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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50화 (50/391)

50화

‘은 사자 장식……?’

잊고 있었던 목걸이, 티예르 가문의 가보!

아르바 남쪽 국경의 경비대장이 북쪽의 몰락한 귀족 티예르 가문의 문양을 알아본 것이었다. 이유를 알아차린 엑스가 빙긋 웃었다.

‘라안, 능력 있구나!’

암철의 생산자로 단기간에 위상이 상승한 티예르 가문! 티예르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목걸이의 효과가 생각보다 일찍 빛을 발했다.

경비대장이 엑스를 안내하며 말했다.

“봉쇄령이 떨어졌지만, 상부에서도 티예르 가문 분을 막을 생각은 없겠지요. 제가 가까운 마을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러실 필요까진 없지만, 감사합니다. 그보다, 갑자기 봉쇄령이 내려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르바와 루얀은 형제 국가 아닙니까?”

경비대장은 엄연히 루얀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긍지가 있을 것 같아서 엑스는 속국이 아닌, 형제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경비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수소문을 해 봤지만,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흠, 그렇다면 분명 높으신 분들이 얽혀 있겠군요.”

“하하, 뭐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소문도 이유도 알 수 없이 갑작스럽게 국경 통제.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는 몰라도 높은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엑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난 대현자를 찾기도 바쁜 몸이니까 말이야.’

뭔가 구린내가 났지만, 일단은 잊기로 했다.

엑스에게 최우선은 대현자, 시오라스를 찾는 것.

경비대장을 따르던 엑스가 물었다.

“가까운 마을에서 희망의 끝 등대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희망의 끝 등대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빠르게 걷는다면, 하루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여행을 떠나신 겁니까? 루얀의 해안이 멋지긴 하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엑스는 생각했다. 빠르게 걸어서 하루라, 정말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마을이 보였다.

경비대장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길.”

“안내 감사했습니다, 수고하세요!”

티예르 가문의 일원으로 취급 받았으니 가문에 먹칠을 하는 짓은 하면 안 됐다. 엑스도 경비대장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어느덧, 새벽이 밝았다.

엑스가 마을의 거리를 거닐며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들이 죄다 하얀색이네.’

새벽의 푸른 하늘과 하얀 건물의 조화가 참 시원시원했다. 혹시 문을 연 자판이라도 있을까, 주위를 둘러봤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쩝, 입맛을 다신 엑스가 다시 남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루얀에서 배를 채우는 수밖에.’

루얀 왕국의 수도, 루얀에 도착할 때쯤이면 아침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엑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자 길 끝에서 성벽이 보였다.

“도착이다.”

루얀!

앞은 바다를, 뒤엔 산을 끼고 자리를 잡은 자연 요새!

엑스는 열린 성문을 향해 나아갔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장관이 펼쳐졌다.

“우와.”

새하얀 건물들이 가득하다!

방금 전, 마을에서 본 것처럼 하얀 건물들이 높게 솟아 있었다. 하늘색과 하얀색의 조화. 마치 광고에나 나올 것 같은 장관이었다.

엑스가 입을 떡 벌리고 촌놈처럼 구경을 하고 있는데,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깨에 새겨진 톱니바퀴 문양, 절대 잊을 수 없는 워 머신의 문양이었다.

‘아는 얼굴들은 아니군.’

엑스는 냉정한 눈빛으로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화려한 판금 갑옷을 걸친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마을에 가만히 박혀 있으려니까, 몸이 근질거려 죽겠네, 이거. 확 그냥, 예언이고 나발이고…….”

“쉿.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다급하게 주의를 주는 여인.

여인의 시선에 엑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예언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괜히 멈춰 서서 의심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신경이 쓰였다. 엑스는 카이무스라는 사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득이 되는 일을 귀신 같이 찾아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한다. 린 온라인 때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엑스지만.

‘능력 하나 만큼은 확실하지.’

카이무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적이었다.

엑스는 워 머신의 길드원들이 나누던 대화를 되새겼다.

그들은 예언 때문에 루얀에 머무르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레벨 업도 포기하고 말이다.

엑스가 씨익 웃었다.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진다는 소리겠군.’

그러고 보니 갑작스러운 통제도 이해가 됐다.

아르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저는 카이무스다.

엑스는 카이무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능력이라면 국경을 통제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내가 너희들끼리 다 해 먹게 놔둘 거 같아?’

무슨 예언을 듣고 루얀에 대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엑스도 루얀에 있지 않은가?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엑스다. 특히나 워 머신이 잘 되는 꼴이라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그 꼴은 못 본다.”

전력을 다해 가로채 주마!

물론, 시오라스를 찾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었다.

엑스는 상점가를 거닐며 길거리 음식들을 흡입했다. 먹으면서 걷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지체되진 않았다.

[천상의 미각이 ‘비법 양념 줄기 조림’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최대 체력이 100포인트 증가합니다!]

[힘이 2포인트 증가합니다!]

“쩝쩝, 양념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아르바에서 온 모양이군. 루얀 특제 향신료를 사용한 양념이라네, 어때 맛있지?”

[천상의 미각이 ‘후르츠 비프’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최대 체력이 80포인트 증가합니다!]

[힘이 3포인트 증가합니다!]

“쩝쩝, 사장님 이 과일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루얀에서만 자라는 레드링이라는 과일이네. 아르바 왕국에서는 수소문을 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 맛이 살짝 다른 블루링으로 만든 음료도 있는데, 서비스로 한 잔 더 줄까?”

“아이고, 주시면 저야 감사히 먹겠습니다!”

넉살 좋은 엑스는 양손에 음식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면서 NPC들과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 엑스를 보고 유저들이 웃음을 뱉었다.

“진짜 즐기면서 페이트를 하네.”

“그러게, 저래서 어떻게 루얀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냅 둬, 길드도 없어 보이는데. 돈까지 쏟아 부어 가면서 여기까지 키우느라 처음부터 고생 꽤나 했을 거야? 때론 보상도 필요한 법이겠지. 그 보상이 길거리 음식이라니, 조금 불쌍하긴 하지만.”

하하하! 엑스를 비웃으며 떠드는 유저들.

와구와구!

엑스는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면서도 눈을 굴렸다. 유저들의 어깨 문양을 기억해 뒀다.

‘자, 보자. 일단 검은 장미랑 타이탄즈, 그리고 고수 연합이랑 파죽지세…… 얼씨구, 워 머신 놈들이 여기에도 있네?’

말 그대로 살생부!

엑스는 한 번 정한 사냥감은 놓치지 않는 집요한 사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 길드에 속한 유저들은 엑스에게 된통 당할 날이 올 것이다.

“어디 보자.”

싹쓸이.

탁탁! 거리를 거닐며 길거리 음식을 전부 해치운 엑스가 손바닥을 털었다. 남들에겐 우습게 보일지는 몰라도, 엑스에겐 다 남는 것이 있는 행동이었다.

이름 : 엑스

직업 : 천상의 미식가

칭호 : 고대 왕국의 탐구자

레벨 : 152

명성 : 940

생명력 : 54,380 / 54,380

마나 : 24,320 / 24,320

힘 : 1383 / 민첩 : 662

지능 : 682 / 인내 : 80

패기 : 486

보너스 포인트 : 0

“전부 다 해서 2골드는 썼나?”

넉넉잡아서 2골드라고 생각해도, 길거리 음식으로 올린 스텟이 얼마인가?

비웃던 유저들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스텟 상승!

그뿐 만이 아니었다.

엑스가 손가락을 접으며 중얼거렸다.

“새롭게 발견한 루얀 향신료만 해도 다섯 가지…….”

게다가 루얀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품들까지 생각하면……. 스텟을 수십 배나 날로 먹을 수 있었다.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나만 잘 된다면 상관없었으니까.

‘물론, 살생부에서 지워 줄 생각은 없다. 이놈들.’

음흉한 웃음을 흘린 엑스가 가까운 잡화점에 들렀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손님!”

“물건 좀 처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향신료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희 루얀의 특제 향신료가 있습니다.”

엑스는 잡다한 물건들을 처분했다. 처분해서 받은 골드가 300골드였지만, 향신료를 구입하는데 사용한 골드가 500골드였다.

잡화점에서 빠져나온 엑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현실에서 먹은 꽃등심보다 비싸네, 이거.”

향신료에 500골드를 쓰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천상의 갈무리를 통한 득템과 개인 방송을 통해 많은 골드를 벌었기에 망정이지, 일반적인 규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출이었다. 물론, 향신료는 다양한 쓸모가 있어 아깝지 않았다.

‘준비도 끝났고…….’

엑스는 루얀을 한 번 쭉 둘러봤다. 곳곳에서 보이는 워 머신의 길드원과 거대 길드의 길드원들. 분명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후딱 만나고 달려오자.”

엑스는 시오라스를 먼저 만나고 다시 오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길드원들이 나누던 대화를 생각해 봤을 때, 사건이 단시간 내에 발생하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

*

“저거구나!”

저녁이 되자,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희망의 끝 등대!

등대는 정말 대륙, 최남단에 위치해 있었다. 쏴아아아! 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청량했다. 엑스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등대를 향해 나아갔다.

‘맨 꼭대기 층에 계시겠지?’

등대 맨 아래층에는 해안 경비병들이 있었다. 아마도 등대를 방어하는 병력 같았다. 엑스가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경비병들에게 시오라스가 위에 있냐고 물어봤다간, 괜히 제지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목걸이는 빼놓는 게 좋겠다.”

범법 행위를 했다간 티예르 가문에 피해가 갈 터. 무려 암철 광산의 소유자다. 엑스는 티예르 가문과의 친목을 깨고 싶지 않았다. 엑스가 목걸이를 빼서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리고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데…….

어찌된 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아직도 한참 남았다고?”

무수히 펼쳐진 계단!

고개를 내밀어 위를 바라보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엑스의 머릿속에 문득, 괴짜 리그리앙을 찾아 나섰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망자의 해변처럼 숨겨진 장소인가?’

어찌된 게 미식왕과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꽁꽁 숨어서 산단 말인가?

털썩. 엑스는 신세를 한탄하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잘 찾아와서 다행이다.’

끝나지 않는 계단은 다르게 말하면, 시오라스가 아직 등대에 머물고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문제는 이 끝나지 않는 계단을 뚫고, 시오라스를 만나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엑스가 결심했다.

‘그래, 대화를 시도해 보자.’

엑스가 입을 열었다.

“대현자 시오라스 님. 혹시 듣고 계시다면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저는 엑스라고 합니다. 괴짜 리그리앙님의 소개로 시오라스 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인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참 오랜만이군.”

“네?”

진짜 대화가 통했다.

놀란 엑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자, 문이 보였다.

문 안쪽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군다나 리그리앙의 소개라니. 경계를 풀 수밖에 없군. 안으로 들어오게나, 엑스.”

“네, 감사합니다. 시오라스 님!”

힘차게 대답한 엑스가 문을 열었다.

대현자, 시오라스!

지긋한 백발과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의 얼굴은 수려했고 눈에는 총기가 넘쳤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들고 나를 찾아온 건가, 엑스?”

이야기라.

묻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가 같았다.

하지만 첫인상 점수를 따려면 자기소개가 우선이었다.

엑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미식왕의 후계자, 엑스라고 합니다. 칼론과 만나 미식왕의 레시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리그리앙 님을 만난 뒤 리그리앙 님의 소개로 대현자님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미식왕의 후계자라고?

엑스의 말에 시오라스가 말을 더듬었다.

“그분의 후계자라니. 그, 그게 정말인가?”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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