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43화 (43/52)

2.진실

웨이팅하우스 시경 건물 부근은 무장한 병력들이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병력의 대부분은 시경 경비단 소속의 경찰들이었지만 일부는

특수기동대 소속의 병력도 있었다. 이들은 시에서 파견한 형식으로 시

경에 소속된 병력으로, 어떻게 해서 시경에 소속이 되었으며 실질적인

지휘관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극비에 속하는 사항이었다. 대부분의 특

수기동대는 시 밖의 마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몇

몇은 파견을 나온 모양이로구나 하고 아이라는 생각했다.

비밀스럽다는 점과 시에서 파견했다는 점 때문에 경비단과 특수기동

대 사이에는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했다. 실제로 특수 기동대는 경비단

에 비해서 월등하다고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었고, 이것은 매우 우습게

도 경비단이 어깨를 펴고 돌아다닐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주고 있었

다. 경비단은 경비단 나름대로 그런 특수기동대를 깔보고 있었다. 경찰

도 아닌, 단순한 깡패들의 집단이라는 것이 깔보는 이유였다. 이 두 가

지의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할만한 충분한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

었다. 만약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시위대의 위협이 없었다면 두 집단

은 벌써 몇 번이라도 충돌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라 경정은 이런 병력들 사이를 지나 출근을 하고 있었다.

긴급조치가 발동된 시는 조용했다. 호버카의 차창 밖으로 출근을 서

두르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라는 시민과 눈을 마주치

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적대감을 감

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라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

련의 사태에 대해 적지 않은 당혹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에서는 시위가 끊이질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긴급조치 하에서의

시위는 무조건 구속 대상이었고, 무조건 실형이 선고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도 그

럴 것이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무직자들이었다. 직업을 구

할 수 없거나 혹은 있던 직장을 그만 둔 시민들. 혹은 무직자나 다를

바 없이 열악한 임금 조건 때문에 시위대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있었

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도 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기

는 매한가지였다. 아이라는 시 고위층에서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

계해 나갈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시 고위층은 조금도 이 상황을 풀

어갈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치

가들은 긴급조치만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기업가들은 그런 정치

가들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아이라가 보기에 그들은 저능아나 무뇌아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라 경정은 시경 공보처의 공보관을 맡고 있었다. 말하자면 대변

인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라의 임무는 기자들을 납득시키는 것이

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기자들을 납득시킬 수는 있어도 결코 시민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안계장 시절이 좋았어."

아이라는 한숨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호버카 조종사가 아이라의

목소리를 듣고 어깨를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조종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호버카 조종 중에는 먼저 묻기

전에 절대로 말하지 말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아이라는 시경에 도

착할 때까지 고개를 묻고 있었다.

시경 지하 주차장에서 집무실까지 직행 엘리베이터로 오른 뒤, 아이

라는 먼저 기자회견 일정부터 살폈다. 기자회견 계획은 아침에 잡히곤

했고, 만약 계획이 잡혀있다면 다른 어떠한 일보다 기자회견 준비를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오늘 일일계획입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개인비서가 일일 계획

서를 내밀면서 말했다. 비서는 보통 민간인 경무원을 쓰는 게 보통이

었지만, 아이라는 특별히 상부에 요청해 경장 한 명을 배속 받을 수

있었다.

"민간인 경무원은 멍청하니까."

경장이 비서로 오게 되었을 때, 아이라는 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 한다.

지금 비서는 틸트 경장이었다. 열 일곱 살의 틸트 경장은 나이는 어

렸지만 실무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일을 잘 처리하는 편이었다. 아이라

는 키가 훌쩍 크고 마른 체격을 가진 틸트 경장이 마음에 들었다. 특

히 그가 사건 수사에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때와 자신

과 같은 마을 경비대 출신이라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어리긴 어린 모

양으로, 언젠가 한 번 여자친구는 있느냐는 아이라의 질문에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다.

"오후에 기자회견이 잡혀 있습니다."

틸트 경장은 서류를 내밀면서 말했다. 아이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

처리가 똑부러지는 틸트 경장이었지만, 이렇게 기자회견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때면 어쩐지 기분이 상하곤 했다. 꼭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관련 서류 좀 챙겨 줘."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오늘 해야 할 업무를 확인했다. 오전에는

시경 인사국장인 밀라노 치안감 보고가 잡혀 있었다. 인사국장을 만나

야 할 이유가 있었던가? 아이라는 뭘 준비해야 좋을지 몰라서 잠시 혼

란스러웠다. 아이라는 밀라노 치안감과는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낸 사이

였다. 직할반 소속 경사였을 때, 밀라노는 총경 계급장을 단 아이라의

직속상관이었다.

"인사국장이 무슨 일로..."

"정기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경감급 이상 간부의 정기적인 인사국장

면담입니다."

아이라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틸트 경장이 답변했다. 아이라

는 고개를 끄덕했다.

"그런데 관련 서류는?"

아이라가 일일계획을 내밀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서 있는 틸

트 경장에게 물었다. 틸트 경장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사건 개요와 관련 사항이 정리된 서류입니

다. 그리고 제가 요약한 내용도 있습니다."

틸트 경장이 막힘 없이 술술 대답했다. 답변을 잘 하는 부하는 믿음

직스럽다. 하지만 너무 빈틈없는 부하는 얄미울 때도 있는 법이다. 아

이라는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틸트 경장은 아무 말 없이 아이라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아이라는 먼저 사건 개요를 읽어보았다. 특수기동대가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마을에서 약간의 소요가 있었고, 특수기동대와의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아이라가 기자회견장에서 읽을 원고였

다. 나머지 사항은 어떠한 질문에도 답변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침뿐이

었다. 아이라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싶었다.

아이라는 자신이 하고 있는 공보관 일은 경찰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굳이 경찰의 일이라고 한다면 경찰의 욕을 대신 먹는 일

이라고 한다던가, 경찰의 위신과 사기를 지켜 주는 일이라고 할 것이

었다. 하지만 아이라의 본업은 수사였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도 수

사였다. 진급을 위해서는 행정일이나 잡일도 거쳐가야 하는 법이라고

주변에서 말하기는 했지만 아이라는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못마

땅할 뿐이었다.

아이라는 우선 인사국장 밀라노 치안감을 찾기로 했다. 기자 회견

준비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정기 인사가 자신과 별 상관없을 거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일단 밀라노 치안감을 만나지 않으면 일

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인사국장 실 다녀온다."

아이라는 틸트 경장에게 이렇게 말하곤 긴 복도를 따라서 인사국장

실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이라는 경장 시절, 밀라도 치안감과의 일

을 떠올렸다. 밀라노 치안감은 대하기가 어려운 상사였다. 감정을 드러

내는 법이 없었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부하직원

들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이라는 그런 밀라노에게 항상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아이라의 곁에는 린이 없었다. 그 때는 린이 항상

함께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아이라는 린의 행방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린은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공보관입니다."

인사국장실에 들어섰을 때, 인사국장의 비서는 이렇게 인터폰으로

밀라노 치안감에게 말했다. 비서는 50줄에 들어선 여자였다. 그러고 보

니 예전에 밀라노가 총경이었을 때도 나이 든 여자가 비서를 보았던

것 같았는데. 그 여자 이름은 뭐였지? 아이라가 생각하는 사이, 밀라노

치안감이 들어오라는 말을 비서에게 전했고, 아이라는 문을 열고 목례

를 하며 인사국장 실로 들어섰다.

밀라노 치안감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과중한 업무 때문인지 얼굴에

는 주름도 눈에 뜨이게 늘었고, 흰머리도 많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밀라노 치안감 본인은 그런 일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

다.

"앉게."

밀라노 총경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아이라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

았다.

'예전과 똑같으시군요. 아무 장식도 없는 소박한 사무실.' 아이라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밀라

노 치안감에게 있어서 일 외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웃는 모습만큼이

나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라 경정."

밀라노 치안감은 책상 위의 프로필 서류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계

급으로 불리는 건 오래간 만의 일이었다. 아이라는 공보관이라는 직함

으로 주로 불렸지 이런 식으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먼저, 축하하네. 이번에 총경으로 진급하게 되었네."

밀라노 치안감은 지극히 사무적인 투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

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라의 놀라움이 반감된 것은 아니었다.

"...제가요?"

아이라가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기들 중에 아직 경정 자리

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게다가 경정 중에서 치안감으로 진급

하려면 수많은 선배들이 먼저 치안감으로 진급을 해야 했다. 아이라의

순번은 한 참 뒤였던 것이다. 밀라노 치안감은 두 손을 깍지를 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라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프로필을 보니까 시경 인사과에서 많은 일을 했더군. 위에서는 자

네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어."

밀라노는 프로필을 뒤적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보안계장 시절에는 시 곳곳에 숨어있는

반란군 조직을 적발해 내는 일을 몇 건 한 적이 있었고, 그 전에 경감

시절에는 대형 강력 사건을 몇 건 해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보관

이 된 이후로 아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보인 적이 없었다.

"의외입니다."

아이라가 말했다. 밀라노 치안감은 그런 아이라를 향해서 깍지를 풀

며 입을 열었다.

"의외일 것 없어. 필요해서 하는 일이니까."

밀라노 치안감이 말했다.

"공보관 일을 하면서 방송을 많이 탄 게 도움이 된 것뿐일세."

"그게... 제 업무 평가에 도움이 됐나요?"

아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밀라노의 차가운 말투를 누그

러뜨릴 수는 없었다.

"아니. 얼굴이 알려진 게 도움이 된 거지. 자네도 알겠지만 여자가

발표하는 경우, 조금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

다네. 그래서 자네를 공보과의 공보관으로 임명하기 위해서 총경 진급

을 빨리 했던 거야. 이제 총경으로 진급하게 되었으니, 다른 곳에서 일

하게 될 걸세."

밀라노 치안감은 이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문에 아이라

는 고개를 들어 밀라노 치안감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보안과 보안계장 일을 하면서 반란군을 수사해 본 적이 있지?"

밀라노 치안감이 아이라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 때 어떤 게 어려웠나?"

"그건..."

아이라는 잠시 망설였다. 해도 좋은 말인지 가려 보려는 것이다. 하

지만 아이라는 잠시 머뭇거렸을 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시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그걸세."

밀라노 치안감은 아이라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서 말을 이었다.

"반란군들이 왜 생겨나고 있는지 아는가?"

"공식적인 입장을 물으시는 겁니까?"

아이라가 모처럼 사무적인 냉정한 태도로 돌아가서 말했다.

"맞아, 아이라 경정. 그렇게 대답해야지. 경찰의 내부 지침에는 정치

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 다는 게 포함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왜'를

생각해서는 안되지. 우리는 우리의 임무, 그러니까 오직 범법자를 어떻

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는 거야. "

아이라도 알고 있는 말이었다. 아이라는 락벳 행성에서 병사들이 농

담처럼 했던 '지휘관의 의지는 신의 의지'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는 말

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비공식적인 견해라는 걸 먼저 전제해 두지."

밀라노 치안감이 사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얼마 만에 보

는 것일까. 행정 기계, 업무처리 기계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밀라노 총

경이 자신의 사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경찰관은 극소수 일

것이었다. 아이라는 공연히 가슴이 다 뛰었다.

"시민들은 이미 절반 이상이 시 행정, 더 나아가 통합정부를 불신하

고 있네. 전쟁이 끝난 뒤, 수많은 망명객들이 행성 어스를 떠났고, 때

문에 각 시의 제정 수입은 바닥이 드러날 지경이지. 시민들의 생활이

엉망이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마을은 더 심하다네. 어떤 시는 마을에

서 곡물을 지나치게 거두어 들여서 마을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경우

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마을 주민들이야 굶

어 죽건 말건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있지. 수소융합기라던가, 유기

비료생성기 같은 필수 재원조차 보급이 끊어진 곳도 있어. 이러나 보

니 불만은 가중될 밖에."

아이라는 밀라노 치안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경찰의 고위간부가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말

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이런 예민한 사항을 이런

단어를 써서 표현하는 건 본 적도, 표현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우리 행성 어스에는 어마어마한 량의 재원이 들어

왔네. 참전의 대가로 받은 것들이지. 무기류, 에너지류, 식량류, 공산품

류, 귀금속... 그 양은 천문학적 수치로 나타내야 할 정도지. 사실 그것

때문에 통합정부가 참전을 결정했던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부는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않아. 누군가가 가로채고 있는 거지."

"시민들의 시위도, 반란군도 그런 이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아이라가 첨언했다. 밀라노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였다. 아이라는

저 동작이 한숨을 숨기려는 것일까 의심하기는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

었다.

"그래서, 아이라 자네가 총경으로 진급하게 되는 걸세."

아이라는 밀라노의 말에 선뜻 수긍이 가질 않았다. 밀라노는 아이라

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이해하기 어렵겠지. 내가 설명해 주지. 자네는 이제 총경 계

급장을 달고 특임조를 운영하게 되네. 알고 있겠지? 특임조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아이라는 시장인 포레스트 회장의 모습이 떠

올랐다. 포레스트 회장은 특임조 조장을 맡아서 아이라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회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던가,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크다던가, 사실은 이미 죽었다던가

하는 풍문이 돌고 있었다.

"이제 알겠습니다."

아이라가 말했다.

"특임조 조장이 되어서 반란군 체포 작전을 수행하라는 거군요. 얼

굴이 알려져 있고, 여자인 제가 말이죠. 잘 되면 비난은 제가 한 몸에

다 받게 되고, 실패하면 책임은 제가 다 지게 되는, 그런 거로군요."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스스로 깜짝 놀랐다. 설마 밀라노 앞에서

자신이 이런 빈정대는 투의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라가 어떻게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밀라노

반장은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조금도 흔들리는 분위기는 풍

기지 않았다.

"나무를 타 본 적이 있나? 빨리 오르려면 그만큼 떨어질 위험을 감

수해야 하는 법이지."

밀라노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이 임무에 자네를 추천한 건 바로 나였네. 나는 자네를 잘

알고 있어, 아이라. 자네는 수사에 재능도 있고, 경찰에서 오래 남아

근무하면서 경찰을 발전시킬 훌륭한 간부야. 그리고 이 자리는 그런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할 자리라네."

밀라노의 말에 아이라는 토를 달 수 없었다. 밀라노에게 함부로 말

대꾸를 하는 건 하루에 한 번이면 족했다.

"정식 근무는 내일부터네. 아, 조금 빠르다고 생각하겠지. 알고 있어.

하지만 일이 바쁘게 되었어. 내일은 여기로 출근하게. 그리고 자네 부

하들도 만나 봐야지. 알고 있겠지만, 자네는 이제부터 시경 특수기동대

를 지휘하게 되네. 계통상 자네가 지휘관이야."

아이라는 특수기동대라는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수기

동대는 거의 시장의 사병이라고 알려진 집단이었다. 그런 집단의 계통

상 지휘관이 되어 수사해야 한다니. 아이라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포레스트 회장의 모습과 반드시, 언젠가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던 저

주의 말이 떠올랐다.

"나가보게."

밀라노 치안감은 이렇게 말을 끝냈다. 아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라노 치안감과 아이라는 키가 거의 비슷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문

득 아이라는 밀라노 치안감이 훌쩍 늙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다.

아이라는 인사과장실을 나왔다.

점심시간까지 할애해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라는 내내

착잡한 마음이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포레스트 회장의

웃음소리가 항상 귓가에 머물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때문에 한 두

시간만 준비하면 될 공식 기자회견 준비는 평소의 몇 배나 시간이 들

어갈 수밖에 없었다.

"부담되시는 모양이군요, 총경 자리가."

틸트 경장이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아이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적

인 말은 결코 하는 법이 없는 틸트 경장이었다. 소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다시 보지 않게 될 거라고 생

각해서 그랬을 거였다. 아이라는 그런 틸트 경장의 기대를 깨 주고 싶

었다.

"내가 가면, 자네는 두 달 있다가 일선 수사관으로 일하게 되지?"

"예. 그렇습니다."

아이라가 말했다. 경정이라는 직책은 그렇게 허술한 직책이 아니었

다. 경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부관 하나 쯤 끌고 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이라는 굳이 틸트 경장을 부관으로 써야 할 이유도 없

었지만, 일처리 똑부러지는 틸트 경장을 두고서 다른 부관을 만나는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걱정 말게. 그 두 달 동안은 나하고 있게 될 테니까, 틸트 경장."

틸트 경장의 표정이 눈에 뜨일 만큼 굳었다. 아이라는 그런 틸트 경

장이 우습게 여겨졌다. 놀릴 수만 있다면 마음껏 놀려주고 싶은 기분

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더욱 약이 오른다는 것쯤 아이라는 알고 있었고, 틸트 경장은 그날

오후 내내 풀이 죽어 있게 되었다.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5

기자회견장은 시경 1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기자들이라고 해 봐야

시에서 발행되는 신문 하나와 민간 신문 하나, 그리고 방송국 하나 뿐

이었지만, 시경은 기자회견장을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고,

내부 장식과 좌석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시경의 치안감은

언론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큰 사건도

기자회견 한 번으로 무마시킬 수 있었고, 아무리 작은 사건도 기자회

견 한 번으로 큰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

하는 실무자가 공보관, 바로 아이라였던 것이다.

아이라는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낯익은 신문기자 둘의 얼굴과 뉴스

기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각각 시경에서 마련한 좌석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느긋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방송국 스텝들은 조금 분주해 보였다. 아이라가 나타나자 카메라맨

과 조명 담당자, 그리고 녹음 담당자들이 조금은 긴장된 얼굴을 하고

서 장비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아이라는 늘 그랬듯 여유있는 웃음을

유지하면서 단상에 올랐다. 기자들은 알지 모를지 알 수 없었지만, 아

이라는 오랫동안 이 미소를 거울을 보며 연구했다. 공보관은 기자들

앞에서 안정감과 친근감, 그리고 자신감을 표현해야 했고, 그리고 아이

라는 미소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안녕들 하십니까. 킥스 기자. 오늘은 넥타이가 근사하군요. 먼로 기

자는 간밤에 일루젼을 너무 과하게 드셨나요? 얼굴이 붉은 데요? 로

우너 기자는 역시 방송 보다 직접 보는 게 더 낫군요."

아이라는 친근하게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기자들은 목례로 아

이라의 인사를 받았다.

사실 기자라는 직함으로 불린다고는 해도 각 신문사와 방송사의 국

장급 간부들이었다. 시경의 발표는 항상 중요한 뉴스 거리였고, 때문에

신문사와 방송사는 시경 기자회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

던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 개요는 나누어 드린 바와 같습니다. 제가 준비된 원

고를 읽으면, 질문 해 주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라는 침착하게,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어제 오후에 있었던 마을에서의 반란군 색출작전에 대한 시경의 공

식 입장입니다. 무장한 반란군들은 마을에 침입, 마을 주민 16명과 시

경 특수기동대 대원 1명을 살해하고 도주하였습니다. 반란군이 노린

것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시의 기강을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제때 출동한 시경 특수기동대에 의해 이들은

격퇴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16명의 반란군이 사살되고 2명의 반란군이

체포되었습니다. 두 반란군은 현재 심문중으로, 반란군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질문하세요."

아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라 본인도 믿지 못할 내용이었다.

반란군은 시의 기강과 시민의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을 주민을 학살하면서 그런 결과를 얻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반란군들을 숨겨주면 숨겨주었지 결코

반란군들을 자극할 리도 없었으므로 우발적으로라도 이런 사건이 일어

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라의 미소는 중요한지 몰랐다.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라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시민일보의 킥스 기자입니다. 반란군의 총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뚱뚱해서 그런지 땀을 흘리고 있는 킥스 기자가 손수건으로 연신 이

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며 물었다. 아이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반란군의 총규모는, 보안상 정확하게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킥스. 마을에 반란군의 총 인원이

다 모여서 급습을 가한 것 같진 않아요."

아이라가 농담투로 말하자 세 기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자리에

서의 농담은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자리

에서 공직자가 던지는 농담이란 웃음으로 넘어갈 때냐 아니냐를 상대

방에게 알려 주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제 질문은, 그러니까 어제 마을에 나타난 반란군의 규모입니다."

"글쎄요. 총격전의 규모로 보아 10명 내외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

리가 두 명의 반란군 신원을 확보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반란

군들은 좀처럼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아서요. 어떻게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까요?"

이번에는 농담 같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기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도 공직자들의 농담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도시생활의 먼로 기자입니다. 살해된 명단을 보니 어린아이와 여자

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던데요. 특수기동대의 공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론과 시민단체가 지적한 바도 있었습니다만, 이번 사건도

특수기동대의 공권력 남용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각도 있을 것이라 생

각합니다. 이런 반응에 대한 시경의 입장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먼로 기자는 밀라노 치안감처럼 상당히 차분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이런 기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시경의 입장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시민의 안

전을 보호하고 범법자는 체포한다는 것. 그리고 공권력 남용의 문제인

데요, 공격하는 반란군을 향해서 발포하지 않는 건 특수기동대가 아니

라 그 어떠한 집단이라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특수기동대도 공무원이

기 이전에 시민입니다. 시민의 안전은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합니다."

아이라는 딱부러지는 어조로 답했다. 먼로 기자는 수긍하는 눈치였

다.

"라디오 방송국의 로우너 기자입니다."

라디오 방송국의 기자답게 누가 보아도 미남으로 생각할 만큼 잘 생

긴 기자였다. 나이도 상당히 젊었으며 일 수완도 뛰어난 모양으로 젊

은 나이에 벌써 국장급으로 진급해 있었다. 기자회견 때문에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 경우였고, 아이라는 그런 로우너 기자에게 호감을 가

지고 있었다. 아이라 역시 기자회견 때문에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 경

우였던 것이다.

"현재 특수기동대의 지휘체계나 지휘관, 운영방법 등에 대해서 시경

은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의 소문에는

시경 특수기동대는 포레스트 회장의 사병이라는 소리도 있고, 때문에

시경에서 특수기동대에 대해서 일체 함구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시청자가 많을 것 같은데요."

로우너 기자는 카메라를 상당히 의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아이라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로우너 기자의 질문은 일견

그럴싸하게 들리긴 했지만 실상은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거짓 질문이

나 마찬가지였다. 포레스트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게 틀림없었다. 어

쩌면 이번 인사 역시 포레스트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건 아닐까. 아이

라는 점심 시간 내내 했던 의문을 다시 떠올리는 바람에 한 순간 미소

를 잃을 뻔했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답변을 이어갈 수 있

었다.

"그건 근거 없는 소문입니다."

아이라는 일단 강경하게 결론부터 말했다.

"그리고 시경 특수기동대는 모른 사항이 보안사항으로 되어 있는 극

비의 부대입니다. 당연히 공식적으로 시경에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시

경 특수기동대가 분명히 시경의 편제에 속해 있으며, 그 지휘관 또한

시경 간부라는 점입니다. 이 점, 시민 여러분의 착오가 없으셨으면 합

니다."

분명히 방송에서 쓸 멘트라는 걸 인식해서였는지 아이라의 목소리는

약간 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억울해 하는 경관'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

다.

그리고 아이라는 내일 부로 자신이 특수기동대의 지휘관이자 특임조

조장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아

마도 다음 뉴스에 바로 이어질 것이었다.

고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언론이란 카지노에서 행해지는 짜고 치는

사기 포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럴싸한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하고, 희노애락이 교차하기도 하고, 이렇게 시민들을 속이고 농락하지

만 이익을 보는 쪽은 늘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에 아이라는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

다' '근거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아이라의 미소와 능수능란

한 언변은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

다. 오늘의 기자회견도 성공이었다. 회견이 끝나자 조명등이 꺼졌고,

아이라는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 방송스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

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악수를 나눌 때 몸을 숙이며 로우너 기자가 나즈막하게 아이라에게

속삭였다.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기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상대는 라

디오 방송국의 기자였고, 포레스트 회장의 부하였다. 아이라는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놀라지 마세요. 세상에 비밀이 어디있겠습니까?"

로우너 기자는 아이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마도 저

런 눈빛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

었고, 아이라는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 한 다음 등을 보이며 돌아섰

다. 역시 소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아마도 로우너

기자는 왜 아이라가 쌀쌀맞게 구는지 정확한 원인을 영원히 알 수 없

을 거였다.

아이라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틸트 경장이 아이라를 맞이하

였고, 아이라는 피곤한지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며 사무실 의자에 앉았

다. 어깨가 뻐근했고, 얼굴 근육이 땡기는 기분이었다.

휴먼 레이스의 표정은 다양하다. 얼굴에는 80여 개의 근육이 있고,

그 중 50여 개의 근육이 볼과 입매 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

에 휴먼 레이스는 같은 미소를 지어도 얼마든지 다른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 하지만 50여 개의 근육을 항상 긴장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근육에 피로가 오기 마련이었다.

"공보관님."

의자에 몸을 기대고 쉬고 있는데 틸트 경장이 말했다.

"기자 한 분이 와 있습니다. 뵙고 싶다는 데요. 기자증은 확인했습니

다."

아이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틸트 경장의 몸이 움찔했다. 아이라는 인

상을 쓸 때면 차가운 눈초리가 되곤 했다. 오랫동안 수사관 생활을 한

경찰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눈초리였고, 기자들에게는 절대 보여서는

안될 눈초리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무슨 일이지? 누구야? 로우너 기자?"

"푸우순 시에서 온 기자랍니다. 세론 소위, 라고 전하면 아실 거라고

했습니다."

틸트 경장이 말하자 아이라는 허리를 곧추 세우면서 몸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세론 소위?"

"예. 아시는 분입니까?"

"락벳 전선에서 본 적이 있는 기자지."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락벳 전선을 떠올렸다. 세론 소위는 자신

에게 진실의 힘에 대한 강의를 늘어놓았지만 아이라는 체험하지 않은

진실은 진실의 가치가 없다는 식의 항변으로 세론 소위를 잠잠하게 한

적이 있었다. 아이라는 문득 락벳의 기억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그 세론 소위가 무슨 일로? 아이라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별다른 생

각을 해 낼 수는 없었다.

"들어오시라고 해."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몸가짐을 정돈했다. 그리고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론 소위가 어떻게 변했다고 할지라도 아이라는 여유

를 잃지 않고 세론 소위를 맞이할 자신이 있었다.

"오래간 만이에요, 아이라 공보관 님."

아이라는 반가워요, 세론, 하면서 여유롭게 인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론이 말했을 때, 아이라는 여유를 잃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표정을 관리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세론을 보았을 때, 아이라는 눈앞이 어질 거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

다. 세론의 얼굴은 아이라가 기억하고 있는 세론의 얼굴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세론은 얼굴 왼편이 기계로 대체되어 있었다. 눈도 인

공안구였고, 피부도 시커먼 빛깔의 인조피부였다. 가장무도회에 간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세론은 왼팔도

의수였다. 은색에 가까운 금속의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왼팔은 때에

절은 듯 탁한 빛을 내고 있었다.

"아, 세론 소위..."

아이라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는 소위가 아니죠. 종군기자가 아니니까."

아이라는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론을 바라보며 할 말을 찾

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당황하기 시작하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도

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서 있을까요? 그게 편해요?"

세론이 놀리듯 말했다. 아이라는 조금씩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앉으세요."

아이라가 자리를 권했고, 세론은 금속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

리를 얹었다. 바지 밑으로 드러난 발목 또한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말아 주세요. 그런 눈, 사실 부담스럽거든요. 이젠 익

숙해 질만도 하지만."

"락벳에서?"

아이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글에서. 동행 취재하고 있던 중소대의 중대원이 부비트랩을 밟았

어요. 운이 좋았죠. 그 친구는 시체도 못 찾았으니까."

"아, 그렇군요. 커피 한 잔 마시겠어요? 그, 이름이 뭐였죠? 락벳에

서 마셨던 차요. 밍라우 차였던가요? 그것만은 못하겠지만, 마실 만은

할 거에요."

"까페 이름이 밍라우였죠. 차 이름은 징겨우 차였고요. 커피도 좋아

요. 어차피 제대로 된 접대를 받으러 온 건 아니니까요."

아이라는 세론이 비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

했다. 아이라는 인터폰을 통해 부관인 틸트 경장에게 커피 두 잔을 내

오라고 했다.

"당신 충고를 따른 거죠, 아이라. 토론은 전투를 체험한 다음으로 미

루자고 했지요?"

아이라는 이제 냉정을 되찾았다. 비록 흉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잠

시 당황했을 뿐이지 일단 그 모습에 익숙해지자 그리 흉하게 보이지만

은 않았다.

"그래서, 토론을 하러 오신 건가요?"

"아뇨."

세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렇군요.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 여전히 기자인가요? 웨

이팅하우스 시에 살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이라는 웨이팅하우스 시의 기자라면 거의 모두를 알고 있었지만

세론은 그들 중에 끼어있지 않았다. 만약 끼어있었다면 아이라가 기억

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푸우순 시라는 작은 도시에서 기자 일을 하고 있어요. 참. 아이라

공보관 님도 거기 마을 출신이죠?"

세론이 물으며 녹음기를 꺼냈다. 아이라는 녹음기를 보고 나서야 자

신이 취재 허락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취재 요청을 받은 적도 없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녹음할 건가요?"

"아뇨. 그냥 겁만 주려고요. 공보관들은 이걸 보면 겁을 먹곤 하더군

요. 녹음하지 않을 게요. 중요한 건 여기에 다 들어갈 테니까."

시커먼 인공피부로 덮여 있는 얼굴의 왼 편을 두드리면서 세론이 말

했다.

"공식 기자회견은 끝났어요, 윈하신다면 보도자료를 드리죠."

"아, 그러실 것까지는 없어요. 제가 궁금한 건 딱 하나니까."

세론이 막 말을 이으려는데 틸트 경장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들어

왔다. 아이라는 틸트에게 나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궁금한 게 뭔가요?"

"제 동료 기자에 대한 거에요, 아이라."

세론이 말했다.

"제가 당신 동료를 당신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이라가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세론은 아이라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저런 눈빛이 거짓을 찾아내려는 눈빛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할 때도 저런 눈을 하곤 했다. 아무

리 냉정한 용의자라고 해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딘가 어색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었다. 코를 만진다던가, 다리를 긁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물론 매우 세련 된 동작으로 그런 행동을 숨기는 용의자도 있기는 했

지만, 세심한 관찰을 통한다면 그런 것쯤은 쉽게 간파해 낼 수 있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휴란이라는 열 아홉살 되는 기자에요."

세론은 예의 아이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휴란은 웨이팅 하우스 시로 취재를 가고 있었죠. 정기 셔틀 편으로

가지 않고 호버카를 이용해서 갔어요. 셔틀 추락 사건과 라디오 그룹

의 홍보영상을 담기 위해서 지원을 나가던 길이었어요."

"아주 흥미롭군요. 그래서요?"

아이라는 빨리 본론을 말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론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라져 버렸어요. 사막 한 복판에서 증발되어 버렸죠. 호버

카도, 호버카 조종사도 사라져 버렸어요. 확인해 보니까 셔틀 추락사건

은 취재를 마친 상태였죠."

"그래요? 호버카 조종사하고 눈이 맞아서 도망쳤는지도 모르죠. 열

아홉살이라고 했지요? 그 때는 무모한 나이니까."

아이라는 이제 완전히 평정을 되찾았다. 빈정거리고 있는 것만 보아

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올빈은 중년이었어요. 가정적이었고, 부인과도 아무 문제없었죠. 거

기다가 몇 해만 더 있으면 연금을 받게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왜 그

런 짓을 했을까요?"

"글쎄요. 중년의 위기라는 것도 있죠. 그리고 휴먼 레이스가 중년에

갑자기 돌아 버려서 탑 위에 올라가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일 따위는

흔하죠. 그런데 그 휴란이라는 친구가 사라진 걸 왜 저한테 묻는 거

죠?"

아이라가 물었다. 세론은 커피 잔을 들어 잠시 향을 음미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때마침 마을에서 총격전이 있었어요. 알고 계시죠? 오늘 기자회견

도 하셨으니까."

"아, 그 와중에 사라져 버린 거로군요."

아이라는 세론이 뭔가 수상하다고 여길만한 이유가 있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가 증발해 버린 것과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휴란은 친한 후배였어요. 휴란에 대해서는 잘 알죠. 아직 경험은 적

지만 진실에 대한 열정은 누구못지 않았어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은 말 할 것도 없고요. 그런 휴란이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게, 저는 납득이 되질 않아요."

"락벳에서의 세론 같았던 모양이네요."

아이라가 말했다. 세론은 이 말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저는 꼭 알아야 겠어요. 휴란이 어떻게 되었는지, 진실이 무엇인지

말이죠."

"글쎄요. 미안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보도

자료 한 부 드리는 것 밖에는 없겠네요."

"저도 그렇게 간단하게 알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요, 아이라 공보관 님."

세론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다

리의 육중한 소리가 바닥에 울렸다.

"저는 휴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낼 때까지 여기 있을 거에요. 그

전에는 절대로 떠나지 않아요."

"푸우순 시는 어쩌고요?"

"기자도 직급이라는 게 있죠."

세론이 말했다.

"푸우순 시 본사에는 이미 기획서를 올렸어요. 취재 기획서 말이죠.

제 직급이면 여기에 취재 본부를 차리고 혼자 취재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은 가지고 있답니다."

세론이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아이라는 그런 세론에게 뭐

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참기로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처음부터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취재하시려면 힘드시겠어요. 여기에는 동료도 없고, 정보원도

없을 텐데요. 이곳 기자분들은 잘 알고 지내는데, 아무래도 타지에서

온 분들은 적응하기 힘든 분들이거든요."

"걱정 해 주셔서 고맙네요, 아이라 공보관 님."

세론은 악수를 청했다. 아이라는 금속으로 된 왼 팔을 내밀지나 않

을까 걱정했지만 세론은 멀쩡한 오른 손을 내밀었다. 아이라는 그 손

을 잡았다. 그리고 아이라가 손을 잡는 순간 세론은 한 쪽 입술로만

웃으며 왼 손을 들어 아이라에게 보여주었다. 전쟁에서 살아 남았는데,

웨이팅하우스 시에서 살아남지 못하겠느냐는 뜻인 모양이었다. 아이라

는 미소로 응대해 주었다.

"참. 그 친구분, 이름이 뭐였지요? 메샤? 메쟈?"

"아, 메이런을 말씀하시는 군요."

손을 놓으며 아이라가 대답했다.

"안됐어요. 어디 높은 곳으로 전출 간 다음 전사했다고 들었거든요."

"예."

아이라는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탈영한 메이런. 아마도 락벳

행성에 남아 있을 거였다. 운이 좋았다면 락벳에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락벳인들이 휴먼 레이스 용

병을 용서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었다.

"다음에 뵐 때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에요, 아이라

공보관 님."

"그러길 희망해 보죠."

세론은 아이라가 특임조 조장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아이라를 놓칠

것 같아 보이진 않을 거였다. 어차피 공보관에게 이야기 듣는 것보다

는 지휘관에게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을 테니까. 아이라는 사실 이제

부터 어떻게 일을 준비해야 좋을지 몰랐다.

세론이 나가버린 뒤, 아이라는 의자에 한 참을 앉아 있었다. 업무에

대한 생각과 진급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세론의 생각이 뒤섞여 한 참

동안 아이라를 어지럽혔다.

그런데, 만약 살아있다면 메이런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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