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고목의 숲, 그래도 초입에는 유저들이 몇몇 보였다.
엑스는 용용이를 소환 해제했다. 용용이의 외관은 유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니까. 파티로 보이는 사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아무리 그래도 고목의 숲은 좀…….”
“새끼야,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 우리 같이 없는 놈들은 여기서라도 사냥해야지. 돈은 못 벌어도, 레벨은 올려야 할 것 아니야.”
“그래도 깊숙이는 들어가지 말죠?”
“물론이지. 소문도 흉흉하니까.”
고목의 숲의 괴담!
‘환청이 들린다고 했었지?’
안 그래도 유저들이 기피하는 고목의 숲이다. 게다가 깊숙이 들어가면 소름 끼치는 환청이 들려온다는 소문도 널리 퍼져 있었다.
엑스가 콧방귀를 뀌며 사내들을 지나쳤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엑스에게 환청 따윈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환청이 반가웠다. 다른 유저들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줄 테니까.
“아주 그냥 뽕을 뽑아야지.”
크게 심호흡하자 축축한 공기가 느껴졌다.
고목 탓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지만, 횃불을 밝힐 정도는 아니었다.
엑스가 주변을 훑어보는 와중,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파티가 있으신가요? 저희도 고목의 숲에서 사냥할 생각이라, 일행이 없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하시는 게 어떨까요? 사제는 없지만, 저 녀석이 회복 마법은 배웠습니다.”
방금 전, 초입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내들이었다. 그들이 엑스의 좋아 보이는 장비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엑스가 능글맞게 대답했다.
“파티는 없지만, 사냥하려고 온 게 아니어서요. 그냥 살짝 둘러만 보고 필요한 것만 찾아서 나올 겁니다. 알다시피, 고목의 숲은 흉흉한 곳이잖아요?”
술술 흘러나오는 거짓말.
엑스의 말에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러시군요. 아무래도 고목의 숲이라. 역시 파티 구하는 게 쉽지 않네요. 저희도 여긴 포기해야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목의 숲을 찾아온 사내들이었지만, 막상 들어가기는 꺼려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고목의 숲에 들어오면 다른 유저들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 넓은 곳에 몇 명은 있겠지만.’
두껍고, 높게 솟아오른 고목들이 벽처럼 시야를 차단했다.
일반 유저들에겐 이런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엑스는 탐욕에 눈이 먼 괴물!
“보는 눈 신경 안 쓰고, 제대로 사냥할 수 있겠는데?”
레벨도 올리고, 스텟도 올리고, 숙련도도 올리자!
엑스는 욕심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숲길로 나아갔다.
후두둑! 이내, 높은 고목 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쉽게 달려들지는 않는구나.’
마법과 마나를 다루는 변종들.
때문에 육체적으론 강점이 있다고 볼 순 없었다. 녀석들도 그 사실을 아는지, 근접해 오지 않았다. 문득, 엑스의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왔다.
슉! 작지만 빠르고 위협적인 투척!
머리를 숙인 엑스가 감탄을 뱉었다.
‘다람쥐도 마법을 쓴다는 게 진짜였네?’
날아온 것은 도토리였다. 하나, 마나를 두른 도토리는 돌팔매질보다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도토리가 떨어진 땅이 움푹 파였다.
‘여기선 활을 쓸 수밖에 없겠군.’
엑스는 고목 위에서 변종 다람쥐를 발견했다. 녀석의 몸에선 녹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목의 영향을 받아 마나를 다룬다는 증거였다.
엑스가 활시위를 겨눴다.
“내가 또 웬만한 궁수보다 활을 잘 쏘거든?”
엑스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현재 엑스의 민첩은 520포인트를 넘었고, 정확한 활시위의 숙련도도 30퍼센트가 넘었다. 제 아무리 날랜 다람쥐라고 해도 맞출 능력이 충분했다.
팽! 엑스가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뻗어 나갔다.
푹! 미처 회피하지 못한 다람쥐가 고목에서 떨어졌다.
엑스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일단, 다람쥐는 가뿐하게 클리어.’
다음 고기, 아니, 다음 사냥감은 누구냐?
번뜩거리는 엑스의 눈이 고목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사냥감을 발견했다.
“……뭔가 굉장해 보이는 사슴이네.”
고오오오.
다람쥐와 마찬가지로 녹색 빛을 뿜는 변이 뿔사슴! 호전적인 성격인지, 녀석이 엑스를 보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에서 마나가 일렁거렸다.
‘확실히 변칙적인 마법이야.’
고목의 숲에 사는 동물들은 고목의 기운을 받아 변종이 됐다. 때문에 변칙적인 자연 마법과 비슷한 마법을 구사하는 것 같았다.
슈우우욱! 엑스를 향해 돌진하는 뿔사슴의 환영!
뿔사슴은 마나로 만들어 낸 환영으로 엑스를 공격했다.
휙! 엑스가 몸을 틀었지만, 환영도 엑스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유저들이 외면한 이유를 알 것 같군.’
난이도가 상당하다!
까다로운 자연 마법을 구사하는 변종들이었다.
마법 저항력이 없는 일반 유저들은 고전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나, 엑스는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싸우는 맛이 나지!”
열심히 일한 뒤에 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법!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자 생각한 엑스에게 이런 공격들은 환영이었다. 엑스는 이리저리 몸을 놀리며 쏟아지는 변칙적인 공격들을 회피했다.
“아야.”
간혹 가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도토리는 피할 수 없었지만, 보이는 건 전부 피하고 있는 엑스였다. 전투는 길어지지 않았다. 변칙적이라곤 해도 엑스의 스텟을 감당하기엔 역부족.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한 엑스는 전리품을 챙겼다.
“진짜 재료템이랑 고기 밖에 안 나오네.”
변종이라곤 해도 베이스가 동물이었다. 난이도에 비하면 확실히 보상이 적었다. 그래도 가죽들은 은은한 마나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런 건 로브의 재료 아이템이 된다.
“물론, 나한테는 이보다 전리품도 없지만.”
여태껏 수많은 고기들을 만지고, 요리해 온 엑스였다.
때문에 새로운 고기가 하나만 늘어나도, 수십 가지의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수십 배로 스텟을 올릴 수 있단 소리!
“포만도도 떨어졌고. 슬슬 시작해 볼까?”
요리를 시작한다!
엑스가 고목의 숲에서 새롭게 얻은 재료는 세 가지였다.
변종 다람쥐 고기, 변종 사슴 고기, 변종 토끼 고기.
다람쥐 고기를 제외하고, 사슴 고기와 토끼 고기는 질리도록 먹었던 엑스였다.
하지만 아이템의 명칭이 달랐다. 확실히 다른 고기란 소리였다.
“뭐, 먹어 보면 알겠지.”
엑스가 일단 변종 토끼 고기를 집었다.
-변종 토끼 고기 (레어)
고목의 숲에서만 서식하는 토끼의 고기.
고목의 기운을 품고 있다.
포만도 : +50%
특수 효과 : 조리하지 않고 섭취해도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변종 토끼 고기’로 회복한 포만도는 50퍼센트 느리게 손실됩니다.
‘토끼 고기치고 잡내는 안 나는 편이네.’
반복된 요리 노가다!
꾸준하게 요리를 해 온 엑스였다. 덕분에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감각이 생겼다.
엑스가 불을 피우고 토끼 고기에 밑간을 했다.
‘처음엔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물론, 그 다음부턴 수많은 향신료가 대기 중이다. 노릇노릇! 엑스는 토끼 고기를 타지 않게 잘 돌려가며 구웠다. 포만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참는 게 고통스러웠다.
“됐다.”
모락모락! 완성된 변종 토끼 구이.
우적우적! 엑스가 꼬치 채로 토끼 구이를 뜯었다.
[천상의 미각이 ‘변종 토끼 구이’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변종 토끼가 품고 있던 마나가 몸에 흡수됩니다!]
[최대 마나가 100포인트 증가합니다!]
[지능이 5포인트 증가합니다!]
“쩝쩝, 어라?”
맛에 한 번 놀라고, 알림에 한 번 놀라고!
향신료를 뿌리지 않은 토끼 구이가 마나와 지능을 올려 주다니?
여태껏 고기를 먹었을 때, 최대 체력과 힘이 주로 오르던 것과는 다른 효과였다.
“쩝쩝, 마나를 다루는 녀석들이어서 그런가?”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처음 먹어 본 엑스였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서 뭔가 뿌듯함이 느껴지기 무섭게, 엑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천상의 요리는 어떤 버프를 주려나?’
아마도 고목의 숲에서 활동하기 편한 버프를 줄 것 같았다. 숲에서의 이동 속도를 향상시켜 줬던 천상의 요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보통 숲이 아니다.
“천상의 요리.”
스스스! 미식왕의 그림자가 엑스를 이끌었다.
미식왕의 조리법도 복잡하지 않았다. 엑스는 그림자가 이끄는 대로, 주변 고목에서 딴 잎 몇 개를 냄비에 넣고 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물이 끓자, 변종 토끼 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보면 볼수록, 내가 더 잘하는 것 같단 말이지?”
진담 반, 농담 반.
간단한 조리법에 중얼거린 엑스가 뚜껑을 열었다.
천상의 요리가 완성됐다.
“잘 먹겠습니다!”
베어 무는 순간, 응축된 향이 입안으로 퍼져나간다.
느끼하거나 비릿하지 않은 상쾌한 맛.
고기에서 개운한 것을 넘어, 상쾌한 맛이 날 줄이야!
“쩝쩝, 건방진 발언이었습니다. 선생님.”
사과가 절로 나왔다.
이런 맛은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엑스였다.
이내, 알림이 떠올랐다.
[천상의 미각이 ‘일성 요리, 고목의 토끼’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고목의 기운이 몸에 흡수됩니다!]
[60분간 고목의 숲에서의 이동 속도가 2배가 됩니다!]
[60분간 고목의 숲에서의 지능이 100포인트 상승합니다!]
[60분간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엑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라고……?’
다른 효과들은 직관적이었다. 또한 익숙히 봐 온 효과들이다.
한데,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라니. 이런 두리뭉실한 버프는 처음 받아 봤다.
일단, 식기 전에 해치우자.
엑스가 남은 음식을 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고목의 숲, 그에 걸 맞는 효과일 텐데…….’
천상의 요리는 재료가 된 몬스터가 가진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연 마법!”
변칙적인 자연 마법을 사용하던 변종들!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는 게 자연 마법의 구사력을 끌어올려 주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엑스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 보면 알겠지, 춤추는 줄기!”
쿠드드득!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에서 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뭐, 뭐야?!”
크다 못해 웅장한 줄기!
현재 엑스는 천상의 요리 효과로 지능이 100포인트나 상승한 상태. 하지만 지능이 100포인트가 올랐다고 해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줄기였다.
“어라?”
게다가 엑스가 손을 이끄는 대로 줄기가 움직였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던 이전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확신한 엑스가 미소를 머금었다.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이걸 말하는 거였군.’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상승하면, 자연 마법의 위력이 상승한다.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는 자연 마법이다. 그 비밀을 알게 됐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변종 고기는 많이 챙겨 둬야겠다.”
자연 마법의 컨트롤과 위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니, 두고두고 사용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엑스가 춤추는 줄기를 해제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 향신료를 쓸 차례인가.”
본격적으로 스텟을 증가시킬 시간!
부지런히 인벤토리에서 향신료를 꺼내던 엑스가 순간, 멈칫했다.
소곤소곤.
‘……무슨 소리야, 방금?’
뭔가, 작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착각인가?
어깨를 으쓱인 엑스가 다시금 조리도구를 집어 들었다.
와장창!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 조리도구를 내던져 버렸다.
그럴 만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거목, 그 거목에 얼굴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거목의 입이 뻐끔거렸다.
-자네에겐……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나, 나무가 말을?”
고목의 숲에 울리던 기괴한 환청!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대폭 상승한 엑스가 본의 아니게 환청의 원인을 알게 되어 버렸다.
고목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 하네…… 자네의 도움이…….
도움이라고?
엑스는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도 고목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됐건, 고목을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눈앞의 고목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건 딱 봐도 퀘스트가 아닌가?
‘확실해. 퀘스트의 냄새가 난다!’
엑스가 재빨리 대답했다.
“물론이죠, 뭐든 시켜만 주십쇼!”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