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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49화 (49/391)

49화

“팔자에도 없는 깔끔을 다 떠네.”

이지원은 아침부터 청소에 열심이었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50분. 한창 페이트 속에서 엑스로 날뛰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계획이 틀어졌다.

주방에서 이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냉장고가 텅텅 비었네.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구나?”

“안 챙겨 먹는구나, 삼촌?”

“아니, 안 그래도 장보러 가려고 했어.”

“그래? 그럼 같이 갈까? 마침 나도 장 봐야 했는데.”

“같이 가까, 삼촌?”

얄팍한 거짓말은 오히려 화를 부른다.

놀리는 것처럼 말하는 모녀를 보고, 이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청소에 집중했다.

‘누난 너무 걱정이 많아.’

하긴 그 마음도 이해가 됐다. 이지원은 몰입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으니까. 린 온라인 때,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미친 듯이 게임만 하던 이지원을 지켜본 이현서였다. 하지만 이지원도 철이 들었고 나이를 먹었다.

‘내 몸 하나 돌보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말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페이트 접속 시간도 권장 시간 내에서 유지했고, 생계를 유지하던 치킨집보다도 많은 수익을 냈다. 방을 닦은 이지원이 거실로 나가자 이현서가 말했다.

“언제까지 쉴 생각이야?”

“뭘?”

“가게 말이야.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안정적인 게 좋잖아. 가게가 안 되던 것도 아니고…… 아차, 월세는 내고 있는 거야?”

걱정스러운 말투.

휙. 이지원이 화장실에 걸레를 던지곤 식탁에 앉았다.

이현서가 그 앞에 마주 앉았다.

“누나, 나 내일 모레 서른이야.”

“알아, 하지 말라고 말릴 생각도 없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거짓말. 얼굴에 다 써 있구만.”

“티 났니? 아빠랑 엄마도 알고 계시더라고.”

아빠, 엄마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신다고?

아직 서울에서 떨어진 지방에서 사시는 부모님이었다. 세상 물정보다는 밭에 관심이 더 많으신 분들인데…… 그런 부모님도 TV에 나온 엑스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이지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신 모양이다.

이지원이 속으로 경악했다.

‘흐, 엄마는 몰라도 아빠랑은 불편한데…….’

대학에서도 수업을 빼먹고 PC방을 전전하던 이지원!

그러다가 된통 아버지에게 깨진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 치킨집을 차리고 운영하는 이지원을 보고 아버지도 관심을 거뒀었다.

이현서가 빙그레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나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

“그래. 환갑이 넘으셨는데, 걱정하실 만도 하지.”

“후후, 너도 나이를 먹긴 했네.”

“뭐야, 왜 웃어?”

“아니, 세월 참 빠르다 싶어서 그렇지.”

슥, 이현서가 눈길을 돌려 정리된 집안을 바라봤다. 거실 한 편에 놓여 있는 캡슐! 이현서가 캡슐을 보더니 관심이 생긴 듯 물어왔다.

“저게 그 캡슐이야? 그 페이트 하는데 꼭 필요하다던?”

“어, 꽤 크지?”

“그래, 무지하게 비싸 보인다야.”

은근히 가격을 묻는 눈빛.

여기서 저 더럽게 비싼 캡슐의 가격을 말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이지원은 이현서의 눈빛을 회피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네.”

“누나도 옛날 사람인가 봐. 네가 TV에 나오고, 유명해져도 게임이 게임이지. 이런 생각밖에 안 들고, 나중에 인기가 식으면 뭐 해 먹고 사나 걱정도 되고…….”

“따라와. 보여 줄 게 있으니까.”

서른 살 중반의 주부, 이현서.

그녀가 페이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현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동생의 미래였다. 이지원이 나중에 밥이라도 굶으면 어쩌나 하는 원초적인 걱정.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게 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지원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따라온 이현서가 물었다.

“뭘 보여 주려고?”

“내 월급, 아니, 내 일급을 보여 줄게.”

“게임만 하는데 무슨 돈을 얼마나 번다고.”

이현서는 시큰둥한 얼굴로 의자 뒤에 팔짱을 끼고 섰다. 린 온라인 때도 이지원이 돈을 벌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니터를 보고 이현서가 말을 더듬었다.

“1, 1골드에 5천원이라고?”

“못 믿겠으면 직접 검색해 보던가.”

“일, 십, 백, 천, 만…… 1만 골드가 넘잖아?”

“여태까지 딱 두 번 방송해서 선물 받은 골드야.”

“고, 고작 두 번 방송해서 5천만 원을 벌었다고?”

이현서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TV, 어느 채널을 틀어도 페이트, 페이트 하길래 잘나가는 게임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이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갈 줄이야!

이현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지원아.”

“왜? 아직도 걱정 돼?”

이지원의 물음에 이현서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점심만 먹고 갈게. 아니, 그냥 지금 갈까? 괜히 찾아와서 방해만 됐겠다, 얘. 그리고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누나가 다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두 번 방송에 5천만 원!

불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이지원을 말리기에, 5천만 원은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혹시라도 게임 하는 데에, 아니, 일하는 데에 방해가 될까. 황급히 집을 빠져나가려는 이현서를 보고 이지원이 씨익 웃었다.

‘너무 밝아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지원을 가장 잘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이현서였다.

드륵!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지갑을 챙겨들었다.

조카, 윤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은아 먹고 싶은 거 있어? 우리 지은이 왔는데, 그냥 보낼 순 없으니까…… 삼촌이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뭐, 고기 먹을까? 소고기 좋아?”

“소고기? 난 꽃등심이 좋아!”

“짜식, 맛있는 건 알아 가지고.”

그런 이지원을 보고 이현서가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다 컸네. 괜히 걱정했다.”

*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바쁘게 달려 볼까?”

한우 꽃등심!

조카 덕분에 간만에 거하게 배를 채운 엑스가 몸을 풀었다. 현실의 포만도가 페이트까지 연동되진 않았지만, 스트레칭도 할 겸 몸을 움직여 봤다.

‘아르바 왕국을 벗어나는 건 처음이네.’

대륙에서 가장 큰 왕국, 아르바!

꽤 많은 곳들을 돌아다닌 엑스였지만, 아르바의 영토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목적지는 대륙 최남단, 희망의 끝 등대였다.

“소환!”

“뀨우!”

“간만이다, 용용아. 배고팠지?”

“뀨우우.”

아르바 남쪽 국경 근처에 다다르면 유저들이나 NPC들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엑스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용용이의 배를 채워 줬다.

“……많이 배고팠구나?”

볼록하게 튀어나온 용용이의 배!

엑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용용이를 쓰다듬곤, 소환 해제했다. 여유가 있다면 용용이와 함께 사냥을 하며 남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달려야하니까.’

대현자, 시오라스!

혹시라도 그가 등대를 떠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와 만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달려야했다.

엑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드넓은 초원이 보였다. 이 초원은 국경마을까지 이어진다.

‘어디보자, 가장 빨라 보이는 녀석이…….’

천상의 요리 버프를 활용하자!

엑스의 시선이 초원을 내달리던 맹수에게 꽂혔다. 꼭 생긴 게 치타 같았다. 탁! 재빨리 달려간 엑스가 새롭게 얻은 창, 원시의 부싯돌을 꺼내들었다.

‘언제나 최대 공격력으로!’

기세에 따라 공격력이 변하는 원시의 부싯돌!

하나, 엑스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었고.

[치명적인 일격!]

푹! 맹수는 엑스의 일격에 절명해 버렸다. 엑스는 곧바로 재료를 늘어놓고 천상의 요리를 사용했다. 그림자가 떠오르자, 엑스는 그림자가 따르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이내, 요리를 끝마친 엑스가 음식을 흡입했다.

[천상의 미각이 ‘이성 요리, 맹수 질주’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초원을 내달리던 맹수의 속도가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초원에서의 이동속도가 2배가 됩니다!]

[24시간 동안 초원에서의 민첩이 100포인트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초원에서의 회피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초원을 내딛자, 꿈틀거리는 다리근육!

엑스가 자세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이 있어서 약간 늦긴 했지만 이런 속도라면, 오늘 안에 아르바 국경을 넘을 수 있겠는데?’

*

“헉헉, 도착이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하늘은 어두웠지만, 아직 하루는 지나지 않았다. 자그마한 국경 마을에 도착한 엑스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레벨이 꽤 높아 보이는 유저들이 보였다.

‘길드 문양도 다들 익숙하네.’

아르바 왕국을 벗어날 정도의 실력자들.

확실히 이름이 알려진 길드에 투신하고 있는 유저들이 많았다. 문득, 엑스를 보고 누군가 다가왔다.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사내가 말했다.

“없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문양이 없어 말을 걸어 봤습니다. 저는 붉은 늑대의 성운장이라고 합니다. 혹시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시다면, 저희 붉은 늑대 길드와 함께 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붉은 늑대!

중국 유저들이 주로 소속되어 있는 거대 길드였다. 메이지 스트리머에 뽑히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꿈꾸는 명문 길드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나, 엑스가 거대 길드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엑스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시군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무리에 합류했다.

거대 길드의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거절하다니.

다른 유저들이 경악을 할 광경이었지만, 엑스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유물 세트가 빛나긴 하나 봐?’

유물 세트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빛! 그 빛만 해도 돈 많은 고수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게다가 길드까지 없으니, 크고 작은 길드들이 엑스를 탐낼 수밖에 없었다.

‘저기가 국경인 모양이군.’

경비병과 꽤 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는 횃불.

낯선 옷차림을 보니, 아르바 왕국과 인접한 왕국인 루얀 왕국의 경비병들인 것 같았다. 엑스가 미리 조사한 루얀 왕국에 대한 정보를 되새겼다.

‘아르바보다는 폐쇄적인 국가.’

루얀!

국력은 미약한 왕국으로, 아르바에게 매년 일정한 공물을 바친다고 들었다. 아르바가 루얀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실질적으로는 아르바와 같은 국가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워낙 특색이 강한 왕국이라 병합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엑스는 가까이 다가가자 소란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루얀의 경비병이 소매를 나풀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저희도 알고 있는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경을 엄밀히 통제하라는 아르바와 루얀, 양측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국경을 통제하다니.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던 엑스였다.

엑스가 마녀 모자를 쓴 여성 유저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경비병이 말했다시피, 왜인지는 몰라도 국경이 봉쇄된 모양이에요. 무늬만 다른 나라면서 국경 봉쇄는 무슨…… 아무래도 몰래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아르바와 루얀은 같은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국경이라고 해도 경계가 삼엄하지는 않았다. 물론, 통제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유저들에게 경계를 뚫는 건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봉쇄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누군가는 몰래 국경을 넘을 것이다.

흩어지는 유저들을 보고 엑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걸렸다간 명성이 작살이 나겠군.’

명성이 1천에 가까워지는 참인데, 여기서 범법 행위를 했다가 걸리면 큰 손해를 본다.

혼자 남은 엑스를 보고 루얀 경비병이 말을 걸었다.

“통제령은 아마 한동안 풀리지 않을 겁니다.”

명성이 아깝다고 한들, 시오라스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데 까진 해 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몰래 국경을 넘고 싶었다.

엑스가 경비병에게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떻게 제가 드릴 건 없지만,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이라고 있으신가요? 제가 이래 봬도 요리는 꽤나 해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경비병의 말투는 단호했다.

엑스는 안 되겠다 싶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몰래 국경을 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유저들에게 합류하는 편이 들킬 확률이 적을까? 엑스가 뒤로 돌아 마을로 향하던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얀 경비병들의 대장이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네? 저 말씀입니까?”

엑스가 고개를 돌자 루얀 경비대장이 정중히 말했다.

“역시, 그 은 사자 장식은 북부 티예르 가문의 것이 확실하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티예르 가문의 일원이시라면 국경을 통과하실 수 있습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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