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비해방2 (57/104)

노비해방2

“허어. 노비를 해방시킨다니 나라에 망조가 들었소이다.”

가운데 앉은 중년 사내의 말에 함께 있던 선비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이오. 학문에 정진해야 되는 유생들을 옆에서 보필할 노비를 다 없애면 누가 땅을 일구고 집안일을 한단 말입니까!”

“맞소이다.”

“이건 주상께서 크게 잘못하시는 일이오이다.”

“당장 부당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립시다.”

끝에 있던 선비의 말에 중년 사내는 더 격한 발언을 했다.

“상소 가지고 되겠소.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대부들이 많을 테니 뜻을 하나로 모아 대궐 앞에 멍석이라도 깔고 어명을 취소해 달라고 합시다.”

“좋은 생각이오.”

“그럽시다.”

이처럼 사대부들은 평소 교류가 있던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도현이 내린 노비해방령을 비판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였다.

신료들도 거의 일방적인 통보를 한 뒤 추가적인 논의도 없이 바로 방을 붙이고 지방 관아에 어명을 내린 도현의 행동에 불만을 나타냈다.

특히나 국왕을 보좌하는 승정원은 이틀 전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상소문에 다른 업무를 하나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떡합니까, 도승지 어른. 아직 손도 못 댄 육조의 상소문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전국의 사대부들이 보내오는 것까지 합하면 매일 밤을 새워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승지들이 달려와 호소하자 도승지 장선징은 서류를 검토하다 말고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주상 전하의 어명을 자네들도 들었지 않은가. 노비해방에 반대하는 상소문이라면 전부 다 폐기 처분하게.”

“허나…….”

승지들은 날밤을 새워 피폐해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어명을 따른다 해도 그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 그럽니까. 육조 전체는 물론이고 사대부들이 모조리 들고일어날 텐데요.”

“그러니까 자네 말은…….”

장선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에 선 승지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감히 어명에 불복하겠다는 뜻인가?”

“아, 아닙니다, 도승지 어른! 어찌 제가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반박에 당황한 승지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장선징은 다시 눈길을 누그러뜨리고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정녕 사대부들에게 들들 볶일 일이 걱정되거든, 자네가 직접 주상 전하께 상소문을 갖다 바치든가 하시게. 난 막지 않겠네.”

맘대로 하라며 손을 내젓는 장선징을 보고 승지들이 절로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진짜로 도현한테 상소문 더미를 내밀었다간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질 터.

누군들 좋아서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싶겠는가.

결국 ‘알겠습니다.’ 하고 장선징의 앞에서 물러난 승지들은 업무를 보는 방 안에 모여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이걸 어찌하면 좋겠는가?”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어명이 최우선이니 도승지 어른 말씀대로 폐기처분하는 수밖에.”

“그래도 저 많은 걸 전부 다?”

그러자 동시에 땅이라도 뚫을 듯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미 책상 위에 올려 둘 자리조차 없어 바닥에 짐짝처럼 쌓아 둔 상태였다.

작은 방 하나를 온통 상소문으로 꽉 채우고도 남을 만한 어마어마한 양에, 지금도 계속해서 전국 각지에서 보내져 오는 수를 생각하면 저걸 처분하는 것도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누구 좋은 생각 있으면 말씀들 해 보시게나.”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와중에 누군가가 손바닥을 탁 두드렸다.

“어차피 종이니 그냥 태워 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허나 마당에 쌓아 놓고 태우면 연기랑 냄새가 고약할 텐데.”

“수라간으로 보내 버리면 되지. 거긴 매일 불을 피우는 곳이니 땔감이라고 갖다 주면 아주 좋아할 걸세.”

“허어, 그거 참 명안이로군!”

“결정 났으면 당장 밑에 있는 관리들을 불러서 얼른 옮기도록 하세나. 자리만 차지하는 상소문들 탓에 일을 하나도 못 할 판이야.”

“암, 지금 바로 처리하세.”

만장일치로 의견을 통일한 승지들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한 얼굴을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그 시각, 희정당.

눈가를 찌푸린 채 도현은 송시열을 맨 앞에 내세워 기세등등하게 몰려온 산당의 무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관복을 입은 대신들이 우르르 모여앉아 한 덩어리로 내뱉는 목소리에 도현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내가 결정을 내린 사안이오. 헌데 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리 찾아온 것인가?”

“전하, 노비해방령은 천부당만부당한 사안이옵니다. 이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미풍양속을 깨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칫 잘못하다간 나라 전체의 기강을 뿌리부터 뒤흔들 일이온데 어찌 저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사람이 사람을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은 채 부려먹고 물건이라도 되는 양 사고팔고 하는 게 어찌 미풍양속이란 말이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신분이란 것이 있사옵니다. 만약 그 경계가 흐려지면 아랫것이 윗사람을 우습게 보고 하극상을 꾀하는 일이 천지에 만연할진대,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십니까.”

한 사람의 주장에 반박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이 거들고 나서고 또 앞에서도 뒤에서도 전부 노비해방령을 비난하는 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주절주절 말은 잘도 늘어놓지만 가만히 들어 보면 다들 하나같이 주장하는 것이 노비해방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뿐이었기에, 결국 도현조차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크게 내리쳤다.

“그래서 내가 대전에서도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이번 노비해방령은 모자란 병사를 보충하고 조세를 걷기 위해 양인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오나 전하, 이는 저희들만의 생각이 아니오라 전국의 선비와 유생 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듣기 싫소!”

도현은 매서운 눈빛으로 뭔가 항의를 하려는 대신을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지금 나라가 국난에 처했는데 대책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기 밥그릇이 작아지는 것만 걱정하는 소인배들의 말 따위는 들을 가치도 없소. 인의지신, 충과 효를 생각하는 선비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도현은 크게 탄식하고 옷자락을 펄럭이며 일어났다.

“전하!”

“소신들의 말을 들어 주시옵소서, 전하.”

“들을 필요도 없소. 이미 내 마음은 정해졌고, 결코 노비해방령이 철회되는 일 따위도 없을 테니 경들도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시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도현을 몇몇 신하들이 애원하며 붙잡으려고 했다.

하나 송시열이 눈짓으로 그들을 말리고 도현에게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일단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겠사오나 저희들의 충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뒤로 물러난 송시열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는 대신들을 향해 독촉했다.

“뭘 하고 섰소, 얼른 나오지 않고?”

“아니, 그게…….”

“어허!”

결국 송시열의 말에 따라 희정당을 나온 산당의 사람들은 송시열을 둘러싸고 물었다.

“어찌 말리셨습니까. 전하를 붙잡아서 마음을 돌렸어야지요!”

“자네들은 대충 분위기를 살필 줄도 모르나? 만약 거기서 한마디만 더 했으면 전하께서 크게 역정을 내셨을 걸세. 어차피 쉽게 결론날 일이 아니니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주장을 펼쳐야 될 걸세.”

“으음.”

“여기서는 잠깐 물러나는 것이 최선일세.”

정치적 식견이나 감각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송시열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사람들 역시 겨우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송시열과 산당의 무리가 희정당을 물러난 뒤, 혼자 남은 도현은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듯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라의 중대사를 맡아 보는 대신이란 것들이 어찌 저리 옹졸하고 제 눈앞의 것밖에 보지 못한단 말이야. 휴우!”

“이렇게 반발이 심할 줄 예상하셨지 않습니까.”

칠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그렇지.”

“앗, 조심…….”

뜨거운 찻잔을 손에 들고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도현은 뒤늦게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아 씨! 뜨거워! 입천장 다 데었잖아!”

“그러게 조심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아, 몰라. 어쨌든! 지금 당장 포도대장한테 연락해서 내가 말한 대로 실행하라고 해.”

그렇게 말한 도현은 칠현이 내민 냉수를 입에 물고 화끈거리는 속을 달랬다.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어차피 내디딘 발걸음이야.”

“후우. 알겠사옵니다.”

그날 오후 신임 포도대장으로 임명된 구인후는 도현의 지시를 받아 노비해방령에 적힌 내용을 집행하기 위해 휘하 포졸들을 해당 사대부의 집으로 보냈다.

탕탕탕!

“뉘시오?”

“포도청에서 왔소!”

포도청에서 왔다는 말에 중년 노비는 화들짝 놀라 얼른 빗장을 풀고 닫혀 있던 대문을 열어 줬다.

끼이이익.

붉은색 관복을 입고 허리에는 검을 찬 포도청 소속 하급 군관은 포졸 두 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와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중년 노비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황 진사 댁이 맞느냐?”

“예.”

“가서 황 진사를 불러오너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포도청이었기에 중년 노비는 연신 굽실거리며 얼른 안채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있지 않아 말총으로 만든 겹 삼각뿔 모양의 정자관程子冠을 머리에 쓰고 비단 옷을 걸친 황 진사가 한 손에 긴 담뱃대를 든 채 거드름을 피우며 나왔다.

“포도청에서 내 집에는 어쩐 일인가?”

그러자 하급 군관은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펴서 살펴보고는 약간 딱딱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남녀 노비 스무 명을 데리고 계신데, 맞습니까?”

“그렇소만…….”

“어명에 따라 노비들을 모두 인수하러 왔습니다.”

“뭐야!”

“이미 소유하신 노비 숫자를 전부 파악하고 있으니까 숨기실 생각은 하지 말고 노비 문서를 가져오십시오.”

얼굴을 벌겋게 상기된 황 진사는 담뱃대를 흔들며 화를 냈다.

“내 개인 재산인데 무슨 권리로 내놓으라는 건가!”

“주상 전하께서 내린 어명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험한 꼴 보기 전에 어서 썩 물러들 가게!”

“지금 어명을 거역하시는 겁니까?”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하급 군관이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 말에 잠시 멈칫하던 황 진사는 이내 다시 역정을 냈다.

“전하께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셨으면 그걸 바로잡는 것도 사대부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이겠지!”

“좋습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지요. 하지만 이렇게 하신 걸 후회하실 겁니다.”

“흥! 일없네.”

콧방귀를 끼는 황 진사의 모습에 하급 군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자.”

“예.”

그렇게 포도청에서 나온 관원들이 그냥 물러나자 기세가 등등해진 황 진사는 눈치를 보며 옆에 서 있던 중년 노비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퉤! 재수 없게 시리. 개똥아범, 대문 앞에 소금을 왕창 뿌려.”

“……알겠습니다요.”

노비를 데려가려고 왔다는 말에 내심 기대를 품었던 개똥아범은 너무나도 쉽게 돌아가 버린 관원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며 힘없이 대답했다.

황 진사 집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한양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거의 모든 사대부들이 노비를 내주지 않고 포도청에서 나온 관원들을 쫓아냈다.

이건 지방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전라도 남원에서는 서원에 속한 노비를 데리러 갔던 관원들이 흥분한 유생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크게 다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감히 어명을 어긴 것도 부족해서 관에 속한 아전을 폭행해. 이건 명백한 짐에 대한 도전이야. 병판.”

“말씀하시옵소서, 전하.”

굳은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이는 임경업을 보며 도현은 단호한 어투로 지시를 내렸다.

“군을 동원해 당장 사건을 일으킨 유생들을 모조리 체포해서 의금부로 압송하고 이 시간부로 각 지방 관아와 포청과 함께 강제로 노비들을 데려오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포도대장은 강제 집행 과정에서 저항하는 자가 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부 다 잡아들이시오.”

“옛.”

명령을 받은 구인후는 결연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그날 오후 첫 방문에서 내쫓기듯 발길을 돌려야 했던 하급 군관은 포졸들을 잔뜩 데리고 황 진사의 집에 다시 들이닥쳤다.

“집 안에 있는 노비들을 모두 마당으로 데려오고 공무를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포박해라!”

“예.”

“너희 둘은 날 따라와라.”

“네.”

대문을 부수듯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온 포졸들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자, 하급 군관은 옆에 남은 부하 두 명과 함께 거침없이 안채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에 봤던 황 진사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뭣들 하는 짓이냐!”

“또 뵙는군요.”

“네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황 진사를 보며 하급 군관은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제가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었지요.”

“당장 내 집에서 물러가지 못하겠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하급 군관이 강하게 나오자 순간 멈칫거리던 황 진사는 이내 얼굴을 붉히고는 마구 삿대질을 했다.

“감히 우리 집안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전 한양판윤을 지내신 황 아무개가 바로 우리 조부님일세!”

“그 누가 됐건 예외 없이 법을 집행하라는 것이 주상 전하의 어명이십니다.”

“그래도 이자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자 화가 치밀어 오른 황 진사는 가지고 있던 담뱃대를 들어서 휘둘렀다.

퍽!

바로 앞에 서 있었던 하급 군관은 미처 담뱃대를 피하지 못하고 그만 왼쪽 뺨을 맞고 말았다.

단단한 놋쇠로 되어 있던 끝부분에 맞은 뺨은 금방 벌겋게 부어올랐고 그걸 본 포졸들이 화들짝 놀라 옆으로 다가왔다.

“군관 어른.”

“괜찮아.”

상당히 고통이 클 텐데도 신음 하나 내지 않고 한쪽 손을 들어 다친 뺨을 스윽 쓸어낸 하급 군관은 씩씩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서 있는 황 진사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좋게 말로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먼. 당장 이자를 체포해!”

“옛!”

크게 대답한 포졸들이 달려들어 황 진사를 붙잡았다.

“이거 놔!”

황 진사가 욕설을 하며 거칠게 저항하자 하급 군관은 허리에 차고 있던 곤봉을 꺼내 어깨를 세게 내려쳤다.

딱!

“어이쿠!”

강한 충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은 황 진사를 살기등등한 얼굴로 내려다보면서 하급 군관이 차갑게 말했다.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아직도 양반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감히 공무를 방해해! 어디 옥사에 갇히고서도 뻣뻣하게 나올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보겠어.”

“끄으윽.”

“빨리 포박하지 않고 뭣들 해.”

“네.”

포졸들은 한 대 얻어맞자 기가 팍 죽은 황 진사를 가지고 있는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그사이 집 안에 있던 노비들이 하나둘 마당으로 모여들었는데, 상전인 황 진사가 엉망인 몰골로 잡혀 있는 걸 보고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포졸이 옻칠이 된 목 함을 하나 들고 왔다.

“군관 어른 노비 문서를 찾아왔습니다.”

“이리 줘 봐.”

목 함을 받아 뚜껑을 열자 여러 번 접힌 문서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찾던 노비 문서가 맞다는 걸 확인한 하급 군관은 목 함을 다시 닫아 포졸에게 건네줬다.

“가지고 있어.”

“예.”

시선을 돌린 하급 군관은 마당 한쪽에 모여 있는 노비들을 보고는 그리로 걸어갔다.

“다 데리고 나온 건가?”

“스무 명 전부 맞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하급 군관은 불안한 얼굴로 눈치를 보고 있는 노비들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주상 전하의 어명에 따라 너희들은 이 시간부로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된다. 호패 발급과 혼란을 막기 위해 당분간 임시로 만든 수용소에 들어가 생활하게 될 테니 각자 간단히 짐을 싸서 다시 나오도록.”

“……!”

예상치 못한 말에 노비들은 얼마 동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앞에 있는 하급 군관을 쳐다봤다.

그러다 제일 나이가 많은 개똥아범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이걸 눈앞에서 보고도 못 믿겠나. 너희들에게 새 삶을 주신 주상 전하께 감사드려야 될 것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비들은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흑.”

“내 평생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전하, 감사합니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이라고 생각했던 노비의 굴레에서 구원된 것에 모두들 기뻐하며 연신 대궐이 있는 방향을 보며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그걸 보며 하급 군관과 포졸들은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뒤 노비들은 지금은 비어 있는 근위군 숙영지에 마련된 임시 수용소로 갔고 황 진사는 공무집행 방해와 어명을 거역한 죄로 포승줄에 묶여 포도청으로 압송됐다.

황 진사뿐만 아니라 도성 안에 있는 사대부 집마다 포도청에서 나온 포졸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노비들을 데려갔다.

이 과정에서 과격하게 반항하거나 집행을 방해한 사대부들은 가차 없이 모두 현장에서 체포해 포도청 옥사에 수감했다.

덕분에 도현이 귀환하며 개최한 승전식을 기념해 특사를 베풀어서 텅텅 비었던 옥사가 간만에 북적거렸다.

노비를 데려가면서 포도청 관리들은 인수증이라는 종이 쪼가리를 하나씩 주고 갔는데, 그걸 호조나 지방 관아에 가져가면 도현이 호조판서한테 지시해서 새롭게 만든 국채國債로 바꿔 줬다.

국채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조정이 발행하는 것으로 이번에 노비 몸값 대신 사대부들에게 준 것은 무려 십 년이 지나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거였다.

물론 원금에 약간의 이자 붙었지만 채 일 할이 되지 않았고 십 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사대부들은 집안일을 하고 농사를 짓는 귀중한 인력인 노비를 헐값에 넘겨주는 꼴이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안 그래도 도현의 상공업 육성 정책에 넓은 토지를 근간으로 지금까지 많은 부를 쌓아 온 사대부들의 힘이 위축되고 있었는데, 무보수로 가장 큰 노동력을 제공하던 노비의 상실은 여기에 또다시 치명타를 가하는 거였다.

당연히 수많은 사대부와 유생 들이 상소문을 올리거나 한양으로 상경해서는 대궐 앞에 자리를 깔고는 통곡을 하며 노비해방을 철회해 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산당을 중심으로 한 조정 신료들도 두세 명씩 돌아가면서 도현을 찾아와 노비해방을 재고해 줄 것을 주장하며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도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강경하게 나갔다.

“노비제도는 이 나라를 유지하는 근간이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옵소서.”

병조판서 임경업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신료들이 아침부터 찾아와 귀찮게 하자 도현은 손바닥으로 앞에 있는 서탁을 세게 내려치며 버럭 호통을 쳤다.

탕!

“말은 똑바로 하시오. 나라의 근간이 아니라 사대부들이 손쉽게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겠지.”

“전하.”

“나라는 뒷전이고 자기 밥그릇만 생각하는 일부 파렴치한 자들에 편승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오해시옵니다.”

“듣기 싫소. 짐은 절대 노비해방을 철회할 생각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어딜 가시옵니까.”

“주상 전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도현은 신료들을 놔두고는 그대로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에잇. 한심한 인사들 같으니라고.”

화가 단단히 났는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걸어가는 도현을 보며 뒤따라 나온 병조판서 임경업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조정 신료는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반발이 점점 더 커질 텐데 걱정이옵니다.”

수라간에서 당분간 땔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상소문이 쌓이고 포도청 옥사는 잡혀 오는 양반들로 가득할 정도로 도성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노비를 부리는 자들 태반이 권세 높은 세도가나 지방에 대토지를 가진 유지들인데 괜히 자극을 해서 좋을 것이 없지 않사옵니까? 당장 산당뿐만 아니라 왕당파 안에서도 전하께서 사대부들을 너무 홀대하신다는 불만이 있사옵니다.”

진심 어린 임경업의 충고에 도현은 화를 내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고 어렵다는 핑계로 잘못된 걸 알고도 그냥 묻어 두고 넘어간다면 어찌 군자라고 할 수 있겠소.”

“그렇지만…….”

“그동안 사대부라는 이유로 많은 혜택을 받아 온 만큼 나라가 위난危難에 빠진 지금 일반 백성들보다 솔선수범해서 행동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거요. 그리고 노비들을 그냥 빼앗는 것도 아니고 적절한 보상을 해 주고 있지 않소.”

사저에 서른 명이 넘는 노비를 거느리고 있어서 그 보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임경업은 내심 실소를 지었다.

“이제 단지 사대부라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던 시대는 지났소. 노비를 없애면 당장 부릴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그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노동을 시키면 되는 것 아니겠소. 더러운 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쥐어짜는 것이야말로 유교 정신을 어기는 것이고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한 일이오.”

실랄한 도현의 지적에 임경업은 딱히 반박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조선은 인구의 일 할도 안 되는 사대부를 위해 나머지 구 할의 백성들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교 경전을 익히고 심신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군역은 물론이고 각종 조세도 납부하지 않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백성들이 대신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을 나눠 하층민들을 무시했고 이 계급에 들어가지조차 못하는 노비들은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돈에 눈이 먼 일부 사대부들은 가뭄이 들 때 소작농한테 고리의 돈을 빌려 줬다가 못 갚으면 강제로 자기 집 노비로 삼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였다.

이러니 건국 때 태조가 학문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사대부에 준 각종 특혜의 본뜻은 이미 퇴색해 버렸고 백성들의 원망도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왕조가 오래 이어 오면서 사대부의 숫자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밑바탕이 되는 양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근본적으로 신분제를 손보지 않으면 나라 자체의 존망이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었다.

이걸 알기에 자신을 포함해 왕당파에 속한 신료들과 일부 깨어 있는 사대부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도현의 정책에 순순히 따랐다.

그렇지만 문제는 기존에 누리던 특혜와 권리에 미련을 가지고 내려놓지 않으려는 대다수의 사대부들이었다.

이들은 대동법에 이은 이번 조치를 심각한 위협으로 느끼고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불만이 더 커진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충과 효 그리고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는 유교 경전의 가르침대로라면 국왕인 도현의 명령을 마땅히 수긍하고 따라야겠지만, 자신들의 이익이 직결된 상황에서 대범하게 행동하는 사대부가 과연 얼마나 될지 임경업은 장담할 수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임경업은 머릿속을 감도는 불길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임경업을 힐끗 쳐다본 도현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왜, 지난번처럼 반란이라도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되나?”

“아, 아닙니다.”

깜짝 놀란 임경업이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자 도현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뭐, 이런 분위기라면 반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전하.”

임경업이 황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선 도현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에 또다시 내게 반기를 든다면 그때는 한 줌의 자비도 없이 그 뿌리까지 뽑아 버리고 말겠어.”

“…….”

평생 거친 전장은 전전한 백전노장이었지만 도현이 전신에서 뿜어내는 살기에 임경업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도현이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어수선했던 집권 초기와 달리 지금은 왕권을 확고하게 쥐고 지방 곳곳에 충성스러운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 지난 두 번의 반란처럼 사대부들이 함부로 거사를 계획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아무리 병력 수급이 어렵다지만 아직 청나라와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노비해방을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사대부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자들이 계속 늘어만 갔고, 도현은 근위대와 각 지방 군단에 비상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고 주작단은 탐보망을 모두 가동해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했다.

“대감마님, 퇴청하셨습니까요.”

오래전부터 집안일을 맡아서 보던 늙은 집사가 마중을 나와 머리를 조아리자 송시열은 피곤한 얼굴로 가마에서 내렸다.

“집안에 별일은 없었나?”

“손님분들이 와 계십니다.”

“이 시간에 누가 왔다는 건가?”

“예조참판 어른께서 모시고 오신 분들입니다.”

“이익치 그 사람이?”

“그렇습니다, 마님.”

“으음.”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시열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나?”

“사랑채에 계십니다.”

“알겠네.”

거처로 가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송시열은 곧장 손님이 기다린다는 사랑채로 건너갔다.

“흠흠.”

덜컹.

헛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예조참판인 이익치가 낯선 선비 두 명과 함께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이거 주인도 안 계신 집에 저희가 먼저 와 있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찾아오려면 미리 기별을 주지 그랬나. 그럼 좀 더 빨리 퇴청을 했을 텐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신가?”

송시열이 선비들을 쳐다보며 묻자 이익치가 얼른 소개를 했다.

“제 고향인 남원에서 올라오신 유지분들입니다. 인사들 하십시오. 저희 산당의 영수이신 우암(송시열의 호) 대감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죽표라고 합니다.”

“최석호입니다.”

“송시열이오. 만나게 돼서 반갑소이다.”

“명망 높으신 우암 대감을 뵙게 돼서 저희가 영광이지요.”

간단히 통성명을 한 송시열은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비어 있는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긴한 용건이 있는 것 같은데…….”

살짝 말끝을 흐리며 송시열이 묻자 세 사람은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왼편에 앉은 황죽표라는 선비가 진지한 얼굴로 송시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상 대감께서는 지금 정국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에 눈가를 찌푸린 송시열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살짝 돌려서 대답했다.

“……글쎄올시다.”

“지난번 대동법 시행도 그렇고 주상 전하께서 우리 사대부들을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노비들을 강제로 데려가면서 보상이라며 달랑 종잇조각 하나 던져 주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두 선비의 불평에 송시열은 바로 동조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돈으로 환급받을 수 있는 채권이니 보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소.”

“지금 당장 노비들이 없어 땅을 그냥 놀려야 될 판인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무려 십 년이 뒤에나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채권에 적힌 금액이 지금과 똑같은 값어치를 가진다는 보장이 없지요.”

“이러다가는 선비들이 전부 사서삼경을 외우는 대신에 쟁기를 들고 밭에 나가야 될 판국입니다.”

“…….”

그렇지 않아도 대궐에서 하루 종일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다가 돌아왔던 송시열은 집에까지 찾아와 이런 하소연은 하자 짜증이 났지만, 애써 그런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그래서 날 보고 어쩌라는 거요?”

“들끓는 민심을 헤아려 달라는 겁니다.”

“신료들이 주상 전하께 수시로 노비해방을 재고해 주시길 간언하고 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리시오.”

대충 다독여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선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대동법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이러다가 결국에는 주상께서 강압적으로 밀어붙여 제도를 실행했지 않습니까.”

“저희는 보다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피곤해 죽겠는데 계속 귀찮게 하자 송시열은 살짝 짜증을 냈다.

“결정은 주상 전하께서 내리는 건데 나한테 이러면 뭘 하겠소? 차라리 상소문이나 하나 더 써서 올리시오,”

“올려 봤자 수라간 아궁이로 들어갈 것이 뻔한데 뭐 하러 상소문을 쓰겠습니까.”

“으음.”

최석호의 불평에 송시열은 두 사람을 데려온 이익치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궐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인이 알기 어려운데 도현이 상소문을 읽지도 않고 다 수라간으로 보내 땔감으로 쓴다는 걸 두 사람이 아는 걸 보면 필시 이익치가 발설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시선을 받은 이익치는 찔리는 것이 있는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때 황죽표가 정색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상 전하의 성격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저희를 계속 핍박하고 성리학의 가르침을 벗어난 행동을 하실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비도불행非道不行(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이라고 했습니다. 주상께서 사대부들과 이대로 대립각을 세우시겠다면 충으로 모실 이유가 없지요.”

정도를 벗어나는 일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마라는 사자성어였지만 황죽표가 이야기하는 건 전혀 다른 뜻이었기에, 눈치 빠른 송시열은 바로 감춰진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눈을 크게 치켜떴다.

“지금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건가!”

“역모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워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역모를 정당화하려는 궤변에 송시열은 얼굴을 와락 구기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게 그거지!”

“우상 대감, 오죽했으면 이들이 이런 마음까지 먹었겠습니까. 그만큼 주상의 실정이 크다는 걸 이해해 주십시오.”

“이 두 사람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허언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정의 녹을 먹고 예조참판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이익치 자네가 그러면 안 되지! 부끄러운 줄 알게.”

송시열을 질책에 이익치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상 대감…….”

“듣기 싫네.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그만 나가 보겠네.”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딱 잘라서 말한 송시열은 그대로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대감!”

탁.

방문이 닫히고 세 사람만 남자 최석호가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산당 영수이자 주자학의 대가로 전국 선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는 분이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흠. 미리 넌지시 의사를 타진해 볼 것을 이거 괜히 찾아온 거 같습니다.”

그러자 수염을 쓰다듬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익치가 황죽표를 마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비록 뜻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실 분은 아니니 걱정들 마시오.”

“그랬으면 좋겠군요.”

“우암 대감이 나서 주셨다면 큰 힘이 됐을 텐데 아쉽군.”

“더 있어 봤자 나올 것이 없으니 그만 일어들 나시죠.”

최석호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세.”

잠시 뒤 세 사람은 송시열의 사저를 나와 어두운 거리로 사라졌다.

다음 날 도현은 예조참판 이익치가 선비 두 명을 데리고 야밤에 은밀히 우의정 송시열을 만났다는 주작단의 보고를 받았다.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이런 만남은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딱히 뭔가를 꾸몄다는 증거가 아직 없었기에 도현은 유심히 지켜보라는 지시만 내렸다.

그리고 노비를 해방시키고 난 뒤 필요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느라 정신이 없어 이 건을 잊어 버렸다.

유민들 때도 그랬지만 노비 신분을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었는데, 따로 새경을 받지 않아 대부분 빈털터리였기에 주인집을 나오면 당장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되는 처지였다.

그래서 일단 한양과 지방 곳곳에 임시 수용 시설을 만들어 노비들을 모아 둔 도현은 기존에 이들을 부리던 사대부들에게 정당한 노동계약을 하고 일을 시키도록 종용했다.

당장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고 한창 바쁜 시기에 일손이 부족해 제대로 농사를 못 짓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서로한테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밥만 먹여 주고 공짜로 부리던 노비들을 매달 나라에서 정한 일정액의 돈을 주고 쓰려니 사대부들은 너무 아깝고 분통이 터졌다.

“내가 데리고 있던 노비들을 부리는데 돈을 내라니 이런 날강도 같은 짓이 어디에 있나!”

천 석이 넘는 농사를 지어 지역에서 제법 거들먹거리며 사는 최 진사는 자신을 찾아온 현감의 말에 피우고 있던 담뱃대로 서탁을 두드리면서 역정을 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노비해방은 주상 전하의 어명으로 행해지는 일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역모로 간주될 수 있으니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허험.”

역모라는 말에 최 진사는 찔끔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어찌 됐건 농사를 지으려면 일손이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노비 놈들한테 세경을 주느니 차라리 올해 농사를 포기하고 말겠네.”

“그러시면 안 될 텐데요.”

“내 땅을 내가 마음대로 한다는데 현감이 무슨 상관이오!”

퉁명스러운 최 진사의 반응에 현감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한양에서 전하의 어명이 내려왔는데 이번 시책에 반대해 고의로 농사를 망치는 자는 역모죄로 다스리라더군요.”

“뭐요!”

“나라가 어려운데 농사를 안 짓는 건 적을 이롭게 하는 반역 행위라는 겁니다.”

“끄으응.”

“이래도 제 제안을 거절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물음에 최 진사는 얼굴을 와락 구긴 채 현감을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소.”

“잘 결정하셨습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여기 계약서에 수결을 해 주십시오.”

현감이 서탁 위에 올려놓은 서류를 힐끔 쳐다본 최 진사는 붓을 들어 거칠게 수결을 했다.

“됐소?”

“예. 최 진사께서도 이번 농사를 망치시면 손해가 크시니 너무 화를 내시지 마십시오.”

“퍽이나 고맙구려.”

날카로운 반응에 현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사람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새경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시면 큰 벌을 받게 되어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흥!”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멀리 못 나가오.”

“…….”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옆으로 고개를 돌린 최 진사는 불편한 심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이렇게 도현의 지시를 받은 각 지방 현감들이 직접 나서 사대부들과 노동 계약을 맺었고, 그래도 남는 인원은 국유지를 소작하게 해 주거나 아니면 조정에서 벌이는 각종 공사장 인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런 가운데 정식으로 노비 신분을 벗어나 양인이 됐다는 걸 증명하는 호패가 사람들에게 지급됐다.

“자, 자! 밀지 말고 한 줄로 서시오.”

“거기 새치기하는 사람 뒤로 끌어내!”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 덕분에 목소리를 한껏 돋워야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활짝 열린 관아의 양 대문 사이로 끊임없는 긴 줄이 늘어선 가운데 포졸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럴 줄 알고 일부러 관아에 있는 큰 마당을 이용한 것이긴 했으나, 호패를 받으러 득달같이 달려온 사람들이 예상외로 너무 많아 그나마 포졸들이 없었으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다음!”

염소수염을 기른 향리가 줄의 맨 앞에서 소리치자 대기하던 노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 간이 천막을 친 아래, 급하게 마련한 길쭉한 책상에 앉아 붓을 들고 있는 관리가 이름과 본적지를 묻고 간단한 질문을 한 끝에 호패를 나눠 주는 절차가 끝나는 것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나리!”

호패를 받아 든 사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낡은 소매 자락으로 훔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단순히 세로로 길쭉한 나무 조각일 뿐이지만 불과 어젯밤까지 노비 신분이었던 사내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보물과도 같았다.

호패만 있으면 어엿한 양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가축도 안 먹을 형편없는 잡곡밥과 잠자리에 불평을 해 보아도 먹여 주고 재워 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냐는 주인의 모진 말밖에 돌아오는 게 없었는데 이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을 뉘일 작은 집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내의 마음은 한없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다.

사내의 뒤로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을 상대하느라 관리들은 쉬지 않고 붓을 놀려 댔다.

“휴우~!”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아첨하는 웃음을 지으며 향리가 갖다 준 냉수를 관리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이마의 땀을 닦은 관리는 옆에서 축 늘어진 동료를 보고 말했다.

“힘들지, 안 그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이렇게 하루에 많은 글자를 써 본 건 옛날에 과거 준비할 때 이후로 처음일세.”

“그래도 보람은 있었어.”

관리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는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 바빠서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 받아 준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거야 뭐,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은 법이지.”

동료는 괜히 볼을 긁적이며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는 처음부터 이 업무를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도 매일같이 산더미 같은 상소문을 써 올리고 있는 수많은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하찮고 천한 노비들을 해방시켜 준다는 것에 대해 나라의 근간인 신분제를 뒤흔드는 어긋난 정책이라고 믿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툴툴거리던 그가 어느새 입을 다물고 눈매를 누그러뜨리는 걸 보니 현장에 와서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관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슬슬 해가 집니다, 나리.”

“아, 그럼 이쯤 하고 일어나 볼까.”

향리의 은근한 독촉에 관리는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니 충분히 먹고 푹 쉬지 않으면 체력이 버티질 못한다.

“응? 아니, 저건 뭔가?”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그가 담벼락 너머로 언뜻언뜻 비치는 불빛을 보고 물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말해 보게.”

“밤이 늦었으니 일단 돌아가라고 해도 영 말을 들어먹어야 말입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지 뭡니까.”

“허어.”

관리는 감탄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작은 말소리.

돌 벽과 두꺼운 대문으로 가로막힌 사이에서도 이 정도로 선명하게 들린다면 필시 바깥에는 손으로 세지도 못할 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내일 아침만을 기다리며 쪼그려 앉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다 호패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까닭은 분명 하루라도 더 빨리 양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리라.

“쯧쯧. 성질이 급하기도 하지.”

“얼마나 간절하면 그러겠나?”

옆에서 동료가 혀를 차는 소리에 관리는 대신 변호하듯 말했다.

“바람이 찰 텐데 뭐 덮을 거라도 내주도록 하게.”

“예에.”

향리는 별걸 다 신경 쓴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돌아가세. 그래야 내일도 힘내서 또 일하지.”

“암.”

먼저 돌아서는 동료의 뒤를 쫓아 관리 역시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단 여기 한 군데뿐만이 아니고 전국 곳곳에서 이와 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한편 노비해방 문제로 정국이 계속 시끄러울 때 지친 도현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일이 있었다.

“이게 새로 건조한 치우급 함선인가?”

“그렇사옵니다.”

답답한 대궐을 나와 제물포항으로 나온 도현의 앞에는 태산처럼 거대한 전함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남해 가덕도에 건설한 조선소에서 마누엘 등 봉황상단에서 초빙해 온 유럽인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건조한 함선이었다.

선체 전후좌우에 다수의 함포를 장착하고 돛대 세 개를 세워 동력으로 쓰는 등 최근 유럽에서 개발된 전열함의 특징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양쪽 측면에 두 줄로 탑재된 함포를 보면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탑재된 함포 수가 모두 몇 문이라고 했지?”

“아흔여섯 문이옵니다.”

옆에 있던 수군통제사 최영희의 대답에 도현은 다시 한 번 감탄성을 터트렸다.

“대단하군. 그 정도면 치우함이 쏟아 내는 포격에 견뎌 낼 수 있는 배가 없겠어.”

“맞사옵니다. 기존 신형 판옥선과 치우함을 합쳐 함대가 구성되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옵니다.”

“하하하! 이야기만 들어도 기분이 좋구먼.”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인 도현은 지금 당장은 재정 문제로 어렵지만, 차후 치우함의 선체 외벽에 철갑을 두를 계획을 세웠는데, 이미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기에 어렵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승선하시지요.”

“그러세.”

도현은 수행원들과 함께 잔교를 밟고 치우함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제복을 갖춰 입고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던 수군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면서 절도 있게 군례를 취했다.

“충!”

우렁찬 목소리는 포구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고 군기가 칼 같이 바짝 살아 있는 모습에 도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치우함 함장 이동규 군호입니다.”

최영희 통제사의 소개에 대열 맨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충! 주상 전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함선이 아주 멋지군.”

“감사하옵니다.”

도현의 칭찬에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한 이동규는 앞장서서 선내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여기가 함포를 쏘는 포실입니다.”

갑판 바로 아래에 위치한 포실로 들어가자 개량형 천자총통 마흔여섯 문이 양옆으로 줄을 지어 주욱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아래층에도 개량형 지자총통 마흔여섯 문이 탑재되어 있어 한꺼번에 다수의 포격을 가해 적을 단번에 격멸할 수 있사옵니다.”

“일제사격을 가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구먼. 그럼 나머지 네 문은 선체 앞뒤에 탑재되어 있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선수와 후미에 각각 개량형 천자총통이 두 문씩 배치되어 있사옵니다.”

“실제 사격을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문제는 없사오나 그러면 바다로 나가야 되옵니다.”

“그러면 되지.”

국왕을 태우고 항해하는 건 함장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바다였기에 이동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뒤편에 있던 최영희 수군통제사를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최영희가 머리를 끄덕이자 이동규 함장은 입을 열었다.

“알겠사옵니다.”

잠시 뒤 치우함은 정박해 있던 제물포 포구를 떠나 앞바다로 나갔다.

쏴아아.

파도가 선수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가운데 함교에 올라선 도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음껏 즐겼다.

“이렇게 넓은 바다에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게 아주 좋군.”

“그러십니까.”

“앞으로는 자주 배를 타고 나와야겠소.”

“하하하. 전하께서 바다의 매력에 아주 푹 빠지신 것 같사옵니다.”

“부인하지 않으리다.”

의연한 척하며 노비해방에 반대하는 신료와 사대부 들의 상소를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우직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받는 피로가 장난이 아니었던 도현은 정말 배를 타자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제물포 포구가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 함선이 도착하자 약간 긴장한 표정의 이동규 함장이 도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여기서 함포사격 시험을 실시하겠사옵니다.”

“그러시오.”

도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살짝 머리를 숙였다가 바로 한 이동규 함장은 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을 들며 크게 소리쳤다.

“방포 준비!”

한쪽에 설치된 전성관을 통해 함장의 명령이 전달되자 하갑판에 있던 포수들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장착된 화포에 포탄을 장전했다.

철컥.

“일 발 장전 끝.”

“대기!”

잠시 뒤 함장의 명령이 재차 하달됐다.

“일 번 포 이 회 사격 실시 후 좌우 함포 일제 방포!”

그러자 우현 제일 앞에 위치한 천자총통이 포탄을 발사했다.

꽝!

육중한 포성과 함께 약간의 진동이 선체를 흔들었다.

슈우우웅!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포탄은 육백 보 이상 떨어진 바다에 떨어져 커다란 물기둥을 만들었다.

그리고 불과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포탄이 발사되면서 속사 능력을 과시했다.

“이제 곧 일제사격이 시작될 겁니다. 배가 크게 요동칠 수 있으니 난간을 꽉 잡으십시오.”

함장의 경고에 도현과 수행원들이 난간을 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엄청난 포성이 울리면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선체가 요동쳤다.

꽝! 꽈꽝! 꽝! 꽝! 꽝!

모두 아흔두 문에 달하는 함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 모습은 방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감동과 흥분을 안겨 줬다.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하얀 물기둥 수십 개가 한꺼번에 솟아올랐는데, 만약 저기에 배가 있었다면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산산조각 나 버릴 것이 분명했다.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화약 연기로 선체가 온통 뒤덮인 가운데, 함교에 굳건히 선 도현은 착탄 지역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구려!”

주위에 있던 수행원들도 멍하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특히 문관인 도승지 장선징은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포성에 힘이 풀려 그만 바닥에 주저앉았다.

“함포의 내구성을 감안하면 이런 일제사격을 연달아 일곱 번을 실시할 수 있사옵니다.”

“그 정도면 남아나는 적선이 없겠구만.”

함포 사격까지 참관한 도현은 크게 만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충무공의 얼을 이어받아 단 한 척의 적선도 조선 바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실력을 더욱 갈고닦아 주게.”

“예, 전하.”

“이렇게 멋진 사격 시범을 보여 줬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이보게, 도승지.”

“말씀하십시오, 전하.”

정신을 차리고 의관을 정제한 도승지가 얼른 옆으로 와서 머리를 숙이자 도현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한 치우함 수군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넉넉히 하사해 주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주상 전하의 선물에 병사들이 아주 기뻐할 것이옵니다.”

이동규 함장이 반색을 하며 말하자 도현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좋겠군.”

군관들을 통해 도현이 술과 고기를 하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내에 있던 수군 병사들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강력한 화력 시범을 끝낸 치우함은 선수를 돌려 천천히 제물포 포구로 귀환했다.

배에서 내린 도현은 제물포에 마련된 임시 행궁에서 수행하던 신료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하하하! 오늘 치우함의 화력 시험은 정말 인상적이었소.”

“저희들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도승지는 엉덩방아까지 찧는 걸 보면 진짜로 크게 놀란 것 같았소이다.”

임경업의 농담에 도승지 장선징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 모습에 도현과 신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래도 금방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니 도승지로서 소임은 다했지 않사옵니까.”

“그렇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술을 한잔 따라 주지.”

손수 주전자를 집어 든 도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장선징의 잔에 술을 한가득 따라 줬다.

“황공하옵니다.”

“앞으로 신형 판옥선과 치우급 함선이 짝을 이뤄 함대를 구성하면 왜구는 조선 바다에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겠군.”

“맞습니다.”

“하지만 치우급 함선의 건조 비용이 워낙 비싸서 당장 대량 배치는 어려운 상황이옵니다.”

최영희 수군통제사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자 도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건조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기에 그래?”

“금화 일만 냥이옵니다.”

“으음.”

은화도 아니고 금화로 무려 일만 냥이나 들어간다는 이야기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침음을 내뱉었다.

함께 있던 신료들도 어마어마한 건조 비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금화 천 냥이면 신형 판옥선 한 척을 만들고 필요한 화포까지 모두 장착할 수 있으니 치우급 군선이 얼마나 고가인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치우함을 만든다고 수군은 지난 일 년간 신형 판옥선의 추가 건조를 절반 이하로 줄여야 했다.

“아무런 경험 없이 처음으로 건조하는 서양식 군선이라 비용이 더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금화 구천 냥은 있어야 될 것이옵니다.”

“비싸긴 하군.”

“선체도 크고 무엇보다 탑재되는 화포 수가 엄청나니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치우급 군선을 대량 건조해 영국처럼 바다를 호령하는 무적함대를 꾸리고 싶었지만, 당장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지상 병력을 증강해야 되는 상황에서 수군에 많은 투자를 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하긴 화포를 구십 문 넘게 탑재하니.”

“확실히 당장 추가 건조를 하기에는 재정 부담이 클 것 같사옵니다.”

병조판서인 임경업도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나는 건조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분위기에 대량 건조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왕인 도현의 결단에 의미 있는 숫자의 치우함을 보유하길 은근히 희망했던 최영희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술잔을 내려놓고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심하던 도현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건조비가 비싸기는 하지만 기껏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군선을 만들어 놓고 함대에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아까운 일이니 재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일 년에 한 척씩이라도 건조를 하는 건 어떤가?”

도현의 말에 순간 반색을 하던 최영희 수군통제사는 이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좋겠지만 한정된 예산 대부분이 치우급 군선 건조에 들어가 버려 기존 배들을 신형 판옥선으로 모두 교체하려는 계획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옵니다.”

“치우급 군선 건조비는 내탕금에서 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게 정말이시옵니까?”

“대궐에 돌아가는 대로 필요한 자금을 보내 주도록 하지.”

극적으로 치우급 군선을 추가로 건조할 수 있게 된 최영희 수군통제사는 뛸 듯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숙였다.

“감사하옵니다.”

“아니, 장군들이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결국 짐과 나라를 위한 일 아니겠나.”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인 도현은 술잔을 다시 들며 호기롭게 말했다.

“자! 바다의 지배자가 될 수군과 조선의 빛나는 앞날을 위해 함께 건배합시다.”

“예.”

술잔을 집어 든 신료들은 도현을 따라 단숨에 다 들이켰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 갔다.

며칠 뒤 약속한 대로 도현은 내탕금에서 금화 일만 냥을 꺼내 수군 통제영에 보냈다.

상당한 거액이었지만 마침 봉황상단이 명과 왜국에서 소금 판매 대금을 받아 왔고, 아직 웅도 비고에 명 황실의 보물이 엄청나게 남아 있었기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소금은 왕실에서 직접 관리를 하는 품목으로 어용상단인 봉황상단에서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때쯤에는 웅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서부 해안에 위치한 섬들에 염전을 추가로 만들어 매달 수천 포대가 넘게 대량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은 국내에서 소비가 되기도 했지만 절반가량이 명과 왜국으로 팔려 나가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염전을 더 늘렸으면 한다고?”

도현의 물음에 상단 수익을 보고하러 입궐한 장 총관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렇사옵니다. 왜국뿐만 아니라 최근 명나라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이 크게 늘어서 소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바로 배에 실고 가는 상황이옵니다.”

“돈을 찍어 내기 위해 많은 금과 은이 필요한데, 장사가 잘된다니 좋은 일이지. 그래, 얼마나 더 늘릴 계획인가?”

“이왕 만드는 김에 앞으로 늘어날 수효까지 고려해서 기존 웅도에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염전을 새로 조성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생산량이 지금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건데, 그걸 다 소화할 수 있겠나?”

도현이 약간 걱정스러운 듯 묻자 장 총관은 문제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도 서로 한 포대라도 더 가져가려고 난리인데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럼 경이 알아서 하게. 마침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잘됐지.”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심양에 있는 풍안 공업사에서 첫 제품이 나왔사옵니다.”

“오! 그래.”

“어떤지 한번 봐주시옵소서.”

“이리 가져와 봐.”

“예.”

장 총관이 가져온 목 함을 칠현이 받아서 가져오자 도현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긴 막대 모양의 연필 다섯 개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그중 한 개를 집어 든 도현은 서탁 위에 있던 종이에다가 글씨를 써 봤다.

회귀 전에 써 봤던 것 못지않게 글씨가 선명하고 부드럽게 잘 써지자 도현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시제품 때보다 확실히 나아졌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옵니다.”

처음에는 흑심의 재료인 흑연과 점토의 이상적인 혼합 비율을 몰라 글씨가 제대로 안 써지거나 목재의 접합 부분이 약해 쓰다가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냥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연필을 하나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행착오와 개량이 필요했는데, 그런 노력 끝에 원하는 수준의 제품이 만들어지자 도현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연필 겉면이 그냥 목재 그대로 되어 있으니 약간 투박한 느낌이 드는군.”

연필을 들고 잠시 고심을 하던 도현은 이내 앞에 엎드려 있는 장 총관을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여기다 채색을 해 보게.”

“색깔을 칠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그냥 밋밋한 것보다 여러 가지 색을 입히면 더 시선이 가지 않겠나. 고급스러운 느낌도 들고 말이야.”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그리고 요기 끝부분에 봉황 무늬 인장을 찍어 넣으면 더 좋겠군.”

“봉황은 왕실의 상징이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그걸 어찌 천한 상품에다가 쓰란 말씀이시옵니까?”

그동안 도현의 측근이 되어 함께 일하면서 유교 정신에 갇혀 있던 틀을 많이 깼다고 자부하는 장 총관이었지만, 왕실의 상징을 상품에 찍어 넣는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봤다.

“그게 뭐 어때서?”

“하오나…….”

“당분간은 독점적으로 상품을 팔 수 있겠지만 오래지 않아 이걸 모방해서 파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거란 말이야. 그때 다른 것과 차별되는 우리가 원조라는 고유한 브랜드 아니, 상징이 필요해.”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사오나 그래도 이건 자칫 주상 전하와 왕실에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그럼 그런 일이 없도록 흠잡을 때 없는 상품을 만들면 되지 않겠나.”

“…….”

“그 누구도 최고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품을 만들라고. 이참에 왕실이 소유하는 공장에서 생산해 내는 상품에는 모두 봉황 인장을 찍어서 차별성을 부여하도록 해.”

처음에는 너무 놀라 덮어놓고 반대부터 했지만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니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기에, 장 총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짐이 직접 허락하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

“하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대궐을 나온 장총관은 즉시 솜씨 좋은 장인을 구해 연필에 찍어 넣을 봉황 인장 제작에 들어갔다.

왕실의 상징을 아무렇게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장 총관은 특별히 금색 안료를 만들어서 인장을 찍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필은 우선 봉황상단에 운영하는 상점을 통해 시중에 판매됐다.

갓을 쓴 점잖은 선비 한 명이 지전紙廛(종이를 팔던 곳) 안으로 들어서자 물건을 정리하던 점원이 얼른 허리를 숙이며 맞이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어험. 종이를 좀 사려는데 괜찮은 물건이 있나?”

“예. 저기 경상도에서 만든 모절지殿節紙부터 전라도 고정지藁精紙 그리고 충청도에서 어제 갓 가져온 마골지麻骨紙까지 다 있습니다요.”

점원의 설명을 들으며 진열되어 있는 종이들을 천천히 살펴본 선비는 그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좋겠군.”

“역시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품질이 좋아서 다른 선비분들도 많이 찾으시는 물건입니다.”

“그런가. 은 한 냥 치만 주게.”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점원이 포장을 하는 동안 상점 한쪽에 있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구경하던 선비는 붓과 함께 놔둔 연필을 발견하고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뭔가?”

“연필이라는 겁니다.”

“연필?”

“예.”

잘하면 물건을 더 팔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얼른 옆으로 다가온 점원은 진열된 연필 하나를 집어 들며 이야기를 했다.

“먹을 갈지 않아도 바로 글씨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그런 게 어디 있나?”

선비가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자 점원은 쪼가리 종이를 하나 가져와서 직접 어떻게 쓰는 건지 보여 줬다.

슥슥.

“자! 보십시오. 정말 간편하지 않습니까.”

“허어.”

너무나도 가늘고 선명하게 쓰이는 글자에 선비는 헛바람을 삼키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든 바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군.”

“그리고 여길 보시면 상징이 하나 찍혀 있는데, 보이십니까?”

점원이 연필을 잘 보이게 앞으로 내밀며 하는 말에 겉면을 살피던 선비는 이내 끝부분에 황금색으로 선명히 찍혀 있는 봉황 무늬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주상 전하를 상징하는 인장이지요.”

“이게 어떻게 여기에 찍혀 있는 건가!”

왕실을 상징하는 봉황이나 이화꽃 무늬는 함부로 쓰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에 선비는 눈썹을 추어올리며 꾸짖듯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했다.

“연필을 만드는 곳이 바로 왕실에서 운영하는 공장이니 봉황 무늬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게 아니라면 언감생심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희가 함부로 봉황 무늬가 찍힌 상품을 갖다 놓겠습니까.”

“하긴…….”

휴대하기 편하고 먹과 벼루가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국왕을 상징하는 봉황 무늬가 들어간 것에 선비는 마음이 크게 끌렸다.

계속 연필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점원이 넌지시 구매를 하도록 유도했다.

“어떻게, 한번 써 보시죠.”

“글쎄…….”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물건이라 저희도 가지고 있는 수량이 적어서 지금 안 사시면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점원의 말에 망설이던 선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개 얼만가?”

“엽전 열 냥인데 단골이시니까 한 냥을 빼 드리지요.”

“그러면 세 자루만 주게.”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행여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봐 점원은 얼른 종이와 연필을 포장해서 건넸다.

“여기 있네.”

돈을 받은 점원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찾아 주십시오, 나리.”

“알겠네. 많이 팔게.”

“예.”

이렇게 한양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상점을 통해 연필이 판매됐고, 도현의 지시에 따라 각 관청에도 보급돼 사용했다.

반응도 좋고 판매가 호조를 띄자 장 총관은 바로 풍안 공업사의 생산량을 늘렸고 동시에 명과 왜국에도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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