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취침나팔
강제 트랜스에 대한 연구는 거의 공장에서 하는 작업처럼 진행되었
다.
공장의 컨테이너 벨트에 실려온 재료처럼 수용소에서 실려온 해방정
부군 병사들은 매일 4과 사무실로 이동되었고, 4과 사무실의 심문실은
작업라인처럼 해방군 병사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메이런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메이런은 로웰 중령이 통역병과 함께 포로를 심문하는 것을
그저 양면 거울의 뒤편에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너희들 화물선을 공격했다고 묻습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
은 소리냐고 하는데요."
"해방군 셔틀이 정통정부 소속 화물선을 공격했다고 말해요."
"협조하지 않겠다고 하는데요?"
"그럼 가만히 있으라고 해요."
로웰과 통역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메이런은 가만히 앉아서
양면 거울 뒤편에서 포로를 관찰하는 것이 일이었다. 로웰이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그 친구가 강제트랜스가 가능할지 어떨지 한 번 보기만 하면 되
요."
로웰이 이렇게 말했을 때, 메이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강제 트랜스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제가 어떻게 알죠?"
"그건 메이런 말고는 아무도 모르죠. 아직까지 해 본 트랜서가 없으
니까."
로웰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군대식이었다. 메이런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가능한 것은 가능하게 하고, 시키는 일이
라면 뭐든지 하는 게 군인인 것이다. 메이런은 로웰 중령의 요구사항
을 최대한도로 적절하게 따랐다. 즉, 그저 가만히 앉아서 양면 거울의
저편을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는 말
이다.
로웰 중령은 포로를 계층별로 다양하게 불러와서 심문을 진행했다.
하루는 간부. 하루는 하전사. 하루는 키가 큰 해방군. 하루는 키가 작
은 해방군. 하루는 학력이 높은 해방군. 하루는 학력이 낮은 해방군.
하루는 학력이 높은 해방군...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메이런은 양면 거울의 뒤편에 앉아서 멍청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라
만 보고 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건 대단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로웰 중령이 메이런에게 아무런 방
향도 제시해 주지 않는 다는 거였다. 로웰 중령은 그저 메이런에게 한
번 보라고만 했을 뿐,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의견을 묻지도 않았
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마도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겠지만
실상 당하는 쪽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무 것
도 하지 않으면서 뭔가 하는 척 하면서 앉아 있는 건 대기발령을 받아
책상만 지키고 있는 나이든 공무원의 기분과 다를 바가 없다.
"직접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메이런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곧 때가 올 거예요."
로웰 중령은 이런 말로 메이런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곤 했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그저 대화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
낸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루해진다. 결국에는 양면거
울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조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고, 마
침내 넋을 읽고 그저 바라만 보게 된다.
"메이런."
아이라가 물었다.
"로웰 중령님이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좀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응?"
"그거."
메이런은 아이라가 지적하기 전까지, 자신이 시선을 양면거울에 두
지 않고 책상 위에 오려 놓은 필기도구를 가지고서 손장난을 하고 있
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메이런은 손을 들어 보였다.
"아, 이거. 트랜스를 하려면 집중이 필요해서."
"미안하지만 난 그런 말을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하지만 트랜서를 잘 다룰 만큼 똑똑하지도 않잖아."
메이런은 아이라의 말에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아이라가 똑바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불쾌했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 또한 뻔뻔하
다고 여겨졌다.
"뭐야?"
아이라는 이렇게 의미 없이 자신의 불만을 뱉어내곤 자리에서 일어
나 나가버렸다. 4과의 지하사무실은 그대로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4과
사무실의 업무가 본격화되면서, 할 일이 없는 린은 탁아소로 가게 되
었다.
로웰 중령은 계속 해서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이 자
리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챘는지, 로웰 중령은 메이런 쪽으로 자꾸만
고개를 돌리곤 하였다. 물론 로웰 중령의 눈에 메이런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지만 메이런은 고개를 숙여 로웰 중령의 눈을 피했다.
심문을 마치자 로웰 중령을 포로를 들여보내는 일을 중지하고 메이
런이 있는 쪽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이라는요?"
로웰 중령이 물었다.
"아마 어디 가서 스트레스라도 풀고 있을 겁니다. 상당히 기분이 상
했을 테니까요."
"...둘이 의견 차이가 있었나요?"
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웰 중령의 얼굴에 늘 흐르던
여유 있는 미소가 싹 가셨다. 메이런은 그런 로웰 중령의 표정을 보는
게 처음이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아이라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둘 사이에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마침내 아이라가 돌아왔을 때, 아이라는 심문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로웰 중령의 표정도 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실
수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뭐라고 했죠?"
로웰 중령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중령의 싸늘한 음성은 메이런의 가
슴까지 식히며 지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관찰만 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트랜서를 자극해요?"
"...죄송합니다."
"저, 중령님..."
"메이런은 입 다물고."
메이런이 아이라의 변호를 해 주려고 했지만 로웰 중령은 메이런의
입을 꽉 틀어막아 버렸다. 메이런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라. 내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가요? 트랜서에게 부담을 주
어서는 안 된다는 걸요. 이건 처음으로 시도되는 거고, 어쩌면 지금까
지 우리가 보유해온 트랜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지 몰라요.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혹독하게 한다고 해서 되는
건 더더욱 아니에요."
로웰 중령의 말은 메이런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메이런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다. 그런데 메이런은
'한계'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트랜서의 한계
라는 건 강제로 트랜스 할 수 없었다는 걸 말하는 걸까? 메이런은 로
웰 중령의 말이 꼭 그런 한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
지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새 군인투로 돌아간 말투로 아이라가 로웰 중령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트랜서는, 그러니까
메이런은 집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라는 정중한 군대식 말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있
었다.
"트랜서가 집중을 하고 못하고는 아이라의 책임이에요. 그래서 아이
라를 배치한 거 아닌가요?"
"제 능력 밖입니다."
너무나도 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아이라의 말에 로웰 중령은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그만 두고는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메이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듯 로웰 중령의 눈을 피했다.
로웰 중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로웰 중령은 결국 항복 선언을 할 모양이었다.
"아이라 의견을 따르죠. 좀 더 시간을 보낸 다음에, 그러니까 메이런
이 이 일에 좀 더 집중하게 된 다음에 진행하려고 했지만 아이라의 의
견을 받아들이겠어요. 오후부터는 다른 방법을 쓰죠."
로웰 중령이 말하자 아이라는 뜻밖이라는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화
를 내거나, 아니면 아이라를 메이런의 면전에서 면박을 주던가 할 것
같았던 로웰 중령이 너무나도 순순히 아이라의 청원을 받아들였기 때
문인 것 같았다.
"오후부터는 의지가 약해진 친구들을 데리고 오죠."
"의지가 약해진 포로말씀입니까?"
메이런이 로웰 중령에게 물었다. 로웰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약간의 작전을 수행했어요. 그러
니까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작전이었지요. 조금 더 시간이 지
나면 패닉에 빠져버리거나 완전히 절망한 병사들이 나올 수 있도록."
로웰 중령은 별반 특별한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그
건 듣는 이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르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메이런
은 로웰 중령의 말을 들으며 포로들이 겪었을 고통과 슬픔을 어렴풋하
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라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까, 오늘 오후에는 그렇게 '준비
된' 포로들로 한 번 진행해 보죠."
로웰 중령은 조금도 거리낀다거나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어쩌면 보
기 보다 훨씬 소탈한 군인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잠깐 쉽시다. 수용소에 다녀오죠."
로웰은 이렇게 말하고는 전투복을 바로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
무실에는 아이라와 메이런만이 남게 되었다.
둘 사이에는 한 참 동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급진전된 상황 때문
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둘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이 꽤 고인 모양이
었다.
"아이라 대위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이렇게 정적을 깬 것은 아
이라도 메이런도 아닌 4과 파견 요원이었다. 4과는 필요한 병력이 생
기면 군사령부 경비단에서 끌어오곤 했다. 때문에 군사령부 경비단 근
무는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때문에 경비단에서는 4과를 그다지 고
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포로들은 어떻게 할까요?"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덩치 좋은 파견요원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포로들, 수용차량으로 이동시켰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대기 해."
"예. 대기하겠습니다."
중사는 깍듯하게 경례를 붙이곤 사무실을 나섰다. 아이라는 메이런
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이런은 중사를 분대장으로 모시
고 있었다. 지금 아이라는 중사를 손가락으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위치이다. 아이라는 메이런에게 '이제 그만 휴전하지?' 하는 미소가 담
긴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지. 메이런은 어깨를 한 번 크게 으쓱 했
다.
"미안해. 내가 너무 빈정거렸어."
메이런이 말했다. 그다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 말은 아니었지만
아이라도 메이런의 말을 좋게 받아들였다.
"아냐. 내가 먼저 잘못한 걸."
이만하면 많이 양보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대위가 상병에게
하는 것 치곤.
"음. 조금 빨리 묻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메이런이 말을 이었다.
"...군 생활은 할 만해?"
아이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할 만해."
메이런도 미소를 지었다. 둘 사이의 어색했던 기운이 한 순간에 날
아 가버린 기분이었다.
"있잖아, 가끔 기억이 나. 너하고 보던 노을 말야."
"사실 그것뿐이었잖아. 아이라."
아이라는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기억이야."
"나도... 그래."
메이런은 이렇게 대답하는 게 쑥스럽게 느껴졌다. 공연히 얼굴이 달
아오르고 가슴이 뛴다. 칫. 메이런은 심통이 났다. 도대체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야? 입술은 쭉 내밀고."
아이라가 그런 메이런에게 물었다.
"아니. 피곤해서. 오전 내내 일만 했잖아."
"하긴. 밤새도록 자고 출근해서도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피
곤하기도 하겠지."
아이라는 싱겁긴, 하고 덧붙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말야, 그 때 그 사람은 누구야?"
메이런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글쎄. 포로한테는 별 관심이 없어서."
"아니. 포로 말고. 그 전에 B.O.Q 앞에서 만난 소령말야."
심드렁한 투로 묻긴 했지만 메이런의 본심은 아니었다.
"로스 소령이야."
"이름은 들었어."
"그랬던가? 푸우순 시에서 같이 근무했어. 둘 다 경사였지."
"그럼 그 친구는 진급이 빨랐나 보네?"
"육군이니까."
메이런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었다.
"맞아. 정보계통은 진급이 느리지. 게다가 기무사는 더 느리고. 하지
만 권력은 막강하지. 솔직히 아이라, 네가 마음먹으면 사단 하나쯤 통
째로 날려 버리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 보다 간단하겠지?"
"과장이야."
하지만 또한 사실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대답하는 아이라는 자랑스
럽다는 듯 대답하고 있었다.
"애인이야?"
메이런이 묻자 아이라는 폭소를 터트렸다. 잠시 웃음을 추스린 아이
라는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전혀 아니야."
"그럼 무슨 사이야? 친구?"
"네가 맞춰봐. 트랜서니까."
아이라가 말하자 메이런은 아이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아이라는 긴장했다.
"음... 꽤 친하게 지내나 보네. 데이트도 몇 번했고. 린하고도 친하고.
여기 부임해서 사적으로 만나는 유일한 전우이기도 하고 말이야."
메이런이 말하자 아이라가 눈을 치떴다.
"너, 강제 트랜스, 할 수 있었구나?"
아이라는 당장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투였다. 이번에는 메이런이
웃을 차례였다.
"너 바보냐? 그 정도는 그냥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거잖
아."
메이런이 말하자 아이라는 자신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수사관 맞아?"
메이런은 이렇게 아이라를 장난 삼아 놀렸지만 아이라는 꽤 심각하
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수사를 한지 너무 오래 되어서... 감각이 떨어졌나봐. 바보같이."
"그냥 해 본 소리야. 신경 쓰지마."
"아니, 신경 쓰여."
아이라가 말했다.
"사실 여기로 온 다음부터 일이 꼬이기만 해."
메이런은 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하지만 아이라도 그 이상을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에 M.I에서 수사관 연수를 받고 사건을 수사할 때는 좋았어.
그 때는 린도 좋았고."
"그러고 보니까 린, 그 꼬마는 오늘 어디 간 거야?"
"가끔씩 아프다고 하고 출근 안 해. 그러면 탁아소에 맡기지."
"중사하고 놀아 주려면 꽤 힘들겠는데."
"아무리 중사라고 해도 어린애는 어린애야."
아이라는 공연히 메이런에게 짜증을 냈다. 메이런은 이럴 때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하던 말을 계속 말을 잇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이라는 조금 더 투덜댈까 생각하다가 결국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원래 직업은 수사관이야. 그리고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
기도 하고. 다시 웨이팅하우스 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
래도 다시 수사를 했으면 좋겠어."
"린도 탁아소에 맡기지 않아도 되고."
메이런이 덧붙였다. 별로 재미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아이라는 미소
로 응했다.
메이런은 린을 생각했다. 얼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꼬마. 아마 메이
런도 그 나이 때 즈음부터 트랜서 일을 했을 것이다. 그 때의 메이런
은 영민하고 영악한 꼬마였다. 어른들에게 쉽게 말로 밀리지 않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밀어 부칠 줄도 알았다. 그런 메이런이 나
이에 비해 조숙했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린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자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미린 시에서 본 꼬마 트랜서도 린
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걸까?
메이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로웰 중령이 돌아왔다. 로웰
중령은 꽤나 서두른 모양이었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느라 한 참 동안
을 서 있다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약해 빠진 녀석들이에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쇠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죠."
"그렇게 준비 된 건가요?"
메이런이 물었다.
"사실은 좀 더 준비해야 좋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사실, 지금까지 경
과로 봐서는 확률은 0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약물이나 공포, 고통,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한 마디로 고문을 하고 싶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말끝을 흐렸기 때
문에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메이런을 생각해서 아직까지
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 말은 포로들이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는 취미가 없다면 빨리 강제 트랜스에 성공해야 한다
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메이런. 우리가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요?"
로웰 중령이 메이런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빨리 일을 진행했으면 좋
겠는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로웰 중령과 메이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부죠. 아마 휴양 콜로니의 카지노 수입만 해도 별 하나
는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소문이 돌기는 하죠. 하지만 소문을 너무 믿지는 말아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26
"실은 나도 잘 몰라요. 휴양 콜로니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또 우
리 휴먼 레이스가 로즈웰 레이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또 우리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 낸 군수품들이 얼마나 큰 경
제적인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 그런 건 잘 몰라요. 하지만
진짜 우리가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한다면 강제 트랜스
를 할 수 있는 트랜서일지도 모르지요."
로웰 중령은 꽤나 거창하게 말했다. 메이런은 로웰 중령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전쟁을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
요?"
메이런은 로웰 중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렇게 다짜고짜 물었
다. 하지만 묻는 순간, 이 말이 바로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임을 깨닫
고는 황급히 수습할 말을 찾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전쟁의 목적이 그거냐는 걸..."
"군인이 할 질문 같지는 않은데요."
로웰 중령은 메이런이 말을 마치길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에 목적 같은 건 없어요. 징기스칸을 알아요?"
아이라도 메이런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행성 어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동반구의 왕이었죠. 행성 어스의
절반을 차지했던 군왕. 징기스칸은 전쟁에 본질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
을 했어요. '전쟁이란 죽이고, 훔치고, 빼앗고, 강간하는 것이다.' 전쟁
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징기스칸은 전쟁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었던 거죠."
로웰 중령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면거울의 저편을 바라보았
다. 환한 심문실의 책상과 의자는 텅 비어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건 정치가들이 하는 일
이죠. 그런 전쟁 중에 뭔가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나마 보람이 있는 일
아닐까요?"
로웰 중령의 눈동자는 여전히 양면 거울의 저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아이라가 물었다. 로웰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병사가 아니라 장교에요."
군인의 본분을 어긋난 화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메이런은 4과에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심문실에 들어섰다. 살벌하게
까지 느껴지는 어두운 심문실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하
나 뿐인 조명등이 내쏘는 불빛도 차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메이런은
심문실의 의자에 앉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어쩐지 내뱉는 숨에서
김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로웰 중령과 나란히 앉아서 포로를 심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로웰 중령은 메이런이 하는 말과 행동을 그저 기록만 할
뿐, 그다지 심문 자체에 관여하지 않았다. 가끔 심문의 방향을 잡기 위
해서 뭐라고 말을 거들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포로 앞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두 남자.
처음 둘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하나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들어와서 책상에 앉자마자 의미를 전
혀 짐작할 수 없는 락벳어를 지껄이며 침을 흘렸다. 강제 트랜스의 효
과를 알아보기 위해 통역병까지 자리를 비운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심문은 불가능했을 거였다.
다른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웰 중령의 판단에 따른다면
의지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포로일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게 입
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꽤 의연해 보였다. 물론 그 포로가 오줌을 싸
기 전까지는. 그 포로는 로웰 중령이 잠시 빤히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
데 오줌을 싸며 눈물을 흘렸다.
두 번 다 완전한 실패였다. 메이런은 둘의 마음을 감지해 내려고, 또
평상시에 해 왔던 것처럼 트랜스를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트랜스 된 공간은 열리지 않는다. 메
이런은 두 명의 포로가 심문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데에 오히려 안
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강제 트랜스가 가능해 보이는 포로 -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였다면 메이런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로웰 중령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
다.
자기 자신이 채점을 하는 시험을 보면 부담감이 없다. 누구도 뭐라
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남이 채점을 하
는 시험을 보고 나서 누군가가 그 시험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한다는 걸
안다면 부담감은 생긴다. 그리고 남이 채점을 하는 시험을 보고 나서
누군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부담감은 몇 배가 된다. 시험이
아니라 다른 일 또한 마찬가지다.
적어도 메이런은 그런 휴먼 레이스였다.
메이런은 다음 포로가 들어오기 전, 로웰 중령의 눈치를 살폈다. 로
웰 중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미소마저 지어 보인다. 메이런은 어쩐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
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포로가 들어왔다.
세 번째 포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적당히 섞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패닉 상태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입은 다물고 있었고, 오줌을
싸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역시 메이런과 로웰 중령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로웰 중령이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세 번째 포로는 양면거울이
있는 쪽 눈치를 살피더니 아주 낡아서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의
자에 앉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메이런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세 번 째 포
로를 그저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세 번 째 포로 역시
메이런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마도 메이런과 비슷한 또래인 모양이었다. 박박 밀었다가 자라기
시작한 머리는 전혀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고, 면도도 며칠 동안 하지
않았는지 수염이 자라난 자리가 보기 흉했다. 옷은 지급된 포로복을
입고 있어서 정돈된 느낌이었지만 소매만큼은 시커먼 때 늘어붙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메이런이 조심스럽게 로웰 중령에게 물었다. 로웰 중령은 아무런 대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 말라는 미소만을 계속해서 짓고 있을 뿐
이었다. 메이런은 다시 세 번째 포로를 보았다. 포로의 눈은 공포에 질
린 개처럼 슬금슬금 메이런과 로웰 중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메
이런은 일단 세 번째 포로의 마음을 느껴보기로 했다. 공포와 고통, 분
노와 비감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메이런은 문득 두통을 느꼈다.
복잡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셋은 한참동안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포로는 이들이 자신에게 고문을 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는
지 조금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떠한 말도, 어떠한 눈짓도
포로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포로는 눈치를 살
피는 것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메이런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로웰 중령의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자신의 마음이 포로의 마음과 같다는 걸 깨닫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
다. 어쩐지 자신의 처지가 안쓰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메이런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오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락벳어로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는 퇴역 장군이었고 또한
포로의 아버지였다. 포로는 화가 났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렇게 당하
고만 있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 기억이..."
메이런의 목소리가 텅 빈 심문실에 울렸다. 로웰 중령이 침착을 유
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미소와 함께 메이런을 바라본다.
메이런의 머릿속에 여러 영상이 뒤죽박죽으로 스쳐 지나간다. 형의
결혼식 - 락벳식 전통 혼례다. 화려한 예복. 하객. 축복과 환희. 입대
- 훈련소에서 포로는 기아 극복 훈련을 받다가 영양실조로 후송되어
모범 사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학교 - 어느 날 제대한 형이 학교
로 찾아왔고, 포로는 영웅이 되었다.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메이런은 호야미의 마음가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억이?"
로웰 중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메이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 참 동안의 정적이 흐른 다음에야 메이런은 입을 열었다.
"호야미."
"호야미?"
"호야미. 저 포로의 이름이에요."
메이런이 말했다. 단어가 하나 둘 떠오르고 있었다. 호야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단어로 바뀌어 메이런의 머릿속에 박혀 들어온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 -그러니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 따위- 에 의
미가 생기고 있다. 메이런은 자신이 호야미와 일치되는 순간을 경험했
다. 비록 짧았지만 한 순간 메이런은 호야미의 언어로 생각을 전개시
킬 수 있었다. 이것은 트랜스와 버금가는 성과였다. 하지만 어느 사이,
메이런에게 강한 두통이 찾아오고 있었다.
"고르카... 고르카 미츄."
메이런이 말하자 로웰 중령이 흥분을 감추기 어려운지 떨리는 목소
리로 메이런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메이런은 두통을 참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대답했다.
"내 죄... 나의 죄를 사하소서."
로웰 중령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한 것 보다 너무 빨리
메이런이 강제트랜스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로웰 중령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트랜서의 능
력을 유지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호야미에게 쏟아 부었던 것
이다.
메이런은 더 이상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기진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강제 트랜스가 성공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메이런은 중대한 진보를 이루었다. 트랜스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랜스 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언어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중
대한 진보였다.
"죽고 싶지 않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아.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어."
다시 한 번 누군가의 목소리.
"산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이번에는 메이런의 목소리였다. 메이런 스스로 분명히 인식할 수 있
었다.
"산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메이런은 정신을 차렸다. 메이런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이불까지 잘
덮고 있었다. 메이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과 로웰 중령의 얼
굴이었다. 아마도 호송용 트레일러 호버카인 모양이었다. 앞쪽으로 조
종석이 보였고, 창문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을지 모를 두꺼운 창살이
눈에 들어왔다.
"서두르지 말자고요."
로웰 중령이 말했다.
"둘이 쓸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겠어요. 여기서 며칠 함께 묶어요.
아, 걱정 말아요. 무장한 병사가 항상 지키고 있을 테니까. 오늘부터
둘이 함께 방을 쓰도록 해요."
로웰 중령은 메이런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메이런은
몸을 반쯤 일으켜 자신이 누워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니들건으로 무
장한 장갑복을 입은 병장이 하나 서 있었고, 그 옆으로 호야미가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야전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그러고 보니 10명은 족히 수송할만한 공간이 야전 침대 둘이 들어
서는 바람에 매우 비좁아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죠?"
로웰 중령이 마치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꼬마를 칭찬하는 선생님 같
은 말투로 메이런에게 물었다.
"강제 최면이요."
메이런이 말했다.
"호야미는 강제 최면을 당한 적이 있어요. 아마 그래서 쉽게 된 것
같습니다."
메이런이 멍한 머리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강제 최면이 뭔지 알겠어요?"
로웰 중령이 물었다. 로웰 중령은 강제 최면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만 메이런을 시험하기 위해서 굳이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번역하면 그렇다는 것뿐이죠. 글자 그대로 강
제로 최면을 거는 게 아닐까요?"
메이런의 솔직한 대답에 로웰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이제 하나 하나 해 나가 봅시다. 메이런. 아마 강제 트랜스
에 대한 기록이 남게 된다면, 메이런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오르게 될
거예요. 기쁘지 않아요?"
로웰 중령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메이런은 그런 데에는 별 관심
이 없었다.
"저는 별로요. 그런데 두통이 다시 시작됐는데..."
"아, 걱정 말아요. 일리야 중위를 내일 불러 올 게요."
메이런은 일리야 중위를 이렇게 금새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와
봐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메이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로웰 중령은 다르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여긴 보안 구역이 아니니까요."
로웰 중령은 이렇게 덧붙였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아이라는 오래간만에 로스 소령과 함께 퇴근을 하게 되
었다. 로스 소령이 호버카를 타고 아이라를 찾아왔다.
"저녁 먹어야지?"
로스는 4과 사무실에서 나오는 아이라에게 말했다.
"별로 생각 없어."
아이라는 기운이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메이런이 강제 트랜스에 접
근해 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메이런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
는 게 결코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린은 오늘도 탁아소?"
아이라는 고개만 까딱했다. 별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피곤해. 퇴근 할 거야."
"일단 타."
로스가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뒤편에 서 있는 자신의 호버카를 가리
키며 말했다. 아이라는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먼저 호버
카에 올랐다. 로스는 친절하게도 아이라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
로스가 물었다.
"별로. 오늘은 입맛이 없네."
"내가 추천하는 식당은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 그런 건 아니
고?"
농담임에 틀림없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평소의 로스와는 다른 말투였
다. 아이라는 호버카의 뒷좌석에 허리를 당겨 앉았다.
"무슨 일 있어?"
"응. 꼭 그런 건 아니고. 출발하지."
로스가 호버카 조종사에게 말하자 호버카는 지면을 미끄러지며 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 메이런이라는 친구하고 일이 잘 안되나 보지?"
로스의 질문은 어쩐지 아이라에게 자신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질
문처럼 들렸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굳이 캐묻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캐어 물을만한 기운도 없었다.
"일이 다 그렇지 뭐."
메이런이 쓰러졌을 때, 아이라는 심문실로 달려들어갔다. 로웰 중령
보다 먼저 의무대에 연락을 지시했고, 일단 메이런을 조심스럽게 자리
에 눕힌 것도 아이라였다. 아이라는 메이런의 식은땀으로 젖어있는 창
백해진 메이런의 얼굴을 기억했다.
"메이런은 진급 시험 안 보나?"
로스가 물었다.
"특수 보직 예외 규정. 트랜서 같은 특수 보직에 종사하는 인원이
일이 바쁠 때 시험을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규정."
아이라는 딱딱하게 말했다.
"나도 알아. 그냥 물어 본 거야."
"싱겁긴. 오늘 좀 이상한데?"
"사실은 할 이야기가 좀 있어."
로스의 표정은 로스답지 않게 진지했다. 보통 로스는 저런 진지한
표정을 지은 다음 농담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로스는 조금 당
황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건 로스가 진짜로 진지하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은 정말로 생각이 없어."
"사실 나도 생각이 그렇게 많은 건 아냐. 차 한잔은 어때?"
아이라는 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로스는 조종사에게 시내의 까
페로 호버카를 몰 것을 지시했다.
퇴근 무렵의 베가 시는 붐비고 있었다. 이제 곧 해가 지면 통행금지
시간이 되기 때문에 야간통행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락벳인
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로스의 차는 군용 호버카였기 때
문에 신호를 무시하면서 자유롭게 다른 차량 사이를 헤집고 지나갈 수
있었다.
"오늘은 행인들이 별로 안보이네?"
아이라가 차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행상과 꼬마아이의 모습이 그
러고 보니 눈에 뜨이게 줄어있었다.
"이제 곧 락벳인의 명절이라도 닥칠 모양이지. 그런 거 몰라?"
"내 소관이 아니라서."
"아이라. 유능한 군인은 자신의 영역에만 안주하지 않아. 경찰도 그
렇지 않나?"
"나는 수사말고는 잘 몰라."
"수사가 바로 다른 영역의 정보가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이야."
"여기에서 나는 수사관이 아니야. 입 닥쳐.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라는 불쾌하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대꾸했다.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로스는 아이라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해. 그냥 해 본 소리였어. 별 의미 없었다고."
"알아."
아이라는 이렇게 짤막하게 로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차는 곧 까페 앞에 멈추어 섰다. 처음 보는 까페였다. 아마도 영관급
장교들이 다니는 까페인 모양이었다.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고 무장을
하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클럽이야?"
"아카데미 출신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야."
로스는 이렇게만 대꾸하고 아이라를 안으로 안내했다.
"아카데미 출신들이 가는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맞아. 별로 안좋아해."
로스의 대답에 아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는 꽤 조용한 방이 있어. 누군가 들을 염려가 없는 곳이지.
그리고 보다시피 안전하고."
"여기는 전쟁중이야. 안전한 곳은 없어."
아이라가 조금 전의 불쾌감을 만회라도 해 보겠다는 듯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하지만 로스는 별 반응이 없었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27
로스가 안내한 곳은 까페의 별실이었다. 벽에는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조명도 어두워서 은밀한 대화가 오가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도청장치라도 찾아?"
두리번거리는 아이라에게 로스가 말했다. 아이라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웨이터가 들어왔고, 로스는 아이라에게 메뉴판
을 내밀었다. 아이라는 물을 주문했다. 정수기를 통한 물이 아니라 행
성 어스에서 직접 공수되어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물이었다. 물론 아
이라는 그런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한 고객은 아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를 마시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로스
는 징겨우 차를 주문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야?"
"왜. 청혼이라도 할까봐 그래?"
뼈가 있는 농담이었다. 아이라는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 해 보이곤
말았다.
"참."
주문한 차와 물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아이라가 로스에
게 물었다.
"전에 71군단 사령부 위병소에서 봤어. 71군단에는 무슨 일로 갔던
거야?"
아이라는 메이런과 함께 로스의 호버카를 보았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로스의 얼굴이 눈에 뜨일 만큼 굳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오라고 한 거야."
로스가 말했다.
"71군단으로 배속되기라도 한 거야?"
"아니."
주문한 차와 물이 들어왔다. 로스는 웨이터가 나가고 문이 닫힐 때
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 한 후 천천히 입
을 열었다.
"율리스 대령을 기억해?"
아이라는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응. 아주 불쾌한 기억이야."
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스 대령의 장군 진급이 확정 됐어. 부관부에 있으면 진급에 대
한 소식은 빨리 듣게 되지. 아마 737 특공여단장으로 가게 될 거야."
"737 특공여단이 어디야?"
아이라는 물을 입술에 대며 말했다. 시원한 느낌이 상쾌하게 느껴졌
다.
"행성 어스. 웨이팅하우스 시 근처. 흔히 말하는 방위 여단이야."
"전쟁 중에 후방으로 간다... 무슨 의미일까?"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야."
로스는 차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나, 여기서 율리스 대령을 만난 적이 있어. 아마 아이라, 네가 날
본 건 율리스 대령하고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올 때였을 거야."
"율리스 대령... 나한테는 젊고 똑똑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로
스가 젊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똑똑한지는 몰랐어."
아이라가 말했다. 조금은 비꼬는 투였다.
"율리스 대령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
로스가 말했다.
"아이라. 솔직히 말 해 봐. 군 생활이 마음에 들어?"
"공무원이 다 똑같지 뭐."
아이라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
던 것이다.
"너, 라디오 그룹 사건, 아직도 기억하지?"
아이라는 대답 대신 물을 들이켰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포레스트 회장에 대한 기억, 살해당하는 카니데 레이
스를 두 눈으로 똑바로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무력감. 어쩌면
포레스트 회장이라는 한 휴먼 레이스가 지니고 있는 권력 앞에 무력한
경찰력의 한계를 체험한 것 때문에 아이라는 로웰 중령을 따라 군에
몸을 담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군대도 마찬가지야, 아이라."
낮은 목소리로 로스가 말했다. 로스는 지금까지 이렇게 진지하게 이
야기를 끈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심드렁한 투로 묻기는 했지만, 아이라는 로스의 생각이 내심 궁금했
다.
"율리스 대령은 이제 준장을 달고 행성 어스로 돌아가. 간단하게 말
할 게. 나하고 같이 가자."
아이라는 들고 있던 컵을 놓칠 뻔했다.
"너, 율리스 대령하고 같이 일할 거야?"
"737특공여단. 아마 작전과로 가게 될 것 같아."
"너, 진심이구나? 군에 뼈를 묻을 생각이야?"
아이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어두운 밀실이 더욱 좁
게 느껴졌다.
"군에 뼈를 묻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진심이야. 너한테 청혼했던
것만큼이나 진심이야."
아이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컵에 담겨 있는 물만 바라볼
뿐이었다. 물은 아이라의 숨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율리스 대령은 아카데미 64기 출신이야."
로스는 아이라가 듣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알지 모르겠지만, 64기에는 막강한 군 권력층이 자리잡고 있어.
AFO 클럽이라고 들어 봤어? 군의 가장 강력한 엘리트 집단의 모임이
지. 이제 율리스 대령이 준장이 됨으로 해서 64기에는 장군이 열 여섯
명이 됐어. 그건 국가 권력과 맞먹는 권력을 뜻해."
로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이라는 로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린을 생각해 봐. 여기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멍청하게 탁아소
하고 B.O.Q를 오가면서 살게 할거야? 행성 어스로 돌아가자, 아이라.
돌아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거야."
로스의 말에 아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로스는 말을 멈추고 아이라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줘."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단숨에 남아있던 물을 비웠다.
"...가지 않겠다는 거지?"
로스가 물었다.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아이라가 말했다.
"그럼 생각해 보겠다는 말은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생각 해 볼게."
아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망한 로스의 표정을 더 이상 마주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 아이라."
앉은 채로 로스가 말했다.
"율리스 대령은 곧 떠나. 나도 그렇고. 서두르고 있어. 율리스 대령
도, 군사령부도. 4과에서 일하고 있어서 정보가 늦어지나 본데, 전세에
뭔가 변화가 오고 있는 거야. 아이라. 서둘러야 해."
"알았어. 생각해 본다니까."
"아이라."
로스가 말을 잇기 전에 아이라는 로스의 말을 막았다.
"먼저 갈 게. 천천히 차 마시고 가."
"바래다 줄 게."
"아니. 혼자 갈 게. 생각해 볼 게 많아서."
아이라는 로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밀실을 나섰다. 마음속에 자욱한
연기가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숨을 들이쉬어도 들이쉬는 것 같지 않은
기분.
까페를 나섰을 때, 로스의 호버카 조종사가 왜 타지 않고 지나쳐 가
는지 의아한 듯 놀란 눈을 하고서 아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
는 그 눈을 피해 캡슐 스테이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었다.
캡슐 스테이션으로 가는 동안 순찰중인 헌병들이 아이라의 곁을 스
쳐 지나갔다. 헌병 중 선임자가 아이라에게 경례를 붙였다. 흘낏 보니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아이라는 건성으로 경례를 받았다.
로스는 틀림없이 돌아갈 거였다. 그리고 아이라는 남을 것이다.
아이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라의 꿈은 셔틀을 타고 행성 어
스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다른 종족을 만나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메이런. 아이라는 메이런을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메이런은 자신의
개인 트랜서 자격으로 함께 셔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자신의 개
인 트랜서가 굳이 메이런일 필요도 없었고, 자신이 셔틀에 외교관 자
격으로 오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 였던 것이다.
어쩌면 로스의 말을 따르는 편이 자신이 꿈꾸었던 일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일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라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
황이었다. 당장 아이라가 자리를 비우면 4과는 공백상태에 빠져버릴
거였다. 하지만 린은? 이렇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꼴로 방치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
아이라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연락선 한 척이 밤하늘의 별빛 사이를 가르며 하늘을 향해 솟
아오르고 있었다. 아이라는 사라지는 연락선의 불빛을 바라보다가 캡
슐에 올랐다. 탁아소로 가서 린을 찾아 와야했다. 린은 어떨지 모르겠
지만, 아이라는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아이라가 잠을 청하는 동안 메이런은 꿈을 꾸었다. 꿈이라는 게 어
차피 이상하고 괴상하기 마련이지만 깨어나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 못
한 꿈이었다.
메이런은 꿈에서 눈동자를 보았다. 절망한, 어쩐지 겁에 질린 듯한
눈동자가 나오는 꿈이었다. 메이런은 그 눈동자들을 바라보다가 잠에
서 깨어났다. 어쩐지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메이런은 4과 사무실 옆 호송용 호버카 앞에서
아이라와 마주쳤다.
"잘 잤어?"
아이라가 조심스럽게 메이런에게 물었다. 메이런은 몸을 좌우로 흔
들면서 허리를 풀고 있었다.
"포로하고 함께 자는 건 생각만큼 나쁜 일이 아니더라고. 생각해 봐.
차도 비좁고 자리는 야전침대야. 거기다가 장갑복으로 무장한 병사가
4교대로 지켜주니 얼마나 편하겠어?"
메이런의 말을 다분히 비꼬는 투였지만 아이라는 받아들였다.
"며칠 고생 해. 다 잘 될 거야."
뭐가 잘 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되었건 메이런과는 별
상관이 없는 말인 듯 싶었다.
"이런 거라고 미리 말 좀 해 주지 그랬어?"
"군대가 다 그렇지. 네가 이해해. 전투부대에서 빠져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지 않아?"
아이라는 차갑게 말했다. 가볍게 농담처럼 해 본 소리겠지만 메이런
은 예사롭게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 덕이란 거야?"
메이런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이라는 뭐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로웰 중령이 나타났던 것이다. 로웰 중령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라에게 날카로운 눈길로 주의를 주고 있
었다. 아이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는 어땠어요?"
로웰 중령이 물었다.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두통이 없습니다."
"미싱은 걱정하지 말아요. 일리야 중위에게 오후에 오라고 했으니
까."
"여기는 보안 구역 아니었던가요?"
메이런이 물었다.
"4과 사무실이 보안구역이죠. 여긴 아니거든요."
로웰 중령이 호송용 호버카를 손바닥으로 탕탕 소리가 나도록 치면
서 말했다.
"자! 그럼 일을 시작합시다."
로웰 중령은 상당히 서두르는 눈치였다. 메이런은 그런 로웰 중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웰 중령이 지금껏 메이런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고 다그치지 않으며 부담감을 준 후에 바로 이런 식으로 급하게 일
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다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
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그런 과정을 거
치지 않고 메이런에게 급하게 일을 진행할 것을 강요한다고 해도 메이
런은 어쩔 수 없을 거였다.
메이런은 군인이었다. 아무리 비표 R을 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호야미와 메이런은 다시 심문실에 앉았다. 호야미는 여전히 겁에 질
린 얼굴을 하고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로웰 중령은 아무 말
도 하지 않고 메이런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메이런은 고개를 돌려
양면 거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메이런의 얼굴뿐이었
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분명 아이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
다.
메이런은 호야미의 얼굴을 평심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호야
미는 메이런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메이런은 느낄 수 있었다. 호야미
는 분명 뭔가 강렬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
려울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었다. 메이런은 그 욕망이 무엇인지 느껴보
려고 했다. 그것은 메이런에게도 친숙한 욕망이었다.
마음을 따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그 무엇이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구체적이지 않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붙잡을 수 없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언어라는 벽으로 마음을 가두고 나서야
그 마음은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생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뜨거워요. 아주 뜨거워요."
메이런은 이렇게 말했다. 로웰 중령은 몹시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메이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
자체는 쉼 없이 추진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 자체에 있어서는 그리 서
두르지 않는 로웰 중령이었다.
"어떤 뜨거운 것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메이런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단어로 지금 느끼고 있는 호야미
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애써 보았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호야미의 마
음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있으면 느낄 수 있다. 그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
으면 모두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옮기려 하면 그것
은 더 이상 그것이 아니게 된다.
메이런은 답답했다. 강제 트랜스건 뭐건 간에 이런 식으로 일을 계
속해 나가는 건 결코 유쾌한 작업이 되지 못할 거였다.
"좀 쉬었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메이런이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로웰 중령은
그러라고 하기는 했지만 메이런이 왜 힘들어하는지 통 모르겠다는 듯
한 눈치였다.
"메이런. 아무래도 쉬는 것 보다 뭔가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 시점
같아요."
로웰 중령은 업무감각은 있는 장교였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
식하고 있었고 아울러 부하의 한계도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일리야 중위를 부르죠. 괜찮겠어요? 혹시 두통이 나거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언젠가 한 번 겪었던 일 같다거나 하지
는 않나요?"
로웰 중령이 연이어 메이런에게 물었다. 메이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좀 피곤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로웰 중령은 이렇게 말하곤 심문실을 빠져나갔다. 메이런은 로웰 중
령을 말리고 싶었다. 일리야 중위가 온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거였다. 일리야 중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을 거였
다. 게다가 일리야 중위를 다시 보게 된다는 건 메이런이 뭔가 어긋나
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그럴 수
없었다. 실제로 뭔가 어긋나고 있었고, '거의'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해
도 지금 상황에서 메이런이 기댈 수 있는 건 일리야 중위뿐이었다.
로웰 중령이 나가버린 심문실에는 메이런과 호야미 둘만 남게 되었
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건지도 몰라, 호야미."
이름을 부르자 호야미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시금 호야미에게서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메이런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에 앉
아 있는 포로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 메이런은 문득 자신이 어마어마
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이런은 아무 생각
없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살짝 내리쳤다. 그러자 호야미는 화들짝 놀라
며 안절부절못했다. 메이런은 웃음이 나왔다. 입술 끝이 자꾸만 올라가
고 있었다. 멈추기 어려운 쾌감이었다.
"병신 새끼."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깜짝 놀랐다. 어쩐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던 것이다. 메이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
셨다. 메이런이야 말로 공포심을 느꼈다. 타인에 대한 공포가 아닌 자
기 자신에 대한 공포였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
운 그림자를 대하는 기분. 메이런은 왜 자신이 이런 악귀와도 같은 끔
찍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간밤에 꾸었던 눈동
자가 떠올랐다. 공포심으로 가득한 눈동자. 메이런은 쉽게 입을 열 수
가 없었다.
호야미는 그저 어리둥절한지 눈을 껌뻑이며 메이런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메이런은 성난 음성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호야미는 순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가 다시 놓았을 만큼 놀랐다. 메이런은 호야미를 바라
보았다. 호야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쾌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야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미안해."
메이런이 말했다. 호야미는 메이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런은 문
득 쿨란을 떠올렸다. 쿨란은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메이런에게 알려 준 적이 있었다. 지금 또한 그런 상
황이었다. 호야미는 메이런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 담고 있
는 마음은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럴 경우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닌 하
나의 상징으로 전달되기 마련이다. 말이 말이 아닐 때 보다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메이런은
알 수 없었다.
메이런은 호야미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말야. 내가 이
상한 걸까? 어제 너하고 트랜스 한 이후로 계속 이래. 빌어먹을. 뭔가
가 잘못되어 가고 있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지금 혼
잣말을 하고 있는 건가? 네가 듣고 있으니까 혼잣말은 아닐 거야. 혼
잣말을 하는 게 미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젠
장.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혼잣말은 혼잣말이지. 빌어먹을."
메이런은 이렇게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호야미는 그런 메이런을 물
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메이런은 호야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
고 뒤이어 양면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아이라는 지금 자신을 관
찰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메이런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이 마치 타인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눈동자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간밤에 꿈에서 보았던 눈동자였다. 마치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동
자였다. 그 눈동자가 담고 있는 마음은 공포도 절망도 아니었다. 공포
라고 이름지으면 공포일 수밖에 없고, 절망이라 이름 지으면 절망일
수 밖에 없다. 그 감정은 공포도 절망도 아니었다.
메이런은 그 눈이 어떤 눈인지 알고 있었다. 완전한 절망. 더할 나위
없는 공포. 끝없는 슬픔... 이것은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보이는 눈이
다. 탄약이 떨어졌을 때 보이는 눈이다.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보이는 눈이다. 항복 할 수 없다는 소대장의 말을
들었을 때 보이는 눈이다...
메이런은 호야미의 기억이 순식간에 자신에게 전이되는 것을 느꼈
다.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달을 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
금까지 분명하게 느끼기 어려웠던 호야미의 뜨거운 감정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28
그것은 살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살고 싶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죽고 싶지 않아. 미루 -가 누구인지 메이런은 알아 버렸다- 처럼 죽
고 싶지 않아. 명예 따위 버려도 좋아. 생각하고 싶어. 아프기 싫어. 움
직이고 싶어. 어두운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
이 뜨거운 감정을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이 모든 마음
은 단순히 살고 싶다, 는 말 이상의 감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메이런
은 이 감정을 어떻게 달리 표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으악!"
메이런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끝없이
몰아칠 것만 같던 호야미의 기억은 더 이상 밀려들지 않았다. 메이런
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호야미 역시 당황한 모양이었다.
메이런이 느낀 감정을 호야미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메이런은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메이런의 손이 분명했다. 잠
시였지만 메이런은 자신의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호야미의 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메이런!"
아이라가 메이런을 부르며 심문실로 들이닥쳤다. 메이런은 괜찮다고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리 쉽게 되지는 않았다.
"메이런, 어떻게 된 거야?"
"아냐, 아냐..."
메이런은 아이라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일어서면서 말했다.
"정통정부군의 취침나팔 소리를 알아?"
엉뚱한 질문이었다. 아이라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메이런을 바라보
았다.
"취침나팔을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건 정통정부군의 정예군인 뿐이
야. 나머지는 그냥 잠들지. 그런데 말야, 정통 정부군이 죽으면 무슨
나팔을 부는지 알아? 취침나팔이야. 정통정부군은 결코 죽지 않아. 말
하자면 불사(不死)라는 거지. 왜냐고? 취침나팔을 들으며 장례식을 치
르니까. 취침나팔을 들으며 잠든 군인이 아침이 되면 일어나듯이, 취침
나팔을 들으며 죽은 병사는 다시 일어나 영원히 살게 되는 거야. 살아
있을 때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아무렇게나 말하는 듯 주절거리는 메이런을 향해서 아이라는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겠다는 거야?'하고 묻는 듯한 얼굴을 했다. 메이
런은 호야미를 바라보았다. 호야미는 웃고 있었다. 메이런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아 내려가는 걸 느꼈다. 그 웃음은 정상적인 웃음이 아
니었다. 그것은 광인의 웃음이었다.
"나가자. 나가서 기다리자, 메이런."
아이라가 메이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메이런은 이번에는 잠자코
아이라를 따랐다. 더 이상 심문실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심문실을 나설 때, 메이런은 광인의 미소를 짓고 있는 호야미가 안
도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불안감을 준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포로라 해도 그것은 마
찬가지이다. 이것이 보통의 휴먼 레이스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
만 조금 전 메이런은 그런 불안감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메이런은 이러한 자신의 양면성에 두려움을 느꼈다.
로웰 중령이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리야 중위는 그야
말로 순식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메이런이 호야미의 기억을 받아들
이는 동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메이런이 밖으로
나갔을 때, 로웰 중령은 일리야 중위와 함께 서 있었다.
4과 사무실은 제한구역이었기 때문에 메이런은 일리야 중위를 만나
기 위해 어차피 사무실 밖을 나서야 했다.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일리야 중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예."
메이런은 일리야 중위의 눈을 피하면서 짧게 대꾸했다. 일리야 중위
는 숙련된 트랜서였다. 자신의 기분쯤은 훤히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
다.
"자.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로웰 중령이 웃는 얼굴로 일리야 중위를 보며 말했다. 로웰 중령은
일리야 중위를 위해 직접 호송 차량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일리야 중위
와 메이런은 호송 차량에 오른 뒤, 야전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야기들 나눠요. 난 일이 좀 있어서."
로웰 중령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호송차의 문이 닫힐 때, 메이런은
아이라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자. 어떻게 된 거죠?"
일리야 중위가 물었다.
"호야미의 기억이 저한테로 왔어요."
메이런이 말했다.
"완전하게 넘어 온 건 아니지만, 호야미의 기억이 나한테 넘어왔다
고요. 이런 적은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일리야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한다는 건지 아
니면 그냥 이야기를 계속 해 보라는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해요... 지금 군에 입대할 때의 기억이 떠올라요. 아버지가 지원
서를 내밀었고, 나는 도망쳤어요. 그리고 일 주일 뒤에 집으로 돌아갔
고, 거기서 아버지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고, 다시 도
망치려고 했지만, 결국 훈련소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자신의 기억과 호야미의 기억을
혼동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놀란 눈으로 일리야 중위를 바라보았다.
일리야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일리야 중위가 메이런의 마
음을 완전히 읽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말한 그대로예요."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메이런은 뭐가 그렇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
지만, 일단 일리야 중위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로웰 중령의 이론이 맞았어요. 보통 트랜서들은 이렇게까지 구체적
으로 상대방의 기억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래서 미싱이 되곤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메이런은 완벽하게 미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을 터득한 거예요. 끊임없이 트랜스를 해야 하는 다른 트랜서들과는
달라요."
일리야 중위의 목소리는 조금씩 격앙되고 있었다.
"강제 트랜스. 로웰 중령님이 처음 말했을 때, 그게 이론적으로는 가
능해도 정말 실제로 가능할까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메이
런은 그 이론을 증명한 거예요. 상대방의 기억을 트랜스 된 공간에서
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공간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일리야 중위는 웃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야! 메이런! 아마 메이런의 이름은
트랜서의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거예요. 트랜서의 백과사전이 만들어
진다면, 강제 트랜스 항목에는 메이런의 사진이 붙게 될 걸요?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일리야 중위는 이렇게 말하고는 큰소리로 껄껄대며 웃었다. 그 소리
를 들은 로웰 중령과 아이라가 호송차로 들어섰다.
"로웰 중령님. 축하드립니다. 성공이에요. 이건 강제 트랜스라고요!"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하지만 로웰 중령은 기뻐한다거나 하지 않았
다. 오히려 당황하는 눈치였다. 호야미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바람에
메이런은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덕분에 메이런은 지금 무슨 일이 벌
어지고 있는지 쉽게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일리야 중위."
로웰 중령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이 뭔가를 숨기려는 것처럼 낮고
빠르게 일리야 중위를 불렀다. 일리야 중위는 그제서야 입가에서 웃음
이 사라졌다.
"린..."
메이런이 말했다.
"그리고 그 꼬마 트랜서..."
메이런은 말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웰 중령과 일리야 중
위는 숨을 죽이고 메이런을 주목했다.
"그리고 키티-본."
메이런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메이런? 왜 그래? 괜찮아?"
아이라가 메이런에게 물었다. 일리야 중위와 로웰 중령은 동시에 아
이라를 바라보았다. 둘은 아이라가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있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린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겠어요. 그리고 그 꼬마 트랜서도... 맙
소사. 당신, 날 속였..."
메이런은 말을 끝까지 맺을 수 없었다. 일리야 중위가 말을 끊었던
것이다.
"속인 거 아니에요."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끝없이 트랜스를 하는 것만이 미싱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메이런은 미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거고
요. 지금까지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이런 게 가능하리라고. 메이런이
처음이에요."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하지만 메이런은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다.
"린이 그렇게 불안해 보였던 이유, 그리고 그 꼬마 트랜서가 그랬던
이유, 다 같은 이유였어요. 기억이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타인의 기억
이 자꾸 침범해 들어와서 그랬던 거예요. 지금 나처럼."
메이런은 이번에는 말을 끝맺을 수 있었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
다.
"일리야 중위님. 당신은 그림자를 지우는 방법을 말했죠? 그건 거짓
말이었어요. 그림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림자를 잃는 거잖아요. 하
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메이런이 말했다. 일리야 중위는 뜻밖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요? 미싱 된 트랜서는 아무 소용도 없
지만 숙달된 트랜서는 국가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원이 되죠. 메
이런에게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없어요. 둘 중 하나죠. 미싱 되느냐, 아
니면 훌륭한 트랜서가 되느냐."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메이런."
이번에는 로웰 중령이 일리야 중위의 말을 이었다.
"메이런이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우리 행성 어스 전체를 위한 일이에
요. 그리고 모든 트랜서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이번 전쟁에
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강제 트랜스
를 할 수 있는 트랜서를 발견한 거라고 하겠어요."
로웰 중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메이런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메이런
은 그 손을 매섭게 뿌리쳤다.
"행성 어스를 위하는 일이라고요?"
"정확하게는 휴먼 레이스 전체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로웰 중령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로웰 중령은 믿고 있었다. 메이
런과 함께 하는 일이 진정으로 행성 어스와 휴먼 레이스 전체를 위하
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마음에는 권력이나 혹은 돈같은 천박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런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죠? 나는 행성 어스나 휴먼 레이스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메이런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메이런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르카 미츄.
메이런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옮기자
면, '내 죄를 사하소서'에 가까운 뜻이 될 거였다. 메이런은 이 말이나
로웰 중령의 말이나 똑같이 여겨졌다. 죽은 미루는 죄가 없었다. 그리
고 메이런은 행성 어스나 휴먼 레이스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메이런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거죠?"
이번에는 일리야 중위가 메이런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 세상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거죠? 메이런. 당신이 하는 일은 그럼 뭐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서 살고 있는 건가요?"
일리야 중위가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유하듯 물었다.
"달리기 위해서."
메이런이 말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라고 대답했어도 같은 의미
를 가질 대답이었다. 아니, 어쩌면 살아지기 위해서, 라고 대답했어도
같은 의미를 가졌을지 모른다. 메이런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마음은
말로 표현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는 걸.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29
"아이라."
메이런은 아이라를 바라보았다. 아이라의 얼굴근육이 긴장되고 있었
다.
"네가 날 속일 줄은 몰랐어. 미리 얘기 해 주지도 않고..."
"나, 나도 몰랐어. 그리고 말했듯이 말야, 그러니까... 전투부대보다...
전투는 없잖아? 안 그래?"
"차라리 전투가 더 낫겠어!"
메이런은 이렇게 소리치며 호송차에서 뛰쳐나갔다. 아이라는 황급히
메이런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메이런은 아이라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메이런은 마치 날쌘 바람처럼 재빨리 호송차를 빠져나가
버렸다.
"그만 둬요."
막 메이런을 뒤따르려는 아이라에게 로웰 중령이 말했다.
"돌아 올 거예요.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요?"
"예.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죠.
일리야 중위가 덧붙였다. 아이라는 로웰 중령에게 다가갔다.
"메이런이 한 말, 사실입니까?"
아이라가 물었다.
"무슨 말을 말하는 거죠?"
"기억에 대한 말이요. 정말로, 기억을 잃게 되나요?"
"아이라 대위, 잘못들은 모양이군요."
일리야 중위가 대답했다.
"기억을 잃는 게 아니에요. 타인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혼동하게
된다는 거죠."
"일리야 중위님. 그럼 어떻게 되죠? 타인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혼동하게 된다면."
"린 중사를 데리고 있지 않았나요?"
일리야 중위는 알면서 왜 묻냐는 투였다. 아이라는 어이가 없었다.
"로웰 중령님.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로웰 중령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도 미리 알 수는 없었어요. 이론만 있었을 뿐이죠."
"그럼 다른 트랜서하고 강제 트랜스를 한 메이런은 어떻게 다른 건
가요?"
"천천히,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것과 단번에, 아주 효율
적으로 진행되는 차이겠죠. 앞으로 연구해 봐야 할 대상이니까요."
아이라는 뭐라고 말을 해야 효과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
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라는 화가 났다. 아이라는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휴먼 레이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도대체 메이런을
뭘로 본 거죠? 실험도구? 실험용 생쥐?"
아이라는 로웰 중령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로웰 중령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이라. 뭔가 착각하고 있군요."
로웰 중령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말하는 투였다.
"이건 전쟁이에요, 아이라. 전쟁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끔찍한 거예
요.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어
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반란군들처럼 전쟁에 반대하는 게 좋을까요?
현실성도, 실현가능성도 없는 꿈이나 꾸면서? 천만에요. 전쟁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고, 그렇다면 전쟁을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중요
하죠."
로웰 중령의 말에 일리야 중위는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깊게 끄덕
였다.
"로즈웰 레이스가 왜 강한지 알아요? 그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잘 알
고 있어요.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개입하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일으키
면서 그들은 전쟁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들의 과학? 그들의 기술? 대
부분 전쟁을 통해서 발전시키고 개발시킨 거예요."
로웰 중령은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따라잡아야 해요. 이건 행성 어스를
위한 일이고, 또한 휴먼 레이스 전체를 위한 일이죠. 내가 하는 일도,
또 아이라가 하는 일도 그것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있는 거예요. 이
해가 가나요?"
아이라는 로웰 중령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이렇게 끔찍한 일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한 탓이었다. 정말 이런 과정을 통하는 것만이 로즈웰
레이스를 따라 잡는 일일까? 이런 희생을 치러야만이 행성 어스와 휴
먼 레이스는 발전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로웰 중령의 말을 받아들
이려고 해도 아이라는 메이런에게 큰 빚을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메이런을 기무사로 끌어들인 건 아이라였다.
"저 친구는 더 써먹기 힘들겠죠?"
로웰 중령이 물었다. 아이라는 처음에 메이런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곧 '저 친구'가 심문실의 호야미를 뜻한다는 걸 알
아차릴 수 있었다.
"예. 너무 약해진 것 같았습니다."
일리야 중위가 말했다.
"다른 포로를 데리고 오죠. 메이런도 조금 씩 더 나아 질 겁니다."
"물론이죠. 빨리 진행합시다."
"아이라는 사무실에서 대기해요."
로웰 중령은 아이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로웰 중령은 강제로 일을 진행하는 무식한 군인 타입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호송차량은 호야미와, 또 다른 정통정부군 포로들을 싣고 수용소를
향해서 출발했다. 아이라는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하늘은 무척이나 맑
았다.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라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메이런
은 기무사의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지금껏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건물
들이 모두가 어떤 희생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니
어쩐지 두려워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메이런과 마찬가
지로 희생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싶었다.
아이라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 메이런은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채. 바람이 메이런의 귓가를 스쳐 뒤로 달아나고 있었다.
위장을 위해 심어놓은 나무들이 메이런의 곁을 스쳐 뒤로 사라지고 있
었다.
한참을 달린 후에야 메이런은 자신이 여전히 기무사 영내에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뛰었어도 기무사 영내의 위장식수를 한
인공 숲 안이었다. 아마도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뛴 모양이
었다.
트랜서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해. 어머니 말을 들었어야 했어. 아버
지가 그랬다고 했어. 젠장. 어느 아버지가 그랬지? 내가 아버지를 기억
하기나 해 본 적이 있었나? 도대체 누가 진짜 아버지야?
메이런은 숨이 차서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의 산소가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당장은 손끝하나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메이런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
란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메이런은 눈이 부셨다.
"살아야 해."
한참을 숨을 고르고 있는 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메이런이 물었다.
"너하고 나."
목소리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데?"
메이런이 물었다.
"살아있으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달려가는 거야. 아까 말한 그대로야. 달려가는 거야. 뭘 위해서 한
다던가 하는 이유 같은 거, 그런 거 없어. 그냥 달려가는 거야."
메이런은 혼잣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상대
방에게 알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메이런은 단어가 담고 있
는 마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듣는 공
습 경보는 비현실적이다. 메이런은 오래간만에 전투의 비현실적인 광
경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오는 거야.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목소리가 말했다. 메이런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통정부군은 무엇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겨. 명예를 지킨다면 전쟁
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 이 폭격은 반드시 명예를 지
켜 줄 거야."
"누구의 명예지?"
메이런이 물었다.
"나의 명예, 포로들의 명예, 정통정부군의 명예."
목소리를 듣는 사이, 메이런은 어느 새 숨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
다. 메이런은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가까운 벙커로 대피해야 해. 그렇게 배웠거든."
"그렇게 하지 마."
목소리가 충고했다.
"살아날 방법을 찾아 봐. 틀림없이 있어. 살아날 방법은."
메이런은 목소리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좌우를 살펴보았
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멀리 보이는 기무사 건물들과 연락선 스테이
션의 위병소뿐이었다. 메이런은 자신의 군복에 붙어 있는 부대마크를
가리켰다.
"이건 기무사에서 근무한다는 표식이야."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위병소를 향해 다시금 달려갔다. 위병소
를 지키고 있던 상병은 메이런을 보자 마자 경례를 붙였다.
"상병! 지금 연락선들 대기하고 있나?"
메이런이 위병 근무자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꽤 고참병사인 모양이었지만 공습경보에는 당황하고 있는 게 틀림없
었다.
"알았다."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위병소를 지나쳤다. 상병은 다시 거수경
례를 붙였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간단했다. 기무사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이런 행운을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메이런은 연락선들이 모여있는 활주로를 향해 달려갔다. 병사들이
벙커를 찾아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메
이런은 그 사이에 섞여서 어려움 없이 연락선까지 갈 수 있었다.
"저 연락선, 연료는 가득 차 있나?"
메이런이 근처를 지나고 있는 정비병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정비병은 이렇게 말하곤 다시 벙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연락선은 호버카 보다도 작았다. 빠른 속도를 위해 장갑과 무기를
장착하지 않은 까닭이다. 메이런은 휴양 콜로니에서 만났던 연락선 장
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락선 장교는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연락
선을 몰 수 있다고 했다. 메이런은 지금 그 말이 옳은지 틀린지 시험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였다.
"어디로 갈 거야?"
연락선에 올라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메이런에게 목소리가 묻는다.
"달려가는 거야."
메이런이 '출발'이라고 쓰여있는 버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교가 말한 그대로 였다. 계기판에는 다섯 개의 버튼이 있었고, 버
튼에는 바보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큰 글자가 써 있었다. 하나는 출
발 버튼, 하나는 정지 버튼. 하나는 착륙 버튼. 하나는 비상용 탈출 버
튼. 다른 하나는 자폭 버튼.
"행성 어스로."
메이런은 출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연락선은 자동으로 활주로를
달려가다가 이륙했다. 메이런은 순식간에 가슴을 압박해 들어오는 무
시무시한 속도에 눈을 감아 버렸다.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급작스러운 상승이 있었다. 메이런은 순식간에 손톱 만하게
작아져 버린 기무사령부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곧 하얗게
사라져 버렸다. 빠른 비행 때문에 메이런에게 닥친 엄청난 압력을 이
기지 못하고 피가 제대로 뇌까지 흐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메이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통정부군의 폭격기가 베가 시 상
공을 날고 있었다. 호위하고 있는 전투기들이 있기는 했지만 연락선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벗어나고 있는 연락
선을 공격하기에는 너무 느린 구식 전투기였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메이런은 연락선 장교가 메이런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일단 대기권을 탈출하고 게이트를 지나게 되면, 스테이
션 콜로니 부근에서 연락선을 멈춰라. 절대로 다른 버튼을 눌러서는
안 된다. 엔진만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구조되기만을 기다려라. 만약
민간 수송업자에게 구조된다면 성공하게 된다...
폭격기는 곧이어 폭탄을 투하하였다. 폭탄은 메이런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투하되고 있었다. 방공포대는 베가 시 근처에 모여있는
사령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폭격기가 노리고 있는 곳은 사령부와는 전
혀 관계가 없는, 예전에 강당이나 체육관으로 쓰였고, 지금은 포로 수
용소로 쓰이고 있는 곳이었다.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고르카 미츄... 메이런은 중얼거
렸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메이런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단독 비행을 더 이상 즐길 수 없었다.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난생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의식
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제 목:[하이어드] Soldier of fortune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