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슉슉!
외관은 볼품이 없어도 무려 800레벨.
좀도둑 생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녀석들은 민첩했다. 돋아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빠르게 연못을 유영했다.
“사실, 이쪽 동네 몹들은 상대하기가 죄다 까다롭죠. 여러분들도 보셔서 알고 계시죠?”
단절 대륙!
드래곤을 비롯한 신화 속의 존재들이 활개를 치는 동네. 시청자들도 보는 눈이 있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쩝, 물속이라 사격 뎀도 제대로 안 박힐 텐데…….
-그래도 물이니까 전격 마법이면 되지 않을까요?
-뒷북 오지네ㅋㅋ 저거 보통 물 아님ㅋㅋ 전기 안 통함
정공법으로도, 잔머리로도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들!
단절 대륙이 오픈되기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았건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플레이어들이었다.
물론, 엑스에겐 조금의 해당사항도 없는 고민이었다.
“대충 보니까, 녀석들도 숨을 쉬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빼꼼.
좀도둑 생선의 대가리가 연못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포착하기도 힘든 찰나의 순간.
딱!
엑스는 그때를 노려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르륵!
순간 연못 위에 솟아오르는 불기둥.
[치명적인 일격!]
[좀도둑 생선에게 화상 효과가 발생합니다!]
즉발 공격 마법, 겁화의 벼락이었다.
“저처럼 이렇게, 낚시하는 것처럼 타이밍을 맞춰서 공격하면 되겠네요.”
둥둥.
회색빛으로 물든 좀도둑 생선이 연못 위로 떠올랐다.
시청자들은 어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방금 그 사기적인 마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화력 장난 아니네 ㄹㅇ;; 아크 메이지야, 뭐야?
-불꽃 날개도 모자라서 이젠 불기둥까지 쓰시네ㅋㅋ
-또, 어디서 그런 마법을 배우신 건가요?!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게 룬스톤의 은혜죠.”
룬스톤의 축복!
겁화의 벼락은 정화를 통해 얻은 스킬이었다. 엑스의 솔직한 대답으로 플레이어들은 또 한 번 룬스톤 정화에 열을 올리게 될 터.
엑스는 속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역시 룬스톤의 축복을 독점할 수 없는 건 배가 아프지만…… 다 견제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자고.’
다른 존재의 세력을 억제하는 것에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진 룬스톤 정화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단절 대륙에도 룬스톤은 존재하니까.
‘혹시 모르지? 빼먹은 오염된 룬스톤이 있을지도.’
행복 회로 가동.
엑스는 연못에 불을 질러가며 좀도둑 생선들을 학살했다. 엑스야 워낙 사냥속도가 빨라 경험치가 제법 오르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속도가 아니었다.
“이거, 진짜 지옥 구간은 800레벨 근처였네요.”
평범한 플레이어들이라면 백기를 들어 올릴 정도. 무엇보다 레벨 업까지 요구되는 경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600레벨 때와 비교할 때, 요구 경험치가 배 이상은 상승한 것 같았다.
엑스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다른 존재랑 싸울 땐 경험치가 팍팍 올랐는데.’
아이템은 안 줘도 경험치는 팍팍 주는 녀석들!
현재 엑스의 레벨이 800레벨에 육박하게 된 것도 녀석들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배부른 투정이 따로 없었다.
-800레벨에 육박했는데 당연하죠!ㅋㅋ
-2등이랑 100레벨도 넘게 차이나시면서ㅋㅋㅋ
-역시 탐욕의 엑스다
-평화는 평화고, 탐욕은 탐욕이다. 이건 가요?ㅋㅋㅋ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반박.
엑스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언제나 아쉽습니다. 여러분들이 신대륙에 오시기 전에 본전을 제대로 뽑아야 하는데.”
출세했다고 초심을 잊으면 다시 외면을 받는 법!
엑스는 그 후로도 사냥을 하며 시청자들과 수다를 떨었다.
성공적으로 스트리밍을 마무리한 뒤, 좀도둑 생선이 뱉어냈던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보는 눈이 있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씨익, 엑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녀석들, 장난은 좋아해도 거짓말은 안 하네.”
-불길한 약병 (퀘스트)
누군가에게서 훔쳐낸 장물이다. 주인을 찾아주지 않으면 저주에 걸릴 것만 같다.
퀘스트 아이템!
임프들이 알려줬던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이 약병을 마녀들에게 가져다주면 퀘스트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엑스는 용용이와 놀던 임프들에게 물었다.
“혹시 마녀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있어?”
“흠, 어떤 마녀를 말하는 건데?”
“……어떤 마녀?”
마녀가 한 둘이 아닌 모양.
현재 엑스가 습득한 약병은 총 3개였다. 엑스는 약병을 뚫어져라, 살펴봤다.
‘누가 만들었는지 표시라도 해놨으려나.’
그러자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엑스는 손가락으로 약병 밑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 육각형하고 별이 그려져 있는데?”
순간, 들려오는 탄식 소리.
도리도리.
다가온 임프가 고개를 저었다.
“하필이면 찾아도 그 할망구 물건을 찾았네.”
“왜? 누구 건데?”
“원로 마녀, 헤켈레라. 그녀랑 엮이면 엄청 피곤할걸?”
임프들은 하나 같이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은 몰라도, 헤켈레라의 악명은 흑요정의 연못에서도 드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엑스가 누구인가?
‘피곤하면 할수록, 보상이 좋아질 확률이 높지.’
열렬한 물질의 숭배자!
엑스는 ‘원로 마녀’라는 수식어가 붙은 순간, 이미 결정을 내렸다.
약병을 가져다주고 헤켈레라와 엮어보겠다고! 자고로 페이트에선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걸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엑스는 한껏 가슴을 내밀어 보였다.
“내가 이래 봬도 어르신들한테 인기가 많거든.”
미식왕의 후계자이자 대현자의 수제자!
그것도 모자라 고대 왕국의 성왕, 자울과도 편하게 말을 놓은 엑스다.
엑스는 세 치 혀를 놀려 마녀를 구슬릴 자신이 있었다. 임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말리진 않을게.”
“대신 원망만 하지 말라고.”
“원망은 무슨. 안내만 해줘.”
엑스는 임프들의 뒤를 따라 나아갔다.
키르아는 용용이의 날개를 방패 삼아 몸을 숨긴 상태였다. 키르아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다.
“마녀라니! 엑스는 겁이 너무 없어서 탈이라구.”
“맞다뀨.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뀨!”
“준비? 용용이, 넌 그냥 배가 고픈 거잖아.”
“……뀻?”
“왜, 불리할 때만 못 알아들은 척 하는 거야?”
투닥투닥.
용용이와 키르아가 장난을 치기도 잠시, 나무에 걸린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임프들은 다가가기도 싫은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저 집이야.”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게 어때?”
“그렇게 중요한 물약 같지도 않잖아?”
엑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뭐, 그건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지. 안내해줘서 고마워.”
길게 늘어진 느티나무.
폴짝.
엑스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문 앞에 섰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안에 헤켈레라가 있는 것 같았다.
똑똑.
엑스는 목을 가다듬고 문을 두들겼다.
“계신가요?”
그러자 호통이 들려왔다.
“이 녀석! 어디를 갔다가 이제 돌아온 것이냐?”
……뭐지?
처음엔 착각했나, 싶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서로 얼굴을 대면하고도 헤켈레라의 호통은 멈추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고얀 녀석, 오늘 저녁은 없는 줄 알거라.”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이 물약을…….”
“어디서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이 버릇없는 놈아.”
훽.
약병을 낚아채는 헤켈레라.
마녀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원로 마녀지만, 엑스보다 한두 살 연상처럼 보이는 헤켈레아의 얼굴.
엑스는 왠지 모르게 누나, 이현서에게 혼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절레절레.
엑스는 고개를 털었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헤켈레라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킥킥. 창밖에서 들려오는 임프들의 웃음소리. 엑스는 그제 서야 임프들의 경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괜히 원로 마녀가 아니구나.”
헤켈레라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망이 난 건지 알 순 없지만,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엑스의 추측은 곧 현실이 됐다.
이어지는 헤켈레라의 호통.
“늦게 돌아온 만큼 쉴 생각은 하지 말거라. 다음으로 구해올 재료는 재생의 향료다. 목적지가 던전이라고 엄살 부릴 생각은 하지 말거라!”
띠로링!
엑스에게 알림과 함께 퀘스트가 떠올랐다.
<헤켈레라의 첫 번째 심부름>
원로 마녀, 헤켈레라.
웬일인지 그녀는 당신을 하인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불쌍한 노인을 돕는다고 치고 선행을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조건 : 재생의 향료 0/1
난이도 : A+
보상 : ‘헤켈레라의 두 번째 심부름’으로 진행 가능
‘뭐여, 이게.’
정말 뭣도 없는 퀘스트가 떠올랐다. 연계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당장 때려쳤을 만한 퀘스트였다.
엑스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연계 퀘스트라고 해도, 이건 그냥 시달리기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던전’이라는 단어를 그냥 지나칠 엑스가 아니었다. 엑스는 한시라도 빠르게 800레벨을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평범한 사냥보다 던전 사냥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기본적인 상식.
‘레벨을 올리면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또 혹시 모르지 않겠는가?
기대도 안 한 연계 퀘스트가 꽤 괜찮은 보상을 가져다줄지도 말이다.
좋다.
레벨 업을 위해 엑스는 헤켈레라의 수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바로 갔다 오겠습니다.”
“쯧쯧. 못난 녀석. 내 하인이라면 흑요정 연못의 지리와 약초의 생성 위치는 정도는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것을.”
“죄송합니다. 제가 다 부족할 따름이죠.”
“쯧. 이걸 보고 찾아가거라.”
훽.
엑스는 헤켈레라가 던진 양피지를 받아들었다. 그곳엔 간단한 그림지도가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별 표시가 된 곳이 재생의 향료를 구할 수 있는 던전일 터.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싱글벙글.
고작 호통 몇 번 듣고 던전의 위치를 알아내다니! 엑스는 남는 장사를 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임프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헤켈레라한테 잔소리를 듣고 웃고 있다고?”
“역시 보통이 아니야. 우리와는 생각부터가 달라.”
“우리들도 일을 해야 큰 임프가 될 수 있는 걸까?”
듣고 있던 용용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도, 놀 수도 없는 거다뀨.”
본의 아니게 방탕한 삶을 되돌아보는 임프들이었다.
*
단절 던전!
단절 대륙의 던전으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던전이 클리어되는 일반 던전과 달리, 숨겨진 클리어 조건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엑스는 그런 단절 던전의 입구에 멈춰있었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네.”
고오오오.
밝게 타오르는 촛불 하나.
양피지엔 촛불을 끄면 던전으로 입장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있었다. 양피지를 들여다보던 엑스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말은 거칠게 하면서 알려주는 건 친절하잖아?’
양피지에 적힌 귀중한 정보들! 이건 공략서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던전의 구조부터 진행 루트까지!
초보자가 봐도 완벽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있었다. 이거 하나면 적들과 마주치는 일 없이 재생의 향료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다 때려 부술 거지만 말이야!”
당연하게도 엑스의 목적은 경험치였으니까. 재생의 향료는 사냥을 마치고 챙겨도 늦지 않으리라.
“가자.”
이내, 엑스는 촛불을 끄고 던전으로 진입했다.
띠로링!
알림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엑스가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략서 그대로 구만!”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