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정벌 1
해가 바뀌어 1646년이 되자 조선은 도현이 추진하는 개혁이 하나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제일 두드러지게 달라진 곳 중 하나가 바로 군부였는데 도성을 지키는 근위대가 이만 이천 명으로 늘어났고 지방군도 총병과 포병 중심으로 조금씩 체질을 개선해 나갔다.
또 그동안 구멍이 많았던 군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가끔 훈련을 받고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속오군 제도 대신 열아홉 살이 넘으면 신체에 큰 이상이 없는 한 무조건 징집을 하도록 해서 지방군을 강화했다.
여기에는 양반도 예외가 없었는데 징집을 피하려면 십 년간 매해 무명 육십 필이나 쌀 사십 석을 바쳐야 했다.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면 상당히 부담이 되는 액수였지만, 무武을 천시하는 경향이 강하던 사대부들은 선비가 어찌 서책 대신 병장기를 잡겠냐며 군역에 나가지 않고 무명과 쌀을 내는 걸 선택했다.
결국 일부 가난한 양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군역에서 빠졌지만, 지금까지 사대부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자들에게 돈을 받아 내면서 항상 부족한 군사비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
거기다가 추가로 이러저런 과외 수입이 병조 예산으로 들어갔는데 도현은 이렇게 생긴 돈으로 징집된 병사들에게 매달 열 냥씩 급료를 지급했다.
군역 부담으로 일반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걸 막고 병사들이 성실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였다.
아무리 예전에 비해 병조 예산이 많이 배정됐다고 해도 모든 병사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기에는 부족했는데 그 부분은 도현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매웠다.
물론 언제까지나 쌈짓돈을 꺼내 쓸 수는 없었기에 장기적으로 재정 수입을 늘려 부족분을 모두 대체할 계획이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일 년간 상업을 크게 활성화시켰다.
해금령을 풀고 시전상인들에게 해상무역을 허락하는 건 물론이고 송상과 만상한테 국경을 개방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외국에 나가 장사할 수 있는 통상권을 얻으려면 상당한 금액을 조정에 줘야 했지만, 상단들은 기꺼이 납부했고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제재가 풀리자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품 거래가 많아지고 지금까지 몰래 음성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양성화되자 관세 수입도 대폭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그런 가운데 천일염 판매를 독점하며 조선 상계의 큰손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봉황상단은, 곡물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과 사치품까지 모든 물품을 취급하면서 물가를 적당히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전 같으면 당장 기존 상단들이 반발을 하고 나섰겠지만 외국과의 교역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이권을 던져 줘서 그런지 봉황상단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도현의 눈치를 보며 이윤을 작게 보고 질 좋은 물품을 저렴하게 각지에 공급해 물가가 안정되는 데 기여했다.
짧은 통치 기간 동안 두 번이나 반란이 일어나는 혼란을 겪었지만, 백성들은 물가가 안정되고 먹고살기 편해지는 걸 실감하면서 도현을 원망하기는커녕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런 분위기는 그가 개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설날을 앞둔 도성은 평온함 그 자체였는데 각 시전마다 제수를 장만하려는 손님들로 가득하며 명절 분위기가 제대로 났다.
호객 행위를 하는 난전 상인과 가격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아낙네들의 소리로 왁자지껄한 가운데, 엿이나 떡 같은 군것질 거리를 손에 든 아이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웃으며 시전을 뛰어다녔다.
“자! 제물포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이 한 마리에 한 냥입니다.”
어물전 상인이 물을 담은 나무통에서 퍼덕이는 생선을 쥐고 호객 행위를 하자 호기심이 인 아낙네 몇몇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유! 살이 통통하게 올랐네.”
“요즘 이 가격에 이렇게 실한 생선 어디 가서 못 삽니다! 자, 자, 어서 와서 보세요!”
“그래도 좀 비싼 것 같은데…….”
호리호리한 몸집의 아낙네가 새침한 얼굴로 뜸을 들이자 상인은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끼! 명절인데 밥상에 자반고등어 정도는 올려야 남편한테 사랑받지.”
능청스러운 상인의 호통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너무 비싸요. 세 마리 살 테니까 그냥 두 냥에 해 줘요. 응?”
“어허! 안 된다니까.”
하지만 아낙네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졸라 대자 결국 상인은 항복했다며 허허 고개를 내저었다.
“거참. 알았소. 두 냥에 가져가쇼.”
기뻐하며 두둑해진 양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아낙네들과 다시 기운차게 손뼉을 치며 손님을 끄는 상인들로 시장이 전에 없이 흥청망청 들썩이는 한편, 대궐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앙.”
크게 벌린 입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떡이 쏙 들어가더니 이내 꿀꺽 삼켜졌다.
“캬아. 꿀맛이다, 꿀맛.”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자세 그대로 다시 손을 뻗은 도현은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 놓은 떡 꼬챙이를 들고 화로에 휘휘 겉만 살짝 구워선 꿀에 담갔다.
안쪽은 쫄깃쫄깃하고 겉은 바삭하며, 꿀의 단맛이 화룡정점을 이루는 실로 최고의 간식거리였으니,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근데 말이지.”
“예?”
“맛있는 걸 먹을 땐 좋은데 말이야. 딱 하나 단점이 있어.”
“허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무성의하게 맞장구를 치자, 칠현이 금방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뭐냐고 안 물어보냐?”
“별로 안 궁금한데요.”
“아, 그냥 물어봐 줘. 어명이야.”
“……그래서 그 단점이 뭐라고요?”
“후후훗. 그렇게 궁금해하니 내 가르쳐 주지.”
그러면서 도현은 허공에 손가락을 착 치켜세웠다.
“단점은 딱 하나! 맛있는 걸 먹으면 결국엔 배가 불러 온다는 것이야.”
“아주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말씀하시네요.”
“무척 안타까운 일 아니냐, 칠현아?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이 없어요! 시장이 반찬이란 말은 괜히 있는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옆에서 주는 핀잔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지 도현은 양손을 벌리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으신 말이 뭡니까?”
“음. 배는 부른데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해.”
도현은 명절을 앞두고도 쉬지 못하고 그가 내려 준 업무를 처리하느라 오늘도 정신없는 대신들이 들으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았다.
“상소문이라도 읽으시면 되잖습니까.”
“휴일에는 사람이 놀아야지 일하는 거 아니야.”
“그럼 놀아 줄 사람을 부르시면 되지요. 선비님들은 서로 시를 짓거나 서예를 하는 걸로 흥을 돋운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면 연회를 열어 악기 연주를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아, 됐어. 명절 때는 가족이랑 같이 있어야지, 괜히 내가 부르면 눈치 없다고 욕먹어.”
자기가 먼저 물어본 주제에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며 퇴짜를 놓은 도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명절에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건 똑같군. 에잉!”
그 모습을 본 칠현은 땅이 푹 꺼져라 한숨을 쉬고선 화로에 기대 놓은 떡 꼬치를 뒤적거렸다.
“됐고, 이거나 마저 드세요. 차가 식었으니 새로 들이라 하겠습니다.”
“아, 저번에 명나라에서 사신들이 가지고 온 새 차가 있지 않았나? 나 그거 아직 못 마셔 본 것 같은데.”
“그럼 그걸로 끓이라 하겠사옵니다.”
“응~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선 도현은 떡을 입에 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이 흐린걸 보니 눈이라도 내리려나.”
창에 비친 하늘은 높고 맑았지만, 훗날 일어날 일을 예고라도 하듯 저 멀리에 먹색을 잔뜩 머금은 구름이 바람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한편 예전부터 섬이 많아 아름답고 수산물이 풍부하게 나기로 이름난 남해 바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어부들이 배를 타고 나와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어여차! 어여차!”
“이봐, 덕팔이 어젯밤에 뭘 했기에 그렇게 힘을 못 쓰는 거야?”
“보나마나 뻔하지. 새신랑이 밤에 뭘 했겠어?”
“하하하.”
같이 배를 탄 사내들이 짓궂게 농을 하자 상투를 올린 지 얼마 안 된 젊은 남자는 귀까지 빨개졌다.
“에이 참. 아재들도, 그만 놀려요.”
“어라. 정색을 하는 걸 보니 정말 어제 각시랑 뜨거운 밤을 보낸 모양인디?”
“그러게.”
“낄낄낄.”
“그러다 뼈 녹는다. 몸 생각하면서 적당히 혀.”
그렇게 웃고 떠드는 걸로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며 열심히 물질을 할 때 뱃머리 쪽에 서 있던 사내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어? 저게 뭐야?”
“뭘 봤는데 그래?”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린 중년 어부는 조선 배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선박 한 척이 빠르게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 기겁했다.
“저, 저건!”
“왜구다!”
“헉.”
어부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중년인이 황급히 고함을 질렀다.
“어서 그물을 끊고 뱃머리를 돌려!”
“예. 옛.”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어부들은 허둥지둥 움직였다.
아까웠지만 걷어 올릴 여유가 없었기에 칼로 그물을 끊어 낸 어부들은 재빨리 뱃머리를 돌려 육지로 달아났다.
신속한 대응 덕분인지 아니면 작은 어선쯤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어부들은 왜구를 피해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지옥은 이제부터였다.
해안에 상륙한 왜구들은 곧장 마을로 들이닥쳐 아직 피난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을 상대로 살인과 약탈을 저질렀다.
“꺄아악.”
“어딜 도망가려고.”
“이놈아! 그 더러운 손을 놔라.”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낫을 들고 덤벼들자 한 손으로 아낙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탐욕에 찬 웃음을 흘리던 왜구는 귀찮다는 듯이 가지고 있던 검을 옆으로 내려 그었다.
서걱.
“아악.”
“여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남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자 아낙은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발로 배를 걷어차고 마구 때린 왜구는 거칠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아낙을 강제로 끌고 갔다.
비명과 고함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평화롭던 어촌 마을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마구 노략질을 한 왜구들은 늙은 노인이나 어린아이는 모두 죽여 버리고 노예로 팔 젊은 여자와 남자 들만 꽁꽁 묶어 배에 실고 유유히 다시 바다로 사라졌다.
뒤늦게 아수라장에서 도망쳐 나온 주민의 신고를 받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관군이 급히 출동했지만 이미 왜구는 떠나고 불에 타 온통 잿더미로 변한 마을과 처참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신만이 그들을 맞이했다.
며칠 뒤 이 사건은 파발을 통해 도성에 있는 도현에게 바로 보고됐다.
피해 상황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는 장계를 읽어 내려가던 도현은 분노한 얼굴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탕!
장계를 서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은 도현은 시립해 있는 상선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당장 신료들을 소집하게!”
“알겠사옵니다, 전하.”
화가 잔뜩 난 도현의 눈치를 살피며 상선은 얼른 허리를 굽혔다.
얼마 있지 않아 전갈을 받은 신료들이 허겁지겁 대전으로 모두 달려왔다.
“이게 뭔지 아시오!”
도현이 장계를 한 손에 들어 올리며 묻자 오면서 대충 갑자기 회의가 소집된 이유를 들은 신료들도 있었지만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도현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버럭 호통을 쳤다.
“거제에 왜구들이 쳐들어와 마을 다섯 개를 불태우고 삼백 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죽이거나 잡아갔다고 하오! 놈들이 이렇게 설치고 돌아다니는 동안 도대체 뭣들 한 것이오?”
단단히 화가 난 도현의 모습에 신료들은 괜히 불똥이라도 튈까 봐 머리를 조아리며 몸을 사렸다.
“병판, 어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시오!”
“병부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사옵니다.”
그를 지지하는 왕당파 핵심 인물이었지만 도현은 가차 없이 질책했다.
“고작 그것뿐이오? 지난 일 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지방군을 강화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이래 가지고 어찌 안심하고 국경을 맡길 수 있겠소?”
아직 군사력 증강이 진행 중이라 약간 억울한 감이 있었지만 어찌 됐건 방비를 제대로 못한 건 사실이었기에 임경업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았던 왕당파를 흠집 낼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송시열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백성들이 큰 고통을 당했으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사옵니까. 즉시 해당 군영 책임자를 문책해야 될 것이옵니다.”
“맞사옵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 무리처럼 산당 인물들이 말을 쏟아 내자 왕좌에 앉아 있던 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세게 내려쳤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그건가!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그래 가지고 어떻게 백성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겠소?”
“…….”
“임진년의 아픔을 가슴에 묻어 두고 저들의 간청에 따라 왜관까지 다시 개설해 줬는데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도록 왜구들의 소굴인 대마도를 직접 쳐 본때를 보여 줄 것이오!”
도현의 선언에 순간 대전 안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8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