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미식왕의 후계자, 엑스!
덕분에 엑스는 까칠한 칼론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리그리앙이라고 다르겠는가? 더군다나 리그리앙은 300년이나 미식왕을 기다려온 충신!
한데, 리그리앙의 반응은 예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뿌득! 다시 한 번 리그리앙의 턱이 삐걱거렸다.
“미식왕이라, 내 그 이름을 꺼낼 줄 알고 있었지.”
후욱! 리그리앙에게서 위협적인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덜덜! 다리를 후들거리는 엑스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바, 반응이 왜 이래?’
엄청난 미움을 받는 듯한 느낌!
엑스는 빠른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리그리앙의 반응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미식왕을 그 자식이라고 했었지?’
그 자식.
칼론이 미식왕을 ‘그분’이라고 칭했던 것과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엑스는 그제 서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난 사람을 300년이나 기다렸는데, 정작 돌아온 것은 생판 처음 보는 후계자란다.
‘이거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
엑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꼴도 보기 싫으시겠지요. 300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잘도 후계자는 정하고, 보내 왔으니까요.”
치킨집 사장.
엑스는 사회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했다.
그러다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하나 있었는데,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 뒷담화만큼 좋은 건 없다는 것이었다. 리그리앙도 엑스의 생각에 공감한 것일까?
기운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딱딱! 리그리앙이 말했다.
“완전 판박이라고 생각했건만, 다른 면도 있구나.”
“그럼요. 저는 300년 동안 잠수를 타는, 그런 비인간적인 짓은 못합니다.”
“됐다. 더 이상 그놈의 이야기는 꺼내지 말거라.”
딱! 리그리앙이 앙상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저택이 환해졌다.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엑스의 눈길을 끌었다.
리그리앙이 두리번거리는 엑스에게 물었다.
“눈조차 없는 해골바가지라 책도 못 읽는 줄 알았나? 망자의 해변에 사람은 나 혼자다. 시간을 죽이는 데엔 독서와 연구만한 것도 없지.”
“깔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안했습니다.”
“몸에 먼지가 쌓이면 기분이 찝찝하거든.”
해골이라서 그런가? 깔끔한 이유가 조금 특이했다.
엑스는 책상 앞에 앉은 리그리앙의 심기를 살폈다.
‘뭔가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데.’
리그리앙은 미식왕을 300년이나 기다렸다.
그것도 망자의 해변에서 혼자!
그가 느껴왔을 고독이 가벼운 뒷담화로 사라질 순 없을 것 같았다.
엑스는 리그리앙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했다.
“어떻게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뭐든 시켜만 주시죠. 청소? 이래봬도 제가 자취 경력이 꽤 되거든요. 청소라면 끝내주게…….”
딱! 리그리앙이 뼈 있는 헛웃음을 뱉었다.
“목적을 말해 놓고, 도울 일을 찾는다? 순진한 건가, 멍청한 건가?”
엑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곳을 찾아온 목적은 오로지 미식왕의 레시피다. 리그리앙이 미식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점에서 레시피를 얻어 내는 건 힘들게 됐을 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보통 내공의 소유자가 아니다.’
하지만 리그리앙은 300년을 산 사람이다.
같은 사람의 생각을 읽는 건 밥 먹기보다 쉬울 터.
엑스는 차라리 솔직하게 나가자고 생각했다.
“두 분 사이에서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식왕의 레시피를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게 맞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당연하시겠습니다만…… 어떻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리그리앙은 뻥 뚫린 눈으로 엑스를 응시했다.
이내, 그의 턱관절이 움직였다.
“뻔뻔하지만, 솔직한 놈이구나.”
“네?”
“그 자식이랑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런 젠장!
엑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최대한 진심을 보였건만, 이번에도 미식왕과 비슷한 말을 뱉어 버리다니.
리그리앙이 보였던 살기를 생각하면, 이번엔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하나, 괴짜의 생각은 역시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녀석과 다르게 상도덕은 있군.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감정으로 녀석의 면상과 직면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알 수 없으니까.”
딱딱! 리그리앙이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엑스가 기대하며 물었다.
“그 말씀은…… 제게 레시피를?”
“어렵지 않은 일이지.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가 있다.”
엑스는 당장이라도 쾌재를 부르고 싶었다.
미식왕의 핵심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리그리앙이다.
그가 알고 있는 레시피의 효과가 곰 태세에 뒤처지진 않으리라.
‘이번 레시피까지 손에 넣으면 해 볼 만하다.’
엑스의 스텟은 상위 랭커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곰 태세를 사용하면 오히려 랭킹 1위를 압도할 정도다.
거기에다 두 번째 레시피까지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엑스라는 이름을 내세우고도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다.
미식왕의 레시피에는, 길드라는 절대 다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으니까.
엑스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한데 말이다.”
쓰윽! 리그리앙의 엑스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두득두득! 그러곤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의 네 수준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재료구나.”
“……네? 다룰 수 없다니요?”
“네가 재료에게 잡아먹힐 게 뻔하단 말이다.”
재료 따위에 잡아먹힌다고?
말했다시피 엑스는 강자에 속한다. 그냥 강자도 아니고, 엄청난 강자다.
곰 태세의 효과를 받는 동안엔, 페이트 유저들 중 제일 강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어지는 리그리앙의 말에 엑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는 칼론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전설의 동물이라고 불리는 피닉스를 주재료로 만드는 레시피이니라.”
피닉스!
페이트의 존재하는 전설의 동물 중 하나였다. 일단, 전설이라는 칭호가 붙는 몬스터들은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거기에다가 피닉스라면, 페이트 광고 영상에도 등장했던 녀석 아닌가?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왕국의 기사단도 못 잡았던 녀석이잖아.’
압도적인 강함!
한 번의 날갯짓으로 대지를 불태우던 파괴력!
엑스는 그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알고 있는 레시피가 피닉스로 만든 음식이라니.
제 아무리 엑스라고 해도, 피닉스와 대적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능력으론 아마 날갯짓 한 번에 강제 로그아웃을 당하게 될 터.
엑스에게 이어지는 리그리앙의 말은 더욱 기가 막혔다.
“그것뿐이겠느냐? 부가적인 재료들도 네 수준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숨기고 있는 힘을 개방한다고 해도 하나조차 얻기 불가능하단 소리다.”
여기서 숨기고 있는 힘은 곰 태세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희대의 사기 스킬, 곰 태세를 사용해도 재료 하나조차 구하지 못할 거라니.
‘도대체 어떤 효과를 가진 음식이길래?’
당연히 기대는 됐다.
하지만 재료를 구하는 게 너무나도 먼 나라의 일이라, 가슴이 뛰거나 흥분되진 않았다.
엑스가 축 처진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죠. 제가 너무 일찍 리그리앙 님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때가 온다면, 그때 다시 리그리앙 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땐 꼭 선물이라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NPC와의 관계는 언제나 중요하다.
엑스는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망자의 해변을 떠날 생각이었다.
다른 레시피의 행방을 묻고는 싶었으나, 리그리앙의 성격을 생각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리그리앙이 말했다.
“아이야.”
“……네? 저를 부르신 겁니까?”
당황했던 엑스지만, 이내 납득했다.
리그리앙은 300년을 넘게 살았다.
리그리앙의 진지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째서 네가 그 자식에게 선택이 됐는지, 나는 알 것 같구나. 또한 네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 지도 알고 있단다. 그렇기에 내키지는 않지만…… 네게 도움을 주고 싶구나.”
이게 웬 떡인가?
성격은 종잡을 수 없어도 미식왕의 동료였던 리그리앙이다.
그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
또한 그가 내뿜는 심상치 않는 기운을 생각한다면,
어떤 도움이라도 일단은 받아보는 게 이득 같았다.
“주신다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거칠 것이 없어 좋구나.”
딱딱! 리그리앙이 웃음을 흘리며 펜을 들었다.
그가 종이 위로 펜을 놀리자, 엄청나게 복잡한 글자와 도형들이 그려졌다.
리그리앙이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 무엇보다 실용적이면서, 위력적인 힘을 네게 주마. 그 자식에게는 필요가 없었지만, 아직 터무니없이 허약한 네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란다.”
희대의 사기 캐릭터에게 터무니없이 허약하다니.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았지만, 뭐 어떤가?
엑스는 강해질 수만 있다면, 쌍욕이라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긴장한 엑스가 리그리앙을 기다렸다.
이내, 리그리앙이 엑스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미천한 너의 수준을 배려해 한 자, 한 자 손수 새겨 넣었으니.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이 종이를 받는다면, 내 도움에 응한다는 소리로 알아듣겠다.”
도움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엑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받아들었다.
종이에 써진 글자와 도형을 바라봤다.
그러자 알림이 떠올랐다.
띠로링!
[고유 스킬 ‘죽음 부정’을 습득하셨습니다!]
‘죽음 부정?’
엑스가 의아해하기도 잠시.
이내, 또 다른 알림 떠올랐다.
<괴짜와의 거래>
괴짜의 도움을 받아들인 당신은, 이제 괴짜의 심부름을 들어 줘야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괴짜는 당신에게 악의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의 부탁을 들어 주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제한 : 죽음 부정 스킬을 소유한 자
난이도 : B
보상 : 리그리앙의 선물
‘이거, 퀘스트잖아?’
퀘스트는 언제나 보상을 가져다준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한 엑스가 경악했다.
‘이런 미친, 난이도가 B라고?’
난이도 B는 국가 단위에 적잖은 영향력을 줄 정도의 퀘스트라는 소리다.
대체 어떤 심부름을 시킬 생각이길래, 난이도가 B나 되는 것인가?
엑스가 고개를 들어 리그리앙을 바라봤다.
웬일인지 그의 손가락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빛나는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당황한 엑스가 말을 더듬었다.
“자, 잠시 만요.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려면, 되도록 오래 접하는 수밖에 없지.”
새로운 것?
떠오르는 건 새롭게 익힌 스킬, ‘죽음 부정’이었다.
그 죽음 부정에 익숙해지라는 것은…….
이거 설마 죽으라는 소리인가?
“컥!”
슉! 이내, 엑스의 가슴팍에 매직 애로우가 꽂혔다.
매직 애로우.
막 전직한 마법사들이나 쓰는 기본 마법 중의 기본 마법.
때문에 엑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방에?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그 기본 마법 한 방에 2만이 넘는 생명력이 바닥나 버렸으니까.
엑스의 눈앞에 처음 보는 알림이 떠올랐다.
[사망하셨습니다!]
괴짜라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법을 날려 버릴 줄이야!
엑스는 끔찍한 사망 페널티를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근데, 죽음 부정이란 스킬은 대체 뭐야?’
사망 페널티를 받더라도, 쓸 만한 스킬이라면 이득이었다.
그런 엑스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띠로링!
[고유 스킬 ‘죽음 부정’이 발동됩니다!]
[죽음을 부정합니다!]
[부활합니다!]
‘부활!’
엑스가 눈을 떴다.
“……눈이 떠진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믿기진 않지만 알림대로 부활했단 소리였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