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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155화 (155/391)

155화

“……실화인가, 이거?”

몇 번이고 다시 봐도 떠오른 정보가 바뀔 일은 없었다.

1,200레벨, 전설의 괴수 크라켄을 가뿐하게 앞지르는 수치!

이내 레비타스카르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네임드 몬스터 ‘레비타스카르’가 출현했습니다!]

[레비타스카르가 날씨를 변화시킵니다!]

[낙뢰가 쏟아집니다!]

엑스가 중얼거렸다.

“이 동네 몹들은 죄다 블록버스터급이야.”

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하늘이 번쩍거렸다.

꽈앙! 우렁찬 천둥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레비타스카르, 녀석은 어류에 가까운 형체를 띠고 있었다.

‘아니, 저걸 물고기라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머리는 어류가 확실했다.

하지만 몸을 뒤덮고 있는 건 비늘이 아니라 굉장히 질겨 보이는 가죽. 짧은 팔과 다리가 달려 있는 것도 모자라서 옆구리엔 지느러미 대신 날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엑스가 혀를 내둘렀다.

“끔찍한 혼종이구만.”

도대체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녀석이다!

하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레비타스카르는 보통이 아니었다.

엑스의 패기로도 상쇄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으니까.

‘어디 보자, 레벨이 배 이상 차이 나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건 엑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단순 계산으로 따졌을 때, 엑스가 보유한 스텟은 4천 레벨을 돌파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치였다.

스윽, 엑스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천천히 기운을 빼 볼까?’

크라켄 때와는 달리 함선은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는 상태. 레비타스카르도 섣불리 함선에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탐색의 시간, 엑스는 원거리 공격으로 녀석을 견제할 생각이었다.

그때 뛰쳐나온 전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라이, 저 귀찮은 자식 때문에.”

“크하하, 항해가 다 이런 것 아니겠는가?”

“빌어먹을…… 내기엔 영 소질이 없단 말이지.”

내기라니, 이런 상황에서 농담 따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엑스가 황당해하기도 잠시, 전사 중에서도 짜증이 잔뜩 난 이들이 갑판 아래 계단으로 향했다.

“가뜩이나 험난한 세상의 끝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녀석들은 머리를 쓰는 녀석들이지. 왜 그런지 알 것 같나?”

다가온 브욜라프의 물음에 엑스가 대답했다.

“그야 까다로우니까요. 아무리 바다에 익숙하다고 해도, 배를 타고 있을 땐 이런저런 제약이 많잖아요. 이렇게, 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닿는 것도 아니고.”

브욜라프가 미소를 흘렸다.

“정답이네. 영리한 녀석들은 조급해하지 않아. 관망하며 기회를 포착하고, 자신의 사정거리에서 적을 유린한다. 말보다 직접 보는 게 와 닿겠지.”

브욜라프의 시선이 레비타스카르에게 옮겨 갔다. 엑스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레비타스카르의 거대한 입에서 풍겨 나오는 짙은 연기가 보였다.

“어째, 저거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데요?”

스르르르.

연기는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물안개에 섞여 천천히 함선 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브욜라프의 말대로라면 레비타스카르는 머리를 쓸 줄 아는 녀석이었다.

브욜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지.”

하지만 그의 얼굴엔 투쟁심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여기선 흐름에 저항할 필요가 있네.”

“?”

“뱃머리를 돌려라!”

끼이이이익!

함선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엑스는 깨달았다. 항해 중에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해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함선은 노를 젓지 않아도 해류를 따라, 목적지인 세상의 끝으로 나아갔었다.

‘……그러니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는 거였잖아.’

레비타스카르가 적절한 사정거리를 유지할 수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은 세상의 끝 해류에 더없이 익숙할 터. 해류를 탄 함선이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노를 저어라!!”

그러니까 여기선 인간의 힘으로 해류에 저항할 필요가 있었다.

내기가 무엇인지, 내기에 진 전사들의 표정이 왜 그렇게 울상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나라도 시무룩해지겠다.’

엄청난 강적!

안 그래도 호전적인 쿠룰라의 전사들이다. 적을 앞에 두고 노를 저어야 한다면 신경질이 나는 게 당연하리라.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전속력으로 전진!!”

쏴아아아아!

브욜라프의 외침에 함선이 파도를 뚫고 레비타스카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과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임기응변이 장난이 아니었다.

‘언제나 피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니까.’

쿠룰라의 전사들이 갑자기 듬직해 보였다.

레비타스카르는 급격하게 방향을 바꾼 함선 탓에 연기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푸슈슈슈.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녀석은 다시금 거리를 벌리기 위해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쩍!

문득, 엑스가 눈을 찡그렸다.

‘괜히 날씨를 변화시킨 게 아니라는 건가?’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주위가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지니 녀석을 눈으로 좇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함선은 여전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었으니!

“살짝 오른쪽으로. 됐어요, 그대로 가면 돼요!”

조타수 옆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훈리켈 덕분이었다.

훈리켈은 초인적인 시력으로 조타수와 합을 맞춰 함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브욜라프가 덧붙였다.

“10년 전, 피의 항해 때도 훈리켈은 우리들의 눈이 되어 줬다네. 하지만 인간은 간사한 망각의 동물이라 과거의 은혜는 원한보다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지.”

그저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훈리켈은 전사들 사이에서 겁쟁이라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엑스는 새삼스럽게 브욜라프를 다시 봤다.

‘꽤, 섬세한 면도 있으시네.’

그런 면도 있으니까, 자존심 센 쿠룰라 전사들에게 존경을 받는 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할 때. 악에 받친 노 젓기 덕분에 레비타스카르와의 거리는 천천히 좁혀지고 있었다.

척. 브욜라프가 양손 도끼를 꺼내 들었다.

“슬슬 성질이 드러날 때가 됐군.”

레비타스카르는 함선을 날로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먹잇감이 반항을 넘어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녀석의 억눌렸던 포악한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철썩!

“날치야, 뭐야?”

엑스가 흠칫했다.

레비타스카르가 날개로 바다를 헤엄치며 방향을 급전환했다.

추격전 끝, 본격적인 육탄전이 시작된 것!

전사들이라고 충돌을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대로 돌진! 정면으로 맞서라!”

크라켄보다는 작다고 하지만, 함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커다란 녀석이다.

함선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이곳에선 브욜라프의 판단이 그 누구보다 정확할 터.

엑스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충돌하는 순간 녀석의 몸에 올라탄다.’

매직 에로우의 파괴력이 상승했다고 한들, 탄탄한 기본기와 비교할 바는 못 됐다.

녀석의 몸부림에 바다에 빠진다 해도 엑스에겐 천상의 요리가 있었다.

‘물속에서 계속 전투를 이어 나가면 돼.’

1,200레벨의 몬스터라고 해도 엑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엑스는 근거 없는 용기를 가진 이들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다.

쿠구구궁!! 함선과 레비타스카르가 부딪힘과 동시에.

“가자, 쿠룰라의 전사들이여!”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고!”

“돌격! 피로 바다를 물들여라!”

전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계획?

그것만큼 전사들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없었다.

푹! 함선에서 뛰어내린 전사들이 각자의 공격을 적중시켰다.

대롱대롱, 무기에 매달려 끈질기게 녀석에게 달라붙었다.

엑스가 경악했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저건 전투에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는 광경!

해류에 휩쓸리면 목숨도 못 건질 텐데,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전사들이었다.

타닥! 엑스가 뒤따라 함선에서 뛰어내렸다.

쑤욱! 박혔던 도끼를 뽑아낸 브욜라프가 말했다.

“상당히 놀란 표정인데?”

“아닙니다.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엑스는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전사들을 둘러봤다.

이제야 안 사실인데, 어찌 된 게 방패를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엑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거겠죠?”

브욜라프가 호탕하게 웃으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크하하, 드디어 전사의 사고방식을 깨달았군!”

엑스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여기선 흐름에 저항을 해야 한다는 말도, 이제 보니까 그냥 싸우고 싶어서 적당히 지어낸 말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기회!

‘1,200레벨짜리 몬스터를 언제 잡아 보겠냐?’

다시금 꿈틀거리는 엑스의 탐욕! 양손에 무기를 장비한 엑스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철썩! 레비타스카르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사들을 떨치기 위해 날개를 흔들고, 몸을 비틀고, 잠수를 반복했다. 하나 쿠룰라 전사들의 고집은 엑스의 매타작에도 꺾이지 않은 전적이 있었으니!

“얌전히 죽어라, 이 녀석아.”

“좋아. 더 날뛰어 봐라. 나를 죽일 기세로 말이야!”

“이건 어떠냐!”

퍽! 전사들의 사기는 레비타스카르가 반항할 때마다 도리어 상승했다.

과연 월드 최고의 전투 종족다운 용맹함.

달리던 엑스가 머리를 굴렸다.

‘바로 다음 녀석이 등장한다는 법도 없고.’

강제 로그아웃도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페이트 월드의 시간은 흐른다.

그 말인즉, 어차피 로그아웃을 당하는 마당이라면 스킬들의 쿨 타임을 생각할 필요가 없단 소리!

‘어차피 재접속할 때쯤이면 쿨 타임이 다 돌거든.’

씨익, 입꼬리를 올린 엑스가 곰 태세를 발동했다.

고오오오.

풀 템, 풀 컨디션 상태에서 사용한 곰 태세의 기세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브욜라프가 혀를 내둘렀다.

“……찬란할 정도군.”

자신이 노쇠한 별이라면 엑스는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초신성!

아군에게는 든든한 빛이 따로 없겠지만, 적에게는 뜨거운 불덩이가 따로 없으리라.

움찔! 레비타스카르도 엑스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압도적인 레벨을 자랑하는 녀석조차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황급히 180도 몸을 회전하려던 순간.

퍼버벅!!

엑스의 연격이 시작됐다.

띠로링!

[치명적인 일격!]

[치명적인 일격!]

[치명적인 일격!]

치명타가 터지는 경우는 두 가지다.

약점을 제대로 노리고 공격하거나,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데미지를 입히거나.

엑스의 경우엔 언제나 후자였고, 레비타스카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셋, 넷, 다섯, 여섯…… 너, 꽤 버틴다?”

펄럭!

애달프게 흔들리는 날개가 마치 백기를 흔드는 것 같았다. 전설의 괴수고, 압도적인 레벨을 자랑하는 네임드 몬스터고, 엑스의 매질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실로 압도적인 파괴력.

퍽퍽! 엑스의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올라타 있던 전사들이 충격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멍하니 지켜보던 군스머가 중얼거렸다.

“우리 진짜로 죽을 뻔했던 거네.”

주제도 모르게 엑스에게 까불거렸던 자신의 흑역사가 생각났다.

일렉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론 이 성질머리를 좀 죽여 보자고.”

상태 효과는 죄다 무시.

힘은 배로 증가.

곰 태세를 사용한 엑스 앞에서 이변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었다.

고통에 날뛰던 레비타스카르가 회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전투가 개시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띠로링! 시야에 무수한 알림이 쏟아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압도적인 승리!

하나 당사자인 엑스의 얼굴엔 여전히 긴장이 맴돌았다.

‘……이번엔 바로 가 볼까?’

레벨이야 알아서 어련히 올랐을 터,

무려 1,200레벨짜리 몬스터를 쓰러트렸지 않은가?

욕심쟁이 엑스는 레비타스카르가 품고 있을 아이템을 한시라도 빠르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신이시여, 1,000레벨이 넘는 몬스터는 저도 처음입니다!’

이번에도 뻔뻔하게 초심자의 행운을 요구한 엑스가 천상의 갈무리를 발동했다.

아이템들을 확인하던 엑스의 손엔 어느샌가 투박한 망치가 들려 있었다. 유니크나 전설 등급은 아니지만, 손때와 사연이 묻은 망치 같았다.

이내, 엑스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퀘, 퀘스트 아이템!”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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