계단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훈련받은 그대로 소대

장 조와 메이런 조는 번갈아가면서 서로를 호위하면서 12층까지 올라

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아니, 저항은 커녕 생명체를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메이런은 텅 빈 복도를 울리는 군화발 소리와 건물 안으로

스미는 조명탄의 불빛 사이에서 마치 유령의 집을 오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마침내 12층에 올랐다.

소대장 조는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엄호는 메이런 조의 몫

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닐스 이병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닐스 이병의 니들탄은 그저 허

공을 날아갔을 뿐이었다.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젖은 옷가지들이 빨래 틀에 걸려 있을 뿐이

었다. 니들탄이 빨래감을 뚫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닐스 이병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HQ, HQ. 여기는 선봉 소대. 장소 확보 이상 무. HQ, HQ. 여기는

선봉 소대. 장소 확보 이상 무."

소대장이 무선을 날리는 사이, 메이런은 옥상에서 아래를 굽어보았

다. 도시는 완전히 장악된 듯 느껴졌다.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서 솟아

오르는 조명탄 소리와 간간이 섞여 들려오는 니들탄의 폭음. 하지만

응사 하는 쪽은 없는 것 같았다.

"멜 상병님. 아무리 봐도 병참 도시 같지는 않은데요?"

모빈 이병이 말했다. 메이런은 도시를 살펴보았다. 공장 같아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높은 건물들이 시 외곽에 약간 모였을 뿐, 내부에는 온

통 초록색 농경지뿐이었다. 아마도 미린 시는 군량을 생산하는 도시인

모양이었다.

"좀 더 자세히 봐."

메이런은 모빈 이병에게 이렇게 말해 놓고는 전투복을 매만졌다.

"멜 상병. 다음 집결지로 이동한다. 저 쪽 앞에 있는 공터, 보이지?"

소대장이 손가락으로 농경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기서 중대원들과 합류한다."

소대장은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

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다들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메이런은 다음 집결지까지 이

동하는 동안 모빈 이병이 계속해서 희죽 거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훈

이병은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고 닐스 이병은 그럭저럭 평소와 같

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건물에서 내려가는 건 오르는 것 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소요되었

다. 메이런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집결지까지 안전하

게 이동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건물을 나와서 모퉁이를 돌아

가는 데 락벳인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락

벳인은 겁에 질려 있는 듯 했다. 나이는 40대 정도? 랏벳 인이 휴먼

레이스와 똑같이 나이를 먹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메이런의 눈에는 그

렇게 보였다.

"파타!"

메이런은 모빈 이병이 소리치는 걸 들었다. 그리고 모빈 이병 쪽으

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쪼그려 앉아 있던 락벳인이 폭음과 함께 터

지는 것을 보았다. 락벳인의 피가 솟구쳐 올라 벽에 마치 거대한 파도

와도 같은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메이런은 반사적으로 모빈 이병의

니들건을 잡았다.

"뭐야? 미쳤어?"

메이런이 모빈 이병을 보며 말했다. 모빈 이병은 메이런을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락벳 인들은 뒤에서 공격한다고요."

메이런은 모빈 이병이 패닉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모빈 이병의 귀에 바짝 입을 가져

갔다.

"모빈 이병. 다시 한 번 그런 행동하면 내가 널 죽인다."

전투 중에 전우에게 죽인다는 협박을 하는 건 결코 현명한 일이 못

된다. 그런 말은 전우를 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적을 쏘면 절 죽이겠다고요?"

모빈 이병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이 패

닉을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정신 나간 병사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런은 모빈 이병을 걱정하지 않

을 수는 없었다. 정신나간 병사와 용감한 병사의 차이는 딱 백지 한

장의 차이였고, 용감한 병사는 아군을 살리지만 정신나간 병사는 아군

을 위험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집결지는 꽤 널찍한 밭이었다. 무슨 작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

마도 식량으로 쓰이는 작물이 자라는 곳인 모양이었다. 작물은 장갑복

을 입은 병사들의 군화발 아래 짓밟히고 있었지만 그런 데에 신경 쓰

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집결지에는 이미 3소대와 4소대, 그리고 중대장이 도착해 있었다. 중

대장 곁에는 행정병과 무전병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

시커먼 펠리데 레이스의 모습과 트랜서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트랜

스를 하고 있는 듯, 둘 다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2소대는?"

중대장이 피곤한 듯한 음성으로 레이 중위에게 물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무전이 끊어졌다."

중대장의 말이 끝나자 모여있는 중대원들 사이에 싸늘한 적막이 감

돌았다. 무전이 끊어졌다면 무전기가 고장이 났거나, 혹은 무전병이 죽

었을 경우뿐일 거였다.

"다음 임무 시작까지 5분 남았다. 5분 뒤에는 2소대를 포기하고 임

무를 수행한다."

중대장의 말에 중대원 전원은 수긍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2소

대를 찾아서 이동을 하거나 수색을 나선다는 건 극히 위험한 일이었

다.

메이런은 중대장 뒤에 서 있는 펠리데 레이스 용병과 트랜서를 바라

보았다. 트랜서는 엄마를 잃은 꼬마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서 펠리데

레이스 용병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메이런은 트랜서와 눈이 마주

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꼬마 트랜서가 자신의 마음을 읽

어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중대장은 시계를 보더니 결심을 한 듯 중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

다.

"먼저 대대에서 하달된 명령을 설명하겠다. 지금부터 우리는 다음

블록에 있는 지하 하수도를 수색한다. 임무는 적의 생포다. 절대로 사

살해서는 안 된다."

"적이 쏘더라도 응사 하지 말라는 겁니까?"

모빈 이병이 가장 먼저 물었다. 그러자 중대장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무장한 적은 쏴야지."

메이런은 중대장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럼 지금까지 작전 지침은

무장하지 않은 적도 쏘라는 거였단 말인가? 무장하지 않은 적과 민간

인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메이런은 혼란스러웠다. 그런 지침을 자신

이 들었던가도 의심스러웠다. 모빈 이병은 메이런을 그것보라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수도에는 적의 중요 인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작

전에는 사단의 2개 대대가 투입될 예정이다. 오인사격에 특히 주의하

기 바란다."

중대장은 이렇게 말하곤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그리곤 결심을

굳혔는지 소대장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출동준비!"

레이 중위가 소리쳤다. 소대원들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니들건을

고쳐 쥐었다.

"하수도에서는 지시가 있기 전에 조명을 쓰는 걸 금한다. 오직 헬멧

안에 내장된 야간 투시경만 사용하도록. 길 안내는 이 친구가 맡는다."

중대장이 펠리데 레이스 용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꼬마 트랜서가 고

개를 끄덕였다. 이미 명령은 트랜서가 전달한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꼬

마 트랜서를 슬쩍 처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트랜서는 멍해 보였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래. 아이라

가 데리고 있던 트랜서. 이름이 린이라고 했지. 순간 메이런은 지금 이

광경이 어디선가 한 번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두통이 밀려왔다.

"출동!"

중대장이 외쳤고, 중대원들은 발을 맞추어 다음 블록을 향해 진군해

나갔다. 메이런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무.기.를.든.적.은.사.살.하.라.2.소.대.는.어.떻.게.된.걸.까?무.기.를.들.지.

않.은.적.도.사.살.하.라.하.수.도.라.면.지.하.로.내.려.가.야.하.는.걸.까?적.을

.생.포.해.야.한.다.좁.은.공.간.에.서.전.투.가.벌.어.지.면.어.떻.게.해.야.할.까

?

메이런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지우려 앞서서 가고

있는 킨 하사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두통은

그리 심해지지 않았다.

다음 블록에서 목표지인 하수도 입구에 선 중대는 중대장의 통제하

에 대기에 들어갔다. 중대장은 몇 번에 걸쳐서 마지막으로 2소대와의

교신을 시도해 본 뒤, 행정병에게 하수도 입구를 열 것을 명령했다. 행

정병은 장갑복을 작동시켜 하수도의 문을 열었다. 하수구 뚜껑은 두꺼

운 금속으로 되어 있었고, 빗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이 몇 개 뚫

려 있었다. 행정병이 힘을 주자 하수구 뚜껑은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휘었다.

뚜껑이 열린 하수구의 입구는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시커먼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먼 레이스 하나가 딱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크기

였다. 메이런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

다. 어쩐지 그 안에 괴물의 이빨이 번득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투입."

중대장이 용병을 향해 말했다. 트랜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트

랜서와 용병이 먼저 하수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중대원들이 그 뒤를

이어 하수도를 내려갔다.

메이런은 자신의 차례가 되어 두 다리를 하수구 입구에 밀어 넣었을

때 문득 밑을 내려다보았다. 사다리에 매달려 내려가고 있는 시쟌 상

병의 헬멧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메이런은 질끈 눈을 감

았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침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메이런은

아래로 발을 내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모빈 이병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하수구로 내려가자 금새 어둠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

기 싫은 풍경이 있다고 해도 굳이 눈을 감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메이런은 턱을 움직여 야간 투시경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어두웠던 사

방이 초록색으로 빛을 발하며 윤곽을 드러냈다.

하수구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바닥에는 오물로 가득 찬 더러운 물

이 흐르고 있었고, 깊이는 대략 무릎까지 오고 있었다. 하수구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높이를 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터널 같은 느낌

이었다. 살찐 쥐 몇 마리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악취 때문에 정신

이 어질거릴 지경이 되어야 정상이겠지만, 긴장 때문인지 악취는 견딜

만 하다고 느껴졌다.

"중대원 주목."

헬멧에 장착된 중대 주파수로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런

은 반사적으로 중대장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가장 늦

게 내려온 중대장은 어느 새 선두에 서 있었다. 야간 투시경에 부착된

센서가 중대장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지만 사실 넓은 어깨만 보아도

누가 중대장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5

"지금부터 수색작전에 들어간다. 하수구가 좁아서 일렬로 밖에 이동

할 수 없다. 1소대가 내 뒤를 따라 선두에 서고, 그 뒤로 3소대 4소대

가 따른다. 포로를 포획하게 되면 1소대부터 확보한 포로와 함께 퇴각

한다. 그럼 중대원 전원의 무운을 빈다."

간략한 통신이 끝나자 중대장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대장은 펠리데 레이스 용병과 트랜서를 앞세우고 수

색을 시작했다. 그 뒤를 행정병과 무전병이 따르고 있었다. 메이런은

중대장이 트랜서에게 뭔가 묻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곧 이어서 트랜

서가 펠리데 레이스 용병에게 뭔가 묻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펠리데 레이스 용병은 이곳 지하에 숨어 있는 락벳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젠장. 그런 능력 있는 용병

있으면 수색작전 때 같이 가면 얼마나 좋아. 메이런은 이렇게 투덜거

렸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용병을 무한정으로 사들일 수는 없을

거라는 건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용병을 중대에

배치했을 만큼 이번 작전이 중요하다는 걸까? 아니면...

"멜 상병. 내 말 들리나?"

메이런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킨 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킨 하

사는 메이런만 들을 수 있는 개인 채널로 무선을 보내고 있었다.

"L&C."

메이런이 답했다. 잘 들린다는 뜻이었다.

"다행이군. 내 말 똑바로 들어. 넋 놓고 있다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서 그래?"

메이런은 킨 하사가 호통을 치고 나서야 자신이 멍청하게도 사주경

계를 게을리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민간인 쐈다고 모빈 이병한테 뭐라고 했지? 그것 때문에 그러

는 거야?"

"아닙니다."

메이런은 즉각 대답했다.

"억울하면 네가 명령 내려. 별 하나쯤 달고 말이야. 장군까지 진급하

려면 네가 100년쯤 더 살아야겠지만, 일단 여기서 살아 나가야 그나마

100년을 살 가능성이라도 있지."

"알겠습니다."

메이런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메이런은 지금껏 해온 모든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오직 앞에 선 킨 하사를 따르는 것과 사주경계에 신경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100년 더 군생활을 하면서 장군이 되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지만, 일단 살아서 이 더러운 하수구를 빠져나가야 할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전체 정지. 현재 위치 고수. 현재 위치 고수."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중대 채널이었다.

메이런은 앞을 보았다. 갈림길에 서 있는 중대장은 오른편을 향해

니들건을 겨냥하고 있었고, 그 뒤로 행정병과 무전병이 중대장과 같은

방향으로 니들건을 겨누고 있었다. 트랜서와 펠리데 레이스는 뒤로 물

러서서 그저 바라만 볼뿐이었다.

"1소대. 1소대 전진."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레이 중위가 수신호를 보냈다. 레이 중위

의 조가 먼저 갈림길 쪽으로 가고, 메이런 조가 그 뒤에서 엄호하며

다가가야 한다는 신호였다. 메이런은 레이 중위 조가 위치를 잡는 것

을 확인한 뒤, 이등병 셋을 이끌고 전진했다.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메이런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락벳

인을 볼 수 있었다. 락벳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메이런은 모빈 이병을 바라보았다. 모빈 이병의 표정이 헬멧 너

머로 보이고 있었다. 초록색으로 보이는 메이런의 시야에는 모빈 이병

이 마치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메이런은 언제 모빈

이병이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메이런

이 먼저 바라본 것은 킨 하사였다. 하지만 킨 하사는 혹시 언제 어디

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을 경계하느라 모빈 이병을 살피고 있지 않았

다.

모빈 이병에게 주의를 주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잠자코 있어야 하

는 걸까?

메이런은 눈앞에 물풍선처럼 찢겨나가던 락벳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 했다. 지금은 급박한 상황이었다. 모빈 이병의 의도를 알

아야만 했다.

메이런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트랜서의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

다. 어쩌면 꼬마 트랜서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챌지도 몰랐다. 하지만

메이런에게는 깊게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모빈 이병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니들건으로 누군가를 겨냥한다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모빈 이병은 무장하지 않은 이 앞에서는 신과

마찬가지가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무장하지 않은 존재의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모빈 이병은 그

상황을 즐길 뿐, 그 권한을 누릴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생각을 읽는 순간 온 몸을 오싹한 것이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건 모빈 이병의 생각이 메이런 자

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

인지도 몰랐다.

메이런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락벳인을 바라보았다. 락벳인은 여성

이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상태이긴 했지만 여성 락벳인은 어둠 속에

서도 성별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있는 상태였

다. 락벳인의 커다란 눈동자는 겁에 질린 듯 보였고, 오랫동안 물을 가

까이 못했는지 피부가 푸석푸석한 것이 야간 투시경을 통해서도 보일

정도였다. 여성 락벳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메이런은 락벳인의 생각

을 읽었다. 그리고 그 순간 꼬마 트랜서도 락벳인의 생각을 읽었다.

여성 락벳인은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고르카 미츄!"

"모두 피해!"

여성 락벳인이 소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메이런이 소리쳤고, 그와

거의 동시에 꼬마 락벳인과 용병이 몸을 날렸다. 메이런은 자신이 온

갈림길의 저편으로 몸을 던졌고, 그와 동시에 폭발이 일었다.

메이런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폭탄이었다.

폭발과 동시에 수 백 개의 니들탄이 허공으로 흩어졌고, 그것을 맞

은 병사들은 장갑복 안에서 자신의 신체가 폭발하는 걸 체험할 수 있

었다. 그것은 폭음만큼이나 짧은 순간에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메이런은 자신이 하수에 몸을 묻고 있다는 걸 깨

달을 수 있었다. 메이런은 두 손으로 몸을 일으켰다. 살아 움직이는 것

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소대! 1소대! 내 말 들리는가?"

3소대장이었다. 중대장과 교신을 시도했다가 연결이 되지 않자 1소

대 전체 채널로 무선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L&C."

메이런이 답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모빈 이병과 킨 하사도

잘 들린다는 약어를 3소대장에게 송신했다.

"나머지는?"

3소대장이 물었다.

"나머지는 모두 전사했습니다."

킨 하사가 말했다. 메이런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쪼그려 앉아 있던 락벳인이 있던 자리에는 폭발의 흔적이 시커멓게

남아 있었고, 그 앞으로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덩어리들이 하수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메이런은 그제야 자신의 헬멧에 뭔가 물컹한

덩어리가 붙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야간 투시경으로 본 덩어리는 시

커멓게만 보였다. 메이런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

면서 손으로 헬멧의 창을 닦아 내었다.

메이런은 민간인에게 니들탄을 날렸던 훈 이병이 먼저 떠올랐다. 그

리고 얼굴 허연 닐스 이병. 닐스 이병은 빨래감을 명중시켰다. 만약 살

아남았다면 한참동안 좋은 놀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레이 중위. 더

이상 킨 하사와 도박은 하지 못하겠군. 중대장의 넓은 어깨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시쟌 상병은...

"...우, 움직이지 마."

메이런은 개인채널로 송신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갈라지는 음

성이었다.

"누구야? 생존자가 또 있나?"

킨 하사가 외쳤다. 병사들 간의 개인채널은 하사관급 이상이면 누구

나 다 들을 수 있다.

"상병... 시쟌입니다."

메이런은 헬멧이 아니라 실제 시쟌 상병의 음성을 들었다. 시쟌 상

병의 목소리는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메이런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쟌 상병이 자신을 도우려고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트랜서의 능력이었지만,

일단 한 번 사용하고 나자 미끄러지는 썰매에 오른 듯 멈출 수가 없었

다.

"천천...히. 고개를 오른... 쪽으로."

메이런은 시쟌 상병의 말 그대로 오른 쪽을 돌아보았다. 메이런의

오른 쪽 팔뚝 장갑에 뭔가가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니들탄?"

메이런은 말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만약 정상적으로 발사된 니들

탄이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장갑에 박히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폭발과 동시에 튀어나가게 되어있는 니들탄이었기 때문에 위력이 반감

되어 이 정도로 끝난 것 같았다. 만약 이 바늘이 내 몸에 닿았다면?

메이런은 가정만으로도 오싹해졌다.

시쟌 상병의 손이 니들탄을 천천히 뽑아내었다. 메이런은 시쟌 상병

이 맨손이라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팔에 꽂힌 니들탄을 뽑기 위해

장갑복을 벗은 걸까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뇌관... 제거했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불분명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끝맺는

순간, 시쟌 상병을 앞으로 쓰러졌다. 그제서야 메이런은 시쟌 상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쓰러진 시쟌 상병의 장갑복은 해체

되어 있는 상태로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왼쪽 어깨 부분부터

완전히 잘려 나가 있는 상태였다.

"시, 시쟌 상병!"

메이런이 시쟌 상병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틀렸어. 포기해."

킨 하사가 어느새 메이런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전투불능 상태다."

메이런이 뭐라고 제대로 말 해 보기도 전에 시쟌 상병이 말했다. 시

쟌 상병의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숨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왜... 도와줬지?"

메이런이 물었다. 하지만 시쟌 상병에게는 더 이상 대답할 여력 같

은 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메이런은 시쟌 상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시쟌 상병은 말하고 있었다.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

너를 죽게 내버려두면 진다고 생각했어. 지고 싶지 않았어... 클론 병사

에게 이런 감정도 남아 있었던 걸까?

시쟌 상병의 잦아들던 숨은 이내 곧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수면에

떠있는 다른 살덩이와 마찬가지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메이런은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지만, 그것이 분노

인지 아니면 슬픔인지 연민인지 스스로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킨 하사가 지금 1소대장인가? 손실 보고, 손실 보고하라."

3소대장의 목소리가 헬멧을 통해 전해졌다.

"손실 보고."

킨 하사가 말했다.

"소대장과 소대원 셋 전사. 시체를 찾을 수 없으니 실종... 이라고 해

야겠지만. 무사한 것은 멜 상병과 모빈 이병."

메이런은 킨 하사를 바라보았다. 킨 하사의 오른 팔은 어디로 갔는

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킨 하사의 오른 쪽 팔 관절 부분 아래는 완

전히 깨끗하게 잘려져 나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예전부터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메이런은 그런 킨 하사의 모

습에서 부서져 버린 장난감을 떠올렸다.

"저는 전투불능입니다."

킨 하사는 미간을 심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땀

방울이 잔뜩 맺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킨 하사는 헬멧을 열고는

뭔가를 입에 넣었다. 메이런은 그게 뭘 하는 동작인지 생각해 볼 여유

도 없었다. 상황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전되었던 것이다.

"중대장님하고 그 용병은?"

3소대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무선으로는 해서는 안될 욕설을 몇 마디

덧붙였다. 메이런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단 기무사나 헌병대가 이런 방

송을 듣는다면 3소대장을 조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님은 실종, 용병은 무사합니다."

킨 하사의 표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이군."

잠시 무선이 멈추었다. 아마 뭔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중대장님 대신 중대를 지휘한다. 1소대는 전투 가능

인원이 둘 이니까... 이쪽으로 와서 우리 소대와 합류한 뒤 임무를 계

속한다. 용병도 함께."

3소대장의 판단은 옳다고 여겨졌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

었다.

"불가능합니다."

킨 하사가 말했을 때, 메이런은 귀를 의심했다. 항상 냉정한 킨 하사

가 엉뚱한 소리를 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킨 하사?"

3소대장의 목소리에 약간의 잡음이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전파

방해가 있는 모양이었다.

"트랜서도 전사했습니다."

킨 하사가 말했다. 메이런은 킨 하사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

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메이런도 쉽게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깨끗

한 꼬마 트랜서의 목이 하수 위에 떠있었다. 몸통은 어디에 있는지 찾

아 볼 수 없었다. 하필이면 니들탄이 목 부분에 박힌 모양이었다.

3소대장의 욕설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심해진

전파 방해 때문에 조금 전처럼 생동감 넘치는 욕설로 느껴지지는 않았

다.

"킨 하사. 전투 불능인가?"

3소대장이 다시 물었다.

"예. 팔을 잃었습니다. 오른 팔을요."

킨 하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메이런을 향해서 미소를 지었다.

"이봐. 멜 상병. 지금 나는 약기운으로 버티고 있어. 무슨 약인지 알

아?"

킨 하사의 말에 메이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통제야. 아주 강력한 진통제. 외출 나갔을 때 뒷골목에서 구했

지."

킨 하사는 계속해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메이런은 니들탄이 장갑에

박힌 걸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오싹해 졌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엄청 아플 거야. 아마 그 전에 죽을 지도 모르

지만. 젠장. 소대장 의수를 매일 놀렸는데. 이제 카드놀이는 다 했군.

사실 말이야, 속임수는 진짜 손이 아니면 쓸 수가 없거든."

메이런은 시시껄렁한 농담이라도 건네야 하나 싶었지만 킨 하사의

상태는 농담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신을

차리고 말을 계속 잇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게 아닌가 싶었다. 킨

하사는 하수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튀어 오르는 하수와 오물이

야간 투시경에 들어왔다.

"잘 들어 멜. 3소대장님. 3소대장님. 들립니까?"

"불법적으로 구한 진통제 이야기만 빼고 잘 들렸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3소대장이 대꾸했다.

"멜 상병을 중대장 권한으로 소대장 직위에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합

니다."

메이런이 놀란 눈을 하고서 킨 하사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거야. 이제 우리 1소대에 전투 가능한 인원은 딱 둘 뿐이야.

그중 가장 선임자는 너고. 트랜서도 없어진 마당이야. 네가 소대장이

되어서 나와 용병, 그리고 모빈 이병을 데리고 퇴각한다. 저 친구 말이

야."

킨 하사가 손으로 가리켰을 때가 되어서야 메이런은 모빈 이병과 펠

리데 레이스 용병이 있는 곳을 살필 수 있었다. 모빈 이병은 장갑복이

깨끗한 걸로 보아 운 좋게 하나도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전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모빈 이병은 구석에 몸을 숨기

고 몸을 떨고 있었다. 펠리데 레이스 용병은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저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둘의 모습과 하수 위에 떠다니는 살덩어리

들은 마치 접시와 황새처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풍겼다.

"3소대장님. 이의 있습니까?"

킨 하사가 소리치듯 말했다. 아마 하수도에 울려 퍼지는 소리만으로

도 알아들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다음 순간 폭음이 들려왔고, 무선이 끊어졌다. 킨 하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3소대! 3소대!"

킨 하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들려 오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메이런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뒤쪽을 바라보았다. 뒤쪽

에서 희뿌연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니들탄보타 훨씬 좋

은 화력을 지닌 폭발물이 터진 것 같았다.

"여기는 4소대 거스 이병입니다. 앞이 무너졌습니다. 제길. 중간에서

무너진 것 같아요."

낯선 목소리가 무전에 끼어 들었다.

"적은? 적은?"

킨 하사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여기서는 확인이... 안됩니다. 우리 소대원도 깔린 것 같습니다. 이

런. 젠장!"

다음 순간 폭음이 들려 왔고, 무선은 끊어졌다. 이번에는 니들탄의

폭발음이었다.

"뒤쪽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모양이다. 멜 상병. 이제부터 네가 중대

장이다."

킨 하사가 말했다. 하지만 메이런은 조금도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

다. 상병 나부랭이가 순식간에 중대장 직위를 맡아야 한다니?

"멜. 이건 기록일지도 몰라. 1분 사이에 몇 계급을 뛰어 넘은 거야?"

킨 하사가 말했지만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킨 하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상황 때문이었다.

메이런은 들고 있던 니들건을 만지작거렸다. 뭘 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명령만 받으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령을 내려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자

메이런은 엄청난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중대

장은 늘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가? 메이런은 숨을 쉬는 게 힘들

정도의 부담감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죠?"

하지만 별 뾰족한 수는 나지 않았다. 메이런은 우선 킨 하사에게 이

렇게 물었다.

"중대장 헬멧을 회수해. 대대하고 연락 해 보자. 그리고..."

킨 하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다시 헬멧을

열고 뭔가를 입에 넣었다. 메이런은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수는 불가능합니다."

메이런이 말하자 킨 하사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수긍했다. 중대장의

헬멧을 찾은 뒤에 머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같은 판단은 다음으로

넘긴다고 해도 그 동안에 적들이 밀려들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킨 하사가 메이런에게 물었다. 킨 하사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흐르

고 있는 게 또렷하게 보였다. 킨 하사의 침방울이 입가에서 늘어져 내

리고 있었다. 진통제의 부작용인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뒤를 돌아보았다. 먼지는 가라앉고 있었고, 이제 당장이라

도 적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6

메이런은 먼저 모빈 이병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깨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게 해 보려고 했지만 모빈 이병은 그저 메이런을 한 번 처

다보았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펠리데 레이스 용병이었다.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용병의

눈동자는 초록색으로 부옇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용병의 눈동자는 잘

려나간 트랜서의 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왜 움직이지 않는가 궁

금하다는 듯한 표정인 듯 싶었다. 물론 메이런은 펠리데 레이스의 표

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보였다.

메이런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메이런은 펠리

데 레이스에게 다가간 뒤 헬멧을 벗었다. 헬멧이 열리자 순식간에 악

취와 어둠이 메이런을 감싸 들어왔다. 메이런은 천천히 손을 뻗어 펠

리데 레이스의 어깨에 얹었다. 메이런은 어둠 속에서 펠리데 레이스의

모습을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이었지만 펠리데 레이스 용병의 눈에는

메이런이 훤하게 잘 보일 거였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메이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펠리데 레이스가 알아들었을 지

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메이런의 마음은 전해질 것이었다.

메이런은 펠리데 레이스와 트랜스했다. 군에 들어온 후에, 정확하게

는 쿨란을 떠난 후에 하는 첫 트랜스였다.

메이런은 어두운 공간에 서 있었지만 펠리데 레이스의 모습을 또렷

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콧수염으로 공간을 지각해

낼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메이런은 자신에게 트랜스를 가르쳤던 키티

-본의 기억을 느꼈다.

"다른 트랜서로군."

펠리데 레이스 용병이 말했다.

"예. 멜 상병입니다."

메이런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콘웰. 보다시피 펠리데 레이스고, 용병이야. 계급은 중사로 되

어 있지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용병이니까."

콘웰이라고 자신을 밝힌 펠리데 레이스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천

천히 갸우뚱거렸다. 메이런은 그것이 인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매복에 당했다고 봐야 겠지."

콘웰은 꽤 여유가 있는 목소리였다. 콘웰은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더듬고 있었다.

"살아남은 건 누구누구지?"

"저하고 이등병 하나가 전투 가능합니다. 하사 하나는 부상이 심합

니다."

"셋인가?"

"당신까지 넷이죠."

콘웰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긍정의 뜻이었다.

"트랜서가 죽어서 난감하던 참이었어. 뭐랄까... 조금 미안하다는 느

낌도 있고 말야. 그 락벳 녀석이 자폭하려는 순간 그걸 알아차린 건

자네하고 죽은 저 친구 둘이었지. 자네는 재빨리 피해서 목숨을 건졌

지만, 그 친구는 피해야 할 순간에 나하고 트랜스를 했네. 덕분에 이렇

게 상처하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

메이런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메이런은 그 순간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죽은 친구에게는. 저 친구한테

얻은 목숨이니 소중히 해야지.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메이런에게 계획 따위는 없었다.

"일단 빠져 나가야죠. 지금 저는 남은 인원의 지휘를 책임지고 있습

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내가 앞장서지."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메이런은 이렇게 묻기는 했지만 묻는 순간 그것이 무의미한 질문이

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펠리데 레이스로 변한 메이런은 어둠 속에

서 공간 자체를 '보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따라 올 수만 있다면."

"너무 빠르면 곤란합니다."

메이런은 콘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메이런의 몸은 휴먼 레이스보

다 적어도 두 세 배는 빠르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나 혼자 빠져나갈 수는 없어. 일단 밖에 나가면 자네들 도움이 없

으면 바로 죽게 될 테니까 말이야. 니들건 하나 가지고 락벳인들을 뚫

고 말도 통하지 않는 휴먼 레이스의 본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안

그래?"

메이런은 넓은 공간에서는 이렇게 공간을 지각할 수 없으리라는 것

을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한 가지만 부탁합시다."

메이런이 말했다.

"나한테 불리한 부탁만 아니라면."

"제가 트랜서라는 걸 비밀로 해 주십시오."

메이런의 말에 콘웰의 큰 두 귀가 좌우로 흔들렸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자네, 트랜서가 아니군?"

콘웰이 물었다.

"글쎄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좋아. 약속은 지키지."

메이런은 트랜스를 끝냈다.

헬멧을 도로 쓴 메이런은 우선 킨 하사에게 다가갔다. 킨 하사는 이

제 진통제에 완전히 취해있는 듯 보였다. 침은 계속해서 턱 아래로 흘

러내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조금도 초점이 맞지 않았다.

"퇴각합니다. 대대하고 연락은 현재로서는 힘듭니다. 제가 가지고 있

는 건 병사용 무선 채널뿐이니까요."

"내 헬멧을 써."

킨 하사가 말했다.

"어차피 지하에서 통신을 시도하느니 나가서 킨 하사님이 직접 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메이런의 말이 끝나자 킨 하사는 메이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킨

하사는 필사적으로 메이런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지

만 잘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명령인가?"

메이런은 킨 하사의 말에서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언뜻 보았다. 그러고 보니 킨 하사가 지휘권을 그렇게 쉽게 자신에게

넘겨 준 이유는, 꼭 부상때문이었다고만 생각할 건 아닐지 몰랐다. 어

쩌면 킨 하사가 본래 지니고 있는 공무원 근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

약 그렇다면 킨 하사의 부상은 킨 하사의 행동을 돕는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명령입니다."

상병이 하사에게 명령을 내린다. 어떻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상황

이었지만 만약 이 상황이 군법재판에 넘어가게 된다면 킨 하사는 충분

히 항변할 수 있을 거였다. 형편없는 변호사라 하더라도 팔이 잘리고

마약에 취한 하사관이 지휘를 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려

운 일은 아닐 거였다.

어찌되었건 메이런의 말이 끝나자 킨 하사는 입술을 굳게 다물어 자

신의 의지를 나타냈다.

"뛸 수 있겠습니까?"

"그럭저럭. 오른 팔을 잡고 부축해 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킨 하사는 농담을 건냈다. 메이런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좋다고 대꾸한 다음 모빈 이병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퇴각한다. 뛸 수 있겠어?"

모빈 이병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 까지 드러나 있었던 살인자와 같은

냉혹함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메이런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메이런은 힘으로 모빈

이병의 헬멧을 벗겨내었다.

"이병! 정신 차려!"

고전적이긴 하지만 망가진 기계와 정신 나간 신병을 다스리는 데에

는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방법이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양

뺨을 후려쳤다. 장갑복의 출력을 높였다면 목이 부러졌을 정도의 힘이

었다.

"지금부터 퇴각한다. 일어낫!"

메이런이 말하자 모빈 이병은 마치 튼튼한 용수철이 튕겨 오르는 것

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런은 뒤를 바라보았다. 아직 적이 다가오

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뛴다. 훈련소에서 급속 행군 해 봤지? 거기선 낙오하면

저녁을 굶지만, 여기선 낙오하면 정통정부군이 오늘 저녁을 줄 거야.

내 말 알아듣겠어?"

"옛!"

모빈 이병은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듯 보였다. 본능적으로

라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을 뒤로 하고 콘웰에게 신호를 보냈다. 콘웰은 고개를 갸웃 거린

뒤 뛰기 시작했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과 킨 하사를 챙기고 역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야, 멜 상병!"

킨 하사가 소리쳤다.

"폭탄이 터졌을 때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피할 수 있었지?"

메이런은 대꾸하지 않았다. 헬멧의 시야로 보이는 풍경은 심하게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메이런은 자

신의 숨소리에만 신경을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용병 친구, 어디로 뛰고 있는 거야?"

킨 하사가 다시 물었다. 지금 상황을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약기운 때문인지, 혹은 지나치게 침착해서 인지 킨 하사는 미소마저

머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퇴각하는 중입니다!"

메이런은 이렇게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야 '입닥쳐!'하고 소리를 지

르고 싶었지만, 어쩌면 킨 하사가 이렇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

는 이유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몰랐던 것이다.

"좋아! 좋아! 한 바탕 뛰어 보자구!"

킨 하사는 키득거리고 있었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고, 킨 하사가 두 번, 모빈 이병이 한 번 넘어

지고 나자 사다리가 나타났다. 콘웰은 사다리 앞에 멈추어 선 다음 메

이런에게 다가왔다. 트랜스를 요청하는 것이다. 메이런은 킨 하사와 모

빈 이병을 바라보았다. 둘 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와서 무릎에 양손을

딛고 숨을 조절하는 중이었다.

메이런은 둘이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틈을 타서 재빨리 콘웰과

트랜스 했다.

"먼저 올라가. 내가 엄호할 테니. 나는 오르는 건 빨라."

"좋습니다."

메이런은 숨이 찼지만 트랜스 된 공간에서는 숨이 찬 것쯤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라가면 어떻게 할 거지?"

"그 때부터는 저를 따라 오십시오."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곤 얼른 트랜스를 끝냈다. 모빈 이병과 킨 하

사는 여전히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메이런이 트랜스 했을 거라는 건

눈치채지 못했을 거였다.

"지금부터 올라갑니다. 모빈 이병. 먼저 올라가. 나는 킨 하사님을

데리고 올라간다. 빨리! 서둘러!"

모빈 이병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메이런이 소리쳤다. 모빈 이병은

숨을 제대로 고르지도 못한 채 재빨리 사다리에 올랐다. 그건 메이런

이 엉덩이를 찼기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하수도를 벗어나

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킨 하사님. 팔로 절 꽉 잡으십시오."

메이런은 사다리에 한 쪽 팔과 다리를 걸치고 말했다.

"두 팔로 꽉 잡을 수 없는 게 아쉽군. 참. 두 팔로 잡을 수 있다면

혼자서도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지금 농담이 나오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메이런은 꾹 참았다. 킨 하

사는 메이런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러자 메이런은 한 칸씩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멜 상병님!"

중간쯤 올라갔을 때였다. 메이런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모빈 이병이

하수도 뚜껑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빈 이병의 얼굴에는

희색이 돌고 있었다. 조명탄의 빛과 무언가의 조명이 하수도 구멍을

따라 메이런의 눈을 부시게 했다. 메이런은 헬멧의 야간 투시경을 끄

고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데에 정신을 집중했다.

"파타!"

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런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기 위해

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 요란한 파열음이 연이어 들려왔

다. 메이런은 다시 야간 투시경을 켜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콘웰이 하

수도를 향해 니들건을 사격하고 있었다. 니들탄은 파열음을 내며 하수

도 벽면에 박히고 있었다.

"Grim loack, grim loack!"

콘웰이 소리쳤다. 메이런은 펠리데 레이스의 언어를 몰랐지만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적이 따라붙은 모양이었

다.

다음 순간 적의 응사가 이어졌다. 적은 폭발형 니들탄을 쓰는 모양

이었다. 니들탄의 폭발음은 좁은 하수도에서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Grim loack! Tasa gest..."

콘웰은 이렇게 말하고는 적 방향으로 방아쇠를 마음껏 당겼다. 한

번의 폭음이 울렸고, 적의 응사는 멎었다. 메이런은 그 모습을 바라보

면서 서둘러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메이런을 잡고 있는 킨 하사의 손

에 힘이 들어갔다. 메이런은 킨 하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킨 하사

의 얼굴은 공포로 완전히 굳어있었다. 메이런은 킨 하사가 이런 얼굴

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Mazi! Mazi!"

콘웰이 메이런을 올려다보았다. 콘웰의 탄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콘

웰이 빈 탄창을 뽑아 들고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탄창! 킨 하사님! 탄창을!"

메이런은 킨 하사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사다리를 오르는 메이런도,

손이 하나 뿐인 킨 하사도 탄창을 뽑아줄 손이 남아 있을리 없었다.

다시 적의 응사가 이어지자, 콘웰은 누가 들어도 욕설이 분명한 말

을 내뱉고는 재빨리 총을 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벽면을 향해 튀어

올라갔다. 작열하는 불꽃 사이로 콘웰은 벽을 발로 짚었고, 다음 순간

메이런의 위쪽 사다리로 몸을 날렸다. 휴먼 레이스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동작이었다. 콘웰이 오르는 건 빠르다고 한 건 허풍이 아니었

다. 메이런이 한 칸을 오르는 사이, 콘웰은 하수도 밖으로 탈출하는 데

에 성공했다.

다음 순간 몇 발의 니들탄이 메이런 주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녀

석들이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응사를 하는 것 보다 필

사적으로 사다리를 빨리 오르려고 마음먹었다.

"크악!"

킨 하사가 비명을 지른 것과 동시에 메이런은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킨 하사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메이런은 아래쪽을 내려

다보았다. 킨 하사는 다리를 감싸 쥐고있었다.

여기 저기서 폭발하고 있는 니들탄 사이에서 킨 하사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메이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킨 하사의 눈빛은 간절히 구원을

소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런은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칸만 더 올라가면 하수도를 나갈 수 있다. 몸도 가벼워진 상태다. 이

젠...

그 때 킨 하사 쪽으로 사격이 이어졌다. 킨 하사는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굴렸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총알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듯이.

메이런은 안타까웠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사격은 금새 끝이 났다. 아마도 지하의 다른 아군 소대와 교전이 벌

어진 듯, 고함소리와 사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내려갈까? 메이런은

잠시 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 킨 하사가 있는

쪽으로 탄이 쏟아질지 몰랐고, 메이런은 그 탄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

다.

"킨 하사님! 멜 상병 님!"

모빈 이병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팔을 붙

잡고는 거의 뛰어오르듯 마지막 칸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

다. 하수도 밑에서 폭음과 비명소리, 그리고 락벳인의 목소리가 연이어

졌다. 아마도 심각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빈 이병은 메이런이 밖으로 나오자 마자 하수도를 향해서 니들건

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거야!"

메이런은 모빈 이병의 니들건을 잡아 사격을 제지했다.

"킨 하사가 남아 있어!"

"킨 하사는 죽었어요."

모빈 이병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이 소리쳤다. 다음 순간 하수도에

서 니들탄이 몇 개 날아 올라왔다. 니들탄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분

명하게 들려왔다.

"아냐!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정신 차려요. 멜 상병님도 킨 하사님을 버리고 올라왔잖아요."

모빈 이병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하수도를 향해 니들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메이런은 더 이상 모빈 이병을 제지 할 수 없었다.

모빈 이병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메이런은 모빈 이병을 말릴 수 있

는 자격이 없었다.

몇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메이런은 그 폭발음이 킨 하사의 몸에서

나는 폭발음이 아니기만을 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바램은 그저 아

무 의미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킨 하사는 이제 죽은목숨이었다. 만약

적에게 생포된다면, 그 결과는 죽는 것 보다 더 좋지 못한 결과가 될

공산이 컸다.

모빈 이병은 하수구 밑으로 니들탄 세례를 계속해서 퍼부었다. 나중

에는 욕설까지 한 것 같았는데 그것이 누구를 향한 욕설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메이런은 욕설을 들으며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저 멍청하게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그건은 콘

웰이 메이런의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메이런은 콘웰을 돌아보았다. 콘웰의 얼굴은 밝은 빛 때문에 윤곽만

겨우 드러나고 있었다. 메이런은 그제서야 아직도 야간 투시경이 켜져

있다는 걸 깨닫고는 투시경을 껐다. 하늘에는 수 십대의 셔틀이 조명

을 비추고 있었고, 간간이 조명탄이 셔틀 사이사이를 비집고 솟아 오

르고 있었다.

콘웰은 웃고 있었다. 펠리데 레이스의 웃음소리는 예전에 키니-본에

게서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이런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

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헬멧에서 무선이 흘러나왔다.

"...전원 퇴각한다. 전원 퇴각한다. 지금부터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셔

틀에 오른다. 반복한다. 전원 퇴각한다. 전원 퇴각한다. 이제부터 미린

시는 공군과 군단 특공여단이 맡는다. 반복한다..."

메이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선을 듣기 싫어서 헬멧을 벗었다. 맨

눈으로 바라본 미린 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총성이 어디선가 들려오

고 있었고, 비명소리도 들리고 있었지만 메이런의 시야는 마치 야간

투시경을 켜고 광원을 바라본 것처럼 온통 하얗게 가려있었다. 메이런

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건 모빈 이병이었을 수도 있고, 콘웰

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였는지도 몰랐다.

환한 빛 속에서 메이런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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