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42화 (42/52)

1.Mortal

행성 어스에는 아직도 휴먼 레이스들이 살고 있었다.

행성 어스 통합정부는 락벳 행성에서의 전쟁이 해방정부군의 패배로

끝이 났다고 발표했다. 해방 정부군은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었으며,

그런 정부에는 그 어떠한 지원도 소용없었다는 게 통합정부의 견해였

다. 이 견해는 이전까지의 연설과 전단을 통한 홍보가 아닌 텔레비전

이라는 매체를 통해 행성 어스 전체에 전파되었다.

전쟁이 끝이 나자, 행성 어스는 유래 없는 부를 누리게 되었다. 참전

군의 어마어마한 임금의 70%는 세금으로 걷혔으며, 참전의 실질적인

배후인 로즈웰 레이스의 장비는 그대로 통합 정부군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 부는 행성 어스 전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휴란은 올해로 열 아홉 살이 되는 기자였다. 그의 심장은 세차게 뛰

고 있었고, 팔다리는 매우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과로와 그로

인해 누적된 피로 때문에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휴

란의 나이는 그런 피로쯤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나이였다.

휴란은 취재용 호버카를 타고 웨이팅하우스 시로 향하고 있었다. 호

버카에는 방송용 취재 장비들이 실려 있었고 그것들을 점검하는 것은

휴란의 몫이었다.

호버카를 몰고 있는 건 올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방송국 소속

조종사였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그렇듯 올빈도 업무에는 일체 관여

하지 않았다. 오직 목적지까지 가는 것만이 올빈의 임무였다.

"지금 웨이팅하우스 시 부근에 계시는 여러 조종사 여러분, 운전자

여러분. 열사의 사막 아래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여러분이 흘

리시는 땀 한 방울이 우리 행성 어스의 부흥을 위한 초석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웨이팅하우스 교통정보를 듣고 계십니다."

호버카에 장착되어 있는 라디오에서 교통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만 듣고 있으면 세상은 참 평화로워 보여요. 반란군의

테러 소식도 없고, 시위 소식이나 경찰의 진압 소식도 없고. 그렇죠,

올빈?"

휴란이 모처럼 친근감 있는 목소리로 올빈에게 이렇게 말을 붙여보

았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올빈은 무표

정한 얼굴로 글쎄, 하고 입 속으로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휴란은 더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치 이야기 말고, 날씨나 음악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떻습니까?"

올빈은 휴란이 자신이 했던 말을 잊어버릴 만큼의 사이를 두었다가

이렇게 물었다. 휴란은 잠시 머뭇거렸다.

"날씨가 좋네요."

올빈은 껄껄거리면서 웃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날씨 이야기라니.

휴란은 그것이 자신을 비웃는 소리 같다고 느끼면서도 따라서 웃었다.

휴란과 올빈은 1차 취재를 마치고 웨이팅하우스로 2차 취재를 나가

는 길이었다. 1차 취재는 웨이팅하우스 시 근처에 불시착한 셔틀에 대

한 취재였다. 정확하게는 취재를 마쳤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셔

틀은 이미 군부대에 의해 회수된 후였고, 나머지는 보안사항이라면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론이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세론은 군부대 취재에 있어서는 대단

한 실력을 발휘하는 기자였다. 락벳에서 실전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취

재를 감행한 몇 안 되는 기자 중 하나인 세론은 통합정부의 국방성에

도 아는 장군들이 널려있었고, 가끔은 협조를 요청하며, 또 가끔은 협

박을 하며 취재를 성사시키곤 했다. 휴란은 그런 세론이 부러웠다. 나

도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근사한 기자가 될 수 있을까? 휴란은 이렇게

생각해 보곤 했지만 꼭 그렇게 될 수도 없었고, 또한 되고 싶지도 않

았다. 휴란은 어쩌면 관리직 쪽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만약 국장이 된다면, 외압 따위에는 굴하지 않을 근

사한 간부가 될 거라는 게 스스로의 평가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 기

회가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호버카는 이제 웨이팅하우스 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웨이팅하우스

시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날

씨가 좋은 탓에 시계가 확보되어 마을은 꽤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휴란은 카메라를 들었다. 망원렌즈가 장착되어 있는 AI-14 카메라는

취재 기자의 기본 장비였다. 취재를 하지 못한 탓에 카메라에는 전혀

쓰지 않는 두 시간 짜리 비디오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휴란은 망원렌

즈의 줌을 작동하여 마을을 살폈다.

"잠깐. 속도 좀 늦춰요."

휴란이 말했다. 올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늦었습니다."

속도를 늦추라는 말을 한 시점이 늦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착할

시간이 늦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휴란은 올빈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속도 좀 늦춰요. 저기 보여요? 처음 보는 호버카인데."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며 휴란이 올빈에게 말했다. 올빈은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속도를 늦추었다.

"시경 소속 호버카입니다."

올빈이 말했다.

"시경?"

"시경 특수기동대죠."

"시경 특수기동대?"

"시경에 소속된 특수 기동대의 호버카입니다."

젠장. 그걸 몰라서 그러나. 도대체 시경 특수기동대가 여기 무슨 일

로 왔냐는 말이다. 글자만 알고 있다면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잘

난척 하긴. 하지만 휴란은 이 생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휴란은 시경 특수기동대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었다. 특수기동대

는 시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시 직할대로, 편제상으로는 시

경 소속이지만 시경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집단이었고, 구성원들도 경찰

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시에서 특수기동대를 만들게 된 것은 최근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잇단 시위들 때문이었다. 락벳의 전쟁 이후, 행성 어스의 경제는 기형

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있었고, 빈자들은

더욱 가난해 지고 있었다. 통합정부에서는 조금만 더 참아줄 것을 시

민에게 요청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시위를 통해 대답하고 있었다.

이건 웨이팅하우스 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몇 달 전 도심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 이후, 비슷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특수기

동대를 설립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휴란은 잘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좀 가봐요. 뭔가 취재할 게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늦었습니다."

올빈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휴란은 자신의 의도를 멈

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책임 질 게요. 시경 특수기동대 쪽으로 가지요."

휴란이 AI-14 카메라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마을에서는 뭔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경 특수기동대의 대원들은 마

을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는 긴장이 밧줄을

당긴 듯 팽팽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마을

의 촌장인 듯한 노인과 시경 특수기동대의 대원이 뭐라고 대화를 나누

고 있었고, 그 뒤로 마을 주민들이 성난 얼굴을 하고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휴란은 시경 특수기동대의 장비가 좀 다르

다는 걸 깨달았다.

"저 친구들, E-1라이플로 무장하고 있지 않은데요?"

"특수기동대니까."

"장비가 멋대로군요. 곤봉을 든 친구도 있고, 화약식 총들을 들고 있

는 친구도 있고. 흠. 거기에 스피어를 든 친구도 있군요. 아, 저기 누가

다가오는데요?"

휴란이 말하지 않았어도 올빈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올빈은 특

수기동대 대원의 수신호에 따라서 호버카를 세웠다.

"라디오 방송국의 휴란 기자입니다. 무슨 일이죠?"

휴란은 최대한도로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원에게 말했다.

장갑복에 헬멧까지 착용하고 있는 대원은 휴란과는 전혀 다른 투로 대

꾸했다.

"기자고 나발이고 주둥아리 닥치고 가던 길 가."

흥분된 어조였다. 휴란은 카메라를 슬쩍 숨기며 말을 이었다.

"마을에서 시위라도 벌어진 건가요? 시경 특수기동대 소속 맞지요?"

"이 새끼가 귀먹었나. 꺼지라니까!"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대원이 소리쳤다. 대원의 손에는

화약식 9밀리 권총이 들려 있었다. 대원은 그것을 위협적으로 휘두르

며 말을 이었다.

"꺼져."

간략했지만 또한 매우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챠량은 취재 차량이고, 저는 취재 기자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 그대로 방송해도 되겠습니까?"

"이 새끼가."

다음 순간 대원은 9밀리 권총을 휴란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휴란은

총구를 바라보는 순간 불알이 쑥 들어가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오줌

이 찔끔 나오는 듯 했다. 더 이상 허세를 부리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올빈. 차 돌려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휴란이 말했다. 총구

가 향하고 있는 이마가 저려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진짜 공포였다.

다음 순간 총성이 들렸고, 휴란은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 순간 대원의 9밀리 권총의 총구가 마을 쪽으로 돌아갔다. 올빈은

그 잠깐 사이를 놓치지 않고 호버카를 출발시켰다.

"꽉 잡으십시오."

휴란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총성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던 총구

에서 터져 나온 소리가 아니라 마을에서 들려온 소리임을 깨달았다.

휴란은 카메라를 들어 마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휴란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퍽, 하는 둔탁한 폭발음이 들

렸고, 휴란의 얼굴에 뭔가 뜨거운 것이 튀었다. 휴란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튀어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서 비명을 질렀

다. 조금 전까지 차를 몰고 있던 올빈의 머리가 있던 자리는 비어있었

다. 니들탄이 올빈의 머리에 명중된 것이었다. 휴란은 일단 카메라를

들고서 호버카에서 내렸다. 연이어 호버카에 화약식 총에서 발사된 탄

두와 니들탄이 쏟아졌고, 호버카는 뒤뚱거리면서 각종 탄을 받아내고

있었다. 휴란은 뛰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

다. 그저 총성이 들리고 있는 반대편으로 뛸 뿐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람. 올빈 말을 들었어야 했어. 늦었어. 늦었어.

휴란은 마을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휴란은 눈에 뜨이는 2층집으로 올라갔다. 집은 허름했고 텅 비어 있

었다. 휴란은 이곳에 살고 있는 거주자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던가 하

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2층에는 큰 창이

하나 있었다. 휴란은 그곳을 통해서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휴란은 다시 뷰파인더를 통해서 카메라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이

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며 휴란은 뉴스에 들

어갈 멘트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지금 촬영하고 있는 이 영

상을 방송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기자의 사명이었고, 동시

에 휴란의 사명이었다. 휴란을 들고 있는 카메라가 사명감만큼이나 무

겁게 느껴졌다.

멀리 군부대의 차량들이 마을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휴란은 그

차량에 탑승하고 있는 간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들이

꽤 높은 장성들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특수기동대의 간부들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곳은 웨이팅하우스 시의 한 마을입니다. 기자는 지금..."

휴란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휴란을 발견한 대원 하나가

휴란이 위치하고 있는 2층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휴

란은 카메라는 옆에 보이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서둘러서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멘트의 녹화가 끝난 후, 휴란은 일단 테이프를 뽑아낸 다음 그 자리

에 빈 테이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촬용된 테이프를 숨겨야겠다고 마

음먹었다. 대원이 테이프를 빼앗아 갈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휴란

은 테이프를 책상 밑에 밀어 넣었다. 휴란은 테이프를 바라보았다. 다

시 내가 이것을 볼 수 있을까? 휴란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달려올 때와는 달리, 대원은 어느사이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같은

제복을 입고 있는 대원은 항상 혼동되기 마련이었다. 휴란은 조금 이

곳으로 달려온 대원이 아니길 속으로 빌었다. 그 대원은 어딘지 살의

를 가득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전 라디오 방송국의 휴란 기자입니다."

카메라를 내리면서 휴란이 말했다. 대원은 9밀리 권총을 휴란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느꼈던 공포가 다시 한 번 다가왔다. 어떻

게든 말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휴란은 속으로 중얼

거렸다.

"휴란?"

대원이 물었다. 휴란은 속으로 안심했다. 뭔가를 묻는다는 건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뜻일 거였다.

"예. 그렇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죠. 알고 계시죠? 포

레스트 회장님요. 우리 웨이팅하우스 시의 시장님이시자 라디오 방송

국 사장님이요."

휴란은 꼭 농담하듯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대원은 별로 재

미가 없는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원은 다시 한 번 휴

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행은?"

"아, 저 혼자입니다."

휴란은 이렇게만 대답했다. 호버카 조종사 이야기를 했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송 장비?"

휴란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대원이 물었다.

"예. AI-14 비디오 카메라죠. 우리 라디오 방송국 기자가 가지고 다

니는 기본장비입니다."

휴란이 말하자 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대원들이 진압하고 있는 건 불법적인 시위죠? 누구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꽤 높은 곳에서 내린 지시겠지요?"

휴란은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대원에게 이렇게 물었

다. 질문을 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

런 얄팍한 수는 대원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글쎄."

대원은 이렇게 말하면서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한 번의 총성으로

느껴질 만큼 빠른 손놀림이었다.

휴란은 거대한 폭음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약실에 장전되어 있던 9밀리탄의 단두는 총신을 따라 오른 쪽으로

여섯 바퀴를 돌며 총구에서 튀어나와 초속 350미터의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탄두가 그리는 탄도는 언제나 일정하다. 따라서 탄도를

조정하여 목표물에 명중되도록 하는 일은 오직 사수에게 달려있을 뿐

이다.

두 개의 탄두는 정확하게 휴란의 가슴에 와 박혔다. 두 개의 탄두는

휴란의 갈비뼈를 부수었고, 연이어 휴란의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휴란은 그 충격으로 카메라를 놓치며 창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창 밖으로 떨어져 바닥에 닿을 때까지의 아주 짧은 순

간이었지만, 휴란은 맑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은 파란색이었

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듯 멀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휴란이 본 마

지막 풍경이었다.

휴란의 심장은 더 이상 세차게 뛰지 않았고, 팔다리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휴란의 젊은 나이로도 이겨낼 수 없는 죽음

의 그림자는 이렇게 휴란을 덮쳤고, 휴란은 더 이상 휴란이 아니게 되

었다. 맑은 하늘 아래, 휴란은 이렇게 그저 피에 젖은 살덩어리로 변해

가고 있었다. 멀리 총성이 마치 꿈결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휴란을 쏜 대원은 창문을 통하여 휴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AI-14 비디오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송신, 송신."

대원의 헬멧에 장착되어있는 무전장비가 지직거리는 잡음을 내며 목

소리를 전해왔다.

"수신."

대원이 말했다.

"상황 끝. 어떻게 할까요?"

목소리가 대원에게 물었다.

"내가 갈 때까지 대기."

대원은 이렇게 말하곤 2층 건물을 빠져나갔다. 대원은 이런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어쩐지 예전의 전장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긴. 이게 본업이니까. 대원은 이렇게 생각하며 동료들이 기다

리고 있는 곳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당신이 여기 지휘관인가요?"

상황이 정리된 마을에 대원이 도착했을 때, 대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견장에 별을 달고 있는 군장성이었다. 장군의 물음에 대원은 그

렇다고 했다. 대원의 입장에서 군인을 만나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듣던 대로군요. 시장이 아끼는 용병이라고 하더니."

장군이 말했다. 대원의 표정은 헬멧 뒤에 숨어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시장한테는 이야기 들었어요. 뒷마무리가 아주 깔끔하다고."

장군은 헬멧을 벗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원의 표정쯤은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이곳이 장군 님 섹터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여

기로 찾아오실 거라고도 들었습니다."

대원은 여전히 헬멧을 벗을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아까 봤어요. 저기 2층 건물로 들어가더군요. 기자였지요?"

장군이 대원이 들고 있는 AI-14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

다. 대원은 장군의 말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습니다."

대원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상당히 놀랐어요. 아주 빨리 일을 처리하시더군요. 어떻게 아셨죠?"

장군은 웃는 얼굴로 말을 계속이었다.

"마을 주민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뿐입니다."

대원이 말했다.

"그런 솜씨를 가진 친구라면 정말 부럽군요, 시장이. 포레스트 여사

가."

장군은 이렇게 말하면서 과장된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대원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그 친구의 임무를 다한 것뿐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

습니다."

"겸손하시군요."

대원은 잠시 멈칫했다. 아마도 불쾌감을 드러내려는 듯한 느낌이었

다.

"시장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저한테 호감을 보이실 거라고요. 그리

고 절대로 거기에 응답하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장군님께

서는 인재를 모으고 있는 중일뿐이라고."

대원의 말이 끝나자 장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이내 곧, 장군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시장이 그러던가요?"

"예. 속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내가 다른 데 욕심은 없지만, 인재를 모으는 일에는 욕심이

좀 있지요."

장군의 목소리는 꽤나 솔직 담백하다고 느낄 만큼 맑았다.

"저 같은 용병을 탐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율리스 장군 님."

대원의 목소리는 말라비틀어진 먼지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공허한

목소리는 이내 곧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산탄총으로 무장한 대원 하나가 대원에게 다가와 뭐라고 말했다. 음

어 무선 통신 채널을 이용했는지 지직거리는 잡음만이 들렸다.

"좋아요. 여기는 다 정리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지요."

율리스 장군은 이렇게 말하며 대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대원은 한

참 동안 장군이 내밀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지못해 하

는 듯 장군의 손을 잡았다. 장군은 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율리스 장군이 호버카로 돌아가 동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호버카가 사라

지자, 대원은 카메라를 부하에게 내밀었다.

"어떻게 할까요?"

"폐기해. 흔적 없이."

대원은 이렇게 말하고는 나머지 대원들을 정렬시켰다. 정렬을 마치

자 대원은 짤막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이곳에 작전본부를 마련한다. 신속하게 시작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대원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명은 모탈. 질문 있나?"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대원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모탈. 필멸자.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뜻이지. 대원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 편에서 사막의 까마

귀 한 마리가 날아와 해가 지는 방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3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행성 어스 군 제 12군단의

주둔지가 보인다. 그 뒤로는 제 7 야전군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지만

12군단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일부러 야전군 사령부 건물

을 보이지 않도록 만든 것은 아닐 테지만, 어쩐지 비밀스러운 분위기

를 풍기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제 7 야전군 사령부에는 정보 작전 인사 행정의 부서들은 물론이고

본부대, 보수대, 공병대, 헌병대 등의 예하부대들도 모여 있다. M.I도

그리 멀지 않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의 모습은 마치 밀집되어

있는 행정도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도시를 연상한다고 해도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사령부

였다. 모든 예하부대는 상시 출동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비상 대기

조가 운영되고 있었고, 게다가 정예 병력을 모아놓은 특공여단도 존재

하고 있었다. 특공여단은 언제나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출동할 수 있

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그 어떠한 사단보다도 우위에 있는 전투력

을 가지고 있었다.

큰 도시에는 예의 이러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

은 바로 언제 외계에서 올지 모르는 다른 레이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행성 어스의 통합 정부 초창기, 어스는 크고 작은 침입을 받곤 했다.

우주를 유랑하는 해적이나 망명 정부를 세우려는 반란군, 범죄자 집단,

보급품을 약탈해 가려는 모험자 등등.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대처하기

위해서 통합 정부는 큰 도시에 도시 경비대를 창설하였고, 후에는 군

부대를 주둔시키기에 이르렀다.

제 7야전군도 그런 부대 중 하나였다.

사실 이러한 부대 주둔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회에서 논란이

있었다.

제 7야전군만 해도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랩타일 레이스 용병 대대

가 침입했을 때, 제 7야전군의 특공여단은 망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침투한 랩타일 레이스 1개 대대 병력을 거의 피해 없이 전멸시킨 적도

있었고, 여러 레이스로 이루어진 연합 해적이 침입해 왔을 때에는 방

공포대의 위협 사격만으로 격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만티

드 레이스의 부대가 푸우순 시에 침입했을 때, 군은 침묵했다. 이를 두

고 의회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군대'라는 말로 비아냥거렸

고, 군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전쟁은

피할 수 있을 때는 피해야 하는 흉사'라는 말로 대응하곤 했다.

어찌되었건, 거대한 도시 규모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

함이 없었다.

제 7 야전군 사령부 경비연대의 지르콘 소위는 위병소 경비 근무 중

이었다. 위병소 근무라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보면 되는 일이

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군대에서는 보안 문제 때문에 돌려서 신호를 보내

는 방식의 구형 전화기를 쓴다. 지르콘 소위는 턱으로 위병 근무 사병

에게 신호를 보냈다. 대신 받으라는 거다.

"통신보안 사령부 위병소 상병 포코스입니다."

정확하게 듣지 않는다면 '통시...인 포코스입니다'라고 들리는 빠른

말이었다. 다음 순간 상병의 허리가 곧추선다.

"예! 알겠습니다!"

상병은 소리치듯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지르콘 소위 님. 관사입니다. 사령관님 오신답니다."

전투화를 벗어놓고 위병소의 책상 위에 양발을 올려놓고 있던 지르

콘 소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투화 끈을 매었다.

"휴우. 요즘엔 출근도 안 하더니만 하필 내가 근무서는 날..."

지르콘 소위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령관 님, 락벳 전선에서 근무하셨다던데요?"

"요즘은 똥별이라도 달려면 락벳은 갔다 왔어야지. 우리 특공 여단

장도 락벳 출신 아닌가?"

포코스 상병이 히죽거리며 한 말에 지르콘 소위가 옷매무새를 바로

하면서 대꾸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령관도 자기 관등 성명을 댈까요, 지르콘 소위

님?"

"장군들은 우리처럼 관등성명 대지 않아."

지르콘 소위가 말했다.

"얼마 전에 시장이 왔을 때 경비 안 섰나?"

"비번이었습니다."

지르콘 소위는 운 좋았군, 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때 특공 여단장이 시장을 안내했는데 '예, 특공 여단장입니다',

이러더라고. '예! 준장 율리스!' 하는 식으로 관등성명 대지는 않던데."

"그렇군요."

포코스 상병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포코스 상병과 지르콘 소위는 동갑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르

콘 소위는 아카데미 출신의 정예 장교이고, 포코스 상병은 마을 출신

의 지원병이라는 차이 뿐이었다. 계급이 있으니 위계는 지키고 있었지

만 실상 둘은 거의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자. 준비하지."

"예, 지르콘 소위님."

포코스 상병은 위병소에서 나와 병사들을 정렬 시켰다. 위병소에 근

무하고 있던 일곱 명의 병사들은 2열로 정렬해서 섰다. 지르콘 소위는

위병소 벽에 세워 두었던 E-1 빔라이플을 들고 정렬한 병사들 한 가

운데에 섰다.

"얼마나 걸릴까?"

"관사라고 했으니까, 아마 1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지르콘 소위는 고개를 끄덕했다.

정확하게 1분 뒤, 사령관이 타고 있는 호버카가 위병소를 향해 위풍

당당하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버카에는 사령관이

타고 있음을 알리는 붉은 색 4성 성판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한낮

의 햇빛을 받아 더욱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차렷!"

우렁찬 목소리로 지르콘 소위가 구령을 붙였다.

"경롓!"

구령에 맞추어 병사들은 숙련된 동작으로 마치 하나처럼 E-1 빔라

이플을 들어 경례를 했다. 그리고 호버카는 순식간에 그들을 지나쳐

사령부로 올라갔다. 위병소 근무자들은 사령관의 호버카가 완전히 시

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부동 자세로 있다가 사령관의 호버카가 사라지

자 매우 완만한 동작으로 원위치로 돌아갔다.

"봤어?"

위병소로 돌아가면서 지르콘 소위가 포코스 상병에게 물었다. 포코

스 소위는 모르겠다고 했다.

"뒤에 말야. 별 하나 짜리 성판."

"아, 맞다. 그거, 특공 여단장 호버카였죠?"

"그래. 사령관이 요즘 특공 여단장하고 같이 많이 돌아다닌다던데.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어."

"전쟁이 끝났으니 놀러다니는 거겠죠."

"전쟁 때도 충분히 놀았을 텐데."

"글쎄요. 소문에는 시장하고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하던데요. 모르

죠. 무슨 역적모의라도 하고 왔는지."

포코스 상병이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이 말에 지르콘 소위는 뭔가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들었다. 장군들이 정치에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군인으로서의 생명은 끝이라고들 하

던데.

지르콘 소위의 의심은 그리 오래 지속될 만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의심은 아니었다. 지르콘 소위는 곧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워 버리고

난 후 기지개를 켜며 도로 위병소 책상에 앉았다. 근무가 끝나려면 아

직도 네 시간은 더 버텨야 했다.

"특공 여단장 율리스 준장, 듣기에는 전과가 상당하다던데요?"

포코스 상병이 지루해 하고 있는 지르콘 소위에게 말을 걸었다.

"락벳에서 올린 전과를 어떻게 믿어?"

지르콘 소위가 빈정거렸다.

"민간인 백 명을 쏴 죽이고도 얼마든지 적.소.탕. 하고 말할 수 있는

전쟁이었어. 하긴. 그러니까 졌지."

"전부 다 쏴죽였으면 이겼을 텐데요."

"전쟁의 본질을 몰라, 높은 것들은."

지르콘 소위는 목이 뻐근한지 손으로 목뒤를 주무르며 말했다.

"전쟁이라는 건 말야, 일단 죽이고 보는 거야. 정의니 평화니 협상이

니 대의니 하는 건 그 뒤에 대충 얼버무리면 끝나는 거야. 전쟁하는

도중에 정의가 어떻고 평화가 어떻고 협상이 어떻고 대의가 어떻고...

이딴 소리 들어놓다간 당연히 지는 거지."

포코스 상병은 웃었다.

"그럼 소위님은 전쟁이 나면 누구든 다 죽여 버릴 건가요?"

"당연하지!"

지르콘 소위가 말했다.

"아군만 빼고."

지르콘 소위의 웃음은 민간인이 보았다면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것이었지만 포코스 상병은 그런 것에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이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갈까요."

포코스 상병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면서 말했다.

"긴급조치 말하는 거야? 그걸 누가 알겠어?"

지르콘 소위는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관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음. 긴급조치에 대한 비방은 긴급조치 위반이야."

지르콘 소위는 농담으로 말했지만, 사실 이 말은 농담으로 흘려 넘

길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만약 제가 한 말이 비방이라면 지르콘 소위님은 불고지죄를 범한

겁니다. 긴급조치를 위반하는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죄."

"그게 불만인가?"

지르콘 소위가 물었다. 포코스 상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일주일에 5일은 영내대기라는 게 불만이죠. 이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높은 쪽에서 말하는 건 신의 목소리야."

토달지 말라는 거였다. 이건 포코스 상병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

다.

"긴급조치가 끝나면 인사이동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군."

지르콘 소위가 말했다.

"어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으신건가요?"

"아니, 별로. 어딜 가도 여기 경비연대 보다는 낫겠지."

"전 여기에 뼈를 묻을 생각인데요."

포코스 상병이 적당하게 데워진 커피포트의 물을 따르며 말했다.

"도시도 가깝고, 근무 조건도 좋은 편이죠. 보수도 나쁘지 않고."

"긴급조치만 없다면?"

지르콘 소위의 말에 포코스 상병은 엄지손가락으로 눈썹 위를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정확하게는 영내 대기죠. 긴급조치건 뭐건 저하고는 상관 없습니

다."

"이 봐. 영내 대기는 나도 하고 있어."

지르콘 소위가 말했다.

꽤나 맑은 날이었다. 황금빛의 돔으로 둘러 싸여있는 웨이팅하우스

시는 무척이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웨이팅하우스 시에

내려져 있는 긴급조치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

대원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시장실에 서 있었다. 시장실의 조명은 어

두웠다. 탁한 공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방안

의 공기는 최신 공기 정화기를 이용해 맑은 숲의 공기와 비슷한 수준

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원은 시장실에 들어설 때마다 풍기는 냄

새를 꺼리곤 했다. 대원이 느끼기에 아무리 정화된 공기라고 해도 인

공적인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시장님."

대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

다. 하지만 대원은 시장의 존재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리퍼, 자네로군."

시장이 말했다. 리퍼는 대원의 코드네임이었다.

"일은?"

힘없는 목소리였다. 특별히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실제로 신체의

기력이 다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였다.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시장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더욱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

시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헛기침을 몇 번했다. 하지만 가래가 꽉 찬

듯 시장의 목소리는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이 몸으로는 더 이상 밝은 빛을 볼 수가 없어."

시장이 말했다. 리퍼라고 불린 사내는 잘 알고 있었다. 시장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육체에 가한 성형수술과 신체보정술의 결과로 엉망진창

이 되어 버린 몸을 가지고 있었다. 기술을 이용해 억지로 젊게 만들어

진 시장의 육체는 어느 한 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마

치 99도까지 온도가 올라간 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지만 1도가

더 올라가는 순간 끓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육체 또한

임계점을 지나 버린 거였다.

시장의 탄력 있고 매끄러운 피부는 순식간에 물집투성이가 되어 버

렸고, 시장의 강한 인공심장은 어느 한 순간 보조 박동기 없이는 작동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시장의 튼튼한 인공 폐는 산소 호흡기 없이는

산소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많은 인재들이 있지. 경제 전문가, 정치 전문가, 법률

전문가, 에너지 전문가, 문화 전문가..."

시장은 뇌에도 이상이 생겼는지 한 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리퍼

는 시장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치들 공통점이 뭔지 알아? 하나같이 권력과 돈, 그리고 파벌 때

문에 일하고 있다는 거야. 자네, 혹시 그 치들이 고급 주점에서 하루

마시는 술값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작은 집 한 채 값은 될 겁니다."

리퍼가 말했다.

"그렇게 싸게 먹는 날은 며칠 없지. 하긴 모델이나 배우, 가수하고

함께 술을 먹지 않는다면 그 정도 나올지도 모르겠군."

시장은 이렇게 말하곤 뭐가 재미있는지 혼자 키득거렸다.

"그 쓰레기 같은 것들은 그 술집에 가는 일 말고는 낙이 없는 것들

이야. 마치 술집에 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들 같아. 나한테 권력과 돈,

그리고 파벌이 떨어지면 그 치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 아무렇지도 않

다는 듯이 내 등에 칼을 꽂고는 가벼운 걸음으로 주점에 가서 떠들어

댈 거야. 그것들은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야."

시장은 조금 격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러다가 사례가 들렸는지 다시

금 기침을 했다. 리퍼는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

고 있었다.

"자네는 그렇지 않아. 계약이 유지되는 한 믿을 수 있지. 다들 하이

어드와는 거래하지 말라고 하더군. 계약밖에 모르는 쓰레기 같은 치들

이라고 말이야. 우습지 않나? 쓰레기 같은 것들이 하이어드를 쓰레기

라고 욕하다니 말이야."

"저는 용병입니다."

리퍼가 정정하듯 말했다. 시장은 어둠 속에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부정의 뜻이다.

"아니, 아니. 용병이나 하이어드나 마찬가지야. 그건 자네도 알텐데.

하이어드는 의리를 지킬 줄 알지. 그건 대단한 덕목이야... 내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모르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자네라면, 자네

라면 믿을 수 있어."

시장이 말했다. 하지만 리퍼는 그다지 기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시

장이 말한 의리라는 건 그저 계약을 뜻하는 말일 뿐이었다.

"이 육체는 시들어가고 있어. 하지만 이대로 시들지는 않을 거야. 혹

시, 내가 안가 이야기를 했던가?"

"예. 웨이팅하우스 시 외곽에 있는 안전가옥."

리퍼가 말했다.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주변은 숲으로 되어있어. 내가 평생동안 조금씩 건설한 곳이지. 땅

을 사 모으고, 허가를 받아내고,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소유로 만들어 간 곳이야."

리퍼는 그 안가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시장이 좋아하는 옛 고

대 로마를 기본으로 해서 디자인한 시장의 안가는 그 어떠한 부호의

대저택과도 격을 달리 하는 곳이었다.

"죽으면 끝나지, 뭐든 게 끝나."

시장은 마치 중얼거리듯 흐린 어조로 말했다. 리퍼는 그런 시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장은 절망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절망하지는 않고 있을 거였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한다네."

시장이 말했다.

"누구도 영원히 살수는 없습니다."

리퍼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시장은 쿨럭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한 참을 들어야 그것이 웃음이라고 알 수 있을 정

도의 웃음이었다.

"자네는 산 자를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는 저승의 사자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퍼가 말했다.

"맞아. 그 누구도 영원히 살수는 없지."

시장이 말했다.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이는 두 가지 중 한가지를 한다네. 하나는 자

식을 낳는 것. 그것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또 하나

는, 뭔가를 남기는 거지. 이를테면 라디오 그룹이라던가, 혹은 웨이팅

하우스 시장 명단에 올라가 있는 자신의 이름이라던가."

시장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한 번 기침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리퍼는 문득 저렇게 오래 산다면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리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시장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죽음이라

는 건,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 같은 게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건,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운명적인 것이었다.

"부탁이 있네."

시장이 물었다.

"계약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리퍼가 말하자 시장은 손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책상 위에 사진과 프로필이 있어."

시장의 말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리퍼는 시장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

는 봉투를 집어들었다.

"지불 방법은 전과 동일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없습니까?"

리퍼는 지극히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시장은 그런 리퍼의 말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믿음이 간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리퍼. 우리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 빛 속에서 살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운명을 가진 모탈, 필멸자 라네."

시장의 말은 계약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말이었다. 리퍼는 바로

돌아서서 나갈지, 아니면 조금 더 들어보다가 나갈지를 망설였다.

"휴먼 레이스가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무리 어려운 시절도 누

군가는 편히 날 수 있다는 것이었네. 고대의 귀족이 그랬고, 그 이후의

유산계급이 그랬고, 또 그 이후의 모든 지도계급이 그랬다네."

리퍼는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적은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대하고 있는 적이지.

그렇지만 휴먼 레이스는, 반드시 극복하고야 말 걸세. 흑사병을 극복했

고, 암을 극복했고, 후천성면역결핍증을 극복했고, 방사능낙진을 극복

했던 휴먼 레이스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흑사병을 이긴 고대의 성주도, 아마 죽음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

을 겁니다."

리퍼는 이렇게 말해서 대화를 끝내려고 했다. 시장도 그런 리퍼의

마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가보게."

리퍼는 돌아섰다. 그리고 리퍼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시장의 모습

을 그릴 수 있었다. 아마도 흑사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고대의 성주

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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