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52화 (52/52)

11.Immortal

메이런이 탄 호버카는 포레스트 회장의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호버

카의 자동조종장치는 매우 훌륭하게 작동했고, 포레스트 회장의 안전

가옥 근처에 다다르자, 신호음까지 보내주었다.

정문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다. 낯선 호버카가 새벽에 도착하자,

보안요원 하나가 호버카에 다가왔다. 보안요원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

어오는 것을 기다리며 메이런은 경비실에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확인

했다.

보안요원은 다가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창을 내리라고 신호했다.

메이런은 순순히 창을 내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메이런은 대답을 K-5의 뜨거운 9밀리 탄으로 대신했다. 그 순간 경

비실에서 보안요원이 뛰어나왔다. 메이런은 그 요원의 가슴에도 뜨거

운 탄두를 안겨 준 다음, 그대로 호버카를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대

의 장식물들이 길 옆에 늘어서 있었다. 메이런은 그것들을 감상할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것들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도 일지 않고 있었다.

복수.

메이런의 머릿속은 온통 시장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것

만이 메이런을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메이런은 조종하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아니면 다른 레이스의

손인지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호버카는 곧 시장의 안전가옥 앞에 당도하였다. 메이런은 호버카를

세우고 안전가옥의 출입구로 이어져 있는 긴 계단을 올라갔다. 출입구

는 굳게 닫혀 있었지만, 메이런이 손을 내밀자 조용히 열렸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메이런은 일단 총을 든 채로 온 몸의 감각

을 예민하게 했다. 2층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메이런은 그 소

리를 따라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응접실에서 메이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두운 조명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메이런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그리고 밝은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이런은 그것들을 겨

냥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손님인가?"

작은 그림자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음성을 하고서. 메이런은 작은 그

림자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어린아이였다.

"린...?"

메이런은 기억을 더듬어서 이렇게 물었다.

"린은 죽었어. 내가 죽였지. 지금 나는 포레스트 회장이야."

린의 얼굴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말했다. 포레스트 회장이라는 단

어를 듣자, 메이런은 다시금 분노와 증오가 솟구쳐 올라왔다. 당장이라

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다는 욕망이 메이런을 사로잡았다.

"참. 인사하지. 이 쪽에 있는 분은 조야. 조. 인사해요. 손님인가 봅

니다."

린의 모습을 하고 있는 포레스트 회장은 밝은 형상을 가리키면서 말

했다. 메이런은 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메이런이 보았던

바로 그 조는 아닐 거였다. 하지만 로즈웰 레이스는 대개 조라는 이름

으로 불리웠다.

"반갑군요."

조가 말했다.

"나는 반갑지 않아."

메이런이 거칠게 내뱉었다. 하지만 누구도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건 누구지?"

메이런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림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로웰을 말하는 모양이군. 신경 쓰지 말아요. 저건 내 장난감이

니까. 이제는 망가져 버렸지만."

린의 모습을 한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았다. 메이런은 응접실의 한 복판에 놓여져 있는 피아

노를 분명 어디선가 한 번은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본 피아노라

면, 메이런이 본 피아노는 피아노 바의 피아노 뿐이었다.

"잠깐만 시간을 주겠어요? 누군지 생각이 날 것도 같은데."

린의 얼굴을 한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피아노에 손을 대

었다. 그리고 잠시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더니, 메이런을 바라보

았다.

"당신은 이 피아노의 주인이었군요. 그리고 연주해 주려고 했어요...

기다리면서 혼자서 연주를 하곤 했죠. 데쟈뷰, 라는 곡을 말이죠."

린의 모습을 한 포레스트 회장은 여기까지 말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을 위해서 피아노를 치려고 했던 건가? 이거 잘

느껴지지 않는 군요. 린은 물건을 가지고 트랜스 할 수 있는 트랜서였

죠. 아마 내가 제대로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모양인가 봐요. 그리

고, 당신 역시 트랜서군요. 예전에 린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나보죠?

경찰에서? 아니면 군에서?"

"장난치지 마. 회장은 어디있지?"

메이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거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

자 린의 얼굴을 한 포레스트 회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조도 곧

이어 웃음을 지었다. 로즈웰 레이스의 웃음소리는 메이런에게 소름끼

칠 정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기분나쁜 웃

음소리일 뿐이었다.

"이런. 나한테 개인적인 용무가 있는 친구였군."

린의 얼굴을 한 포레스트 회장이 말했다. 메이런은 그 얼굴을 유심

히 살펴보았다. 얼굴은 분명 린이었다. 하지만 눈빛과 표정은 린의 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노련해 보였다. 마치 메이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거, 개인적인 호기심이 이는 데? 자네 이름이 뭔가?"

"메이런."

이름 정도는 알려 주어도 좋을 것 같은 마음에 메이런은 순순히 이

름을 이야기 해 주었다. 이름을 듣자 린의 모습을 한 포레스트 회장은

서재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메이런... 메이런...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메이런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지만 어쩐지 주도권을 빼앗긴 듯

한 기분이 들어서 불쾌했다. 회장은 손을 움직여 서재에서 뭔가를 찾

아보고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서재에서 뽑아낸 파일을 들고 메이런에게

다가왔다. 그 당당한 태도에 메이런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

섰다. 회장은 메이런을 조금도 겁내지 않고 있었다.

"자네, 아버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나?"

회장이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했나? 메이런이 대답하지 못하

고 있는 사이, 회장은 파일을 열었다.

"그걸 들고 있으니 직접 보지는 못하겠군. K-5 9밀리인가? 파일은

내가 보여주지. 보통의 경우 말이야, K-5를 들고 있는 친구는 그걸 잘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더라고."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키득거렸고 조도 따라서 키득거렸다. 메이

런은 경계를 풀지 않고서 회장이 펼치고 있는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조명은 어두웠지만, 사진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메이런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

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사진 속의 메이런이 입고 있는 옷을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메이런의 옆에 서 있는 휴먼 레이스의

모습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재미있어. 자네, 간만에 나를 아주 즐겁게 해 주는군. 여기까

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보람은 있을 걸세. 날 이렇게까지

즐겁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야."

"누, 누구지?"

메이런은 말을 더듬고 있었다.

"자네 아버지."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천천히 다시 조의 앞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메이런은 전혀 안중에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트랜서의 능력은 유전되지 않아. 그래서 유능한 트랜서는 클론을

만들어 두지. 여기 자네 기록도 있군. 자네는 어머니와 함께 시를 벗어

나서 마을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구만. 특이한 경우야. 다른 자네 형제

들은 다른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텐데 말이야. 안됐군. 어머

니 때문에 좋은 직장을 놓쳤으니까 말이야."

메이런은 잠시 동안 멍한 상태가 되었다. 자신이 클론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탓이었다.

"너, 널 죽이러 왔다."

메이런이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린은 웃는 얼굴을

하면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선반 쪽으로 걸어갔다. 선반에는 고대의

해적이 사용했던 화승총이 놓여있었다.

"그 총으로 날 죽이겠다고? 계획은 아주 그럴싸하군. 이걸 한 번 보

게."

회장은 화승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화승총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총이지. 발사되느냐고? 아마 되지

는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던 건 500년 전? 600년 전? 하여간

그 무렵의 일일 테니까. 자네는 자네가 들고 있는 K-5를 신뢰하겠지.

하이어드들이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

는 전혀 신뢰하지 않아. 그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거거든. 돈만 있다

면 말이지. 하지만 이 화승총은 결코 아무나 살 수 없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말이야. 그게 자네와 나의 차이점이야."

메이런은 상대가 자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 당황

하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조롱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해질 뿐이었다.

"메이런. 그 총 내려놔."

메이런의 등뒤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메이런은 뒤를 돌아보

았다. 아이라였다. 아이라는 총을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눈빛만은 매섭

게 메이런을 노려보고 있었다.

"날 죽이겠다고 했지, 메이런?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아."

회장이 말했다.

"그, 그래? 이 9밀리 탄을 맞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메이런은 허세를 부렸다.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을 것 같은 분

위기였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허세를 떨지 않으면 지금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내가 설명해 주죠, 메이런."

조가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로웰 중령의 데이터와 우리의 기술로, 포레스트 회

장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어요.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죠. 백치에 가

까운 클론에게 포레스트 회장의 기억을 강제 트랜스 하게 한 거였어

요. 지금 눈앞에 있는 포레스트 회장을 쏜다고 해도 회장은 죽지 않아

요. 포레스트 회장의 본체는 여전히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유지되고

있는 사이에 복제된 수많은 린이 포레스트 회장의 기억을 소유하게 될

테니까요."

조가 말하자 아이라와 메이런은 동시에 말문을 잃었다. 그런 방식으

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건 그 어떠한 휴먼 레이스도 상상해 보지 못

한 일이었다.

"포레스트 회장은 영원한 생명의 대가로 우리에게 영원한 봉사를 주

기로 했어요. 말하자면 상호 협력관계가 형성된 거죠. 우리는 이 일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

만요."

조가 이렇게 말했을 때, 메이런은 조를 겨냥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

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건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포레스트 회장

이 조의 몸에 손을 통과시키며 손장난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

이었다. 어둠 속에서 조의 형상이 빛난 이유는 조가 로즈웰 레이스여

서가 아니라 홀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다.

"총 줘."

아이라가 말했다. 메이런은 힘없이 총을 내렸고, 아이라는 메이런의

총을 받아들였다.

"로웰 중령님은?"

아이라가 회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서 린의 얼굴에 대고 회장이라고 묻는 걸 어색하게 여기는 것 같아 보

였다.

"아, 저건 망가졌어요, 아이라."

"당신을 체포할 수도 있어요, 포레스트 회장님. 당신이 지금 하는 발

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아무리 변

호사가 없다고 해도 저는 용납하지 않아요. 범죄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망가졌다는 건 스스로 죽었다는 말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죠. 이

친구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모든 것들은 누가 죽이지 않아도

스스로 죽는다.' 맞는 말이죠. 다만 나는 스스로 죽지 않는 길을 택한

것뿐이고요."

포레스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큰소리로 웃었다. 마치 통쾌해서 죽

어버려도 좋다는 듯한 호탕한 웃음이었다.

"하여간 아주 재미있었어요. 자기가 클론인지도 모르는 트랜서와, 아

무짝에도 쓸모 없는 한직에 앉아 있는 총경이 찾아와서 이렇게 유쾌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아, 유쾌한 기분을 망쳐서 죄송하지만, 난 가봐야 겠어요, 포레스트

회장."

조의 홀로그램이 말했다. 포레스트 회장은 가볍게 손짓으로 작별인

사를 전했고, 조는 인사를 받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하나 묻죠, 메이런. 도대체 날 왜 죽이려고 한 거죠?"

회장이 물었다.

하지만 메이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복잡하

게 머릿속에 엉켜있는 탓이었다. 메이런은 왜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마을에서 살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트랜서의 능

력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 보지 않았던

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푸우순 시에서 쿨란을 만나 트랜서가 된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복수..."

메이런은 간신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지금까지 자신을 여기까지 밀고 온 관성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순간에 피로가 어깨를 덮쳐왔다. 메이런은 몸을 축 늘어뜨렸다.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가장 좋은 시간에 찾아왔어요, 메이런. 지금

도시는 군이 장악했거든요. 계엄령이 발동 된 거지요. 아마 다시는 이

런 기회를 얻지 못할 거에요. 그리고 정문에서 보안요원들이 당한 순

간, 내 절친한 사병들이 이곳을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을 거에요. 아

마 곧 도착하겠지요."

메이런은 웃고 있는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회장의 얼굴은 린의

얼굴이었지만, 표정은 결코 린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타인을 경멸해 온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자신감과 힘으로 넘치는 표정

이었다. 그 표정은 메이런에게 다시금 분노를 일으키게 해 주었다. 그

리고 목소리들이 다시금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복수라고. 이제는 다시

뛰어야 한다고.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전에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복수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재미있어요. 정말로. 날 죽이겠다고요?

그러면 복수가 되나요? 죽은 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고, 게다가 나는

죽지도 않는다고요."

"그건 나도 알아."

메이런이 말했다.

"그리고 너는 죽어."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여 발목에 차고 있던 38구경을 뽑

았다. 그리곤 린의 얼굴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탄두는 정확하게

포레스트 회장의 미간을 관통하였다. 포레스트 회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잠시 동안 메이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야말

로 잠시 뿐이었다. 회장은 쓰러졌다.

"메이런!"

아이라가 소리쳤다. 그리곤 달려와 메이런의 총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미 총은 발사된 후였다.

"...끝났어. 다 끝났어."

메이런은 터벅터벅 회장이 앉아 있던 의자를 향해 걸어가 그곳에 털

썩 주저앉았다. 모든 것은 의미가 없었다. 역시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

었다. 그 자리에서, 중앙 공원에서 주저앉았어야 옳았다. 차라리 모르

고 있었어야 했다. 아버지도, 회장도, 아이라도, 로웰 중령도 모두...

"컨이 이끄는 부대가 곧 돌아 올 거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메이런이 무엇을 하고 있건 아이라는 일단 눈앞에 닥친 일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라는 두 정의 총을 들고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좋아. 내가 해결하고 오겠어. 메이런. 여기 꼼짝 말고 앉아 있어. 앉

아 있어야 해."

아이라는 이렇게 말하곤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메이런은 노을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 마을

에 있던 망루 위였다. 메이런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메이런의 손은 어

린 시절의 작은 손으로 돌아가있었다. 그 손을 보며, 메이런은 작아져

버렸던 키티-본을 떠올렸고, 그 결과 자신에게 지금 미싱이 찾아왔다

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싱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몹시도 평

안한 것이었다. 메이런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붉은 빛을 바

라보고 있었다.

메이런의 옆에는 호야미가 앉아 있었다.

"이렇게 도망치는 건가?"

호야미가 물었다.

"몰라. 난 그냥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야."

"그래. 지금 너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하겠지. 들으려고 하지 않

을 테니까."

호야미는 이렇게 말하고는 뒤로 몸을 젖혀 망루에 누워버렸다.

"네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별 수 없지. 나도 함께 하는 수 밖에는."

호야미가 말했지만 메이런은 그저 노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

다.

노을은 하루 중 가장 빨리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눈앞의

노을은 영원토록 게속될 노을이었다. 메이런이 거부하지 않는 이상.

메이런의 등 뒤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

다. 메이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조이스의 얼굴과 마주칠 수 있

었다.

조이스는 메이런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메이런은 어디인지 몰라도

조이스를 따랐다. 조이스와 메이런은 망루 위를 지나 포레스트 회장의

안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 응접실에 놓여 있는 피아노

까지 갈 수 있었다.

메이런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 조이스도 자리를 잡았다.

조이스는 메이런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러자 조이스의 손은

사라져버렸다.

다음 순간, 메이런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 곡은 메

이런도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데자뷰의 가락은 우울한 듯 들렸다. 하

지만 그 우울함 속에는 강한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조이스 자

신을 표현한 곡이었다. 조이스와 함께 있는 지금, 메이런은 보다 분명

하게 조이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곡은 느려졌다가 빨라지면서

메이런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것은 생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표

현하고 있었다. 절정에 다달았을 때, 메이런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쾌감이었다. 그리고 살아

야 한다는 쾌감이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자 메이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을은 온데도

간데도 없었고, 메이런은 응접실의 피아노 앞에 서 있었다.

"음악 소릴 들었어."

아이라가 메이런에게 말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꽤 많은 시간

이 흐른 듯 했다. 회장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검게 굳어 있었다.

"이거, 연주할 줄도 알아?"

"지금부터."

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총. 돌려 줘."

메이런이 말했고, 아이라는 순순히 메이런에게 총을 돌여 주었다.

"컨하고는 이야기가 끝났어. 회장은 죽었고, 계약은 파기되었다고 했

어. 아까 회장이 그랬지?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이제부터 특수기동대는

시 치안 유지 병력이 될 거야. 컨은 하이어드야. 내 말을 이해했어.

지금 막 시경으로 돌아갔어, 컨은. 거기서 리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

릴 거야."

아이라가 말했다.

"리퍼는 오지 않아."

메이런은 발목과 홀스터에 각각 K-5와 38구경을 꽂으면서 말했다.

아이라는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묻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

을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메이런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날 체포 할 거야? 범죄에는 예외가 없다면서."

메이런이 물었다.

"응."

아이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메이런은 아이라를 향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메이런?"

아이라가 다시 물었다.

"싸울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거면 되지 않을까?"

"...다시 만나지 않길 바랄 게."

메이런의 말에 아이라가 대답했다. 메이런은 공감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적으로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메이런은 아이라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지금 자신을 구해주었다.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

메이런은 품에 손을 넣어 K-5의 손잡이를 잡았다. 밖에는 포레스트

회장이, 계엄군의 군대가, 로즈웰 레이스 조가, 그 어둡고도 넓은 그림

자가 메이런을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었

다. 메이런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지금 메이런이 왜 뛰어야 하는 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이런은 미싱상태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만

든 쾌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메이런은 아무 말도 없이 아이라를 지나쳐 안전가옥을 빠져나왔다.

아이라도 메이런을 붙잡지 않았다. 둘은 작별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이제 시에는 안개가 걷혀 있을 것이었고, 따사로운 햇살이 도시를

감싸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메이런은 죽을 것이었다. 메이런이 죽였던 생명처럼, 혹은 스스

로 죽어간 수많은 다른 존재들처럼. 하지만 그 순간까지 메이런은 뛰

어갈 것이었다.

그리고, 행성 어스에는 아직도 휴먼 레이스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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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하이어드는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 부분이라 조금 무리해서 한

번에 다 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자축할 일이 있을 때 뭘 하시나요? 저는 오늘 아마도 제

두 번째 소설에 대한 축배를 들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더 좋은 소설로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저

는 잠시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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