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삼도 반란 (34/104)

하삼도 반란

예전부터 조선은 전란이나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 걸 조정에 신속하게 알리기 위해 역참과 봉수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중 연기나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봉수는 현재의 남산인 목면산木覓山 봉수대가 북방과 남쪽에서 올라온 연락이 릴레이식으로 전달되는 마지막 기착지였다.

“으. 추워.”

삼월 초순이었지만 산 정상이라 아직 눈이 다 녹지 않고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기에 솜옷을 두껍게 껴입은 군졸 한 명이 손을 비비며 움막 안으로 들어오자 작은 화톳불을 피워 놓고 있던 동료들이 자리를 만들어 줬다.

“이리 와서 몸 좀 녹여.”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군졸은 따뜻한 열기에 차가운 바람을 맞고 얼어붙었던 몸이 조금 펴졌다.

“이제 살겠네.”

“장작은 잘 덮어 놨지?”

짧은 곰방대를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던 십인장의 물음에 군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혹시 몰라서 천 위에다가 주먹만 한 돌을 올려 두고 왔어요.”

“잘했어. 갑자기 신호를 올릴 일이 벌어졌는데 장작이 물에 젖어 타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수시로 살펴봐.”

“에구. 십인장님도 저희가 이 짓을 한두 해 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누렇게 변색된 천을 둘둘 감싸 귀싸개를 한 군졸 하나가 툭 끼어들자 십인장은 손을 뻗어 들고 있던 곰방대로 군졸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딱!

“아야.”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어젯밤에 졸다가 하마터면 불을 꺼뜨릴 뻔했냐!”

그러자 귀싸개를 한 군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잔 것이 아니라 잠깐 딴생각을 한 거라니까요. 어, 벌써 다 익었네. 십인장님, 이거 한번 드셔 보십시오.”

작대기로 화톳불에 넣어 둔 감자를 하나 꺼내면서 은근슬쩍 말을 돌리자 십인장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그냥 넘어가 줬다.

“괜찮네. 너희들도 먹어.”

“네.”

보통 열 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봉수꾼들은 한번 산에 올라가면 닷새 이상 집에도 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야 했기에 상당히 고단한 일이었다.

밥 대신 잘 익은 감자를 하나씩 들고 맛있게 먹고 있을 때 귀싸개를 한 군졸이 다른 봉수대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기 위해 움막에 뚫어 놓은 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

“왜 그래?”

“시, 십인장님, 저기…….”

말까지 더듬는 군졸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십인장은 남쪽 방향에 있는 봉수대에서 시커먼 연기가 다섯 줄기나 피어오르는 걸 보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저건.”

“헉!”

연기를 다섯 개 모두 다 피우는 건 외적의 침입이나 거기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역시 나이는 그냥 먹은 것이 아닌 듯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군졸들과 달리 이내 정신을 차린 십인장은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큰 소리로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젠장! 어서 봉수대에 불을 붙여.”

“예.”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 군졸들은 봉수대 아궁이에 미리 쌓아 둔 장작더미에다가 횃불을 집어넣었다.

화르르륵.

물에 젖지 않도록 신경 써서 관리한 장작더미는 불이 붙자마자 순식간에 타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으싸! 으싸!”

쑤욱. 쑤욱.

“더 힘차게 바람을 불어 넣어!”

아궁이마다 군졸들이 달라붙어 불길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 정신없이 풀무질을 하는 가운데 십인장은 남쪽 봉수대를 불안한 얼굴로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목면산 봉수대에서 피워 올린 봉화는 바로 도성에서 관측이 됐고 즉시 상부로 보고가 올라갔다.

“군호 어른, 큰일 났습니다!”

집무실에서 휘하 군관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던 박영식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윤형철의 말에 살짝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목면산 봉수대에 봉화가 다섯 개 올라오고 있습니다.”

순간 박영식은 물론이고 모여 있던 군관들이 눈을 크게 치켜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야!”

“네.”

벌컥.

집무실 한쪽 벽에 있는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박영식은 멀리 보이는 목면산 정상에서 다섯 줄기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이럴 수가…….”

“청은 한창 명나라와 전쟁 중이니 아닐 테고 혹시 왜구라도 쳐들어온 걸까요?”

흑치영의 물음에 박영식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다가 며칠 전 도현이 대궐로 은밀히 불러서 했던 지시를 떠올리고는 눈을 빛냈다.

“이걸 예상하고 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군.”

“예?”

“아무것도 아닐세. 난 바로 대궐로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으니, 자네는 비상령을 내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병사들을 모두 소집해 놓고 대기하게.”

“알겠습니다.”

흑치영의 대답을 뒤로하고 박영식은 꿩 깃털과 옥으로 장식된 전립을 챙겨 쓰고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다.

대궐에 도착한 박영식은 때마침 입궐하려는 병조판서 임경업과 만났다.

“대감.”

“봉화 때문에 온 건가?”

“예.”

“나도 그 일로 전하를 뵈러 길이니 함께 가세.”

“그러시죠.”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곧장 도현의 거처인 대조전으로 향했다. 문 밖에 서 있던 칠현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옆으로 비켜 줬다.

“들어가시지요.”

드르르륵.

좌우에 선 궁녀들이 열어주는 미닫이문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친위대장인 신철이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도현은 힐끗 두 사람을 보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쯤 돼서 올 줄 알았지. 어서 와 앉게.”

“네.”

그들이 다급히 달려온 것과 달리 너무나도 태평스러운 도현의 모습에 두 사람은 주춤거리며 신철 옆으로 가서 앉았다.

“차나 한 잔씩 하겠나?”

“전하, 그것보다 지금 목면산 봉수대에 연기가 다섯 줄기 올라오고 있습니다.”

참다못한 병조판서 임경업이 말을 했지만 도현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어. 청이나 왜구가 쳐들어온 건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아직 파발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뭐, 어차피 다 알게 될 거니까 조금 빨리 말해 줘도 되겠지. 하삼도 사대부들이 대동법 실행에 크게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벌일 조짐이 있어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결국 역모를 일으킨 모양이야.”

외적의 침입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사태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도현의 모습에 세 사람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도현이 한양에 앉아 수백 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자기 손금 들여다보듯이 다 알고 있는 것에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삼도 사대부들이라면 조상대대로 넓은 땅을 가지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부리는 일꾼 또한 많은 이들인데 반란을 일으켰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팔걸이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댄 도현은 앞에 있는 임경업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쪽수만 많지 대부분 농사나 짓던 이들인 데다 병장기도 낫이나 죽창 정도가 전부인 오합지졸을 토벌할 자신도 없는 건가?”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에 임경업은 발끈했다.

“아닙니다. 농민군 따위는 수만 명이 몰려와도 다 쓸어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됐군. 박 대장.”

부름을 받은 박영식은 얼른 머리를 들며 크게 대답했다.

“옛, 전하.”

“경을 토벌군 사령관으로 임명할 테니 어명이 떨어지면 즉시 하삼도로 내려갈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설마 근위대를 토벌에 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근위대가 자리를 비우면 도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북벌을 위해 애써 키운 병력이 허무하게 소모되지나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정색을 한 도현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임경업을 보면서 단호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도성에는 든든한 친위대가 있고 부족한 부분은 경기 병영 군사를 일부 데려와 메우면 되지 않겠소. 그리고 난 근위대를 겉만 번지르르한 장식품이 아니라 실전 경험을 갖추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투부대로 육성할 것이오.”

의지가 흘러넘치는 도현의 말에 임경업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근위대 병력이 소모되는 것은 실로 아까운 일이지만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도현의 주장 역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마음 한편으로는 친위대만이 도성에 남게 되는 상황이 계속 걸려 표정이 밝아지진 못했다.

일단 임경업이 조용해지자 도현은 박영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반란군을 토벌할 자신은 있겠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시면 근위대의 무용을 조선 팔도에 널리 떨쳐 보이겠습니다.”

“음.”

자신에 찬 박영식의 대답을 들은 도현은 든든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나도 직접 전투에 참여해서 자네들의 용맹한 모습을 지켜보도록 하지.”

도현의 폭탄선언에 임경업은 물론이고 박영식과 신철마저 놀란 듯 얼굴을 쳐들었다.

“전하, 그건…… 설마 친정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왜,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역도들의 반란에 마음이 편치 않으신 건 십분 이해합니다만, 절대 그것만은 아니 되옵니다!”

임경업은 기겁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리며 도현을 만류했다.

“전하께선 조선의 근본이자 가장 귀하신 신분 아니십니까. 반란이라곤 하나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박영식 장군만으로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무리에 불과한데 만약 전하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그들의 콧대를 더욱 오만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내 병조판서의 말도 일리가 있음은 알고 있소.”

그러나 곧 도현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짐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자들을 박영식 장군에게 맡겨 놓고, 정작 나 자신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뒤로 물러나 있으면 그것이 더 치욕 아니겠소!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하는 의미로 친히 내가 나서서 반란군이 토벌되는 걸 지켜볼 것이오. 그리고 주동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친 후 엄하게 처벌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전하.”

임경업 등이 우려 섞인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끝내 도현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

도현의 지시에 따라 하삼도 사대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함구한 가운데 소식을 들은 대소신료들이 허겁지겁 대궐로 들어와 비상 회의가 열렸지만, 전란이 일어난 것을 뜻하는 연기 다섯 개가 봉수대에 피어오른 걸 제외하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불안감만 잔뜩 조성한 채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전라도에서 올라온 파발이 도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반란이라니, 그게 정말인가!”

눈을 크게 치켜뜬 영의정이 믿기지 않는 듯 재차 묻자 전라도에서 도성까지 수백 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군관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야밤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역도들의 공격에 전주성을 빼앗기고 감사께서는 끝까지 저항하시다가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저런!”

감영이 위치한 전주성이 떨어지고 감사가 역도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에 대전이 크게 술렁거렸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하지만 도대체 반란군이 얼마나 됐기에 그 꼴을 당한 건가!”

좌의정 박황의 질책에 군관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반란군이 족히 기천은 넘는 데다 내부 동조자까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허어.”

“그렇게 많단 말인가?”

기껏 해 봐야 수백 정도를 생각했던 신료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반란군 규모에 다들 사색이 됐다.

거기다가 이어진 군관의 말에 대전 분위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인근 지역에서 사대부들이 노비와 하인 들을 데리고 속속 반란군에 합류하고 있어서 지금쯤 숫자는 더 늘어나 있을 겁니다.”

이 정도면 전라병영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신료들이 술렁거리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현이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세게 내려쳐 좌중을 집중시켰다.

탕!

“감히 조정에 반기를 들고 짐이 내려 보낸 관리를 살해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병판.”

“옛, 전하.”

“지금 당장 토벌군을 조직하고 팔도의 군영에 전갈을 보내 불순한 무리의 준동에 대비하라 이르시오.”

“알겠사옵니다.”

추상같은 명령에 임경업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료들도 단순히 관아를 장악한 것뿐만 아니라 당상관에 해당하는 고위 관리를 살해한 건 명백히 반기를 든 것이었기에 도현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들 표정이 무겁고 침중한 가운데 심기원과 일파들은 평소와 달리 말이 거의 없고 어쩐지 느긋한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미처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심기원을 주시하던 도현은 알 수 있었다.

며칠 뒤 인근 일곱 고을이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는 소식과 함께 대동법 완전 폐기와 의정부議政府의 기능을 강화시켜 달라는 것이 포함된 열두 가지의 요구 사항이 전달됐다.

물론 여기에는 반란 가담 세력의 죄를 묻지 말아 달라는 것도 들어 있었다.

일부 신료들이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조속히 반란을 마무리 짓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도현은 크게 화를 내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동법은 아직 농경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경제를 개혁하는 시발점이자 핵심이 되는 조치였고, 의정부의 권한이 커지는 건 도현이 원하는 왕권 강화와 반대되는 거였기에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한번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어렵게 잡은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고 지금까지 해 놓은 것들이 모두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도 있었기에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을 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나가야 했다.

도현은 토벌에 근위대를 보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친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겁을 한 신료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만류했지만 도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회의를 끝내고 측근들과 함께 대전을 걸어 나오며 심기원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됐군.”

“그러게 말입니다. 주상이 알아서 도성을 비운다니 이거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옆에 있던 권억이 상당히 들뜬 얼굴로 말을 하자 심기원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가볍게 질책을 했다.

“대궐에는 기둥에도 귀가 있으니 말을 가려서 하게.”

“너무 기뻐서 그만…… 죄송합니다.”

그러자 심기원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인 건 확실하니까 자네는 이 사실을 전주성에 있는 반란군한테 몰래 알려 주게.”

“알겠습니다, 대감.”

눈을 반짝인 권억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전라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과 심기원은 서로 몰래 줄이 닿아 있었는데, 겉으로는 류명동이라는 자가 수괴였지만, 그가 뒤에서 모든 걸 조정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대동법 실행에 불만이 많다고 해도 자칫 삼족이 멸할 수도 있는 반란을 쉽게 일으킬 수 없었다.

그날 오후 퇴궐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권억은 수족처럼 부리는 억삼이라는 하인을 불러 은밀한 일을 맡겼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 다른 사람한테 서찰을 보여 주거나 빼앗겨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염려 마십시오, 대감마님.”

방바닥에 엎드린 억삼의 대답에 작게 머리를 끄덕인 권억은 밀봉한 서찰을 건네줬다.

“자, 받아라.”

“예.”

패랭이에 등 뒤로 봇짐까지 맨 억삼은 두 손으로 공손히 서찰을 받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급한 일이니 바로 길을 떠나거라.”

“알겠습니다.”

꾸벅 절을 하고 뒷걸음질로 방을 나간 역삼은 곧장 저택을 떠났다. 도성을 벗어나 마포 나루에 도착한 억삼은 목이라도 축이려는지 근처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스윽 안을 살펴본 억삼은 구석 자리에 한 사내가 삿갓을 쓰고 국밥을 먹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어가 맞은편 자리에 자연스럽게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않았다.

“주모, 나도 뜨끈한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

“금방 갖다 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엉덩이를 흔들며 부엌으로 들어간 주모는 뚝배기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밥을 한 그릇 가져왔다.

“두 냥이에요.”

“여기 있네.”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엽전 두 개를 꺼내서 준 억삼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숟가락으로 국밥을 한입 떠먹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뜨거운 것이 들어가자 차가운 바람에 언 몸이 조금이나마 녹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국밥을 반쯤 비웠을 때 앞에 앉아 있던 삿갓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목적지가 어디지?”

“먼저 약속한 돈부터 주시오.”

“내가 떼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사람 일이라는 것이 원래 모르는 거 아니오. 나도 목숨 걸고 주인어른을 배신하는 거니까 몫은 정확히 챙겨야 되지 않겠소.”

“…….”

흰자를 번들거리며 억삼을 노려보던 사내는 이내 주머니를 하나 꺼내서는 개다리소반 밑으로 밀어 넣었다.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까 봐 냉큼 주머니를 챙겨 든 억삼은 묵직한 느낌에 탐욕이 가득한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이제 말해 봐.”

“전라도 전주로 내려가서 류명동이라는 사람한테 서찰을 하나 전해 주라고 하셨소.”

“지금 류명동이라고 했어?”

“그렇소.”

눈을 반짝인 사내는 몸을 앞으로 살짝 당기면서 다그치듯 말했다.

“서찰을 줘 봐.”

“여기 있소.”

그러자 한두 번 거래를 한 것이 아닌지 억삼은 순순히 품속에서 권억한테 받았던 서찰을 꺼내 넘겨줬다.

투전판에 빠진 억삼은 일 년 전부터 도현 쪽에 포섭돼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기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게.”

통이 넓은 소매 주머니에 서찰을 감춘 사내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막에 있는 여러 개의 방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갔다.

덜컹.

좁은 방 안에는 건장한 덩치의 남자 둘이 앉아 있었는데 삿갓을 쓴 사내는 그중 제일 상석에 있는 사람한테 가서 서찰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상하신 대로 반란군 수괴인 류명동과 우상이 내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찰을 받아 든 남자는 놀랍게도 조선의 뛰어난 명장 중 하나인 이완이었는데, 군부에 배치해 임경업 장군과 함께 북벌을 달성하는 한 축으로 쓴다면 한몫 단단히 해낼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완 장군의 총명한 머리와 충성심을 눈여겨본 도현은 근위대와 함께 앞으로 왕권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주작단 수장에 그를 임명했다.

주작단은 기존 관제에 포함되지 않는 비밀 조직이었는데, 국왕 직속으로 지금까지 봉황상단과 호위대가 맡아서 하던 국내외 정보 수집, 불순분자 감시, 제거 같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봉인이 상하지 않도록 작은 칼을 꺼내 봉투 아랫부분을 잘라 낸 이완은 속에 들어 있던 편지를 꺼내 내용을 살펴봤다.

편지에는 임금인 도현이 직접 친정에 나선다는 것과 토벌대 규모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죽일 놈들.”

북벌이라는 원대한 꿈을 함께하게 되면서 도현의 추종자가 된 이완은 아무리 개혁에 불만이 있다고 해도 조정 대신이라는 자들이 뒤에서 반란군에 정보를 누설하고 있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

“반란군에 이런 중요한 정보를 넘겨준다는 건 주상 전하를 해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야. 원본은 증거로 챙기고 똑같은 필사본을 하나 만들어 집어넣게.”

“예.”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이완이 넘겨준 서찰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준비해 놓은 먹물에 붓을 찍어 하얀 종이에다가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필사본은 언뜻 봐서는 가짜인지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권억이 쓴 글씨와 똑같았다.

“감쪽같군.”

“이 정도면 류명동도 속아 넘어갈 겁니다.”

“그래.”

이완이 흡족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자 삿갓을 쓴 사내는 먹물이 완전히 마르는 걸 기다렸다가 필사본을 봉투에 집어넣고는 풀로 뜯은 곳을 붙였다.

서찰을 품에 넣고 다시 밖으로 나간 삿갓 사내는 어느새 국밥을 다 먹고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고 있던 억삼에게 돌려줬다.

“다 끝나셨소?”

“돌아올 때를 맞춰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답장을 받으면 또 보여 주게.”

“알겠수.”

돈이 생겼으니 투전판에 가서 패를 만질 생각에 억삼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옆에 놔둔 봇짐을 들고 평상에서 일어났다.

삿갓 사내는 그런 억삼의 뒷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한편 목면산 봉수대에 다섯 줄기의 연기가 피어오른 지 보름째가 지나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령들이 도착해 하삼도 지역의 상황을 알려 왔는데 하나같이 비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특히 전주에 이어 경상도 김천에서마저 반란이 일어났다는 파발에 조정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목면산에 피어오르는 봉화와 병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백성들도 변란이 일어났다는 걸 눈치채고 불안해했다.

그런 상태에서 반란군이 관군을 격파하고 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올라오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민심이 급격하게 흉흉해졌다.

포도청과 한성부윤이 나서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관청에 대해 불신감이 커진 백성들은 피난 보따리를 싸고 쌀을 사들이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러자 덩달아 물가마저 폭등해 쌀값이 보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이건 미처 생각을 못 했군.”

하도 대궐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이제 어색하지 않고 제법 잘 어울리는 관복을 입은 장 총관은 자신이 올린 보고서를 읽고 입맛을 다시는 도현을 보며 굳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물가 상승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지만 진짜 문제는 이번 겨울입니다. 반란이 일어난 지역이 식량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삼도인 데다 사대부들이 노비와 소작농 들을 대거 끌어들여 병사로 쓰는 바람에 당장 몇 달 뒤에 해야 될 파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바로 흉작으로 이어져 쌀값이 지금보다 몇 배로 뛰게 될 것이옵니다.”

경제와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경직되고 느린 관료보다는 돈을 만지는 상단이 이런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역사적으로도 전란이 벌어지면 그 뒤에 흉작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노동력이 전장에 끌려가 죽거나 다치고 그마나 남은 사람들도 피난을 떠나 땅이 황폐화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극단적인 예로 임진왜란 전만 해도 백칠십만 결에 달했던 조선의 농경지는 전란 이후에 오십사만 결 이하로 줄어들어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도 국고가 텅텅 비어 도현이 무리수까지 둬 가며 개혁을 추진하는데, 임진왜란의 후유증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고 반란군과 타협할 수는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든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고 하삼도 지역을 평정해야 되겠군.”

“벌써 삼월이라 전후 처리까지 생각할 때 아무리 빨라도 파종 시기를 맞추기는 어려울 테니 올해 농사는 어렵다고 봐야 될 겁니다.”

장 총관의 지적에 도현은 살짝 미간을 모으고는 팔걸이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고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반란군 토벌에 성공하고 심기원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제거한다고 해도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린다면 그가 추진하는 개혁에 바로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대륙이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해 하루라도 빨리 국내를 안정시키고 외부로 뻗어 나가려는 도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반란을 방치하고 은근히 유도하면서 미처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도현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장 총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한테 식량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며 도현이 묻자 장 총관은 차분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삼모작을 해서 쌀 생산이 많은 대월大越(베트남)에 대규모 교역선단을 보내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는 겁니다.”

도현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지.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몰라.”

대월에서 생산되는 쌀은 조선 것과 달리 찰기가 없어 풀풀 날렸지만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데 그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이미 봉황상단이 중국 남부 지역에서 쌀을 가져와 조선에 판매한 적이 있기에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큰 짐을 하나 덜게 된 도현은 활짝 펴진 얼굴로 말했다.

“이 일은 장 총관이 책임을 지고 추진하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원래는 경기 병영 병사들을 불러올리려고 했지만 아직 지난번 역모 사건의 여파에서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그들은 놔두고 대신 황해도 병력이 도성에 들어오자 도현은 드디어 토벌군에 출전 명령을 내렸다.

“병판만 믿고 있겠소.”

황금빛 투구와 갑옷을 입은 도현의 말에 임경업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모시고 가야 되는데…….”

“하하하! 아직도 그 말을 하는 거요? 짐도 병판과 함께 가면 좋겠지만 그러면 도성은 누가 지키겠소.”

“후우. 모쪼록 옥체 보존하시고 대승을 거두고 다시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염려 마시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밝게 웃어 준 도현은 칠현의 도움을 받아 준비된 말에 올라탔다.

대궐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근위대를 든든하단 얼굴로 훑어본 도현은 옆에 있는 박영식한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출발하세.”

“옛.”

말에 탄 채로 군례를 취하며 짧게 대답한 박영식은 손에 든 지휘봉을 위로 치켜들며 크게 소리쳤다.

“출전!”

둥둥둥!

그러자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길게 행군 대형을 갖춘 병사들이 발소리를 울리면서 당당하게 시가지를 가로질러 도성 밖으로 향했다.

척척척!

“잘 싸우고 와!”

“반란군 놈들을 싹 쓸어버려.”

행군 대열이 지나가는 대로변 양쪽에 몰려든 백성들은 반란군을 토벌하러 가는 근위대를 보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응원의 말을 해 줬다.

그리고 황금색 갑옷을 입은 도현이 장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나타나자 바닥에 엎드려 예를 표하며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천세!”

토벌대의 모습을 직접 보자 불안감이 조금은 사그라졌고 임금인 도현이 친정을 한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더 열광했다.

왕가를 연 태조 이성계가 뛰어난 장수 출신인 데도 불구하고 조선의 국왕들은 대궐을 나와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친정은 고사하고 위기가 닥치면 백성들을 내버려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인 임진년에 있었던 선조의 행동이었다.

한양을 사수할 것처럼 하다가 왜군이 코앞까지 밀고 들어오자 야반도주를 해 버렸고 그걸 알고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경복궁이 불에 타 버렸다. 그런 가운데 이처럼 갑옷을 갖춰 입고 말 위에 앉아 병사들을 이끄는 도현의 모습은 신뢰감을 주며 백성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한양 백성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도성을 빠져나온 토벌대는 곧장 한강을 건너 반란군이 있는 전라도를 향해 남하했다.

중간에 구인후 장군이 지휘하는 경기 병영 병력 천 명이 합류해 도벌대 규모는 오천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주작단이 보내온 첩보에 의하면 주변 사대부들의 계속된 가담으로 반란군 숫자가 벌써 만 명이 훌쩍 넘었고 경기 병영 병사 대부분이 근래 새로 모집한 신병이라 훈련이 부족해 여러모로 토벌대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늘어난 군세에 자신감이 생긴 반란군은 토벌대가 출발했다는 소식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본거지인 전주를 나와 금강을 건너 충청도로 올라왔다.

상주에서 들고일어난 이석재 군軍도 류명도와 합류하기 위해 문경새재를 넘어갔다.

경기 감영이 위치한 수원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토벌대에 이런 반란군의 움직임이 시시각각으로 전해졌다.

감영에서 편히 쉬라는 장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도현은 혼자 사치를 누릴 수는 없다며 병사들처럼 천막을 치고 야영을 했다.

그렇게 수원성 밖 벌판에서 숙영하고 있을 때 박영식을 비롯한 토벌대 장수들이 지휘천막으로 찾아왔다.

“허어. 그러니까 이놈들이 겁도 없이 날 마중하러 나오고 있다는 거지?”

“예. 이 상태라면 청주에서 양쪽이 만날 것 같습니다.”

박영식에 이어 경기병사 구인후가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양 군이 합쳐지면 군세가 무려 이만이 넘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전투 경험이 없고 무기가 빈약한 농민군이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차라리 행군 속도를 더 높여 차례차례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만약 이대로 전진을 계속한다면 이만 대 오천으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그건 너무 큰 부담이 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는데 사실 토벌군도 이렇게 대규모로 전투를 치르는 건 처음이었기에 가능하면 위험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았다.

거기다 도현 앞이라 대놓고 내색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되던 조총부대를 주력으로 운용하는 첫 번째 전투였기에 불안감이 더 컸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전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반란군을 각개격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잠시 고심하던 도현은 기대와 달리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아니.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청주에서 일전을 벌여 반란군을 완전히 격멸시키겠네.”

장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전하.”

“각개격파도 좋은 작전이지만 자칫 제때 첫 상대를 격파하지 못한다면 양옆으로 적에게 협공을 당할 위험이 커.”

“그건 내일부터라도 행군 속도를 높이면 하루 정도 여유 시간을 벌 수 있고, 전주에서 올라오는 반란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걸로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인후의 이야기에도 도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단번에 승부를 내지 않고 띄엄띄엄 적을 상대하다 보면 사방으로 달아나는 패잔병 때문에 두고두고 골치를 썩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청주 반란군이 패하는 걸 보고 적이 방향을 바꿔 수성전에 들어가면 불리해지는 건 우리야. 적과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빨리 반란을 마무리 짓고 하삼도를 안정시켜야 된다는 걸 명심하도록 해.”

단순하게 승리만 생각하면 되는 장수들과 달리 국왕인 도현은 이것저것 고려해야 될 것이 많았다.

그의 말대로 전쟁이 길어져 조선의 식량 창고인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 해 농사를 망친다면 그건 아무리 대승을 거두고 토벌에 성공한다고 해도 빛바랜 영광에 불과했다.

옮은 말에 장수들이 별다른 반박을 못 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도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왕 토벌을 하는 거라면 드넓은 벌판에서 당당히 반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는 것이 행여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확실한 경고가 되지 않겠나.”

단순히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결전으로 반란군을 무너뜨려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자 장수들도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력 차이는 크지만, 난 자네들과 토벌대 병사들이 반란군 따위는 거뜬히 무찌르고 내게 승리를 가져다줄 거라고 믿네.”

도현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장수들은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깟 반란군쯤은 몇만이 됐건 다 깨 부숴 버리면 되지요.”

“관군의 힘을 확실히 보여 주겠습니다.”

“하하하! 자네들이 있어 정말 든든하군.”

흡족한 얼굴을 한 도현은 다시 한 번 장수들을 격려하고는 밤늦게까지 반란군을 어떤 식으로 상대할 것인지 구체적인 작전을 세웠다.

다음 날부터 토벌대는 행군 속도를 적절히 조절해 병사들의 체력을 유지한 채 먼저 전장이 될 청주에 도착해서 진을 쳤다.

이런 토벌대의 움직임은 한창 북상 중이던 반란군 수뇌부의 귀에도 들어갔다.

“관군이 청주에 있다고?”

자신들을 충의군이라 부르며 스스로 도독 자리에 오른 류명동의 물음에 맞은편에 앉은 덩치 큰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그는 험악한 얼굴을 더욱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고선 말을 이었다.

“어제 도착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는 걸로 볼 때 아마 청주에서 우리를 맞이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덩치의 이름은 김재득으로 타고난 성격이 호전적이고 난폭했지만 무관 시험에 아깝게 떨어졌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뛰어나 돌격대장을 맡고 있었다.

성격대로 관군과의 싸움이 임박했는데도 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듯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단 말이지.”

무복을 입고 상석에 앉은 류명동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얍삽한 인상의 사내 한 명이 간사한 웃음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사방이 탁 트여 계책을 쓰기 어려운 벌판에서 결전을 벌인다면 병력 우세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니 잘된 일 아니겠습니까. 청나라에 볼모로 있으며 전쟁에 참가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해서 긴장했었는데 이제 보니 다 헛소문인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오.”

꾸준히 군세를 늘리며 충청도까지 진출해서 그런지 반란군 수뇌부는 기세가 등등하며 자신감에 넘쳤다.

이건 류명동도 마찬가지였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대동법 실시를 막고 심기원과 함께 새로운 국왕을 세워 조정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걸 목표로 했지만 어느 때부터 은근슬쩍 더 큰 욕심을 품었다.

바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거였다.

허무맹랑한 꿈이 아닌 게 이대로 토벌대를 격파하고 겁 없이 친정에 나선 도현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도성에 들어간다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처럼 새로운 류씨 왕조를 세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번 전투가 그 꿈을 이루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류명동은 눈을 번득이면서 결단을 내렸다.

“단판 승부로 결정을 내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이번 전투로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만백성들에게 알리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토벌대를 무너뜨리면 한양까지 아무도 우릴 막지 못할 겁니다.”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모두 결전을 벌이는 것에 찬성했는데 수뇌부들의 머릿속에는 패배란 단어는 없고 도성을 점령한 후 어떻게 자리를 나눠 가질 것인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무심천無心川이라는 제법 넓은 강을 끼고 있는 청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동쪽은 제천, 서쪽은 음성, 남쪽은 괴산, 북쪽은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여주로 연결됐다.

강을 따라 만들어진 비옥한 평야 덕분에 곡식 생산도 많았는데 한창 파종을 해야 될 논에는 농부들 대신 살벌한 병장기를 휴대한 군사들이 천막을 쳐 놓고 머물고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가볍게 훈련을 끝낸 토벌대 병사들은 저녁 식사 배급을 받기 위해 각 백인대별로 길게 줄을 섰다.

“다음!”

국자를 손에 든 병사가 큰 소리로 외치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꺽쇠와 돌쇠가 냉큼 그 앞으로 다가섰다.

“거 많이 좀 주쇼.”

“어련히 알아서 퍼 줄까.”

“에이 그래도.”

“아이고 알았네, 알았어.”

두 사람의 성화에 못 이긴 병사는 솥 깊숙이 국자를 넣고 휘휘 저어서 다시 그릇에 부어 주었다.

큼지막한 고기 덩어리가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둥둥 떠 있는 자태에 꺽쇠와 돌쇠는 기쁜 표정으로 돌아섰다.

발을 휘적거려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치운 뒤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는 땅바닥에 대충 걸터앉아 본격적으로 밥을 먹을 준비를 하는데 꺽쇠가 대뜸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알았다!”

“뭘 알아?”

“오늘따라 유독 고기가 많은 이유 말이야.”

“음. 전하께서 같이 오셨기 때문이 아니고?”

“그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단 말이지. 아무튼 꺽쇠 넌 눈치가 없어서 큰일이라니까.”

돌쇠가 낄낄거리며 타박을 하자 꺽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치가 없긴 왜 없어. 너 예전에 내수사에서 노비 생활 할 때 계집종이랑 정분이 나 가지고 큰일 치를 뻔했던 거 기억 안 나? 총관어른이 돌쇠는 어디 있나, 하고 물었을 때 네가 그 자리에 없는 걸 어떻게 변명해야 되나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데. 내가 기발한 수를 써서 변명을 해 줬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손버릇 나쁘다고 곤장을 열 대는 맞아야 했을 걸.”

“얀마, 변명을 해 주려면 제대로 해야지. 설사병이 뭐냐! 덕분에 똥쟁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다른 녀석들까지 놀리는 바람에 얼마나 곤욕이었는지 알아!”

소문이 퍼져 가지고 결국 그 계집종과도 며칠 만에 헤어졌다며 돌쇠가 울분을 터트렸다.

“그래서 결국 그 이유가 뭔데? 왜 오늘따라 고기가 많은지 알겠다며.”

“마, 천민보다 백배천배 나은 게 병사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귀한 고기를 퍼 주는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지. 곧 죽을 목숨,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 두란 거 아니겠어.”

“뭐? 죽을 목숨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싸우러 나왔지 어디 소풍이라도 나온 게 아니잖아. 두고 봐라,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분명 큰 전투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돌쇠는 남은 고기 국을 후루룩 한입에 삼키고 같이 받은 주먹밥을 우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씹어 넘겼다.

“큰일이군. 노비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앞뒤 생각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왜, 무서워?”

“당연하지. 같은 사람끼리 죽고 죽여야 하는데. 너는 안 무섭냐?”

“전혀.”

돌쇠는 기세 좋게 먹어치운 빈 그릇을 발 앞에 탁 내려놓고 얼굴을 높이 쳐들었다.

“난 있지, 우리 엄마 아빠가 노비라 나도 어렸을 때부터 종노릇 하며 살았어. 사람 취급 못 받는 것도, 업신여김 받는 것도 태생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받아들였단 말이야. 너도 그렇잖아, 그치?”

“으응.”

“그런데 전하의 은혜 덕분에 조금이나마 사람다운 생활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란 말이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다시 살고 싶진 않아. 나는 물론이고 나중에 태어날 내 자식한테도 그런 건 물려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알겠어?”

돌쇠는 격앙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이번 전투에서 죽을 각오로 임할 셈이야. 반드시 살아서 노비 신분을 벗어 버리고 말겠어.”

“하지만 죽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살아 있으면 또 뭐 할 건데? 지금 우리 신분으로 뭘 더 할 수 있겠어. 꺽쇠야, 잘 들어라.”

돌쇠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지금이 바로 승부를 볼 때야. 나라님이 주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역전의 기회라고.”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돌쇠의 말을 듣고 있던 꺽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꺽쇠도 마음속으로는 희미하게 느끼고 있던 것이지만,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하고 있던 자신의 등을 돌쇠가 힘껏 밀어 준 기분이었다.

“아.”

“왜?”

“저기, 주상 전하시다.”

꺽쇠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방향 끝엔 갑옷을 두르고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기는 도현과 그를 수행하는 장수들이 있었다.

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던 병사들도 도현의 출현을 알아차렸는지 웅성거리는 기색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현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기분 좋게 들이마시곤 옆에 있던 박영식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식사가 한창인 것 같군. 배식 담당에게 내 말은 잘 전했겠지?”

“예. 분부하신 대로 오늘내일만큼은 들고 온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영양가 있는 식단으로 만들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음식 냄새가 풍기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군.”

도현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병사들이 식사를 배급받는 줄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바람에 섞여 고기 특유의 기름진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사들이 오늘만이라도 마음껏 기뻐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나?”

“예에.”

도현의 말끝에 담긴 씁쓸한 어조를 알아채고 박영식은 뭐라 할 말도 없이 그저 애매하게 대답했다.

내일이면 이 중에 몇 명이 죽어 시체가 될지 모르는데, 적어도 밥만큼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은 건 당연하다.

게다가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명령을 내리는 주체가 도현 자신이니만큼 죄책감과 측은지심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어찌 말로 위로할 수 있으랴.

“전하, 바람이 찹니다. 막사 안으로 드시지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떠드는 병사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만 약해진다.

그의 착한 심성을 잘 알고 있는 박영식은 도현이 괴로울까봐 넌지시 막사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손에 잡은 지휘봉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니, 이왕 나왔으니 한 바퀴는 다 돌아봐야지 않겠나.”

“그래도…….”

도현은 만류하는 박영식을 뿌리치고 혼자 앞으로 나섰다.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내심 속으로 결심한 게 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백 명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다 보듬어 안아 줄 수는 없다.

도현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반발하며 무력까지 꺼내 드는 무리가 생길 수도 있는 법.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내버려 두겠지만, 창칼을 휘두르며 아무 관련 없는 백성들의 안위까지 위협하는 자들은 철저히 밟아 줄 것이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에겐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자.

내가 가진 지식, 권력, 힘.

그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 약한 민초들을 보살피는 어진 성군이 되겠다고 그리 다짐했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희생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어 평생 도현의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을 것이다.

“가세. 밤이 되기 전에 숙영지를 다 돌아보고 나서 나중에 또 작전 회의를 해야지.”

“네.”

도현은 등 뒤에 길게 드리운 망토를 펄럭이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눈빛으로 돌아섰다.

다음 날 돌쇠가 예상대로 경상도에서 올라온 병력과 합류한 반란군이 전방에 모습을 나타냈다.

말이 이만 명이지 반란군은 드넓은 벌판을 가득 메운 채 마치 수많은 개미 떼가 다가오는 것처럼 전방을 뒤덮었다.

임시로 세운 지휘용 망루에 올라간 도현은 담담한 얼굴로 적을 쳐다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많이도 끌어모았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수십만 대군이 맞붙어 싸우는 것도 봤기에 별다른 동요가 없는 도현하고 달리 박영식과 장수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승리를 자신했지만 자신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병력 앞에 마음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수들이 이런데 하물며 직접 병력 차이를 눈으로 확인한 병사들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가 저렇게 많아?”

“젠장.”

“이대로 다 죽는 거 아냐? 적이 저렇게 많은데 무슨 수로 이기겠어.”

옆에 선 꺽쇠가 겁먹은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자 돌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안 죽어. 대가리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어중이떠중이들일 뿐이야. 그동안 지옥 같은 훈련을 받고 이런 좋은 무기까지 가진 우리가 질 리 없어.”

“맞아!”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저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거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훈련받은 대로만 움직여!”

“해보자고.”

대형 요소요소에 배치된 하급 군관과 선임병 들이 목소리를 높여 사기를 끌어 올리자 흔들리던 병사들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망루에서 그런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켜본 도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훈련이 잘되어 있군.”

살짝 고개를 숙인 박영식은 이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정말 계획대로 움직이실 겁니까?”

“그래.”

약간의 망설임도 없는 도현의 대답에 박영식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가 클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먹힌다면 손쉽게 승리를 거두게 될 거야.”

확고한 도현의 태도가 아니더라도 이미 적이 코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작전을 바꾸기는 어려웠기에 박영식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애써 키운 부하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어차피 국왕과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치는 것이 군인의 운명이자 맡은 바 임무였기에 박영식은 마음을 다잡고는 한쪽에 서 있는 신호수에게 시선을 줬다.

그러자 신호수는 전투 준비를 알리는 붉은색 깃발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한편 반란군 수괴인 류명동은 말 위에 올라탄 채 앞에 보이는 관군을 거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봉황 깃발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정말 국왕이 친정에 나선 모양이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류 도독.”

“왜 그러시오?”

류명동이 시선을 돌리자 경상도에서 반란군 팔천을 이끌고 합류한 이석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수적으로 우세하다지만 그래도 상대가 잘 훈련된 관군인데 시간을 조금 더 두고 살펴본 후에 전투를 벌이는 것이 낫지 않겠소?”

합류한 이후부터 결전을 벌이는 것에 부정적인 이석재가 탐탁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가 데려온 병력이 필요했기에 류명동은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

“그랬다가 자칫 다른 지역에 있는 관군들이 오게 되면 오히려 우리가 불리해질 수도 있으니, 지금은 속전속결로 토벌대를 격파하고 한양까지 밀고 올라가야 되오.”

“하지만…….”

계속 주저하면서 신경을 건드리자 류명동은 상대를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렇게 겁이 난다면 내 휘하에 있는 병사들만으로 토벌대를 상대할 테니 공은 그냥 구경만 하시오.”

그러자 이석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약간 화가 난 어투로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아무튼 난 전투를 미룰 생각이 없으니까 알아서 하시오.”

통보하듯 말을 내뱉은 류명동은 병사들을 다그쳐 전투 준비를 했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그걸 보던 이석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오른팔인 윤형주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을 준비시키게.”

“예.”

마치 자신이 윗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류명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란에 가담한 이상 어떻게든 성공을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었기에 이석재는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는 걸 누르고 정면에 있는 토벌대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잠시 뒤 전투 시작을 알리는 긴 뿔고동 소리와 함께 반란군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뿌우우웅! 뿌우우웅!

“시작이군.”

막상 전투를 앞두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진 도현은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좌우에 도열해 있는 토벌대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다들 적군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불안한가! 그래 봤자 훈련도 제대로 안 된 오합지졸일 뿐이다. 그대들이 받은 훈련과 손에 쥐고 있는 무기라면 저따위 허수아비들은 이만이 아니라 이십만이라고 해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란군들은 내가 저지른 폭정을 막기 위해 궐기했다고 하지만, 대동법이 무엇인가? 바로 온갖 부정과 과중한 부담에 힘겨워하는 민초들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주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 건 지금까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배를 불려 온 자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일 뿐이다. 오늘 전투로 그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 주자!”

한 박자 쉬며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병사들을 훑어본 도현은 결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짐은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다. 날 믿어라!”

도현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압박감을 말끔히 떨쳐 낸 병사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를 위로 치켜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아!”

그런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도현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토벌대가 함성을 지르며 기세를 올리자 류명동은 콧방귀를 뀌고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가소로운 것들! 다 쓸어버려라!”

둥둥둥! 둥둥둥!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명령이 떨어지자 반란군 병사들은 일제히 도열해 있는 토벌대를 향해 돌격했다.

“앞으로!”

“와아아!”

단번에 승기를 잡기 위해 반란군 수뇌부는 처음부터 총공격을 펼쳤다.

이만에 달하는 대군이 한꺼번에 돌격해 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는데, 마치 거대한 해일이 덮쳐 오는 것 같아 토벌대 병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자 토벌대 장수와 하급 군관 들은 휘하 병사들을 다독이며 곧 벌어질 전투에 대비했다.

“진정해라!”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명령대로만 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예병답게 토벌대 병사들은 한 명도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때 뒤편에 있던 화포들이 제일 먼저 불을 뿜었다.

“쏴!”

꽝! 꽝! 꽈꽝!

슈우우웅!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포탄은 적들 사이에 정확히 떨어졌다.

단순한 철환에 불과했던 예전 포탄과 달리 도현의 지시로 개량한 신형 포탄은 땅에 부딪치거나 공중에서 터지며 수많은 파편을 뿌렸다.

날카로운 파편에 맞은 병사들은 사지가 잘려 나가거나 큰 부상을 입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으악!”

“컥.”

기껏해야 화살 정도를 생각했던 반란군 수뇌부는 화포 공격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아니, 무슨 화포의 위력이 저렇게 큰 거요?”

“그, 글쎄올시다.”

수뇌부 중 하나가 당황해서 묻는 말에 성급하게 맞붙어 싸우는 걸 반대했던 이석재가 낮게 침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주상이 등극한 이후 군비 확충에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대궐과 도성을 지키는 군대에 신무기를 많이 배치했다고 하더니만 그중 하나인 것 같소.”

“으음.”

그러자 류명동이 인상을 쓰면서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 한 수를 준비해 둔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거리를 좁히고 근접전에 들어가면 숫자가 많은 우리가 유리할 것이오!”

“맞습니다.”

류명동의 말에 잠깐 침체됐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지만 이석재와 몇몇 병법에 밝은 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포격에 피해를 입으면서도 꾸역꾸역 전진해 간 반란군은 팔십 보 거리까지 접근했다.

망루에 있던 도현은 이제 지척까지 다가온 반란군을 보며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제법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천둥소리를 내며 파편을 쏟아 내는 포격을 받으면 대열이 완전히 흐트러질 줄 알았는데 꽤 버티는 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계속 승리를 거둬 사기가 올라가 있을 테니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망루 밑에서 대기 중인 조총병들이 사격 태세를 갖췄다.

“일 열 앉아!”

“탄환 장전!”

군관의 지시에 대열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근위대 소속 총병들은 능숙한 동작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탄환과 화약을 꺼내 장전했다.

“거총!”

처처처척.

이어진 구령에 총병들은 개머리판을 한쪽 어깨에 대고 조총을 들어 올렸다.

“조준!”

하급 군관의 말에 돌쇠는 훈련받은 대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한쪽 눈을 감은 채 앞을 쳐다봤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격 훈련을 했지만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을 겨냥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총구 끝에 붙은 가늠자 너머로 반란군 병사의 모습이 보이자 돌쇠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는 한쪽 뺨을 조총에 붙이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그때 한쪽에 서 있던 흑치영이 들고 있던 검을 아래로 내리며 크게 소리쳤다.

“발사!”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시뻘건 불꽃이 총구에서 토해져 나왔다.

타타타탕! 타탕! 탕! 탕!

시큼한 냄새와 함께 뿌연 화약 연기가 주위를 뒤덮었고 앞으로 달려오던 반란군 병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썩은 짚단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으아악.”

“큭!”

“끄헉.”

맞히기 좋게 한데 뭉쳐 있는 데다 이천오백 개에 달하는 조총이 한꺼번에 발사되자 반란군 돌격 대형 선두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총병들은 지휘관들의 외침에 따라 재빨리 주머니에서 총알과 화약 뭉치를 꺼냈다.

“재장전. 쏴!”

재차 이어진 명령에 총병들은 장전을 끝내자마자 지체 없이 사격을 가했다.

귀청을 찢는 총성이 울릴 때마다 날아온 총탄에 동료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나자빠지자 반란군 병사들은 겁에 질려 어느새 돌격을 멈춘 채 주춤거렸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류명동이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킨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계속 돌격해 들어가지 않고 뭘 하는 거야!”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 큰 것 같소.”

안 그래도 화가 나 미치겠는데 눈엣가시 같은 이석재가 툭 끼어들어 짜증을 돋우자 류명동은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리고는 버럭 소리를 쳤다.

“그래서 이대로 물러서기라도 하자는 거요!”

“병법에 이르기를 자고로 장수는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된다고 했소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후퇴를 해야 될 때인 것 같소,”

“한가한 소리 하지 마시오! 지금까지 계속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여기서 토벌군에 패한다면 병사들은 물론이고 수뇌부까지 크게 흔들릴 거요. 그걸 공이 다 감당할 자신이 있소?”

“그건…….”

다그치듯 묻는 말에 이석재는 금방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반란군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거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 보여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뭉친 집단이라 결속력이 형편없어, 큰 패배를 당해 거사가 실패할 수 있다는 조짐이 약간이라도 보이면 바로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위험성이 컸다.

“병사들 대부분을 여기서 잃더라도 임금을 사로잡아 도성에 들어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오.”

“으음.”

마음에 안 들었지만 현재로써는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이석재와 반란군 수뇌부는 낮게 침음성을 흘리고는 아무런 반박을 못 했다.

그러자 류명동은 옆에 있던 김재득을 보며 지시를 내렸다.

“자네가 직접 예비대를 끌고 가 전투를 독려하고 관군 대열을 무너뜨리게.”

“옛.”

크게 대답한 김재득은 한 손에 검을 든 채 말 옆구리를 발로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본진에 남아 있던 병력 사천 명이 따랐는데 예비대까지 쓴다는 건 류명동이 승부수를 띄웠다는 뜻이었다.

“공격해라!”

“머뭇거리는 놈들은 나 김재득이 직접 머리를 베어 버리겠다.”

예비대가 가세하고 류명동 집안의 노비들로 이루어진 독전대가 뒤에서 살기를 뿌리며 병사들을 압박하자, 처음보다 기세가 줄어들었지만 반란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양쪽이 맞붙어 백병전이 벌어지면 여전히 숫자가 우세한 반란군에 자칫 토벌대가 파도에 흔들린 조각배처럼 휩쓸려 버릴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망루에 선 도현은 약간의 동요도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걸 지켜봤다.

“부나방 같은 것들! 신기전 부대 앞으로!”

망루에 있던 신호수가 노란색 삼각 깃발을 흔들자 신기전 발사대를 장착한 수레 오십여 대가 총병 대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신기전은 곡사로 멀리 있는 적을 타격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근위대가 가져온 것은 개량을 해서 직사 공격도 가능했다.

“발사!”

지휘 군관의 외침에 병사들이 뒤에 달린 화약통에 불을 붙이자 장전되어 있던 대형 화살 수천 개가 일시에 앞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쉭! 슈슈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발사된 대형 화살은 달려오던 반란군 병사를 덮쳤다.

“커헉.”

“으윽!”

“꾸엑.”

길이가 일 미터가 넘는 데다 뒤에 화약통까지 달린 철제 대형 화살은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던 반란군 병사들의 몸을 한꺼번에 두세 명씩 꼬치 꿰듯이 뚫어 버렸다.

이건 조총과 또 다른 충격이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처참한 모습으로 목숨을 잃는 걸 본 반란군 병사들은 애써 눌렀던 공포에 다시 휩싸였다.

거기다가 화포병들과 총병들이 쉬지 않고 계속 사격을 가하자 돌격은 금방 중단됐고, 화약 연기로 뒤덮인 전장은 반란군 병사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이며 피가 강을 이뤘다.

적군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고 판단한 도현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혼란에 빠진 적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려라. 공격!”

돌격 지시가 떨어지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기 감영 소속 창병 천 명이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고, 근위대 소속 총병들도 장전된 총탄을 마저 다 쏘고는 재빨리 허리띠에서 총검을 꺼내 조총 끝에 부착하고 백병전에 가세했다.

“우와아아!”

“가자!”

“다 쓸어버려!”

계속된 타격에 피해가 컸지만 그래도 여전히 반란군 병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하지만 매캐한 화약 연기 속에서 순식간에 몇천이나 되는 동료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걸 보고 이성을 잃은 반란군 병사들은 제대로 싸워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뒤로 돌려 도망치기 바빴다.

“히익.”

“도, 도망쳐.”

“이런 바보 같은 놈들! 아직 우리가 더 숫자가 많다. 어서 싸우란 말이다!”

분노한 류명동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질러 댔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반란군 병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채챙! 챙!

“죽어!”

“끄아악.”

“컥.”

뒤를 덮친 토벌대가 휘두르는 병장기에 반란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혼란은 더 극에 달했다.

“물러서지 마라! 달아나면 목을 베겠다.”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린 김재득은 아무리 소리를 쳐도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자 급기야 진짜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도망치던 병사의 등에 쑤셔 박았다.

푸욱.

“허억.”

원망에 찬 얼굴로 눈을 부릅뜬 병사는 답답한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고 주위에 있던 반란군은 그걸 보고 달아나던 걸 멈추고 주춤거렸다.

검을 뽑아 묻어 있는 피를 털어 낸 김재득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병사들을 쓸어보며 위협했다.

“내 손에 죽기 싫으면 어서 적과 싸워라!”

“으으.”

김재득과 토벌대 사이에 서서 반란군 병사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우렁찬 호통이 터져 나왔다.

따각따각!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마!”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은 바로 흑치영이었는데 등에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고 손에는 자루까지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커다란 언월도가 들려 있었다.

웬만한 이들은 모습만 봐도 위축될 정도로 강한 기세를 풍겼지만, 나름 지닌 무예 실력에 자부심을 가진 김재득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 옆구리를 발로 차며 마주 달려갔다.

“그 코를 납작하게 해 주지!”

츄앙!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김재득이 있는 힘껏 아래로 내리쳤지만 흑치영은 언월도를 한 손으로 잡고 옆으로 들어 올려 간단히 공격을 막아 냈다.

쇳소리만 울리고 공격이 막히자 힘에는 자신이 있었던 김재득은 눈을 크게 치켜뜨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흥! 고작 이 정도로 큰소리를 친 거냐. 이제 내 차례다.”

창대로 검을 밀어낸 흑치영은 힘찬 기합성을 내지르며 언월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히야압!”

“헉!”

화들짝 놀란 김재득이 다급하게 검을 들어 방어를 했지만 힘에서 밀렸다.

기기기긱!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며 검신을 타고 올라간 흑치영의 언월도는 결국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식은땀까지 흘리며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김재득의 목을 베어 버렸다.

슈팍!

“으. 으악!”

목이 잘린 김재득이 힘없이 말에서 굴러떨어지자 흑치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항복하면 살려 준다. 어서 무기를 버려라!”

그러자 이미 전의를 상실한 반란군 병사들은 무더기로 병장기를 땅에 버리며 항복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항복합니다.”

오른팔인 김재득이 허무하게 죽는 걸 목격한 류명동은 넋이 반쯤 빠진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이제 다 틀렸소. 남은 병사들이라도 수습하려면 지금이라도 후퇴 명령을 내려야 하오!”

이석재의 말에 류명동은 거칠게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아니야. 이렇게 허무하게 물러설 수는 없어.”

어떻게 회복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울었는데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류명동이 고집을 부리자, 이맛살을 찌푸린 이석재는 주위를 둘러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류 도독은 충격을 받아 도저히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으니 지금부터 내가 대신 명령을 내리겠소. 즉시 모든 병력을 보은까지 후퇴시키시오!”

지휘권 교체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인 만큼 이석재 측 인물들은 물론이고 류명동을 수장으로 하는 충의군 수뇌들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예.”

즉시 후퇴 명령이 전파됐고 본진도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후퇴!”

“모두 보은까지 후퇴하라!”

이미 대부분의 병사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 중이었지만 그나마 정식으로 후퇴 명령이 내려지자 막무가내로 달아나던 것이 약간은 질서가 잡혔다.

하지만 이대로 반란군이 전장을 빠져나가도록 가만히 놔둘 도현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가 왔군.”

도현이 작게 중얼거리며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신호수가 이번에는 효시를 쐈다.

삐이이익!

화살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이내 반란군이 달아나는 방향에서 뿌연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며 일단의 기마대가 나타났다.

두두두두.

“기병대는 한 놈도 여길 빠져나가게 만들지 마라. 돌격!”

“우와!”

“이랴!”

선두에 선 박영식의 외침에 천여 기가 넘는 근위대와 경기 병영 연합 기병대는 고함을 지르며 검 등으로 타고 있는 말 엉덩이를 때려 속력을 높였다.

막 전장을 빠져나가려던 이석재와 반란군 수뇌부는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는 기병을 보고 기겁했다.

“이런!”

황급히 좌우를 둘러봤지만 사방이 확 트인 벌판에서 말을 탄 기병을 따돌리고 도망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뭣들 하느냐! 호위병들은 수뇌부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방어 대형을 만들어라. 어서!”

유일한 방법은 주위에 있는 호위병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조금이라도 달아날 시간을 버는 거였다.

수뇌부에 속한 사대부들의 집안에서 데려온 가솔들로 이루어져 일반 반란군 병사보다 충성심이 높다지만 죽음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주인을 지키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시에 따르기는커녕 호위대가 먼저 병장기를 팽개치고 달아나 버리자 이석재와 반란군 수뇌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 이놈들이!”

“괘씸하지만 지금은 빨리 여길 피하는 것이 먼저요.”

“으음.”

마치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후퇴하는 반란군 사이를 치고 들어와 마구 검을 휘둘러 병사들을 죽이는 기병대의 모습은 수뇌부를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허둥지둥 방향을 틀어 다른 탈출로를 찾았지만 어느새 토벌대가 사방을 포위해 버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이히힝!

채챙! 슈각!

“으윽.”

“크헉.”

애초에 정예인 토벌대 기병과 반란군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그런 데다 사기마저 바닥이었던 반란군은 조직적인 저항은 고사하고 살기 위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다가 달려온 기병대가 무심하게 휘두르는 칼날에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적과 달리 기병대는 마치 한 덩어리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를 학살해 나갔다.

앞뒤로 꽉 막혀 버린 반란군은 결국 도주를 포기하고 손을 번쩍 들며 항복하는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이런 가운데 전장을 탈출하기 위해 말을 타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반란군 수뇌부는 빠르게 포위망을 좁힌 토벌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하하하! 이제 끝났다. 포기해라.”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피에 흠뻑 젖은 언월도를 겨눈 흑치영의 외침에 반란군 수뇌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고는 토벌대 기병과 보병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자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힘없이 떨궜다.

“크으.”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수뇌부가 잡히고 얼마 있지 않아 반란군 병사들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서 아침부터 시작돼 늦은 오후에 끝난 상주 전투는 토벌대의 대승으로 마무리됐다.

“우와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어딜 감히 주상 전하께 반기를 들더니 꼴좋다.”

“그러게.”

“주상 전하! 천세! 천세!”

병사들은 각자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기뻐했고 망루에 있던 도현도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전하, 대승을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장수들의 축하 인사에 도현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이게 다 열심히 싸워 준 장졸들 덕분이야. 전장 정리가 끝나면 오늘 밤 술과 고기를 풀어 고생한 병사들을 위로해 주도록 하게.”

“병사들이 크게 기뻐할 것이옵니다.”

신형을 돌린 도현은 망루 아래에서 자신을 보며 양팔을 들어 올리고 함성을 내지르는 병사들을 가만히 훑어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야.”

이날 전투에서 반란군은 오천 명이 죽거나 다치고 만오천이 포로가 된 것에 반해 토벌대는 사백 명도 안 되는 사상자만 냈다.

정말 압도적인 승리였는데 대규모 회전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토벌대의 피해가 적은 건 주로 조총과 화포, 신기전 같은 원거리 화약 무기로 시작부터 중반까지 반란군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반군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었다. 포로로 잡은 반란군 병사들의 사후 처리가 아직 남아 있었는데, 관례대로라면 국왕에게 반기를 든 대역 죄인들은 모조리 사형에 처하고도 남았지만 도현에겐 또 다른 속내가 있었다.

“죄인을 데려와라!”

쩌렁쩌렁하게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험상궂은 인상의 병사가 옥에서 한 사내의 팔을 잡아끌고 억지로 일으켰다.

“네 차례다. 자, 얼른 일어나!”

“예, 예이.”

옥에는 사내 말고도 비슷한 몰골의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다들 포로로 잡혀 온 자들이었는데 대부분 그 신분이 일반 양민도 아닌 천민으로, 이번 반란의 주동자 격인 사대부가 거느리던 노비나 소작농 들이었다.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그저 상전이 오라고 해 끌려왔다가 눈 한번 깜짝하면 목이 날아가는 살벌한 싸움터에 등을 떠밀렸으니, 그들로서도 졸지에 역적이 된 게 억울하긴 했으나 천민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법.

그저 벌벌 떨면서 조정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운 뒤였다.

병사의 재촉을 받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옥을 나선 사내는 거친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찌르는 듯한 강한 햇살에 눈을 꿈벅거리다가, 병사의 매서운 눈초리에 찔끔하고선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자 곧이어 머리 위에서 엄한 호령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이놈!”

“예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냉큼 이마를 바닥에 대고 넙죽 엎드렸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저, 저는…….”

국왕에게 반기를 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싸움에 나서야 된다는 것도 여기 끌려오고 나서야 알았다 등등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많았으나, 입에 채 담기도 전에 다시 의자에 앉은 경기 병사 구인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대역 죄인이 감히 어디서 주절주절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려 드는 게냐!”

탕!

한쪽 손바닥으로 의자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에 사내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아, 아닙니다요.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요!”

손을 싹싹 빌면서 애원하자 그제야 구인후는 화가 좀 가라앉은 듯 헛기침을 했다.

“좋다. 그럼, 능히 삼족을 멸하고도 남을 대역죄를 저질렀다는 걸 본인이 잘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는 구인후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사내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무리 천민의 목숨이란 것이 주인의 말 한마디에 왔다 갔다 할 만큼 값어치 없는 것이라지만, 삼족을 멸하다니.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노쇠한 부모가 생각나 절로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허나…….”

구인후가 문득 어조를 바꿔서 말했다.

“자비로우신 주상 전하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셨느니라.”

“네, 네?”

“너희가 상전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비 신분이란 것, 단순히 끌려왔을 뿐 반역에 가담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하시어 향후 십 년 동안 국가에 봉사하며 성실히 맡은 일을 잘 수행하였을 경우,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천민 신분을 벗고 양민이 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조하셨다.”

“그, 그럼!”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사내가 퍼뜩 얼굴을 들자 구인후가 다시 부리부리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호통을 쳤다.

“어허!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아이고,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숙인 사내는 숨을 죽인 채 다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자아, 어찌하겠느냐? 주상 전하의 명을 받들어 십 년 동안 일을 하겠느냐, 아니면 죄인으로서 처벌을 받겠느냐?”

구인후의 물음에 사내는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나라님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아니, 평생이라도 계속 일하겠습니다!”

어차피 천민으로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계속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이번엔 단지 그 대상이 여태까지 주인으로 모시던 사대부에서 국왕으로 바뀌는 것뿐이니, 대역 죄인으로 죽는 것에 비한다면야 백이면 백 전자를 택할 것이다.

“좋다. 네 그리 약조하였으니 증거를 남겨야지. 여봐라.”

“예.”

구인후의 명에 왼쪽 편에 서 있던 군관이 무언가 글자가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사내의 앞에 들이밀었다.

“이건 죄를 받는 대신 십 년간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서약서이니 내용을 잘 읽어 보고 수결을 하라.”

“저, 죄송하지만 저는 글자를 모르옵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진 사내가 그리 말하자 군관은 상관없다는 듯 손바닥을 내밀라고 시켰다.

“여기에 까맣게 먹칠을 하고…… 자, 됐네.”

군관이 시키는 대로 손바닥에 먹칠을 한 사내는 비어 있는 종이 아래 부분에 손도장을 꾸욱 눌러 찍었다.

“이걸로 된 것입니까요?”

“그래.”

천민들 대부분은 까막눈일 테니 이렇게 지장을 찍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 됐으면 저쪽으로 가게.”

군관의 지시에 따라 또 다른 병사가 사내의 한쪽 어깨를 부여잡고 아까 왔던 방향하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겨우 하나가 끝났군.”

“인원이 많으니 좀 더 빨리 진행하여야겠습니다.”

“음.”

군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구인후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음!”

그렇게 반란군 병사들을 하나씩 옥에서 끌어낸 구인후는 강하게 윽박을 지르고 난 뒤 살짝 풀어 주면서 십 년간 강제 노역을 하겠다는 서약서에 지장을 받았다.

역모에 휘말린 이상 다 사형에 처해 버려도 할 말이 없었지만 이만에 가까운 많은 사람을 모두 죽일 수는 없었고, 거기다가 대부분이 상전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단순 가담자였기에 혹독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더 껄끄러웠다.

그래서 도현이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십 년 강제 노역형이었다.

개혁과 함께 실시될 수많은 토목공사에 필요한 인력을 싼 값에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포로들도 목숨을 건질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묘안이었다.

물론 모든 포로들에게 인정을 베푼 건 아니었는데, 반란군 수뇌부와 적극 동조한 병사들은 다시는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 사형을 내려 일벌백계했다.

그 전에 동조한 세력과 인물들의 자백을 받았는데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했는지 반란군 수뇌부들은 이틀이 되지 않아 모두 무릎을 꿇고 아는 걸 술술 다 불었다.

이렇게 알아낸 것들은 보기 좋게 정리되어 도현한테 보고됐다.

반란에 가담한 사대부들의 이름과 죄상이 세세하게 나열된 두꺼운 보고서를 하나씩 넘겨 보던 도현은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꽤 많군.”

“하삼도에서 제법 방귀 좀 뀐다는 집안과 인물을 대부분 다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수뇌부 심문을 맡은 박영식의 말에 도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동법이 실시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이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도 지금까지 양반이라는 것 때문에 온갖 특혜를 누려 온 자들일 테니 당연히 반발이 컸겠지.”

차분히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도현은 뭘 봤는지 눈을 반짝이면서 머리를 들었다.

“이건 뭐야? 한양 시전상인市廛商人 김막동.”

“예. 공납 업자들과 이권이 얽힌 한양 시전상인들도 반란군 쪽에 상당한 재물을 지원한 걸 알아냈습니다. 그 김막동이라는 자는 육의전에서 큰돈을 번 거부로 시전상인들의 대표라고 하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설명을 들은 도현은 뭔가 음모(?)를 꾸밀 때 짓는 눈빛을 하고 보고서에 적힌 김막동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꼭 큰 사고를 친다는 걸 알기에 박영식은 약간 불안한 얼굴로 도현을 쳐다봤다.

“그건 그렇고 하삼도에 보낼 병력은 준비가 다 끝났나?”

“예. 포로들을 감시할 병력을 빼고 경기 병영 군사 오백과 근위대 총병 이천 명을 구인후 병사와 흑치영이 각각 절반씩 이끌고 내려가서 잔존 세력을 모두 정리할 것이옵니다.”

“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이기에 웬만한 양반 집마다 노비를 이삼십 명씩은 거느리고 있을 텐데 그거로 감당이 되겠나?”

“내일이면 충청 병영 군사 이천이 추가로 합류하니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되옵니다.”

반란군을 전멸시킨 도현은 바로 칙서를 보내 방어를 위해 각 고을과 성에 들어가 있던 충청 병영 군사들을 불러들였다.

“그래도 사대부들이 노비와 소작농을 끌어모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반란군이 토벌됐다는 소식이 퍼지기 전에 신속하게 잔존 세력을 정리하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다음 날 흑치영과 구인후가 각각 이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이끌고 본진을 떠나 전라도와 경상도로 내려갔다.

머물던 군영을 수용소로 개조해 포로들을 수용한 도현은 포승줄에 꽁꽁 묶인 반란 수괴들을 수레에 태우고 귀환 길에 올랐다.

무거운 화포를 가진 포병대는 천천히 올라오도록 하고 기병만 대동한 채 움직였기에 도현은 청주를 떠난 지 이틀도 안 돼서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정에 나선 지 정확히 열흘 만에 토벌을 끝내고 귀환한 거였는데 일부러 전령을 보내 승전 소식을 알리지 않아 도현 일행이 한양 성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도성에서는 전투 결과를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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