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에필로그
락벳 군의 폭격기가 이렇게 대규모로 베가 시를 덮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해방정부군이 정통정부군의 포로를 이렇게
한곳에 수용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자, 해방정
부군의 방공포대는 일제히 가동을 시작했다. 베가 시에 모여있는 군사
령부와 군단 사령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폭격기가 노린 곳
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폭격기들은 일제히 폭탄을 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강당에 투하
하였다. 운동장이나, 가끔 열리는 시 행사를 위해 쓰이는 이 쓸모 없는
공간에 폭탄을 투하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포로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론이었다.
아이라는 로스와 함께 앉아 있었다. 영관급 장교들이 자주 찾는 까
페의 밀실이었다.
"그래서 린은 포기하기로 한 거야?"
로스가 물었다.
"어차피 내가 데리고 있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니까."
아이라가 말했다. 아이라는 차가운 물을 주문했고, 투명한 물은 아이
라의 숨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입양되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트랜서로 써먹던가 하겠지."
"매정하구나."
로스가 말했다. 로스의 말속에는 아이라에 대한 원망도 담겨 있었다.
"어차피 휴먼 레이스는 매정한 거야."
아이라가 말했다.
"그런데 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어?"
로스가 아이라에게 물었다.
"로웰 중령도 죽었고, 더 이상 여기 있어봐야 소용없으니까."
"다시 수사관으로 돌아갈 거지?"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로 복귀할 거니까."
"나하고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로스는 율리스 대령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피했다.
"그런데 다시 경찰 생활을 하려면 린이 필요하지 않아?"
"린이 필요한 수사관은 현장 수사관이야. 나는 이제 관리직에 올라
야지. 내가 1년을 근무한 경찰과 똑같은 일을 한다면 경찰로서는 큰
손해 아닐까?"
아이라의 말에 로스는 웃기는 했지만 그렇게 유쾌해 보이는 웃음은
아니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
아이라가 말했다.
"결혼해 달라는 거야?"
아이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메이런, 기억하지?"
"응. 공습 때 탈영했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
"전사망자로 처리 해 줘."
아이라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메이런은 기무사 소속이야, 지금은."
"내가 군사령부로 다시 돌려 놨어. 오늘 중에 서류가 갈 거야."
"그 친구 운 좋군."
로스가 말했다.
"좋은 친구를 둬서 말이야. 죽어서 멀쩡하게 돌아다닌다. 그것 참 부
러운 일이군."
"비꼬지 말고. 들어 줄 거야?"
"이유나 알자. 왜 그렇게 하는 건데?"
로스는 질투 어린 음성으로 아이라에게 이렇게 물었다.
"메이런한테는 빚을 졌어. 그걸... 갚고 싶어."
아이라는 로스의 눈을 피해서 말했다. 컵에 담겨 있는 차가운 물은
투명했다.
"뭔진 몰라도 진심이구나."
로스는 아이라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쩐지 아이라를 괴롭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수사관으로 돌아가게 된 거 축하해. 일루젼이라도 한 잔 살
까?"
"아니. 오늘 마시면 취할 것 같아."
아이라가 말했다.
"그냥, 내 이야기나 좀 들어 줘."
"그래. 그러지 뭐. 어차피 이 빌어먹을 전쟁도 머지 않았으니까 말이
야."
로스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소문을 말했다. 이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은 군부대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소
득을 올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로즈웰 레이스
가 손을 뗄 것이라는 소문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해방정부군은 이제 사라지겠지. 정통정부군이 이길 거야."
"그건 애당초 예상 된 거였어."
로스가 말했다.
"전쟁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 지금 이
전쟁도 그래. 우리 교본을 읽어보면 말이야,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
는 적은 일시적으로 점령할 수는 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는 없다고
나와."
"교본에 나오는 말을 믿는 줄은 몰랐는데."
"교본이라고 다 틀린 말만 적혀 있겠어?"
로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웃었다.
"나, 생각이 바뀐 것 같아."
아이라가 말했다.
"그래? 내 청혼을 받아주기라도 한 거야?"
"그만 둬, 그런 농담."
아이라가 말했다.
"일루젼 한 잔 해야겠어. 사줄래?"
로스는 테이블 밑에 있는 벨을 눌러 웨이터를 불렀다.
"취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오래간만이야, 이런 기분."
아이라가 말했다.
"메이런을 위해서 건배하자고."
로스가 말했다.
밀실의 공기는 탁하기만 했다.
메이런은 콜로니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엔진은 정지되었지만 관성에
의해 연락선은 우주 공간으로 놓고 본다면 아주 느린 속도로 콜로니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속도로 계속 비행한다면 대략 263년 뒤에
는 콜로니에 도착할 수 있다고 계기판이 말해 주고 있었다.
메이런은 이제 누군가가 이 연락선을 발견해서 구조해 주기만을 기
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메이런이 멈추어 선 곳은 군의 정찰 범위는 아니었다. 드물지 않게
게이트와 콜로니 사이를 오가는 수송선들이 있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그들에게 구조될 수 있을지 몰랐다.
구조된다면 먼저 밀입국 브로커를 찾아 봐야지.
메이런은 지난 며칠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천 번씩은 했을 계획
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서 행성 어스로 돌아가는 거야. 푸우순 시는
곤란해. 날 기억하고 있는 존재들이 버티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어
디로 가지? 남쪽이 좋을 거야. 따뜻하니까. 남쪽에는 락벳 행성처럼 돔
이 없는 도시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뭘 해서 먹고살
아야 하지?
메이런은 이렇게 몇 번이고 했던 생각을 다시 하고, 다시 또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목소리'가 메이런을 돕지 않았다면 메이런은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메이런은 가끔 자폭 버튼과 비상 탈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보곤
했다. 그것은 긴장감을 주었다. 둘 중 어느 버튼을 누른다고 하더라고
연락선은 순식간에 폭발해 버릴 거였다. 메이런은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리고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걸 누르면 끝나는 거야."
"끝내고 싶어?"
"모르겠어."
"정말로 누를 생각은 아니겠지만,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긴장감을
주니까. 삶에는 항상 긴장이 필요하지."
"동감이야."
"동감이야."
이런 식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상식량이 다 떨어지고, 이대로 우주공간
에서 연락선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 즈
음이 되었을 때, 메이런은 수송선 한 척에 의해 발견되었다. 수송선이
콜로니 근방을 지나는 빈도를 생각해 본다면 대단히 늦게 구조된 것이
었다.
수송선은 간단하게 무전으로 메이런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트랙터
빔을 이용해서 메이런의 연락선을 나포하듯 끌어들였다. 트랙터 빔이
메이런의 연락선을 끌고 갈 때, 메이런은 수송선에 군인들이 타고 있
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군인이로구먼."
연락선의 해치를 열자 통나무 같은 목을 지닌 거한이 메이런을 맞으
며 말했다. 메이런은 일단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쩌다가 여기에 떨어지게 된 건가? 미사일이라도 맞은 거야?"
"아뇨. 그냥 엔진을 세운 겁니다."
"병역기피자야?"
수송선의 주인은 이렇게 말하곤 껄껄 웃었다.
"혹시 불법적인 일을 해 본 적 있으십니까?"
메이런은 연락선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내 셔틀에 타면서 그렇게 말한 건 자네가
처음일세."
"이 연락선, 분해해서 가지시던가 아니면 버리세요."
메이런이 말했다. 수송선의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꺼운 목 위
에 달려있는 얼굴이 움직이는 모습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 내 알아서 함세. 또 필요한 거 있나?"
"브로커가 필요합니다. 행성 어스로 밀입국 할 수 있게 해 주는 브
로커요."
"음. 미안하지만 그런 브로커들은 다 없어졌어."
뜻밖의 말이었다. 콜로니에 브로커들이 없어졌다는 건 예상할 수 없
는 일이었다.
"전쟁이 끝났거든. 출입국은 아주 자유로워졌거든."
"전쟁이... 끝났다고요?"
"꽤 오래 표류했나 보구먼. 며칠 됐어. 주둔군은 완전 철수를 시작했
고, 덕분에 콜로니는 늘 만원이지."
메이런은 허탈감을 느꼈다. 굳이 이렇게 위험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
어도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하고 며칠 이 수송선을 타지 않겠어? 보수는 주지. 보아하니 탈
영병 같은데, 나하고 있는 편이 안전할 거야. 군인들 철수가 끝나고 콜
로니가 좀 한산해 지면 같이 행성 어스로 가자고."
"저는 메이런입니다."
"소위?"
메이런의 계급장을 가리키며 수송선의 주인이 말했다. 메이런은 전
투복을 벗어 던졌다.
"그냥 민간인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수송선의 조종사는 껄껄대며 웃었다. 목이 굵어서 그런지 웃음소리
도 우렁차게 들려왔다.
"나는 델라이스, 숀 델라이스라고 해. 가니메데하고 행성 어스를 오
가는 수송선을 몰지."
"반가워요, 델라이스."
메이런은 델라이스의 손을 맞잡았다.
"혼자 일하기 따분했는데 잘 됐군. 식량도 넉넉하니까 걱정 마. 그런
데, 행성 어스로 돌아가면 어디 갈 곳이라도 있나? 없다면 말야..."
문득 메이런은 피아노바의 조이스를 떠올렸다. 피아노바의 조이스는
메이런에게 데자뷰를 연주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라디오는 이제 행성 어스에서 많이 듣지요? 제가 군에 입대할 때만
해도 막 퍼지기 시작하는 단계였는데..."
"아니. 라디오를 누가 듣는다고 그래?"
델라이스가 말했다.
"그럴 줄 았았어요."
메이런은 라디오는 그저 한 때의 유행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텔레비전이 나왔거든. 소리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모습도 나온다네.
홀로그램은 아니고 2차원적인 영상이긴 하지만 아주 인기가 좋아. 라
디오 그룹에서 새로 내놨지. 라디오하고는 달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
고. 아마 이제 곧 텔레비전의 세상이 올 거야."
델라이스가 말했다.
수송선은 가니메데를 향해 다시금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메이런
이 결국 도착하게 될 지점은 가니메데가 아닐 거였다.
메이런은 잠시동안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메이런은 지금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군에 지원한 이후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Soldier of fortune편 끝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