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송월은…… 아르바 대륙으로 돌아왔군.”
재앙, 지옥 섬을 클리어한 송월은 아르바 대륙으로 복귀했다.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지옥 섬은 랭킹 1위 송월도 고전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월과 파죽지세는 해냈고, 끝내주는 보상을 쟁취했다.
현재 송월의 레벨은 무려 503.
2위인 카이무스를 수십 계단이나 앞지른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지옥 섬의 보스 몬스터, 지옥의 경비병을 쓰러트리면서 뛰어난 아이템을 얻었다.
그런 송월이 대륙으로 돌아온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륙의 패권이 요동칠 것이다.
“카이무스는 기어코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고.”
아르바의 대장군이 된 카이무스!
여태껏 세간에 공개된 업적 중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이었다.
카이무스의 타고난 위기관리 능력과 지도력, 그리고 출중한 개인 기량이 합쳐져 이뤄 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더 무서운 건 카이무스는 혼자가 아니란 점이었다.
오랜 시간 몸을 담아온 거대 길드, 워 머신과 대장군으로 올라서면서 자신의 휘하로 부릴 수 있게 된 아르바의 정예 병사들까지! 본격적으로 그의 진가가 발휘될 판이 만들어진 셈.
“후후, 혼밥 동맹이라. 확실히 맺힌 게 많은 모양이야?”
또 혼밥 동맹을 빼놓으면 섭했다.
엑스의 활약을 계기로 등장한 혼밥 동맹은 물 밑에서, 페이트에 뿌리내린 힘의 구조를 흔들고 있었다.
공용 던전의 등장, 길드 소유 사냥터의 자유 개방 등등. 지난주만 해도 혼밥 동맹으로 추측되는 세력이 해낸 일이 넘쳐난다.
“물론, 새롭게 페이트 월드에 뛰어든 유저들도 있지.”
이제 막 페이트를 시작한 유저들도 상당수였다. 확실히 늦은 감이 있지만, 시작이 늦었다고 무조건 불리한 건 아니었다.
먼저 페이트에 몸을 던진 유저들이 닦아 놓은 길은 다양했으니까.
“오크를 비롯한 이종족 스타팅도 인기가 많아졌군.”
종족은 물론, 시작 마을까지!
유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덕분에 후발 주자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선별된 정보를 통해 빠른 속도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띠릭!
거대한 모니터에 페이트 월드가 떠올랐다. 그 옆, 보다 작은 모니터에선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이런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명, 페이트의 개발자인 슈베르트 박사밖에 없었다.
슈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 자네도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고 마음을 먹었군? 대충 추려 봐도 자네에게 쏟아질 견제가 엄청나겠는데? 물론, 자네라면 이겨내리라고 믿고 있네만.”
웃음을 흘린 슈베르트는 한동안 모니터 속의 페이트 월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하나, 이런 격동하는 세상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
살짝, 웃음기를 띠던 이제까지와 달리 슈베르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슈베르트의 차가운 시선이 향한 곳엔 다양한 영지들의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유저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아직까진 NPC의 소유지만 실질적으론 유저들의 영향력이 막대한 영지들.
영주로 올라선 유저들이 소극적으로 활동하는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막대한 양의 골드가 쏟아진다. 당연하게도 영주의 자리를 노리는 유저들도 넘쳐난다.
그러니 랭커나 월드의 패권 같은, 더 큰 욕심을 부렸다간 소유하고 있는 영지를 빼앗길 가능성이 컸다.
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영지가 벌어다 주는 골드가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런 정체 현상은 반갑지 않은걸.”
불가능하다 여겨진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 낸 천재.
슈베르트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다.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수시로 안경테를 매만졌다. 계산에 열중했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 중 하나였다.
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계산이 끝난 듯 슈베르트의 입꼬리가 위를 향했다.
“이래서야, 발표를 보다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군.”
*
파트란 숲 어딘가, 깊숙한 곳.
평소라면 더없이 고요할 이곳에, 쌔애애액!! 느닷없이 강풍이 불었다.
레벨 320, 숲의 악동이라 불리는 풀잎 동자들이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뭐, 제대로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녀석들은 이미 회색빛으로 물든 상태!
‘예상대로 가뿐하구나.’
빙글, 엑스가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그저 나그네의 검을 허공에 휘둘렀을 뿐인데, 검의 풍압만으로 대여섯 마리의 풀잎 동자들을 쓰러트렸다.
압도적인 스텟과 기본기 숙련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엑스 특유의 쾌속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이 있었다. 채팅창이 폭주했다.
-무슨 B급 액션영화 보는 것 같네ㅋㅋ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라니!!
-이거 주작 아님? 미리 때려 놓고 연기하는 거 아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ㅋㅋ 몹들 방금까지 팔팔하게 돌아다니는 거 못 봤음?ㅋㅋ
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시청자들.
엑스가 수정 구체를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너무 쉬운 사냥터에 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쉬우니, 열심히 사냥해 보겠습니다. 물론, 이따가 먹방도 할 겁니다!”
엑스는 약속한 대로 사냥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시청자들에게 전투 모습을 공개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방송 중에 언제, 어디서, 자신의 버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런 전력 누출이 쌓이고 쌓이면 틈을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방송을 켰을 땐 적당히 조절하면서.’
때문에 엑스는 최대한 간결하게 움직이고,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만 때려잡고 있었다.
요령껏 사냥한다고 해도 무려 320레벨의 몬스터들이다. 사냥 속도가 뒷받침되니 오르는 경험치가 무시무시했다.
띠로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몇 시간 사냥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쉴 새 없이 알림이 울린다. 레벨 업을 알리는 알림뿐만 아니라, 골드 선물을 알리는 알림도 끊이질 않는다.
“아이고, 우리 다운짱짱 님께서 조금 쉬면서 하라고 30골드 선물을! 또 우리 철수전사 님께서 오늘 먹방 쉬고 사냥만 하면 안 되냐고 20골드를! 골드는 감사히 받겠지만, 먹방을 좋아하시는 시청자분들도 계셔서 그건 조금 힘들 것 같네요.”
분명 사냥을 하면서 멘트를 뱉고 있는데, 숨이 차거나 지친 기색이 없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사냥 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빨라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놀라면서도, 엑스의 시원시원한 학살에 완전히 매료됐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몬스터와 함께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으니까.
“자 그럼,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하고.”
대다수의 메이지 스트리머들의 콘텐츠는 레이드와 사냥으로 제한되었다. 보다시피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싶은 시청자들이 대다수였으니까.
그러니 사냥이 끝나면 시청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게 당연했다.
“슬슬 먹어 볼까요?”
하지만 엑스는 먹방에서부터 시청자를 쌓아온 스트리머!
사냥이 끝났음에도 엑스의 시청자들은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된 콘텐츠인 먹방이 시작되자,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ㅋㅋ하루 종일 이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자너
-엑스 님 먹방할 때마다 먹으려고 육뚜기 컵라면 박스로 사 놓음ㅋㅋㅋㅋ 말 나온 김에 지금 물 올려야지
-ㄹㅇ? 개부럽 우리 집 근처는 육뚜기 라면 품절임ㅋㅋ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지는 채팅이 아닐 수 없었다. 육뚜기의 매출이 오르면 오를수록, 인센티브 계약을 맺은 자신에게도 떨어질 몫이 많아질 테니까. 엑스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 완전 제 방 전문가가 되신 분들도 있네요.”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 음식을 만들어갔다. 파트란 숲은 넓은 면적에 걸맞은 다양한 생물들을 품고 있었다.
탁탁!
엑스가 도마에 올린 재료들을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이런 재료를 잘게 다질수록 고유의 향을 더 짙게 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 일부는 잘게 다져서 넣고, 나머지는 큼지막하게 썰어서 넣겠습니다!”
-헐ㅋㅋ 완전 쉐프인 줄?ㅋㅋ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욬ㅋㅋㅋ
-헐 나도 모르는 걸 알고 계시네ㅠㅠ 울 아들 눈 감아ㅠ
“경험으로 쌓인 야매 상식입니다. 야매 상식.”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요리가 완성됐다. 방송을 하지 않는 평소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주워 먹는 엑스였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런 건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
“잘 먹겠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허기진 상태로 식사할 수 있었다.
하나둘, 엑스의 옆에 빈 접시들이 쌓이고 마침내 길고 길었던 방송도 끝마칠 시간이 됐다.
“와, 아직도 230만이 넘는 분들이 시청해 주고 계시네요! 감동입니다. 뭐 잘난 것도 없는 방송인데, 다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진 쉼 없이 방송이다. 시청자가 줄어들 법도 했지만, 시청자 수가 200만 밑으로 떨어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시청자들도 간만인 긴 방송에 만족한 것 같았다.
-오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ㅋㅋ
-역시 신뢰의 엑스ㅋㅋ 약속을 너무 잘 지키시네ㅋㅋ
-ㄹㅇ 매일매일 이렇게 방송하는 건 무리라도 가끔씩은 이렇게 길게 해 주셨음 좋겠다ㅋㅋㅋㅋ
“다들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방송 종료.
끝인사를 마친 엑스는 수정 구체를 소환 해체했다.
찌르르. 찌르르.
주위가 고요해지자 숲속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엑스가 다시금 식칼을 꺼내 들었다.
“이제부턴 3부로 가 볼까?”
시청자가 없이 진행되는 3번째 콘텐츠!
엑스는 파트란 숲을 축지법으로 내달리며 정보를 수집했다. 워낙 넓어 모든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했지만, 얼추 중요 포인트들을 파악해 뒀었다.
현재 엑스가 자리 잡은 곳도 유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숙한 곳에 있는 명당자리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만족할 엑스가 아니었다.
“천상의 요리.”
삼성으로 올라선 천상의 요리!
이성 요리의 효과를 상회하는 효과가 있는 건 물론, 부가적으로 하위 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 줬다.
엑스는 삼성 천상의 요리를 활용해, 미리 파악해 둔 보다 깊숙하고 위험한 필드로 진입할 생각이었다.
[천상의 미각이 ‘삼성 요리, 위험한 버섯 찹스테이크’에 숨겨진 맛을 찾아냈습니다!]
[다양한 고기와 다양한 채소, 그리고 치명적인 맹독의 기운이 몸에 흡수됩니다!]
[24시간 동안 특수 패시브 스킬 ‘이독치독’이 발동됩니다!]
화려한 맹독 버섯을 활용한 천상의 요리였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이 따가운, 맹독을 품은 버섯으로 천상의 요리를 만든 이유? 뻔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엑스가 향할 필드는 치명적으로 위험했으니까!
“어디 보자, 이쪽으로 가면.”
파박! 축지법으로 뛰쳐나가던 엑스를 반긴 건 수많은 뼈다귀들!
주변 공기에 떠다니는 맹독에 당한 시체들이었다. 엑스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음, 여전히 공기 좋고!”
맹독도 가뿐하게 무시해 버리는 천상의 요리 효과!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필드에 진입한 엑스는 주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은 녀석인가?’
아니, 아무리 덩치가 작더라도 흔적은 남는 법. 안 그래도 짙은 독기 때문에 축축해진 바닥이다. 발자국이 이보다 잘 남을 환경은 없을 터. 엑스가 결론을 내렸다.
“다른 몬스터들도 바보는 아닐 텐데…… 그렇다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식물형 몬스터겠구나?”
쌔애애액!!
치명적인 독기의 주인공은 정답을 외친 엑스를 격렬하게 환영했다. 바로 옆, 나무 위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집요하게 엑스를 따라붙었다.
슉슉!
엑스는 사뿐하게 공격을 피하며 견적을 냈다.
‘고 레벨 몬스터가 가득한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면 최소 370레벨은 넘는 네임드 몬스터라는 건데…… 뭐, 나쁘지 않네.’
400레벨에 가까운 네임드 몬스터!
방송 때문에 아껴 뒀던 본 실력을 끌어내기에 이보다 적합한 상대도 없었다.
철컥.
엑스가 나그네의 검과 암철 방패를 꺼내 들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에게 말했다.
“여유가 있었으면 같은 줄기로 조금 놀아 줬을 텐데,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1분 1초를 알차게 써야 될 상황이거든!”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