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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367화 (367/391)

367화

“이겼다!”

짜릿한 함성.

이번 전투에선 딱히 주인공이 없었다.

목적이야 어찌 됐건 모든 이들이 최선을 다해 오염된 피조물에 맞서 싸웠으니까.

엑스는 한 발짝 물러서서 병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했다.

‘사망자는 전부 플레이어들.’

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NPC를 뒤로 보내고 위험을 자처했다.

막대한 천계의 이득 앞에서 사망 페널티쯤이야,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당분간 아르바 근방에 위협은 보이지 않겠군.”

시오라스의 말대로, 크세르니스 원정군은 아르바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평야는 물론이요, 망각의 사막에 남은 피조물까지 처리했다. 그래도 엑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칼을 뽑은 이상, 무 썰기에 만족할 생각은 없거든.”

무라면 음식을 만들면서 충분히 썰었으니까! 칼을 뽑은 이상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다시 탈환한 아르바를 하얀 가면에게 빼앗길 순 없지. 무엇보다 이제부턴 내 거니까.’

엑스는 곧장 손가락에 낀 반지를 발동시켰다. 고목의 씨앗을 땅에 심고, 활력의 이슬을 그 위에 뿌렸다.

리그리앙이 관심을 보였다.

“보통 씨앗이 아닌 것 같구나.”

“그럼요. 대륙의 수호자가 될 녀석입니다.”

“대륙의 수호자? 보여 준 것도 없으면서 이름만 거창하게 지었구나.”

“제가 언제 거짓말 하시는 거 보셨습니까?”

그럼, 많이 봤지.

리그리앙과 시오라스가 마주 보고 웃었다. 리그리앙은 여전히 의문이 남은 것 같았다.

“혹시 자연 마법을 활용하려는 게냐? 특정 지역을 수호하는데 자연 마법이 유용하긴 하지만…… 화염에 취약하고, 기동력이 느려 실용성은 없을 것 같구나.”

엑스의 자연 마법 성취가 일취월장한 것 같긴 하다만, 자연 마법은 결코 쉬운 마법이 아니다.

생전, 속성 마법의 스페셜리스트라 불린 리그리앙조차 마스터하지 못한 게 자연 마법이었으니까.

“상식적으론 그렇겠죠.”

하지만 이건 상식을 초월하는 단절 대륙의 아이템이었다.

똑똑!

활력의 이슬이 씨앗에 떨어지기 무섭게 싹이 튼다.

싹이 되기 무섭게 줄기가, 줄기가 나무가 된다.

마법이라면 따라올 자가 없는 두 사람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 물건이 아니었군!”

“재주도 좋아. 그건 또 어디서 주워온 게냐?”

“이거요? 저를 원수처럼 바라보던 여신님에게, 화해 기념으로 뜯어냈습죠.”

천계의 신한테 삥 뜯다니!

이젠 놀랄 힘도 없었다.

시오라스가 농담 반 말했다.

“자네랑은 다퉈도 문제, 풀어도 문제구만.”

*

아르바 대륙 남동부 어느 작은 마을.

평소엔 주민 말고 사람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마을에 모험가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당연하게도, 모험가들의 목적은 오염된 피조물이었다.

“피조물? 몬스터? 악인? 하여튼 해가 되는 것들은 싹을 말려드리겠습니다!”

“어르신, 혹시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계셔야 저희 같은 모험가들이 삽니다.”

그것도 모자라 NPC에게 아부까지 떠는 플레이어들!

작은 마을 NPC들에게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럴까?

묻는다면 정말, 시대의 흐름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희생의 신이 당신의 희생에 감격합니다!]

“……나이스!”

천계의 등장으로 페이트는 이전까진 볼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오염된 피조물들을 때려잡는 것도 모자라, NPC들까지 살뜰하기 챙기기 시작했다.

매스컴에선 이보다 더한 떡밥도 없었다. 진행자들이 훈훈한 영상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메이지 스캔들로 우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입니다. 외적인 흔들림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플레이어들. 같은 페이트 플레이어로서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죽하면 게임이라면 치를 떠는 언론조차 ‘페이트의 순기능’이라며, 긍정적인 기사를 쓸 정도였다.

덕분에 그나마 숨통이 풀린 건 페이트 게임 마스터들이었다. 서명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또 뭐가요, 선배.”

“고작 한 사람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냈어.”

김성철은 우쭐거리며 가슴을 내밀었다.

“제 선구안 틀리지 않았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체 천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무슨 짓을 했기에 신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서명우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지. 사람 안달 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스트리밍 한 번 켜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주 그냥 능력 값을 해도 제대로 하시는 분이야.”

장난 섞인 원망의 대상은 당연하게도 엑스였다.

메이지를 살린 둘도 없는 은인이건만! 감사는 감사고, 얄미운 건 얄미운 것이었으니까.

타다닥!

김성철이 다시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서명우가 의자에 상반신을 걸치고 김성철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틀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그렇죠. 싹 들어낸다고 해도 원래 페이트 플레이어들을 섭섭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추억 아니겠습니까?”

“추억보다 이과적인 표현이면 좋겠지만…… 괜찮은데? 문제는 페이트의 엔딩이 어떻게 나느냐에 달렸겠네. 제발 엑스가 클리어에 성공하도록, 빌어보자고.”

김성철과 서명우.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은 낮밤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었다.

회장 슈베르트가 은둔한 지금, 게임 마스터로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Fate : Alive

김성철은 프로젝트명을 지그시 바라봤다.

‘모든 플레이어들을 만족하는 후속작을 만들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페이트의 플레이어 수는 4억 7천만.

페이트 월드에서 플레이어, 개개인이 만들어 나간 스토리는 그 수십 배는 될 터.

흔히 하는 말을 빌려, 지금의 페이트는 플레이어들에게 두 번째 인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페이트를 계속해서 서비스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아닌, 불가능이다.

애초에 페이트는 끝이 정해진 게임이니까. 슈베르트가 정해 놓은 끝이 말이다.

김성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거기에 블라썸이란 시한폭탄도 달려있지.’

그러니까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다해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의 두 번째 삶과 추억을 짓밟지 않으면서, 다시금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

빌어먹을, 벌써부터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한두 개씩 빠지는 기분이었다.

“암만 그래도 죽었던 NPC를 살리는 건 무리겠죠?”

“그렇겠지. 스토리 몰입감이 확 깨질 수 있어.”

“하아, 이건 이거대로 딜레마네요. 새로운 NPC들을 찍어 낼 수도 없고, 있는 NPC들을 활용하는 게 베스트인데.”

“문제는 요즘 월드 분위기로 보면 NPC가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단 거지.”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페이트를 개발했던 유능한 동료들이 있었다.

“성철 선배, 이것 좀 봐줄 수 있어요?”

후배가 다가온다.

김성철은 이를 악물었다.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지.”

“무슨 생각하고 계셨어요?”

“아니, 지금이 딴 생각할 때야?”

“그러세요? 그보다, 스타팅 지역을 추려봤는데요. 아무래도 크세르니스가…….”

일하는 데 눈치 없이 방해할 순 없다.

서명우는 잠깐 자리를 피했다.

페이트가 오픈한 이후, 제대로 된 업무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메이지 입사 10년 차를 달려가고 있건만, 감회가 색달랐다.

“게임도 만들어 본 사람이 잘 만드는 법입니다. 회장님.”

끝까지 슈베르트의 뜻대로 휘둘릴 순 없었다. 페이트를 이대로 끝낼 순 없단 소리였다.

서명우는 자료화면에 떠오른 엑스를 바라봤다.

‘뒤는 우리한테 맡기고 마음껏 날뛰어 봐라, 엑스. 페이트의 엔딩이 어떻게 나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수습해볼 테니까.’

*

아르바 대륙 중앙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화 제국의 대군!

십만에 이르는 병력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화제가 되고 있는 건 그들의 강함이었다.

병사들의 무장 수준은 기본이요, 무엇보다 특기 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와, 저게 무림인인가 봐.”

“진짜 맨몸으로만 싸우나본데?”

“뭔 스킬을 쓸지 짐작도 안 된다야.”

쏟아지는 시선들.

무림인, 철강후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곳이 엑스의 고향이란 말이지.”

아수스가 삐죽거렸다.

“아까부터 엑스 이야기만 하시네요?”

“하하. 질투하지 말게. 엑스와 나는 보통 사이가 아니니까.”

“이거 뭐, 극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요.”

긴 항해도 모자라 쉬지 않고 행군하고 있었지만, 병사들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다들 사기가 바짝 올라 적이 달려들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대국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지.”

“이곳에 뼈를 묻는다면 오히려 영광이야.”

“은인을 위해 죽는다. 이보다 명예로운 일도 없군.”

화 제국, 수도를 집어삼켰던 다른 존재!

만약, 엑스가 아니었다면 동대륙은 그대로 다른 존재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다.

화 제국 병사들은 은인, 엑스에게 빚을 갚을 날을 벼르고만 있던 것 같았다.

아수스가 웃음을 삼켰다.

“그럼 은인을 만나러 가 봅시다!”

크세르니스 군과의 합류!

장소는 아르바 대륙 중앙 화산.

원시림, 맹독림을 비롯한 무수한 필드가 밀집되어있는 거대 화산이었다.

대륙의 중심인 만큼, 최우선적으로 수호할 필요가 있었다. 뒤쪽에서 말을 몰던 단우가 보고했다.

“후발대가 도착하는 시간까지 정오면 될 것 같아요.”

“정오? 생각보다 빠르네.”

“제가 발견한 지름길 덕분이죠.”

중앙 화산 근방은 단우의 베이스캠프나 다름없었다.

단우의 스승, 울리크의 거처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슬슬 연락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정오에 도착할 예정…….”

아수스가 엑스와 달라스에게 각각 귓속말을 보냈다.

달라스는 혼밥 동맹을 이끌고 게릴라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처음엔 일백에 불과했지만, 무투 대회로 이름을 알린 진철이 합류하면서 그 숫자가 일천에 다다른 상태였다.

엑스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르바에서 중앙 화산까지 행군하며 탈환한 크고 작은 마을이 벌써 스무 개가 넘었다.

당한 게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른 아수스는 그제야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잠깐, 이번에도 엑스가 다 해 먹는 거 아냐?”

압도적인 활약!

엑스가 신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뿔싸!

아수스는 괜히 신나서 개고생만 했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엑스의 악랄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속여서 부려먹다니……!”

결국, 모든 게 엑스의 손바닥 안이었구나!

아수스는 속으로 다짐했다.

엑스를 만나면 옆구리를 세게 한 번 찔러주겠다고. 그래야 좁은 속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어라?”

하지만 엑스가 누구던가?

누구 하나 서운하게 하는 법이 없는 밀당의 고수. 밀당 실력으로 월드를 넘어 천계까지 평정한 사나이!

“이 냄새는…….”

솔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향긋한 냄새.

끝 향에서 느껴지는 매콤함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중앙 화산의 열기에 늘어져가던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걸로 봤을 때…… 이건 엑스의 음식이 분명했다.

고기도 먹던 놈이 맛을 아는 법.

아수스의 추측은 정확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수천 개의 냄비들.

“딱 맞춰서 왔네.”

엑스는 십만이 넘는 병사들의 음식을 손수 만들고 있었다.

희생의 여신, 새크리이다조차 눈물 없인 볼 수 없을 정도의 생고생!

하지만 엑스가 언제 남을 위해 희생한 적이 있던가? 모든 것은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천상의 요리 (94.8%)

가까워지는 천상의 요리 마스터. 서서히 감이 잡히는 5성 천상의 요리!

엑스가 경쾌하게 도마를 두들겼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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