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허름한 외관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건만, 이런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현재 엑스가 착용한 검의 공격력이 10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공격력이었다.
물론, 특수 효과 덕분에 공격력은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엑스도 어디 가서 겁부터 먹는 유저는 아니다. 게다가 엑스는 패기에 상당한 포인트를 투자했다. 원시의 부싯돌을 언제나 최대 공격력으로 사용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걸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엑스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후후, 귀인께서 좋아하는 걸보니 나도 기쁘군.”
“엑스, 용맹한 자네라면 그 무기를 우리 부족 누구보다 잘 사용할 수 있겠지. 그보다, 족장님에게 여쭤 볼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호, 궁금한 것이 있다고?”
예상치 못한 횡재에 잠시 정신을 놨던 엑스가 말했다.
“네, 우연치 않게 전사들께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제가 알고 있는 그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족장님께 그분의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엑스는 미식왕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미식왕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엑스는 인상착의도 함께 물었다.
‘내 그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꼬질꼬질했던 미식왕의 얼굴.
엑스에겐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고민하던 족장이 입을 열었다.
“사실 뒷얘기를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네. 섣불리 입을 놀려 괜한 피해를 드리고 싶지 않으니…… 하지만 엑스, 자네에게선 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 좋아, 그분에 대해서 말해 주겠네.”
이내, 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분의 성함은 시오라스. 굉장히 현명하신 분이었지.”
“시, 시오라스?”
대현자, 시오라스!
미식왕의 레시피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르고, 고대 왕국 퀘스트에 얽힌 떡밥을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 시오라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이었지만, 정보가 없어 일단 시오라스의 대한 생각을 접었던 엑스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시오라스의 정보를 얻게 될 줄이야!
엑스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래서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 엑스를 보고 전사들이 속닥거렸다.
“밖에선 엑스 같은 용맹한 전사도 요리를 하는가 보군. 상당히 비효율적일 것 같다. 그 시간에 사냥을 하면, 수십 마리는 더 잡을 것 같은데.”
“그렇다. 진정한 전사는 손에 물을 묻히면 안 된다.”
엑스를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자들이 말했다.
“그러니까 싫다는 거다. 멍청한 남자들.”
제대로 날이 서 있는 말투! 갑자기 왜 성질을 내는 건가?
눈치 없는 전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엑스는 요리를 하며 생각에 한창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원시림에는 안 어울리는 것들이 꽤 많네.’
족장은 한 달 전, 대현자 시오라스가 이곳을 찾아와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덕도 시오라스의 작품이었다.
솔솔! 엑스가 향신료를 뿌리자 부족민들이 웅성거렸다.
“오오, 맛있는 냄새!”
“배고프다. 오빠야, 언제 완성되나?”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 그리고 불이 뜨거우니까 가까이 오면 안 돼.”
풍기는 냄새가 어지간히도 좋았던 모양.
엑스는 화덕에 다가와 손가락을 빠는 아이들을 제지시켰다. 티루스는 큰 몸집답게 많은 고기를 드롭했다. 부족 전체가 배불리 먹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엑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히도 족장이 시오라스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대현자 시오라스가 향한 곳은 대륙 최남단 ‘희망의 끝 등대’였다. 안 그래도 남쪽으로 향하며 레벨을 올리던 엑스였다. 최남단이라고 하니 방향도 맞아떨어지고, 무엇보다 시오라스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얻을 게 태산이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요리가 완성되고, 엑스는 부족원들에게 고기를 잘라 줬다.
가장 연장자인 족장이 향을 맡더니 감탄을 뱉었다.
“오오, 내 평생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처음이군!”
“식기 전에 드시지요.”
“감사히 잘 먹겠네, 엑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다시 한 번 터지는 감탄사!
비단 족장뿐만이 아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엑스가 구운 티루스 고기에 감탄을 뱉어 냈다. 엑스도 이 바베큐 파티에 빠질 수 없었다.
[천상의 미각이 ‘티루스 바베큐’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지배자 티루스의 기운이 몸에 흡수됩니다!]
[최대 체력이 500포인트 증가합니다!]
[힘이 20포인트 증가합니다!]
“쩝쩝, 잘 굽긴 했네.”
맛있다! 하도 많은 고기를 구워서 요령이 생긴 참.
엑스는 천상의 요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꽤나 준수한 요리 실력을 보유하게 됐다. 사실 미식왕의 그림자를 보고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티루스 고기도 조금 챙겨 놨으니까…….’
조리하지 않은 티루스 고기.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천상의 요리를 사용해서 그 효과를 알아보면 됐다.
받은 만큼, 싱하르족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 엑스!
이젠 그들의 터전을 떠날 시간이 됐다.
족장이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룻밤 자고 가는 건 어떻겠는가?”
“저도 그러고 싶지만 한시라도 빨리 시오라스 님을 만나고 싶어서요. 언제까지 희망의 끝 등대에 계실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아쉽군. 귀인에게 충분한 대접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럴 리가.
비록 티루스가 아이템을 떨어트리진 않았지만, 레벨도 올리고, 스텟도 올리고, 뛰어난 성능을 가진 창도 새롭게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오라스의 행방을 알게 됐지 않은가? 엑스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저야말로 하도 많은 것을 받아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 말고도 아쉬운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지만…… 바쁜 사람을 언제까지고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싱하르의 전사들은 엑스와 무용담을 주고받지 못해서 아쉬운 눈치였고, 여자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엑스를 배웅하며 외쳤다.
“꼭, 시오라스 님을 만날 수 있기를 빌겠네.”
“엑스, 꼭 나중에 다시 만나자!”
“그땐 우리 전사들도 더 강해져 있을 거다!”
“몸조심하세요, 엑스 님!”
엑스도 손을 흔들어 황송한 배웅에 응답했다. 이렇게 또 한 무리의 든든한 NPC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엑스가 원시림을 빠져나오며 웃음을 흘렸다.
“이런 오지에서 시오라스의 흔적을 찾게 될 줄이야.”
미식왕의 레시피와 고대 왕국 퀘스트! 그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엑스가 멀리 보이는 높은 화산을 올려다보고 살짝 고민했다.
‘아직 못 가 본 사냥터가 많긴 한데…….’
화산 주변에는 다양한 사냥터가 존재한다. 한 군데의 사냥터만 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몬스터와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확실했다.
엑스가 고개를 저었다.
‘욕심내지 말자. 여긴 나중에도 올 수 있으니까.’
지금은 레벨 업보다, 스텟보다도 대현자 시오라스를 만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말했다시피 지금은 시오라스가 희망의 끝 등대에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 그곳에 머무를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렵게 찾은 행적을 놓칠 수야 없었다.
“그럼, 다시 달려 봐야겠네.”
쏴아아아! 원시림을 빠져나오고, 화산에서 멀리 떨어지자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목표는 최남단, 희망의 끝 등대! 엑스가 남쪽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갔다.
“대현자님, 꼼짝 말고 기다리십쇼. 금방 가겠습니다!”
*
“흐으, 내일이면 아르바 국경을 건널 수 있겠네.”
캡슐에서 빠져나온 이지원이 기지개를 켰다. 접속할 때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한 요즘. 이틀에 걸쳐 게임을 해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자제해야지.”
당장은 몸이 가뿐하다고 해도, 캡슐에 3일 동안 있는 건 후유증이 컸다. 이지원은 책상에 앉아 태블릿 PC를 켰다. 메이지 홈페이지에 로그인하기 무섭게 각종 알림이 쏟아졌다.
“엄청나게 관심 받고 있구만.”
메이지 스트리머 전용 계정으로 쏟아진 쪽지들!
유저들이 보낸 응원 쪽지에서부터, 각종 길드들의 러브콜, 합동 방송을 하자는 요청과 방송사에서 온 쪽지들이 가득했다. 대충 쪽지를 확인한 이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부족해.’
아직 엑스는 세상에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현재 엑스의 수준으로, 엄청난 관심과 함께 쏟아지는 견제를 버틸 자신은 없었으니까.
“한동안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싶고.”
불과 150레벨.
하지만 스텟으로 따지면 엑스를 따라올 유저는 없다.
누군가는 겸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지원은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는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혼자서 압도적인 최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아직 능력이 부족했다.
또한, 힘을 숨긴 엑스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게 또 동정표를 얻을 수 있거든.”
모래 괴물에게 박살나던 엑스의 모습!
현재 이지원의 스트리밍 다시보기 총 조회수는 1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댓글 반응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대부분이 엑스를 응원하고, 동정하는 내용이었다.
“꿀은 빨 수 있을 때까지 빨아야지.”
거대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홀로 요리 방송으로 고전하는 엑스. 낙하산이라는 이미지도 지우고, 호감도도 높일 수 있고, 게다가 골드까지 받을 수 있으니!
정산금액을 확인하던 이지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1만 3천 골드……!”
향신료가 대체 몇 병인가? 이지원이 가장 많은 골드를 지출했던 것이 향신료이기에 향신료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드륵! 이지원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씻고 자야지. 내일도 게임하려면.”
지이이잉- 간만에 핸드폰이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발신인을 확인한 이지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지원이 머리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전화를 받은 이지원에게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삼촌, 티비 나왔쪄? 삼촌 목소리…….
“응, 지은아. 삼촌이야. 지금까지 안 자고 뭐 했어?”
대답과 동시에 4살배기 조카, 윤지은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액정에 떠올랐던,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원아, 연락하기 힘들다? 잘 지내지? 너야 뭐 항상 잘 지내겠지. 그보다! 요즘 티비에 나오는 엑스…… 그거 너 맞지? 목소리가 완전 네 목소리던데?
하나밖에 없는 남매!
이지원의 6살 위 누나, 이현서가 호들갑을 떨었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대로 이렇게 빨리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숨겨 봤자 뭐하겠는가?
이지원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응, 그거 나 맞아.”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럼 내일 아침에 지은이 데리고 지원이, 네 집으로 갈게.
“으, 응? 갑자기 우리 집엔 왜 오려고?!”
함께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가?
이현서는 이지원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현서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너 게임 한 번 붙잡으면 아주 그냥 다른 데엔 신경도 안 쓰잖아. 치킨집도 제대로 관리 안 할 거고, 집도 제대로 안 치울 거고,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을 거고…… 이 누나가 신경 쓸 게 한 두 개가 아니네.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슥, 이지원이 살짝 고개를 돌려 집 꼬락서니를 살폈다.
한 마디로 돼지우리.
그래도 내일은 아르바의 국경을 넘는 날이란 말이다.
이지원이 애써 대꾸했다.
“내가 애도 아니고, 정리 하나 못 할까 봐 그러는…….”
-됐고, 내일 보자. 지은아, 삼촌한테 인사해.
윤지은의 혀 짧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삼쫀, 잘 자고 내일 봐!
뚝. 어느덧 끊어져 버린 통화!
이지원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 좋은데…… 누나는 너무 밝아도 너무 밝아.”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