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깡깡!
열정적인 곡괭이질.
“팔이 멈추질 않아!”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플레이어들의 노동력엔 드워프들도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했노라고, 자기반성을 하는 드워프들도 있었다.
“후후.”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
모든 것은 천상의 요리 효과 덕분이었다. 골드는 물론이요, 드워프들의 편견 개선까지.
‘광산 개발이 앞당겨지겠군.’
오늘 일을 통해 크세르니스의 노동자들은 드워프의 땅에서 보다 편하게 활동할 수 있으리라.
“단절 대륙 순찰도 슬슬 끝나 가는구만.”
남은 곳은 두 곳, 흑요정의 연못과 엘프의 폭포였다.
제아무리 겁 없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드래곤의 무서움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고서야, 감히 드래곤의 둥지에 접근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럼, 가까운 곳부터 들러볼까?”
*
흑요정의 연못에선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워낙 호전적인 흑요정들이다.
파티에게 드리운 먹구름! 다크 메이지, 사내는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젠장, 하필이면 어둠 속성이에요. 제 공격은 큰 효과가 없을 텐데.”
“이래서 내가 흑요정의 연못은 거르자고 했잖아? 이름부터 ‘흑’이 들어가는데, 진짜 욕심만 부리다가 전멸하게 생겼네.”
“크흠, 전멸도 한 번쯤은 경험으로 삼을만 하잖아?”
파티의 리더.
스피어 워리어, 날렌은 애써 동료들을 위로했다.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경쟁이 없는 흑요정의 연못을 찾았건만.
파티는 흑요정 연못의 몬스터들과 상성이 좋지 못했다.
슉!
여인의 손아귀에서 날아가는 화살. 흡혈귀의 수하에게 적중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사제도 없이 어둠 속성이 드글드글거리는 흑요정의 연못을 찾은 게 잘못이지. 내가 등신이야. 네 말을 믿을 바엔 지나가는 똥개 뒤를 쫓아가는 게…….”
나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어?
슈슈슉!
“깜짝이야!”
발끈한 흡혈귀가 피의 구체를 쏘아 보냈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 위력이 상당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척.
날렌이 삼지창을 치켜들었다.
“그래, 다 내 실수야.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긍정적? 이 상황에서 그딴 소리가 나와?”
“……형,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겠어요.”
깡!
날렌은 흡혈귀의 수하와 맞부딪쳤다.
썩어버린 육신.
흔히 말하는 좀비와 같은 형체를 띤 녀석이다. 앙상한 팔이지만, 그 완력은 무시무시했다.
간신히 공격을 쳐낸 날렌은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대륙이야.’
사실 어딜 가도 똑같았을 것이다.
단절 대륙.
이곳은 현재 자신들의 수준으론 감히 어깨를 펴고 다닐 수도 없는 곳이었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이곳에 오자고, 결심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래도 책임은 져야겠지.’
후회는 끝.
날렌은 최선의 판단을 떠올렸다.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너희들은 틈을 봐서 튀어!”
“뭐?”
“합을 겨뤄보니까 감이 왔어.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10분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
페이트에서 사망 페널티는 실로 막대하다. 고 레벨일수록 속 쓰림이 배가 된다.
레벨을 몇 단계나 하락시키는 것은 물론, 랜덤으로 아이템을 드롭, 그것도 모자라서 며칠간 페이트 접속 금지 처분까지!
“얼씨구, 거 참 눈물겨운 희생이네.”
“버리고 튈 거면 진작 튀었죠, 형.”
그러나 파티의 결속은 끈끈했다.
오랜 시간 같이 활동을 한 만큼 위기에서도 서로를 외면하는 일은 없었다.
날렌은 살짝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맙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자!”
신뢰 관계는 이해로 엮인 관계보다 훨씬 끈끈한 법.
그렇게, 파티는 치열한 사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들도 알다시피 패배는 명확해 보였다.
[치명적인 일격!]
[흡혈귀의 저주에 모든 재생 능력이 소폭 하락합니다!]
“으으.”
결국, 전멸이군.
신음하던 날렌은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해진 건 있어.’
그 어떤 유혹이 자신을 현혹한다고 해도, 자신과 함께해준 동료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그게 사람의 도리지.”
날렌은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가까워지는 흡혈귀.
이제 당분간 페이트 월드와는 안녕이겠구나. 날렌의 파티가 체념하던 순간이었다.
“?”
드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다리 저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의 목소리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사, 사람인가?”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
척 봐도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았다. 인기척 주변을 맴도는 임프들.
세상천지 어떤 플레이어가 임프를 끌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날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네임드 몹 얼굴은 보고 죽겠네.”
“하급 흡혈귀한테 당했다고 하면 쪽팔리니까, 쟤한테 죽었다고 하자.”
“맞아요. 그게 체면은 덜 구기겠어요.”
하지만 단절 대륙은 예상을 가뿐히 초월하는 곳 아니던가?
드르륵!
물안개가 걷히자 나타난 건 수레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포차였다.
그 포차의 지붕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뱉는 해츨링, 용용이가 있었다.
굳이 얼굴을 확인할 것도 없었다. 날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 엑스다!”
*
영웅 출현…….
아니, 포차 출현!
“자, 신성력이 깃든 오뎅 꼬치를 단돈 50골드에! 오뎅 한 꼬치면 어둠 속성 몬스터 따윈 상대도 못 됩죠.”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엑스가 만든 음식의 효과는 커뮤니티에서도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뛰어난 효과를 가진 만큼 분명, 그 조리과정도 복잡할 터. 50골드는 그 수고비라고 해도 싼값이었다.
“맛있어!”
맛에 감탄하기도 잠시,
띠로링!
[24시간 동안 빛 속성 친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어둠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스테미너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사제의 버프를 가뿐히 압도하는 효과가 발동됐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치열한 사투.
그 버프를 바탕으로 날렌의 파티는 흡혈귀의 수하와 흡혈귀를 차례로 쓰러트릴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났을 땐, 엑스는 이미 포차를 끌고 어디론가 향한 상태였다.
“저희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구하러 가신 거겠죠.”
날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속으로 다시금 다짐하고 있었다.
‘받은 도움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엑스 님.’
명실상부 최강의 플레이어.
엑스가 도움을 필요로 할 날이 올까, 싶었지만…….
페이트 인생은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날렌은 언제라도 엑스의 편에 서겠노라고 생각했다.
비단, 날렌만이 아니었다.
“엑스 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전멸하고 템 떨구고.”
“조금 더 생색을 내고 다니셔도 좋으련만.”
“그런 소탈한 면이 있어서 정이 가는 것 같아.”
단절 대륙의 모든 플레이어들은 엑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단절 대륙에 도착한 플레이어들이 어디 보통이란 말인가?
아무리 못해도 450레벨, 아르바 대륙에선 고수로 꼽히는 이들이다. 천군만마들의 환심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물론, 당사자도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후후, 골드도 모자라서……!”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엑스는 자신의 철면피를 쓰다듬으며 엘프의 폭포로 향했다. 그곳의 플레이어들은 엘프들의 텃세에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다.
“헤르샤윈, 그 녀석은 반성이 없어. 반성이.”
특히 헤르샤윈.
그는 엑스의 참교육을 싹 잊고, 엑스와의 친분을 이용해 플레이어들을 착취하고 있단다.
아무래도 이번 강의의 대상은 시청자들이 아닌 엘프들이 될 것 같았다.
“버릇을 완전히 고쳐놔야겠군.”
그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띠로링!
[상인의 신이 당신의 천계 입성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찬성표 획득!
“고집 센 양반이 생각을 바꾸셨네.”
상인의 신!
다른 신들에게 듣기로, 그는 승천을 하고서도 탐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신이라고 들었다.
그가 엑스의 천계 입성을 반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한 질투 때문이었다.
-당신에겐 천운이 따른다고 굉장히 부러워했었죠.
“상인답게 머리 회전은 빠르네.”
그런 상인의 신이 생각을 고친 이유. 그건 엑스의 장사 수완 때문이었다.
포차 장사 중 떠올랐던 알림들.
[상인의 신이 당신의 등쳐먹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상인의 신이 음식의 가격에 경악합니다!]
[상인의 신이 완판에 오열을 뱉습니다!]
말도 안 되는 수익률!
대체 어떤 상술을 부렸길래, 1실버도 안 되는 요리를 100골드에 사 먹는단 말인가!
생전, 대륙을 호령했던 대상인조차 범접하지 못할 장사 수완.
결국, 호기심을 참다못한 그가 엑스의 천계 입성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인가?”
가까워진 천계 입성!
하지만 신들의 반응으로 봤을 땐,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는 신들은 다들 한 고집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나머지 신들 중, 당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은 오히려 적습니다. 사후, 당신의 천계 승천을 바라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제일 피곤한 케이스지.”
악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규율을 중시할 뿐. 악의가 없었기에 엑스도 답답한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삐딱한 마음으로 반대표를 던진 신들을 찾아서, 협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뭐, 마지막 한 표를 기다리면서 머리를 굴려보자고.”
일단, 엘프의 폭포로 가자.
엑스는 포차를 끌고 걸음을 재촉했다.
*
한적한 숲속.
울려 퍼지는 목소리.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
헤르샤윈은 뾰족한 귀를 잡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앞엔 팔짱을 낀 엑스가 있었다. 엑스가 헤르샤윈의 주위를 돌았다.
“내가 했던 당부를 완전히 잊은 것 같더라?”
“이, 잊은 게 아니라…… 장난, 그냥 장난을 친 거지!”
“장난?”
“그래, 일종의 환영식 같은…….”
“환영식이라, 그거 우리도 할까?”
두득!
엑스가 웃는 얼굴로 주먹을 풀었다. 니드호그와의 전투에 참여했던 헤르샤윈이다.
헤르샤윈이 사색이 돼서 얼른 말을 바꿨다. 싹싹, 잘못했다고 빌던 헤르샤윈이 말을 이었다.
“여행자들을 알려줬던 대로 안내할게!”
“내가 알려줬던 게 뭔데?”
그것은 서비스업의 기본.
“미소와 친절!”
헤르샤윈이 방긋,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잘생긴 얼굴이 빛을 낸다. 그래, 웃으니까 얼마나 좋은가?
엑스가 헤르샤윈과 함께 숲을 빠져나왔다. 포차에서 주린 배를 채우던 플레이어들은 흠칫했다.
“……저거, 또 진상 부리는 거 아냐?”
엘프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였다. 엘프, 진상도 이런 진상 종족이 없었다.
얼굴값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 플레이어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뭐, 뭐야?”
덜그덕.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
온갖 있는 척은 다 하던 엘프가 서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대체 저 숲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 순 없지만, 이것 또한 엑스의 능력인 게 분명했다. 플레이어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진짜 그 끝을 알 수가 없으신 분이야.”
현재 단절 대륙에 자자한 엑스의 일화들! 훗날, 전설이 될 엑스의 업적에 한 줄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