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경쟁 퀘스트!
다수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수행하는 퀘스트를 말한다.
협동 퀘스트라는 더 좋은 말이 있었지만, 적어도 엑스는 경쟁 퀘스트라 부르는 쪽을 더 좋아했다.
왜?
‘잘하기만 하면 보상을 독식할 수 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함께 수행하는 만큼 그 난이도와 보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기본적으로 B+랭크부터 시작할 정도니까.
불끈!
엑스가 힘껏 인장을 쥐었다.
‘모조리 쓸어 담아주마!’
지옥의 인장 개수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질 터!
이럴 때가 아니었다.
독식을 위해선 무엇보다 퀘스트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저 플레이어들과 합류하는 편이 좋았다.
엑스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괜히 정체를 밝히면 피곤해지지.’
그렇다고 너무 누추한 차림도 안 됐다.
어쨌거나 천 레벨이 훌쩍 넘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는 인상 정도는 줘야 했다.
보라색 고깔모자에 망토는 그대로. 포인트는 갖가지 장신구들이었다.
“어? 방금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요?”
“몬스터? 사람? 몬스터면 큰일인데…….”
“일단, 다 같이 한 번 가봅시다.”
힘을 합쳐야 하는 협동 퀘스트.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힘을 합쳤다. 각자 무기를 들고 수상한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나아갔다.
번쩍!
어둠을 밝히는 라이트. 어둠이 걷히자 거기엔 앓는 소리를 내는 엑스가 있었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엑스의 메소드 연기가 시작됐다.
*
거대 길드, 더 엘리트.
간부이자 메이지 랭커인 스테락.
그는 주홍빛을 내뿜는 ‘지옥의 문’을 바라봤다.
저, 바닥에 붙어있는 문이 열리면 어떤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걸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자중해야지.’
스테락은 주위를 둘러봤다.
대략 오백 명에 가까운 플레이어들. 지금 순간에도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지옥의 어귀’로 연결된 던전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심장부로 진입한 이들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헉헉. 간신히 살았네.”
스테락은 깔아보는 듯한 눈빛을 옮겼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몹 레벨을 생각해봤을 때 A랭크는 무조건이고, S랭크 퀘스트가 뜰지도 몰라.”
“……우리가 도움이 될까?”
“뭐가 됐든지 최선을 다해보자.”
“아차, 너 인장 몇 개나 모았어?”
스테락이 코웃음을 쳤다.
‘안타깝지만 승자는 우리, 엘리트인 것 같군.’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따라올 세력이 없다.
현재 더 엘리트의 길드원 수는 무려 쉰 명이 넘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뒤섞이는 협동 퀘스트다.
온전히 등을 맡길 수 있는 길드원의 존재가 이리도 든든할 수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전진한 보람이 있네.”
“그러니까 말이야. 죽었으면 억울할 뻔했어.”
희희낙락.
그러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사제 여인이 삐죽 입을 내밀었다.
“치, 누군 길드 없는 줄 아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준비를 하고 오는 건데. 던전을 너무 많이 돌아도 문제라니까요.”
“그래도 감사해야죠. 이런 기회가 흔히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쟤들만 보면 왜 이렇게 배가 아픈지 모르겠네.”
초고난이도 협동 퀘스트!
소식은 귓속말을 타고 외부로 전해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뒤늦게 정보를 접한 이들이 각자 던전을 향해 몸을 던졌지만, 모든 던전 입구는 출입 불가 상태로 바뀐 뒤였다.
쏟아지는 한숨.
사제 여인이 말을 이었다.
“결국, 쟤네들이 다 해 먹게 생겼어요.”
끄덕끄덕.
듣고 있던 엑스가 백분 공감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짜, 혼자 다 해 먹기 좋은 기회네요.”
외부와 단절된 공간!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유입될진 모르겠지만, 그 수가 천을 넘지 않으리라.
천 명의 플레이어가 연합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쉰 명에 그치는 더 엘리트쯤이야!
“퀘스트는 모든 인원이 모인 다음 시작될 것 같고…….”
“혹시 협동 퀘스트 경험해보신 분 계세요?”
“있긴 한데, 뭐, 중대한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아니죠. 경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죠!”
머뭇거리는 순박한 인상의 기사. 그는 쏟아지는 시선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예전에 워 머신이 주도했던 양 떼 해방 퀘스트에 참여한 적이 있거든요. 난이도는 A랭크였지만, 저는 후방에서 활약을 지켜보기만 한 게 다라…….”
“그래도 흐름은 알 거 아니에요?”
“맞아요. 저희가 궁금한 건 협동 퀘스트의 분위기에요. 공동의 목표가 있다고 해도 보상이 한정된 이상, 결국 서로의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잖아요?”
빠삭한 이해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정면으로 싸운 건 아니라고 해도, 1,000레벨이 훌쩍 넘는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심장부로 진입한 것이었으니까.
“그땐 워낙 카이무스 이미지가 좋을 때라서요. 사실 워 머신이 보상을 독식하는 데도 반발이 적었어요. 몇몇 분들이 불만을 제기하긴 했지만, 크게 소란이 되지도 않았고요.”
사제 여인이 다시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에휴.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어요? 다들 불만이 있어도 꾹 참은 거겠지. 뭐, 이번에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요.”
누가 감히 더 엘리트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친다고 해도, 결국엔 남은 이들끼리 통수를 치게 되는 구조다.
이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믿을 건 저밖에 없네요.”
“어떻게, 다들 죽지 않고 잘 살아서 봅시다.”
“그래도 파티는 합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단은, 머릿수가 많아야…….”
자리에 남은 건 인상 좋은 기사와 엑스뿐이었다. 기사가 엑스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그쪽도 혼자에요?”
“예? 뭐, 그렇습니다.”
“역시 혼자는 서럽네요. 탱커가 부족한 것 같지도 않고.”
사실 탱킹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얼마던가? 그 차이 앞에서 방어력이나 생명력은 무의미했다.
“그나저나 생명력은 괜찮으세요? 아까 엄청 숨을 헉헉거리시던데.”
올해의 연기 대상급.
혼신의 연기에 사내는 완전히 넘어간 모양. 엑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습니다. 당황해서 그런 거거든요.”
“이런 광경이 펼쳐져 있으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 줄 알 수 있을까요?”
처음엔 마법사인 줄 알았다.
한데 그런 것치곤 스태프나 완드가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의 끼고 있는 반지들이 지나치게 화려한 것 같기도 하고.
엑스가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뭐, 마나를 이리저리 다룹니다.”
딱!
사내가 속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혹시, 점술사 아니세요? 왜, 점술사들이 잘나가는 척하려고 비싸보이는 가짜 보석을 두르고 다닌다고 하던데……. 물론, 그게 가짜라는 건 아니고요.”
이런,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뱉었다. 사내는 서둘러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엑스는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점술사라. 뭐,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거렁뱅이도 모자라 미친놈 취급도 받았는데. 점술사면 양호한 편이었다.
사내는 엑스에게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역시……! 그럼, 저 점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세요?”
“점이요?”
“네, 이번 협동 퀘스트에서 전 어떻게 될까요?”
가짜 점술사, 엑스에게 남의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퀘스트에서 만큼은, 이곳에서 모인 모든 플레이어들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엑스가 눈을 빛내는 사내에게 겁을 줬다.
“얼굴에 마가 굉장히 많이 끼셨습니다. 일단, 불을 조심하셔야 하고. 이런, 물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허, 전기도 조심하셔야 하고…… 마지막으로 풀독도 조심하셔야겠는데요?”
*
“다, 당신들 뭐야?”
“그 대사도 이젠 질린다.”
“그냥 가만히 눈팅하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드디어 마지막 플레이어들이 도착했다.
“와, 왔다!!”
그러자 모두의 예상대로 ‘지옥의 문’이 보다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끼이익!
이내, 문이 열리자 틈에서 거센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문 근처에서 물러섰다.
“……뭐지?”
“저거, 해골 아니야?”
불길 속에서 하얀 뼈가 보였다.
사람의 백골이었다.
마지막까지 순간까지 전투를 벌인 건지, 그 손엔 낡은 검이 들려있었다.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누군가 소리쳤다.
“반대쪽 손! 반대쪽 손에 뭔가 들려있어요!”
쿵!
해골이 문밖으로 빠져나오자 지옥의 문은 다시금 닫혀버렸다.
플레이어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해골 근처로 모여들었다.
스테락이 그들을 대표해서 쪽지를 손에 쥐었다.
“……나는 지옥의 문을 봉인하는 데에 실패했다.”
띠로링!
그러자 모든 이들의 귓가에 알림이 울렸다.
<지옥의 군단>
월드에 파멸을 불러올 지옥의 군단. 망자들의 용사는 최후까지 그들과 맞섰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그들과 맞서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지옥의 입구로 통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 검은 당신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월드의 평화가 당신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조건 : 지옥 군단장 헬가시스 섬멸
난이도 : S+
보상 : 망자들의 유산, 지옥 군단의 금고 (달성한 업적에 따라 유산과 금고의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헉!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S+랭크 퀘스트!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없었다.
성공, 실패 여하를 떠나 참여한 것만으로도 평생 술안주 감이나 다름없었다.
스테락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클리어하면 앞서나갈 수 있다.’
파죽지세에게 내준 최강의 길드 자리를 가져오고도 남는다. 스테락의 얼굴이 비장감이 서렸다.
그는 두 가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보상을 독식한다.’
망자들의 유산과 지옥 군단의 금고!
당장은 감이 잡히질 않는 보상들이었다.
하지만 퀘스트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못해도 유니크는 보장, 위대한 업적을 세운다면 전설 등급 아이템을 노려볼 만도 했다.
“이거 꿈 아니지?”
“몰라. 나도 긴가민가하다.”
“다들 힘내서, 꼭 깨보자고요!”
소란도 잠시,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차렸다.
난이도가 난이도이니만큼 결코 쉬운 퀘스트가 아닐 터.
가장 먼저 사제들이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간절한 자에게 축복을!”
“화염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소서!”
길드, 파티를 떠나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전력 하나가 소중한 상황이었으니까.
통수를 치더라도, 퀘스트 클리어 각이 나온 다음에 치는 게 옳았다.
[습격까지 30분.]
“으으, 떨려.”
“녹화하고 있지?”
“여기 혹시 메이지 스트리머 없나?”
“있었으면 우리가 몰랐겠어? 어쨌든, 우리들의 싸움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데.”
플레이어들은 농담과 진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엑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절레절레.
다들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탐욕도 능력이 있어야 부릴 수 있는 것을…….”
엑스는 S+랭크 이상 퀘스트를 몇 번이나 경험했다.
때문에 이 퀘스트가 가지는 무게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기에 한 치도 방심하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면서 깨려면 사전준비가 필요하지.’
꾸욱.
엑스가 주먹을 쥐었다.
쿠드드득.
그러자 엑스의 발밑에서 소음이 들렸다. 꽤 큰 소리였지만, 워낙 소란스러운 분위기 탓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 소음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습격까지 10초.]
“……?!”
쿠드드득!
뒤편에서 들려오는 굉음.
무슨 소리지, 아직 10초나 남았는데? 모두가 설마하며 고개를 돌린 곳엔…….
“저, 저게 대체?”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