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제대로 뽕을 뽑자!
기세 좋게 본격적인 던전 공략을 시작한 엑스였지만, 실로 만만치 않은 난이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오오! 오염된 정령들이 엑스를 향해 적의를 뿜었다.
“헥헥, 몬스터가 부담스러운 건 또 처음이네.”
난이도 B-의 퀘스트!
일단, 난이도가 B가 넘어가는 퀘스트는 랭커들도 생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압도적인 스텟을 보유한 엑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만만치 않을 뿐이지, 어렵다는 건 아니었다.
엑스는 티예르 가문의 던전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칭호를 얻었으니까!
혼자 던전의 끝을 보다 : 혼자 던전에 진입할 시 모든 스텟을 5퍼센트 증가시켜줍니다. 던전에서 받는 피해량이 10퍼센트 줄어듭니다.
‘혼자 다 해 먹는데 이보다 좋은 효과도 없지!’
미소를 흘린 엑스가 외쳤다.
“용용아!”
엑스의 신호에 맞춰 용용이가 드래곤 피어를 발산했다.
“뀨우우우!”
던전에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
진짜 드래곤 피어에 비하면 한참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정령들에게도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집중하던 녀석들이 혼란에 빠졌다.
“간다, 이놈들아.”
타닥! 뛰쳐나간 엑스가 물 흐르듯 움직여 녀석들의 급소를 공격했다. 검으로, 또 방패로! 연달아 공격을 퍼붓는 엑스의 움직임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을 확인한 엑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후우. 곰 태세도 끝났으니까, 천천히 가 볼까?”
솔직히 엑스는 오염된 정령 사슴의 공격 정도는 가뿐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던전이다. 언제, 어떤 몬스터가 새롭게 난입할지 모른다.
때문에 언제나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곰 태세의 쿨타임을 기다릴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1시간 사냥하고, 24시간을 쉴 생각은 아니었다.
굉장히 빠르게 움직인 엑스와 용용이었다. 엑스는 일단 용용이에게 고기를 챙겨 줬다.
“꼭꼭 씹어 먹어, 용용아. 넌 급하게 먹는 게 좀 그래.”
“뀨우. 뀨우.”
“짜식, 됐다. 열심히 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와구와구!
순식간의 용용이의 배가 남산처럼 불러왔다.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많은 고기를 먹는지 참 신기했다. 엑스도 조리 도구를 꺼냈다.
“나도 새로운 식재료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유니크 등급의 고기!
용용이와 마찬가지로 포만도가 꽤 떨어진 엑스였다. 엑스는 새롭게 얻은 고기의 효과도 확인할 겸, 안전지대에 모닥불을 피웠다.
‘일단, 그냥 구워 보자.’
천상의 요리는 사용한 순간부터 버프가 걸리니, 맨 마지막에 먹는 게 효율적이었다. 엑스는 인벤토리에서 빠짐없이 챙겨온 정령 사슴의 고기를 꺼냈다.
“용용아, 그렇게 침을 흘려도 안 줄 거야.”
“뀨우…….”
“귀엽게 쳐다봐도 안 돼. 너 살찐다니까?”
포만도 100퍼센트.
그럼에도 고기 냄새가 좋은 것인지, 주변을 맴도는 용용이었다. 하지만 엑스도 자기 밥그릇엔 냉정한 남자였다. 엑스가 귀여운 눈빛에도 아랑곳 않고 고기를 굽는데 열중했다.
모락모락!
이내, 김이 피어오르는 고기를 베어 물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맛!
터져 나온 육즙은 고기보다 과즙에 가까울 정도로 달았다. 그러면서도 식감은 끝내줬다. 사슴 고기 특유의 비린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천상의 미각이 ‘정령 사슴 구이’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정령 사슴의 기운이 몸에 흡수됩니다!]
[최대 마나가 500포인트 증가합니다!]
[지능이 20포인트 증가합니다!]
“쩝쩝, 엄청나게 오르잖아?”
엑스는 남은 고기를 먹어치우며 중얼거렸다. 원래부터 지능을 올려주는 특수 효과를 가진 재료라 그런 것일까? 상승되는 스텟의 폭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거 잘 생각해 봐야겠는데?”
이 정도 상승폭이라면…….
엑스가 우물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가지고 있는 향신료와 엑스의 실력으로 만들 수 있는 소스. 소스 부어 먹기, 찍어 먹기 신공까지 사용하면 하나의 재료로 적어도 몇 십 가지의 맛을 낼 수 있었다.
‘대충 계산해도 지능을 엄청나게 끌어올릴 수 있어.’
같은 레벨 대의 매지션 클래스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아니 압살할 정도로!
지능과 마나를 상승시킬 기회가 엑스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엑스가 곧바로 향신료를 늘어놨다.
“재료는 계속 조달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몬스터가 나타나는 던전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안전지대 밖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엑스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다시금 요리를 시작했다.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마법!
완전 마검사가 따로 없지 않은가?
“헤헤, 그럼 칼슈마르 방패술이 서운하겠는데?”
행복한 고민!
엑스가 바보처럼 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에선 바보처럼 웃음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스텟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웃음이 터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으니까.
“뀨우…….”
“쩝쩝, 안 된다니까 용용아.”
“뀨우우.”
“쩝쩝, 애교 부려도 안 줄 거야.”
날개도 펄럭거려보고, 꼬리도 흔들어 보고.
용용이가 계속해서 고기를 흡입하는 엑스에게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스텟이 눈이 먼 엑스가 고기를 양보할 리 없었다. 결국, 엑스는 혼자서 인벤토리에 있던 정령 사슴의 고기를 한 덩이만 빼고 전부 먹어치웠다.
먹는 데에만 페이트 시간으로 반나절이 걸렸다.
엑스는 그제야 풀이 죽은 용용이를 발견했다.
“미안, 다음엔 너도 챙겨 줄게.”
“뀨우!”
주인과 달리 성격 좋은 용용이는 뒤끝이 없었다. 다시 기운을 차린 용용이를 뒤로 한 채, 엑스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을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엑스
직업 : 천상의 미식가
칭호 : 고대 왕국의 탐구자
레벨 : 124
명성 : 940
생명력 : 38,600 / 38,600
마나 : 19,800 / 19,800
힘 : 1,027 / 민첩 : 501
지능 : 604 / 인내 : 80
패기 : 346
보너스 포인트 : 0
엄청난 성장!
불과 반나절 만에 마나와 지능이 배로, 아니, 배 이상으로 상승한 엑스였다.
천상의 미각을 백분 활용한 덕이 컸다. 엑스도 자신의 성장에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마, 마법을 제대로 배워 봐야겠는데?”
현재 엑스는 실용적인 춤추는 줄기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와 지능이 이렇게 상승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통적으로 배울 수 있는 마법들.’
물론, 위력이 강한 고위 마법들은 매지션 계열 직업들 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하나, 위력이 떨어지는 하급 마법들은 지능만 받쳐 준다면 다른 직업들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마법의 위력은 지능에 비례하는 거니까.”
하급 마법이라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낼 터.
엑스는 스킬 북을 구매할까, 생각도 했다. 현재 엑스의 자본금은 1만 골드가 넘었으니까. 그 정도 투자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스킬 북은 NPC한테 사야지.”
엑스에게 다른 유저들은 모두 경쟁자.
경쟁자 지갑을 불려 주는 건 절대 사절이다.
결심한 엑스가 한 덩이 남은 정령 사슴 고기를 꺼냈다.
‘이제 천상의 요리의 효과만 파악하면 된다.’
미식왕이라면 정령 사슴 고기로 어떤 요리를 할까.
“천상의 요리.”
스스스! 집중한 엑스는 미식왕의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며 조리법을 기억했다. 이것도 거의 매일 하다보니까, 미식왕의 버릇도 파악이 됐다.
‘칼질에 리듬감이 있으시네.’
탁탁탁! 탁탁!
항상 일정한 박자로 고기에 칼집을 내는 그림자! 미식왕의 그림자는 평소보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정령 사슴의 고기를 조리했다.
“……어떻게 했더라?”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엑스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어쨌든, 평소보다 손이 많이 간 천상의 요리가 완성됐다. 엑스의 포만도는 이미 100퍼센트였다. 때문에 엑스는 바로 입에 넣기보단 정보를 먼저 확인했다.
-고목의 축복을 받은 사슴 구이 (★★)
지속된 고목의 축복으로 정령에 가까워진 사슴.
먹는 순간, 정령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되리라.
특수 효과 : ?
“별이 두 개?”
별이 하나가 늘었다!
천상의 요리로 이성 요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이성 요리가 만들어진 건가 싶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천상의 요리 (10%)
“숙련도가 10퍼센트를 넘어서일 수도 있지.”
둘 중에 하나일 수도, 아니면 두 가지 가능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이성 요리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효과였다.
“정령의 기분이라…….”
꿀꺽! 마른침을 삼킨 엑스가 사슴 구이를 베어 물었다.
알림이 떠올랐다.
[천상의 미각이 ‘이성 요리, 고목의 축복을 받은 사슴 구이’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정령의 기운이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최대로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자연 마법의 피해량이 100퍼센트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자연에서 소량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맛에 놀란 엑스는 알림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성 요리의 효과는 엄청났다. 60분간 지속되었던 일성 요리와 달리, 24시간이나 버프가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요. 버프의 질까지 차원이 달랐다.
“쩝쩝, 자연 마법의 피해량이 100퍼센트 증가?!”
이건 춤추는 줄기의 데미지가 2배가 된다는 소리 아닌가? 그 어떤 버프도 이 정도로 마법 데미지를 향상시킬 순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게다가 마나 회복량도 증가한다고?”
페이트에서 마나 회복에 관련된 아이템은 고가에 거래가 된다. 모든 클래스는 스킬을 사용하고, 스킬을 사용하면 마나 부족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마나 의존도가 낮은 엑스에겐 딱히 필요한 효과는 아니었다.
그래도 있는 게 어디인가?
“자연 교감 능력도 최대치로 오르고, 자연 마법의 피해량도 100퍼센트나 상승했고, 마나까지 안 부족하면…… 어디 마법으로 한 번 쓸어 봐?”
엑스가 자신감 넘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로 휴식도 취했겠다, 곧바로 사냥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한 엑스가 안전지대에서 벗어났다.
고오오! 곧바로 마주친 오염된 정령들.
엑스도 녀석들처럼 마나를 끌어올렸다.
‘확실히 느낌이 달라.’
마나도 대폭 상승.
지능도 대폭 상승.
게다가 자연과의 교감 능력도 최대치가 된 엑스였다. 덕분에 몸에서 일렁이는 마나의 기운이 확실히 상승했다. 이내, 엑스가 외쳤다.
“춤추는 줄기!”
콰드드득!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방에서 두꺼운 줄기가 나타났다. 꾸욱! 오염된 정령들을 향해 엑스가 주먹을 쥐자, 우드드득! 소리와 함께 녀석들이 속박에 걸렸다.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전까지의 춤추는 줄기는 그저 상대를 묶어 놓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폭 상승한 지능과 이성 요리의 버프를 받자 주력기로 사용해도 될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줬다.
“인벤토리가 꽉 찰 때까지 파밍해 가야겠군.”
엑스가 웃음을 흘리던 그때.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오염된 정령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의아해하던 엑스는 곧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연과의 교감 능력이 최대치로 올라서 그런가?’
덕분에 정령의 목소리까지 듣게 된 엑스였다. 엑스는 재빨리 사과를 건넸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금 엑스는 정령들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저희는 사악한 기운에게 몸과 정신을 지배당했으니까요. 서서히 정신이 흐려져…… 이렇게 말을 거는 것도 벅찹니다. 그보다 서두르셔야해요.
“서두르다니요?”
다급해진 정령의 목소리에 엑스가 물었다.
-고목들의 에너지원, 룬스톤의 오염이 가속화 되어가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얼마가지 않아 고목들도 사악한 기운에 지배되고 말 거예요!
“……룬스톤?”
심상치 않은 단어에 엑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