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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188화 (188/391)

188화

‘내가 군대 갈 때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이별!

용용이가 라우니스와 함께 에인션트 드래곤들을 찾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막상 이별의 시간이 오니 걱정이 앞섰지만, 여기선 용용이의 친화력을 믿기로 했다. 불끈, 엑스가 굳혀진 세계수의 이파리를 손에 쥐었다.

“우리 서로 최선을 다하자, 용용아.”

“뀨우 뀨우.”

나약한 주인을 위해서 강해지겠다뀨.

다음에 만날 땐 더 발전해서!

사실 용용이의 상태는 스텟창을 통해 살필 수 있었다. 혹시라도 위급한 일이 있을 땐 알림이 울리고, 소환 해제도 가능하니 근심은 덜어도 됐다. 엑스가 마지막으로 의지를 다졌다.

‘아무리 못해도 나머지 지역들은 정리해 둬야겠지?’

엑스는 재회 때까지 드래곤의 둥지를 제외한 단절 대륙 나머지 구역을 정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성장한 용용이에게 내세울 게 있으리라.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게.”

“용용아, 형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뀻? 뀨웃!”

부비부비, 용용이가 뺨에 얼굴을 비벼왔다. 인사도 끝났으니 이젠 각자의 목표를 위해 잠시 헤어져야 할 때.

스르르르, 라우니스가 마법을 발동시키자 나뭇잎이 엑스의 몸을 휘감았다.

*

요란한 목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수제 생명력 포션 3골드에 급처분합니다! 겉모습은 살짝 그래도 효과 하나는 끝내줍니다요!”

“세 번째 사막에서 파티 사냥하실 탱커 분 구해요. 레벨은 150만 넘으시면 됩니다! 힐러만 둘이라 안전한 사냥 가능합니다!”

“모험가 여러분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여. 구경이라도 하고 가라고들.”

수많은 유저와 NPC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이런 대규모의 도시는 아르바 대륙에서도 손에 꼽는다. 눈을 뜬 엑스가 작게 탄식을 뱉었다.

“크, 못해도 1억은 되겠다야.”

월드 최대의 도시, 아르바!

유저만 해도 수천만일 테니 1억이란 수치가 과장이 아니었다. 영주로 올라선 뒤부턴 도시의 규모에 참 관심이 많이 갔다.

위장을 위한 보라색 고깔모자를 푹 눌러쓴 엑스가 혀를 내둘렀다.

‘세금을 평균치로만 걷어도 이게 얼마야 대체?’

하루에 들어오는 세금만으로 현실에 빌딩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레절레, 엑스는 떠오르는 잡념을 털어냈다. 영지도 세금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당장은 할 일이 있었다.

“어디 보자.”

고깔모자 밑에서 빛나는 엑스의 두 눈동자!

엑스는 아르바에 새겨진 마법진을 찾고 있었다.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시야에 들어온 거뭇한 문양들. 그건 건물과 건물을 길게 잇고 있었다.

‘정말 봐 달라고 광고를 하고 있군.’

함정에 걸리나 걸리지 않나, 하얀 가면 입장에선 손해를 볼 게 없었다.

걸려들면 방해가 되는 적을 국가 반역죄로 처리하면 그만이고, 걸려들지 않는다면 그대로 멸망의 낙인을 발동시키면 될 테니까.

하지만 상대를 ‘과소평가’ 했다는 게 문제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엑스가 판단을 마쳤다.

“뭐,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네.”

손가락 한 번 까딱이면 말이야.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린 엑스는 적당한 위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렸으니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까운 시간을 흐르고 있었으니까.

‘크세르니스에도 들러 봐야 하고, 울리크한테도 찾아가 봐야 하고, 단절 대륙으로 돌아선 용용이한테 뒤처지지 않게 부지런히 달려야 되고.’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니까 다른 존재도 아니고 숭배자 따위에게 발목을 잡히고 싶진 않았다.

높은 장소는 역시 성벽밖에 없으려나. 엑스가 고개를 들고 경비병들의 눈치를 살피던 그때.

“응?”

꽤나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초 마법을 배웠던 마법사 길드 건물과 그 옆 건물 사이에서 엎드린 채 뭔가에 열중인 사내, 라운즈가 보였다.

엑스가 멈춰 섰다.

‘중급 마법도 몇 개 배워 볼까?’

마법사 계열 클래스가 아니면 기초 단계 이상의 스킬을 익힐 때부터 페널티를 받는다.

소모되는 마나량은 증가하고 위력은 떨어지고 숙련도도 쉽게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마법도 마법 나름 아니겠는가?

‘텔레포트만 배워도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은데.’

어차피 혼자 다 해 먹는 것을.

엑스에겐 대규모 텔레포트 따윈 필요 없었다. 마나를 많이 소모한다고 해도 방대한 마나 통 덕분에 가볍게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엑스가 라운즈의 곁으로 다가갔다.

“!”

순간, 엑스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라운즈가 열중하며 들여다보고 있던 건 마법진, 멸망의 낙인이었으니까.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안면이 있다고 해도 의심을 늦출 수 없었다. 엑스가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히, 히익!! 저는 아무것도 안 했…… 엑스 님?!”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그럼요! 그 날 이후로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긋,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순식간에 혈색을 되찾았다.

저렇게 놀라는 걸 보면 마법진과 관련해서 뭔가를 하긴 한 모양.

라운즈의 업무실로 끌려온 엑스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후우,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죠. 물론,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만. 엑스 님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이래 봬도 입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뭘 하고 계시던 건가요?”

“사실 저는 마법진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요?”

이어지는 라운즈의 이야기는 엑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얀 가면이 마법진을 새길 때부터 라운즈는 의심하고 있었단다.

“처음엔 적들에게 감춰야 할 치부를 너무 드러낸 것 아닌가, 혹시라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 의심은 마법진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더욱 심화 됐단다.

평범한 마법사인 라운즈가 멸망의 낙인을 알아볼 수 있진 않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마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목소리를 낮춘 라운즈가 은밀하게 말했다.

“제가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은 동방의 주술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구조가 방어막 전개를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을 위한 마법진이었나요?”

“공간 이동.”

“……!”

“그 지역 자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상급 마법진이었죠.”

숭배자가 멸망의 낙인 속에 숨겨 둔 또 하나의 마법진이 공간이동을 위한 것이란다.

대체 왜? 솔직히 말해 짐작이 가지 않았다. 라운즈도 답답한 모양이었다.

“적들이 습격해 오면 아르바를 통째로 다른 지역으로 워프시키겠다는 걸까, 추측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대마법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고 하기엔 마법진의 구조도 그저 건물을 옮길 정도로 단순했구요.”

“그럴 계획이었으면 숨길 필요도 없었겠죠.”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순간 이동을 위한 마법진이라.

당장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목적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아까부터 바뀌지 않았다. 문득, 엑스가 물었다.

“아차, 텔레포트 스킬 북도 판매하시나요?”

“네? 네, 물론이죠.”

“구매하겠습니다.”

샤샥! 엑스는 곧바로 스킬 북을 펼쳐 텔레포트를 익혔다.

라운즈는 간만에 만난 엑스와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싶었지만, 엑스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로브와 고깔모자가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정말요?”

거적때기와 다름없는 로브와 보라색 고깔모자가 잘 어울린다니, 칭찬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귀중한 정보를 얻었으니까 해 줄 주의 정도는 해 줘야 되지 않겠는가?

씨익, 엑스가 라운즈에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른하늘에 물난리가 나도 당황하지 마시길.”

“예?”

고개를 갸웃거린 라운즈가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으아아. 진짜 죽을 뻔했네.”

“귀환서 판단 좋았다, 진리야.”

“하아,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뭉크, 백준은 파티원들과 함께 녹초가 된 채로 아르바에 돌아왔다.

레벨은 낮아도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거대 길드에 들어갔다. 그것까진 좋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반나절만 사냥해도 죽을 고비가 몇 번이나 찾아오는데, 그 고생을 이겨 내고 올라간 랭커들은 진짜 괴물들이라니까?”

“그러게요. 이렇게 힘든 사냥을 쉬지도 않고 계속 반복한다는 거잖아요. 이럴 땐 존경스러울 정도라니까요?”

“말 좀 그만해. 회복이 더뎌진다고.”

백준과 진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일촉즉발, 바닥에 가까워진 생명력은 완전 회복까지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으니까.

셋은 타는 목을 달래러 근처 주점에 들렀다.

“크으,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래도 다행이에요. 페널티는 면해서.”

“근 한 달 고생한 거 다 날릴 뻔한 거지.”

열심히 구른 끝에 찾아온 현자 타임.

말하자면 오늘의 사냥은 실패였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안전하게 나아갔다면 못해도 하루는 더 사냥할 수 있었을 테지만.

“거기서 네임드 몹이 뜰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경험으로 삼자고.”

“다들 이해해 줘서 고마워.”

백준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나서다가 완전히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것. 그래도 이해해 주고 마음이 맞는 팀원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백준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저게 엄청 미관을 해치네.”

“마법진이요?”

“응, 생긴 것도 비호감으로 생겼어. 그 하얀 가면처럼 말이야.”

유저들 사이에서 아르바 왕궁 주술사는 기분 나쁜 존재로 유명했다.

화려한 비단옷에 무면의 하얀 가면이라, 듣기만 해도 기이한 차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기괴한 차림새를 백준은 알고 있었다.

“……어라?”

순간, 헛것을 봤나 싶었다.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공포의 존재! 높디높은 성벽 위에서 과거 흑장미 농원에서 만난 보라색 고깔모자가 보이고 있었으니까. 다시 봐도 경악이 튀어나오는 패션 센스다.

백준을 눈을 비볐다. 그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진리에게 물었다.

“진리야, 너한테도 저거 보이냐?”

“네? 뭐가요?”

“저기 저, 보라색 고깔모자.”

“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니 헛것이 아니다. 저건 하루 종일 흑장미 농원을 독점하다시피 사냥하던 그 냉혈한이었다. 그러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저기서 뭐 하는 거예요?”

“몰라. 저 미친 자 하고 엮여선 좋을 게 없다고.”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눈길을 돌리려던 백준도 슬쩍, 고개를 멈췄다. 피도 눈물도 없었던 보라색 고깔모자지만, 그 실력은 대단했으니까.

저 정도의 고레벨 유저가 성벽 위엔 무슨 목적으로 올라간 걸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진리가 말을 더듬었다.

“저 사람 마,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그게 진짜야?”

“아무리 봐도 미친놈 맞다니까, 저거?”

고오오오.

보라색 고깔모자 주위에서 일렁이는 거대한 마나! 아무리 못해도 대형 마법이다.

녀석은 아르바를 향해 대형 마법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백준이기에 서둘러 외쳤다.

“얘들아,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휩쓸렸다간 산 보람도 없어진다.”

“다들 살아서 만나죠.”

“너흰 너무 말이 많아서 문제야, 이럴 시간에……!”

그러나 마지막 말대로 셋은 너무 늦었다.

슈오오오!

푸르른 이불이 아르바를 뒤덮는다. 그건 태양 빛을 완벽하게 차단할 정도로 거대한 해일이었다.

플레이어가 이런 규모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이런 마법은 그 잘났다는 리소서러도 쓰지 못한다.

알고 있던 페이트 상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백준은 이를 악물었다.

‘어쨌거나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고.’

보라색 고깔모자!

아르바에 이런 마법을 사용하다니, 하루아침에 최악의 악인으로 거듭나게 될 건 분명할 터. 그의 목에 걸릴 현상금을 생각하면 한 번의 죽음쯤이야, 감수할 수 있었다.

질끈! 점점 다가오는 해일.

아르바의 모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응?”

모두가 멀쩡했다.

다들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신체의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비단 몸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에 진열된 꽃이 더욱 활짝 피어나고, 열매엔 이슬이 맺히고 윤기가 흘렀다!

“대, 대체 뭐였지. 방금 건?”

백준이 말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헛것을 본 건가, 백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그 거대한 해일은 환상이 아니었다.

이전과 달리 거리에 흘러넘치는 생명력.

그리고 미관을 해칠 정도로 기괴해 보이던.

“사, 사라졌어.”

마법진이 감촉같이 사라졌으니까.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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