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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276화 (276/391)

276화

아르바.

허울뿐인 성문을 열고 진입하자 알림이 울린다.

[주의 : 아르바의 치안은 최악입니다!]

[아르바는 더 이상 도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아르바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다젤은 비웃음을 삼켰다.

과거엔 감히 넘볼 수도 없던 카이무스가 우습게 느껴졌다. 워 머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버린 결과가 겨우 이 유령 도시라니.

“리소서러나 플링도 이 장관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대략 8할.

카이무스와 만나기 위해 다젤과 아르바를 찾은 간부들의 수였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슥, 그들의 눈치를 살핀 다젤이 작게 중얼거렸다.

“의리와 신뢰는 개뿔.”

다젤이 아르바를 찾아온 이유.

애초에 다젤은 카이무스와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카이무스 같은 쓰레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다젤은 처음부터 뒤통수를 노릴 생각이었다.

띠릭.

다젤은 은밀하게 귓속말을 보냈다. 수신인은 헤비스모커 리더, 시거.

카이무스가 속내를 드러내고, 폭군의 길을 걷자 누구보다 위태로워진 건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던 헤비스모커였다.

다젤은 그들의 불안함을 절묘하게 이용했다.

-준비는 끝났어? 이번 일만 잘 해결된다면 아르바는 우리 차지라고. 하크리드 같은 시골 영지 따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도 돼.

-물론. 준비는 완벽하다. 신호만 하라고.

-좋았어. 구린 일을 처리하는 건 완벽하군.

꾸욱.

다젤은 주먹을 쥐었다.

‘활로는 스스로 개척하는 거야.’

아르바 곳곳에 숨어든 헤비스모커의 전력.

다젤은 카이무스를 비롯해 워 머신의 간부들까지 단숨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헤비스모커는 기껏해야 중견 길드, 워 머신과의 전력 차이는 상당하니까.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사제조차 정화하기 어렵다는 필사의 맹독.

파죽지세의 공성병기를 완벽히 모방한 대인병기.

뒷세계에서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진 블랙 게이머들까지.

투자된 골드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그들도 아르바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막대한 성공 착수금을 걸자, 내빼는 이들은 없었다. 거기에 카이무스의 이미지가 한몫했다.

‘당신이 공공의 적이 될 줄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거사를 눈앞에 둔 마당, 자제가 필요했다.

아르바 왕궁.

의외로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있었다.

“월급 줄 골드도 없지 않나?”

“저게 진짜 사람이겠냐? 동대륙이랑 똑같겠지.”

“아, 엑스 스트리밍에서 나왔던?”

오염된 병사들.

가까이 다가가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외관은 사람과 같은데, 눈에 초점이 묘하게 풀려있던 것.

마치 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상대적으로 옷이 얇은 사제가 몸서리를 쳤다.

“으으, 소름 돋아.”

“분위기를 보니까 괜히 온 것 같기도 하고…….”

와중에도 다젤은 머리를 굴렸다.

‘왕궁에 진입하면 우리가 불리해.’

왕궁은 카이무스와 하얀 가면의 본거지다. 그 영악한 놈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또한, 왕궁에 진입하면 이들을 습격하기도 어려워진다. 다젤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대로 말이야. 우리가 손님인데, 너무 끌려다니는 것도 그렇지 않나? 여기까지 왔으면 얼굴이라도 비춰야지. 대장도 감이 많이 죽었어.”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워 머신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연락할게. 기다려들.”

다젤은 카이무스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일망타진을 위해선 그를 왕궁 밖으로 유인해야 했다. 답은 빨랐다. 하지만 그 답이 귓속말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

후드드득.

문득,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방금?”

“지진이라도 난 건가?”

“아니지, 그 괴상한 촉수가 깨어나는 거라고!”

“젠장, 역시 처음부터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나?”

이래 봬도 워 머신의 간부들.

그들은 전투태세를 갖췄다. 레벨이 아깝지 않게 상황파악이 빨랐다. 순간, 다젤은 다른 의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등신 새끼들이 얌전히 기다릴 것이지.’

보나마나 소리를 낸 건 헤비스모커다. 꿍꿍이를 알고 있는 다젤은 탄식을 삼켰다.

이렇게 경계를 하게 만들어서는 기습에 의미가 없었다. 반드시 피하고 싶은 전면전이 되는 거였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자, 잠깐. 저기, 건물이 움직이고 있잖아?”

“……뭔 개소리야?”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저기 골목 끝에!”

움직이는 건물?

다젤의 시나리오엔 없던 요소였다. 다젤은 손가락의 끝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정말 건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후드드득.

소리를 내며 수십 개의 건물이 이동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야, 이거.”

카이무스가 뒤통수를 쳤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때문에 염두도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촉수도 아니고, 그저 건물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까, 걱정되는 상황. 심상치 않은 흐름에 손을 터는 이들이 나타났다.

“……난 여기서 빠지겠어. 카이무스건 나발이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야.”

“나도 돌아갈게. 미, 미안하다.”

“잠깐!”

지지지직!

뭐라 말릴 틈도 없이 귀환 주문서를 찢는 이들. 이탈자가 발생하자 남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다젤은 승부수를 던졌다. 모두가 혼란한 지금 각개격파를 시도하자고.

‘워 머신을 먼저 정리한다.’

띠릭.

다젤은 곧바로 헤비스모커에게 신호를 보냈다.

슈슈슉!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푸욱!

“아악!”

날아온 독화살이 사제의 어깨를 꿰뚫었다.

건물, 골목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헤비스모커. 당연하게 눈초리는 다젤에게 쏟아졌다.

“다젤, 이 개새끼가……!!”

“워워, 성질내지 마. 속은 새끼들이 잘못이지.”

“이 뻔뻔한 개새끼야!”

풍압과 함께 휘둘러지는 대검.

재회 때부터 감정이 남아있던 사내가 다젤에게 달려들었다. 눈빛을 바꾼 다젤은 가뿐하게 공격을 회피했다. 사내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은 유연하고, 민첩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힘만 믿고 까부는 게 아니라.”

샤샥!

암살자의 주특기 은신.

다젤은 곧바로 몸을 숨겼다.

“나와, 이 개자식아!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넌 잡고 죽을 거다!”

“빌어먹을, PK 걸려서 텔레포트도 못 타고.”

“젠장, 사제들은 전부 기절. 아무리 봐도 체크 메이트야. 보통 많은 준비를 한 게 아니라고. 일단, 다들 공격을 허용하지 않게 조심……!”

퍽!

경고하던 여인의 목에서 분수가 솟았다. 암살자의 즉사공격이 제대로 터진 것.

워 머신은 혼란에 빠졌다.

시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다음은 카이무스, 너다.”

난데없이 건물이 움직이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거칠 것은 없었다. 많은 투자와 준비를 한 만큼 시거는 자신감이 넘쳤다.

[치명적인 일격!]

[출혈 효과가 발생합니다!]

[치명적인 일격!]

“양학이 따로 없네.”

기습 성공.

다젤은 알림을 리듬처럼 타며 워 머신을 난도질했다.

뭔지는 몰라도, 혼란이 일어난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이쯤 되면 카이무스와 마음이 통했다고 해도 될 정도.

하지만 다젤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카이무스, 넌 오늘 뒤졌다.’

표적은 얼마 가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셨다. 카이무스는 왕궁 계단에서 난장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거만해.’

파바바박!

다젤과 정예들은 곧바로 카이무스에게 돌진했다. 사전에 말을 맞춘 대로 빠르게 그를 처리해야 한다.

‘싸움이 길어지면 무조건 패배.’

괴물 같은 촉수들.

파죽지세도 감당하지 못한 촉수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엑스가 아니고서야 그 촉수에 당해낼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러니까 촉수가 나타나기 전에 카이무스를 처치하고…….

“다젤.”

돌진하던 도중.

카이무스가 말을 걸어왔다.

문답무용.

대꾸할 가치는 없었다.

“마법진에 진입한 순간부터 넌 패배했다.”

마법진이라고?

‘죽을 때가 되니까 혀가 길어지는구나.’

다젤은 콧방귀를 뀌었다.

마법진은커녕 흙먼지만 날리는 유령 도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다젤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마지막 획이 움직일 때가 기회였다.”

……마지막 획이 움직일 때?

지척까지 가까워진 거리.

순간, 다젤은 생각에 휩싸였다.

후드드득.

지금도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수십 개의 건물. 설마, 저 건물들이 카이무스가 말하는 마법진이자 마지막 획이었다면…….

‘아르바 전체가 마법진이란 소리인가?’

그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띠로링!

귓가에 울리는 알림.

[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뭐, 뭣?!”

순간, 사방에서 뻗어오는 촉수.

어두워지는 시야.

그대로 접속은 끊어졌다.

지이이잉-

자동으로 열리는 캡슐.

사망으로 인한 로그아웃이다.

다젤은 어안이 벙벙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뒤통수잖아?”

아르바 전체가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다른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마법진.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다젤은 캡슐에 누운 채 코웃음을 쳤다.

“그럴 줄 알았지. 위선자 새끼.”

내가 지켜본 기간이 몇 년인데.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음모의 통수의 스케일이 커도 너무나도 컸다.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 다젤은 입맛이 썼다.

“……하늘이 무너졌군.”

본심을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워 머신 쪽은 이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헤비스모커와 붙어있자니, 이쪽은 전력 손실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면 제3의 활로를 찾는 수밖에.

‘아직 내겐 정보가 남아있어.’

워 머신이 정보를 팔 수도, 카이무스의 정보를 팔 수도, 헤비스모커의 정보를 팔 수도 있었다. 잔머리를 굴리기도 잠시, 사망 페널티에 정신이 닿았다.

“이건 또 언제 복구하냐.”

어쨌거나 확인은 해야지.

다젤은 재접속 가능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페이트에 접속했다.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용자 신체 스캔데이터로 캐릭터를 생성합니다.>

“……뭐, 뭐야 이건?”

다젤.

그의 계정 정보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

메이지 사옥.

로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서명우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간신히 입을 뗐다.

“운영이나 밸런스보다 중요한 게 신뢰라고 신뢰. 그런데 계정 정보가 날아가다니. 보통 일이 아니야. 신체 스캔 정보 연결된 개인 정보라고!”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페이트.

페이트나 밸런스, 운영 논란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데엔 보안의 역할도 컸다.

슈퍼컴퓨터, 블라썸이 관리하는 페이트에서 해킹 위험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자기들이 삭제한 것도 아니고…… 그냥 계정 정보가 증발하다니. 으아, 모르겠다. 진짜 큰일이네요. 게다가 다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무려 200여명의 플레이어.

그들의 계정이 동시에 삭제가 됐단다. 이건 페이트가 흔들릴 수도 있는 대사건이었다.

“미디어 쪽은 어때?”

“아직 보도된 건 없는 것 같아요.”

“윗선에서 최선을 다해 막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

김성철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배, 계정이 날아간 플레이어들의 공통점은 아르바에서 카이무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거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제물이 된 플레이어들이지.”

어떻게 녹화 파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무슨 은밀한 거사를 치르려고 했는지, 녹화 기능을 켜둔 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요. 이거 혹시…….”

“이상한 소리하지 마. 다 정도가 있는 거야.”

“그래도 확실히 찝찝하잖아요?”

계정 삭제조차 의도된 요소가 아닐까?

서명우도 설마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존재에게 제물로 바쳐져 월드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정말,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서명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발자로서 지켜야할 선이 있는 거야.”

일방적인 믿음이지만, 서명우는 슈베르트를 믿고 있었다.

그가 무슨 의도로 페이트를 개발했는지는 몰라도,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인물일 것이라고.

“……그러게요. 저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나, 김성철은 불안했다.

비단 둘뿐만이 아니었다.

메이지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사원,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슈베르트 회장의 사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모두의 메신저에 메일이 도착했다.

“발표 나왔어요, 선배.”

“알아.”

“각자 확인해보죠.”

둘은 핸드폰 액정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평소와 달리, 이번엔 김성철의 직감이 맞았다.

서명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짜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슈베르트.

그의 독선을 넘은 탈선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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