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35화 (35/52)

6.상병의 우울

기무사령부 7층 내사반 사무실은 조용했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이곳

이 정말 사무실일까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점심 시간이 막 끝난 사무

실에는 아이라와 로웰 중령 둘 뿐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린은 감기와 두통을 호소했다. 아이라는 그 나이

때에는 아침에 학교 가기 싫어서 떼를 쓰는 건 보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린을 강제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 대신 린ㅇ르 탁아소에 맡

겼다. 군 탁아소는 전장으로 온 가족이 함께 온 고급간부들을 위해 운

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일단 아이라는 가장 끗발 좋다는 내사반에서

근무한다는 점 때문에 탁아소를 이용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중사라는 계급을 가진 꼬마를 보모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로웰 중령은 전우신문 기사를 치워두고 잡지를 읽고 있었다. 아이라

는 검토하고 있던 전우신문 기사를 잠시 접고 로웰 중령이 뭘 보고 있

나 살펴보았다. 잡지의 제목은 홀리데이-콜로니였고, 휴양 콜로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잡지였다.

"휴가 계획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아이라가 물었다.

"아뇨. 이건 휴가를 가고 싶어하는 군인을 위한 잡지잖아요. 휴양 콜

로니에 가게 되면 이런 정보 따위는 아무 소용없어요. 인공 해변에서

햇빛을 쪼이는 데에 좋은 장소 나쁜 장소가 따로 있겠어요?"

"상상력을 도울 뿐이라는 거군요."

"바로 그거에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내사반이 신문 검열을 하게 되면서 부터 로웰 중령과 아이라의 일상

은 지루함 그 자체로 바뀌었다. 창 밖으로는 전쟁의 흔적 따위는 조금

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가끔 아이라는 자신이 군인인지 아닌지도 잊

어버릴 지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또 매복에 걸렸다죠?"

로웰 중령이 잡지 읽는 일도 지겨워졌는지 잡지를 집어 던지며 말했

다. 잡지는 책상에 먼지를 풍기며 털썩 떨어졌다.

"로윙 사단 일 말씀이시죠?"

조직사회에서는 맡고 있는 일이 편해지면 편해질 수록 소식을 듣는

일에 예민해지기 마련이었다.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하는 연애담부

터 시작해서 사단의 작전 성공과 실패 여부, 장군들의 진급 소식 등등.

정보가 오고가는 기무사인지라 이런 현상은 더욱 심했다.

"정통정부군, 대단히 무서워졌어요. 자폭용 폭탄이라니. 이래서야 작

전을 제대로 펼 수가 있겠어요?"

아이라는 로윙 사단이 작전 도중에 정통정부군의 자폭 폭탄 때문에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부대에는 사

기 문제 때문에 절대 비밀로 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제 생각에는 자폭 폭탄 자체보다 로윙 사단이 미린 시를 공격한다

는 정보를 적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라의 생각이 옳아요. 작전 때마다 적은 완전히 대비를 하고 있

다는 인상이에요. 올 길목을 알고 매복을 서지를 않나."

"그런데 내사반 일은 왜 중단 된 거죠?"

아이라는 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이렇게 불만을 터트렸다.

한가롭게 신문이나 읽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짜증이 났던 것이다.

"잠정적으로 중단 된 거예요."

로웰 중령은 허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몸을 푸는 모양이었다.

"알겠지만 지금 상부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가는지 확

인을 하고 있어요. 우리 내사반도 믿을 수 없는 입장이죠. 매복이 무서

운 건 매복에 당해서 아군이 죽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렇게 우리가

우리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말이죠. 아마 최 상부에서는 지

금 하나하나 차근차근 조사를 해 나가는 중일 거예요."

"오래 기다려야겠군요."

"아주 오래."

로웰 중령이 덧붙였다.

"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에요. 일단 편의

상 고용해서 쓰고 있는 락벳인들은 해방정부군이건 아니건 간에 군에

서 완전히 배제해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나서 상부에서 정리한 다음에 우리 내사반이 움직이는 건가

요?"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죠. 하지만 조금 다르게 진행될지도 모

르겠어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어떤 식으로...?"

"나는 우리 중에 있는 첩자를 색출해 내는 것 보다, 우리 기무사의

포로 심문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있어요. 우리가 모으고 분석하는 정보

중 상당수가 적 포로에게서 얻어지죠. 전향하는 포로도 있고, 끝까지

거부하다가 죽는 포로도 있어요. 아. 알겠지만 심문은 그리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아이라 역시 고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정통정부군은 대단히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요. 자폭을 할만

큼 말이죠. 그런 병사라면 고문을 이겨내고 거짓정보를 말하는 것쯤

쉽게 꾸며낼 수 있겠지요. 아니, 어쩌면 병사들은 모두 진실만을 말하

고 있는지도 몰라요. 진실, 말이죠."

"미리 가짜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다는 건가요? 포로가 된다는 걸

가정하고?"

"그렇죠."

"그런 것쯤 예상하고 심문에 임하지 않나요?"

아이라가 의문을 표시했다.

"그건 그래요. 우리도 바보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용

한 정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죠. 일단 정보는 모이면 방향을 가지

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역정보도 분명 그 방향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사실 장군들은 이런 일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걸 별로 달갑게 여

기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도 강한 군대를 꿈꾸는 장군에게 우리

가 하는 일은 당당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죠. 혹시 2차 식민지

전쟁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어요?"

"고대 전쟁인가요?"

아이라가 물었다.

"기회가 닿으면 언제 한 번 역사 공부를 좀 해 봐요. 흥미로운 사실

들이 많이 있으니까."

로웰 중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운동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2차 식민지 전쟁 때 행성 어스는 연합군과 제국군으로 나뉘어서 싸

웠지요. 결론만 말하자면,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변이라는 제국군의 허

리에 정예병력을 상륙시켜서 전쟁을 끝냈어요. 대규모 셔틀 강습같은

게 없던 시절이니까 꽤 훌륭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국군

첩보원이 연합군의 상륙 작전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어요. 상륙지점과

규모까지 아주 정확한 정보였지요. 그 정보를 알게 된 제국군 사령관

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역정보로 생각하고 무시했나요?"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쩌면 그 사령관은 정정당당하게 맞서서 싸우고 싶었는지

도 모르죠. 어찌되었건 내 말의 요지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정정당당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해하겠어요?"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은 강제최면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사용해서 아군 포로들을 심

문하고 있는 것 같아요. 탈출한 포로와 적을 통해서 얻은 정보니까 꽤

확실할 거예요."

"강제최면요?"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거죠. 물론 우리도 역정보를 주

입한 병사들을 투입하긴 하지만, 녀석들은 적어도 병사가 진실을 말하

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어요. 나는 강제최면을 통해서 녀석들이 정보

를 제련한다고 믿고 있어요."

"강제최면이라는 게 어떤 거죠?"

"말 그대로에요. 강제로 최면 상태에 빠뜨리는 거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몰라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재도 우리에게는

없고요."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거군요."

"대비는 할 수 있겠죠. 안다는 건 힘이니까요."

농담 같은 투였지만 로웰 중령의 말은 가볍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방식이 있어요. 효과적인 심문을 위해서

준비한 방법이죠. 믿을 수 있는 트랜서가 있으면 좋겠는데... 상부에 요

청을 한 상태긴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트랜서를 요청하셨다고요?"

로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부에 계획 기안과 건의 문서를 제출한 상태예요. 하지만 군

대는 공무원 조직 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느리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야 하니까요. 이렇게 소일거리나 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요."

로웰 중령은 신문기사를 손에 들고 부채처럼 흔들며 말했다.

"무슨 계획인가요?"

아이라가 물었다. 트랜서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나중에 트랜서가 생기면 이야기하죠. 당분간 전쟁은 안 끝날 것 같

으니까, 아이라도 그 동안 소일거리나 찾아보는 게 어때요? 예를 들면

연락선 이착륙장에 가서 조종사들 보안 검사를 한다던가."

아이라는 웃음을 지었다. 전쟁이 끝난 다는 건 말로만 한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긴. 지금 같기만 하면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칼럼 기사가 어때요?"

막 펼쳐놓은 기사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로웰 중령이 물었다.

"칼럼 기사요?"

"대부분 전우신문에는 나지 못했잖아요. 아이라 검열에 걸려서."

"그... 세론 소위의 기사요?"

아이라는 기억을 더듬어서 겨우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세론 소

위의 칼럼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연재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세론 소

위가 부임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실제 연재된 것은 두 번 뿐이

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열 때문에 실리지 못했다. 한 번은 편집장이라

는 친구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항의를 한 적도 있었지만 아이라는 원

칙을 강조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전우신문에는 칼럼 란이 텅

비어있었다. 지면을 비운다는 건 일종의 항의였을 거였다. 하지만 어차

피 바닥에 까는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는 신문 기사가 비어있다고 해

도 문제삼을 존재는 없었다.

"그래요. 몇 번 검열을 해도 못 알아듣는 것 같던데. 직접 한 번 만

나서 이야기 해 보지 그래요?"

그러고 보니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해놓고는 한 번도 만나러 간 적

은 없었다. 이렇게 항상 기준에 어긋나기만 하는 기자는 어떤 기자인

지, 또 그런 기자를 방치해 두고 있는 편집장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

는지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가서 한 번 이야기 해 보죠."

아이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지나치게 오랫동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다.

"한 가지만 주의해요, 아이라."

로웰 중령이 나가려는 아이라에게 말했다.

"이번이 첫 만남이에요. 이런 만남은 다분히 정치적일 필요가 있어

요. 그냥 우리 뜻만 넌지시 전달만 해도 성공이에요. 그러니까 내 말

은..."

"예.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아이라는 간만의 외근에 기운이 나는 듯 활기찬 음성으로 말했다.

로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공보처는 기무사령부에서 호버카로 20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

었다. 아이라는 간만에 근무시간에 보는 베가 시의 모습이 정겹게 여

겨졌다. 어쩐지 대낮에 도심을 호버카로 달리고 있자니 휴일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좋습니다, 아이라 대위님."

호버카 조종수가 아이라에게 말했다.

"공보처에는 검열 관계된 일 때문에 가시는 건가요?"

아이라는 호버카의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락벳 인들이 대낮의

태양아래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 락벳 인들은 뭐가 그리 즐거

운지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뒤로 물건을 지고 있는 락벳 인들

이 지나고 있었다.

"이번에 로윙 사단 이야기는 들으셨죠? 35사단에서 몇 번 매복에 걸

려서 그 보복으로 미린 시인지 뭔지 하는 시를 쳤다는 것 같던데요.

근데 보복은커녕 망신만 당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라는 계속되는 조종수의 말에 짜증이 났다.

"자네 임무가 뭐지?"

"예?"

"자네 임무가 뭐냐고 물었다."

아이라가 군대식 어조로 딱딱하게 물었다.

"이 호버카를 모는 겁니다."

"임무에만 충실해."

아이라는 이렇게 조종사의 입을 막았다. 아이라는 덕분에 조용한 가

운데에 베가 시의 풍경을 감사할 수 있었다.

공보처에는 업무 때문에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누군가를 만나

기 위해서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보처는 부서 성격상 민간인들

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신원 조사는 철저히 하고 있었

고, 전장에 나가야 하는 기자에게는 임시 소위 계급장까지 발급해서

통제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무리 민간인이 많다고 해도 위병 근무는 군인이 서고 있었다. 상

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위병 근무자가 아이라의 호버카를 세우고 이렇

게 물었다.

"공보처 신문발행국에 가려고 왔다."

"신문발행국은 건물 4층입니다."

위병 근무자는 호버카의 차량번호를 입력한 뒤 거수경례를 붙였다.

아이라는 가볍게 경례를 받았고, 호버카는 미끄러지듯 공보처 주차장

을 향했다.

"대기하고 있어. 절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아이라는 호버카에서 내리며 조종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리자 신문발행국이라는 푯말

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라는 가장 먼저 눈에 뜨인 민간인에게 말을 붙

였다.

"국장님 자리가 어디죠?"

아이라의 물음에 민간인 기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손에 서류철을 들

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기자인 모양이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기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예. 저는 M.I 기무사 내사과의 아이라 대위입니다."

아이라가 신분을 밝히자 민간인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민간인은 아

이라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뛰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부급으로 보이는 민간인 복장의 사내가 달려왔다.

"어이구, 이런. 미리 연락을 좀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인사드리겠습

니다. 저는 보먼입니다. 여기 편집장 일을 하고 있죠."

보먼은 50대쯤으로 보였다. 근시가 심한지 아주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었고, 키는 작았지만 덩치가 아주 좋아서 작아 보이지는 않았다.

"국장님을 뵙고 싶은데요."

"아, 예... 뵙긴 뵈셔야죠. 그런데 꼭 뵈시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

다만."

보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신호위반에 걸린 다음 교통순경에

게 짓는 것 같은 미소였다.

"그 판단은 제가 내립니다."

"예.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대위님께서 판단 하셔야죠. 그런데 보안

검열이라도 나오신 겁니까?"

아이라는 이런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걸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

다. 사실 사무실에서 신문만 읽은 지가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태도가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 걸 보면 전에도 은근히 이런 식으

로 자신을 대하는 걸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닙니다. 신문 제작과 관련해서 몇 마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서요."

아이라는 될 수 있으면 공손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기무

사에서 일하는 군인은 공손하게 굴수록 상대는 불안해지기 마련이었

다. 보먼은 얼른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국장실로 안내했다.

온통 전화소리와 고함소리로 가득한 사무실을 지나, 아이라는 국장

실 앞에 섰다. 보먼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 놓고는 먼저 국장실로 들

어갔다. 아마 아이라가 온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시킨 다음 국장과 만

나게 할 속셈일 거였다. 만약 오늘 나온 게 보안 검열 같은 일 때문이

었다면 아이라는 결코 이렇게 하도록 내려버 두지는 않았을 거였다.

"들어오십시오. 안을 좀 치우느라..."

보먼은 이렇게 얼버무리면서 아이라를 국장실로 인도했다.

"미리 치워놓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우셨나 보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이라는 이렇게 한마디 걸고 넘

어졌다. 예상대로 보먼의 얼굴이 질리는 걸 보니 뭔가 숨기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것까지는 추궁하지 않았다. 공보처

신문사에서 보안 사항 위반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대외비 문건을 책

상 위에 올려놨다던가 하는 정도일 거였다. 그런 걸 지적하느니 다 알

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서 기를 꺾어 놓는 편이 더 나았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라 대위."

국장은 60도 훨씬 더 된 것처럼 보였다. 거의 대머리가 된 머리에

그나마 몇 남아 있는 머리카락은 완전히 하얀색이었다. 이마에는 주름

살이 가득했고 볼에는 검버섯도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안녕하십니다, 국장님."

아이라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국장의 표

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정중하건 아니건 별 관심 없다는 듯한 얼굴

이었다.

"간단하게 본론만 말씀 드리죠. 기무사 내사반에서 전우신문을 검열

하는 건 알고 계시죠?"

"음... 그랬나, 보먼?"

아이라는 순간 국장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국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예. 알고 계시죠, 당연히."

국장을 대신해서 보먼이 대답했다. 마치 대단한 농담이라도 들었다

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저는 문제가 되는 기사들 때문에 왔습니다."

"음... 문제가 있는 기사가 있었나, 보먼?"

"저, 그게... 어떤 기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이라 대위님?"

보먼이 재빨리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국장을 바라보았다. 국

장 태도는 일부러 아이라를 무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장은

정말로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국장의 약간 벌어진 입에서는 당장이

라도 침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최근 들어서 많은 기사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칙에서 벗어

나는 기사들이 많다는 거죠."

"음... 그런 일이 있었나, 보먼?"

"예. 검열에 걸리는 기사가 좀 있지요."

"저는 전우신문 편집국이 고의로 저희와 전우신문의 원칙을 위반하

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라는 국장을 향해서 말했다. 하지만 국장의 표정은 여전히 심드

렁한 그대로였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8

"음... 보먼. 차 좀 내 오라고 하지. 손님도 오셨는데."

아이라는 더 이상 국장과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했다.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세론 소위의 기사입니다. 오늘 제가 온

건 편집국의 입장을 듣고, 또 세론 소위를 만나서 생각을 듣고 싶어서

입니다."

"샤논... 소위라고 있었나?"

참모가 보먼에게 물었다. 아마도 보먼이 없으면 화장실에서 뒷처리

도 못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예. 세론 소위라고 얼마 전에 부임해왔습니다. 잘 기억 못하실

겁니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요. 국장님께서는 워낙 바쁘셔

서..."

"이런. 바쁘신데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고 있는 것 같군요."

아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먼은 재빨리 따라서 일어섰고, 국장

은 가만히 앉은 채로 멍하니 아이라를 보고만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보먼. 절 도와주시겠죠?"

"아, 예. 물론입니다."

보먼은 국장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아이라를 따라서 국장실

을 나섰다.

"꼭 뵙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씀 드렸죠?"

보먼이 여전히 교통순경에게 짓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라에게 말했

다.

"편집국 국장은 꼭 저래야 하나요?"

아이라가 짜증을 참으며 보먼에게 물었다. 보먼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국장님은 안그러셨습니다. 대단히 영민한 분이셨죠."

"그런데요?"

"정훈과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진급하신 거죠. 지금 국장님은 그 후

임이십니다.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국장님은 정훈 계통에서 오

랫동안 근무하신 노병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으로 오신 거죠?"

"제가 압니까? 그야 사령부 인사과에서 알겠죠."

보먼은 이렇게 말하곤 자신의 말이 혹시라도 아이라 대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돌아가셔서 전화 한 통만 해 보시면 아시게 되실 겁니다. 지금 국

장님과 아주 친하신 동기분이 사령부에서 인사 계통에서 근무하고 계

시거든요. 장군이십니다."

보먼은 얼른 이렇게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낙하산 인사라는 거군요."

"우리는 연금 인사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1년을 더 채우면 연금을

받게 되니까요."

아이라는 솔직한 보먼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편집국 일은 보먼, 당신이 다 하고 계시겠군

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저도 아주 죽겠습니다. 기자들이 제 말

은 듣지도 않죠, 사무원들도 제 말이라면 옆집 부부싸움 소리만큼도

주의를 기울이질 않아요. 예전 참모님 계셨을 때라면 상상도 못할 일

이죠."

보먼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마도 이런 사정 때문에 신문사 검

열이 내사반쪽으로 넘어오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좋습니다. 일단 세론 소위를 만나봤으면 좋겠는데요."

"예. 직접 만나 보시죠. 어차피 제가 이야기 해 봐야 듣지도 않을텐

데요."

"세론 소위 자리가 어디죠?"

"저쪽 구석입니다만 자리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항상 이 부

대 저 부대를 돌아다니거든요."

"언제 쯤 돌아오죠?"

"오늘은 안돌아 올 겁니다."

"그럼 지금 있는 곳을 알려 주세요."

"예, 그러죠. 어이, 거기!"

보먼은 꼭 말 안 듣는 학생을 부르는 교사처럼 목청을 높여서 사무

원을 불렀다. 하지만 사무원은 보먼의 말을 못들은 척 하고 있었다. 보

먼의 말 그대로였다. 아이라는 잠자코 보먼을 지켜봤고, 사무원은 보먼

이 직접 옆으로 가서 어깨를 두들기고 나서야 보먼을 바라보았다.

"71군단 사령부로 취재를 갔다는 군요. 거기 위병소에 가시면 세론

소위가 어디로 갔는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보먼이 친절하게 방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아이라는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편집국을 나섰다.

"71군단 사령부로 가지."

아이라는 호버카 조종수에게 말했다. 잔말 말고 호버카나 잘 몰라는

말의 효과는 꽤 오래가는 모양이었다. 호버카 조종수는 알겠다는 말도

없이 호버카를 출발시켰다.

71군단 사령부는 예전에도 검열 때문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71군단 사령부 정보작전과장인 율리스 대령과는 안면도 있었

다. 율리스 대령의 불쾌했던 언사들을 떠올리자니 기분이 상했다. 휴일

같은 기분도 어디로 갔는지 전부 다 사라진 듯 했다. 차가 베가 시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었다. 뛰놀던 아이들과 락벳인 대신 랩타일 용병

부대와 휴가 나온 장병들만이 아이라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라

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버카는 71군단 사령부 위병소에서 멈추었다.

"기무사 내사반의 아이라 대위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기록을 좀

찾아보겠나?"

아이라 대위가 위병 근무자에게 물었다. 위병 근무자는 아이라의 호

버카 번호를 확인한 뒤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세론 소위라고, 공보처 기자야. 지금 어디에 있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위병 근무자는 잠시 서류를 들추어보더니 이내 곧 아이라에게 세론

의 행방을 알려 주었다.

"지금 군단에 없습니다. 15분전에 나갔습니다."

"어디가 행선지라도 되어 있지?"

"그냥 베가 시라고만 되어있습니다."

"알았어. 차량 번호 좀 불러 줘."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바로 내사반으로 무전을 연결했다.

"기무사 내사반 로웰 중령입니다."

"아이라 대위입니다. 차량 조회 부탁합니다."

"세론 소위?"

"예. 그렇습니다."

아이라는 대답하면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호버카 한 대를 보았다.

다 똑같이 생긴 호버카이지만 분명 눈에 익은 호버카가 있기 마련이

다. 호버카의 선탑자는 로스였다. 로스가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로웰

중령이 차량 조회를 하는 사이, 아이라는 로스가 이곳에 왜 온 것일까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세론의 호버카 위치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라는 몇

번이고 내사반의 로웰 중령에게 새로운 위치를 문의해야 했고, 로웰

중령은 그 때마다 기무사의 차량 추적 시스템과에 문의를 해야 했다.

로웰 중령은 나름대로 소일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한 참 동안 보이지 않는 숨바꼭질을 한 끝에 아이라는 세론

소위가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세론 소위는 뒷골목에서 누군가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론 소위님?"

아이라는 적당히 여유를 부리며 세론 소위에게 접근했다. 간신히 찾

았다던가, 찾는데 애를 먹었다던가 하는 티는 내지 않았다. 그러는 편

이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수

사관 시절이나 내사반 시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라 대위님이시군요."

놀랍게도 세론 소위는 한 눈에 아이라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아이라

를 알아 본 것은 세론 소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내도 마찬가지

인 모양이었다. 사내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

목 저편으로 뛰어서 달아났다.

"암거래 중이셨나요? 마약이라도 필요하신 모양이죠?"

아이라가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투로 세론에게 물었다.

"취재중이었어요.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세론 소위가 아이라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

급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건 대단한 결례이지만 세론 소위는 정식 군인

이 아니라 J비표를 달고 있는 준 민간인 신분이었다. 아이라는 흔쾌히

손을 맞잡았다. 세론 소위는 적당히 힘을 주어 아이라의 손을 잡으며

아이라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필

요까지는 없었을 텐데요. 생각보다 한가하신 모양이죠?"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어떤 휴먼 레이스인지. 요즘은 세론 소

위 기사 검열하는 것 말고는 바쁜 일도 없고요."

아이라도 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참 대단하시네요. 어깨에 그렇게 기무사 비표를 달고 시

내에 나오시다니요. 정통정부군 게릴라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

르는데."

그러고 보니 세론 소위는 사복 차림이었다. 파란 블라우스에 흔한

면바지 차림이었는데, 드러난 살결이 희고 체격은 날씬해서 꽤 잘 어

울린다 싶게 보였다.

"덕분에 암거래상 하나는 쫓았네요."

"그 사람, 중요한 취재원이었어요."

아이라는 세론 소위가 왜 이렇게 퉁명스럽게 자신을 대하고 있는지

대충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원을 놓쳐버린 분풀이가 분명했

다.

"마약 거래에 대한 폭로 기사라도 쓰실 작정인가요?"

"베론 시 동향에 대해서 묻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까 그 사람이 암

거래 상이라고 단정하시는데, 기무사에서는 수사를 그런 식으로 하시

나보죠?"

"정글에서 무장한 락벳인을 보면 보통의 경우는 적군이라고 판단하

죠. 모든 수사는 가정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아이라도 세론 소위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둘 사이에

는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같은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장소가 좀 그렇네요. 내 차로 갈까요?"

아이라가 세론 소위에게 말했다. 세론 소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제 차로 가요. 저를 기무사 차에 태우시려면 영장이 있어야

할 걸요?"

"입대한지 얼마 안되셨는데 많이 아시는군요."

아이라는 짜증을 숨기며 말했다.

"기자로 근무하다보면 듣는 게 많죠. 카페로 갈까요? 중립지대니까

요."

아이라는 좋다고 했고 둘은 곧 큰길가에 있는 카페로 갔다.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들은 하나같이 잘 보호되고 있었다. 헌병들은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고, 무장한 군인들이 차를 마시기도 했다. 락

벳인의 자폭부대가 숨어 들어온다면 모를까 그 밖의 위협으로부터는

안전한 곳이었다. 둘은 한 눈에 카페를 출입하는 인원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구석자리에 앉았다. 카페의 이름은 밍라우였다.

"밍라우. 하늘이라는 뜻이죠. 여기 카페에서는 징겨우 차를 잘 다려

요. 징겨우 차를 좋아하시나요? 향이 아주 독특하죠."

"잡지에서 읽은 정보인가요?"

아이라가 물었다.

"잡지보다는 선배 기자들에게서 듣는 게 더 많죠. 징겨우 차를 드실

거죠?"

세론 소위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자리에 앉아 세론 소위는 가죽으로 된 가방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

려놓았다. 그리곤 그 안에서 공책과 서류 몇 가지를 꺼냈다. 아이라는

가방 안에 들어있는 22구경 권총을 보았다. 아마 암시장에서 산 모양

이었다. 외출시에 무장은 암묵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사항이었다. 간혹

총기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죽지 않는 이상 그런 사고는 아

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제 취재 가방이에요. 늘 몸에 지니고 다니죠. 궁금하시면 살펴보셔

도 됩니다. 저는 보안에 철저하거든요."

당당한 태도였다. 아마 뒤져보면 몇 가지 보안에 위배되는 사항이

나오겠지만 세론 소위는 기자의 특권을 내세울 게 분명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쉽게 보았다가는 오히려 당할 공산이 있었다.

"전우신문의 원칙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아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돌려서 말을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재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이 나아 보였

다.

"승리, 승리의 예감, 승리의 기쁨.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기자에게는 기자의 원칙이 있어요. 그건 진실을 기록한다는 거죠."

"승리, 승리의 예감, 승리의 기쁨도 진실이 될 수 있어요."

아이라의 말에 세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하지만 덧붙이는

걸 잊지는 않았다.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의 이름을 빼고, 승리를 조작하고, 후방에서

만난 병사들은 무조건 용감하다고만 적어서는 진실이 되지 않아요."

"그럼 진실이 뭐죠?"

아이라가 물었다.

"진실은 사실과 달라요. 예를 들어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몇 명

이 죽거나 다쳤다. 이런 건 사실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진실이 없어

요."

"병사들의 고통, 전쟁의 괴로움... 이런 걸 말하는 건가요? 세론 소위

의 기사를 보면 늘 나오죠. 혹시 반전주의자이신가요?"

"그저 저는 진실을 전달하려고 할뿐이에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 신문 기사를 보고 우리 편 사기가 떨어지는

건 어떻게 하죠?"

슬슬 설득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이렇게 물으면서 세론

소위의 취재 가방에 들어 있는 서류철을 집어들었다. 거기에는 초고

형태의 시사들, 스크랩 된 사진들, 메모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세론 소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봐도 상관없다는 듯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말씀 드렸다 시피 언론인의 임무는 진실을 보도하는 거예요. 진실

을 기록하는 것. 이것이 언론인의 임무지요. 기록된 진실은 무엇보다

강한 힘을 발휘해요. 당신들이 말하는 조작된 정보, 아, 좋게 말해서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적어도 저는 그런 기사는 쓰고

싶지 않고요."

아이라는 대꾸할 말을 생각하면서 세론의 서류철을 바라보다가 동작

을 멈추었다.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얼음 덩어리

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 싸늘한 충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론은 그

런 아이라를 이상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 기사, 언제 작성한 거죠?"

아이라가 기사 하나를 내밀면서 말했다.

"아. 여기 처음 왔을 때 쓴 거예요. 당신이 검열했죠. 기사화 하지

말라고."

아이라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아마 전에 읽어보았을 거였지만 통 기

억이 나질 않았다. 제목부터가 원칙에 어긋나는 기사였다. '상병의 우

울' 이라니. 아마도 그래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전장에 나선 수많은 병사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전쟁이 끝나

는 일일 것이다. 본 기자가 만나본 수많은 병사들은 전쟁이 끝이 나면

집으로 돌아가 지금껏 모은 돈을 마음껏 쓰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군사령부

는 그 대신 휴양 콜로니에서의 휴가를 마련해 두고 있다. 휴양 콜로니

에 대한 이야기는 가판대에서 파는 수많은 군인 잡지에서 언급한 바

있으니 이 기사에서는 논외로 한다.

휴가를 다녀오는 병사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본 기자는 락벳으로

부임해 오는 길에 만난 한 병사를 통해서 그 심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

다.

병사는 무뚝뚝했다. 취재에는 비협조적이었고 내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본 기자

는 그 병사가 왜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

다.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부임지로 향하는 셔틀은 정통정

부군의 기습을 받았다. 물론 아군기의 적절한 대응으로 별 피해 없이

끝났지만 -그래서 이렇게 살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있

다- 처음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셔틀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본

기자 역시 공포에 떨며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병사는 침착하게 대응했고, 나와 다른 병사들을 진정시켰

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실전을 거친 무뚝뚝한 병사의 진짜 가치를.

하지만 병영으로 돌아가야 하는 병사의 얼굴은 우울해 보였다. 이런

상황은 언제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기자는 병사에게 부대 복귀하는 차를 함께 탈것을 요청했지만 병

사는 거절했다. 아마도 혼자서 걸어서 갈 모양인 것 같았다. 쓸쓸하게

돌아서는 병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본 기자는 상병의 우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병사한테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예?"

아이라는 세론 소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이렇게 되물었다.

"진실이요. 기자의 임무는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걸 왜 알리려고 하냐는 거예요. 병사들 사

기가 떨어지면, 그건 전쟁에서 패배하는 일이라고요. 세론 소위가 하려

는 일은 진실이니 뭐니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

어요."

아이라는 기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다.

"아뇨."

세론 소위는 대번에 이렇게 아이라의 말을 부정했다.

"진실의 가치는 전쟁을 이기고 지는 차원을 넘어서는 거예요, 아이

라 대위님. 그리고 누구나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요."

아이라는 코웃음을 쳤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요."

아이라는 대화를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세론 소위와의 잡담보다 훨

씬 더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전장이 어떤 곳인지 알아요? 전투가 어떤 건지 알아요? 그저 돌아

온 병사의 말만 듣고 진실 운운하는 건 진실되지 못한 행동이에요, 세

론 소위. 그러면서 뭘 알리겠다는 거죠?"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론 소위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서 멍하니 아이라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토론은 세론 소위가 전투를 체험한 다음으로 미루죠."

물론 전투를 체험하지 못한 건 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사

반의 요원이 전투를 체험할 필요 따위는 없는 것이다. 세론 소위와는

입장이 달랐다.

아이라가 까페를 빠져나갔을 때, 세론 소위는 아이라가 보고 있던

기사를 살펴보았다. 기사에는 사진이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기무사로

는 보내지 않았던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상병이 우울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상병의

모습은 저 광활한 우주공간의 어둠 속으로 당장이라도 빨려 들어갈 듯

보였다. 세론 소위는 상병의 어깨에 붙어 있는 로윙 사단 마크와 가슴

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았다. 명찰에 수놓아진 이름은 메샤 인지 메쟈

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철자를 구별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세론 소위는 뒤늦게 도착한 징겨우 차 두 잔을 바라보다가 혼자 그

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저멀리 연락선 한 척이 대기권을 이탈하기 위

한 예비비행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무사 직할대 소속 연락선일 거

였다. 뜨거웠던 한 낮의 태양은 어느 사이 베가 시의 저편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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