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가끔씩 폭발하는 일이 있긴 있어도, 기본적으로 엑스는 물불을 가릴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래, 인간.
인간이기에 ‘신’에게는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띠로링!
[광대의 신이 당신의 깽판에 잔뜩 기대합니다!]
[광대의 신이 자신의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립니다!]
[전쟁의 신이 자리에 착석합니다!]
[전쟁의 신이 자신의 선물을 사용하라고 부추깁니다!]
달달달.
서지하에게 받아서 착용한 삿갓이 잘게 떨렸다.
“……이런 미친.”
천계의 신들은 제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엑스가 화 제국을 단신으로 쳐부술 것이라고, 벌써부터 팝콘을 튀기고 있었다.
떠오르는 알림에 엑스는 고개를 저었다. 성채로 향하던 백성들이 물어 왔다.
“저기 괜찮으슈?”
“네? 저는 괜찮습니다.”
“안색이 안 좋네. 빨리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슈.”
현재 엑스의 차림은 완벽하게 동대륙의 나그네 행색을 하고 있었다.
백성들도 의심을 하지 않는 게 당연. 슬쩍, 거리에서 자리를 피한 엑스는 작게 입을 열어 속삭였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띠로링!
[광대의 신이 노골적으로 당신을 비판합니다!]
[광대의 신이 줬던 선물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전쟁의 신이 광대의 신의 진상에 솔깃해합니다!]
‘진짜 도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되네!’
저 진상, 광대의 신 때문에 타이탄의 화살마저도 빼앗기게 생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엑스는 당초의 계획을 떠올렸다.
‘나그네로 위장해서 다른 존재의 기운을 살피고, 병사들의 규모, 대장군의 얼굴만 살펴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불사조의 날개는 혹시 모를 상황에 사용하기 위한 것.
스트리밍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동대륙의 문화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서문西門이 들어오기 무섭게 광대의 신이 나타나 계획을 뒤집어 엎어 버렸다.
엑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애초에 네가 관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신들은 현실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비를 그치거나, 강의 물고기를 부리는 것도 상당한 친밀도를 요구한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광대의 신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쟁의 신까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엑스는 울상으로 속삭였다.
“타이탄 님, 아무리 그래도 깽판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확률이 높긴 해도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대장군이 숭배자가 아닐 가능성도…….”
띠로링!
[전쟁의 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광대의 신이 당신의 직감을 비웃습니다!]
엑스는 흠칫했다.
‘고민할 가치도 없이 빼박이라는 건가?’
대장군은 빼도 박도 못하는 다른 존재의 숭배자라고. 신들이 공언을 해 준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광대의 신이 자신을 부추긴 것도 설명이 된다. 천계의 신들은 다른 존재를 적대시했으니까.
엑스의 입꼬리가 슬슬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밀당을 시작했다.
“제가 만약 재밌는 깽판을 보여드린다면,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건 다들 알고 계시잖습니까?”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끝을 봐야 한다! 전투에 전투를 거듭해 수도성의 가짜 황제를 쓰러트릴 때까지 쉴 틈은 없었다. 신들도 그 점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광대의 신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전쟁의 신이 천계의 창고를 뒤져 봅니다!]
[광대의 신이 더 유용한 보상을 약속합니다!]
띠로링!
“?”
난데없이 퀘스트가 떠올랐다.
<신과 함께>
다른 존재와의 대립.
천계의 이들은 당신의 모험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수고를 취하기 위해, 천계의 모든 이들은 당신에게 보상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조건 : 가짜 황제, 숭배자 암살
난이도 : S+
보상 : 천계의 물건
난이도 S+ 랭크!
단절 대륙 정복이나 천계 입성 퀘스트 같은 초대형 복합 퀘스트를 제외하면 최고 난이도 퀘스트였다.
성공 조건은 당초의 목적인 가짜 황제 암살. 생각지도 못한 돌발 퀘스트에 엑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상이 천계의 물건이라고?’
천상서고 출입권처럼 천계의 아이템을 말하는 것일 터.
일단, 엑스는 손가락을 올려 상세한 정보를 확인했다.
[현재까지 약속된 보상 목록]
1. 천상서고 대출권
2. 타이탄의 철퇴
(활약 여부에 따라 보상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
이건 미쳤다.
가짜 황제 암살에 성공하기만 하면 전설급 아이템을 두 개나 얻을 수 있었다.
타이탄의 화살과 맞먹을 효과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한 철퇴는 기본. 천상서고의 서적을 빌릴 수 있는 대출권까지!
뿐만 아니라 대활약을 펼치면 보상이 추가될 수도 있단다. 엑스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머리를 굴렸다.
‘광대의 신을 만족시키려면 더 재밌는 깽판을 치면 될 테고…… 전생의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면 되는 건가?’
이득 앞에서는 더욱 비상하게 회전하는 머리!
엑스는 기왕 하는 거라면 보다 화끈하게 신들에게 보상을 뜯어내고 싶었다. 고작 두 명의 신이 주는 보상엔 만족할 수 없단 소리였다.
상황 파악 완료.
엑스가 이전과는 다른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이러면 저도 거절할 이유가 없죠. 아차, 다른 신들도 다 데리고 오시죠? 이참에 제가 제대로 된 전투를 보여드릴 테니까요.”
*
마른하늘에 불사조!
“어쭈, 군기 빠진 거 봐라.”
전투 장비를 착용한 엑스는 서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도발했다.
무고한 백성들이 휘말릴라 대피할 시간을 주는 것은 물론, 광대의 신을 만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병사들, 아니, 다른 존재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고 노골적이었다.
“!”
꾸르르륵!
쿠구구궁.
이질적인 기운과 함께 무너지는 성벽. 그곳에서 솟구친 촉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꾸르르르!
마치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많은 촉수가 일순간 엑스를 향했다.
혼비백산, 백성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괴물이다!!”
“사, 사람 살려!!”
그런 백성들과 달리 병사들은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병사들의 육체도 변화하고 있었다.
꾸물꾸물, 그들의 팔과 다리가 흐물거리기 시작하고 피부는 어둠처럼 짙어져 갔다.
엑스가 눈치껏 설명했다.
“검은 군단이 완전체가 되면 저렇게 되는 거겠죠.”
흡수하면 할수록 인간에 가까워지는 촉수 덩어리다. 변수인 플레이어의 발길이 닿지 않은 동대륙, 그간 숭배자에 의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 혀를 내두를 수밖에.
-그, 그럼 그놈들이 아르바도 모자라 동대륙까지 손을 뻗었단 건가?ㄷㄷㄷ
-엑스 님이 발견한 신대륙까지 생각하면 월드 전체 퍼져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진짜?
엑스는 짧게 설명했다.
“다른 존재. 저는 녀석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존재,
그 이름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쌔애애액!
전투의 시작을 알린 건 촉수의 채찍질이었다.
사방으로 날아드는 수십 개의 촉수. 상하좌우, 피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촘촘한 공격 방향이었다.
하지만 엑스는 불사조의 날개를 발동한 상태.
화르르르!
날개에서 폭주하듯 퍼진 화염 마법이 달려드는 촉수를 불살랐다.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고통에 몸을 비트는 촉수들을 엑스는 차근차근 처리해 나갔다.
“자고로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법이죠.”
엑스는 일부로 기본기를 사용한다는 듯 말했다.
불사조의 날개를 오픈했다고 해도, 그 페널티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전 세계, 수많은 경쟁자들도 지켜보는 방송이다. 모든 수를 드러낼 이유는 없었으니까.
[전쟁의 신이 탄탄한 기본기에 감탄을 뱉습니다!]
[희생의 신이 두 손을 맞잡고 당신을 지켜봅니다!]
[별의 신이 주변을 서성거립니다!]
화끈한 도발에 이은 화끈한 반격. 초장부터 불사조의 날개를 사용한 보람이 있었다.
시청자들은 물론이요, 신들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엑스는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활강하며 달려드는 촉수들을 난도질했다.
“문제는 저 녀석들이겠네요.”
꾸르르륵.
변태를 마친 병사들.
좀 전까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리라곤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라진 눈, 그 대신 길게 뻗어져 나온 촉수가 꿈틀거렸다.
-으으으 좀비도 이거보단 덜 징그러웠는데ㄷㄷ
-ㄹㅇ나는 못 싸우겠다 촉수만 해도 겁나 무서운데ㄸ
-근데 검은 군단 진화판이면 검은 군단보다 강한 건가?
질문에 대한 답은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슉! 빠르게 날아드는 촉수 화살.
생긴 것만 이상하지 폼은 완전히 인간의 사격 폼을 빼다 박은 것 같았다. 일부러 공격을 허용하자 정보가 떠올랐다.
“쫄병부터 천 오백이라…….”
물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성벽 위에 서 있던 이들만 해도 수백은 가뿐하게 넘어 보였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병사들만 해도 그 배는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엑스는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격앙된 목소리로 기세를 올렸다.
“좋습니다. 야식이 식기 전에 전투를 끝내 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관심을 끌기 위해, 더 나아가 지켜보는 이들을 훗날의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시청자와 더불어 신들에게 선언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ㅋㅋㅋㅋ오늘 왜 이렇게 흥분하신 것 같지?
-드디어 엑스가 이빨을 드러냈다.
-이대로 황제의 목까지 가즈아!!
띠로링!
[광대의 신이 팝콘의 열기를 기억합니다!]
[달의 신이 보상을 약속합니다!]
[전쟁의 신이 당신의 호쾌함에 감탄합니다!]
[전쟁의 신이 보상을 추가했습니다!]
골드에 천계의 아이템에.
흥분한 이들의 선물 세례가 쏟아졌지만, 엑스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자신감이 허세가 되지 않도록 눈앞에 적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대장군이면 몰라도 이런 건.’
1,500레벨에 이르는 녀석들이라고 해도 엑스의 생명력은 4백만을 향해가고 있었다.
평상시에 맞아도 별 타격이 없었을 공격들을 불사조의 날개 발동 상태로 맞는다.
“살도 내어주지 않고, 뼈를 치겠습니다.”
화르르륵!
일순간, 성벽에서 꿈틀거리던 한 무리의 오염된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띠로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엑스는 몰려드는 오염된 병사들을 쉴 새 없이 쓰러트렸다. 간혹가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달려드는 병사도 놓치지 않고 처리했다.
이쯤 되니 백성들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벼, 병사들이 괴물로 변했어.”
“대, 대체 당신은 누구요?”
대체 누가 우리들의 편이란 말인가? 엑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말해 봤자 믿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제국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건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점차 가까워지는 강력한 이질적인 기운에 집중해야 했다.
엑스가 입을 열었다.
“저도 말을 아끼고 제대로 전투 준비하겠습니다.”
대장군이 다가오고 있다.
엑스의 직감은 정확했다.
한데, 가까워지는 기운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 이유는 신들의 반응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광대의 신이 마왕의 등장에 마른침을 삼킵니다!]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광대의 신이 마른침을 삼킬 정도.
예상대로, 대장군은 평범한 숭배자가 아닌 마왕이었다.
“어디 보자.”
하지만 엑스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엑스는 견적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짠다.
‘카이무스보다 배는 강하다.’
그 말인즉,
“대장군은 딱, 세 번의 공격으로 끝내 보겠습니다!”
녀석은 넉넉잡아 세 방이면 된다는 소리였다.
띠로링!
천계에선 즉각 반응이 왔다.
[광대의 신이 당신의 똘끼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쾅!
굉음과 함께, 광대의 신조차 백기를 든 미친놈이 날뛰기 시작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