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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5화 (5/391)

5화

레어 등급의 사슴 고기와 사슴 가죽의 효과는 엄청났다.

엑스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사슴 가죽으로 만든 장비는 민첩을 최소 2포인트나 올려준다…… 이거 사슴 가죽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겠는데?”

레어 사슴 가죽 방어구 세트!

페이트에 처음 접속했던 엑스가 경매장에서 눈여겨보던 아이템들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직업 전용 방어구에 뒤지지 않았고, 레벨 제한이 낮았으니까.

엑스가 검을 바로 잡았다.

“요 예쁜 녀석들.”

뛰노는 사슴들이 마치 거대한 황금 덩어리로 보이는 것 같았다. 엑스는 인벤토리가 가득 찰 때까지 아이템을 파밍할 생각이었다.

퍽! 퍽!

그 후로 엑스의 무차별 사냥이 시작됐다.

엑스의 공격은 빠르면서도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엑스에게 선공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사슴들은 상태 이상에 걸려 헤롱거리다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다.

아이템을 챙기던 엑스는 생각했다.

‘정석적으론 사슴 다음은 여우를 잡아야하는데…….’

여우!

여우는 초보 모험가들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선공 몬스터였다. 물론 공격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체력도 적었다. 당황하거나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다만, 엑스는 여우를 건너뛰려고 결심했다.

‘레벨 차이가 나더라도, 비선공 몬스터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일단, 급소를 강하게 후려치면 상태 이상에 걸릴 수밖에 없을 거야!’

엑스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었다.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스테이터스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컨트롤에 대해선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한 엑스였다.

실제로 엑스에게 급소를 정확하게 후려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만도가 10퍼센트 이하입니다.]

“흐흐!”

올라가는 경험치!

쌓여가는 아이템!

현실에서도 느껴 본지 오래된 뿌듯함이 느껴졌다.

쭈욱! 기지개를 켠 엑스는 흙바닥에 앉았다. 인벤토리에서 호밀 빵을 꺼냈다가 관뒀다.

“더 이상 빵을 먹어도 스텟은 오르지 않으니까…….”

엑스는 대신 사슴 고기를 꺼냈다. 고기와 지방의 마블링이 아름답기까지 한 레어 등급의 사슴 고기였다.

쓰읍! 엑스는 군침을 닦았다.

“날 것으로 먹어도 괜찮다고 했겠다?”

물컹!

엑스가 망설임 없이 고기를 베어 물었다.

“……!”

사슴 고기를 베어 문 엑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육회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맛이 느껴졌다. 적당히 씹히는 육질과 입안 가득히 퍼져나가는 육향!

맛은 기본이요, 능력치까지 빼놓을 수 없었다.

[천상의 미각이 ‘매우 신선한 사슴 고기’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사슴 고기의 풍미가 몸에 흡수됩니다!]

[최대 체력이 80포인트 상승합니다!]

[힘이 5포인트 상승합니다!]

“……겁날 정도로 오르는데, 이거?”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방금 먹은 사슴 고기가 레어 등급이라고는 하지만, 힘이 무려 5포인트나 상승했다. 이건 레벨 업으로 얻은 보너스 포인트를 전부 힘에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였다.

엑스는 사슴 고기를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천상의 미식가라면, 할 수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페이트의 정상을 차지하겠다!

솔직히 말은 그렇게 했어도, 현실성 없는 목표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거대 길드를 직접 운영해 봤던 엑스였으니까. 길드의 위력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상의 미식가’로 전직한 지금.

엑스에겐 자신감이 넘쳐났다.

“다시 시작해 볼까?”

엑스는 남은 사슴 고기를 먹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냥에 집중했다. 문득, 아이템을 챙기던 엑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유저가 없다.

제 아무리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유저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엑스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역시 범상치 않아.’

촘촘히 솟아오른 나무들이 마치 울타리 같았다.

엑스를 다른 유저들과 단절시켜 놓으려는 울타리.

엑스는 나무들 사이로 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곳으로 들어온 기억은 없는데…….’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엑스는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다.

물론 마주치는 사슴들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때려잡고 아이템을 챙겼다. 게다가 뭐든 먹을 수 있을 것처럼 생긴 열매들은, 일단 입에 쑤셔 넣었다.

덕분에 엑스의 능력치는 말 그대로 ‘폭발’하고 있었다.

이름 : 엑스

직업 : 천상의 미식가

칭호 : 없음

레벨 : 13

명성 : 0

생명력 : 680 / 680

마나 : 120 / 120

힘 : 52 / 민첩 : 22

지능 :1 / 인내 : 8

보너스 포인트 : 0

“어마어마하네, 진짜.”

레벨 13이 가질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최대 체력이 직업들 중 가장 높은 수치를 지닌 성기사보다 높았다.

그것만으로도 사기라고 할 수 있었는데, 힘과 민첩도 같은 레벨의 전투 직업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너스 스텟을 인내에 5포인트나 투자해도 말이다!

“몇 발을 앞서나가는 거야, 이게?”

엑스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토록 쉽고 재미있게 게임을 해본 적이 있긴 했던가! 엑스는 자신에게 사탕을 건넨 의문의 사내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나를 이런 곳에 소환한 걸까?’

엑스는 자신을 이 장소에 소환한 게 의문의 사내라고 확신했다. 사내가 준 사탕을 먹고, 환상을 보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으니까. 당연한 추리였다.

“약 주고, 병 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중얼거리던 엑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반짝!

저 멀리, 길 끝에서 뭔가가 일렁이며 빛을 냈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 나가던 엑스의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잊혀진 장소 ‘은빛 연못’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30포인트 상승합니다!]

“잊혀진 장소?”

찬란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연못.

은빛 연못 앞에 멈춰선 엑스는 생각했다.

‘천상의 미식가와 관련된 장소인가?’

잊혀진 직업, 천상의 미식가!

잊혀진 장소, 은빛 연못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엑스는 연못 주위를 거닐었다. 연못엔 사슴들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엑스가 생각에 빠진 탓에 목숨을 건진 사슴들이었다.

“음, 특이해 보이진 않는데…….”

엑스는 턱을 매만졌다. 알고 있는 정보가 적었기에, 추측해 볼 수 있는 게 적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은빛 연못이 직업 퀘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라면,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난이도 측정 불가의 퀘스트!

어쨌거나, 은빛 연못은 ‘미식왕의 진실’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잊혀진 장소라는 명칭이 괜히 붙여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엑스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알아봤자 능력도 없다.’

난이도 측정 불가의 퀘스트도 좋지만, 지금은 레벨 업에 집중할 때다. 엑스는 검을 뽑아들고 모여 있는 사슴들을 바라봤다.

“……연못 물이 그렇게도 맛있나?”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엑스라고 해도 목마른 사슴들을 때려잡으려고 하니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잠깐 멈칫했던 엑스는 호기심이 생겼다.

‘마셔 보자.’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엑스에겐 천상의 미각이 있었다.

이 신비한 은빛 연못에 사기적인 효과가 숨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엑스는 무릎을 꿇고, 은빛 연못에 얼굴을 파묻었다.

꿀꺽!

[천상의 미각이 ‘은빛 연못’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은빛 연못의 순수함이 몸에 흡수됩니다!]

[고유 스킬 ‘잊혀진 장소’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엑스가 놀라기도 잠시, 번쩍! 엑스의 몸이 반짝였다. 엑스는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 이내, 시야를 가득 메운 빛이 사라지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집중 좀 합시다! 방금도 다 잡은 거잖아요.”

“죄송해요, 화살이 빗나갈 줄은…….”

“괜찮아요, 이번엔 제가 어그로 끌어 볼게요.”

유저들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엑스는 가쁜 숨을 뱉어 냈다.

“후우, 빠져나왔다.”

역시 길을 잃었다고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엑스는 획득한 스킬을 확인했다.

잊혀진 장소 (Master) : 잊혀진 장소로 순간 이동합니다.

‘사용하면 은빛 연못으로 순간이동하는 건가 보구나.’

이런 스킬까지 주는 걸 보아하니, 잊혀진 장소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 엑스는 얼추 상황 파악이 끝나자 가득 찬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일단, 나르빌로 돌아가야겠다.”

*

나르빌 상점가.

루빈의 잡화점은 언제나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루빈을 포함한 NPC들은 유저들과 밀당이 한창이었다.

“토끼 가죽까지, 전부 다해서 2골드면 되겠죠?”

“2, 2골드요? 아저씨, 조금만 더 쳐주시면 안 돼요? 거의 일주일동안 사냥만 했는데 2골드면 빵값도 안 나와요…….”

“손님, 저희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도…… 딱 10실버만 어떻게 안 될까요?”

“절대 안 됩니다.”

낙담한 유저의 얼굴!

루빈은 멋스럽게 기른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으으, 알겠어요.”

“거래 감사합니다, 손님!”

밀당의 승자는 언제나 루빈이었다. 내세울 것 없는 초보 유저들이 나르빌 최고 잡화점의 주인과 흥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 다음 손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사슴 가죽이랑 여러 가지 좀 처분하려고 하는데요.”

“사슴 가죽이라, 워낙 인기 품목이라 항상 매입은 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공급량이 갑자기 늘어서 좋은 가격은 못 쳐드려요. 알고 계시죠?”

루빈의 말에 엑스가 웃으며 대꾸했다.

“글쎄요. 보시면 마음이 바뀌실 걸요?”

엑스는 가장 먼저 장비로 만들 몇 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드러운 사슴 가죽을 루빈 앞에 늘어놨다. 부드러운 사슴 가죽은 척 봐도 일반 사슴 가죽과 때깔부터 달랐다.

토끼눈이 된 루빈이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이건 부드러운 사슴 가죽 아닙니까? 하나, 둘, 셋, 넷…… 이게 대체 몇 장이야? 소,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루빈은 콧수염을 휘날리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내, 그가 찻잔을 엑스에게 내밀었다.

“제가 계산하는 동안 이거라도 드시지요. 그보다, 혹시 부드러운 사슴 가죽을 더 가지고 계실런지요? 이런 질 좋은 사슴 가죽은 항상 물량이 부족하거든요. 높으신 분들이 워낙 대량으로 구매하셔서 말입니다. 물론, 값은 후하게 쳐드리겠습니다!”

부드러운 사슴 가죽.

상인 NPC와 친밀도를 쌓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던가?

수량이 많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효과가 나오고 있었다.

간절한 루빈의 눈빛에 엑스는 일단 차를 홀짝였다.

[천상의 미각이 ‘홍차’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홍차의 따뜻함이 몸에 흡수됩니다!]

[최대 마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지능이 1포인트 상승합니다!]

‘음, 향 좋고.’

알림을 확인한 엑스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개당 1골드.”

“개, 개당 1골드……?”

“가격만 맞춰 주시면 몇 개라도 가져다 드릴 수 있죠.”

밀당을 시작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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