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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97화 (97/391)

97화

아수스에게 연락이 온 건 그 날 저녁 무렵이었다.

아수스 : 답장 한 번 안 하더니, 뜬금없이 대장장이? 섭섭하긴 하다만 마침 우리 길드에 뛰어난 대장장이가 하나 있긴 하지! 대장장이 스킬만 올려서 레벨이 200이 넘는 실력자라고.

‘비주류 길드원만 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네.’

생산직 클래스!

그야말로 사서 가시밭길을 걷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직업 스킬 숙련도를 올릴 때마다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하나, 몬스터 사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

직업 특색을 살려 전투가 가능하다고는 하나, 전투 특화 클래스에 비교하기는 민망한 수준. 그중에서도 대장장이는 힘들다고 정평이 난 직업이었다.

‘하기야 누가 게임에서까지 노동을 하고 싶겠어?’

뻘뻘 땀을 쏟아가며 쇠를 두드려야 간신히 오르는 숙련도.

하지만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은 법! 페이트엔 각종 생산직 클래스로 정상을 노리는 유저들이 존재했다. 익스플로러에 몸을 담은 대장장이 유저도 그중 한 명일 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군.”

아수스와 대장장이 길드원은 나르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엑스는 그들과 용건이 끝나면 베네타 필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날이 밝자마자 엑스는 라안들과 재회를 기약한 뒤, 다시금 필드로 향했다. 어젠 설산 코뿔소를 때려잡았으니, 오늘은 새로운 필드의 네임드 몬스터를 노려볼 생각이었다.

백호, 하얀 호랑이로 지상 동물 중에선 설산 최상위 포식자!

백호는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뛰어난 전투능력에 자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자체 버프까지. 백호는 400레벨이라는 수치가 아깝지 않은 네임드 몬스터였다. 하지만 소문이 났으니, 유저들에게 노려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씁, 일주일만 빨리 도착했어도…….”

엑스가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백호는 이미 대형 길드와 은든 고수들에 의해 공략이 된 네임드 몬스터였으니까. 드롭 아이템은 물론, 최초 사냥에 성공한 유저는 칭호까지 받았다. 하나 400레벨의 네임드 몬스터였다.

‘만년 바다뱀보다 강하다는 거 아니야.’

만년 산호섬에서 쓰러트렸던 녀석의 레벨은 300레벨 중반대였다. 다른 존재와 연관된 적들을 제외하면, 백호는 여태껏 상대한 몬스터 중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엑스가 누구인가?

“어딨냐, 하얀 고양아.”

4천에 육박하는 힘과 20만을 향해가는 생명력!

막말로 백호 수십 마리한테 합공을 받아도, 이길 자신이 있는 엑스였다. 엑스가 휘파람을 불며 설산 깊숙한 곳으로 진입했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게 이런 곳에?”

백호가 기척을 드러낸 건 엑스가 베네타 특산 약초에 한 눈이 팔렸을 무렵이었다.

찌릿! 하얀 눈꽃 속에서 백호의 안광이 번뜩였다. 엑스는 서둘러 약초를 챙기고 전투자세를 취했다.

‘높은 레벨이 이해가 되네. 영리한 녀석이야.’

백호는 무방비한 엑스를 보고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왜? 엑스의 태연한 연기를 알아차렸으니까.

엑스는 일부러 살기를 숨긴 채 주위를 맴도는 백호를 도발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꺾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자존심을 꺾고 엑스를 자신과 대등한 적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응해 줘야지.

중얼거린 엑스가 활을 꺼내 들었다.

숙련도가 70퍼센트를 돌파한 정확한 활시위! 파랑새의 새장에서의 노가다는 헛된 게 아니었다.

엑스는 한결 간결하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눈 속에 몸을 숨긴 백호를 노렸다.

푸슉! 놓은 화살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적중.

[치명적인 일격!]

[백호에게 출혈 효과가 발생합니다!]

네임드 몬스터는 각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을 잔뜩 달고 있다.

엑스는 그런 네임드 몬스터에게 일격으로 출혈을 일으킨 것! 속성에서의 우위도 없었는데,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

“……자기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워낙 빠른 속도로 성장하니, 자신의 실력을 짐작하기가 곤란했다. 어쨌거나 성장했다는 증거. 미소를 삼킨 엑스가 연달아 창을 꺼내 들었다.

‘창과 방패, 어느 쪽을 활용할 지 생각해 봐야해.’

일단, 오른손에는 나그네의 검이 고정이다. 지금도 준수한 공격력을 가졌지만, 봉인이 해제되면 화룡의 이빨이라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무기였으니까.

고민해야 되는 건 왼손이다.

창이냐? 방패냐?

여태까진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창을 활용했던 엑스다. 개인방송을 타면서 창과 검을 동시에 활용하는 엑스 특유의 자세가 웨펀 마스터들 사이에서 유행이 됐을 정도.

엑스가 창을 사용해온 이유야 간단했다. 방어를 할 필요를 없었으니까. 워낙 빨리 적을 때려눕히니 방패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나, 그 숭배자들을 상대할 땐 상황이 달라진다. 자울과의 전투 때만 해도 고전을 면치 못한 엑스였다.

‘암철은 방패를 제작할 정도로 충분해.’

때문에 엑스는 장비를 제작하기 전, 방패에 활용도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사실 방패는 만드는 게 남는 장사였다. 역시나 사기 스킬이라 불릴만한, 칼슈마르 방패술을 보유한 엑스였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지.”

매 순간 눈앞에 적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다잡은 엑스가 백호 사냥을 이어갔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출혈이 발생한 백호는 이전처럼 눈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없었다.

파박! 엑스가 설산을 가로질러 백호에게 돌진했다.

쌕! 사정거리에 백호가 포착되기 무섭게 창을 내던졌다. 압도적인 힘으로 내던진 투창이다.

덕분에 일직선으로 날아간 창이 백호의 뒷다리에 적중했다.

[치명적인 일격!]

[백호가 빈사 상태에 돌입합니다!]

“두 방이면, 곰 태세를 사용하면 한 방인가?”

백호를 잡기 위해 수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 유저들이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광경!

엑스는 태연하게 계산하며 백호를 향해갔다. 생명력은 꺼져가지만, 여전히 투쟁심에 가득한 눈빛.

“편히 가라.”

엑스는 백호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 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칭호 ‘명부 수집가’를 습득하셨습니다!]

“……어라?”

기대도 않던 칭호를 얻었다. 칭호 명칭을 보아하니, 백호와 관련된 칭호는 아니었다. 엑스가 칭호의 효과를 유심히 살폈다.

명부 수집가 : 네임드 몬스터와 전투 시, 네임드 몬스터의 상태 이상 저항력을 대폭 낮춥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공격력과 방어력이 조금씩 상승합니다.

네임드 몬스터에 특화된 효과를 가진 칭호! 단기간 내에 서로 다른 네임드 몬스터를, 혼자 쓰러트린 엑스에게 주어진 칭호였다.

효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획득 조건을 짐작한 엑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스켈레톤, 모두가 네임드 몬스터였으니까.”

이걸로 미스트 폐광산에서 받은 퀘스트에 대한 아쉬움은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었다.

엑스가 백호의 사체에 손을 얹었다. 사체가 흐려지고 아이템이 떠올랐다.

-백호 가죽 (레어)

아름다운 백호의 가죽.

뛰어난 보온성은 물론, 마력까지 품고 있다.

특수 효과 : 로브로 제작 시, 로브에 버프 강화 효과를 부여한다. 부여되는 버프 강화 효과는 제작자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크흠…….”

아쉽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버프 강화 효과!

에메랄드 해골 목걸이의 효과로 지속 시간을 늘린 곰 태세다. 거기에다 백호 가죽의 버프 강화 효과까지 받는다면, 그 시너지는 감히 예측하기도 힘들 터.

하지만 로브라니!

로브는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나 사제들만 착용할 수 있는 방어구였다. 엑스는 써 보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백호의 가죽을 얻은 것이다. 엑스가 입맛을 다셨다.

“뭐, 경매장에 올리든가 해야지.”

물론, 흥정은 사절.

아이템까지 챙긴 엑스는 주변에서 사냥을 이어 나갔다. 백호를 제외하고도, 300레벨 중반대의 몬스터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베네타 신 필드였다.

“알려지면 사냥할 자리도 없겠는데?”

레벨에 비해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몬스터들! 아직 정보가 덜 알려져서 유저들이 적었지만, 불과 며칠만 지나도 고레벨 유저들로 붐비는 게 당연했다. 엑스는 그전에 빨 수 있는 꿀을 최대한 빨 생각이었다.

룰루랄라. 엑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냄비를 꺼냈다.

“킁. 일단, 버프 먼저 걸어주고…….”

천상의 요리!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베네타의 매서운 추위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엑스에겐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천상의 요리가 있지 않은가.

순식간에 완성된 요리를 흡입하자 몸이 따뜻해져 갔다.

벌떡!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엑스가 의욕을 불태웠다.

“새로운 고기는 식량이 되고, 스텟이 되는 법.”

아수스들이 도착하기 전.

넘치는 욕심을 달래기 위해 사냥에 매진하는 엑스였다.

*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이 쏟아졌다. 그 사이로 금발의 머리칼이 보였다.

“엣취! 뭣 하러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거야?”

“비밀 이야기를 할 거라서 어쩔 수 없었어.”

“비밀은 무슨, 보나 마나 장비 의뢰겠지. 단우야……?!”

아수스가 자신의 뒤에 있던 길드원을 소개하려던 순간. 후다닥! 앳되어 보이는 중성적인 얼굴의 소년이 엑스에게 달려왔다. 소년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지, 진짜 엑스 님이라고요? 정말?”

“처음 뵙겠습니다. 엑스라고 합니다.”

“미친, 목소리까지 똑같아. 엑스 님! 제가 담금질 할 때마다 엑스 님 방송만 봤어요! 모든 방송이 재밌었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전갈 먹방을 하실 때가…….”

끝나지 않는 수다!

아수스는 또 시작했다는 눈치였지만, 엑스는 단우의 수다를 빠지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귀중한 시청자가 아닌가? 게다가 전갈 먹방 때부터면 처음부터 방송을 챙겨 본 애청자다.

‘귀찮다고 단골을 놓칠 순 없지.’

그런 둘의 수다를 끊은 건 아수스였다.

“단우야,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잖아. 으으, 추워라. 일단 몸 좀 녹이고 이야기하자. 얘가 엑스, 네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을 해서…….”

아수스는 기본적으로 친화력이 대단했다. 능청스럽게 모닥불에 앉아 냄비뚜껑부터 건드리는 아수스.

탁! 엑스가 아수스의 손을 치곤 냄비를 빼앗았다. 엑스가 그릇을 꺼내 단우에게 내밀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우선은 국물이라도.”

“제, 제가 엑스 님의 음식을 먹게 될 줄이야!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 게요…… 미친, 완전 맛있어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닌데, 잠깐 스크린 샷 한 번 찍어도 될까요? 어디에 안 올리고 저만 볼게요.”

팬미팅과 다름없는 모습.

불편한 건 아수스뿐이었다. 아수스가 툴툴거렸다.

“뭐야? 나한테는 반말하더니.”

“나는 받은 대로 돌려주는 성격이라.”

“……내가 먼저 말을 놨었나?”

대뜸 찾아와서 반말로 동맹 신청.

그러고 생각해 보니 첫 만남에 굉장히 무례를 범한 것 같았다. 한 번의 실수로 엑스의 음식을 돈 내고 먹게 되다니. 아수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엑스에게 골드를 내밀었다.

골드를 챙긴 엑스가 아수스에게도 국물을 퍼 줬다. 실물이 더 멋있다, 어떻게 그렇게 요리를 잘 하냐, 호들갑을 떠는 단우를 뒤로한 채 아수스가 입을 열었다.

“저래 봬도 실력은 끝내주지. 웬만한 NPC들보다 꼼꼼하게 장비를 봐 준다니까.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거대 길드에서도 간간이 장비를 맡길 정도니까.”

단우가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그렇게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엑스 님의 장비라면 최선을 다해 다루겠습니다!”

불끈! 주먹을 쥔 단우의 손에 박힌 굳은살들이 신뢰를 줬다. 게다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3자에게 암철 장비를 의뢰하는 것보단, 전략적 동맹이라곤 해도 연고가 있는 익스플로러 쪽에 의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심한 엑스가 운을 뗐다.

“단우 씨, 혹시 암철을 다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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