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숙련도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올리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물량에는 장사가 없는 법!
천상의 요리 숙련도를 올리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십만 그릇을 만들면 오르지 않고 베길 수 있겠는가?
‘쑥쑥 오르는구나!’
기계처럼 움직이는 엑스의 손놀림!
십만 명 분의 식량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크세르니스엔 넘치는 게 식량이었으니까.
비옥한 땅에 더불어 농경기술까지 발전한 지금, 잉여 식량만 해도 처치곤란인 수준이다.
“원정을 떠나서 이런 진수성찬을 먹게 될 줄이야.”
“영주님이 내 아내보다 요리를 잘하시는 것 같아.”
“주변이 더워서 그런가, 미지근한 술도 나름대로 괜찮은데? 갈증을 달래는데 딱이야.”
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사성 천상의 요리가 아니던가?
띠로링!
음식을 삼키기 무섭게 떠오르는 알림들.
“……몸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 한다고? 무슨 알림이지, 이건?”
“버프야, 뭐야? 근데 이런 버프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으이구, 너희들은 엑스 포장마차도 모르냐?”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모르고 경악하는 이들과 알고도 경악하는 이들로.
식재료로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써 버린 것일까?
“갑자기 더위가 싹 가셨잖아?”
“바람이 이렇게 선선했었나?”
화산의 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런 몸 상태라면 하루 종일 전투를 벌여도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단우는 괜히 자기가 뿌듯했다.
“혼자만 알고 있긴 양심에 찔리는 맛이지.”
카타린이 턱으로 아수스 쪽을 가리켰다.
“저거, 백 퍼센트 체한다.”
아수스는 체면을 불사하고, 말없이 그릇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엑스는 냄비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으니, 지켜보는 이들은 이젠 경건한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오오, 아직도 불 앞을 떠나지 않고 계셔.”
“이런 효과를 내는 음식이면, 분명 비싼 재료가 들어갔을 텐데…….”
“생판 남인 우리들을 위해 저렇게까지…….”
서서히 만들어져가는 미담.
당연하게도 엑스가 귀한 식재료를 쓰는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바짝 골드를 벌어야 할 크세르니스였다.
미안하지만 십만의 병사들에게 삼시세끼 고기반찬을 접대할 순 없단 소리였다.
‘대신 고기 맛은 낼 수 있지.’
그런 엑스가 선택한 건 버섯!
페이트의 버섯 중엔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특이한 버섯들이 많았는데, ‘질긴 심줄 버섯’도 그중 하나였다.
열을 가하면 질겨지는 성질이 있는 심줄 버섯, 덕분에 그 가격은 굉장히 저렴했다.
‘100골드에 몇 끼를 때울 수 있는 건지!’
[미식왕의 일기]
질긴 심줄 버섯을 바짝 구웠더니 그 질감이 마치 훈제 고기 같았다. 기쁜 마음에 맛을 봤지만, 퉷! 이 싸구려 버섯에 깊은 맛이 있을 리가. 하지만 식감만큼은 고기와 똑같았다. 쩝, 얼마 전에 처분한 향신료만 있었어도…….
‘그러게 꿍쳐둬야지. 누가 아까운 향신료를 버리래?’
거기에 더해 미식왕의 조언까지!
과연, 수전노 엑스는 최저 골드로 최대 효율을 뽑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쑥쑥 올라가는 숙련도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엑스 님, 도와드릴게요!”
식사 끝.
뒷정리는 숙련도를 주지 않으니까. 엑스는 도움의 손길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넘치는 활력!
병사들은 곧바로 풀어뒀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바짝, 군기가 든 얼굴로 명령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서지하가 흠칫해서 물었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군요.”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전투에 임한 화 제국의 병사들이었지만, 웬일인지 크세르니스 병사들의 기세는 자신들보다 더했다.
마치 전투에 굶주린 듯한 모습!
아수스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다 누구 덕분이죠.”
짧은 수다도 잠시, 명령을 전달 받은 병사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라마세오가 이끄는 정찰대가 가장 먼저 화산 필드를 둘러보려고 떠났다.
“스승님의 말로는, 접근이 편한 아래 지역에선 벌써 오염된 피조물이 보이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피해 온 주민들 때문에 피곤하시다고.”
은연 중 움직이고 있었구나.
합류 장소로 화산을 선택한 건 잘한 판단 같았다.
이내, 자발적으로 나선 병사들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편성됐다. 당연하게도 대다수가 플레이어였다.
시오라스가 엄중하게 경고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각오는 끝났습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게 명예죠.”
죽어도 부활하는 플레이어들이 경고에 위축될 일은 없다.
다다다!
플레이어로 꾸려진 수색대도 화산 곳곳으로 행동을 시작했다.
남은 병사들은 다음 전투를 위해 말을 먹이고, 장비를 정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색 결과, 이상 없습니다!”
밤이 찾아왔을 땐 모든 수색대가 무사히 복귀했다. 시오라스는 그 점이 찝찝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행동을 보이는 데도 이상할 만큼 조용하네. 미련한 적이었다면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하얀 가면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듯싶네.”
“계략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뭐, 인신공양 아니겠느냐?”
리그리앙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나르빌을 잃었던 칼론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
칼론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엑스를 바라봤다.
“두 번 다신 소중한 이들을 잃고 싶지 않네, 엑스.”
“물론이죠.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보진 않을 겁니다.”
엑스는 골똘히 생각했다.
인신공양엔 조건이 필요하다.
대규모일수록 많은 조건과 준비가 필요하단 말이다.
대륙 곳곳의 룬스톤을 오염시키는 것도 그 준비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개입으로, 하얀 가면의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했을 터.
“그래도 인신공양 가능성은 낮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잠잠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급하면 안 된다. 화은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가만히, 넋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얀 가면이 이빨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위험부담이 컸다.
전면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면 만사해결이지만, 마냥 승리를 장담할 순 없었다.
그러니까…….
“녀석을 직접 살펴보고 와야죠.”
엑스는 루얀에 진입, 하얀 가면이 무슨 짓을 꾸미는 지 살피고 올 생각이었다.
지도자가 적 본진에 잠입하겠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말렸겠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게 너밖에 없긴 하지.”
“용용이는 꼭 데리고 가세요. 위험하지 않게!”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엑스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걱정을 해야 될 사람과 안 해도 될 사람을 잘 구분하고 있단 소리였다.
“아마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하루라. 자네가 오기 전까지 말끔하게 정리해 두겠네.”
“뭐야, 바로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엑스.
만남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이들에게 엑스가 양해를 구했다.
“그전에 들를 곳이 있어서요.”
*
다시 돌아온 천계!
가장 먼저 엑스를 반긴 건 프리얀이었다. 프리얀은 잔뜩 흥분해선 엑스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나 이렇게 많은 찬양을 받은 건 처음이야!”
신에게 목마른 플레이어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어떤 신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를 못 했다.
때문에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것 같은 신을 붙잡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내가 춤만 춰도 좋아하더라니까?”
그래서 광대의 신, 프리얀은 인기가 폭발했다. 유감이지만, 그들은 제대로 꽝을 골랐다.
“주머니가 빵빵 했을 때면 몰라도 지금은 영…….”
이 순진무구한 악동에게 걸리면 보상도 없이 광대 노릇을 하게 되리라.
엑스는 그 고생길을 잘 알고 있었다. 휘둘릴 플레이어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졌다.
비단 프리얀만이 아니었다.
“전사의 심장을 가진 전사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희생정신이 저렇게 뛰어날 줄은 몰랐어요.”
“엑스, 자네 덕에 우리들을 되돌아보게 되는군.”
신들의 칭찬은 지상과 천계.
양측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정도로 큰 효과를 가지올 지는 엑스도 미처 몰랐다.
하지만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엑스가 은근하게 신들을 부추겼다.
“이런 변화가 단기간에 멈춰버린다면 의미가 없겠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이야말로, 적절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보상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보상이 아니라 칭찬 아닌가?
아무튼 신들은 엑스의 말에 백분 공감했다. 타이탄이 웅장한 목소리로 먼저 대답했다.
“좋아. 나는 가장 위대한 전사에게 적절한 무기를 내려 주겠네. 미안하지만, 엑스 자네는 제외네. 애들 노는 곳에 다 큰 어른이 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자체 밸런스 패치.
쩝, 입맛을 다신 엑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뒤로 다른 신들도 구체적인 보상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엑스조차 눈이 돌아갈 만 한 보상을 내거는 신도 있었다. 있는 대로 눈이 높아진 엑스가 혹할 정도의 보상이다.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겠군.’
철면피를 도배한 플레이어들의 연기가 시작되리라. 어쨌거나 엑스 입장에선 긍정적인 사건이었다.
‘하나가 돼서 하얀 가면을 압박하게 될 거야.’
엑스는 하얀 가면, 다른 존재를 이번 기회에 뿌리 뽑을 생각이었으니까.
좋으나 싫으나, 플레이어들은 엑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된 것이다.
“그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래, 엑스. 못 다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쉴 새 없이 힘내고들 있군! 역시 내 후손들이야.”
엑스는 잠시 뒷전, 신들도 자신들의 행동 하나에 열광하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신이 난 것 같았다.
엑스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았다.
‘눈치 볼 것 없이 천계를 둘러볼 수 있겠군.’
프리얀은 오늘의 장난 할당량을 채운 모양인지, 더 이상 지상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엑스는 프리얀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프리얀이 물어왔다.
“이번엔 어디서 놀 거야?”
“아껴봤자 쓸데도 없으니까. 이걸 써야죠.”
척.
엑스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 손에 들린 건 ‘천상서고 출입권’이었다.
“윽, 그건 내가 준 거잖아.”
“본인이 줘 놓고 인상은 왜 구겨요?”
“……나는 책 싫어한단 말이야. 지루해.”
책을 떠올리기만 해도 잠이 쏟아지는 모양. 프리얀이 늘어지게 하품을 뱉었다.
책 싫은 건 엑스도 마찬가지였다.
‘스킬 북만 찾고 나와야지.’
그나저나 쓸 만 한 스킬이 있으려나?
스킬 북으로 익힐 수 있는 스킬엔 한계가 있다.
최상급 마법은 대체로 ‘비기’ 취급을 받는다.
자신의 비기를 스킬 북으로 남겨두는 바보는 없을 뿐더러, 스킬 북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나 만들 수 있으면 마법사들은 죄다 부자였겠지.’
제발 하나라도 건질 수 있기를.
엑스는 간절히 바라며 천상서고로 향했다. 물론, 엑스의 걱정은 기우였다.
“!”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책장과 책장 안에 가득 채워진 책들.
거기에다 특수한 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허공엔 책의 구절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뿐이면 놀라지도 않았다.
엑스가 놀란 건 책의 내용 때문이었다. 고르고 고른 것도 아닌, 그저 표지가 화려하기에 집어든 책이다.
-스킬 북 : 헬파이어 샤워 (전설)
폭렬의 마법사, 최종 비기가 깃든 책. 그 위력은 국가를 박살낼 정도로 폭발적이다.
제한 : 지능 15,000↑
특수 효과 : 사용 시, 스킬 ‘헬파이어 샤워’를 습득합니다.
“헐.”
페이트 월드는 넓고,
바보는 많았다.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