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조각처럼 깎인 수많은 절벽!
발밑으로 구름이 걸린 절벽 꼭대기에서 엑스는 밤낮없이 요리 연구에 매달렸었다.
요령을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물론, 버릇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도 금단현상인가?”
덜덜덜.
충동적으로 집어 든 향신료를 내려놓으려고 하자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은 기본.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천상의 요리를 발동, 미식왕의 손을 빌리려고 하고 있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성찰의 시간이 찾아왔다.
엑스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날로 먹어도 너무 날로 먹어왔구나.”
날로 먹어서 배탈이 났구나!
초심을 잃고 실력 정진에 소홀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후회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엑스가 아니었다.
엑스는 그동안 모아왔던 특수부위 식재료를 꺼냈다.
“일단, 연습 삼아 만들어보자.”
제멋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래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엑스는 그럴싸한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개중에는 골드를 주고 팔아도 될 만한 퀄리티의 요리들도 있었다.
천상의 미각 탓에 냉정한 평가 불가능. 엑스는 호크라에게 대신 시식을 맡겼다.
호크라는 부리를 씰룩거렸다.
“맛있네. 하나, 미식왕에 비하면 아직은…….”
“별로군. 미식왕이 보면 재료를 버렸다고 화를…….”
“미식왕이 발로 만들었다면 이런 음식이 나올까?”
미식왕, 또 미식왕!
호크라의 시식평엔 미식왕에 대한 언급이 빠지질 않았다.
그런 호크라의 말이 본의 아니게 엑스의 의욕을 자극해버렸다.
엑스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무조건 미식왕보다 맛있게 만들겠다!’
그래야 전설 등급에 부끄럽지 않은 요리라 할 수 있을 터.
정확한 비교를 위해 엑스는 이무기의 심장을 잘랐다.
심장은 아락타시스의 덩치만큼이나 거대해 양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스스스.
엑스는 이어서 천상의 요리를 발동했다.
미식왕의 그림자가 잘라낸 이무기의 심장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과연, 현란한 손놀림이었다.
흔한 고깃덩이를 다루듯 얼마 가지 않아 천상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모락모락.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심장.
군침이 돌았지만, 참아냈다.
‘괜히 먹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까.’
천상의 요리!
천상의 요리는 스텟 상승보단 버프에 그 효과가 한정되어있다.
단 한 번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전설 등급의 식재료가 아닌가?
버프로 기회를 날리긴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덕분에 호크라만 포식했다.
호크라의 독수리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엑스에겐 유감이지만, 호크라의 입맛은 냉정했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엑스는 미식왕의 요리를 뛰어넘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동굴 곰 때를 추억하며 맨땅에 열심히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 결과, 엑스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오!”
천상의 요리를 맛본 것처럼 커진 호크라의 동공! 녹초가 된 엑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괜찮습니까?”
“그렇다네. 확실히 미식왕과는 달라. 하지만 맛있다네. 그렇게 열중하더니 결국 만들어냈군, 엑스! 자네의 끈기는 누구도 못 말릴 정도라니까?”
……꿀꺽!
엑스는 목 넘김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미식왕의 요리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혼자 힘만으로 만들어낸 요리다.
게다가 전설 등급의 식재료까지. 이 순간을 위해 주린 배를 웅크리던 엑스다.
[포만도가 10퍼센트 이하입니다.]
엑스가 거미줄이 친 입을 벌렸다.
그러자 엑스의 귓가에 알림이 울렸다.
띠로링!
[천상의 미각이 당신의 노력에 반응합니다!]
[당신의 의지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엑스는 이 메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극의 경지로 가기 위한 지옥 수련 중, 몇 번이고 목격했던 메시지였다.
그런 알림이 지금 울렸다는 건…… 순간, 엑스의 얼굴에 감격이 떠올랐다.
“극 천상의 미각……!”
한 발짝.
천상의 미각이 극의 경지에 가까워졌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
쿠르르릉!
엑스는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도, 환상을 본 건 예상 밖이었지만.”
천상의 미각이 극의 경지에 가까워진 덕분일까?
미식왕과 관련된 음식이 아니어도, 환상을 목격한 엑스였다.
그 환상의 주인공은 아락타시스였다. 엑스는 환상 속에서 용으로 승천한 아락타시스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다음엔 스킬을 얻었지!”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
엑스는 새롭게 획득한 스킬을 확인했다.
뇌룡출두 (0%) : 승천하지 못한 자, 아락타시스의 영혼을 소환합니다. 아락타시스의 영혼은 사용자의 마나를 소모해 뇌룡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뇌룡의 능력치는 사용자의 능력치와 비례합니다. (1초당 마나 소모량 : 5,000포인트)
초당 마나 소모량 5천 포인트!
마나 소모량만 따지면 대형 마법들의 뺨을 때리는 수준이었다.
월드에서 뇌룡출두를 10초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을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엑스는 여유만만했다.
“뭐, 아직까진 끄떡없는걸?”
이름 : 엑스
직업 : 천상의 미식가
칭호 : 군주의 길을 걷는 자
레벨 : 825
명성 : 354,400
생명력 : 5,335,520 / 5,335,520
마나 : 2,038,550 / 2,038,550
힘 : 59,330 민첩 : 35,000
지능 : 30,395 인내 : 775
패기 : 1,660 평정 : 1002
직감 : 405
보너스 포인트 : 0
2백만을 돌파한 최대 마나!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상승한 명성이 인상적이었다.
엑스는 딱히 한 것도 없었지만, 크세르니스의 명성이 상승하면서 영주의 이름이 드높아진 탓이었다.
엑스는 칭호를 살폈다.
‘군주의 길을 걷는 자.’
군주라는 단어를 보니, 과거가 떠오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던 단어지만, 이젠 칭호 한 칸을 차지하고 있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송월 레벨이 650이었던가?’
거기에다 악룡처럼 굵직한 몬스터를 사냥해 상승한 레벨까지!
살펴볼 것들은 많았지만, 지금이 전투 중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되는 일.
빠지지직!
곧, 뇌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룡 아락타시스는 푸른 번개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생전의 모습과 달리 날개가 돋아난 것을 보니, 죽어서 그 한을 푼 셈이었다.
악룡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엑스에게 윽박을 질렀다.
“허튼 수작을 부리는구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악룡의 목구멍.
하지만 브레스가 엑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빠직!
뇌룡 아락타시스가 불러낸 전격의 폭풍이 적잖은 타격을 입힌 덕분이었다.
‘속성 마법으로 드래곤 스킨을 뚫은 건가? 생각보다 위력이 있는데?’
엑스의 비정상적인 스텟에 비례해 강해진 뇌룡이다. 진짜 드래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릴 구석이 없었다.
숙련도 0퍼센트에 이런 위력이라니, 전설 등급 식재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슉!
엑스도 나그네의 검으로 악룡을 겨눴다.
“이걸로 3대2다. 꼬우면 너희들도 친구 불러오든가.”
악룡 10마리 사냥! 보다 손쉬운 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도발을 잊지 않는 엑스였다.
*
엑스는 전리품을 확인했다.
각각 2,800레벨, 2,600레벨이란 수치를 가지고 있던 악룡들.
안 그래도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이 둘이 되니까,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발악엔 엑스도 불사조 태세를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나였고.”
엑스는 승자의 특권, 전리품을 누릴 수 있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뒤지는 엑스!
“드래곤 경갑이라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겠구나.”
각각 다섯 개씩.
드래곤 가죽과 비늘은 착실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새로운 재료 아이템을 추가로 획득했다.
반짝!
거대한 드래곤의 송곳니가 빚을 낸다.
-드래곤의 이빨 (전설)
사악한 드래곤의 송곳니다.
뚫지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특수 효과 : 무기로 제작 시, 무기에 패시브 스킬 ‘드래곤의 숨결’을 부여합니다. 드래곤의 숨결의 추가 피해량은 제작자의 손재주에 따라 달라집니다.
패시브 스킬, 드래곤의 숨결!
당연하게도 드래곤 브레스를 말하는 것.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달리 마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드래곤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브레스의 위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진짜 브레스보단 약할 게 당연하지만, 웬만한 대형 마법에 견주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다. 엑스는 허리춤에 나그네의 검을 바라봤다.
“이건 대체 어떤 녀석이 만든 거지?”
역대 최강의 드래곤, 염열의 화룡의 송곳니로 만든 나그네의 검이다.
하지만 숨결은커녕 소화기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게 현실.
그래도 한편으론 기대가 됐다.
‘그래, 봉인이 해제됐을 때를 생각해야지.’
분명 어마어마한 부가 효과를 달고 있으리라.
행복회로를 가동한 엑스는 이어서 아이템을 확인했다.
쿵!
집채와 엇비슷한 크기의 드래곤 꼬리가 엑스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왔다.
엑스가 입맛을 다셨다.
“하나를 해결하자마자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네.”
드래곤의 꼬리 고기!
이무기 심장의 뒤를 잇는 전설 등급 식재료의 출현이었다.
어떻게 먹어야 할까?
엑스는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엑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퀘스트 먼저 깨고 생각하자.”
그편이 시간적인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대신 엑스는 다른 고기를 꺼냈다.
간당간당한 유통기한, 동대륙에서 모았던 식재료들의 재고 대방출이 시작된 것이다.
호크라는 흠칫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만드는 것 아닌가?”
“입이 늘어날 거라서 말이죠.”
“무슨 소리인가, 입이 늘어나다니?”
물도 끓어가는 참.
지금쯤이면 용용이를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슈슉!
엑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을 뜯고 용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르아와 신나게 뛰어놀았던 모양인지, 꼬질꼬질해진 용용이가 활짝 날개를 펼쳤다.
“주인, 오랜만이다뀨!”
“엑스, 무사했구나!”
“오오, 우리 용용이었구나!”
반가운 재회!
용용이는 놀고먹는 게 일인 나이였다.
와구와구!
엑스와 맞먹는 먹성을 가진 용용이는 차려진 음식들을 복스럽게 먹어치웠다.
키르아도 용용이 옆에 앉아 음식에 손을 뻗었다. 다만, 키르아는 용용이와 달리 정상적인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맛이 조금 이상한데, 엑스?”
“그래? 향신료를 안 써서 그런가.”
“나는 다 맛있다뀨!”
수련을 생활화하겠노라!
4성 천상의 요리를 위해서도, 극 천상의 미각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요리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간 향신료로 위장했던 엑스의 손맛이 민낯을 드러내고 만 것! 하지만 부끄러워할 엑스가 아니었다.
“원래 몸에 좋은 게 입에는 쓴 법이야.”
그렇다면 여태까진 몸에 안 좋은 것만 먹었던 소리인가?
키르아는 의문이 들었지만, 뻔뻔한 엑스의 태도에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식사도 끝나가겠다, 엑스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배가 빵빵해진 용용이에게 말했다.
“용용아, 네게 부탁할 일이 있어.”
“뀨? 무슨 일이냐뀨?”
쫑긋해진 용용이의 귀.
엑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쁜 놈들을 따끔하게, 아니, 다시는 허튼수작을 못 꾸미도록 제대로 혼내주는 일이지!”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