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이 바보 같은 놈! 여신님의 얼굴을 코앞에 두고도 잠만 자고 있었다니. 달라스가 억울한 표정으로 울분을 토해 냈다.
“뭔가 억울합니다. 당사자인 저만 못 보다뇨.”
“꿈에서 비슷한 걸 봤다면서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꿈이랑 현실은 다르잖아요!”
“뀨웃웃.”
세상 사람들 봐라뀨, 성직자가 여자를 밝힌다뀨.
용용이가 응징하듯 달라스의 옆구리를 꼬리로 간지럽혔다. 자지러 듯이 몸을 비트는 달라스를 뒤로 한 채, 엑스는 요리에 한창이었다.
‘흠, 어떤 게 좋으려나.’
말이 이틀이지, 서리 폭풍 절벽의 추위는 한순간도 버티기 힘들다. 달라스는 그런 추위를 견디며 이틀 동안 제사에 매진했다. 만신창이가 된 육체의 피로를 풀어 줄 음식이 필요한 상태.
‘만년 산호섬 야자수가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었고.’
먹어 온 식재료가 워낙 많고, 쌓아 둔 식재료도 많아 고민이 길어졌다. 게다가 난생처음 동료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니, 엑스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엑스가 결정을 내렸다.
‘뭐, 이럴 때 쓰려고 아껴 둔 거니까.’
엑스는 만년 산호수가 담긴 호리병을 꺼냈다. 몸의 보신을 넘어, 성장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의 비약! 엑스는 아껴 뒀던 만년 산호수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 생각이었다.
“흐끅, 엑스 님. 용용이 원래 이렇게 장난이 심해요?”
“그렇진 않은데, 달라스 님이 유독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뀨웃뀨웃.”
“이건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절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용용이에게 붙잡혀 다시금 비명을 지르는 달라스!
스스스.
엑스는 피식 웃곤 천상의 요리를 사용했다. 미식왕의 그림자가 어느때처럼 엑스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째 뭔가 달라진 것 같다?’
한데, 그림자의 움직임이 평소와 달랐다. 여태까지 엑스가 만들어 낸 천상의 요리는 실용적인 면이 강했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이지만, 맛은 기가 막힌.
하지만 지금 미식왕의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접시 위를 수놓은 화려한 플레이팅까지!
엑스가 흠칫하기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요리가 완성됐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아름답게 장식된 천상의 요리에선 광채가 흐르는 것 같았다.
과정이 어쨌거나, 포만도가 바닥을 기고 있을 달라스를 위한 음식이다. 접시를 집어 든 엑스가 까딱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한하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것 같은데.’
처음으로 동료를 위해 만든 천상의 요리라 그런가, 과정은 물론 결과물부터 달랐다. 아무래도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엑스가 완성된 요리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내, 엑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드러운 야자 연어 스테이크 (★★★)
뛰어난 솜씨로 조리한 연어 스테이크.
만년 산호수의 기운이 촉촉이 스며들었다.
특수 효과 : ?
“사, 삼성 요리?!”
눈앞에 그토록 만들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삼성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
상기된 얼굴로 접시를 바라보던 엑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나?’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동료를 위해 요리를 한 순간, 천상의 요리가 발전한 것이다. 엑스가 그 점을 놓칠 리 없었다.
삼성 요리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허겁지겁, 연어 스테이크를 먹던 달라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띠로링!
육즙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알림이 울렸으니까.
[천상의 맛이 느껴집니다!]
[만년 산호수의 효과가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체력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스테미너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이 대폭 상승합니다!]
“뭐지, 먹는 것만으로……?!”
“달라스 님, 혹시 알림 같은 게 뜨신 겁니까?”
“네? 네, 알림이 떴어요. 뭐죠 대체? 어떻게 요리가 이런 효과를?”
달라스는 놀란 토끼 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걸려 있던 각종 상태 이상이 사라지고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이런 건 효과를 가진 요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달라스의 물음에도, 엑스는 침묵하고 머리를 굴렸다. 일단, 삼성 요리는 타인에게도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여태까지의 미비한 효과와 달리, 알림으로 떠오를 정도의 효과가 말이다.
‘남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을 때, 삼성 요리로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효과였지. 남은 건 하나다.’
천상의 미각을 가진 엑스가 삼성 요리를 먹었을 때의 효과! 엑스는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굽고 있던 고기도 잠시 잊고, 포크를 들고 삼성 요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엑스 님도 드셔 봐야죠.”
“쩝쩝.”
입을 움직이기 무섭게 알림이 울린다.
띠로링!
[천상의 미각이 ‘삼성 요리, 부드러운 야자 연어 스테이크’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적절하게 조화된 야자와 연어, 그리고 만년 산호수의 풍미가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특수 패시브 스킬 ‘만년살이 연어’가 발동됩니다!]
‘……특수 패시브 스킬!’
이성 요리와 다르게 효과는 간단했다. 하지만 한 줄의 알림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24시간이라곤 해도, 패시브 스킬이라니!
린 온라인에서도, 페이트에서도. 패시브 스킬은 뭐가 됐든지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이득이었다. 사용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으면서도, 효과는 언제나 유지되니까 말이다.
‘크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
하지만 엑스는 최대한 대담하게 마음을 먹고, 스킬 창을 확인했다.
만년살이 연어 (Master) : 만년을 살 정도로 활기찬 연어의 기세. 그 어떤 거친 환경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게 됩니다.
육체가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합니다. 또한 체력이 30퍼센트 이하일 때 단 한 번, 최후의 발악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최후의 발악 : 체력과 마나를 포함한 모든 스텟이 최대로 상승합니다.)
“……흐흐.”
저절로 실소가 흘러나온다!
삼성 요리, 이런 효과가 있다니 완전 사기가 아닌가? 삼성 요리는 이성 요리의 효과를 상회하는 효과도 모자라, 추가로 하위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만년살이 연어의 하위 스킬, 최후의 발악!
들어간 재료가 비약, 만년 산호수라 그런지는 몰라도 효과가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체력과 마나를 전부 회복시켜 주는 건 물론, 스텟까지 최대로 복구시켜 준다. 그 말은 디버프로 떨어진 스텟마저도 원상태로 돌려준다는 소리였으니까!
엑스가 연신 웃음을 흘리자, 달라스가 물어 왔다.
“역시, 엑스 님도 이런 효과가 있는 요리는 처음 드셔 보시는 거죠? 어떤 좋은 재료가 이런 효과를 냈는지는 몰라도, 저 진짜 오늘 날 잡은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이런 호사스러운 요리에, 사기적인 룬스톤의 축복에, 고난이도 퀘스트 클리어까지! 자신의 페이트 인생에서 이토록 잘 풀린 날도 없는 것 같았다.
달라스의 말에 엑스가 여전히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흐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요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 엑스의 머릿속엔 벌써부터 무궁무진한 레시피가 그려지고 있었다.
레시피에서 파생될 다양한 효과가 있는 스킬의 활용법은 덤이었다. 행복한 상상에 빠졌던 엑스가 문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자축 파티는 이제 시작된 참. 게다가 효과를 알아가야 할 새로운 삼성 요리 레시피도 넘쳐 난다. 한 마디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할 때! 엑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칼을 붙잡았다.
*
“그래도, 며칠 정도는 괜찮은데요.”
“안 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명백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전 엑스 님의 발목을 붙잡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과거 첫 만남 때보다 수준 차이가 훨씬 심해졌다. 달라스는 룬스톤 정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뼛속 깊이 깨닫게 됐다.
상상치도 못한 난이도의 퀘스트, 어찌어찌 클리어는 했지만, 엑스가 아니었다면 실패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러니 엑스의 파티 사냥 권유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엔 반드시 엑스 님과 같이 파티 사냥을 하고 말 겁니다! 적어도 발목을 잡진 않을 정도. 아니, 뒤에서 제대로 보조할 정도는 돼서 말입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뀨웃뀨웃.”
기대하고 있겠다뀨. 열심히 해 봐라뀨.
용용이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인사했다. 달라스를 집요하게 괴롭히더니, 꽤나 정든 모양. 달라스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용용이도 다음에 보자.”
“네, 편하게 연락하세요.”
“뀨웃!”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엑스 님!”
“저야말로.”
달라스가 로그아웃을 하고 홀로 남은 엑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축 파티에서 폭식했던 덕분에 삼성 요리의 효과가 중첩되어 유지되는 상태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빙판 사냥을 가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다른 존재의 기운이 사라진 지금, 자울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엑스는 계단을 올라가 자울의 왕좌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결국, 해냈군. 엑스!”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폐하.”
다른 존재의 지배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자울! 그는 엑스가 서리 폭풍 절벽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던 유령처럼, 투명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자울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보이는가? 가시지 않을 것 같던 영겁의 추위가 점차 사그라지고 있네. 저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날이 올 줄이야.”
자울의 말대로 서리 폭풍 절벽, 크세르니스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곳곳에 자리한 얼음들도 서서히 녹아내릴 것이다. 지하엔 룬스톤도 있으니, 생각보다 빨리 원상태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
얼음의 정령이 엑스의 곁으로 날아와 정중히 인사했다.
“자울 님에게 평안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엑스 님.”
“나도 다시 한 번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겠네.”
“아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뀨우? 뀨웃뀨웃!”
엑스가 마주 서서 고개를 숙이자 용용이도 엑스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상호 간의 인사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울이 해가 비치는 왕궁을 둘러보며 거닐었다.
‘그래, 여러 가지 생각이 많겠지.’
자울은 고대 왕국의 인물,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궁전을 거니는 건 오랜만인 게 당연했다. 한 바퀴, 궁전을 둘러본 자울이 엑스에게 웃으며 말했다.
“옛날이라면 금은보화가 담긴 마차를 수십 개는 상으로 내렸을 텐데, 내가 그대에게 내어 줄 것은 만신창이가 된 크세르니스밖에 없군. 미안하네, 엑스.”
“그런 말씀 마십쇼, 폐하.”
“크세르니스 위로 떠오르는 해까지 보았으니, 더 이상 미련은 없네. 과거의 망령이 언제까지고 현세를 떠돌아다닐 수도 없겠지. 나를 구원해 줘서 고맙네, 엑스.”
미련을 버린 유령은 완전히 소멸한다.
다시금 서리 폭풍 절벽을 찾았을 때, 보이지 않던 중년 사내와 떠돌이 개의 유령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자울은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얼음의 정령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쉽게 슬픔을 감추진 못했다.
“자울 님…….”
“슬퍼 마라, 너와 이야기할 수 있어 즐거웠다.”
“흑흑.”
감동적인 이별의 순간!
하지만 이런 감동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인물, 엑스가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스럭부스럭, 인벤토리를 뒤지던 엑스가 입을 열었다.
“저기, 한창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무슨 일인가, 엑스?”
“폐하께서 지난번에 틀림없이 말씀하셨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저를 도와주시겠다고요. 그리고 지금은 제게 크세르니스를 내어주신다고 하셨고요?”
“그렇네만?”
“그렇다면, 이제부턴 폐하께서 저 좀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엑스가 인벤토리에서 꺼내 든 건, 다름 아닌 잊혀진 옥새!
크세르니스가 다른 존재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 지금, 영주의 꿈을 이루기에 이보다 좋은 타이밍도 없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