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화로.
단우가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은 울리크를 올려다봤다.
“스승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울리크의 과거!
과거, 울리크는 얼굴값을 하던 사내였다. 그 말인즉, 산적 같은 얼굴에 맞게 산적 질을 했단 소리다. 시오라스의 종이학이 들썩거렸다.
-자네는 뭐가 됐든 두들겨 패는 것을 좋아했으니, 쇳덩이를 두들기는 대장장이가 자네의 천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물론, 내 권유에도 자네는 고집을 꺾지 않았지만…….
“끄윽, 됐습니다. 이제 옛이야기는 그만해 주십쇼.”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른 울리크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기분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라면 진작 자리를 피했을 터.
하지만 울리크는 아까부터 술잔을 기울여 가며, 시오라스의 말동무가 되어 주고 있었으니까.
약점 파악 완료!
음흉한 속내를 숨긴 엑스에게 문득, 울리크가 말했다.
“미안하네. 자네가 시오라스 님의 제자인 것을 알았다면 생고생을 시키진 않았을 걸세. 보다시피 타고난 성품이 좋질 않아…….”
“에이,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드시지요.”
스윽. 엑스가 노릇하게 구워진 꼬치를 내밀었다.
화산 송이버섯과 불꼬리 장어로 만든, 울리크가 환장할 만한 꼬치!
거기에다 맛과 향을 배가시킬 특제 소스까지 뿌렸다. 시오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군.
“스승님, 다음번에 만나면 꼭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네.
“허허, 고맙네.”
울리크가 멋쩍게 웃으며 꼬치를 받아들었다.
꼴깍! 목울대가 꿀렁이고 이내, 꼬치를 베어 문 울리크의 동공이 튀어나올 것처럼 확장됐다.
“……맛있어! 내 평생 이런 맛은 처음이군!”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엑스가 빙그레 웃었다. 뜨거운 화산에서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반가운 재회는 울리크의 생활 패턴마저 바꿀 정도로 즐거웠던 모양.
시오라스가 먼저 운을 뗐다.
-그럼 잘 부탁하네, 울리크. 엑스, 조만간 또 연락하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시오라스 님.”
“들어가세요, 스승님!”
“헤헤, 뭐하시는 분일까?”
이내, 종이학이 하늘을 향해 앙증맞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단우는 그 모습이 귀여운 모양인지 실실 미소를 흘렸다. 울리크가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괜찮네. 주인인 내가 치우는 게 맞는 일이지.”
“아닙니다. 금 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죠.”
시오라스의 인맥으로 도움을 받게 됐지만, 결국 장비를 만드는 건 울리크다.
그에게 성의를 보이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뛰어난 명품을 만들어주지 않겠는가? 울리크가 엑스의 아부에 피식 웃곤 물었다.
“그래, 그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 봐야겠지. 내 생각엔 암철을 대량으로 가져온 것으로 보아, 자네는 순수한 암철 장비를 만들 생각인 것 같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순수한 암철로 만든 투구, 갑옷, 신발. 그리고 방패가 필요합니다.”
“투구, 갑옷, 신발. 그리고 방패라…… 암철이 부족할 일은 없겠군.”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울리크. 까칠한 턱수염을 만지며 장비를 구상하던 울리크가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커다란 맹수의 이빨과 가죽은 어디에 쓸 생각인가?”
학살자의 송곳니와 만년 바다뱀 가죽.
사실 엑스도 그 둘을 어디에 활용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공격력을 퍼센트로 올려주는 학살자의 송곳니는 어떤 장비에 부착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만년 바다뱀 가죽은 다르다.
‘원래는 팔려고 했던 건데…….’
마나 소모량을 줄여 주는 만년 바다뱀 가죽.
엑스가 습득했을 당시엔 마나 소모량이 없다시피 했었다.
때문에 비싼 값에 경매장에 팔아넘기려고 했었고. 하지만 춤추는 줄기에 숙련도와 활용도가 상승한 것은 물론, 해신의 심판이라는 대형마법도 배웠다.
지금이라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가지 재료 전부 활용하고 싶지만…… 제작 쪽으론 감각이 없어서 무엇을 만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울리크 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무려 시오라스가 공언한 인간계 최고의 대장장이 아닌가? 엑스의 부탁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그 말이 자존심 센 울리크에겐 극찬과도 같았으리라.
울리크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장비 제작!
이젠 완성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
깡깡!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웬일로 온화한 울리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구나.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울리크는 단우와 함께 엑스의 암철 장비를 만드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단우는 울리크를 돕는 보조 역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단우의 숙련도는 눈에 띄게 폭등하고 있었다.
‘과연, 최고로 손꼽히는 광물이라는 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
단우는 감격하면서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고, 엑스의 장비였다. 단우는 스승님과 힘을 합쳐 엑스에게 둘도 없는 명품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시각, 엑스는 나무를 타고 있었다.
‘이런 곳에다 알을 낳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무한대에 가까운 거대 화산의 식생들! 엑스에게 화산은 보물섬이나 다름없었다. 과거 원시림에서의 아쉬움을 제대로 푸는 엑스였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알들, 불꽃풀새의 알이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
불꽃풀새의 귀여운 얼굴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새로운 식재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꼭대기에서 엑스가 숨을 돌렸다.
“어디 보자, 저쪽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곳이고…… 저쪽도 다를 바 없지.”
엑스는 장비가 완성될 때까지 화산 주변에서 사냥할 생각이었다. 거대 화산은 고 레벨 유저들을 위한 사냥터로 인기가 많았다.
대다수의 사냥터들은 이미 거대 길드의 유저들로, 일반 유저들로 가득 들어찬 상태.
‘뭐, 경험치를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해 엑스에게 레벨은 딱히 의미가 없었다. 의미하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유저들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소리.
그도 그럴게 엑스에겐 압도적인 스텟이 있었으니까!
다른 유저들은 레벨 업마다 주어지는 보너스 스텟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엑스는 뭐든 입에다 넣고 보면 스텟이 상승한다.
“새로운 식재료를 구하는데 비중을 둬야겠군.”
엑스에겐 사냥과 다를 것 없는 식재료 구하기!
때문에 화산에서는 레벨 업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기로 결심한 엑스였다.
슈슉! 엑스가 화산을 안방마냥 휘젓고 다녔다.
‘오오, 독 때문에 살짝 쏘긴 하는데 맛있잖아?’
그런 엑스가 한창 독 열매를 음미하고 있을 때쯤.
툭. 발치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발밑을 확인한 엑스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건?”
스물스물. 움직이며 발목을 감아오는 이파리!
끝부분에 달린 붉은 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몬스터인가 싶었다.
하지만 줄기를 발로 툭툭 건드려 봐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이파리를 감아올 뿐이었다.
“……꽃인가?”
엑스가 쪼그려 앉아 이파리를 살폈다. 화산에 피는 꽃치곤 수수한 녀석이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같았다. 하지만 수많은 식재료를 거쳐 온 엑스의 감은 매서웠다.
‘보통 꽃이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녀석이 묻힌 땅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기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천상의 요리로 증가한 화염 속성 친화력 덕분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엑스는 곧바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
얼마 땅을 파지도 않았는데, 뭔가 손끝에 닿아왔다. 크고 굵다. 범상치 않은 촉감에 엑스가 더욱 의욕적으로 땅을 파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건, 농구공 크기의 거대한 뿌리!
“……설마?”
문득, 단우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스승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일단, 스승님은 화산 송이버섯을 굉장히 즐겨 드셔요. 그리고 가끔씩 불꼬리 장어를 잡으러 호수로 가시고…… 정말 기분이 좋으실 땐 상자 속에 숨겨두신 화산 더덕주를 드세요! 화산 더덕주를 마신 다음날엔 밤새도록 제련을 하실 정도로 힘이 넘치시죠.
화산 더덕!
드넓은 화산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산삼과도 같은 녀석이다.
엑스는 어젯밤, 울리크의 손에 들린 커다란 병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똑같다.’
그 병 속에 담겨 있던 화산 더덕과 지금 발견한 뿌리의 생김새가 똑같았다.
심지어는 줄기 끝에 달린 꽃까지 말이다. 엑스는 뿌리의 정보를 확인했다.
“……화산 더덕.”
그것도 100년 묵은 화산 더덕! 크기로 보나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나, 울리크가 애지중지하는 것보다 상등품 같았다. 엑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거 기가 막힌 뇌물을 발견했구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줄 뇌물!
화산 더덕주를 마신 다음 날에는 밤새도록 제련을 한다는 울리크다.
그렇다면 매일 더덕주를 마시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떻게 되긴 내 장비가 빨리 만들어지겠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엑스가 곧바로 화산 더덕주 제조에 들어갔다.
*
“흐흐, 느낌이 온다! 이건 반드시 걸작이라고!”
걸걸한 울리크의 목소리.
울리크는 음주 제련에 한창이었다. 엑스가 담근 화산 더덕주! 풋풋하지만 100년 묵은 화산 더덕의 힘 덕분일까? 몸이 지치지를 않았다.
“저, 저렇게 신난 스승님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요? 어쨌거나 좋아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수제자인 단우도 처음 보는 울리크의 모습!
엑스는 화산 더덕을 손질하며 대꾸했다. 화산 더덕의 크기가 워낙 컸기에 웬만한 병엔 들어가지도 않아, 일정 부분을 잘라냈다.
엑스는 그 잘라 낸 부분을 손질하고 있었다. 일부라고는 해도 양이 상당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인 효과 또한 뛰어났다.
‘레어 등급의 식재료였으니까.’
화산 더덕은 생으로 먹는 것만으로도 최대 생명력이 1천 포인트, 힘이 30포인트나 증가할 정도로 뛰어난 효과가 있었다. 울리크가 엑스 쪽을 바라보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귀한 술 고맙네, 엑스! 반드시 보답하겠네.”
물론, 뇌물로서의 효과도 기가 막혔다.
울리크는 장비가 완성되려면 보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런 속도라면 일주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엑스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장비가 완성되면 바로 망각의 사막으로 출발해야지.’
고대 왕국 연계 퀘스트!
정보를 캐내기 위해선, 망각의 사막에서 다른 존재의 본거지로 진입해야 했다.
그 본거지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장비가 완성되기 전, 미뤄 둔 일들을 처리해야 되겠군.’
고대 왕국 퀘스트가 시작되면 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으리라.
덕분에 엑스는 장비가 완성되기 전, 미뤄 둔 현실의 일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민석호 전무님이라고 했지?’
매일 같이 러브콜인지, 팬레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쪽지를 보내던 민석호!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엑스가 애청자인 민석호와 잡은 약속을 잊을 리 없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