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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98화 (98/391)

98화

“아, 암철이요?”

단우의 낯빛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암철暗鐵, 그 귀한 광물을 어떻게 만져 본단 말인가.

생산직 클래스에게 귀한 재료를 다뤄 보는 건 경험이 되고, 숙련도가 되고, 레벨이 된다.

기회가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만졌을 것이다.

단우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귀한 걸 만져 봤으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겠죠. 대장장이 유저들 사이에서 암철을 다뤄 본 유저가 있긴 있을지……”

“음, 그렇군요.”

“그래도 수리는 자신 있습니다! 암철을 사용했다고 해도, 수리는 일반적인 철광석으로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철광석 수리야 질리도록 해 봤고…….”

엑스가 고개를 저었다. 괜히 헛걸음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지만 수리를 맡기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엑스에겐 뛰어난 성능을 지닌 순수한 암철 장비가 필요했다.

지켜보던 아수스가 끼어들었다.

“……엑스, 너 설마 암철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래, 암철로 장비를 만들 생각이야.”

“하, 이젠 놀라기도 지친다.”

아수스는 잠깐 멈칫했지만 크게 놀란 기색은 없었다. 하기야 이전에는 애완견처럼 순한 드래곤과 대면한 그였으니까. 납득한 아수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암철로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이라. 네가 원하는 수준을 가진 대장장이 유저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뭐, 있을 수도 있지만 접촉할 방법이 없을 거란 뜻이지.”

엑스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하지만 그 고수가 세상에 나서야 대화라도 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막말로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엑스도 얼마 전까지 감쪽같이 힘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암철 세트를 포기하는 수밖에.

다른 존재의 본거지로 진입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레벨과 숙련도를 끌어올린 것으로 만족해야 될 것 같았다.

엑스가 미련을 버린 찰나.

잠자코 있던 단우가 입을 열었다.

“……있어요.”

“?”

“유저는 아니지만, 암철로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

곧바로 단우의 말을 이해한 엑스가 대답했다.

“대장장이 NPC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저의 스승님이죠. 속세와는 담을 쌓으셔서 세상에 알려지시진 않았지만…… 매일매일 단련을 멈추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단우는 진심으로 스승을 존경하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만난 인연이지만 단우는 그 뛰어난 실력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꼬박 한 달을 애원한 끝에 그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엑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됐다.’

NPC 대장장이!

과거 말했다시피 페이트 월드의 원래 주인은 유저가 아닌 NPC들이다. 페이트가 서비스된 지 1주년을 향해가는 지금, 아직까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 NPC들이다.

문제는 그런 NPC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냐는 것.

하지만 이런 연줄을 만나게 될 줄이야.

엑스가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단우 씨, 앞장서시죠. 스승님이 계신 곳으로!”

*

아수스는 더 이상 엑스와 함께 할 수 없었다.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레지스탕스, 혼밥 동맹!

다양한 방면으로, 은밀하게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익스플로러였다. 리더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엑스 님과 함께 여행하게 되다니……!”

덕분에 엑스는 단우와 단둘이 스승인 대장장이를 찾아 나섰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람 자체가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아는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게다가 귀중한 애청자님이시지.’

그런 단우에게 맛 평가를 부탁하자.

천상의 미각 때문에 뭐든 맛있게 먹는 엑스이기에, 다른 이들의 평가가 절실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얻을 게 넘쳐나는 법.

엑스가 의지를 다지며 전진했다.

“스승님은 대륙 중앙 거대 화산 부근에 거주하세요.”

“아이고, 사서 고생을 하시네요.”

“헤헤, 저도 더워서 죽을 뻔했지만…… 대장장이들에게 그보다 좋은 장소도 없거든요. 좋은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선 강한 화력이 필요한데, 화산에선 넘치는 게 화력이라.”

“아하.”

단번에 납득이 됐다. 대화에서 또 하나 배우는 엑스였다. 마을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기에 화산까지 도달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뻘뻘. 구슬땀을 흘리던 둘이 멈춰섰다.

“잠깐 쉬었다 갈까요?”

“헥헥,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기에 강한 대장장이라고 해도 초대형 화산의 열기는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땀을 훔친 엑스가 고개를 들어 화산을 바라봤다.

“……진짜 징하게 크다.”

엄청난 크기의 화산!

원시림에서 싱하르족을 만났을 때도 느낀 거지만, 가상현실이기에 존재할 수 있는 화산이었다. 그 높이가 족히 수십 킬로미터는 될 것 같았다. 넋을 놓고 화산을 바라보던 엑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땀 좀 식히고 계셔보세요.”

“네? 네, 그럴게요.”

샤샥! 엑스는 단우를 뒤로한 채 화산 쪽으로 뛰쳐나갔다. 화산의 열기 때문에 걷는 속도가 확실히 늦어졌다. 엑스는 천상의 요리로 그 열기를 무마시킬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으니까.’

천상의 미각을 가진 엑스는 열기를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더위를 덜 타게 될 정도. 그래도 먹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나았으니까.

“요놈들 간만에 보는구나?”

퍽!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엑스가 축권법으로 몬스터들을 때려잡았다. 고깃덩이와 화산 근처에서만 나는 열매들. 식재료를 조달한 엑스가 불을 피웠다.

단우가 옆에서 거들었다.

“혹시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 생긴 건 이래도 요리는 좀 하거든요.”

“저 때문에 따라오신 건데, 편하게 쉬고 계세요.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정 도와주고 싶으시다면…… 냉정한 맛 평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순식간에 자기 할 말을 끝내는 엑스!

듣고 있던 단우가 생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냉정하게 해 볼게요.”

스스스. 엑스의 손이 그림자를 따라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매와 고기를 함께 삶아 잡내를 제거하고, 매콤한 향신료를 뿌려 향과 미처 잡지 못한 냄새까지 잡아 준다.

“와아, 벌써부터 냄새가!”

이제 시작한 참인데, 단우가 감탄을 뱉어냈다. 그만큼 미식왕의 실력은 간단하면서도,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요리가 완성됐다.

“잘 먹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단우는 그릇에 얼굴을 파묻다 시피하고 식사에 열중했다. 엑스라고 다른 건 없었다. 간만에 먹는 뜨거운 화산의 맛!

‘크, 이열치열이구나.’

띠로링! 알림이 떠올랐다.

[천상의 미각이 ‘이성 요리, 스파이시 페스티벌’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화염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화염 속성 친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화염 속성 마법의 피해량이 100퍼센트 증가합니다!]

솟아나는 몸의 열이 화산의 열기를 이겨 냈다. 그러자 뚝뚝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멎기 시작했다. 그건 단우도 마찬가지인 모양. 매운맛에 코를 훌쩍이던 단우가 입을 열었다.

“기분 탓인가, 갑자기 서늘해진 것 같네요?”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저기, 한 그릇 더 먹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영업 비밀은 발설금지!

시치미를 뚝 뗀 엑스가 국자를 들어 단우의 그릇을 가득 채워 줬다.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까지 끝나자 둘은 걸음을 서둘렀다.

“해가 저물고 있어요.”

어두워진 하늘에서 고고히 타오르는 붉은 화산. 밤이 되면 화산 근처에 거주하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다. 물론, 몬스터 따위가 겁나는 건 아니었다.

단우는 초조한 모양인지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었다.

“스승님께선 예의범절을 굉장히 중요시하시거든요. 또 굉장히 까탈스러우시고, 일찍 잠이 드시는 편이시라…… 더 늦었다간 불같은 호통을…….”

덜덜덜. 스승님의 압박감!

‘쩝, 오는 길에 쓸어가야지.’

그렇게까지 말하니 새로운 몬스터와 식재료가 보인다고 해도 딴 짓은 금물이었다. 둘은 수다까지 줄여가면서 숲 속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엑스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맛 평가를 못 들었네요.”

“평가요? 에이, 제 배를 보시면 모르시겠어요?”

애청자에게도 흠 잡을 곳 없었던 엑스의 요리!

장난스럽게 배를 두들기는 단우였다. 뜨거운 열기에 내놓은 뜨겁고 매운 음식이었지만,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엑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군.’

애청자에게 맛 평가는 부탁하나 마나다.

기대와는 다른 교훈을 얻은 엑스가 피식 웃었다.

*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초가집.

그 옆에서 은은한 불을 밝히는 화로까지.

단우가 입을 열었다.

“바로 저기가 스승님의 집이에요.”

욕심이라곤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집. 페이트에서 뛰어난 대장장이는 돈을 찍어 낸다고 봐도 된다. 부의 상징, 거대 길드가 아낌없이 돈을 쓰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장비였으니까. 때문에 엑스는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어째, 나랑은 굉장히 맞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탐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엑스!

단우의 스승이라는 작자는 자신과 정반대의 성품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부턴 단우가 앞장섰다. 단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소리가 안 들리는 걸로 봐선 벌써 잠자리에 드신 것 같은데…… 일단, 제가 먼저 기척을 한번 해 볼게요. 하아, 심장 떨려.”

초가집에 도착한 단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스승님, 제자 단우입니다.”

“크흠.”

환영 대신 문 너머에서 불편한 헛기침이 들려왔다.

난 죽었다.

눈을 질끈 감은 단우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저어, 스승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지런히 출발했지만, 제가 발이 느린 탓에 이런 오밤중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잠이 드시지 않았다면 못난 제자에게 얼굴이라도 한 번만…….”

“……옆에 놈은 뭣 하는 놈이냐?”

맹수의 것처럼 걸걸한 목소리!

경계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게다가 느껴지는 위압감을 볼 때, 단우의 스승은 보통 내공의 소유자가 아닌 것 같았다.

“이분은…….”

단우가 대답하려던 순간, 엑스가 입을 열었다.

“전 엑스라고 합니다. 우연치 않게 분에 넘치게 귀한 재료를 얻게 되어 뛰어난 대장장이를 수소문하던 도중. 단우 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단우 님의 도움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스승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엑스에겐 노하우가 생겼다. 성격이 개차반인 NPC를 상대하는 노하우 말이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칼론을 상대하면서 감을 잡았고, 리그리앙에게 심장이 꿰뚫리면서 완벽하게 깨달았다.

‘솔직한 게 최고다!’

괜히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었다간 역효과가 나는 법. 엑스의 노하우가 적중한 것일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내 유일한 제자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쳤다. 그런 녀석을 만나고도 나를 찾아왔다고? 그건 스승인 나에 대한 모독과도 같다.”

단우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스승님, 그건 온전히 제 실력이 부족하여…….”

“됐다. 각오 단단히 해라.”

“히이익…….”

단우가 잔뜩 움츠러든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화로의 은은한 불빛에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화산이 연상되는 거대한 덩치, 게다가 대장장이의 필수 덕목인 인내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산적 같은 얼굴까지! 그가 협박에 가까운 말을 뱉었다.

“분에 넘치는 귀한 재료라고 했나, 엑스? 대장장이가 반응할 수밖에 없는 말을 뱉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걸세. 어디 그 귀한 재료라는 걸 꺼내 보게.”

성격이 까칠하다곤 하나 대장장이는 대장장이인 모양.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엑스가 자신 있게 인벤토리를 열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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