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안개 - 2
도심은 이제 시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누군가 새벽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술에 취해 일찍 잠에서 깬 노동
자, 아기의 칭얼거림에 깨어난 부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학자,
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고, 충격적인 영상과 조이스의 멘트를 들
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 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텔레비전을 보라고. 그
리고 그들중 많은 수가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직된 집단이 아니었다. 그저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간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안개는 짙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에는 그리 짙은 안개가 아
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상기된 얼굴을 확인하며 그것만으로 일단 위안
을 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마을에서 강제로 도시로 이주
당한 이들이었고, 때문에 그들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리바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청년도 끼어있었다. 청
년은 마을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던 청년이었다. 리바르와
리바르의 어머니는 일생을 바쳐 자신들만의 새 집을 마련할 수 있었
다. 하지만 그들에게 따라준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시경 소속
특수기동대에 의해 집을 잃었던 것이다.
리바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뜨거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리바르는 알지 못했다.
억눌리고 짓밟혀 온 자들의 증오와 분노. 리바르는 그 뜨거움의 실체
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뜨거움이 밖으로 터져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억울해. 억울해.
리바르는 특수기동대의 대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고 있던 자
신을 떠올렸다. 그것은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울
분을, 그 분노를, 그 증오를 터트리고만 싶었다.
"여러분! 이대로 모여만 있을 겁니까!"
리바르가 소리쳤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는 답답한 마음에서 터져나온 소리였을 뿐이었다. 그
러나 그것은 불씨가 되었다.
"시청으로 갑시다!"
"그럽시다!"
"시장에게 항의합시다!"
"물러나라고 합시다!"
"우리 마을을 돌려 달라고 합시다!"
리바르의 외침을 시작으로 하나 둘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 붓고 있었
다. 뜨거움은 이제 모두의 가슴에서 터져 나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마치 물결이 치는 것 처럼, 시민들의 행렬은 시청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함성 소리를 내었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그
함성을 받아 더 큰 함성을 내 질렀다. 함성은 함성을 불렀고, 시민들은
시민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시청을 향하고 있는 시민들의 물결은 어느 사이 처음의 몇 배, 몇
십배가 되었다. 이제 그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함
성소리는 점점 더 드높아갔고, 그에 따라서 시민들의 의지도 더욱 강
해지고 있었다.
리바르는 모처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지들과 한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불러일으키
는 느낌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짓밟히고 참고 억누르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니구나. 리바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목청껏 함성을
내질렀다.
시민들의 행렬은 곧 시청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시청은 소식을 듣
고 몰려든 시경 경비단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방패와 곤봉으로 무
장하고 있는 시경 경비단의 표정은, 헬멧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려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긴급조치 위반 행위를 하고 계십니다."
경비단의 누군가가 메가폰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즉시 자신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경고합니다."
메가폰에서 이렇게 음성이 흘러나왔을 때, 시민들은 함성으로 맞받
아쳤다. 거대한 함성. 그리고 함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굳은 의지. 시민
들은 당장이라도 경비대를 밀치고 시청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1분 내에 해산하지 않으면..."
다시 메가폰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끝까지 소리를 들을 수 있
었던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시민의 함성이 메가폰의 소리를 완전히
잡아먹었던 것이다. 리바르도 목청껏 소리쳤다. 그것은 해방을 향한 함
성이었고, 또한 살아있는 자신들의 생명을 향한 찬가였다.
그리고, 그 때 군인들이 도착했다.
군인들은 제 7 야전군 12군단 소속 특공여단 병력이었다. 그들은 모
두 E-1 라이플과 니들건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
었다.
"여러분! 군인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행렬의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쳤고, 그 소리는 앞으로 앞으로 입에
입을 타고 전달되었다.
"막아!"
"잡아!"
"죽여버려!"
시민들이 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안개 너머 군인들의 모습
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리바르도 목청을
한껏 높여 군인들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마치 남아있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겠다는 듯, 피를 토하는 듯, 소리를 쏟아내었다.
그러는 사이 1분이 지났다.
그리고 니들탄이 시민들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애초에 대오를 갖추지 못한 비무장의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순식간
에 대열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거대한 함성도,
지상에서 가장 굳은 의지도, 날아드는 니들탄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리바르는 흩어지는 시민들을 따라서 뛰고 또 뛰었다. 누군가를 밟고
지나간 듯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밀치는 듯도 했다. 하지만 무엇도
분명하지 않은 혼란 속이었다. 마치 안개 속을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이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니들탄 하나가 리바르의 가슴에 박혔다.
니들탄은 폭발하면서 리바르의 굳은 의지를 담고 있던 심장과, 뜨거
운 함성을 내지르던 성대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어머니...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리바르는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결코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결코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제 7 야전군 12군단 소속 특공여단 지르콘 소위는 자신의 소대 병력
을 지휘하고 있었다.
"싹 다 잡아버렷!"
지르콘 소위는 흩어지고 있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고 있는 부하들
을 이렇게 독려하였다.
"쏴! 쏴! 배운 대로하란 말야! 너! 탄창 안갈고 뭐 하고있어! 이건
전쟁이야! 이건 전투야! 녀석들이 살아 돌아가면 무시무시한 적이 되
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어서 방아쇠를 당겨, 이 굼벵이들아!"
지르콘 소위는 이렇게 계속해서 소리쳤다.
한참의 사격이 끝나자, 이제 모여있던 시위대는 간곳이 없어졌다. 곧
여단 사령부에서 명령계통을 따라 명령이 하달되었다. 특공 여단은 대
대단위로 나뉘어 일부는 시위대를 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일부는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지. 미련하게."
지르콘 소위는 혀를 차며 말했다.
"모조리 죽여버리는 거야. 그게 승리의 요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
어?"
지르콘 소위가 포코스 상병에게 물었다. 포코스 상병은 완전히 얼빠
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지르콘 소위는 웃으며 포코스 상병의 뺨을 몇 번 때렸다. 그제야 포
코스 상병은 생기있는 눈으로 지르콘 소위를 바라보았다.
그 때 무전병이 무전기를 가지고 지르콘 소위에게 다가왔다. 지르콘
소위는 무전기를 받아들었다.
"좋아. 명령이 떨어졌다. 소대, 출동이다!"
지르콘 소위가 외쳤고, 부대원들은 개인화기를 점검하며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소대장님."
포코스 상병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시위대를 해산 시키고 여기를 지
키는 게 임무 아니었나요?"
"우리 목표는 그게 아니야."
지르콘 소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르콘 소위의 눈
은 안개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시청을 향해 있었다. 이제 여단은 시청
을 점령할 거였다. 시는 군의 통제하에 들어갈 것이었다. 계엄령이라는
건, 군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권력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의식
이었다.
지르콘의 소대가 안개를 헤치고 전진해 나아갔다. 소대가 향하고 있
는 곳은 물론 시청이었다.
제 목:[하이어드] Who wants to live forever?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