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메시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의문의 플레이어-슈베르트 박사의 메시지에는 ‘X’라고 표기되어 있었다-가 페이트 월드 최초로 A-급 퀘스트를 성공시켰다는 것! 수행도 아니고 성공이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한 서명우가 말을 더듬었다.
“그 카이무스도 B+급 연계 퀘스트를 성공시키는 데에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근데 어떻게 혼자서 A-급 퀘스트를 성공시켰다는 거야?”
메시지가 사실인가?
게임 마스터들이 여기저기서 탄식을 뱉어 냈다. 메시지를 확인했건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띠릭! 이내, 메시지 하나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딸칵! 가장 먼저 김성철이 반응했다.
메시지가 떠오르자 옆자리에 있던 서명우가 김성철의 모니터를 향해 다가왔다. 둘은 함께 메시지를 읽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인어들과 만났다고? 그것도 굳건한 신뢰 관계를 구축?”
“미친. 이거 1위를 차지 할만 했군!”
베타 시뮬레이션 때도, 베타 테스트 때도,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비의 종족, 인어!
그저 설정 속에만 존재하는 종족이 아닐까. 게임 마스터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희귀한 인어를, 의문의 플레이어 X는 이미 발견했단다.
발견한 것으로도 모자라, 각별한 관계까지 구축했단다!
김성철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분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거야.’
김성철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그러니까 페이트에 대해선 가장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게임 마스터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초신성 같이 나타나, 페이트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X!
그 유저가 페이트로 뒤덮인 세상에 행사할 영향력을!
그 영향력은 최고의 플레이어인 카이무스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임 마스터들이 분주해졌다.
“선배, 회장님한테 한 번만 더 여쭤 보면 안 될까요?”
“맞아요. 아무리 그래도 플레이어 이름만이라도…….”
“나도 메시지를 보내 볼 생각이긴 한데, 또 그런 보안 쪽에서는 워낙 엄격하시잖아. 기대는 하지 마. 그리고 시간 있는 사람은 랭킹 한 번 쭉 뒤져 보고.”
존재감이 없는 랭커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게임 마스터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각종 랭킹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 층 위, 회장실에서 지켜보던 슈베르트 박사가 웃음 지었다.
“답은 이미 전부 보여 줬는데 말이지.”
그도 그럴 것이 메시지 첫줄부터 플레이어의 정체를 발설하지 않았는가?
물론, ‘엑스’를 흔히들 미지의 존재를 표현하는 ‘X’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지.”
평소에는 최고의 상사인 슈베르트지만, 의외의 구석에서 부하들을 놀려 먹는 구석이 있었다. 그가 게임 마스터들의 요청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흐음, 정체를 깨닫는 데까진 꽤 시간이 걸리겠군.”
슈베르트도 게임 마스터들과 같은 입장이었으면 쉽게 추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리 먹방을 진행하며 시청자들과 능청스레 수다를 떠는 스트리머 엑스와 믿지 못할 강함을 보여 주는 X를 동일 인물로 생각하는 건, 심히 무리였으니까.
“어쩌면, 자네가 진짜 힘을 드러낼 때까지 못 알아차릴 수도 있겠어?”
슈베르트가 거대한 모니터를 보며 씨익 웃었다.
화면에선 이제 막 페이트에 접속한 엑스가 떠올라 있었다.
*
다시 육지로!
엑스가 인어 섬을 빠져나와 꼬마 물고기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잡아먹히지 말고.”
“물론이지! 아마 다음에 만날 땐 깜짝 놀랄 걸? 말은 안했지만 우리 엄마 아빠가 굉장히 크시거든! 다음엔 나도 꽤 커져 있을 거라고.”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엑스는 한껏 아가미를 내미는 꼬마 물고기를 쓰다듬곤 헤엄치기 시작했다. 퀘스트도 성공했겠다, 인어의 비늘도 얻었겠다. 이젠 시오라스에게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다음 재료는 뭘까나.’
요리사의 직감!
스텟을 올리려는 속셈이었다고는 해도, 엑스도 꽤나 많은 식재료를 다루고 요리해 봤다. 때문에 재료만 보고,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괜찮겠는지 그런 감이 생겼다.
‘척 봐도 인어의 비늘은 부재료니까.’
하지만 이 작은 비늘로 무슨 요리를 한단 말인가. 분명 다음 재료는 음식의 주가 되는 재료일 것 같았다. 첫 번째 재료부터 이런 입수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니, 두 번째 재료가 뭔지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올라가면 알게 되겠지.”
보글보글! 지금은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엑스가 시오라스가 알려 준 호흡법을 유지하며 수면으로 향했다.
반짝! 바다 너머로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보였다.
푸확! 엑스가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등대 근처에서 낚시하던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저건?”
“……저거 엑스 님 아니야?”
“엑스 님, 돌아오셨군요!!”
요리로 쌓은 인연. NPC와는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콩고물을 기대할 수 있었다.
척! 엑스가 올라오면서 잡은 물고기를 들어올렸다.
“기다리셨죠? 그럼, 싱싱한 놈으로 한 마리 같이 뜯어 볼까요?”
*
끼익! 엑스가 등대 꼭대기 층의 문을 열었다.
시오라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엑스를 맞이했다.
“하하, 아침부터 너무 과식한 것 아닌가? 엑스.”
“간만에 경비병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서 무리를 좀 했네요.”
“젊음이란 참 좋은 것 같군.”
스윽. 시오라스가 손을 내밀었다.
“수고 많았네. 무사히 돌아온 걸 환영하네.”
엑스가 시오라스의 손을 붙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네, 건강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스승님!”
엑스는 시오라스에게 곧바로 인어 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대현자라고 해도 모든 것을 예측할 순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가 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룬스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그게 굉장히 끔찍한 비명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제 속마음도 계속 읽히고 있는 상황이라. 제가 아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했네. 멜리아 공주님께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겐 멜리아 공주님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할 날이 올 걸세.”
그녀의 청력이 필요한 날.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시오라스가 하는 말이었다.
헛된 말은 아니리라. 엑스가 살짝 우쭐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또 인어 공주님하고 친목을 쌓았죠.”
“친목?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말해 보게, 엑스.”
“이걸 보시면 바로 알아보실 겁니다.”
엑스가 인벤토리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는 인어의 비늘을 꺼냈다. 옅은 분홍빛이 맴도는, 멜리아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인어의 비늘! 시오라스의 눈이 토끼눈이 됐다.
“서, 설마 이건 멜리아 공주님의……?”
“네, 인어 공주님의 비늘입니다. 흔쾌히 주시더라고요.”
“허허…….”
아무래도 점수를 확실히 딴 모양이군.
아주 작게 중얼거린 시오라스가 말을 이었다.
“좋았어. 아주 완벽하게 첫 번째 재료를 구해 왔군, 엑스! 게다가 처음에는 형편없었던 호흡도 상당히 안정되었어. 많이 노력한 모양이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시오라스와 함께하는 수련!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고는 해도, 불친절한 리그리앙 때와 비교하면 이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엑스가 의욕적인 얼굴로 시오라스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남은 재료는 뭐가 있을까요, 스승님?”
“가장 구하기 힘든 인어의 비늘을 구했으니…….”
시오라스가 손가락 하나를 펴들었다.
“한 가지. 한 가지만 더 구해 오면 레시피는 완성일세.”
“하, 한 가지요?”
꽤나 많은 재료가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고기볶음을 만들 때도, 꽤나 많은 종류의 재료와 소스가 투입되니까. 엑스가 덧붙여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해야 하는 재료도 인어의 비늘만큼 희귀한 재료겠군요. 예를 들면, 수십 가지의 맛을 품고 있는 환상의 식재료라든가…….”
“아니, 다음 재료는 물일세.”
“……네? 무리도 아니고, 물이요?”
“……엑스, 그건 무리수로군.”
터무니없는 말장난에 시오라스가 정색하곤 말을 이었다.
“물론, 평범한 물은 아니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만년 산호초, 그 만년 산호초 꼭대기에 고인 ‘만년 산호수’가 필요하니 말이야.”
“만년 산호수!”
이름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과연, 미식왕의 식재료다운 이름이었다.
엑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어의 비늘과 만년 산호수라.’
이 조촐한 재료로 대체 무슨 요리를 만든다는 것일까?
생각하던 엑스의 눈에 문득, 찻잔이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시오라스는 언제나 차를 옆에 달고 살았다. 끼니는 걸러도 차는 시간마다 거르지 않을 정도로. 엑스도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끝내주는 차 한 잔을 얻어먹은 기억이 있었다.
“혹시 인어의 비늘로 차를 우리는 건가요?”
“오오, 못 보던 새 눈치가 빨라졌군. 엑스!”
인어의 비늘과 만년 산호수를 이용해 끓인 차! 그저 설명만 들어도, 한 잔 만드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재료들이었다. 하지만 엑스의 얼굴엔 활기가 넘쳤다.
‘만년 산호수만 구하면……!’
이번엔 곰 태세를 배웠을 때처럼, 요리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레시피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내, 엑스가 입을 열었다.
“만년 산호초, 위치만 알려 주시죠. 바로 뛰어갔다 오겠습니다!”
*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던 왕궁 주술사의 예언이 빗나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뿌득! 카이무스가 세게 주먹을 쥐었다. 부르르, 떨리는 그의 주먹이 그의 심정을 십분 대변하고 있었다. 이번 예언을 믿고 카이무스는 많은 것을 투자했다.
국경 통제령을 내려가면서까지 워 머신이 예언을 독점하기 쉽게 만들었다. 다른 길드들을 통제할 구실도 완벽하게 짜 놓은 터였다.
하지만 예언이 뒤바뀌어 버렸다. 카이무스의 미간이 급격하게 좁아들었다.
‘엑스, 왜 하필 네가 나타난 뒤로.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걸까.’
하늘의 예언이 엑스 때문에 바뀌었다?
엑스는 한낱 유저에 불과하다. 그건 가능성도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카이무스에겐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선택지였다. 카이무스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굴욕이 떠올랐다.
‘그리고 왜 그 남자에게서 너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맡아 뒀다고 생각했던 페이트 하이라이트 메인.
하지만 의문의 사내에게 보기 좋게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사내가 혼자서 박살 낸 녀석들은 괴물이라는 것을, 수준 높은 카이무스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워 머신이라고 해도 전력을 다했어야 간신히 승산이 보였을 것이다.
물론, 카이무스도 의문의 사내가 엑스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수년의 시간, 린 온라인을 함께 즐겼던 엑스와 카이무스였지만 현실에서의 엑스의 이름도, 얼굴도 카이무스는 알지 못했다.
그저 압도적인 광경을 보면 엑스가 떠오를 뿐이었다.
린 온라인 때부터 생긴 조건 반사라고 볼 수 있었다.
카이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난 너를 무시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카이무스는 엑스를 무시하고 싶었다. 옛 동료와의 우정?
개나 줘 버려라. 카이무스가 엑스를 무시하려고 했던 이유는 단 하나.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
최강은 ‘엑스’가 아니라 ‘워 머신’이었다는 것을, 자신의 무력함을, 원수에게도 무시 받을 정도로 퇴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만한 착각이었다.
카이무스가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엑스, 이제부터 내가, 워 머신이 너를 적으로 인정하겠다.”
최강이 되려면 최강을 넘어서야 한다.
때문에 여태까지 카이무스와 워 머신의 적은 자신 밖에 없었다.
최강은 언제나 자신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카이무스가 처음으로 주적을 정했다는 것.
그것은 엑스에 대한 인정이자, 선전포고였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